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 - 왜 빌린 자의 의무만 있고 빌려준 자의 책임은 없는가
제윤경 지음 / 책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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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쟁이, 죽을 죄인 결코 아니다

 

요즘 대한민국 가정이 가계부채로 질식 직전에 있다. 20152분기까지의 가계부채는 1,132조원으로 급증했다. 1분기 전인 지난 3월 말보다 무려 322천억원이나 늘었다. 1년 새 946천억원의 가계빚이 폭증한 것이다. 매달 10조원씩 증가한 셈인데, 이런 식이라면 올해 말이면 1,200조 원에 육박한다. 물론 수치상일 뿐 이미 1,200조 원을 훌쩍 넘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주목할 점은 가계부실 위험가구가 112만에서 190만 가구에 이른다고 하니 가계부채는 그야말로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 아닐 수 없다. 원인은 부동산 과열. 전세난과 전세금 폭등이라는 악재와 사상 최저 금리와 역대 최대 분양 물량이라는 호재 맞물리면서 너도나도 부동산을 위한 대출이 늘어난 탓이다.

 

회계용어로 채무요, 자본과 더해지면 자산이기도 한 이 빚은 레버리지 효과라는 경제용어에 포장되면 투자금이 된다. 하지만 말이 좋아 투자지 요즘 같은 현실에서 이 투자投資가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한 투자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돈과 같은 재물()을 내던지는() 행위인지 곰곰이 살펴보니 후자가 더 많더란 거다(그 점에서 언젠가 꼭 한 번은 투자를 할 우리는 언제든 빚을 질 수 있는 잠재적 빚쟁이다). 나아가 더 큰 문제는 빚 준 상전이요 빚 쓴 종이라고 투자하자고 진 빚이 잘못되어 현대판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와 당신이 누구에게 말 못하고 속으로 끙끙앓고 있는 그 빚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는 빚쟁이들을 위한 책이다. 서민경제 전문가이자 에듀머니 대표인 제윤경은 이 책을 통해 왜 빌린 자의 의무만 있고 빌려준 자의 책임은 없는가?’라며 부채는 무조건 갚아야 한다는 상식에 태클을 걸었다. 저자는 전작 <약탈적 금융사회>에서 약탈적 대출을 서슴지 않는 금융권에 대한 사회적 규제가 절실할 때이다. 더 이상 상환 능력 이상으로 돈을 빌린 사람을 향한 과도한 비난도 거둬야 한다며 비판한 바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상환 능력 이상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을 '약탈적 대출'로 규정하고 금융권을 법률로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빚진 자'에게만 엄해서 도덕적인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고 나아가 채무자가 되면 집과 재산을 빼앗기고 미래까지 저당 잡혀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금융과 개인의 채권-채무 관계는 쌍방의 거래로 이루어진 것인데, 왜 빚을 갚지 못한 비난은 온통 채무자만 져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오히려 채무자의 신용이나 재무 상태 이상으로 돈을 빌려준 금융권에게 '도덕적 해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의 돈이란 것이 국민들이 금융기관을 믿고 맡긴 돈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한 발 더 들어가 정부의 금융정책과 한국 사회의 금융이 품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낱낱이 파헤치고 나아가 해결을 위한 대안을 직접 제시했다. 그렇다면 기업을 차려 돈에 대한 올바른 철학과 관리 방법 등을 강의를 통해 교육하는 기업가였던 저자가 어떻게 해서 사회사업가로 변신하게 된 걸까?

 

나는 아주 상식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채무자 구제 운동에 점점 깊이 빠져든다. 어떤 단단한 신념이나 이론, 이념 같은 것들 때문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죽거나 좌절하거나 지옥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 금융권의 수익성 때문에 사람들의 인격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는 생각뿐이다.” 9

 

이러한 사회문제의 가장 큰 손실은 바로 사람을 잃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추산하는 채무 취약 계층이 350만 명으로 국민 10명 중 6명이 빚을 지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매일 같이 40여명이 자살하는데 주된 내용이 경제적 여건, 즉 빚 때문이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1,200조 원이 넘어서고 빚으로 인한 자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도 우리 사회는 개인 빚을 탕감해주거나 깎아주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처럼 금기시하고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 짓고 있다(12). 그래서 죄인이 되기 싫은 그들은 빚 때문에 소비할 여력이 줄어들고, 더 높은 이자의 빚으로 기존 빚을 갚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자아고갈에 이르게 되고 끝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하나가 있다. ‘카드를 만들어달라고 사정하고, 지점장이 나와 대출을 권하던 금융사는 내가 빚을 못 갚게 되자 얼마나 곤란해 진걸까?’ 놀랍게도 금융사는 큰 손해가 없다. 금융사들은 연체된 채권을 오래 보유하지 않는다. 3개월 이상 연체되면 대부업체 등에 헐값에 팔아버린다. 처음 돈을 빌린 곳은 은행이었는데, 나중에 채권추심회사나 신용정보회사 같은 대부업체에서 독촉전화가 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은행과 대부업체 간의 커넥션도 숨어 있다. 은행은 석 달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을 계속 보유하고 있으면 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부실에 따른 위험 관리를 위해 대손충당금을 더 쌓아두어야 한다. 그래서 은행은 당신과 내가 3개월 이상 진 빚을 부실채권이라는 이름으로 대부업체에 땡처리해 버린다.

