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로 다시 돌아가 널 살리고 싶어
우대경 지음 / 델피노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중년의 나이가 된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들어가면 선생님으로부터 '효(孝)'에 대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효의 기본은 당연히 성공해 편안하게 잘 사는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로 늘 선생님의 훈시를 들었다. 그러나 '효'는 부모의 바람이지만 부모가 강요하듯이 직접 가르치지는 않는다. '몸과 마음을 다해 부모를 섬겨라' 하는 것이 유교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중국 춘추시대 공자부터 이를 가르쳤다고 하니, 누구든지 부모에서 효도해야 한다는 것이 자식의 도리이고, 마땅한 일이었다. 이는 사회 윤리로 자리잡고 법에서도 이를 감안한 많은 조항이 생겼다고도 들었다. 서양의 경우 '효'에 대해 우리처럼 선생들이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당연한 규범이고 의무로 생각지는 않은 것 같다. 서양에는 '효'라는 단어가 없다는 말도 들었다.

그렇다면 반대의 개념인 가장 큰 불효는 무엇일까? 불효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부모는 부모 앞에 먼저 죽는 일이라고 했다. 아니 그렇게 배웠다. 어려서 한학이나 천자문을 배울 때, 이를 테면 조선시대에는 몸, 머리카락, 피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먼저 죽는 것은 가정하기 싫을 정도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부모에게 가장 큰 슬픔을 안기는 일이다. 그래서 조선시대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야 학교에서 이런 효도니 충성이니 하는 삼강오륜을 따로 가르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 중심의 사회에서 너무 당연한 일이고,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 굳이 학교에서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일까?

 


 

이 책 『그날로 다시 돌아가 널 살리고 싶어』는 학교 폭력, 그중에서도 '범법 소년' '촉법 소년'의 범죄를 다룬다. ‘촉법 소년’은 형벌을 받을 범법행위를 한 만 10세 이상∼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로, 형법 제9조에서 ‘14세가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형사책임능력이 없기 때문에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더라도 형사처벌을 하지 않고, 가정법원이 소년원으로 보내거나 보호관찰을 받게 하는 등 ‘보호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에서는 처분 규정도 두고 있는데, 촉법 소년은 ‘소년법’에 따라 소년보호재판을 받게 되며, 이를 통해 ‘보호처분’에 처해진다. 보호처분은 ▷보호자 또는 보호자를 대신하여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자에게 감호 위탁 ▷수강명령 ▷사회봉사명령 ▷보호관찰관의 단기 및 장기 보호관찰 ▷아동복지시설이나 그 밖의 소년보호시설에 감호 위탁 ▷병원, 요양소 또는 의료재활소년원에 위탁 ▷1개월 이내의 소년원 송치 ▷단기 및 장기 소년원 송치 등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러한 소년의 보호처분은 그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또 소년법에서는 ‘19세 미만의 자'를 소년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소년범은 연령에 따라 범법 소년(만 10세 미만), 촉법 소년, 범죄 소년(14세 이상∼19세 미만) 등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만 10세 미만의 범법 소년의 경우 아직 어려서 일체의 법적 처벌이 내려지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이 연령 제한을 더 낮추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높아가는 것 같다. 이 소설은 14세 미만인 '촉법 소년의 살인'을 다룬다. 주인공 은서는 14년 촉법 소년에게 무자비한 행위로 아들을 잃는다. 살인자 문종오는 만 14세 미만의 촉법 소년으로서 어떠한 범죄를 저지르든지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한다. 이에 따라 은서의 아들 지혁을 죽이고도 처벌받지 않는다. 아들을 잃은 부모의 심정이야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대부분 알 것이다. 평생이 지옥이지 않을까 싶다.

 


 

은서에게 살인자의 친구 형태가 찾아오고 낡은 일기장을 내민다. 거기에는 13개의 메모 형태의 짧은 일기(?)가 있고 그 일기를 읽을 때마다 그 순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살인자의 친구 성태의 모습으로. 그렇게 해서 아들을 죽인 문종오를 막기 위해 엄마 은서는 과거로 돌아간다. 일기장에는 모두 13개의 메모가 있는데 문종오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의 일기와 저지르던 날의 일기, 그리고 그 후의 일기로 이루어져 있다.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은서는 그때 그때 아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날로 돌아간다. 가장 쉬운 방법은 과거로 돌아가서 살인자를 아예 죽이는 일이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때마다 새하얀 빛이 나면서 현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매번 과거로 돌아는 가지만 상황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된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고통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저자 우대경은 창자를 끊어내는 듯한 아픔과 슬픔을 표현하는 단장지애(斷腸之哀)라고 말한다.

출판사 측은 부모를 잃은 사람을 이르는 '고아'라는 단어가 있는 데 반해, 자식을 잃은 부모를 이르는 말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라며, 가까운 단어 참척(慘慽)이란 표현을 찾아 설명한다. 그러나 '참척'도 자손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을 뜻할 뿐 자식을 잃은 부모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단어 중 어떤 것을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는 것이 그 슬픔의 깊이가 얕음을 의미하지는 않을 터. 참척이야말로 인간이 경험하지 않아도 뚜렷이 공감할 수 있는 몇 가지 슬픔 중 하나이다. 자식을 잃은 슬픔은 말 그대로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일 것이다.

