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평점 :
이 책이 우리 나라에서 처음 출간된 해가 2007년이었다. 그 당시에 읽었을 때도 큰 충격을 받았더랬다. 그리고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여러 나라들의 가난을 해결하겠다는 노력도 참 많이 했다는 소식도 종종 들었다. 반기문 총장도 유엔사무총장에 취임하면서 '어젠다 2030'이라는 목표를 발표하면서 '기아로 인한 대량학살을 완전히 멈추자'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세계에는 아직도 가난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과연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아님 해결할 의지조차 없는 건 아닌가?
세계적으로 가난은 '현재진행형'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빈곤인구는 13억 명(2018년 기준)이고, 그중에서 아시아가 가장 많고, 아프리카, 중남미 순을 기록하고 있단다. 10년 전에는 빈곤인구가 22억 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많이 줄어든 숫자인 것은 틀림없지만, '빈곤 수준'은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더욱 심각해진 상황이다. 다시 말해, 빈곤인구가 처한 상황이 더욱 열악해졌다는 말이다. 극빈자들은 하루에 약 2달라(약 2300원)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라면값으로 생각하면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라고 생각하는가? 천만에 말씀이다. 라면만 먹고 살면 '영양실조'에 걸리기 십상이고, 쌀밥이라도 챙겨먹으려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반찬은 무엇으로 마련하려는가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복지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최빈국에서는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들다. 심지어 이런 나라에 원조를 하러 가던 비행기가 정부군이나 반군의 공격으로 피격되는 일도 다반사라서 도움을 주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말이 나온 김에, 굶주림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전쟁'과 '사막화' 때문이다. 굶주리는 원인을 분석하면 '경제적 굶주림'과 '구조적 굶주림'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천재지변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굶주림은 당장 먹고 살 수 있는 식량도 구하기 힘든 굶주림이고, 구조적 굶주림은 가난한 국가의 '경제 수준'이 턱없이 낮아서 국민들의 굶주림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해결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아서 만성적인 굶주림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 나라에서 굶주림을 해결이 어려운 이유는 '국제기구의 자금 부족'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분석이 나온다. 여러 경로를 거쳐서 후원금이 지원되고 있지만, 가난한 나라들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풍복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선별적 지원'이라는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여기에는 굶주림도 문제지만 '의료 부족'으로 이어져서 당장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환자는 의사도 만나보지 못하고 문앞에서 출입을 제한받는 처지라고 한다. 이들을 내치는 간호사의 심적 스트레스도 상당하지만 현실적으로 의사를 만난다고 해도 별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는 당연히 굶주리는 이들에게 먹일 '곡물 부족'으로 이어진다. 현재에도 전세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정도로 농산물이 생산되고 있지만, 이 농산물을 가난한 나라까지 '운반'할 방도가 마땅하지 않아서 그대로 버려지거나 썩어버린다고 한다. 심지어 선진국의 가축들이 먹는 '사료(옥수수)'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주식'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곡물을 가축에게 먹이면서도 사람은 먹을 수 없어 굶어죽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여기에는 각 나라마다 농산물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저장하고 운반하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쉽게 말해서, 곡식이 썩어나가도 '무상'이나 '헐값'에 곡물을 넘기면 농산물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문제기 때문에 곤란하고 복잡한 문제이긴 하다.
이보다는 더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교육'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틀림없다. 당장은 배가 고프더라도 더 나은 삶이 '보장'된다면, 그것이 '교육'을 통한 것이라면 주린 배를 움켜쥐고라도 열심히 살 것이다. 과거의 우리 나라가 그러지 않았는가 말이다. 식민지 수탈과 전쟁의 폐허속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궈낸 경험은 이들 나라에게 큰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이 결국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만들지 않았냔 말이다. 그러니 가난한 나라일수록 '교육'을 통해서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러지 못하는 까닭은 '정치지도자들의 낡은 관념' 때문이다. 이런 나라들이 오래도록 가난한 국민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까닭은 정치적으로 쉽게 다스리려는 목적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도 '독재시절'을 겪지 않았던가. 그래서 경제적 성장이 있었음에도 '부의 균형'을 잃어버렸고, '부정한 세력들'에게 부가 쏠리는 현상을 낳았고, 더 심각한 것은 '부정한 정권'에게 권력을 쥐어주어서 오래도록 민주투쟁을 해야만 하는 혼란을 겪기도 했으며, 지금에도 그 혼란이 잔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의 극빈국에서 겪는 '정치적 혼란'을 짐작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방법이 없단 말인가? 지금으로써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효율적인 인도적 지원'이 큰 효과를 낼 것이다. 비록 적은 돈으로 운영을 허덕이고 있다지만 그래도 도와줄 나라는 도와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각 나라의 현황에 맞게' 지원하는 것이다. 왜냐면 각 나라의 사정을 돌보지도 않고 '손쉬운 방법'으로 지원을 하다가는 자칫 '부정한 세력'에게 돈이 흘러들어가 도움은커녕 애초에 의도한대로 지원하지도 못할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반군쪽에 억류되어 있는 난민들을 도와주기 위해 식량과 의약품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항공지원'으로 편리하게 지원하려다가 '공항'이 정부군 소속일 경우에는 지원품이 난민들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정부군'에게 빼앗기고 말 것이다. 그러니 지원을 할 때에는 확실하게 지원하기 위해서 철저한 조사와 현장을 오가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혁명적 개혁'이 가장 효율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상카라 개혁'이다. 사하라 사막 남쪽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코'라는 나라에서는 정치적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며 불과 4년 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혁명적 성과를 냈었다. 이 나라는 오랫동안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다가 1960년에 독립을 했지만 가난과 굶주림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허나 상카라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 고집스럽게 개혁정책을 밀어붙이자 놀라운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시기한 이웃 나라들의 부패한 권력자들과 프랑스 정부의 일부 정치가들이 못마땅하게 여긴 탓에 자기 동지였던 사람에게 살해당했고, 부르키나파소는 다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부패와 굶주림, 수탈의 일상이 되돌아고 말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계적인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효율적 인도적 지원'과 '혁명적인 개혁'이 절실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는 오랫동안 기아 문제 연구가이자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약했던 장 지글러의 결론이기도 하다. 전세계 식량 생산량이 온 인구를 다 먹여살리고도 남을 정도로 넘쳐나게 되었는데도 아직도 가난과 굶주림을 해결 못한 까닭은 단언컨대, 세계적 빈곤과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극빈국에서도 스스로 가난과 굶주림을 극복할 수 있는 인프라 설치가 절실한데도 그러한 노력이 미흡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체계적인 지원'을 한다해도 결국엔 '밑 빠진 독'을 채울 순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는 것에도 다각도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