 

대부업체는 금융회사로부터 부실채권을 헐값에 매입해 채무자에게 원금은 물론이거니와 연체이자와 법정 비용까지 청구할 권리를 갖게 된다. 가령 100만 원짜리 채권이라면 연체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5퍼센트 전후 즉 5만원에 매입한 뒤, 원금 100만원과 더불어 연체이자 및 법정 비용까지 포함해 극단적으로는 1,000만 원 이상도 받아낼 권리가 생긴다. 금융감독원의 201212월 발표에 따르면 은행과 카드, 캐피탈 등 여신전문회사와 저축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가 대부업체에 대출 채권을 넘겨준 고객이 76만 명에 달한다. 금액 기준으로는 9조원을 넘는다.” 254~255

 

금융사의 부실은 손쉽게 처리함으로써 부실대출의 실태를 감추고, 채무자는 여러 채권자에게 시달리도록 하는 채권 땡처리 사업이 우리나라에서는 일상적이다. 은행은 물론이고 정부 기관인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에서조차 채권을 대부업체에 매각하고 있는 현실에 배신감을 넘어 분노케 한다. 게다가 금융사들은 일종의 컨소시엄으로 대부업체를 만들어 채권 땡처리 시장에서 또 다른 수익원을 확보하고 있다니 과연 이들이 내가 주거래 은행이라 신뢰했던 그 은행이 맞나스스로에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에 대해 저자는 채무자인 우리에게 빚 못 갚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돈을 빌렸으면 당연히 갚아야 하지만 못 갚을 경우 어떤 형태의 형벌도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오늘날 채무자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빚을 갚겠다는 무리한 의지에 있다고 말한다. 즉 갚을 수 없는 빚을 갚으려고 무리하게 노력하다보면 은행 빚을 카드빚으로, 카드빚을 사채로 갚다가 결국 사회적 비용을 크게 증가시키는 결과는 낳는다는 것이다.

 

대안은 연체를 적극적으로 시작하는 것. 즉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개인 워크아웃 등의 제도를 이용하거나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한 국민행복기금 등의 신용회복 프로그램, 그리고 지자체를 통한 금융복지 상담센터 등을 이용 채무조정 절차를 밟는 것이다.

한편 저자는 2012교육, 의료, 주거 등과 같은 삶의 기본적인 요소 때문에 서민들이 빚을 져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국민들의 부실채권을 추심회사로부터 사들여 소각한 미국의 롤링주빌리 프로젝트에 모티브를 얻어 주빌리 은행을 설립,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792명의 빚 513,000만 원을 소각했고 곧 더 큰 규모의 ‘99퍼센트를 위한, 99퍼센트에 의한 빚 탕감 시민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르뽀 형식의 생생한 현장감에 실사구시의 유익함을 더한 책, <베니스의 상인>에서 살은 베어도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고 선언함으로써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패소하게 만든 포샤의 명판결 같은 책이다. 안토니오와 같은 빚쟁이라면 일독하시라. 빚에 대한 현명한 대응력을 선사할 것이다.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격주간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402호)

경제경영 전문가 리뷰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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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리치보이 2015-10-23 00:0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대출이 레버리지 효과를 위한 자산이라면 문제가 덜할텐데...당장 급한 생활비로 쓰거나 생각없이 남따라가는 대출이 많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터지면 큰일인데, 막을 방법은 찾을 수가 없네요. ^^;;
 
부자의 그릇 -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
이즈미 마사토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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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는 본격 부자관련서다. 10년 전인 200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10억 부자 되기와 같은 재테크 관련서가 하루에 몇 권씩 나오곤 했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닥쳐온 불황기에는 비슷한 류의 책마저 자취를 감췄다. 하기는,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있는 재산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1/3씩 줄어드는 판국에 무슨 돈 모으는 이야기 일까. 재테크책이 환영받을 리 없다. 설령 있다 손치더라도 부채를 줄이는 법이라던가 불황의 시대 가계가 대처해야 할 법 등에 관한 책들이 대다수였다. 아니면 위기가 곧 기회라고 저자들이 투자해서 돈 버느라 정신없어 책을 내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지난 해 말부터 조금씩 부자서와 재테크 책이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최근에 나오는 책들은 10년 전에 나왔던 재테크 책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전에 나왔던 재테크 책이 1020억 부자 등 숫자 늘리기에 치중했다면 요즘은 행복한 부자되기라던가 소유보다는 경험을 누려라와 같은 메시지를 주고 있다.

