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줄 영어 일기 - 조금씩, 매일, 계속! 영어가 일취월장하는 3대 습관 자기계발은 외국어다 1
ALC 편집부 지음, 정은희 옮김 / 한빛비즈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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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 말과 글'로 유창하게 표현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 멋진 일을 난 실패했다. 지금도 여전히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난 외국인과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는 할 수 있다. 언어라는 것이 '말과 글'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짓과 표정'으로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탁월한 눈썰미만 갖고 있다면, 웬만한 상황의 앞뒤 맥락을 파악해서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눈썰미'에 세련된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실력까지 갖춘다면 정말 멋질텐데...난, 그걸 해내지 못했다.

 

  사실, 외국어공부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외국인 친구'를 곁에 두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간단한 표현'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고졸 이상의 일반 성인이 영어회화를 하는데, '일상단어 800개' 정도면 거의 모든 의사소통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수다를 떨 때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어휘'를 거의 쓰지 않듯이, 외국어도 그렇다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동사활용'만 능숙하게 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다면 금상첨화라고들 한다. 실제로 어느 나랏말이나 '품사' 가운데 가장 많이 쓰는 것이 '동사'이니 전혀 틀린 말이 아닐테고, '형용사'를 중간중간 넣는다면 세련된 표현쯤은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을 게다.

 

  이렇게나 '이론'에 빠삭한데도 영어를 못하는 까닭은 '습관'이 되도록 노력을 하지 않은 탓이 크다. 기껏 동사 100개를 외웠다고한들 써먹을 외국인 친구가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써먹을 외국인 친구가 없다고하더라도 '습관'이 될 정도로 '꾸준함'을 유지했더라면, 지금쯤 영어 정도는 능숙하게 쓸 수 있었을텐데, 난 그러지 못했다.

 

  왜냐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변명처럼 들릴테지만, 진짜 이유가 그렇다. 재미가 없으니 하다가 말고, 하다가 말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이처럼 '습관'을 들이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절대로 말이다. 그런데 내가 유일하게 습관을 들인 것이 있다. 바로 '책읽기'와 '리뷰쓰기'다. 지난 17년 동안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주 제대로 '습관'을 들였기 때문이고, 습관을 들일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독서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1년에 100권 읽기를 도전하면서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다이어리' 구매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이어리 속에 딸려 있는 '달력'이었다. 1년 남짓을 '기록'할 수 있는 선만 그어져 있는 그 '빈 달력'에 내가 읽은 '책의 제목'과 '지은이 이름', '출판사 이름' 따위를 깨알 같은 글씨로 채우면서 서서히 '책 읽는 습관'을 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한 달에 한 권, 그 다음엔 한 달에 2권, 조금 더 분발해서 한 달에 6권, 조금만 더 노력해서 일주일에 2권, 좀 더 욕심을 부려서 일주일에 2~3권씩 '칸'을 채워나갔더니, '책읽기'가 재밌어졌던 것이다. 어찌보면 '빈칸 채우기'를 하려는 욕심이 컸던 모양이다. 결국 난 '책 읽는 습관'을 들인 지 15년이 지난 어느 해에 '1년에 300권 읽기'를 달성하고 말았다. 어느 새, 책만 읽는 습관만이 아닌 '리뷰쓰기'까지 덩달아 생기면서 지난 17년간 약 1500여 편의 리뷰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글쓰기 실력은 둘째치고 말이다.

 

  이 책, <하루 3줄 영어 일기>도 바로 이런 '습관의 힘'을 기반으로 영어실력을 키울 수 있는 도움책이다. 마침맞게 '다이어리 형식'으로 짜여진 이 책은 '영어일기'를 꾸준히 작성하면서, '영작실력'을 키울 수 있게 구성되었다. 핵심은 '꾸준함'이고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꾸준함'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미'다. 이 책이 재미 있어야 '영어실력'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진짜로 재미있을까?

