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4 : 혼세편 - 완결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My Review MDCCCLVII / 엘릭시르 11번째 리뷰] 마침내 '혼세편'이 대미를 장식했다. 앞서 소개한 '홍수이야기'로 다시 깨어난 블랙서클의 우두머리 마스터는 소멸하고 인류 모두를 멸망시킬 거대한 홍수도 막아냈다. 묵묵히 자신들이 가는 길을 갈 뿐인 '퇴마사'들이 이번에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막아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죽었다. 아니 죽어야만 했다. 왜냐면 다시 깨어난 마스터의 음모 가운데 하나가 바로 '퇴마사'들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퇴마사'들의 능력을 공개해버렸고, 그 까닭에 각국 정부는 그들의 능력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독점하고픈 욕심에 눈이 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각국 정부들이 '퇴마사'들을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수배령이 떨어졌고, 뒤에서는 '마스터'가 전세계를 대홍수에 빠뜨려 인류를 멸망시키려 드는데도, 퇴마사들은 묵묵히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덤덤히 수행할 따름이다.

남들과 다른 '초능력'을 소유한다는 것은 좋은 일일까? 적어도 <퇴마록>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면 '힘'에는 그만한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만약 '힘'이 생겼는데도 모두를 위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위한다면 '악당'과 다를 바가 없고, 그런 악당이 지닌 힘은 끝내 거두어져야만 하는 운명을 지녔다. 그러나 가졌던 힘을 거둘 때에는 순순하지 않다. 그건 악당들의 최후를 보면 알 수 있다. 저들이 가진 힘에 도취되어 순리를 거스르고 요상한 논리를 앞세워서 '해서는 안 될 일'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다 '퇴마사'들에 의해 제거(?)되고 말지 않느냔 말이다. 결국에는 '조화'를 이루게 된다. 갖고 있는 힘을 자신만이 아닌 '모두'를 위해 쓰게 되면 무탈하지만, 그 힘에 취해서 제 이익만을 위해 한껏 욕심을 부리면 탈이 나게 된다. 그러니 이처럼 조화로운 세상에선 애초에 아무런 능력도 없이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게 보일 정도다.

딴에는 퇴마사들의 능력이 점점 높아지면서 이야기가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그래서 <퇴마록>을 읽어나갈 때마다 퇴마사들의 새로운 능력에 감탄하며, 그 능력이 펼쳐질 때마다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까 자못 흥미롭지만, 퇴마사들의 증진된 능력을 초월하는 '악당'이 등장할 때면 진저리가 쳐질 정도다. 결국엔 세상이 망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물론 퇴마사들이 구해내는 결말로 끝맺겠지만 읽을 때마다 악당들의 끔찍한 만행(?) 때문에 조마조마해진다. 그런 재미로 이 책을 읽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다시 '홍수이야기'로 돌아가서, 치밀하고 교활한 마스터는 온 세상을 물에 잠기게 만들기 위해서 운명의 수레바퀴인 '수다르사나'와 그 수레바퀴를 작동시킬 수 있는 비밀이 담겨 있는 '에메랄드 테블릿(녹비)'를 이용해서 퇴마사들을 티벳으로 파키스탄으로 유인해낸다. 그렇게 퇴마사 일행을 티벳과 파키스탄으로 끌어들인 까닭은 그곳이 '대홍수'에서 유일하게 피신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산 '히말라야 산맥'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역사인 고조선의 임금 '치우천왕'이 티벳으로 가서 고대 국가를 건설했다는 기록(녹비에 적혀 있다는)이 전해져 내려오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치우천왕기>에 담겨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보길 권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살짝 소개하자면, 고대 중국을 다스리던 '황제'에겐 고민거리가 있었단다. 바로 자신들 '한족'이 살고 있는 동쪽에 '전쟁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싸움을 잘하는 '치우'가 있었기 때문이란다. 황제는 중원에서 발흥해서 사방의 육지와 사해(四海)로 뻗어나가 천하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오직 치우한테만은 이겨 본 적이 없이 매번 지기만 했단다. 그리 망신살이 뻗치던 차에 신선의 도움으로 묘한 수를 터득했고, 그 묘수로 치우를 곤경에 빠뜨린 뒤에 비로소 승리를 거둘 수 있었고, 단 한 번의 승리로 치우를 죽이고 천하를 통일한 기쁨을 매년 동쪽 바다 근처로 친히 찾아가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는 '중국측' 기록일 뿐이고, '우리측' 기록을 보면 정반대로 이야기한다. 황제가 군대를 몰고 치우천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번번히 쳐들어오지만 치우천왕은 가볍게 이기고서 매번 황제를 꾸짖고는 돌려보냈단다. 이에 약이 오른 황제는 계속 쳐들어왔으니 치우천왕은 매번 막아냈고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단다. 그러다 한 번은 아주 모질게 혼쭐을 내주었더니 황제는 결국 승복하였고, 치우천왕이 쳐들어오지 않는다는 약조를 한다면 자신도 더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했단다. 이에 치우천왕은 해마다 황제가 직접 동해바다로 찾아와 크게 제사를 올린다면 이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알고 쳐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단다. 그래서 황제가 매년 제사를 지내와 두 나라는 평화롭게 지냈다는 이야기다.