이 책<부자의 그릇>도 최근의 경향에 부합되는 책이다. 핵심 메시지는 부자가 되고 싶다면 부자가 될 그릇부터 먼저 키워라라는 부자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이 책은 일본에서 돈의 교양과 본질을 전파하고 있는 경제금융교육 전문가가 교양 소설 형식의 메시지를 통해 부자가 되는 자신의 그릇을 키우고, 돈과 인생의 진짜 주인이 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이즈미 마사토라는 사람인데 일본 파이낸셜 아카데미 주식회사 대표이사라고 하니 금융교육 베테랑이라고 봐도 되겠다.

일본 최대의 독립계 파이낸셜 교육 기관인 파이낸셜 아카데미는 현재 수강생이 6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경제 입문과 회계, 재무, 경제신문 보는 법, 자금 계획에서 주식투자 교실, 부동산투자 교실 등의 투자 학교까지 폭넓은 재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단다. 우리나라에도 꼭 필요한 교육기관이 아닐까. 저자의 마인드에 공감하니 책을 온전히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더 들었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살펴보자면 한때 연매출 12억의 주먹밥 가게 오너 였던 주인공은 소위 초심자의 오류로 인해 도산하여 3억 원의 빚을 짊어지고 할 일 없이 매일 분수대 근처를 방황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서울역이나 종로 등에서 자주 보는 노숙자들 중 몇몇도 이런 경우를 만난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 주인공은 어느 추운 날 100원이 부족해 자판기 음료 하나 먹지 못할 정도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그러다 스스로를 조커라고 부르는 노인이 건넨 100원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7시간에 걸친 그들의 대화가 시작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조커라는 사람은 사업으로 크게 부자가 된 노인이었고, 이 노인이 주인공을 만나게 된 데에는 우연이 아닌 이유가 따로 있었다.

 

신용이 두터운 사람에게 돈이 온다.“ 즉 신용이 돈을 끌어당긴다는 말은 깊이 공감한다. 돈은 타인으로부터 들어오며, 결국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나의 통장에 고스란히 나타난다는 뜻인데, 부자라면 열이면 열, 한결 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 ”약속은 칼같이 지켜야 한다, 그래야 신용이 두터워져서 장사할 기회도 생기고 그런 기회가 많아지면 부자가 된다.“의 중심엔 신용이 들어 있다. 타인의 믿음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큰 재산이 된다는, 부자라면 아는 신용의 원리를 우리는 너무 가볍게 여긴다.

 

예를 들어 제 아무리 금리가 1퍼센트대라고 하더라도 돈을 모으려면, 돈을 믿고 맡기려면 은행밖에 없다(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있는 일본의 저축률은 여전히 높은 이유, 원금이라도 잃기 싫어서다). 은행 지점 한 곳을 주거래 은행으로 삼고 월급통장은 물론 예적금까지 꾸준히 거래를 하다 보면 지점과의 신용도는 차츰 높아진다. 1 금융권인 은행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이 10%대 이자를 감수한다고 해도 단 한 푼도 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주거래은행의 신용도가 높은 고객에게는(불쾌하게도 은행의 신용도는 마치 유리지갑을 보듯 고객의 현금이동을 은행이 훤히 읽을 수 있을수록 높아진다. 그래서 돈 떼일 염려가 전혀 없는 사람은 신용도가 최고다) 3~4%대 금리로 대출해 준다. 카드 역시 한 번도 연체를 하지 않으면 사용한도는 끝없이 증가하지 않던가. 이런 것이 신용도가 돈으로 변신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이 여기까지라 아쉽고 안타깝다. 스토리의 구성도 엉성한데다 마지막엔 극적인 요소를 더해 황당하기까지 하다. 소설형식의 재테크서가 갖는 치명적인 실수는 스토리와 핵심이 따로 논다는 것인데, 이 책도 이 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주제와 핵심이 주는 메시지는 약하고, 논리 역시 엉성하다. 서사의 구성이 저녁부터 늦은 밤까지의 7시간으로 한정한 것이 치명적인 실수 같다.

사업에 실패한데다 가족에게까지 버림받은 주인공에게 두터운 신용이 돈이 된다는 메시지가 과연 어울릴까 의문이다. 만약 스토리처럼 주인공이 재기에 성공한다면 제 스스로 딛고 일어선 것이 아니라 몸 아픈 딸아이가 조커와 친해진 덕분이 아니고 뭘까.