 

  그건 독자에게 달려있다. 무작정 사다놓고 책꽂이에 덩그라니 장식만 하지 않기 위해선 '깨알 같은 재미'를 스스로 찾을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어일기를 작성하기 위해 '빈 노트'를 마련해놓지 않았다. 사실 어느 나라 글이건 '일기'를 쓰려면 먼저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질문'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엔 '366개의 질문'이 각 페이지마다 달려 있다. 첫 질문은 "Where would you like to visit the most?"다.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영어문장으로 3줄'을 적어보라고 줄이 그어져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예시글'이 적혀 있다. "I would most like to visit Machu Picchu. It is one of the most fascinating places in the world. I'd like to hike through the ruins and see the old buildings." (마추픽추를 가장 가 보고 싶다.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멋진 곳 가운데 하나다. 유적 사이를 돌아다니고 오래된 건축물들을 구경하고 싶다.)

 

  만약, 아직 영작에 자신이 없거나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오르지만, 막상 영작을 하려니 글문이 막혀 써지지 않는다면 '예시글'을 따라 쓰면서 '영어식 표현'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렇게 날마다 '질문 하나'에 '영작문 하나'를 꾸준히 쓴다고 생각해보라. 오래지 않아 영어문장 쓰기에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그정도 실력이 되면 굳이 '예시글'을 따라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을 '간단한 문장'으로 나만의 일기를 작성하면 될테니 말이다.

 

  바로, 이런 습관을 꾸준히 들이면 누구라도 '영어실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바로 '꾸준함'을 유지할 수 있을 '재미'라는 요소 말이다. 이런 방식에 '재미'를 느끼는 독자라면 분명 성공할테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역시나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다. 행여나 실패했다고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대다수의 독자들은 실패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니까 말이다. 사실 '습관'만큼 지겨운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그 '지겨움'을 재미로 승화시키는 독자라면 정말정말 멋지게 성공할 것이다. 당신도 그럴 수 있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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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같은 한 달을 보냈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매번 새로운 사건사고가 터지니

머리가 지끈거려서

책읽기에 집중할 수 없었고,

더구나 마지막주에는 컴텨까지 말썽을 부려서

이제사 겨우 고치게 되었다.

남은 12월 한 달은 마음 편히 책읽고 리뷰쓰기할 수 있을까?

제발 그랬음 좋겠다.

여전히 목표는 150권 리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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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청약의 모든 것 -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이 선보이는 대한민국 주택청약 바이블
한국부동산원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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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에 살면서 '내집 마련'만큼 간절하고도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그토록 간절하기에 해마다 주택(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도 수많은 젊은이들은 대출로도 모자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을 해서라고 수도권에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고자 노오오오력을 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가파른 금리인상으로 인한 '대출이자 상승'으로 빚더미에 빠지고 말았다. 정말 이렇게까지 '내집마련'에 올인하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걸까?

 

