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네버랜드 클래식 1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엘 그림 / 시공주니어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책을 고를 때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더구나 부모가 '자녀교육'이라는 관점을 고려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교훈'이 담긴 이야기책을 고르려 하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자녀가 독서도 즐기면서 '배울 점'도 있으면 참 좋을 것이라 막연하게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다. 재미난 이야기가 아니라면 '교훈'은 둘째치고 아에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래선 부모가 원하는 '자녀교육'과 '교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마는 셈이 되고 만다.

 

  그럴 땐, '교훈' 따위는 잠시 내려 놓길 바란다. 순수하고 온전하게 '재미'만을 추구한 이야기로 먼저 독서습관을 잡아놓은 뒤에 '교훈'을 슬그머니 챙겨도 결코 늦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100%의 재미만을 추구하였기 때문에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로 아이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나면 기대했던 것만큼 '성과'가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이 무려 150년 전에 인기를 끌었던 책이고, 디즈니 만화영화조차 70년 전인 1950년대에 선을 보여 흥행을 이끌었던 것을 간과한 결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요즘 아이들에게는 흥미로울 것도 없는 고리타분한 내용의 책이란 말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생생한 '이상한 나라'는 책속이 아니라 '너튜브(동영상) 세상'속에서 더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읽을만한 가치도 없는 낡은 옛책에 불과할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상력'을 키워줄 수 있는 훌륭한 고전이라는 점을 모르고서 하는 말이다. 또한 이 책의 알짜배기는 바로 '언어유희(말장난)'에 있다. 더구나 토끼가 옷을 쫙 빼입고서 고급스런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늦었다, 늦었어"라고 말하는 '판타지적 요소'가 교과서적으로다가 때려박혀 있는 '명품고전판타지'라는 배경지식을 언급해주지도 않고서 아이들에게 권해주는 것은 어리석은 부모들이나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미권'에서는 아직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언어유희'를 배우고, 풍자와 해학을 즐기며, 판타지의 세계관을 익히는 고전중의 고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 어린이들이 그런 유익한 재미와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는 까닭은 '뒤침(번역)'이라고 하는 1차적인 문제점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발음(동음이의어)으로 엉뚱한 대화를 지껄이고, 원래의 내용과는 아주 다른 시와 노래를 읊고, 심지어 시시때때로 변해버리는 자신으로 '본래의 나'가 누구인지 헷갈려서 '본질'이라고 하는 철학적 고뇌에 빠져버리는 엉뚱한 소녀 앨리스를 보면서 웃음보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데도, 이를 우리말로 옮겨버리고 나면 그런 '원초적 재미'를 전혀 느껴볼 새도 없이 아주 요상한 이야기만 되풀이되고 말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풍부하지 못한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그저 그런 이야기책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그럴 땐, 어른들이 부연설명을 해주며 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을 것이다. "앨리스가 크로켓을 할 차례가 되었네. 그런데 앨리스는 칠 수가 없었어. 크로켓 공을 쳐야 하는 막대기가 살아있는 홍학이었거든. 앨리스가 여왕처럼 멋진 스윙을 하려고 힘껏 휘두르면 홍학이 얼굴을 들어올리고 앨리스에게 '안녕~'이라고 인사를 하지 뭐니. 앨리스는 그런 홍학을 달래서 공을 잘 칠 수 있게 다시 한 번 스윙을 휘둘렀지만 또 칠 수가 없었어. 왜냐면 홍학이 또 얼굴을 들고서 앨리스에게 사정을 했거든. '정말 날 휘두를거야? 나 무척 아플텐데, 흑흑' 왜 그랬을까? 사실은 크로켓 공도 살아있었기 때문이야. 바로 고슴도치였거든. 고슴도치는 홍학이 자신을 치려고 하자 따꼼한 가시를 바짝 세우고서 벌벌 떨고 있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결국 앨리스는 크로켓 경기에서 질 수밖에 없었단다. 어찌어찌 고슴도치를 쳐봤자 공은 제멋대로 달아나기 일쑤였고, 골대도 여왕의 명령에만 따르는 카드병정이었거든. 깔깔깔" 이렇게 이야기를 들려준 다음에 책을 읽으면 '상상력'은 더욱 배가 되어서 글자가 살아 숨쉬는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어디 그뿐인가. 비싸디 비싼 '후추'를 온 집안에 날릴 정도로 뿌려대는 흥청망청 욕쟁이 귀족에게는 날카로운 풍자를 엿볼 수 있고, 앨리스가 어려운 일에 쳐할 때마다 도와주는 체셔고양이와 애벌레는 또 어떻고, 제멋대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바람에 앨리스를 도와주는 건지 골탕먹이는 건지 알 수가 없잖아. 거기다 제법 어른스런 충고를 해주는 존재가 고작 애벌레였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그런 애벌레가 담배를 꼬나물고서 뻐끔거리는 장면에서는 '반어법의 정수'를 느낄 수 있지, 그리고 모자장수와 3월 토끼, 겨울잠쥐가 벌이는 엉뚱발랄한 티파티는 익살과 해학이 무엇인지 제대로 맛볼 수 있단다. 이런 재미난 이야기를 '영어식 언어유희'를 통해 펼쳐지고 있는데, '뒤침(번역)의 한계'에 부딪혀서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쯤되면, 우리 나라 아동서적 1위 출판사인 [시공주니어]에서 '네버랜드 클래식' 제1권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꼽은 까닭도 절로 이해가 될 법하다.