 

이 책을 읽고 나니 캔 블랜차드의 짧은 경영우화들이 찬사를 받는 이유를 알 듯 하다. 차라리 6년 전에 읽은 <돈의 교양>(리뷰 http://blog.daum.net/tobfreeman/7162821) 더 유익할 것 같다. 이 책이 올해 꽤 많이 팔린 것으로 아는데, 필경 시의적절성덕분이었으리라.

리뷰를 쓰는 내내 나았던 점을 찾으려 애를 써 봤지만 찾기 어렵다. 그나마 핵심 메시지가 신선하지 않았더라면 리뷰조차 쓸 마음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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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즐기는 1% 금리
김광기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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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 시대에 딱 어울리는 재테크 책!


대한민국 자본주의 역사상, 아니 단군 이래 초저금리시대를 처음맞는 지금, 1%대 금리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자 사회현상이 되었다. 제로금리의 장기불황으로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있는 일본을 살펴보면 초저금리는 기시 경제와 금융시장은 물론 전반적 사회 분위기와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 정신 및 심리상태까지 좌우할 메가톤급 변수다.

'이런 시기에 무슨 재테크서냐?' 싶었다. '누구라도 노력하면 10억 부자 문제없다'는 식의 구라(?)가 아니라, 돈맥이 막혀버린 초저금리 시대에 우리가 투자할 곳의 좌표를 찾도록 돕기 위해 중앙일보 경제기자 네 명이 함께 쓴 책이라고 한다.  더도 덜도 아닌 '5% 수익'을 얻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아 제시하는데, 직접 상품까지 거론하며 추천한다. 일간지, 경제지에서는 찾을 수 없는 소스들이 있겠다 싶었다. 제목은 <거꾸로 즐기는 1%금리> 이다.


"투자에 성공하려면 스스로 감당 가능한 적정 목표 수익을 정하는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이 책은 이를 연 5%로 제시합니다. 이름 하여 '중위험 중수익'입니다.

1%금리시대라고 하지만, 5% 수익 달성은 그렇게 힘든 게 아닙니다. 그 정도의 현금 흐름을 안정적으로 창출하는 자산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국내외 주식시장에는 연 2~3%의 배당을 꾸준히 주는 기업이 의외로 많습니다. 거기에 혁신 역량을 겸비해 미래 성장 기반까지 갖춘 기업이라면 주가가 연 5% 이상 오르고도 남습니다. 매일 주가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내재가치가 탄탄한 기업의 주인이 돼 느긋하게 기다려 보십시오. 그런 배당주나 가치주를 고르기 힘들다면 투자 고수들이 그것들을 모아서 잘 버무려놓는 펀드에 올라타십시오. 요즘 진짜 친구처럼 믿을 만한 자산운용사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어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친구들의 펀드를 직접 골라 알려드리겠습니다. 주식이나 펀드 뿐 아닙니다. 연 5~7%의 수익을 추구하는 지수형 ELS에 투자하는 방법도 소개합니다." 9~10쪽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최근 인터스텔라에서 배우는 초저금리의 법칙 3가지라는 보고서를 냈다. 요약하면 중력이 클수록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처럼, 초저금리로 갈수록 자산증식에 걸리는 시간이 가속적으로 느려진다는 것. 금리에 따라 예금금액이 두 배가 되는 시기를 측정하는 이른바 '72의 법칙'이 있다. 즉, 72 나누기 금리하면 예금이 두 배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나온다. 예를 들어 금리가 5%일 때는 72를 5로 나눈 결과, 14년이 걸립니다. 이런 식으로 따져 보면 4%18, 3%23, 2%35년이 나온다. 이런 식이면 1% 금리면 무려 70년이나 걸린다는 결론이 나온다. 예적금으로는 답 안나온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이런 추세로 이어지다 보면 '극심한 경기침체와 제로(또는 마이너스) 금리'에 도달, 이른바 디플레이션이 올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에서는 디플레이션의 머리글자를 딴 이른바 'D의 공포'가 회자되는 지경. 세계적인 저금리와 이를 초래한 저성장, 저물가의 '뉴노멀 상황'은 앞으로 몇 년 안에 끝날 일이 아니다(경제학자 우석훈은 최소 10년은 갈 것으로 보고 '불황 10년'이라는 책을 쓴 바 있다)​.


결론적으로 가계는 대책없는 막연한 희망보다는 '저성장, 저금리 장기화'를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소드과 지출 그리고 투자에 대한 새로운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 

 

  그렇다면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저자들은 묻지마 주식투자에 대해 무척 경계한다.  '증권사 보고서, 증권TV, 인터넷 토론방에 의존할 생각은 아예 내다버려라' 라고 경고한다. 특히 돈 받고 보내주는 종목 추천 서비스를 그대로 따라 할 생각이라면 아예 주식에서 손을 떼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처음 말 듣고 몇 번 돈을 벌 수는 있지만, 결국 크게 걸려 다 토해낼 게 빤하기 때문이다. 대신 저자들이 내놓은 해법은 'A급' 펀드 고르는 'DIVERT(관점 바꾸기) 전략'이다.