  한편,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절묘한 한 수가 있었으니, 바로 '주택청약'이다. 청약을 통해서라면 '일반 분양'보다 훨씬 이득이 되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면 청약으로 내집을 마련하면, 일반 분양보다 비교적 빠르게 '입주'가 가능하며, '분양가상한제'이라는 제도를 통해 입주하기 전에 체결한 '계약금'보다 훨씬 오른 중도금을 치르거나 '늦어진 입주'로 인해 분양가가 인상되어 계약했던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잔금을 치룬 뒤에야 겨우 입주할 수 있는 불편함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약에 당첨되는 것을 '로또'에 비유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청약에 당첨되었다고 '내집 마련'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청약 당첨은 그야 말로 '시작'에 불과하며 '부적격취소'를 당하지 않고, '중도금'을 꼬박꼬박 정확한 계획 아래 다 치루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입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청약으로 내집 마련의 꿈을 완수하기 위해선 철저하고 꼼꼼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면 그동안 정부는 '청약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꽤나 복잡한 절차와 심사를 거쳐 당첨자를 선정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투기과열과 같은 부작용을 근절시키기 위한 조치였고 말이다. 무엇보다 '주택청약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못 알아먹을 전문용어'들 때문에 쉬이 이해하고 절차를 따라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럼에도 '단 한 번'이라도 공모에 참여해봤다면, 이후에는 비슷한 과정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마냥 어렵지만도 않다고 하니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특별히 이 책, <주택청약의 모든 것>에 '1순위 당첨비결의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져 있으니, 청약에 관심이 있거나, 청약을 통해 내집 마련 계획을 짜실 분이라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으면서 '복잡한 절차'와 '어려운 용어'를 먼저 학습한 뒤에 도전을 하신다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난 엉뚱한 고민을 했더랬다. 사실 오랜 의문이기도 했는데, 왜 하필 대한민국에서는 '내집 마련'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 되었느냔 말이다. 주택 물량이 딸리는 것도 아니고, 해마다 '신도시 계획'에 따라 새로 분양 될 아파트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는 눈에 띄는 증가세를 멈추고 제자리걸음을 한 지 오래 되었는데도, 집값은 점점 올라 갈수록 구하기 힘들어지는 기이한 현상이 해마다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오름세가 주춤하고 '하락세'로 돌아섰다고 하지만, 여전히 서민들의 피부에는 와닿지 않고, 여전히 집값은 비싸디 비싸 구매하기 힘든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외국의 경우에는 '99년 임대'와 같은 방식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집 걱정'을 하지 않고 '의식주'에 대한 고민을 거의 하지 않은 청춘들이 저마다의 꿈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부럽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 40대 후반이 되어서도 '내집'을 갖지 못한 나로서는 정말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정녕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하단 말인가?

 

  사실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한 딱히 뾰족한 방법은 없어 보인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좌우되는 아파트 시세는 이미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져서 차라리 그냥 포기하고 사는 것이 더 속 편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주택청약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 청년들을 돕고 있다고 하지만, 청년들이 빠져들고 만 시름을 덜어주기엔 너무나도 동떨어진 해법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운'에 따라 결과를 맡기는 '당첨'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오죽했으면 '청약 당첨'을 로또에 비유하겠느냔 말이다. 그만큼 혜택을 받는 젊은이들이 '희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청약에 당첨되었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액수의 대출을 받지 못하면 어렵사리 당첨된 주택청약도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기 일쑤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청년임대주택'이라는 카드를 꺼내들기도 했지만, 이 또한 허울 좋은 눈가림에 불과한 까닭은 '20년'이란 짧은(?) 기간 때문에 늦은 결혼으로 육아와 자녀교육 등으로 한창 살림살이가 팍팍해질 40대에 또다시 '주택 걱정'을 해야 하는 자충수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50년 임대', 아니 '평생보장임대'라는 정책을 내놓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 건축기술로 5~60년 이상 거뜬하게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아파트를 짓지 못할 것도 아니니 말이다.

 

  물론, 아파트(주택) 건설이 한두 푼 드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사고 파는 대상'으로 삼아 자유로운 시장경제 속에서 기업의 관리 아래에서 건실히 운영되게 만들어서 정부와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보기 위해서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리고 '청약제도'를 통해서 그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을 마련하는 정부의 노력도 잘 알고 있다. 허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서민들의 고민'까지 덜어주는 획기적인 방법을 짜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더구나 정상적인 투자가 아닌 '소수의 이득'만 챙겨주는 투기를 근절하지 못하고, 부의 상위계층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분들이 앞장 서서 '개인적인 부를 늘리는 비결'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 눈꼴 시릴 뿐이다. 서민들의 서러움을 일갈에 해소시켜주어야 할 '능력자'들이 오히려 '빌런(악당)'이 되어 약자를 서글프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현실이 비극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뜨거운 불만'을 잠시 마음속에 묻어두고 '차가운 이성'으로 살살 달래며 '주택청약 공부'로 직시해야만 할 것이다. 결코 그 뜨거움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 뜨거운 열정이야말로 대한민국을 더욱더 잘사는 나라로 만들 것이고,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가로 이끌어갈 '중심축(구심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젊은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자랑일지니, 그런 멋진 젊은이들이 고작 '주택마련' 때문에 골머리를 쌓게 만드는 비정한 현실을 안타까워할 따름이다. 비록 나의 젊음이 그랬을지언정 그들의 젊음마저 그래서는 안 되겠기에 덧붙여 보았다.