 


 

이 소설 작품에서는 이런 슬픔을 간직한 주인공을 소설의 전면에 내세운다. 그렇지만 작품은 온통 슬프고 아프기만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금방 손에 잡힐 것 같던 희망이 모래알처럼 흩어지기도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난관과 마주하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길을 만들고 희망을 이어가는 이야기다. 역경을 이겨낸 주인공의 복수를 더욱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악을 악으로 처단하지 않고, 악을 법으로 응징한다는 것.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한 범죄자에게 법을 이용해 마땅한 벌을 받게 만드는 서사는 실정법에 따라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저자는 이 책 초반부에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지나가듯 복선을 슬쩍 내비친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찰나의 순간으로 은서가 모두 보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패를 다 보여준 셈인데, 구성의 묘라고 할까, 아니면 복선에 그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 읽고 난 후에 판단할 일이다. 처음에는 미스터리하게 보이던 일기장의 문장들과 설정들도 사건이 진행될수록 딱딱 맞아 떨어진다. 작가가 단순히 상상력만 발휘한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스토리 구성을 유기적으로 잘 맞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시공간에서는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를 다녀오는 등 시공간을 초월하는 일이 상상 속에서 빈번이 일어나지만 독자들의 설득력을 얻으려면 유기적 구성이 필수적이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일이나 사건은 우연으로는 가능하지만 필연이 동반되지 않으면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에는 실패할 터이니 저자의 구성력이 이를 만회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흥미와 카타르시스는 공감하는 독자들의 몫이지만. 어느 정도의 재미와 쾌감을 선사하는 것 같다. 소설 전개상 갈등 부분도 뚜렷하다. 은서는 어떻게든 돌아가서 죽음을 막고 복수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뜻대로 일이 진전되지는 않는다. 이로 인해 독자들의 시선을 더 잡아끄는 것으로 이해된다.

 


 

작가는 소년법을 악용한 촉법 소년의 살인이라는 무겁고 조심스러운 소재를 퍽 과감하고도 섬세하게 다뤘다는 게 출판사 편집진의 전언이다. 이에 따르면 아들을 잃은 엄마의 마음을 애절하고도 아련하게 새겼고, 소년법을 악용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은 고통이 지면을 통해 느껴질 정도로 실감 나게 표현했다. 끝내 통렬한 응징과 복수로 향하는 길을 더없이 통쾌하게 그렸다. 허투루 버릴 것 없는 대사와 치밀한 스토리는 수많은 복선을 내포하고 있어 내내 몰입하게 만들면서도, 작품 새새 따뜻함과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에 가서는 기어코 독자의 예상을 뒤집고 마는 반전을 선사해 책장을 덮을 때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게 한다. 이 소설은 장르소설의 실험적 정신, 판타지 문학의 즐거움과 환상적 느낌, 그리고 카타르시스가 있는 작품의 전개와 갈등, 반전, 결말의 완벽에 가까운 구성력으로 한층 돋보인다. 속도감 넘치는 전개, 예측불허의 반전, 매혹적인 상상력은 판타지 문학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이다.

이 소설은 촉법 소년에 대한 기준이 오래 전 제정된 채 이후 개정되지 않아 오늘날 촉법 소년의 연령을 더 낮추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에 시사하는 바 크다. 인터넷 등으로 너무나 많은, 아직은 배워야 할 게 훨씬 많은 아이들이 법의 허술한 부분을 악용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악행을 하고 나서도 죄의식이 없다는 것은 여론에 힘을 실어주는 현상이다. 학교 폭력의 수위도 점점 올라가고, 연령도 크게 내려가 초등학교에서도 학교 폭력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은 사회가 그만큼 어지러워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렇다고 소수의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혹시 모를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내지 말아야 한다는 법의 정신을 함부로 폄훼할 수도 없는 입장이니 신중하게 고려해 적절한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론은 이미 농익은 것 같다.

 


 

이 소설이 그런 의미에서 판타지 소설로 쓰였지만 우리 사회가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를 짚어내는 또 다른 취지가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독자 혼자 만의 생각은 아닐 터, 소년 범죄에 대해 사회 지도층의 신중한 고려를 촉구하는 의미로도 읽힌다. 소설 속 종오가 그렇듯이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미성숙한 상태의 아이들이 저지른 범죄라고 해서 오래된 법으로 사회 분위기를 설득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법을 악용한다는 것은 또다른 의미의 범죄인데 이는 법의 처벌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지만 적절한 대책이나 법 개정을 요청하는 이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게 독자의 생각이다.

 

에리는 그가 문종오임을 알았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서웠다. 너무 평범했기 때문이다. 사람 셋을 죽인 살인자는 좀 더 괴물 같을 줄만 알았다.(p.293)

“교활한 토끼는 굴을 여럿 가지고 있는 법이거든요.”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른 에리가 활짝 웃었다. 은서가 힘겹게 따라 웃으며 에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p.313)

 

저자 : 우대경

 

부산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낮에는 아이들과 뛰놀며 배우고, 밤이면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상상을 즐기고, 상상이 문장이 될 때 설렌다. 지은 책으로는 장편소설 『죽어도 죽지 마』 가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썬킴의 거침없는 중국사 - 신화시대부터 청나라까지 영화처럼 읽는 중국 역사 이야기 썬킴의 거침없는 역사
썬킴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썬킴의 거침없는 중국사』는 중국의 역사를 이야기하듯이 말해준다. 흔히 말하는 '스토리텔링'의 중국사다. 스토리텔링이 되려면 말 그대로 극적인 부분들이 이어져 내려와야 한다. 이에 중국 역사는 스토리텔링으로 말하기에도 제 격이다. 왕조가 바뀔 때의 극적 전환은 물론 새 왕조가 들어서 번창하기까지 이야기가 풍부한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흥망은 고대국가부터 전쟁이 중심에 있다. 전쟁을 빼놓고는 옛 국가들의 흥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미건조할 뿐만 아니라 왕조 교체의 설득력 있는 공간을 빼놓은 셈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략 5,000년을 이어온 문명국가다. 신화시대부터 마지막 왕조 청나라까지 중국사를 한 권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정통 역사 서술로는 어려운 일이다. 이에 저자 선킴은 스토리텔링의 방법을 동원해 중국 역사를 한 권으로 정리했다. 한 권으로 정리가 가능했던 것은 어쩌면 저자의 화술(문장력)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그는 역사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을 이미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추천사를 쓴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흥미로우면서도 거침없이 역사의 장면들을 써 내려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세계사에 이어서 이번에는 중국사를 내놓았다. 광활한 영토와 오랜 역사를 보유한 중국 역사의 핵심 키워드는 분열과 통일이다. 저자는 이 흐름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면서 방대한 역사를 거침없고도 쉽게 정리해 나간다"고 평가했다. 또 탁재형 다큐멘터리 PD(여행 저널리스트)는 "이야기의 보물창고인 중국사에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그 방대함"이라고 전제하고, "맛있는 부위로만 쏙쏙 발라내어 소화하기 편하도록 맛있는 양념까지 쳐서 구워주는 조리기능장"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고 찬사를 보냈다.