결국 답은 'DIVERT(관점 바꾸기)에 있다. DIVERT란,

 

확실해진 배당(Dividend)의 시대,

인덱스(Index)와의 이별,

필수가 된 가치(Value)투자,

철저한 환율(Exchange rate) 리스크 관리,

소리없이 강한 글로벌 리츠(REITs),

세금(Tax) 줄이는 습관을 뜻한다. 179쪽

공부는 기자와 펀드매니저의 몫이다. 게으르고 지식이 부족한, 그래서 귀얇은 나 같은 팔랑귀 일반 투자자에게는 구체적으로 '이러이러한 상품이다'고 말해줘야 한다. 친절하게도 경제부 기자인 저자들이 친구 같은 펀드 12개 상품을 아예 대놓고 책에 소개했다. 193 쪽부터 시작되는 이른바 '당장 투자해도 좋은 명품 펀드 12선' 인데, 대충 허투루 뽑은 것이 아니라 투자사의 운용철학과 설정 이후 수익률, 리스크 관리능력, 펀드매니저의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공저자들이 엄선했다고 한다. 이 책의 핵심내용인 셈인데, '당장 투자해도 좋은 명품 펀드 12선'은 다음과 같다.


에셋플러스 리치투게더펀드’3총사

그리고 메리츠 코리아펀드

신영 마라톤 펀드

삼성 중소형 포커스펀드

이 밖에도 한국밸류 10년투자펀드

동양 중소형고배당펀드

대신 성장중소형주펀드

피델리티 글로벌 배당인컴펀드

미래에셋 글로벌그레이트컨슈머펀드

한화글로벌 헬스케어펀드

KTB중국1등펀드

AB미국그로스펀드

아울러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펀드를 직구하면 수수료를 최대 60%까지 절감하는 펀드 슈퍼마켓(www. fundsupermarket.co.kr)에서 사는 것도 좋다. 2014년 6월만 해도 1만 5000개 정도였던 개설 계좌 수가 2015년 초 3만 개를 돌파, 펀드 가입 잔액도 5000억원을 넘어섰다고 하니 신뢰할 만하다.    

 

한편 저자들은 부동산에 대해 시세차익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하며, 미친 전세는 자가 주택-월세주택 이원화로 가는 과정이라고 분석한다. 이에 따라 부동산에서 5%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아파트를 살 것이 아니라, 오피스텔, 빌라, 상가, 분양형 호텔 등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해야 한다면서 나름의 구체적인 투자법을 제시한다.


우선 오피스텔은 수익형부동산 투자를 막 시작하는 초보자에게 제격인 상품이다. 초기 투자 자금이 크지 않아서 부담도 적고, 오피스텔은 수요가 꾸준해서 경기를 덜타는 장점이 있다. 또 싱글족이 급증하면서 혼자 살기 편한 집을 구하고, 신혼부부들도 오피스텔에서 살림을 시작하는 사례도 늘고 있는 상황이라 수익형 부동산 상품으로 적당하다. 최근 서울 마곡지구와 위례, 광교 신도시 등의 오피스텔 분양에는 투자 인파가 몰려 청약 경쟁률이 수십~수백대일을 기록하기도 했다하니 참고할 만하다.  

다음은 빌라. 최근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대체 주거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다만 빌라는 오피스텔에 비해 저소득층이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월세가 상대적으로 싼 편이고, 팔 때 시세차익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따라서 임대가 안정적으로 꾸준이 나가는 지역인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하고, 월 임대료는 세입자 소득의 30%안쪽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현재 서울 지역의 빌라의 평균 매매가격은 13천만원 정도, 대게 대출 5천만원을 끼고 구입해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45~5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5% 투자수익률) 

마지막으로 상가다. 상가는 부동산 투자에 일가견이 생긴 전문 투자자들이 찾은 종착역이다. 그래서 수익형 부동산의 꽃이라고 불리는데, 최근 상가건물을 통째로 구입하거나 신축해서 내 집 마련과 노후 생활 대책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은퇴 세대가 늘고 있다. 건물의 아래층들을 상가로 임대해주고 꼭대기 층에 작은 정원을 곁들인 주택을 갖춰서 사는 최고의 수익형 부동산 투자방법이다. 요즘 초저금리로 상가 투자자들도 큰 혜택을 보고 있다. 상가에 대한 은행 대출금리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5~6%였던 것이 요즘 3%대로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상가의 임대수익률은 여전히 평균 4~6%를 유지하고, 곳에 따라서는 10%에 육박하기도 한다. 최근 은퇴한 베이비부머와 명퇴한 중년, 취업 대신 창업을 택한 젊은이들이 자영업을 위해 상가를 찾고 있어 인기중이다.