 

  명작고전은 '베스트셀러'가 아닌 '스테디셀러'다. 단순히 '많이 팔린 책'이 아니라 '오래도록 사랑받고 널리 읽힌 책'이라는 부연설명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명작고전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손꼽고 싶다. 다만, 이 책의 장점인 '언어유희'와 '상상의 나래'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기 위해선 꼬꼬마 어린이보다는 초등학생 중학년 이상에게 권한다. 혼자서 읽으며 순수한 재미를 즐기기 위해선 중학생 이상의 청소년에게 권하고 말이다. 영어실력이 받쳐준다면 '원작'도 함께 즐겨보길 권한다. 영미권에서 왜 아직도 사랑받는 고전인지 그 이유를 잘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상상력'이라고 하는 훌륭한 교훈이 담겨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의 시작과 끝부분에 등장하는 '앨리스의 언니'와 사뭇 대조되는 것을 통해서 '앨리스의 엉뚱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상상력=비상식'이라면서 비판의 대상이었고, 앨리스의 언니를 모범생으로 추켜세우고, 앨리스는 말썽이나 일으키는 엉뚱한 문제아로 비춰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어떤가? 모범생이 환영받고 있는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틀'에 잘 적응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법(?)이었던가? 21세기에는 '기존의 뻔한 틀'을 과감히 깨트리는 '파격적인 인재'가 환영받는 시대다. '틀에 짜여진 상상'은 이미 상상이 아니고 상상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녀가 이 책을 읽고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만 있다면...애초에 '교훈'을 찾아 헤메던 부모들의 걱정거리도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 진시황과 이사 - 고독한 권력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국시대의 혼란을 종결하고 진나라로 통일한 첫 번째 황제 '진시황'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이룬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오랜 전쟁으로 지친 백성들의 안위와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불철주야 열과 성을 다한 뛰어난 군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데 반해서,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는 군력욕에 눈이 멀어 탐욕스럽고 전쟁에서는 악랄하며 걸핏하면 폭력을 일삼는 폭군에 지나지 않다면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기 때문이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은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진시황'처럼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이도 드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을 통일할 정도로 강력한 진나라가 진시황과 그의 아들 호혜를 끝으로 꼴랑 2대 만에 멸망하고 말았기 때문에 미스테리한 점이 한둘이 아닌 것도 그런 평가를 부르는데 한 몫 단단히 할 것이다.

 

  고대사 미스테리 가운데 하나인 '진나라의 멸망'에 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고마운 책이 바로 <김태권의 한나라이야기 1권>이다. 특히, 진시황과 이사에 대한 통찰은 이 책의 백미로 꼽을 수 있다. 참고로 이 책은 사마천의 <진시황본기>와 <이사열전>을 주요사료로 들어서 풀어내고 있다. 간간히 <자치통감>과 그밖의 '해설서'를 참고 삼아 풀어냈지만 사마천의 <사기>의 관점을 골자로 삼았음을 밝힌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김태권만의 날카로운 관점'일 것이다. 사실, '역사책'을 다루다보면 역사적인 관점에 꽂힐 수밖에 없다. 역사적인 사실들의 나열만 담긴 역사책만큼 지루한 책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관점'이 소설책만큼이나 중요하고, 이 관점을 얼마나 통렬하게 째려볼 수 있느냐가 역사책을 읽는 재미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태권이 풀어내는 진시황과 이사에 관련된 에피소드에 주목하면 원작인 사마천의 <사기>도 달리 보이게 될 것이다.