 


 

우리나라도 중국 역사와 긍정과 부정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 국경을 맞대고 5,000년간 이웃해 왔기에 때로는 밀월 관계를, 또 한때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다. 경쟁과 전쟁의 역사 속에서 인연과 악연을 거듭하며 관계를 유지한 셈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한국사를 공부할 때 필연적으로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람들은 어쩌면 중국인보다 중국의 역사를 더 잘 아는 민족도 없을 것이란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사실 중국사를 별도로 배우는 사람은 사학자나 동양사학자, 그리고 한국사를 공부하는 사람 이외에는 별로 없을 것이다. 독자도 역사학을 공부하지 않을 사람으로 중국사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 역사를 공부할 때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중국에 대해 들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한반도 역사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대륙의 나라로 이합집산의 역사를 갖고 있다할 만큼 어지러운 역사를 헤치고 오늘날까지 이어온 나라다. 나라 이름만 들어도 골치가 아프지 않은가? 다행히 우리가 오랫동안 한자를 써왔기에 그나마 익숙한 문자라서 이해도가 더 빠르겠지만 그 많은 나라의 이름과 역사를 일일이 기억하기엔 쉽지 않을 터다. 또 인구도 세계 최다의 나라인 만큼 역사상 중요한 사람의 이름만 외우는 것도 만만치 않고 결국 짜증나 그만 둔 사람도 많을 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저자 썬킴이 이 책을 썼다. 이 책이 들려주는 중국사는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완전히 색다른 스타일의 역사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더 쉽다.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설명해주기 때문에 더 친근감도 든다. 저자는 이 한 권의 책에 중국의 신화시대부터 청나라까지 쉼 없이 내달린다. 이보다 더 재밌는 중국사 책은 없을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중국사 책들이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런 책을 보고 중국사를 공부했지요. 그러나 대부분이 솔직히 너무 어렵게 설명되어 있어요. 그렇기에 이 책은 중국사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 그리고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중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하시려는 분들을 위해 썼습니다. 이것 하나는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중국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우리와는 역사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요.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요." 저자가 「가깝고도 먼 나라 중국의 역사 꿰뚫기」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한 말이다.

저자는 이 책 한 권에 5,000년 중국사를 담으려 구성에도 신경을 많이 쓴 듯하다. 모두 6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 「신화의 시대」, 2장 「춘추전국시대」, 3장 「역사 속 초한지, 그리고 삼국지」, 4장 「분열의 중국 대륙」, 5장 「돈으로 산 평화 그리고 몽골의 원」, 6장 「명나라와 대퓩을 차지한 만주족」 등이다. 중국의 신화시대는 BC 170만~BC 8,000년에 해당된다. 말 그대로 신화의 시대이고 문자가 없어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았지만 인류 등장과 함께 중국의 역사는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처럼 구전으로 전해내려 온 것일뿐 엄밀한 의미의 역사에는 포함되지 못하지만 구전되어 온 내용을 나중에 문자로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다. 특히 〈삼황오제〉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내려온 이야기지만 중국 사람들은 실제 인물로 믿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의 단군 신화처럼 말이다. 〈삼황오제〉 가운데 맨 뒤의 두 사람. 바로 '제요, 제순' 즉 '요임금, 순임금'이다. 이 두 임금이 다스린 중국이 중국 역사상 가장 평화로웠던 시대였다고 중국사에서는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태평성대를 두 임금의 이름을 따서 '요순시대'라고 한다. 저자는 물론 이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중국을 다스렸는지 그 자료와 증거는 없다고 밝힌다.

 


 

중국의 진정한 역사의 시작은 〈춘추전국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도 중국 건국 신화에 나오는 〈삼황오제〉에서 '황제'란 칭호가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처음으로 황제란 칭호를 쓴 사람은 우리도 잘 아는 진시황이다. 진(秦)나라가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란 명칭을 사용했기 때문에 진시황(秦始皇), 시황제(始皇帝)라고도 한다. 진시황의 이름은 '영정'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진시황 이전에는 하(夏), 상(商), 주(周)나라가 명멸했다. 이들 나라는 기록에는 남겨져 있지만 통일 왕조는 아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시황에 이르러서야 중국의 첫 통일 왕조가 들어선 것이다. 하나라는 무려 470년 동안 지속됐으나 실제 존재했다는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왕위를 아들에게 넘기는 세습제가 처음으로 확립됐다는 의의를 갖고 있다. 상나라도 한자(漢子)의 어머니인 갑골문자를 만든 나라로서 중요성을 띤다.

기원전 1046년 상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가 등장했지만 주나라 첫 왕인 무왕이 죽고 아들 성이 왕으로 즉위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 삼촌인 주공(周公)이란 사람이 권력을 잡았지만 자신이 왕위를 차지하지 않고 조카가 훌륭한 왕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역사에 인물을 남긴다. 우리의 조선시대 수양대군과 비슷한 처지였지만 180도 다른 행동을 하네요. 어린 조카인 왕이 성장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국정을 운영한 것이다. 이때 주위의 소국들은 주나라를 항상 넘봤지만 주공이란 인물은 훌륭한 장수이기도 해 쉽게 제압했던 모양이다. 주공은 인접 작은 반발 세력을 모두 무력으로 복속시킨 후 이 나라의 독립을 보장하는 대신 일정의 세금을 바치는 식으로 다스리는 봉건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한 인물이다. 친인척에게 나누어 주며 소국을 각각 다스리게 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제후국이라 한다. 서양의 영주 중심의 봉건제와 비슷하다.