 

추신...참, 주택청약의 시작은 '청약저축(기왕이면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부터다. 가까운 시중은행에서 가입가능하며, 19세 이상부터, 기왕이면 10만 원/매월(1500만 원이상)이면 '1순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함.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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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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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 '시대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미국 문학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까닭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면 그냥 맥락만 볼 때면, '미국판 막장드라마'와 다를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배경지식'도 없이 그냥 읽으면 그저 그런 '불륜소설'이고, 심지어 우리 나라 일일드라마보다도 재미가 없는 '통속소설'에 불과하다는 느낌만 받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래서 1차세계대전이 막 끝난 1920년대 미국 대호황의 시대를 이해하고 넘어가야만 한다.

 

  미국은 1차세계대전의 승전국이지만, 바다 건너 유럽대륙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참전할 생각까지는 전혀 없었다. 왜냐면 미국은 제5대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먼로가 선언한 '먼로주의'에 입각해 바다 건너 유럽의 간섭을 받지도, 하지도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세기를 지나 20세기에 접어들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 패권국가였던 '대영제국'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대영제국이 다른 제국국가들의 거센 도전을 받다가 부침을 심하게 겪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흔들리는 대영제국을 대신할 국가로 '미국'이 새롭게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1차세계대전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의 전황은 지지부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리고 독일의 공세는 점점 세찬 광풍처럼 불어재꼈고, 영국과 프랑스는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기 때문이다. 이젠 미국의 도움이 절실해졌다. 엄청난 자원과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는 '물량공세'가 승패를 가를 분수령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참전을 선언하고 '막대한 이익'을 톡톡히 챙겼다. 마침내 '먼로주의'는 폐기되다시피했고 전후의 유럽에 '미국의 입김'은 거대해졌다. 그리고 산업기반이 완전히 망가진 유럽의 여러 국가들과 그들의 식민지에 '미국제 상품'이 쏟아지듯 들어갔다. 이로 인해 미국의 공장은 눈코 뜰새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새로 지은 공장에서 만든 물건조차 만들자말자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기는 가파르게 상승했고, 주식시장도 '파란불'을 잊은 듯 온통 '빨간색' 천지였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어제 산 1달러짜리 주식이 내일 아침에 눈을 떠보니 100달러로 오르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투자를 하면 할수록 돈방석에 오르기 십상이었고, 급기야 미국사람들은 '흥청망청'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것에 길들여졌다. 라디오, 냉장고를 비롯한 전자제품은 하나만이 아니라 방의 갯수만큼 사들이기 일쑤였고, 옷 같은 것은 하루 입고 버리는 등 돈을 써도써도 늘어나기만 했을 정도다.

 

  이렇게 흥청망청한 세상이 되면 으레 '날마다 파티'를 열어째끼며 온갖 향락을 즐기며 돈지랄을 하기 십상일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마침 미국에서는 '금주법'을 제정해서 술이 귀한 시대가 되고 말았다. 청교도적인 발상에서 착안한 '금주법'은 또 한 번 아이러니하게도 범죄조직인 마피아를 배불려주고 말았는데, 마피아가 이 당시 '밀주'를 제조하고 유통하며 판매까지 '독점'을 하며 엄청난 부를 쓸어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본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프기 마련이고, 몰래 들여온 술인 만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막대한 이득을 범죄조직이 챙기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 덕분에 '칵테일'이라는 술 비슷한 음료가 만들어지게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 당시 미국 사회 전반적으로 볼 때면 '파티' 같은 것을 열어 술에 취해 헤롱헤롱대는 모습을 보여주기 쉽지 않은 차분한 분위기였던 것이다.