 

  암튼, 이 책에서 주목해볼 만한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첫째는 '진시황이 권력을 집중해서 통치하는 스타일인 '군현제'를 실시하게 된 까닭'을 밝혀낸 부분이다. 초기 중국역사에서 중요한 통치방식은 무엇보다 '봉건제'다. 쌍무적인 계약관계를 중요시한 서양의 중세 봉건제와는 달리 중국의 봉건제는 '가족중심', 또는 '혈연중심'이라는 점이다. 통신과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먼 옛날에는 넓은 지역을 통치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그 때문에 중심이 아닌 먼 지방은 '믿을만한 인물'을 대신 보내서 통치하도록 했는데, 이게 바로 '봉건제'다. 하지만 진시황은 모든 것을 중앙에서 컨트롤하는 '군현제'를 실시했는데, 이는 진시황이 가족을 믿을 수 없는 아픔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바로 아버지처럼 섬겼던 '여불위' 때문이다.

 

  소문에 의하면 '여불위'는 진시황의 친아비로 알려져 있다. 왜냐면 진시황의 어머니가 바로 여불위 집안의 무희로 지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비극은 진시황의 어머니와 노애 사이의 불륜이 들통난 것이고, 이로 인해 '노애의 반란'이 일어나자 진나라는 혼란에 빠졌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여불위'도 노애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밝혀져 진시황은 노애를 죽이고, 어머니를 유배 보내고, 여불위를 자살하게 만드는 등 '가족'과 관련된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다는 썰을 풀어내고 있다. 이것이 '군현제(중앙집권제)'를 실시하게 된 첫 번째 까닭이라고 밝히고 있다. 논란 검증은 둘째치고 말이다. 역사적인 호기심을 한껏 불러 일으키는 재미난 에피소드 아닌가?

 

  또, 진나라가 강력한 통일국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법가'에서 찾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만 하다. 물론, 통일 전부터 진나라는 '상앙'에 의해 법가 스타일로 강력한 힘을 발휘했었다. 하지만 통일 이후에는 '이사'의 법가 스타일로 탄탄대로를 이어 나갔는데, 이 책에서는 '유가(유교)'를 신봉하는 구시대적인 신하들과의 논리정연한 담판이 압권이었다. 통일 직전에 진시황은 이사와 동문수학한 '한비(한비자)'를 국정파트너로 삼고 싶다며 한나라를 공격하기에 앞서 '한비와의 만남'을 원했는데, 막상 만남을 가지고 난 뒤에는 '기대이하'였다면서 한비를 되돌려 보내려 했다. 그러자 이사가 말한다. "당장 쓰지 않으려거든 지금 죽여야 한다"고 말이다. 까닭인 즉슨, 한비처럼 뛰어난 인재를 바로 쓰지 않고 나중에 쓰려 한다면 이득은 전혀 없으면서 훗날 적국(한나라)의 인재로 쓰여서 통일의 대업을 망칠 수도 있으니 당장 죽이는 것만큼 이로운 일이 없다고 조언한 것이다. 또한, 진시황이 국산품(진나라의 인재)보다 수입품(외국에서 들여온 인재)을 더 선호하니 진나라에 이로울 것이 없다고 울부짓는 신하들 때문에 곤혹스러워 할 때, 이사는 자신 또한 '수입품(외국인재)'에 불과한데도 이처럼 통일을 이룰 정도의 업적을 남겼는데, 자칭 '국산품'이라는 작자들이 한 일이 무엇이냐면서 호통치는 대목도 짜릿한 전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처럼 '법가 스타일'은 시원시원스러운 맛이 일품이다.

 

  그러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법가 스타일로 탄탄대로를 질주하던 진나라도 '분서갱유'를 만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옛 것을 연구하던 신하들이 진시황에게 왕왕 간언한 내용 가운데 "요순시대처럼 태평성대를 이루어야 진나라도 영원할 것이다"라는 내용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시황이 일처리를 하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을 때마다 '유가 스타일'의 신하들이 '요순시대'와 '봉건제'를 언급하면서 진시황의 '법가 정책스타일'과 '군현제'에 흠집을 내면서 딴죽을 걸곤 하던 것이 끝내 사단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이야기 전개는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분서갱유'는 진시황의 실책 가운데 빠지지 않고 등장해 질책을 받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물론 질책하는 대상들이 '유가(공맹사상)의 후손'이라는 것은 뻔한 짐작이고 말이다. 암튼, 그로 인해 진시황과 이사는 '실용서적'을 제외한 모든 옛날 책(법가 이외의 사상)을 불태우라 지시하는데, 이것이 바로 '분서'다.