 


 

저자는 춘추전국시대를 '헬 게이트(지옥문)'로 표시하는 기발함을 보인다. 제후국들이 점점 힘을 키워 주나라가 거의 멸망할 무렵부터 전국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발호하여 전쟁을 통해 패권을 다투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야말로 전쟁으로 시작해서 전쟁으로 끝나는 수많은 제후국들이 세력을 다툰다. 당시 가장 노른자위는 역시 중국 대륙의 한복판인 곳으로 이를 '중원'이라고 했다. 강으로 사방으로 뚫여 있어 교통의 요지이고 끝없는 평원이 펼쳐지기 때문에 식량 공급이 풍부했기 때문이리라. 춘추전국시대란 〈춘추시대〉(BC 770~BC 403)와 〈전국시대〉(BC 403~BC 221)를 아우르는 말인데 주(周)와 진(晉)이 흥망과 관련되어 있다. 500년 간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다. 결국은 진(秦)이 통일 왕조를 세울 때까지 수십 개의 작은 나라들이 전란으로 일관된, 저자의 표현대로 '지옥문' 속으로 걸어들어간 셈이다. 그러나 전란 속에서도 학문은 끊임없이 장려되고 나라의 인재를 배출했으니 이를 '제자백가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우리가 잘 아는 공자 등 수많은 학설이 정립된 시기였다.

진시황은 중국 첫 통일 임금으로 '황제'라고 칭하고 엄청난 권력을 행사했다. 북방 횽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으며 학자들의 고언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전무후문한 분서갱유도 이때 일어났다. 권력이 최절정에 달한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하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으나 실제 진은 진시황이 통일한 지 11년 만에 갑자기 병사함으로써 진나라도 내리막길을 걷는다. 3대를 마지막으로 진은 건국 2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른바 소설 〈초한지〉와 〈삼국지〉의 시대로 다시 분열되고 만다. 이후 흉노족이 진나라 황제를 살해하고 진나라는 수도를 남경으로 옮겨 동진(東秦)으로 국호를 바꾸고 100년 정도 유지하다 멸망한다. 남북조 시대가 들어서 북위가 북부 중국을 통일한 후 위세를 떨쳤다(남북조 시대). 그러나 북위 역시 150년도 채 안 되어 양견이 통일 왕조 수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문제로 등극하지만 수나라 역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지나친 운하 건설로 국고마저 바닥나 30년 만에 다시 당나라에게 정복당한다.

 


 

당의 2대 황제 태종 이세민은 고구려 정복에는 실패했지만 내치는 잘한 왕으로 중국인들에게 평가받고 있다. 특히 간언하는 위징을 옆에 두고 그의 간언에 귀 기울이며 정치를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 최대 전성기를 이뤄낸 것이다. 당시 당의 세력은 경제력 포함 서양의 로마 제국이 몰락하고 동로마 제국으로 간신히 명망을 유지하는 처지라 국력은 당의 국력과 경제력이 월등하게 앞섰다는 게 사학자들의 평가이기도 하다. 태종이 죽자 아들 고종이 뒤를 잇지만 선황의 후궁 무조를 자신의 후궁으로 내정하죠. 이때문에 당 궁궐은 여자들의 '질투의 장'으로 바뀌고, 무조는 결국 〈측천무후〉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황후나 후궁이 아닌 권력자로 황제로 복귀한 것이다. 중국 역사 내에서 전무후무한 여황제로 등극한다. 잔인한 성격이라서 정적이나 자신의 권력을 넘본다고 생각이 들면 아들마저 독살한 치명적인 여인이었다. 그러나 여황제로 등극할 때 그녀의 나이 67세.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속담이 증명이라 하듯 15년 만에 병석에 눕는다. 그래도 82세까지 살았으니 장수한 셈이다. 이후 당 현종과 양귀비는 중국 역사에서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결국은 나라를 망치는 길로 접어들어 '경국지색'이란 말이 나온다.

저자는 책 속에서 당의 멸망을 모티프로 하는 영화 〈황후화〉를 예로 들면서 '황소의 난'(875)에 의해 당나라가 쇠락의 길로 치닫는 것을 보여준다. 한때 중국 대륙을 호령했던 당나라가 멸망한 시기는 공식적으로 907년의 일이다. 주전충이란 인물이 당이 망한 것은 부패한 관료들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당나라에서 한자리 했던 신하들을 모조리 죽여 강물에 던져버렸다. 이 시기 얼떨결에 황제가 되었다가 쫒겨난 당나라 마지막 황제 애종은 주전충이 독살함으로써 건국 290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후 몽골이 세운 원나라,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황제들이 들어서 중국 대륙을 호령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중국 속의 변방국으로 남게 된다. 중국의 표현대로 오랑캐가 중국을 침략해 일시적으로 중국 대륙을 지배했지만 모든 관습이나 정치제도, 경제 운용, 사람 삶의 관습 등을 모두 중국 대륙의 문화에 동화되거나 종속되어 잠시 권력을 행사했을 뿐 진정한 지배자는 아니었다는 것으로 오늘날 중국 사가들은 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세상의 중심이 자기들 나라고, 그 국민이 자신들이라는 '중화(中華)' 사상 때문일까? 아니면 역사적 사실일까. 이 책은 거기까지 분석하고 의견을 내지는 않았지만 중국의 역사를 한 권의 재미 있는 이야기책으로 풀어낸 저자의 덕으로 많은 걸 알게 돼 감사를 표한다. 스토리텔링의 본 역사이어서인지 정사(正史)에서는 쓰지 않는 표현을 오늘날 우리말로 풀어써 재미를 더욱 높였고, 역사의 흐름을 중심으로 제대로 잡아 기술했다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 : 썬킴(Sun Kim)

 

지루하고 딱딱한 세계사도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전달하는 역사 스토리텔러. ‘역사는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역사 현장에 가서 보고 배우는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전 세계 유적지 탐방에 매진했다. 멕시코 아즈텍 문명 유적을 시작으로 인도, 스리랑카, 부탄, 티베트, 중국 등 전 세계를 휘저으며 역사 답사를 다녔다. 역사는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없애고 흐름만 알면 누구나 재미있게 느낄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해 답사 경험을 살려 현장의 생생함을 강의에도 고스란히 녹이려고 노력했다.

