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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 : 뉴노멀 - 대전환의 시대, 새로운 표준에 대한 인문학적 사고 ㅣ 퇴근길 인문학 수업
김경미 외 지음, 백상경제연구원 엮음 / 한빛비즈 / 2020년 6월
평점 :
어느덧, 코로나의 유행도 수그러들면서 '엔데믹(감염병 주기적 유행, 일명 '풍토병')'을 향해 가고 있다. 2019년 말에 시작하여 이듬해 전세계로 번져나갔고, 2023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코로나19 감염병'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이젠 '마스크'를 쓰지 않고 외출을 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가 되었으니, 우리의 일상이 그간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리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비단 마스크 뿐만 아니다.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감염병이 대유행을 하는 시기에도 별다른 경제적, 심리적 타격을 받지 않는 이들이 있는 반면에, 첨단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어쩔 도리도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극과 극의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을 우리 모두가 지켜보았다. 이를 일컬어 '뉴노멀(새로운 일상)'이라고 단순히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대변혁', '대격변'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국가적인 대처방안도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 '펜데믹(감염병 세계적 유행)' 초기에는 선진국조차 변변한 대처를 하지 못해 허둥거리기 일쑤였지만, 거대제약회사가 발빠르게 '백신 처방'을 내놓자 확실히 선진국들이 우선적으로 일상을 회복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에 반해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의 저개발국가나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인구는 많은데 의료시스템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일부국가에서는 변변한 의료혜택도 받지 못하고 병원 복도나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비현실적인 일상을 목도하게 되기도 했다.
한편, 비현실적인 일상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벌어지게 되었다. 가장 먼저 '비대면수업'이나 '재택근무' 같이 사람과 사람이 '한 장소'에서 만나지 않고도 일상을 누리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편리한 일상도 차이는 극명했다. 선진국들은 발빠르게 '비대면' 시스템을 구축해 일상을 빠르게 회복해나간 반면에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펜데믹의 수렁' 속에서 변변한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채 맨몸으로 부딪혀나갔던 것이다. 그로 인해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이'는 무서운 속도로 변화해나갔고, 그때마다 전세계는 '새로운 변종바이러스'와 싸우는 공포를 계속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바뀌어가는 것일까?
'뉴노멀'은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전제로 한다. 이미 첨단 과학기술의 맛(?)을 본 인류가 예전처럼 퇴보할 수 없다는 얘기도 되겠지만, '감염병 세계적 유행'이라는 공포를 함께 느낀 인류가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일상을 겪어 나가게 될 거라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된 지 3년이 되어가는 지금을 보면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더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무리 '첨단 과학기술의 맛'을 느꼈다고 해도 인류가 받아들이는 '체감속도'는 현저히 느릴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이를 테면,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감염병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져서 서로가 조심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느림과 불편'을 감수하던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다녀도 된다는 '시그널(신호)'가 보이기 시작하자 조금쯤의 '느림과 불편'에도 짜증을 내기 시작했단 말이다. 이제 곧 '마스크 해제'라는 정부의 방침이 나올 전망이라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그 사이 우리는 '이태원 참사'를 겪었다. 오랜만에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시그널이 나오자 너나할 것 없이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모인 젊은이들에게 충격적인 사고 소식을 전한 것이다. 이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안전사고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기에 '참사발발' 이전부터 경찰서와 소방서에 안전조치를 취해달라는 요구전화가 빗발쳤지만, 끝내 '위기대응 메뉴얼'이 없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당국의 변명과 정부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대처로 결국 애꿎은 젊은 목숨만 안타까울 뿐이고, 남겨진 유족들의 가슴엔 대못을 박아버리고 말았다. 이게 과연 '뉴노멀'이란 말인가? 아무리 '첨단 과학기술'이 날로 발달한다지만 결국 그 혜택은 '일부계층의 점유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또한, 그 혜택 또한 전혀 '공평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루어져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유발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은 우리가 절대 바라지 않은 '뉴노멀'일 것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뉴노멀'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마침맞게 이 책의 제목이 '인문학 수업'이라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교양을 쌓고 철학적인 삶을 위해서는 '인문학 공부'가 해법이기 때문이다. <논어>에도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다. 옛 지식을 통해 새로움을 터득해 나간다는 말에 '뉴노멀의 해법'이 담겨 있다고 본다. 우리의 미래는 매우 빠르게 변모해나갈 것이다. 인공지능로봇, 감염병, 생명공학, 뇌과학 등등 기존의 패러다임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새롭게 세울 변수가 너무나도 많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2040년을 주목하고 있고, 세계의 석학들도 2050년을 정점으로 인류가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라는 '경고성 멘트(!)'를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세계경제위기 속 국지적인 전쟁과 분쟁, 그리고 갈등을 멈추지 않고 있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이, 우리 인간은 B에서 D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가는 형국이다. 탄생(Birth)에서 죽음(Death)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선택(Choice)가 있다. 결국,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지녔단 말이다. 그 기회는 말할 것도 없이 '인문학'에서 찾을 수 있고 말이다. 내 삶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궁금하다면 '인문학'을 들춰보아야만 한다. 내 삶이 '위기'에 빠졌다면 더더군다나 '인문학'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 같다면 그 원인도 '인문학'에서 찾아봐야 한다. 물론 인문학이 직접적인 해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신탁의 예언이나 점쟁이의 점괘처럼 두루뭉술하고 아리송할 따름이다. 하지만 지나고보면 딱 들어맞는 예언이었고, 신통한 점괘였던 것처럼 느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당신이 놓친 '인문학이 제시한 기회'였다는 것만 알아도 좋다. 나 자신의 철학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