어느 쪽의 기록이 더 신빙성이 높아 보이는가? 천하를 다스린다는 황제가 제사를 지낸다면 자신이 머무는 궁궐에서 가까운 곳에서 지내면 그뿐이지, 강력한 나라의 임금이 직접 그 먼 곳으로 행차해서 제사를 지내야만 했던 까닭을 짐작한다면 어느 쪽이 더 객관적인지 자명할 것이다. 여기에 '우 임금'이 물을 다스리는 법(오행치수법)을 배운 뒤에야 치수에 성공했다는 기록까지 더해지면, 당시 '고조선'이 갖고 있는 역량이 상당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고조선조차 막을 수 없는 대홍수가 찾아올 것이라는 예언으로 말미암아 '치우천왕'은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땅으로 백성들을 이주시키는 대책을 세우려 한다. 이런 연유로 '퇴마사 일행들'도 티벳과 파키스탄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최후의 정적인 '마스터'와 한 판 승부가 벌어졌던 것이다.

결국 최후의 승리는 '퇴마사'들의 몫이었다. 마스터가 꾸몄던 계략은 실패로 끝났고, 대홍수의 위험도 퇴마사들이 끝내 막아냈다. 하지만 악령의 힘은 막아내는데 성공했지만, 퇴마사들의 초능력을 두려워하는 각국 정부의 수장들은 한국정부를 압박하며 '퇴마사'들을 죽여야 한다고 결정을 내린다. 이에 한국정부는 '퇴마사'들의 생사와 자신들은 무관한 일이라며 정 원한다면 당신들의 손으로 직접 해결하라는 메시지만 보낼 뿐이다. 각국 정부는 왜 퇴마사들의 능력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리고 퇴마사 가운데 누굴 가장 두려워할까? 그건 다름 아닌 현승희와 이현암이다. 물론 박 신부와 장준후의 능력도 대단하지만, 이들의 힘의 원천은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것이어서 애초에 믿고 싶은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승희의 '독심술(?)'과 이현암의 '총알도 막아내는 신기한 힘' 따위는 그 자체만으로 두려운 것이다. 특히, 승희의 능력인 '남의 생각을 읽어내는 힘'은 가장 껄끄러운 능력이자, 국가의 존망까지 위태롭게 만드는 '있어선 안 될 힘'인 셈이다. 예를 들어, 미국 대통령의 '생각'을 읽어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계를 주름잡는 초강대국이 갖고 있는 '기밀'이 만천하에 까발려지거나, 그렇게 알아낸 '기밀'을 이용해서 협박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렇기에 퇴마사들은 생존해 있으면 안 될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퇴마사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그런 하찮은(?) 스파이짓에 써먹을 일은 절대 없겠지만, 지난 번에 '일본정부'의 협조 부탁(?)으로 일을 처리한 것이 사달이 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곤란한 지경에 처해서 도움을 받을 땐 좋았지만, 그 고마운 분들이 갑자기 돌변해서 '일본의 안보'를 해치게 된다면 어쩐단 말인가?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지난 번 '세계편'에서 순회(?) 퇴마를 시행한 퇴마사들이 알게 모르게 각국 등지에서 벌인 일로 인해 결국엔 '위험인물'로 낙인이 찍히고 만 것이다. 물에 빠진 놈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 아니겠는가.

암튼, 퇴마사들은 공식적으로 모두 사망으로 처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말세편'을 위한 사전준비일 뿐이다. 이어지는 '말세편'에선 어떤 일들이 퇴마사들에게 펼쳐질까? 정말 세상은 '말세의 도래'로 인해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이 책이 쓰이던 당시가 '세기말(1997)'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당시에 벌어졌던 불안감이 이 책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도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새 천년 이후에 태어나신 분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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