 

  자, 그런데 이 책에서는 '매일밤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개츠비라고 하는 비밀스런 인물에 의해서 말이다. 그는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유명인사를 비롯해서 돈 깨나 있다는 사람들은 몽땅 개츠비의 집을 찾아와서 미친듯이 여흥을 즐겼다. 당시로서는 센세이션이 휘몰아치는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분명 '실제'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책이었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환락'을 배경으로 삼아 '불륜남녀'가 등장해 사랑을 나눈다. 청교도의 후예라고 자부하는 건전한 미국가정에서 이 책이 읽기에 끔찍한 책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글쓴이인 피츠제럴드가 살아 생전에는 '그닥 많이 팔리지 않는 소설'이 되고 말았다. 그 덕분에 피츠제럴드도 비참한 생을 살다 불우한 죽음을 맞이했고 말이다.

 

  하지만 또 다시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은 '피츠제럴드의 죽음' 이후에 각광받기 시작했다. 미국 독자들이 대공황을 지나 2차세계대전까지 치르고 나니 '그 시절'에 대한 향수라도 불러일으킨 듯 '그 시대'를 배경으로 삼았던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부각된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평론가들이 이 책을 '미국 문학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겼다는 것에 틀림없다는 자부를 하였고, 독자들 또한 이에 호응하듯 '판매부수'는 나날이 늘어만 갔다.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순위권'에서 내려간 적이 없다고 하니, 이 책에 미국인들의 자부심이 곳곳에 담겨 있다는 평론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무엇이 그다지도 '미국스럽다'는 것일까?

 

  개츠비의 순수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앞선 리뷰에서 넘치도록 나불거렸으니, 이번에는 '데이지의 사랑'에 대해서 읊어보려 한다. 아무래도 데이지는 '영원한 소녀'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순진무구한 사랑'을 꿈꾸는 미 동부출신 아가씨다. 미국을 동서로 가르면, 동쪽은 부유한 귀족적이고 세련된 도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 방향인 서쪽 출신은 가난한 서민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서부개척(골드러쉬)'에 나선 거친 시골스런 면모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개츠비가 바로 서부출신이고 말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출신배경'을 가진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을 나누려 했으니 잘 될 턱이 없다. 그래도 데이지는 자신을 '공주 이미지'를 갖도록 추켜세워주는 귀족집안의 자제들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서민출신'이라고 할지라도 사랑을 베풀어줄 넓은 아량을 갖춘 듯한 '꾸밈'을 묘하게 잘 하는 그런 사랑꾼이었다.

 

  다시 말해, 데이지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기에 자신과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재능을 타고났다. 이런 데이지에게 강렬한 첫사랑으로 등장한 남자가 바로 '개츠비'였다. 개츠비는 잘 생겼고 매너 좋았으며, 비록 '서민출신'으로 가난했지만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자신'에게 푹 빠졌으니 귀족아가씨가 사랑을 베풀어주기에 딱 좋은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데이지는 개츠비와 불 같은 하룻밤을 보낼 정도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개츠비가 데이지를 얻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 명예와 사회적 지위 따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서민출신인 개츠비가 전쟁에 참전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당시 미국 젊은이들은 '전쟁영웅'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부풀어있기도 했지만,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악당을 물리칠 '의무' 같은 것에 더 끌려서 참전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츠비에게는 돈과 명예를 얻어 '데이지'를 쟁취해야 할 목적이 더 분명했다.

