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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 6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41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평점 :
[My Review MCMXLIX / 열린책들 17번째 리뷰] 드디어 다 읽었다. 숨가쁘게 읽는 바람에 '책의 진수'를 제대로 음미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천일야화>를 '완독했다'는 뿌듯함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 뿌듯함이 그닥 벅차오르지는 않았다. 왜냐면 모처럼 완독했는데 그 누구와도 <천일야화>에 대한 담론을 나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면 아무도 <천일야화>를 완독한 이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주변엔 말이다. 이게 '고전명작'을 완독한 이들의 고독감이다. 누구나 제목만 대면 단번에 알 정도로 유명하지만 정작 그렇게나 유명한 고전을 아무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외로움을 느껴야만 한다. <알라딘과 요술램프>라는 제목만 들어도 그 내용까지 다 알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 작품이 <천일야화>속 이야기의 일부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 더구나 8권(버튼판 <천일야화>)의 분량이라고 하면 읽기도 전에 거부감을 표하곤 한다. 이 책은 6권(갈랑판 <천일야화>)으로 분량이 조금 더 적으니 권해봐도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 뿐이다. 막상 읽기 시작하면 멈출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는데 왜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사실, 우리 나라에 <천일야화>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리차드 프랜시스 버튼'이 엮은 10권 분량의 <천일야화>가 먼저 소개되었다. 책 분량의 방대함도 유명했지만 내용이 '난삽한 성행위 묘사'로 점철되어 있는 것으로도 꽤나 유명세를 높였다. 그런 까닭에 <천일야화>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소설로 '청소년필독서' 목록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음에도, 노골적인 성묘사가 가득했기에 우리 나라에서는 '권장도서'가 되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도 낯뜨거운 대목이 담겨 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도서관'에서 추방시켜야 하고, 청소년권장 도서목록에서도 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것이 뉴스를 장식하지 않았던가. 버튼판 <천일야화>도 딱 그런 분위기였다. 당시엔 뉴스에 오를 정도로 이슈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학교선생님도 <천일야화>를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권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도 서른살이 넘어서 버튼판 <천일야화>를 처음 접했지만, 2권을 넘기지 못했다. 이건 뭐 이야기속에 야한 이야기, 그속에 또다른 야한 이야기가 멈추지도 않고 계속 이어졌기에 도저히 책장을 넘길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럴 정도였기에 그 누구도 당시 <천일야화>를 '완독'했다는 자랑을 하지 못했다. 그저 그 유명한 책을 알고 있다는 정도로 점잖게 애둘러서 표현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천일야화>는 어른들만 읽을 수 있는 '성인용 고전'이란 말인가? 그건 아니다. 애초에 '버튼판 <천일야화>'가 나오기 전에 프랑스 작가 '앙투안 갈랑'이 엮은 <천일야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버튼조차 '갈랑판 <천일야화>'를 참고해서 자신의 책을 엮었다고 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원본'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에서는 '갈랑판 <천일야화>'가 뒤늦게 출간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천일야화>는 '야화'라는 이미지로 굳어서 '야한 소설'로 이해하고 있었고, 청소년이 읽어도 무방할 정도로 '건전한 내용'으로 점잖은 '갈랑판 <천일야화>'도 도매금으로 넘겨짚어서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 외면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갈랑판 <천일야화>'가 소개된 이후에는 하릴없이 난삽한 낯뜨거운 묘사를 싹 걸러낸 '단행본 <천일야화>'가 많이 출간되었다. 어린이책으로 출간된 <천일야화>도 모두 '갈랑판본'으로 아주 건전하고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학부모들께서 자녀에게 <천일야화>를 읽혀주고 싶다면 책의 저자가 '앙투안 갈랑'인지 먼저 확인하면 된다. 혹시라도 '리차드 프랜시스 버튼'이라고 적혀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성인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시기적으로도 '갈랑판본(프랑스어)'이 18세기에 만들어졌고, '버튼판본(영어)'이 19세기에 출간되었다. 애초에 '아랍어'로 적혀 있는 '원본'은 따로 없고, '출처'도 불분명할 정도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아랍어'에 정통한 앙투안 갈랑이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보고, 흩어져 있던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서 <천일야화>라는 이름으로 출간을 했고, 이 책을 다시 중동을 비롯해서 전세계로 수출하는 업적을 남긴 것이다. 리차드 프랜시스 버튼은 이런 '갈랑판본'을 참고로 하여, 자신이 직접 찾은 '천일야화'의 이야기를 더하고, 여기에 '낯뜨거운 묘사'까지 잘 버무려서 또 다른 <천일야화>를 내놓았다. 이것이 '영문판'으로 소개된 덕분에 전세계로 빠르게 퍼뜨려졌고, 우리 나라에서는 바로 이 '버튼판본'이 먼저 소개된 셈이다. 그래서 두 개의 '판본'을 모두 읽은 사람은 이 책들이 서로 '같은 책'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딴판'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세헤라자드가 샤리아 술탄에게 밤마다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이야기 설정은 '같지만', 그밖의 이야기 순서라든지, 심지어 이야기 내용까지 사뭇 다른 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읽어보면 알 게 된다. '버튼판본'보다 '갈랑판본'이 훨씬 읽었을 때 감동이 더 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단순히 내용이 '점잖치 못하고', '점잖고'의 차이만 보이는 게 아니라, 이야기의 서사 방식 자체가 완전 다르다. 버튼판본은 '음담패설'을 읽는 듯 시시껄렁한 시정잡배가 들려주는 분위기가 연출된다면, 갈랑판본은 아버지가 침대맡에서 어린 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사랑스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같은 제목인데도 이토록 엄청난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버튼판본'은 <아라비안 나이트>(동서문화사)로 검색을 해야 찾을 수 있다. '성인용'이긴 하지만 읽을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해는 하지 말길 바란다. 감동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덜 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일 뿐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야한 고전소설'만 따로 골라서 소개를 해드려도 좋을 듯 싶다. 사드 백작의 소설들이나 <데카메론>을 비롯해서 '버튼판 <아라비안 나이트>'도 말이다. 점잖치는 않지만 '문학적 가치'가 높다고 주장(?)하는 비평가들이 많다. 왜 그런 비평을 했는지 '공감'하진 못하겠지만 말이다. 뭐, 나중의 일이고. 이번 기회에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를 완독할 수 있어서 기뻤다. 언젠가 <천일야화>를 다시금 소개하는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셰에라자드가 들려준 이야기를 토대로 수많은 창작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마치 '온세상 거의 모든 이야기의 원조'라고 소개해도 무방할 것이다.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