 

  그런데 '갱유'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진 '유학자들을 산 채로 매장해 죽였다'는 내용과는 사뭇 다른 이견을 실었다. 유학자들만 골라서 생매장했다는 '갱유'가 아니라 여러 사상가들이 진시황을 진노케 했으니 대대적인 숙청을 했다는 '갱제생(제생은 뭇선비를 뭉뚱그려 일컫는 말)'의 잘못이라고 말이다. 물론 '갱제생'에는 유생들도 포함되어 있을테니 '갱유'라는 말로 한편으론 틀린 말은 아니겠으나 <자치통감>을 쓴 사마광이 유학자의 관점에서 콕 집어서 '갱유'라고 표현한 것은 다른 사상가들은 알 바가 아니지만 유학을 공부한 유생들이 화를 입은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선택적 분노'가 담긴 표현이라고 지적한 셈이다.

 

  그렇다면 진시황은 왜 '갱제생'을 실행했던 것일까? 그건 바로 '방중술'과 관련이 깊다.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꿈꿨다는 사실은 널리 알져진 사실이다. 늙지 않고 죽지도 않는 신비로운 영약을 찾겠다며 삼천 동자와 소녀를 데리고 동쪽으로 사기치고 도망간 사건은 진시황이 속아넘어간 사기 가운데 '새발의 피'에 해당하는 것이었단다. 이렇게 아무런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진시황을 속이기에 여념이 없던 '방술사'들이 더는 꾀(?)를 낼 수 없게 되자 도리어 "황제는 요순과 같이 어질지도 못하면서 똑똑한 척은 다한다", "모든 일을 자기 혼자 처리할 정도로 권력욕이 너무 많기에 신선이 될 수 없다"는 등 입에 담지 못할 비방을 지껄이고서는 유유히 도망을 쳐버린 것이다. 이에 극대노한 진시황은 '지식인'이랍시고 허튼소리를 지껄이는 놈들을 몽땅 잡아들여 숙청을 해버리니..정작 화풀이 할 대상을 엉뚱하게 삼아서 사단을 일으켜 버리고 말았다. 이를 보다 참지 못해 입바른 소리를 한 맏아들 부소에게 먼 변경이나 지키라면서 내쫓아버리고 나중에는 환관 조고와 이사의 꾐에 빠져 '첫째 황자(부소)'가 죽음에 이르게 되니 진나라의 멸망을 앞당긴 초석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이처럼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흥미로운 관점으로 다시 읽을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역사만화다. 다음 책은 '항우와 유방'의 한판 대결이 펼쳐질 예정이다. 조만간 리뷰로 선보여 드릴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씨남정기 : 여자의 적은 여자인가? 물음표로 따라가는 인문고전 19
강영준 지음, 박미화 그림 / 아르볼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포의 <구운몽>은 즐겨 읽었지만, <사씨남정기>는 이번에 처음 접했다. 비교적 어릴 적에 접했던 <구운몽>이 그닥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만중의 정치적 성향이 '서인'이었던 탓도 컸다. 굳이 페미니즘 관점이 아니더라도 '일부일처제'의 조선시대에 팔선녀와 인연을 맺고 인생의 희노애락이 그저 일장춘몽에 그치지 않다는 내용이 상당히 모순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고, 정치적으로 봤을 땐 '서인의 영수'였던 송시열의 당파가 훗날 노론으로 이어지고 끝내 조선을 망국으로 이끌었다는 괴씸죄를 김만중에게도 은근히 따져 물었던 탓이 컸기 때문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미지)이 안 좋아 읽지 않았던 것이다. 암튼 뒤늦게 접한 이유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서포만필>에서 밝혔듯이 김만중은 '우리말글의 소중함'을 일찌감치 깨닫고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한글소설'로 창작했더랬다. 안타깝게도 <사씨남정기: 한글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한문본'만 남은 탓에 원작이 없는 상황이지만, 수많은 '이본'에서나마 '한글본'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선각적인 업적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당시 양반사회에서 천하게 취급받던 '한글'의 처지로 보았을 때, 양반가문의 사람이 '우리것'에 대한 소중함을 잊지 않고 손수 '소설'로 적어 남긴 것은 칭송 받아 마땅할 것이다.

 

  중략하고, 이 책은 두 가지 관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데서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 하나는 소설의 내용이 당시 '환국정치'를 일삼고 자신을 유배 보낸 숙종의 정치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으며, 다른 하나는 홀로 자식을 기르며 모진 고생을 한 어머니 곁을 지키지 못하고 발길도 닿기 힘든 머나먼 섬으로 유배를 감으로써 효도를 다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성리학적 관점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관점으로 봤을 때,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비판은커녕 순응하며 살면서 여성들끼리 싸우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잘못된 인식을 지적할 수도 있다.