 

  하지만 데이지는 개츠비를 기다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데이지는 천성적으로 '사랑'을 갈망하는 타입이었고, 순수한 사랑보다는 뜨거운 사랑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젊은 아가씨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 많은 귀족가문의 톰 뷰캐넌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것에 크게 거부감도 없었다. 마침맞게 결혼식날 날아온 '개츠비의 편지' 때문에 결혼식이 무산이 될 뻔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신혼여행을 떠난 데이지는 톰과 찐한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것이 훗날 다시 만난 '개츠비'에게 돌아갈 수 없게 한 이유였고 말이다. 결국 데이지는 '사랑, 그 잡채'를 원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가져다주는 환상과 허영에만 만족하는 '실속' 챙기는 여자였던 것이다. 속물의 대명사로 일컫는 '동가숙서가식'을 꿈꾸던 그 여인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끝내, 데이지는 모순덩어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신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남편, 톰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그가 가져다주는 '사랑의 징표' 따위에 헬렐레하고 마는 공주였다. 잠시 잠깐 '다시 돌아온 연인, 개츠비'와 만나서 '사랑의 추억'을 담뿍 느끼며 설레였지만, 거기까지였다. 데이지는 결코 '사랑의 도피' 같은 걸 할 수 있는 용기 따위는 없는 여자였다. 어쩌면 데이지는 톰과 개츠비를 오가며 '이 사랑, 저 사랑'의 단물만 쏙쏙 빼먹으며 지내는 것을 찐행복이라고 여기며 살았을 것이다.

 

  오, 그렇지만 이런 데이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왜냐면 토마스 뷰캐넌도 도덕군자처럼 입바른 소리는 곧잘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두고서도 '욕정에 불타오른 유부녀'와 달달구리한 섹스를 탐하고 또 탐하는 '욕망덩어리'였기 때문이다. 모순덩어리와 욕망덩어리가 부부라니, 정말 잘 어울리지 않은가?

 

  현대인들은 어쩔 수 없이 모순과 욕망을 품고 살아간다.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선악과'를 따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후손이기 때문일까? 겉으로는 이성을 지키는 척하지만 '남들 눈에 띄지만 않는다'면 본능에 충실한 유전자를 품고 있기 때문인걸까? 세상 가장 맛있는 사과는 '훔친 사과'라는 말도 안 되는 늘어놓으며 키득거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정말로 많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개츠비의 순수함'이 더욱 돋보이기 마련이다. 세상 모두가 타락해도 오직 '개츠비'만은 사랑을 믿고, 사랑으로 움직이며, 사랑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정말 읽으면 읽을수록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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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41 : 논어 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41
서기남 지음, 신명환 그림, 손영운 기획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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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철학을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 왜 그런가하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우리는 철학을 공부할 때, '철학, 그 잡채'가 아닌 '철학자의 위대함'만을 떠들곤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철학에서 말하는 '인식론'이니 '존재론'이니, 또는 '영국의 경험론'이니 '대륙의 합리론'이니 뭔가 그럴듯한 이론들만 늘어놓고, 그걸 애써 끄집어내고 발견(?)해낸 철학자들의 업적(!)만을 나불거리곤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생님들이 먼저 '위대한 철학자의 위상'에 짓눌려서 학생들 앞에서 꺼뻑 죽는 소리를 하니, 그런 '철학자들의 위대함'만을 듣고 배운 학생들은 그런갑다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십상이다. 이러니 철학을 전공한 이들조차 '자기만의 철학'을 내세우기보다는 고작 '철학자의 위대함'을 해석해서 들려주고 말 뿐이다.

