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순의 천일야화 3 - 마도서의 저주, 누군가 한 명은 죽어야 한다
양영순 지음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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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리아르 왕도 이상한 낌새를 채기 시작했다. 새로 들인 왕비들과 첫날밤을 치루고 나면 어김없이 처형을 하던 일상이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세라쟈드를 처형하기는 고사하고 함께 수라를 들며 사소한 일에도 웃음보를 터트리는 자신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왕의 변화를 낌새챈 것은 총리대신도 마찬가지였다. 왕국의 처녀들을 학살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처형하던 폭군이 대장군의 딸인 세라자드는 처형하지도 않고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는 정탐의 보고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폭군의 모습을 쭉 유지했더라면 '반란'도 쉽게 이뤘으련만, 왕이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성군 흉내라도 내게 되면 곤란해지는 것은 반란을 주도한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조만간 샤리아르 왕을 몰아낼 방책을 서두르는 총리대신이었다.

 

  수라를 마친 샤리아르는 세라자드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복달거렸다. 세라자드가 풀어낸 이야기는 조금은 묘한 '흡혈마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흡혈귀에 관한 전설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 피는 생명의 원천이고, 그 원천을 생명에너지로 삼아 쭙쭙 빨아들이는 귀신은 어쩌면 당연하니까 말이다. 이러한 전설을 바탕으로 영국의 소설가 브람 스토커는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전해져내려오던 '드라큘 성주'의 이야기에 애뜻한 사랑이야기를 담아 공포소설의 대명사 <드라큘라>를 발표하였다. 그렇게 '드라큘라 백작'은 여인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꽂아 흡혈을 하고, 흡혈 당한 여인도 흡혈귀가 되는 '전염의 법칙'을 만들었다. 양영순은 이에 20년간 흡혈의 욕망을 억제하면 '상급 마신'이 될 수 있다는 흡혈마신을 구상하고, 흡혈귀에게 물린 왕비가 왕을 해하고 흡혈마신에게 왕국을 통째로 넘겨버리는 이야기를 샤리아르 왕에게 들려주는 스토리 라인을 구현한다.

 

  이제 샤리아르의 운명은 어떻게 펼쳐질까? 세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 치료는 단순히 재미와 흥미를 넘어 무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점점 더 샤리아르 왕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앞 전의 이야기는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절절한 이야기를 펼치더니, 이번엔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흡혈 마신과 왕비'이고, 이미 흡혈 마신에게 목덜미를 물린 왕비는 자신의 지아비인 왕을 '식물인간'처럼 만들고서 흡혈마신만을 위해 무슨 짓이든 다하고 있었다. 그것도 왕궁 안에서 말이다. 샤리아르도 자신의 왕궁에서 왕비가 노예와 '그짓'을 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샤리아르의 잠자던 분노를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세자라드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모험'을 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사랑이야기를 담았다. 바로 왕비를 사랑한 '또 다른 남자' 이야기를 말이다. 그 남자는 현재의 국왕과 절친이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자신의 친구인 '국왕'과 혼인을 한단다. 이 남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왕비는 흡혈마신을 사랑했고, 국왕의 친구는 왕비를 사랑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사랑'이 있다. 국왕의 친구를 사랑했던 '노예소녀'였다. 현 국왕과 친구를 먹는 사이였던 남자의 신분은 고귀한 귀족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귀족을 사랑한 소녀는 천한 노예였을 뿐이다. 그런데 그 소녀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혹독한 훈련을 하는 사타부대의 훈련원을 자처한다. 남자의 몫이었던 '입대'를 대신할 사람이 구해졌다는 소식에 안심하고 왕비를 몰래 사랑하던 찌질한 남자는 여인의 몸으로 '호위무사'가 되어 사랑하는 남자의 곁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엄청난 무예를 갖추고서 말이다.

 

  이렇게 얽히고 설킨 사랑이야기는 다름 아닌 '짝사랑'이었다. 노예소녀는 귀족소년을, 귀족소년은 왕세자비를, 그리고 왕세자비는 노래하는 악사로 위장한 흡혈마신을 말이다. 왕세자는 왕세자비를 사랑했지만, 훗날 왕비가 된 뒤에는 왕국의 궁안에 흡혈마신을 숨겨두고 몰래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나중에 국왕에게 발각이 되자 국왕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리고 흡혈마신을 살리기 위해 '마도서'도 훔치고 시녀들까지 피의 재물로 갖다 바치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훔친 마도서로 흡혈마신은 드디어 놀라운 힘을 얻게 되지만, 모든 사실이 밝혀지면서 흡혈마신은 정체가 들킬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정말 세라자드가 샤리아르 왕에게 이야기 치료를 하는 진짜 목적은 무엇인 걸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알 수 없게 되어 간다. 원작에 충실하자면, 샤리아르에게 '재미와 감동, 그리고 교훈'이 담긴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주며 샤리아르로 하여금 살육을 멈추고 성군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하건만, 들려주는 이야기는 점점 더 '자극적'이고 샤리아르의 분노를 점점 부추기는 내용이 되어 간다. 혹시 '충격요법'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야기 속에서 끔찍하고 충격적인 내용을 부각시킴으로써 샤리아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반면교사'로 삼게 만들 목적으로 말이다. 허나 폭군에게 '반면교사 수법'은 득이 되기보다 독이 되기 십상이다. 불난데 부채질이고,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 붓는 격이란 말이다. 뜨겁다 못해 용광로 속의 쇳물처럼 펄펄 끓는 곳에 섣불리 차가운 물을 부어봤자 사방으로 튀는 뜨거운 물방울에 화상을 입기 딱 좋다. 세라자드는 샤리아르 왕의 분노를 멈추게 하고, 폭군에서 성군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을까? 한편, 이야기속에서 짝사랑으로 끝맺음을 한 이들은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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