 

  첫째, 숙종의 환국정치를 살펴보자. 숙종은 신하들이 파벌을 지어 '예송논쟁'을 벌여 왕권을 우습게 아는 것에 환멸을 보였다. 그래서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등극했음에도 우암 송시열에게 사약을 내리는 등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는 임금으로 실력행사를 하였다. 그리고 그 실력행사의 정점이 바로 '환국정치'였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 숙종의 아내들이 정치적 상황과 교묘히 맞아 떨어진다. 둘째 부인이었던 '인현왕후(서인)'와 후궁이었던 '장희빈(남인)'이 그렇다. 소설에서는 남편인 유씨의 처 '사씨'와 첩인 '교씨'가 각각 인현왕후와 장희빈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딱 들어맞는다. 과연 김만중은 소설을 통해서 '환국정치'를 에둘러 비판하여 했던 것일까? 하지만 증거는 없다. 정황이 예언처럼 맞아 떨어진 것은 우연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만중은 유배간 지 2년 만에 병이 들어 죽었다. 정치적 비판이 의도된 것이었다면 '서인쪽'에서 <사씨남정기>로 여론몰이를 하며 정국을 유리하게 이끌었어야 하는데, 그런 동향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성리학적 유교사상에서 양반이 솔선수범해야 했던 덕목이 바로 '예'다. 그중에서도 '효'는 최고의 가치였으며, '불효'를 하면 신분고하를 불문하고 사형에 처할 정도로 엄격했던 조선이다. 특히, 조선 중기를 넘어서면서 조선은 '예법'은 더욱 강조되었다. 자신들의 무능을 '철저히 예법을 지키는 것'으로 덮으려 시도했기 때문이다. '예송논쟁'이 첨예한 대립을 벌일 정도로 심각하게 다룬 까닭도 바로 이런 까닭 때문이다. 그래서 김만중이 홀로 계신 어머니에게 못다한 효를 실천하기 위해 어머님이 좋아하실 만한 내용의 '소설'을 직접 지은 것은 효의 관점에서 유심히 볼 대목이다.

 

  그런 까닭에 <구운몽>이나 <사씨남정기> 모두 여성이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의 여성들은 조선의 여성이 반드시 지켜야할 '예법'을 성실히 지키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바다. 열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여성들의 삶'이 끝내 복을 받고, 그렇지 못한 여성은 벌을 받는..지극히 당연한 내용으로 적혀 있다.

 

  하지만 어릴 적의 난, 과연 이런 내용이 어머님에게 즐거움과 흡족함을 줬을지 의문이었다. 남성 위주의 꽉 막힌 사회속에서 남편도 없이 두 아들을 급제시킬 정도로 살림을 꾸려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인데, 소설속에서까지 '그런 꽉 막힌 여성의 삶'을 강요하는 내용으로 그려내는 아들이 원망스럽지는 않았을지...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만중의 어머님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욕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여성의 삶을 여성 스스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렇게 김만중의 작품을 분석해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사씨남정기>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제목만 보면 '사씨가 남쪽으로 간 까닭'이라는 부제가 달릴 법도 하다. 교통 등 여러 사정으로 여행이 쉽지 않던 시대였고, 더구나 '여성'이 먼 곳으로 정처 없이 떠돈다는 일은 굉장히 이례적인 까닭에 당대에는 제목만 보고도 엄청난 이슈를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까닭이 있길래 여인의 몸으로 머나먼 곳을 떠돌게 되었단 말인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책을 펼쳐보면, 한 남자를 두고서 두 여인이 갈등을 벌이는 장면이 압권이다. 더구나 정숙하고 선량한 처와 교활한 첩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은 '권선징악'이란 교훈을 끌어내는 전형적인 구성이라 '전기수(책을 읽어주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는 듣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다 못해 '악역'에 대해 분노를 탱천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여기까지다. 분명 '처첩제'에 대한 비판적인 성격이 담겨 있는 내용인데, 결말에선 '또 다른 첩(임씨)' 등장하며, 선량하고 순종적인 첩을 들이면 집안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뻔한 결말로 이야기를 끝맺기 때문이다. 더구나 첩을 들이는 주체가 남자가 아닌 여성(사씨)이기 때문에 더욱 전형적인 소설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보면 <사씨남정기>는 오늘날 '독자의 관점'에서 그닥 추천할 만한 '고전소설'이 아님을 넘어 '부적격'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어느 부모가 자신의 딸에게 모진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남편에게 순종적이며,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을 꼭 나아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엔 '첩'을 들여서라도 숙제를 해결해야 하며, 그로 인해 남편과 첩에게 질투를 보여서도 안 된다...고 교훈을 가르칠 것이냔 말이다. 그렇다고 아들에게 권장할 책도 아니다.