책의 내용과는 별도로 내가 분석하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면, 주식시장은 세계적인 유동성 장세로 최소 상반기까지는 활발하고 올 연말까지도 거래가 활발할 것 같다. 하지만 부동산은 사정이 좀 다르다. 전월세물량의 증가로 순수 전세물량이 부족한 시점에 저금리가 맞물려 올들어 부동산이 반짝 활기를 띠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건설사는 보유부동산을 처분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 물량을 쏟아내고 있고, 이들을 광고주로 삼는 언론은 온전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광고판' 역할을 하고 있다. 저희들이야 깨춤을 춰도 상관없고 관심도 없다. 소비자만 휘둘리지 않으면 된다.


우선 중대형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면 '입질'이 오는 지금이야말로 매도의 호기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 분양물량의 평형을 살펴보라. 중대형은 더이상 없다. 반면, 저금리에 힘입어 더 큰 평형으로 아파트를 옮기려 한다면, 당장이 아닌 미래를 생각하시길. 시세차익은커녕 팔 수가 없어 평생 그 집에서 살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의 흐름이라면 국내상황이 아니더라도 세계경제의 변동으로 하반기에서 연말 사이 한차례 쓰나미급 경제한파가 올 것 같으니 시장을 충분히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 부동산 거래는 '내 인생 최대의 자산'을 사고 파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기를. 


정리해 보자. 지금 현재 한국의 부동산 신화는 이미 종언을 고했고, 국내 증시는 기업들의 소리 없는 구조조정 아래서 박스권 탈출에 실패했다. 연금만으로 안락한 노후를 꿈꾸던 시대도 저물었고, 금리는 1%대로 추락하여 자산이 2배로 불어나는 데 35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 저금리라는 돈의 늪지대에서 쥐꼬리만 한 예금 이자만 끌어안고 살텐가? 큰일난다. 지금은, 특히 올해는 모든 경제적 결정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그 점에서 이 <거꾸로 즐기는 1% 금리>은 정독해서 읽을만하다. 투자처 결정에 대한 도움을 얻기도 할테지만, 무엇보다 1% 대 초저금리시대인 지금이 어떤 상황인 건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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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보이스 - 0.001초의 약탈자들, 그들은 어떻게 월스트리트를 조종하는가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제용 옮김, 곽수종 감수 / 비즈니스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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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루이스,  초단타매매의 추악한 이면을 고발하다

 

   올해 경제경영서의 뜨거운 감자는 단연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과 <머니볼>, <라이어스 포커> 등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잘 알려진 논픽션 작가 마이클 루이스가 쓴 <플래시 보이스>일 것이다. <21세기 자본>이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 전반에 걸친 불평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줬다면, <플래시 보이스>는 첨단기술을 앞세워 주식시장을 노리는 월스트리트의 약탈자들을 고발했다.

최근 미 연방수사국(FBI)과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월가의 초단타매매 실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뉴욕 주 검찰 역시 초탄타매매를 통한 부당 이득에 대한 조사를 진행중이라니 칼보다 강한 펜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첫 페이지부터 저자는 “당신이 알고 있던 주식시장은 없다!”고 단언한다.

 

   마이클 루이스는 어느 날 골드만삭스의 직원이었던 그 러시아 출신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그곳을 퇴사한 후 2009년 여름, FBI에 의해 체포되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미국 정부가 내세운 그의 혐의는 골드만 삭스의 '컴퓨터 코드'를 훔쳤다는 것.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살로만 브라더스의 채권 세일즈맨으로 일한 적이 있었던 마이클 루이스는 세르게이의 절도 사건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근무하던 '초단타매매 프로그래머'였던 그가 훔친 ‘컴퓨터 코드’는 무엇일까?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이 의문 때문이었다.

   RBC(로열뱅크오브캐나다)직원이자 7년 경력의 트레이더인 청년 브래드는 어느 날 자신의 주문이 한순간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는 사건을 경험한다. 그리고 마치 누군가 나의 매매의도를 알아채기라도 한 듯 거래를 하면 계속 손해를 봤다. 주위를 확인해 보니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트레이더의 모니터에서 종종 마술이 일어나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 청년은 토론토에서 월가로 부임하면서 그 원인이 바로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HFT: High Frequency Traders) 즉, 고성능컴퓨터, 초고속통신망 등을 기반으로 자동화된 복잡한 알고리즘을 사용해 수천 혹은 수백만 분의 1초의 속도로 매수와 매도 주문을 반복하는 거래 방식으로 수익을 내는 사람들에게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2,000명의 사람들이 광케이블 매설작업을 하고 있었다. 막 사십대에 접어든 댄 스피비는 시카고상품거래소와 나스닥증권거래소 간의 실제 매매 속도가 이론적으로 가능한 매매 속도와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3억 달러를 투자받아 '스프레드 네트워크스'라는 회사를 설립, 빠른 속도가 보장되는 시카고의 사우스사이드에 있는 데이터센터와 뉴저지주 북부의 증권거래소를 연결하는 케이블선을 최대한 은밀하게 개척했다. 케이블의 설치 목적은 누구나 참여하는 시장의 내부에 수천만 달러의 입장료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에게 속도가 더 빠른 케이블을 팔거나 임대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월스트리트가 0.001초라도 남들보다 빨리 정보를 획득하려는 이유는 뭘까? 바로 일반 및 기관 투자자들의 매매를 중개하는 대형은행들과 초단타매매꾼이 서로 결탁해 고객의 주문 정보를 미리 빼돌려 공정하게 시장에서 거래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였다.