역사 전공자도 아닌 그의 역사 콘텐츠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스토리텔링’ 능력 때문이다. ‘듣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재미있다’, ‘진작 들을 걸 후회한다’ 등 호평 일색의 후기를 증명하듯 그의 팟캐스트 <썬킴의 세계사 완전정복>은 네이버 오디오클립 1위, 누적 청취 수 3000만 회 돌파 등 대기록을 연이어 만들고 있다. 이외에도 채널 A <이제 만나러 갑니다>, SBS 러브FM 허지웅쇼 <히스토리 월드>, 이숙영의 러브FM <썬킴은 알고 있다>, EBS FM <썬킴의 조선왕조 실록홈즈>, 팟빵 매불쇼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 MBC 표준FM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역사 속 경제 이야기> 등 다수의 매체에서 역사 관련 패널로 세계사 알리기에 맹활약 중이다. 저서로는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가 있다.

인스타그램: @iamsunkim

페이스북: sun.kim.988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 - 소소하지만 의미 있게, 외롭지 않고 담담하게
무레 요코 지음, 손민수 옮김 / 리스컴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는 영화 〈카모메 식당〉을 감상하지 못했다. 영화는 좋아하지만 〈카모메 식당〉은 이상하게 볼 기회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원작도 못 읽었다. 때문에 작가 무레 요코도 잘 모른다. 독자는 물론 일본 책도 자주 읽는다. 주로 추리소설이나 옛날 근대 작가들의 작품이지만. 현대 작가들 중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무레 요코와 그의 작품들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감독 이름 오기가미 나오코은 지인을 통해 들은 적도 있는데, 무레 요코만은 이름도, 작품도 기억에 없다. 이 책 『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 소개글에서 "나이 들어서도 ‘나’를 잃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지키며 살아가는 저자"라는 문장과 "다양한 취향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담은 에세이"라는 점만 한 번 읽었을 뿐이다.

문외한으로서 한 작가의 작품을 평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또 독자는 전문 평론가도 아니고 이 책을 처음 읽어본 독자로서 저명한 작가를 감히 평한다고 하면 그 자체가 모순이 될 터이다. 오로지 책을 읽은 느낌만 전달하는 역할만 할 것임을 미리 알린다. 처음 읽은 무레 요코는 그가 얼마나 다양하고 사소한 즐거움에 호기심을 갖고 탐닉하는지 풀어내고 있다. 아마 오랜 기간 자신이 즐기며 자주 했던 일이라면 '취향'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저자도 책 속에서 전 생애에 걸쳐 다져진 것임을 알린다. 플라스틱 제품 안 쓰기, 뜨개질, 손바느질, 고양이와 놀기, 녹화한 TV 시청, 요리책 읽기 등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 애정만 갖고 있는 정도를 지나서 직접 실천하려는 것 또한 습관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특히 그가 새로 들인 습관 중 '물건 버리기'는 독자도 따라하고 싶다. 저자는 넘쳐나는 물건들에 둘러싸였던 삶에서 벗어나 드디어 오래된 물품을 버리고 비우는 행위를 통해 비록 추억의 물건은 사라지지만 기억과 애정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새롭게 얻은 이 지혜는, 그가 22년 넘게 함께한 고양이와 작별하고 27년간 지내왔던 익숙한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가장 담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책은 취향의 긴 역사 속에서 작가가 집요하게 수집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확고하게 완성된 삶을 누리며 그것을 위해 불필요한 것을 끊임없이 비우고 있음을 기록한 책이란 점에 공감한다.

무레 요코의 소설을 영화화한 〈카모메 식당〉과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취향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며 지금까지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그도 그럴 것이 웬만한 인기가 아니었으면 선뜻 영화화할 생각이나 했을까? 저자 무레 요코는 이들 책에서 읽는 이로 하여금 소소하고도 농도 짙은 취향에 빠져들게 만들며, ‘나도 취향을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고 한다. 독자들을 세뇌하는 이 ‘취향의 힘’이 제대로 드러난 책이 바로 이 책 『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이다. 그가 2023년 첫 번째로 발간한 신간 『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취향의 시작은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 ‘남의 집 냉장고 엿보기’부터였다. 저 부엌의, 저 문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문을 열고 안에 들어있는 걸 보고 싶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그래서 친구 집에 가면 항상 냉장고 문을 열고 확인했다는 대목에서 저자의 독특한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뜨개질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에서도 저자의 오랜 취향이 드러난다. 책 중간에 어머니가 들려주는 ‘털실 푸는 사람’에 관한 일화가 등장하는데, 엉망으로 엉켜 있는 실을 몇 시간에 걸쳐 공들여 풀어낸 이야기는 좋아하는 것을 위해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상징한다.