 

  그러니 <사씨남정기>를 그렇게 읽으면 안 된다. '시대의 비극'은 극복하기 위해 통찰해야 하고, '모순된 시대'는 해결하게 위해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순종적인 여인상 만이 옳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면, 성평등시대를 맞아 양성평등의 가치에 입각해서 아직까지도 남성위주의 모순된 사회속에서 '여성의 가치'를 밝히고, 불평등한 사회속에서 '여성이 해야만 할 일'에 대해 생각해볼 꺼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마냥 순종적인 사씨의 문제점'을 밝히고, '가부장적인 사회인데도 무능하기만 한 유씨'에 대한 비판하며 읽어야 한다. '사악한 교씨와 그 일당들'은 여성이라서 더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나쁜 것이고, 어떤 벌을 받아야 마땅한지 논의하는 것으로 족할 뿐이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은 바로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무비판적으로 논의하는 것이다. 이런 주제는 토론주제로도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잘못된 가치관으로 무슨 논의를 한단 말인가? 자칫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섣부른 선입견만 심어줄 뿐이다. 다시 말해, 여성끼리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여자에게 득이 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편견'을 조장할 필요가 전혀 없다. 차라리 교활하고 사악한 꾀에 홀랑 속아넘어가서 집안을 풍비박산 내버린 무능한 남편 유씨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변호할 줄도 모르고 마냥 순종적인 모습으로 일관한 본처 사씨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더 현명한 독자의 자세다.

 

  한편, 교활한 교씨를 장옥정과 교묘히 오버랩 시켜서 '작품해설'하는 것도 식상하니 적당히 했으면 좋겠다. 실상 남성중심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인현왕후'와 '장희빈'이 직접 나서서 정치일선을 지휘한 것도 아닐 텐데...또한, 강력하다 못해 카리스마 철철 넘치는 숙종이 '여인네의 치마폭'에 휘둘려 환국정치를 펼쳤다는 내용은 '드라마틱'한 즐거움(!)은 줄지언정 실상과는 사뭇 다를 테니 말이다. 설령 아주 관련이 없다손치더라도 '장희빈의 가문'이 남인들을 대표하지 못하였기에 가능성이 희박한 스토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숙종에게 '장희빈', 그리고 '최숙빈'은 정치색이 희박한 '러브스토리'에 가깝다는 점에서 해석하면 좋을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슈퍼 석세스 - 폭발적 성장을 위한 50조 사업가의 대성공 원칙
댄 페냐 지음, 황성연.최은아 옮김 / 한빛비즈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주옥같은 리뷰들을 읽어본 적이 있다면, 내가 '자기계발서' 같은 책들을 얼마나 좋아하지 않는지 잘 알 것이다. 나에게 '자기계발서'는 화장품 광고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미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미인들은 한결같이 '그' 화장품을 바르면 자신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다며 매혹적인 포즈를 취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화장품을 바르지만 결코 '그' 미인처럼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여성들은...아니 거의 모든 여성들은 '화장품'을 사서 바른다. '그' 미인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 고가의 화장품을 사서 바르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않더라도 그걸 바름으로해서 '뭔가' 노력이라도 하고 있다는 핑곗거리를 대신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자기계발서'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꿈꾸며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비결을 엿보기 위해서 '자기계발서'를 들춰 보지만, 그 가운데 진짜 성공한 사람들은 손을 꼽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성공한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를 읽고서 성공에 다다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마치 '미인'은 유전자의 힘에 의하거나 성형수술의 노력(?)으로 탄생하는 것이지, '그' 화장품을 발라서 미인이 된 것은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면 '자기계발서'를 읽고 영감을 얻어서 부의 성공을 이룬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겠느냐는 반문이 나올 법하다. 이에 대한 대답은 "물론, 있다"일 것이고 말이다. 이른바 '후발주자'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 가운데 성공한 이들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고, 웬만큼 부를 논할 수 있을 만한 자잘한 성공담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여드름투성이의 앳된 소녀가 '그' 화장품을 바르고서 백옥같은 피부의 미인으로 거듭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성공의 공식은 없다'는 것이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읽어보고 실천해본 내 경험의 결론이기도 하다.

