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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웨이동 만화 삼국지 1 (흑백 한정판) - 천하를 꿈꾸는 영웅들 ㅣ 천웨이동 만화 삼국지 (흑백 한정판)
천웨이동 글, 량샤오롱 그림 / WISDOM(위즈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My Review MCMVI / 위즈덤 1번째 리뷰] 천웨이동(陳維東) 만화가는 1969년생 중국 출생이다. 중국 4대 고전을 '만화'로 그려내었다고 한다. 중국 4대 고전은 <삼국지연의>(나관중), <수호지>(시내암), <서유기>(오승은), 그리고 <금병매>(난릉소소생)이다. 무려 6년 간의 시간이 소요될 정도의 방대한 작업량이라고 하는데, 그건 그거고. 어쨌든 '중국판 삼국지'를 리뷰할 필요성을 느껴 천웨이동의 <삼국지>를 선택했다. '만화'라서 진면목은 파악하기 어려울 듯도 싶지만, 오히려 '만화'이기에 중국사람들이 묘사하는 '삼국지'에 대한 느낌(이미지)은 더 생생할 것이라 판단했다. 서론이 길어지는 것은 '길고 긴 줄거리'에 대한 예의가 아닐테니 이쯤하고, 최대한 느낌적인 느낌만을 리뷰에 담아 보려 한다.
중국인들은 '젊어서는 <수호지>를 읽지 않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이 책의 서문에 그 답이 적혀 있다. 아마 <수호지>의 저항정신과 <삼국지>의 모략(지혜)을 두려워한 지배계층의 심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중국의 명청 왕조와 중국 공산당의 눈치를 봐야했던 '지식인들의 반어법'에서 비롯된 해석인듯 싶은데,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더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삼국지>는 '지혜의 보물창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연 어떤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삼국지>의 시간적 배경은 후한 말기의 황제 '영제'의 치세부터 시작한다. 그야말로 혼란의 시대였다. 조정은 무너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황제는 환관 '십상시'에 둘러싸여 나랏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백성들은 생업을 팽개치고 도적의 무리에 합류하니 '황건적의 난'이 바로 그것이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궁여지책으로 도적이 되었는데도 황제는 이를 해결할 의지도 없어, 세상은 날로 피폐해져만 갔다. 이런 난세에는 영웅이 태어난다고 하던가? 유비 현덕, 관우 운장, 장비 익덕이 등장해서 황건적을 물리쳐 백성을 구하고, 십상시를 처단해 황실을 구하려 세 사내가 의형제를 맺으니, 바로 '도원결의'다. '중국판 <삼국지>'는 이렇게 시작하는가 보다.
사실 '정사'에는 도원결의의 내용이 묘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뒤이어 벌어진 '반동탁연합'에서 적장 화웅의 목을 베고, 여포와의 대결에서 큰 활약을 벌인 '유관장 삼형제'의 이야기가 실려 있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로 화두를 여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이는 사실 '한중일 삼국지' 전부 이러한 서사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기에 유별난 점은 아니다. 그런데 '정사'에는 실리지도 않은 이 에피소드를 소설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은 왜 유달리 부각시킨 것일까? 그 까닭은 역사의 승자인 '위나라의 조조'가 아닌 역사에서 패배한 '촉나라의 유비'에서 더 큰 명분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천하통일의 위업에 있어 첫째 조건은 '힘(실력)'이 아니라 '도덕(의리)'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면 '힘이 쎈 사람'이 모든 것을 독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백성의 처지에서는 '강자의 독식'이 그닥 달갑지만은 않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등장한 '강자'는 백성을 도와주기보다는 더욱더 억업하고 수탈하기 바쁠 것이기 때문이다.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쓰던 시절(1522년)도 '명나라 가정제' 때였다. 바야흐로 명나라가 안팎으로 내우외환을 받으며 국운이 쇠락해가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가정제 때 명나라는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고, 왜구와 몽골의 끝없는 침략으로 온나라가 혼란했던 시절이다. 마치 후한말의 사회상과 비슷했을 것이다. 이 시절의 나관중은 국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가치를 내세웠을까? 바로 '도덕'이 바로 선 나라였을 것이다. 지배계층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피지배계층은 그 덕을 바탕으로 서로 화목하게 살아나가는 태평천하를 꿈꿨을 것이다. 그렇기에 '힘'을 내세운 조조가 아닌 '덕'을 추구한 유비를 정통으로 삼은 이야기를 써내려가려 했을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어, 의병을 일으킨 삼형제는 황건적을 쳐부수며 '동탁과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면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삼형제는 황건적에게 쫓겨 패주하는 동탁을 위기에서 구하고 크게 승리하는데 빛나는 공을 세우지만, 목숨을 빚진 동탁은 삼형제를 '관직'도 없는 잡군 취급을 하며 돈 몇 푼 쥐어주는 것으로 승전의 공로를 갈취하려 든다. 이에 분을 참지 못한 장비가 동탁의 예의 없음을 탓하며 단칼에 처단하려 들지만 유비가 이를 말리며, 도리어 동탁의 군대에 의해 쫓겨나는 푸대접을 받는다. 