이 밖에도 탈 플라스틱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조금은 불편한 삶을 선택하고, 시행착오 끝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요리를 완성하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찾아서 듣고, 관심 가는 TV 프로그램을 녹화해두었다가 시간 내서 감상하고, 고양이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과 음악, 게임 영상까지 찾아보며 유튜브를 즐기는 등,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왕성한 작가의 다양한 취향이 기록돼 있다. 이 다양한 취향의 기록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취향 있는 삶에 관한 작가의 태도와 소중한 삶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멈추지 않는 탐색과 호기심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좋아하기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삶, 그것이 바로 나이 들어서도 ‘나다움’을 유지하는 비결인 셈이다. 책을 읽는 동안 깜박 있었던 사실이 있다. 저자가 작가라는 사실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작가가 27년간 살았던 익숙한 집을 떠나 새로운 거처로 옮기면서 추억이 깃든 물건들과 이별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특히 22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온 고양이와의 이별은 잔잔한 슬픔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따뜻하고 평화로운 위로를 선사한다. 이 대목은 저자의 지혜를 빌려 쓸모없는 물건 버리기를 위해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욕망에 따라 한없이 채우기만 하는 젊음의 욕망이 나이가 들면서 허망한 것이었음을, 또 겉모습에만 치중하며 살아온 독자 스스로의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된다.

저자가 녹화해두었다가 나중에 보게 되는 캐나다 방송 프로그램 ‘행복한 삶을 위한 다운사이징’에서는 추억과 애정은 간직하되 불필요한 물건들은 미련 없이 정리하는 비움의 삶이 그려진다. 작가는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추억이 담긴 물건에 둘러싸여 있고 싶은 것이다’라는 데 크게 공감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유품을 처분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애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저자의 마음에서 '사랑'에 대한 마음의 표현을 평소 일상에서 자주 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비움의 실천을 통해 완성되는 자기만의 담백한 삶에서 저자는 비우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비로소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임을 에둘러 전하고 있다. 저자의 일상에서의 원숙한 삶의 지혜가 돋보이는 이유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자기만의 확고한 취향으로 완성된 컬러풀한 일상, 시간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추억의 힘을 믿으며 비우는 삶이 저자가 드러내놓지 않은 자기만의 삶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것이 저자 무레 요코가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장 의미 있는 메시지라고 독자는 읽어낸다. 책 날개에서 전하는 저자 무레 요코의 나이는 69세로 추정된다. 작가로서의 삶, 일반인으로서의 삶, 또 사회 지도자로서의 삶으로도 튀지는 않지만 내면의 내공을 쌓아 '자기만의 삶' '나만의 삶'을 살아온 원숙한 지혜가 깃든 저자의 단아한 모습이 눈앞에 그림처럼 나타난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심지어 그의 작품마저 이 책이 처음인 독자로서 그의 모습을 선뜻 그려낼 수 있는 것도 그의 일상의 지혜가 녹아 있는 이 책의 힘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 마지막 장인 22장 「TV가 있는 생활로 돌아가다」에서 그가 쓴 귀절이 앞으로 독자의 삶에서도 매우 소중한 메시지가 될 것이기에 공감과 감사를 드리고 싶어서다. "필요 없는 물건들을 처분하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체력이 뒷받침되는 50대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은데, 가족들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자기 마음대로 하지는 못 할 것이다. 스스로에게 필요한 물건의 적정량이 얼마만큼인지 늘 염두에 두고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가진 물건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방송을 보며) 든 생각은 많은 물건으로 인한 고민과 집의 크기와는 상관없다는 점이다. 매일 쓰지 않는 물건으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은 모두 같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상자더미에 묻혀 사는 것, 사용하지 않는 물건 때문에 오천만 엔 가까이나 지불한다는 것.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돌아보게 한다.(p.211)

 


 

자신의 생활에 수고로움을 더한다거나, 조금 귀찮아도 스스로 움직여 본다거나,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주변에서 도움을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옛사람들의 좋은 관습들이 조금씩이나마 되살아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울해지곤 했는데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긴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밝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p.154)

 

저자 : 무레 요코(むれ ようこ,群 ようこ)

1954년 도쿄에서 태어나 니혼대학교 예술학부를 졸업한 후 광고회사 등을 거쳐, 1978년 ‘책의 잡지사(本の雜誌社)’에 입사했다. 이때 지인의 권유로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1984년에 에세이 『오전 0시의 현미빵』을 발표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여성들의 소소한 일상을 경쾌하고 유머 넘치는 문장으로 표현하면서 ‘요코 중독’ 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카모메 식당』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은 삶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어나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출간 당시 고양이와 음식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여성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인기에 힘입어 2013년 동명의 4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져 WOWOW TV를 통해 방영되었다. 그 밖의 작품으로 『무인양녀』, 『일하는 여자』, 『외톨이 여자』, 『미사코, 서른여덟살-』,『작가 소노미의 만만치 않은 생활』, 『개나리 장』, 『일하지 않습니다』, 『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 『구깃구깃 육체백과』,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 『나랑 안 맞네 그럼, 안 할래』, 『그렇게 중년이 된다』, 『지갑의 속삭임』, 『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 등이 있다.

 

