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외전 : 마음의 칼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My Review MDCCCLIX / 엘릭시르 12번째 리뷰] 두 번째 '외전'에는 모두 4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차례대로 <대성인의 죽음>, <마음의 칼>, <죽었다고 지옥을 아는가>, 그리고 <1997년 12월 25일>이다. 이 작품들은 각각 '세계편'과 '혼세편'의 후속작들로 이어지지만, '외전'의 성격상 굳이 읽지 않아도 스토리 전개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도 하다. 사실 <퇴마록>이 한창 출간되던 시절에 동네서점에서 나오는 족족 사모으던 나조차도 <외전>은 구하기 힘든 책이었다. 제법 큰 서점을 돌아다녀도 구매하기 힘들었는데, '온라인 서점'이 등장하면서 겨우 구했던 책이기도 하다. 24년인 지금에는 온라인 서점마저 '절판'이어서, 현재는 '이북(eBook)'으로만 구매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퇴마록>의 오랜 팬들은 지금도 '외전'이 나오길 기다린다. 아직 '말세편'에 해당하는 뒷이야기들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국내편'도 있고, '세계편', '혼세편'까지 외전을 내놓고서 왜 '말세편'은 쏙 빼놓느냔 말이다. 아무리 '말세편'으로 퇴마행의 모든 이야기를 종결지었다고 하더라도 독자들은 아직도 '말세편의 외전'을 기다리고 있으니 꼭 출간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먼저, <대성인의 죽음>편이다. 여기서는 '혼세편-홍수이야기'에서 등장했던 바바지와 '세계편'의 대미를 장식했던 마스터가 등장해서 악행을 일삼던 '블랙서클'이 어찌하여 탄생하게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일종의 '세계편-프리퀄'에 해당하는데, 저 세상의 악마를 불러내어서 모든 인간을 말살하려 했던 악당답게 아주 악랄한 마스터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다. 더구나 그런 마스터의 스승으로 등장하는 '바바지의 비밀'이 폭로되면서 이야기가 한층 깊어졌다. 혼세편에서는 '홍수이야기'에 잠깐 등장하고 말지만, 그렇게 등장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바로 이 에피소드에 모두 담겨 있다.

다음은 <마음의 칼>편이다. 여기서는 여검사 현정이 속세를 떠나 비구니가 되는 사연이 담겨 있는데, 이미 '혼세편-와불이 일어나면'에서 현정이 비구니가 된 모습을 볼 수 있으나, 그녀가 아끼던 '청홍검'을 현암에게 준 까닭을 이 에피소드에서 밝혔다. 하지만 정작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정이 칼을 내려놓고 비구니가 될 작정을 품은 까닭일 것이다. 칼을 쓰는 무인에게 '칼'은 목숨보다 소중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소중한 칼은 다른 이에게 건내줄 정도로 큰 계기가 된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이 책의 제목이 '마음의 칼'인 것을 보면 이 에피소드가 가장 핵심적인 것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다.

이야기를 좀 더 풀어보자. 살다보면 '죽이고 싶을 정도' 미운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검을 다룰 정도로 수련을 쌓다보면 몸(육체)만 단련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정신)까지도 수양을 닦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미운 사람이 있더라도 함부로 칼부림을 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날 리 없다. 그런데 현정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명 '마음의 칼'이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현정이 사랑했던 남자가 현정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딴 여자에게 가겠다는 통보를 받자 차갑게 마음이 식어버린 현정은 그 사랑했던 남자에게 콕 하고 손가락으로 찌르는 시늉만 한다. 물론 마음속으론 시퍼렇게 날이 선 청홍검을 들고서 단칼에 내리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그저 손가락으로 그 사랑했던 남자의 이마를 살짝 두드렸다. 한때는 열렬히 사랑했지만 지금 내 앞에서 이별을 통보하는 무정한 남자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차가운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 그 남자가 그자리에서 단발마 같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더니 일어날 줄은 모른다. 급하게 병원에도 옮겼지만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지도 못한 채 '식물인간'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분명 현정은 손가락만 찔렀을 뿐인데 말이다.

놀란 것은 도리어 현정이었다. 물론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그 남자도 한없이 불쌍하지만, 그 남자의 무정함 때문에 받은 천벌이라고 여기면 말이 안 될 것도 없겠다. 하지만 현정은 그저 손가락만 찔렀을 뿐인데 '살해자'라는 혐의로 경찰조사까지 받게 된다. 목격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목격자들조차 현정이 한 짓은 '손가락질'뿐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이에 경찰은 의사의 '전문지식'까지 총동원을 해서 손가락으로 '식물인간'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혐의를 의심하고 수사했지만, 결론은 '무혐의'였다. 현대의학적으로 손가락으로 이마를 아무리 쎄게 찔러도 사람이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전무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현정은 알고 있다. 그때의 마음속으로 그 남자를 죽이고 싶었던 것을 말이다. 그로 인한 '죄책감'에 현정은 손가락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공이나 주술에 대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하지만 그런 무공도, 주술도 전무했다. 그래서 현정은 비구니 차림으로 현암을 만났을 때 '검기'로 사람을 식물인간을 만들 수 있는지 물었던 것이다. '혼세편-와불이 일어나면'에 나오는 장면인데, 이 질문과 함께 현정은 현암과 '국내편-초치검의 비밀' 이후 치루지 못했던 대결을 해보고 싶었으나, 그마저도 속세를 떠난 비구니가 할 도리가 아님을 깨닫고 청홍검을 현암에게 맡긴 채 유유히 떠나버리고 만다. 그 남자가 현정의 손가락 하나로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것은 '무정하게 변심한 남자'가 받아야 할 마땅한 벌이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말이다.