 

  그렇게 철학자들의 똥꼬만 추켜세워줄 바에야 '철학'을 아예 모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모름지기 철학이란 '비판의식'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위대하다면 '그의 철학'에 비판할 틈이 없을 정도로 빈틈이 없다는 것에 주목하고, 그럼에도 그가 남긴 '빈틈'을 찾아내서 더 위대하고 완벽한 철학으로 가다듬는 것이 '후학들의 의무'일 것이다. 훌륭한 학생들을 가리켜 '청출어람'이라 했거늘, 스승보다 더 나은 제자가 될 생각은 애당초 '시작'도 하지 않고, 어찌 철학을 배웠다고 할 것인가? 그렇기에 철학은 배우고 난 다음에 더욱 갈고 닦아 빛내야 '대상'에 불과하다. 그러니 '철학자의 위대한 똥꼬'만 바투 세우는 '철학공부'는 애초에 생각도 하지 말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개똥철학'일지라도 '자기만의 철학'을 시작하라. "소크라테스가 그랬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데카르트가 요랬대? 하지만 내 생각은 이런 걸!", "칸트가 그랬어? 그럴 듯 한대, 나라면 이렇게 하겠어"...얼마나 멋지냔 말이다. "나의 철학은 이렇다"는 말을 왜 못하냔 말이다. 너무나도 위대한 철학자들의 뿜어내는 밝은 빛에 어둠마저 가려지듯, '나의 철학'이 너무나도 초라해서 감히 말을 할 수 없기에, 그렇다는 변명 따위는 할 생각도 하지 마라. 그런 철학나부랭이를 나불거릴 거면서 뭣하러 '철학공부'에 뛰어들었단 말인가. 우리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는 말이 있다. 장을 담그다보면 곰팡이도 피고, 구더기도 끼고, 그런 법이다. 그럴 때 우리 어머님들은 슬기롭게 곰팡이 핀 부분을 걷어내고, 구더기가 끼지 못하게 고추도 띄우고, 망도 갈아주고, 이 항아리에서 저 항아리로 장을 옮겨담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알뜰살뜰 장을 담가오셨다. 그렇게 우리 음식에 '깊은 맛'을 내주는 비법인 '장 담그는 법'을 전통으로 살려내 지금의 우리 음식에 다채로운 맛을 내주는 '근본'이 된 것이다. 어떻게 이제 '철학공부'를 제대로 할 생각이 좀 드는가?

 

  각설하고, 성현들의 위대한 가르침인 '철학'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비판의식'이다. 다시 말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준비를 하라'는 말이다. 그래야 오래 전의 철학이 오늘날에 다시금 생생히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특정종교의 '근본주의자'와 같이 철학자들의 사상을 맹신하며 '토씨 하나 틀림이 없어야 한다'는 그릇된 자세로 공부하려 드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많은데, 그럴 거면 '철학자'가 아니라 '종교가'가 되길 권한다. 철학은 얼마든지 비판이 가능하지만, 종교에서는 비판은 금물이기 때문이다. 비판도 하길 꺼린다면 차라리 '철학공부'를 그만 두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기에 이 책, 공자님의 말씀인 <논어>도 날카로운 질문으로 시작해 날카로운 질문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자세다.

 

  한편, <논어> 좀 읽어보았다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길, "옳은 말씀이긴 한데, 오늘날에는 잘 안 맞아"라고 떠들곤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에도 똑같은 말을 수많은 사람들이 떠들곤 했다는 점이다. 그 까닭은 공자는 너무 '예법'을 따지고, '도덕'으로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고리타분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이 보기에 그렇다는 것은 쉬이 이해가 되는 바지만, 2300여 년 전에도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그렇다면 공자가 말한 '유교사상'이란 오늘날에도 낡고, 과거에도 '낡은 사상'이었단 말일까?

 

