어릴적에 부모에게 "이닦기 열심히 잘 하라"란 말을 들었을까? ...아마 들었다.
그럼 난 이닦기를 어릴 적부터 잘 해 왔을까? ...안해 왔다.
그래서 지금 많이 후해한다.
부모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얼토당토 않은 말이지만).
왜 내가 열심히 이닦기 할 버릇을 키워주지 안했을까?
... 역시 얼토당토 않은 말이다.
연년생 4명이 다 사내아이어서 밥먹을 때마다, 형제끼리 놀 때마다, 방에서 숙제 할 때마다, 형제끼리 목욕할 때마다, 밖에 나갈 때마다, 언제나 시끌벅적, 아니, 언제나 전면전쟁상태였다(단 맏이만은 "어른"이어서 거의 영생중립, 가끔 둘째(나)와 동맹관계).
부모가 어찌 철없는 것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돌볼 수 있으랴.
내가 아들,딸의 아빠가 된 지금, 상상조차 못한다.
게다가 내 할머니는 좀 고집불통인 분이어서 나의 어머니도 많이 신경을 쓰셨다.
내 몸 관리의 최종 관리자는 나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이 관리를 소홀히 해왔다.
직장인이 되어서도 밤 이닦기를 소홀히 했다.
결혼한 후는 아내가 부지런히 밤 이닦기를 하는 걸 따라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자기 이를 케어한다"는 의식은 없었다.
당연한 결과로 충치의 아픔도 여러번 경험했다.
그러나 그걸 치료하고 "나아지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지금 많이 후해한다.
때는 이미 늦었다.
치주병(齒周病=잇몸병)을 앓고 있다.
2년전에 충치 치료를 했을 때 의사가 말했다.
"치주병이 매우 중상입니다. 치료에 적어도 6개월은 걸릴 겁니다."
"치주병? 왜? 충치 외는 별로 아픈 것 없는데요."
부끄럽게도 나는 치주병(=잇몸병)이 뭔지 몰랐다.
X-선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
윗쪽 오른편의 어금니부분의 윗턱이 녹아 어금니의 뿌리를 잇몸만으로 지탱한 상태였다.
다른 이도 턱의 뼈가 많이 녹은 상태였지만 윗쪽 오른편의 어금니는 애석하게도 "길어도 5년"이라는 "죽음의 선고"를 받았다.
하나도 아프지가 않은데. 식사도 불편은 없었는데.
"자각증상이 없다는 점이 치주병의 무서운 점입니다. 자각증상을 느꼈을 적엔 이미 늦었습니다."
치주병 치료는 약 1년 6개월이 걸렸다(실은 내가 치료를 받기 싫어서 억지로 질질 끌었다. 아래 치료 상황 참조).
모든 이를 6군데로 구분하여 한군데를 2달∼3달의 한번, 그야말로 "살인적인 치료"를 하였다.
마취를 4번, 5번 하여 직경 0.5mm 정도(?)의 바늘 같은 기구를 잇몸과 이싸이에 놓아 그 바늘로 이 뿌리에 붙은 석회화한 세균을 깎아낸다.
사실 마취를 하기는 하였는데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았다. 자세한 건 알지 못했지만 잇몸병때문에 마취약이 쏟아져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은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나 자신에 원인이 있단 말이다.
물론, 격통이었다.
여때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격통이었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혹시 "전신마취를 해달라." 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도 나는 납득할 수 있다.
담당한 예쁜 여성 치과위생사가 "죄송합니다. 잠깐만 참아주십시오." 하면서 1시간을 걸쳐 세균을 깎아낸다.
1시간 = 잠깐?
작년에 일단 치료는 끝났지만, 경과 관리가 중요하다 해서 2달에 한번씩 병원을 다닌다.
그러나 윗턱이 완전히 녹아난 오른쪽 어금니는 몇달에 한번 염증을 일으켜 통증을 느낀다.
오늘도 그랬다.
그래서 치과병원에 갔다.
아직 젊은 치과의사(병원장의 제1 제자라 하는 사내)가 오늘도 말했다.
"통증을 느낀다는 건 이가 건강한 상태로 되돌아 왔다는 걸 뜻합니다."
"(알았어, 임마) 네, 그건 그렇고 좀 이 통증을 어떻겐가 좀..."
"네, 빼낼까요?"
"(이 놈이 언제나 '빼내자'타령이야) 그건 말고 약을 좀..."
"그건 '문제 해결 기피 행위'에 불과합니다만, ...알았습니다. 그럼 이번에는(사실은 이번에도) 약을 내겠습니다."
나도 안다...
이 어금니가 이제 안된다는 건...
다음에 염증이 일어나면 빼내야겠구나...
이 후회를 내 아들,딸이 경험하지 않도록 해야겠구나...
이닦기를 완전히 생활습관으로, 이닦기를 하지 않으면 편히 자지 못할 그런 심리상태가 되도록...
부모에게 혼난다고 이닦기를 시켜서는 안된다. 버릇이 되도록, 습관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