<죽었다고 지옥을 아는가?>편에선 다시 '세계편'으로 되돌아간다. 마스터가 소멸한 직후에 퇴마사들도 대부분 병원신세를 지고 있던 그 사이에 '사이코메트리(사물을 만지면 그 소유자의 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초능력)' 능력을 갖고 있던 더글러스 형사(세계편에선 '탐정'이었지만 윈딩고 사건 해결 이후 복직했다)에 관한 에피소드다. 미국 형사가 갱단의 두목이 저지른 범죄를 수사하는 에피소드지만, 그 이면에는 '단테의 <신곡-지옥편>'에 버금가는 철학적 질문이 담겨 있다. 과연 '죽은자'에겐 죄를 물을 수 없는 것일까? 살아서 지은 죄 때문에 지옥행을 가는 것이 '상식'이라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영혼'이 죄를 지으면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이를 테면, 자신을 죽인 악당에게 죄를 쌓게 해서 '완벽한 지옥행'을 선사했다면 아주 속이 시원할 것이다. 허나 '죽은자'도 죄를 짓긴 마찬가지가 아니냔 말이다. 물론 '억울하게' 죽은 것은 불쌍한 일이다. 그렇게 죽은 것이 억울해서 자신을 죽인 살인자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죽어서까지 범죄를 저질렀다면, 죽은자가 저지른 범죄에는 '어떤 벌'을 주는 것이 마땅한 것일까?

우리는 '사적(개인적) 복수'를 죄로 묻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는 '복수'를 개인적으로 금지하면서 '공공의 권력(사법체계)'으로 죄를 묻는 것만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옛날에는 부모를 죽인 원수는 '철천지 원수'로 삼아 개인적인 복수를 아름다운 미덕으로 권장(?)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렇듯 '같은 하늘 아래'서 숨을 쉬는 것조차 허락치 못할 정도로 부도덕한 짓을 일삼은 악당에게 복수는 '충'이거나 '효'이거나 '암튼'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었다. 그런데 왜 현대에 와서는 '사적인 복수'를 허용치 않는 것일까? 그건 그렇고 '공적인 처벌'은 아무런 문제가 없기에 처벌을 도맡아서 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내 가족을 해코지한 범죄자가 '무죄 판결'을 받고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보았을 때, 과연 '공적인 처벌'에 수긍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런데도 우리는 '사법 체계'가 꽤나 공정하다(?)고 여기고 높은 신뢰를 보내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정말 그런가?

이 에피소드에서는 바로 이런 질문들을 똑같이 던질 수 있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천국은 못갈지언정 적어도 '지옥'은 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억울한 영혼이 저 혼자 죽기 아까워서 자신을 죽인자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서 확실한 지옥행 티켓을 끊어(?) 주었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지옥에 가지 않을까? 이 가엾은 영혼에게 현암은 단연코 '지옥행'이라고 선언을 해버린다. 과연 '영혼계'에서도 사적인 복수를 허용치 않고 단죄를 내리며, '영혼계의 공정한 판결'은 어디서 누가 내리는 것이란 말인가? 그런 공정한 체계가 있어야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도 덜 억울할 것이고, 선량한 영혼들도 맘놓고 천국행을 갈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직접 한 번 읽어보고 판단해보길 바란다.

마지막 에피소드 <1997년 12월 25일>은 '혼세편-홍수이야기'편 이후에 벌어진 사건들이다. 사건이라고는 하나 그리 심각한 사건은 아니고, 세상을 홍수로부터 구한 퇴마사들이 모두 '사망처리'된 사건을 둘러싸고, 그간 '인연'이 있던 등장인물들이 퇴마사들을 떠올리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에피소드가 담긴 '외전'이 출간되었을 즈음에는 아직 <말세편>이 나오기 전이었을테니, 이 '외전'을 읽은 독자들은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에피소드를 실제로는 2014년 이후에나 읽을 수 있었던 독자들은 억울할 듯도 싶다. 세기말 현상이 한창이던 1999년에 읽었어야 제 맛이었을테니 말이다. 실제로 1999년에 <말세편 1권>이 나왔을 때의 반응은 굉장히 뜨거웠다.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독자들의 흥분은 이루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아무튼 이 <외전>은 참 헛다리를 제대로 짚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엘릭시르'에서 <퇴마록> 전권과 <외전> 두 편을 온전히 '재출간'해준 덕분에 늦었지만 감회를 새롭게 할 수 있어서 참 고맙다. 모쪼록 이우혁 작가를 들들 볶아서라도 '말세편-외전'을 꼭 좀 출간해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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