  좀 따져보자. 공자의 제자들이 썼다고 전해지는 <논어>에는 '인(仁)'이란 글자가 가장 많다고 한다. 그리고 공자는 툭하면 '예의도덕'을 강조하고, 그것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한 철학자이다. 사실 '춘추시대'라는 것이 '힘의 논리'로 모든 것을 해결하던 막 되먹은 세상이었기에, 옆 나라에서 힘을 길러 쳐들어올 것이 두려워 공자께 여쭈면, 공자는 "임금께서 몸소 예를 다하면, 신하들도 옳은 일이라 여겨 그대로 따라할 것이고, 백성들도 저절로 감화를 받아 그른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니, 나라가 태평해질 것입니다. 나라가 태평해지니 백성들도 살기 좋아 열심히 일을 해서 부를 쌓을 것이고, 신하들도 바른 정치로 나라를 부강하게 할 것이니, 어찌 이웃나라가 넘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임금께서 예를 다하시면, 그들도 바른 나라를 치는 것이 부끄러워 감히 쳐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으로 설교를 했다고 한다. 틀린 얘기는 하나도 없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답변이라고 생각하기 일쑤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제관계도 '첨예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보면, '춘추시대'와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이런 각박한 현실에서 '예의도덕'을 말하면 고리타분한 몽상가로 보이기만 할까? 그렇다면 '예의도덕'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오로지 '강 대 강'으로 강력한 무기를 선점해서 이웃나라에게 힘을 과시하며, 여차하면 '이토록 강력한 무기로 선제공격을 할끄얌!'이라고 떠세를 부리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란 말인가? 공자도 적군이 쳐들어오면 용감하게 맞서 싸우라고 했을 것이다. 염치고 나발이고, 당장 죽게 생겼는데, 날아오는 미사일에 대고 호통을 친들 무슨 소용이겠냔 말이다. 다만, 아직 그렇게 공격 당할 것 같진 않으니, 먼저 '나라살림'부터 관리하고, 백성들의 '민심'부터 달래주어 부국강병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제시했을 것이다. 더구나 공자는 '학자'이자 '선비'인데, 전쟁에 대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전쟁전문가'와 같은 답변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가 생각한 바른 나라란 무엇일까? 문제를 해결할 평화적인 방법이 단 하나라도 남았다면 '그것'부터 시행한 다음에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나라의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온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길 망설이지 않는 나라라고 본 것 같다. 공자가 말한 '예의도덕'이란 그런 큰 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부끄러움(염치)'을 알고 불의를 참지 않으며 어진 마음으로 공명정대하게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는 힘'을 발휘한다면, 저절로 부국강병한 나라가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도 바로 그렇다고 본다. 이제는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가'로 거듭나야하는 마당에 자꾸 발목을 붙잡고 나아가질 못하게 하는 '어질지 못한 무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라고 지목하지 않아도 눈에 뻔히 보인다. 왜냐면 우리는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내걸면 한없이 자랑스럽고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던, 그 경험 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불의스럽고 뻔뻔한 행동을 하는 나라들에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준엄하게 꾸짖었던 경험도 말이다. 적반하장으로 대한민국을 면박 주려던 '그 나라들'에게 대한민국은 어질지 못하고 부끄러운 짓을 일삼는 자들에게 "부끄러운줄 알라"고 당당히 말할 용기있는 국민들이 있다고 행동으로 보여준, 바로 '그 경험' 말이다. 지금 공자가 살아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예와 도덕이 살아있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구나"하고 말이다.

 

  물론, 이 책 <논어>에 '대한민국'과 관련된 그런 말은 담겨 있지 않다. 하지만 철학공부가 '공자님의 말씀'을 그대로 읊어야 하는 것이라면 하지 말라는 의도로 몇 자 적어봤다. 한때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면서 공자의 말씀을 '전근대적인 낡은 사상'으로 싸잡아 퉁쳐서 '버려야 할 것, 1호'로 낙인을 찍었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어찌 '낡은 사상'이 공자왈 뿐이겠는가. 철학이란 늘 새로운 것이어야 마땅하다. <논어>에도 '온고지신'이라 하지 않던가. 옛 것을 배워 새롭게 하라고 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선도국가로 나아가려 함에 '나침반'이 필요할 것이다. 그 나침반에 꼭 필요한 것이 '철학'이라는 것에 반박할 이는 드물 것이고 말이다. 다만 '철학, 그 잡채'에 매몰되어 '낡은 사상'에만 매달리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이제 오래 묵혀두었던 <서울대선정 인문고전>을 끄집어내어 하나하나 써내려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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