 

  난 '이 책에 열광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많다'는 홍보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댄 페냐의 성공 공식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기대이상'의 성공을 거둔 이들은 없다. 성공한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늘 '기대이하'였다. 다시 말해, 성공의 크기를 원대하게 잡아야 한다. 그래야 그보다 조금 작은 '대성공'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로 압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댄 페냐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나는 난 불가능하다고 남들이 말하는 목표를 달성한 다음에 항상 후회한다. 왜 더 큰 목표를 세우지 않았는지 말이다"...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땡기는 시원한 발언이다. 뒤이어지는 말은 더욱 통렬하다. "그 정도 자세와 목표로는 그저 그런 인생밖에 살 수 없다"고 말이다.

 

  물론, 이런 유형의 '자기계발서'가 없지는 않았다. 우리 나라에서도 <꿈꾸는 다락방>을 쓴 저자가 말했다. "당신이 꿈꾸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니 꿈을 원대하게 꿔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매우 점잖은 말투로 조곤조곤 속삭였다면, 댄 페냐는 매우 직설적이다. 자신의 그릇이 작다는 생각은 하지도 말아라. 실패를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만약 그릇이 작아서 실패했다면 다음에 더 큰 그릇을 만들어서 도전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천하라. 그러면 성공이 뒤따를 것이다...이런 말을 듣고도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다면 젊은이가 아닐테니 말이다. 이 책이 2030세대에게 큰 울림을 주는 까닭은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성공 이후의 삶'에 대해 말하고 싶다. 흔히들 '곳간에서 인심난다'면서, 남들에게 베풀며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부자가 된 다음에 하라고 조언(?)하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가난한 이들이 서로 돕고 사는 것보다는 부자가 되어서 넉넉하게 도움을 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부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오히려 '가난은 나랏님도 고칠 수 없는 병이다'라면서 가난한 이들을 몹쓸 질병이라도 되는 듯 경멸하는 부유한 이들의 고약한 마음씨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애초부터 '성공의 속성'이라는 것이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 하는 것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성공'을 한 사람들의 행보가 넉넉한 인심으로 이어지는 것을 좀처럼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이들이 성공을 꿈꾼다. 나중에 갑질을 하든 어쨌든 일단 '부자'가 되고 난 다음에 어찌 해보겠다면서 말이다.

 

  암튼, 난 '부자를 존경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쌓는 일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착한 부자들'이 많은 사회를 꿈꾼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가 되라는 책도 그닥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부자가 되기 위한 길이 녹록치 않은 탓인지 부자가 된 다음에, 성공을 달성한 다음에 행하는 이들의 마음씨가 참으로 독선적으로 보일 뿐이다. 과연 이 책을 읽고 영감을 얻어 '부의 성공'을 이룬 이들은 선량한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이 책에는 그런 고민이 없다. 그저 '폭발적인 성공을 이룬 50조 자산가의 성공대원칙'만 담겨 있을 뿐이다. 어찌나 폭발적인 성공원칙인지 '퀀텀 리프(비약적인 도약)'라고 소개할 정도다. 이 책을 사면 부록으로 얻을 수 있는 '수첩'의 제목이기도 하다. 한장한장을 넘길 때마다 <대냐의 성공대원칙>이라고 불리는 113개의 격언들이 하나씩 수를 놓고 있는데 날마다 계획을 실천하면서 충고로 삼기에 딱 좋다. 여기에 자신이 성공을 이루고 난 다음에 '할 일'도 함께 적어보면 어떨까 싶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내일을 만들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끝으로, 자극적이고 짜릿한 것만큼 인생을 즐겁게 하는 것도 없다. 이 책을 읽고 성공을 꿈꾸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짜릿한 것만 쫓으며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댄 페냐의 법칙에 따르면 50조 자산가가 500조 자산가로 되는 것은 식은죽 먹기만큼이나 쉽다. 하지만 나는 '감히' 덧붙이고 싶다. 500조 자산가가 되어서도 온통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면, 성공은커녕 '실패'와 다름 없다고 말이다. 이 책이 '꿈을 쫓는 삶'을 위한 짜릿한 조언을 주었다면, 당신은 '꿈을 실천하는 삶'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베푸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감히 '자기계발서'에 소박한 바람을 덧붙여본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8-31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03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시, 배우다 REːLEARN - 인생 리부팅을 위한 27가지 배움의 질문들
폴 김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부터 '만학(晩學)'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니 늦은 나이에 뭘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그리 신선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가 '폴 김'이라는 것도, 그가 미국 유명대학의 교육대학원 부학장을 지냈고, 최고기술경영자에 있으며, '국경 없는 교육'을 실천하는 대단한 '현장' 교육자라는 사실이 이 책에 권위를 부여하여 그럭저럭 괜찮은 책이니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점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새롭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가졌다면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이 책의 핵심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난 다음에 '폴 김'이라는 대단히 유명하고 유능한 사람도 '다시, 배우다'는 것에 이렇게 가슴 설렜으니 당신도 틀림없이 그럴 것이라는 부차적인(!) 메시지에 잠시 눈길을 주면, 그뿐일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봐도 그럴 것이다. 첫걸음을 걸었을 때, 엄마라고 처음 말을 했을 때, 유치원에 처음 가서 수많은 또래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나 자신이 느꼈을 법한 '설레임'도 대단했겠지만, 그보다 주위의 반응이 더 뜨거웠기에 그런 설레임은 그 자체로 기쁨이 되었고, '또 다른 설레임'을 찾으려 새로운 것에 또 도전하고 계속 도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도전의 연속이 시들해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첫걸음에 익숙해졌을 즈음부터 주위의 관심은 시들해지고, 방구석 탐험을 모두 마쳤을 때부터는 익숙해진 걸음에 금새 다른 관심을 쏟았을 것이다. 또한 말문이 처음 터졌을 땐 스타를 향한 함성보다 더 컸던 주위의 반응이 유창한 언변의 마술사가 되었을 즈음에는 엄마를 100번 쯤 불러야 겨우 한 번 쳐다보게 되었을 것이다. 유치원 졸업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초등학교 입학의 설레임도 잠시...중학교 입학, 고등학교 입학, 심지어 대학교 입학을 해도 주위의 반응은 점점 시큰둥해지게 되었을 것이다. 설레임도 함께 줄어들었을 것이고 말이다. 왜일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지만, 배움이라는 속성이 '첫 설레임'과는 딴판으로 갈수록 지치고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점점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일에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무한반복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방법만이 유일한 방법이며,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면 엄격한 평가를 통해서 '실력검증'을 받아야만 통과가 되는...그렇지 못하면 그 과정을 또다시 반복해야 하며, 통과할 때까지 잔소리를 덤으로 받아야 하는..정말 '학생'이라는 신분이 싫어질 만도 하다. 어쨌든 '학생'이라는 신분이 '배움에 몰두할 수 있는 인생의 유일한 기회'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학창시절에는 배움을 지치고 지겨운 일쯤으로 여길 뿐이다. 수많은 이들이 말이다. 그렇다면 '만학도'들은 도대체 무엇을 배운다는 걸까? 이렇게나 지겨운 것 과정을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늦은 나이에 자발적으로 왜 하려는 것일까? 이쯤 되면 참 신기한 일 아닐까.