역자 : 손민수

상명대학교 일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본어학원 강사 및 삼성전자, 삼성SDI 등 기업체 전문 통번역자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아이디어는 재능이 아니다>가 있다. 일본의 좋은 책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저자 은유 추천
낸시 슬로님 애러니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5년간 글쓰기 워크숍을 운영해온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 쓰기 노하우가 책을 읽는 동안 촘촘히 드러난다. 저자는 삶을 얼마나 정직하게 대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느냐가 관건이라고 자서전 쓰기의 핵심을 찌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저자 은유 추천
낸시 슬로님 애러니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은 자서전 쓰는 법을 이야기한다. 자서전이란 사전적 풀이만으로도 어떤 책을 가리키는 것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자서전(自敍傳, autobiography)은 한마디로 '자신의 생애를 기술한 것'으로 말할 수 있다. 자전(自傳)이라고도 한다. 자기를 말하는 일체의 모든 자료·일기·서간 등을 포함해 광의로 해석하는 수도 있다고 백과사전은 풀이한다. 뛰어난 자서전은 쓴 사람의 정신적 성장과 편력(遍歷)을 엿볼 수 있으며 생활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창작적인 요소가 가해진 것은 자서전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괴테의 『시(詩)와 진실』이 이에 속한다. 또 저자가 자기 자신보다도 그가 살아 온 환경이나 시대에 보다 더 중점을 두었을 때에는 '회상록' 또는 '회고록'이 된다. 자서전의 본질은, 이의 효시가 된 아우구스티누스나 루소의 『고백록』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적나라한 자기 내면의 토로이다. 널리 알려진 자서전의 걸작으로는 B.체르리니, D.흄, J.S.밀, B.프랭클린, 스탕달, 괴테, 하이네, G.상드, 샤토브리앙, 베를리오즈, 아나톨 프랑스, R.롤랑, 르나르, 지드,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고리키, 슈바이처 등의 자서전 또는 자전적 작품·회상록·일기 등을 들 수 있다고 두산백과사전은 기술하고 있다.

저자 낸시 슬로님 애러니는 평생 글을 쓰고 45년간 글쓰기 워크숍을 운영해왔으며, 16년간 아픈 아들을 간병하며 힘든 시간을 통과했다. 저자는 ‘자전적 에세이’ 쓰기의 의의부터 창작의 전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소개한다. 자전적 에세이를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글쓰기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글쓰기의 단서와 풍부한 일화, 구체적 조언과 지침이 망라되어 있다. 「자전적 에세이 쓰기 A to Z」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글을 쓰고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자전적 에세이 쓰기에 접근하는 관점, 구체적인 방법론, 사례, 길잡이를 만들 수 있었고,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자신이 직접 쓴 글을 자전적 에세이의 예화로 제시하며,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글쓰기를 통한 치유, 글쓰기가 주는 해방감을 이야기한다. 책은 자전적 에세이 쓰기 가이드북인 동시에,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전적 에세이이자 기나긴 애도의 글이다. 그동안 소설 및 실용문 글쓰기 책이 상당수 출간된 데 비해 자전적 에세이 글쓰기 책은 별로 없었는데, 이 책은 에세이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지도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자기 삶에 대한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잘 쓰기보다 고유의 목소리와 리듬과 언어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강조하고 그것을 찾도록 안내한다. 자기 삶을 재현하는 에세이는 소설이나 시처럼 잘 짜인 구성이나 세련된 형식보다 삶을 얼마나 정직하게 대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자신의 아들이 생후 9개월부터 당뇨병을 앓기 시작한 후 서른여덟 살에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전 과정을 자신의 돌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토대로 자신의 글쓰기가 치유의 행위였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남편과 함께 16년간 아들 댄을 돌보는 동안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쓰기로 했다. 글쓰기는 삶을 요약하거나 납작하게 압축하지 않는다. 저자는 자전적 에세이 쓰기를 통해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삶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괴로워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최근 의학계에서도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데, 자기 삶의 서사화가 문제 해결과 치유의 길을 열어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전적 에세이 쓰기가 자기 삶의 힐러가 되고자 하는 용기 있는 시도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한동안 글쓰기를 안 했던 독자에게도 용기와 감동을 주었다. 꼭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진정으로 열심히 산다면 삶 자체가 글의 내용이 되고 훌륭한 책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이 책에서 발견한 것이다. 사실 학교 다닐 때 특히 초등학교 시절에는 누구나 일기 쓰라는 말을 선생님에게 듣고 실제 쓰기도 했을 기억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방학 기간 일기를 써서 제출하라고 과제물로 내주기도 했다. 물론 매일 일기를 쓴 사람은 쉬운 과제물이지만 안 쓰고 있다가 방학이 끝나갈 무렵 한꺼번에 벼락치기로 써서 제출하다 들켜서 혼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다른 일이야 꾸며내 써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날씨를 잘못 적었다간 들통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컴퓨터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 책에서 저자가 69개 항목을 정해놓고 글쓰기, 특히 자서전에 알맞는 글쓰기를 설명한다. 글쓰기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이 많은 항목을 염두에 두고 글 쓸 일이 없을 테니 별 문제가 없겠지만, 글쓰기를 해보려는 사람이나 더 잘 쓰기 위해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지나치게 완벽한 글쓰기를 위한 책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 터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자서전을 쓸 경우 이 항목에 대해 평소 관심을 두고 연습을 거듭하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어 신경 쓰지 않아도 해결되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니까.

 


 

69개 항목 중 1항 「시작은···」은 '서문'에 해당한다. 일반적인 책 출간 때 내는 책의 개략적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 책을 왜 냈는지, 어떤 식의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도 이 항목에 해당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은 '서문'을 따로 마련했다. 아들의 질병과 젊은 나이의 사망, 살면서 가장 큰 스트레스가 되는 슬픔은 '가족의 사망'이라는 설문조사도 있었듯이, 한 사람의 생애 중 가족의 슬픔은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참담한 심경의 일렁임이 있을 것이다. 더욱이 아들을 젊은 나이에 잃은 어머니의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저자는 "내 부서진 마음을 달래준 것은 정신과 의사도, 처방약도, 위로를 건네는 친구도, 심지어 (내 남편처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배우자도 아닌 자전적 에세이 쓰기였다"고 술회한다. 저자는 이런 말도 서문에 남김으로써 글쓰기의 치유력이 얼마나 큰 지를 간접적으로 시사하기도 한다. "그런 일들을 전부 글로 쓰지 않았다면, 나는 내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거의 대부분 잊어버렸을 것이다."