이런 장면만을 '빠르게' 보여주는 '천웨이동의 의도'는 무엇일까? 바로 유비에게 혼탁한 세상을 구할 '명분'이 명백하게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삼국지>를 즐겨 읽는 까닭도 바로 이러한 '대의명분'이 합당하다는 것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명분에 '삼형제의 실력'도 만만찮음을 은근히 내비친다. 비록 '의병'에 불과한 초라한 힘이지만 '삼형제'가 애초에 갖고 있는 능력이 뛰어나기에 뛰어든 전장마다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는 뒤이어 벌어지는 '반동탁연합군'에서 보여준 '삼형제의 활약'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군을 이끌고 참전한 원소와 조조, 손견 등등을 다 제치고 '화웅의 목'을 베고, '여포와의 맞대결'을 펼친 것은 그들 연합군의 실력보다 '삼형제'의 실력이 훨씬 뛰어났음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반동탁연합군'에 참여한 18개의 제후(영웅)들은 대의명분에서조차 '삼형제'에게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독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도덕'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유관장 삼형제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나관중의 의도는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반면, 서량 출신 '동탁'은 어떤 인물인가? 그도 어지러운 세상을 발판으로 삼아 제대로 실력발휘를 한 영웅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허나 그는 정의로운 영웅은 아니다. '십상시의 난'과 '황건적의 난'을 일거에 평정하는 실력을 갖췄으나 '하진의 실각'으로 인한 황실의 혼란을 틈타 어린 '소제(유변)'와 '진류왕(유협, 훗날 '헌제')'을 인질(?)로 삼아 낙양에 입성한 뒤에 '헌제'를 옹립하고 스스로 상국의 자리를 차지하여 국정을 제맘대로 쥐락펴락 하는 못된 짓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제 이익만을 탐하는 악당을 자처한 셈이다. 이런 동탁의 횡포에 '충의'의 깃발을 들고 일어선 영웅들이 있었으니 바로 '반동탁연합군'인 18로군이다. 각지의 18명의 영웅들이 저마다의 힘을 짜모아 '악당'을 쳐부수러 등장했으니, 분명 '정의의 영웅'이어야만 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왜일까?
그건 '반동탁'이란 공통의 기치를 높이 세우기는 했으나, 실제로는 '악당 처치'가 주목적이 아니라 혼란한 정국을 틈타서 '자기 세력'을 늘려보려는 야심만 가득찼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올바른 뜻'을 보여준 것은 오직 '공손찬의 객장'으로 참전한 '유관장 삼형제' 뿐이다. 선봉에 나섰던 손견은 군량미 운송을 담당했던 원술의 고약한 심보로 죽다 살아나는 위험을 겪어야 했고, 선봉에 실패한 연합군은 화웅과 여포에게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는 무력함을 보여주었으며, 화웅이 죽자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는 동탁의 만행 앞에서도 의기투합하지 못하고 총대장의 실력발휘조차 하지 못하는 원소의 무능함과 그의 무능함에 기대어 호시탐탐 '이득'을 챙길 궁리만 하고 있는 18로군에 참여한 영웅들은 그저 '소인배'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장안으로 천도하는 동탁의 뒤를 쫓아 추격전을 벌인 '조조'가 진정한 영웅이었을까? 그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한마리 짐승에 불과했다. 어릴 적 친구였던 '원소'는 18로군의 총대장에 올라 대군을 지휘하는 실력이라도 발휘했지만, 동탁 암살에 실패하고 겨우 몸만 빠져 나와 '반동탁연합군'을 편지 한 장으로 끌어모은 실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정작 전장에서의 실력발휘는 하지 못해 그에 걸맞는 '명성'을 쌓지 못해 서둘러 공을 세우려는 '공명심'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는 참혹한 패전이었다. 훗날 조조의 성공(?)에 비추어서 악당 역을 맡은 동탁군을 홀로 처단하려했다는 '정의감'을 보여주는 척 했지만, 조조의 추격은 무모할 뿐이었음을 단박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무모한 용기는 안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을텐데 말이다.
하여튼,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를 한 뒤에야 불타버린 낙양에 입성한 '연합군'은 뒤늦게 자신들이 늦었음을 한탄하지만, 애초에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할 의지도 없었고, 악당인 동탁은 너무 쎘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힘'을 과시하는 것만으로 그들의 목적은 다 이룬 셈이다. 애초에 이들이 '정의로움'이 없었다는 것은 낙양 입성 뒤에 벌인 행태에서 잘 알 수 있다. 손견은 우연히 '전국옥새'를 차지하자 그날로 고향땅 강동으로 내빼고, 그 사실을 알아챈 원술과 원소 형제는 '옥새'를 빼앗기 위해 손견을 공격하고, 그로 인해 손견은 연합군에서 빠져 퇴각하지만, 원소의 편지를 받은 형주의 유표에게 공격을 받고서 끝내 요절하게 된다. 나머지 제후들도 '반동탁'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각자의 연고지로 되돌아 가지만, 금방 본색을 드러내고 저들끼리 싸우며 '세력 확장'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 가운데 백미는 바로 곡창지대인 '기주' 지역을 두고서 원소와 공손찬이 잠시 연합했다 서로 치고 받으며 싸우는 대목이다. 이 전투는 2권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