 

  그런데 폴 김은 말한다. 자타공인 대단한 사회적 지위에 있는 자신과 어렵사리 면담을 신청한 학생과의 우연한 대화를 통해서 '대단한 자신'도 아직 배울 것이 남았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현장' 교육가인 자신이 아직 시도하지 못했던 '현실' 교육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기꺼이 '비행기 조정'을 배우게 되었다고 말이다. 너무 늦은 나이라 배움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고, 마침내 하늘을 날았을 때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꿈에 기대이상으로 부풀 수 있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늦은 배움'을 통해서 배울 점이 참 많았다고 이 책에 조목조목 적어 놓았다.

 

  책 내용은 둘째치고, 난 '만학'에 새삼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논술쌤이라는 직업병 때문에 늘 '새책'을 뒤지고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쏟으면서 '다음 수업시간에는' 아이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걱정했기 때문이다. 지금, 세 번째 직업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아이들과 독서논술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결코 놓칠 수 없기에 없는 시간도 쪼개서 책을 읽고 또 읽고 있다. 하지만 하루일과만으로도 지쳐버리는 고된 업무를 하면서 '독서'를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고, 그렇기에 즐거운 논술수업도 어느샌가 부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만학'이라는 관점으로 다시 생각해보니, '부담'은 줄이고 '다시'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설레임'이다. 언제부터인지 난 '수업준비'를 위해서 억지로 책을 읽고 있었나보다. 독서라는 것이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 즐거움'을 위해서 읽는 것인데, 고된 하루를 보내다보니 마음의 여유마저 잃어버리고 방황 아닌 방황을 했었더랬던 모양이다. 하긴 '읽고 싶은 책'보다는 '읽어야 할 책'만 줄창 읽었어야 했으니 말이다.

 

  이젠 좀 내려놓고 '책 읽는 즐거움'을 찾아보려 한다. 일 년 동안 100권 읽기에 첫 성공을 하며 기뻐했던 그 시절의 설레임을 다시 되찾고 싶어졌다. 지금이야 200권, 300권도 거뜬히 읽고 있지만 정작 '설레임'은 까맣게 잊고 지냈기에 '다시, 시작'하려 한다. 정말이지 배움의 끝은 없다.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새롭게 다가오니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