 

   미국은 국토면적이 워낙 크다 보니 우리와는 다르게 다수의 증권거래소가 존재하는데(그 점에서 우리가 뉴스나 신문에서 보는 수백 명의 매니저들이 전화기를 들고 주문을 내고 받는 호가창은 허상인 셈이다), 그로인해 생기는 같은 종목에 대한 찰나의 가격 괴리를 이용하여 초단타매매 트레이더들이 먼저 그 정보에 접근하고 최단 시간에 주문을 넣어 일반 트레이더로부터 차익거래를 얻는다는 아이디어는 이들이 마이크로세컨즈 즉, '수백만 분의 1초' 싸움에 뛰어들게 했다.

   일반 개인투자자들이 단말기를 보고 주문을 넣을라치면 사라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관건은 속도에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거래소에 주문이 닿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거래소 인근의 부지를 매입하거나 비밀리에 광케이블을 설치했던 것이다. 첨단 기술이 낳은 오류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생산했고, 결국 시장은 왜곡되면서 돈을 더 많이 가진 자들이 시장을 손금 보듯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증권거래소가 한 곳인 한국의 주식시장은 안전할까? 국내의 한 증권사는 이른바 ‘스캘퍼(scalper)’ 즉, 가장 짧은 기간 동안 포지션을 유지하는 투자자를 일컫는 말로 일반적으로 전산시스템을 통해 1일 100회 이상 초단타 매매를 하는 개인투자자들에게 거래소도달 속도가 일반 회선에 비해 빠른 ‘전용선’을 대여하고 있었다.

   한국거래소에서 증권사로 연결되는 1번째 서버인 FEP(Front End Processor)서버에 직접 연결되도록 돕고 있는데, ‘방화벽’을 거치지 않아 접속속도가 빠르다. 한마디로 스캘퍼들이 일반 투자자들보다 유리한 환경에서 선물∙옵션과 같은 파생상품을 매매하고 있다는 얘기다. 증권사가 얻는 것은 수수료 수익. 시스템트레이딩을 통해 일 평균 200~300건 정도의 매매를 하는 스캘퍼들은 향상된 거래속도로 매매를 할 수 있어 남들보다 훨씬 유리하고, 증권사는 스캘퍼들이 매매할 때마다 늘어나는 수수료를 챙겨서 좋은 구조였지만, 문제는 소규모 자금으로 주식거래를 하는 일반 투자자들은 이 전용선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지난 2011년 검찰은 12개 증권사에서 이 같은 전용선매매 정황을 포착, 각사 경영진을 현행법령 위반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금융계의 뿌리 깊은 문제는 일종의 도덕적 무력감이었다. 금융계안의 모든 사람들이 편협한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금융계가 얼마나 부패하고 사악해졌는지에 상관없이 금융계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122쪽

 

   월가의 추악한 탐욕의 전모(全貌)를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듯 마이클 루이스의 탁월한 스토리텔링에 바짝 붙어 시선을 추적하면서도 결코 즐길 수 없었던 이유는 모럴 헤저드, 즉 도덕적 헤이에서 비롯된 무력감 때문이었다. 그들의 탐욕이 사그라지지 않는 한 개미라 불리는 개인투자자의 투자금은 언제까지고 말 그대로 돈(資)을 길바닥에 던져버리는(投) 투자(投資)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초단타매매라는 투자 기법은 눈부신 기계 시대의 총아일 터, 기술의 진보가 거듭될수록 변화될 투자기법들이 두려워졌다. <제2의 기계 시대>에서 저자 에릭 브린욜프슨와 앤드루 맥아피는 기술의 진보는 기술의 소유여부에 따라 부와 소득 불평등을 심화하는 핵심 요인이 된다고 했지만 날로 진화되어가는 디지털 기술에 따라 변화하는 투자방식 또한 따라잡지 못한다면 온전한 투자가로 거듭나기는 틀렸다고 봐야 한다. 한마디로 충분히 공부해서 익히지 않으면 돈벌기 점점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2002년 존 고든이 쓴 <월스트리트 제국>은 현재 세계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월스트리트의 350년 역사(1653-2001)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통사를 보여주는 한편, 사기와 협잡, 위험감수, 애국심, 권력을 향한 욕망, 천재성, 우둔함 등으로 점철된 '슈퍼파워' 월스트리트의 역사를 묘사했다. <플래시보이스>를 통해 본 오늘의 월가 역시 13년 전이나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책을 덮으며 “월가 금융인의 거듭된 실패는 부족해서가 아니라 충분함을 몰라서다.”라는 세계 4대 투자 거장이자 월스트리트의 성인이라 추앙되는 존 C 보글 일갈이 떠올랐다. 불평등(不平等)에 대한 해답은 ‘충분함을 알라Be Enough'가 아닐까.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격주간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380호) 전문가 리뷰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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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 적게 써도 행복해지는 소비의 비밀
엘리자베스 던, 마이클 노튼 지음, 방영호 옮김 / 알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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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돈 필요 없는 행복한 소비법