저자는 이어 수십 년 동안 글쓰기 워크숍을 운영하면서 수천 개도 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수천 개의 마음이 열리고, 수천 개의 머리가 맑항지고, 수천 개의 부서진 부위들이 회복하는 지켜봤다고 말한다. 이때 글쓰기에 어떤 힘이 있는지를 깨달았던 것 같다. 자신의 관점을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지 진정으로 안다고 표현하는 저자에게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 치료제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진정한 자전적 에세이는 단순히 자신에게서 일어난 일만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가 중요하다. 왜라는 질문을 파고들 때 당신의 이야기는 보편성을 얻는다. 그것이 우리가 자전적 에세이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p.15)

 


 

저자가 69개 항목을 장(章)을 나누지 않고 일렬로 기술했는지도 궁금하다. 얼핏 보기에 생각나는 대로 기술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번역의 미흡으로도 투사도 해본다. 그러나 같은 문장을 다시 한 번 더 읽어볼 때는 느낌이 달랐다. 느낌이 다르니 의미도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장을 나누지 않은 이유는 여기 모든 과정과 체득해야 할 것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란 제법 그럴 듯한 독자만의 해답도 떠오른다. 그렇지, 글쓰기를 단계적으로 배울 일은 아니겠지.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을 생각한다면 글쓰기 교본처럼 첫걸음부터 마지막 걸음까지 마치 마라토너처럼 단계적으로 가는 게 글이 아니라는 점을 몸에 배이게 하기 위해선 장을 나누는 것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스토리텔링 식 기술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란 추측도 끼어들었다. 몇 개의 제목만 여기에 적어보면 「어떻게 시작하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쓰라」(6항), 「당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에 대해 쓰라」(9항) 「독자가 책을 읽을 때 당신은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다」(15항), 「때로는 무언가가 부서질 때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17항), 「우연을 그냥 지나치지 마라」(19항), 「당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라」(29항)), 「고통스러운 부분을 건너뛸 수는 없다」(53항), 「때로는 의식의 전환을 위해 외부의 이야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54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라」(67항) 등이다.

제목을 문장으로 나열하는 것보다 단어나 문구로 정하는 것도 있다. 오히려 문장보다는 임팩트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3항), 「영혼의 과제」(8항), 「통찰」(16항), 「고독」(26항), 「관점」(27항), 「시각화」(41항), 「유머」(60항) 등이다. 「통찰」을 여기에 인용한다. "통찰을 얻었다면 무심히 넘기지 말자. 찰나의 광명, 완벽한 각성을 선사받은 거니까."(p.94) 저자는 통찰은 신성한 지혜의 선물이라고 전제한다. 그 귀중한 기회를 흘려보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의심하지도 말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통찰의 기회를 꼭 붙들지 않은면 금세 휘발하니까 꼭 붙들고 "나 아니면 누가 쓰겠어"라는 심정으로 쓸 것을 권유한다.

 


 

저자는 통찰이란 매우 귀중한 것이어서 만일 곧장 글로 옮기지 않으면 심오한 것이라고 미뤄뒀다간 그런 것조차도 잊어버리는 것이 사람이란 사실을 명심하고 절대 미루지 말 것을 조언한다. 저자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또 왜 다른 사람에게 글을 쓰라고 권유하는가 같은 질문도 자주 받는단다. 저자는 즉각 책에 옮겼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디에서 막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게다가 운이 좋으면 새로운 통찰을 얻어서 치유의 글로 나아갈 수도 있다."(p.95) 저자는 자신의 온라인 글쓰기 강좌에서 가장 최근에 낸 "나는 ~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다"란 주제의 글쓰기 시간을 가졌다고 예로 든다. 이때 자신도 같은 주제의 글을 쓴다고 한다. 저자가 쓴 글을 책에 예시로 적어놨다. 크리스마스 조명에 관한 글이다. 여기에 옮겨 적을 수 없으니 독자 여러분의 독서에 참고하기 바란다.

저자의 글쓰기 자문은 69항 「끝」이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란 의미의 이 글에서 저자는 "마무리되지 않은 끝은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끝, 해결되지 않은 문제일 뿐이다. 모든 이야기가 완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 자전적 에세이의 대주제, 당신이 그 이야기를 쓰게 된 주된 이유는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들은 사기를 당한 기분이 될 것이라는 공포에 가까운 단어를 사용하며 대주제의 메시지를 완결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저자는 다시 한 번 언급한다. "당신이 거쳐온 길을 일일이 복기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다.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했다. 그게 전부다. 그것이 핵심이다."(p.348)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들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기를 거부한다. 이야기 전달자인 우리는 빛을 향해 뻗어나가는 법을 배운 생존자들이다. 우리는 모두 작은 보라색 꽃이다. 자전적 에세이를 쓰면서 당신은 아주 작은 빛 조각을 향해 뻗어나간다.(p.234~235)

 

자전적 에세이를 쓸 때 고통스러운 부분을 건너뛸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또한 당신이 하는 이야기를 경험을 통해서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p.272)

 

저자 : 낸시 슬로님 애러니(Nancy Slonim Aronie)

메리워싱턴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자신이 거주하는 마서스비니어드 섬에서 칠마크 글쓰기 워크숍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칠마크 글쓰기 워크숍을 대표하는 프로그램 ‘마음으로부터 글쓰기’ 워크숍의 강사이기도 하다. 미국공영라디오의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뉴스 프로그램의 고정 논평가로 활동했고, 여러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게재했다. 하버드대학교를 비롯해 여러 기관에서 글쓰기를 가르쳤으며, 하버드대학교에서 가르친 3년간 매해 최우수 강의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컬럼비아대학교 의학대학원의 내러티브 의학 프로그램에서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역자 : 방진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국제학 대학원에서 국제무역 및 국제금융을 공부했다. 현재 펍헙 번역 그룹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당신에게 잘 자라고 말할 때』, 『모임을 예술로 만드는 법』, 『지도에 없는 마을』, 『소설 속 숨겨진 이야기』, 『그림책 쓰기의 모든 것』,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글쓰기 비법』, 『삶의 마지막 순간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들』,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