 

 

 

  사람들이 부자가 부러울 때마다 하는 말은 ‘제아무리 부자라도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이다. 하지만 이 책 <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단 ‘돈을 잘 쓰면’이라는 중요한 전제가 붙는다. 저자들은 ’행복을 담보하는 지출원칙‘에 의한 소비를 통해 만족을 느끼는 법을 배운다면 적게 써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행복을 담보하는 지출원칙‘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보다 체험적인 것에서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체험을 구매하라). 집이나 자동차를 사면 사는 며칠은 기쁘고 행복하지만, 내 생활에 젖는 순간 평범해진다. 하지만 여행이나 콘서트 관람, 간절했던 사람과의 특별한 저녁식사는 두고두고 추억할 수 있는 행복한 기억이 된다. 또한 체험을 하면 다른 사람들과 어느 정도 유대감이 형성되기 때문에 구매할 때보다 더 큰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평범한 일상도 약간의 변화를 주면 특별해진다(특별하게 만들어라). 출퇴근길 습관처럼 마시는 에스프레소 커피는 한 잔에 대략 5천원, 하루 두 잔이면 1만원이다. 1년이면 365만원으로 여름휴가로 유럽여행을 갈 만큼 많은 돈이다. 이처럼 습관적인 소비는 꼭 필요하지도 않는데도 돈을 들이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출퇴근길 커피를 참는 대신 일요일 아침마다 커피숍에서 약간 더 비싼 커피를 음미한다면 평범한 커피마시기도 특별해진다.

 

 

 

 

   우리는 몇 푼 아껴보겠다고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버리는 실수를 반복한다(시간을 구매하라). 기름값 천원을 아끼겠다고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 한 시간을 운전하고, 무료 시음제품을 얻겠다고 뙤약볕 아래 끝도 없이 늘어선 줄에서 무작정 기다린다. 말 그대로 시간은 금이다.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 우선 출퇴근 시간을 줄이자. 장거리를 통근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여가 시간을 별로 만족스럽게 보내지 못해 불행해 한다. 두 번째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없애야 한다. 텔레비전은 재미가 쏠쏠한 물건이긴 하지만 그거 아는가? 사람들은 1년에 두 달을 텔레비전에 바친다는 것을.

 

   행복한 소비를 하고 싶다면 제일 먼저 신용카드를 반으로 접어라(먼저 돈을 내고 나중에 소비하라). 우리는 구매의 쾌감과 지출의 고통을 저울질하며 지갑을 열지 말지를 결정하며 현명한 소비에 노력한다. 하지만 여기에 속수무책의 적이 있으니 바로 신용카드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구매하는 순간에 느끼는 지출의 고통이 경감되어 현명하고 상식적인 사람들도 쉽게 지름신의 유혹에 빠져 결국 빚쟁이가 된다. 신용카드 대신 ‘선 지급, 후 소비’ 습관을 들이면, 기다리는 즐거움과 소비하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인터넷 쇼핑을 하던지 신용카드 대신 직불카드를 사용하자.

 

   마지막으로 행복하고 싶다면 소득을 늘리려고 애쓰기보다, 소득의 일부를 다른 사람을 위해 지출하면,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의 보상, 즉 금전이 아닌 ‘행복’이라는 보상을 얻을 수 있다(다른 사람에게 투자하라). 그렇다면 ‘행복을 담보하는 소비원칙’을 활용한 최고의 행복한 소비는 뭘까? 지인을 맛집에 데리고 가서 선물 받은 상품권으로 요리를 사주고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투자했고, 체험을 구매했으며, 먼저 돈을 낸 상품권으로 소비했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한전사보 KEPCO TODAY (77호) 북섹션에 소개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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