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삶이 된다 - 지치지 않고 꿈을 실현한 청년의사 폴 파머 이야기
트레이시 키더 지음, 서유라 옮김 / 디케이제이에스(DKJS)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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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슈바이처’라고 불리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점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헌신 의료활동을 펼친 슈바이처 박사에 대해 우리는 모두 잘 알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든 슈바이처가 벌인 봉사 활동은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의 주인공 폴 파머 박사는 젊은 미국인 의사다. 그는 앞의 별칭 이외에도 ‘국제보건의 아버지’, ‘현대판 로빈 후드’, ‘세상을 고치는 의사’, ‘전염병학 전문가이자 인류학자’ 등 수많은 별칭으로 수식되는 위인이기도 하다. 도대체 그가 어떤 활동을 펼쳤기에 위인의 반열에 올릴 정도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이자 국제의료 구호단체 ‘파트너스 인 헬스(PIH)’를 설립한 폴 파머(Paul Farmer) 박사는 안타깝게도 이른 나이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의 의료봉사 활동 쓴 사람은 트레이시 키더(Tracy Kidder)로,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논픽션 서사의 대가로 꼽히고 있다. 파머가 세상을 떠난 후 논픽션의 대가 트레이시 키더는 왜 펜을 잡았을까?

키더는 파머의 젊은 날을 밀착해 그려내며 이 질문에 대한 생생한 대답을 내놓는다. 이 책 『꿈은 삶이 된다』는 아이티의 작은 마을 캉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파머가 펼친 의료활동을 현장감 있게 기록한 현장일지이며, 특히 그가 어떤 가치관과 태도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꿈을 실현해나갔는지 알아보는 여정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책은 키더와 파머의 첫 만남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치 한 편을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의 글이 눈을 사로잡는다.

 

그 사건으로부터 6년이 지난 어느 날, 폴 에드워드 파머 박사는 우리의 첫 만남을 이렇게 추억했다. "하고 많은 일 중에서 우린 하필이면 목이 잘린 시체 때문에 만났죠."

때는 크리스마스를 2주 앞둔 1994년 겨울이었다. 사건의 무대는 아이티의 중부 고원지대에 자리한 소규모 상업도시 미르발레스로, 상업도시라고 해도 도로가 드문드문 포장된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p.11)

 


 

당시 저자 키더는 아이티에 주둔 중이던 미군을 취재하고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쿠데타로 정권을 강탈하고 국민을 잔혹하게 통치하던 아이티 군사정권의 권력을 박탈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복권시키는 임무를 위해 파견된 미군 2만 명을 파견했다. 캐럴 대위의 부대에 소속된 군인은 고작 여덟 명뿐이었지만 그들은 일시적으로나마 약 2,500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시골 지역에서 인구 15만여 명의 평화를 유지하는 중책을 맡고 있었다. 얼핏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다행히도 그 중부 고원지대에서는 정치적 폭력이 사실상 끝나가고 있었다. 실제로 캐럴 대위가 들어온 후 일어난 살인사건은 딱 한 건뿐이었다. 유난히도 끔찍한 사건이긴 했지만.

사건 몇 주 전, 캐럴 대위의 부하들은 아르티보니트 강에서 미르발레스 전 부시장의 머리 없는 시신을 건졌다. 투표로 선출된 그는 조만간 복권될 예정인 민주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는 군사정권 치하의 지방 관리자였던 시골 보안관 네르바 쥐스테가 지목됐다. 그는 주민 대부분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존재였다. 캐럴 대위와 부하들은 쥐스테를 체포해 심문했지만 증거나 목격자를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그를 풀어줘야 했다.

만 29세인 대위는 앨라배마 출신의 독실한 침례교 신자였다. 저자는 그를 좋아했다고 한다. 저자의 눈에 비친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아이티 시골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타국의 '국가 재건'은 미군의 임무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적극적인 협조를 거부했다. 한번은 대위가 임신한 아이티 여성을 이송하기 위해 미 육군의 응급 헬리콥터를 가동시켰다가 윗선의 질책을 받은 일도 있었다. 발코니에서 그가 최근에 느낀 분노와 무력감에 대해 한창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 밖에서 웬 미국인이 그를 찾는다고 누가 전했다.

 


 

방문객은 미국인 한 명과 아이티인 네 명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이티인들은 점점 길어지는 막사의 그림자 속에 서 있었고, 미국인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캐럴 대위에게 자신의 이름이 폴 파머이며 미르발레스에서 북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라고 밝혔다. 저자 키더는 그 당시 상황을 캐럴 대위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파머는 창백하지만 태도는 오만하다 싶을 만큼 위엄이 있었다고 술회한다.

둘의 대화는 이어졌고, 파머는 미국 정부가 아이티 경제를 바로잡는답시고 내놓는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기업의 이익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아이티 국민의 고통을 더는 면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군사정권의 고위관리가 미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미국이 쿠데타의 뒷배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숨김없이 드러냈다고 한다. 그의 의견은 아이티에는 딱 두 가지 부류만 존재한다고 것이다.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 파머는 억압받는 가난한 이들의 편이었다고 저자는 첫 만남의 인상을 밝히고 있다.

이후 우연히 저자 키더는 파머가 마이애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마주쳤다. 그는 일등석에 앉아 있었고, 마이애미와 아이티를 오가는 항공편을 자주 이용하며, 몇 번인가 응급의료 상황에 도움을 준 보답으로 승무원이 좌석을 업그레이드줬다고 말했다.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서로의 인적 사항을 알게 됐고, 그가 스스로 밝힌 그는 만 35세의 의사로,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년 중 4개월은 보스톤의 가난한 동네 교회에 머물며 환자를 보고, 나머지 8개월은 아이티에서 무보수로 일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이티의 환자는 대부분 수력발전소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은 가난한 소작농이라는 사실도 그의 말을 들어 알았다.

 

 

몇 주 후 저자가 보스톤에 가서 저녁 대접을 하기 위해 다시 만났다. 당시 키더는 자신이 쓰고 있던 글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그 덕분에 저자는 아이티의 역사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아이티보다는 '빈민을 위한 의사'를 자처하는 폴 파머라는 사람이 더 궁금해졌다. 그날 저녁, 자신이 누리는 여유 있는 삶에서 큰 행복을 느끼는 듯한 그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고 저자 키더는 말한다. 마음만 먹으면 지저분한 교회의 쪽방과 아이티 중부의 황무지 대신 보스톤의 큰 병원과 교외의 쾌적한 주택단지를 오가며 젊고 성공한 의사로서의 인생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됐다. 하지만 아이티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곳에서 소작농들과 함께 지내는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듯한, 인상을 강렬하게 받았다고 한다.

파머는 저자 트레이시 키더에게 “저는 절망이 뭔지 몰라요. 앞으로도 알게 될 것 같지 않고요”라고 편지에서 말한 적 있다고 한다. 하지만 파머가 아무리 낙천적이라 한들 그 역시 좌절한 적이 없을 리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 책은 완전무결한 위인의 모습을 그리지 않음으로써 사적 인상이나 감성을 모두 배제하는 노련한 작가의 글솜씨를 보여준다. 저자는 생명과 긴밀하게 얽힐 수밖에 없는 직업인 의료인을 소재로 다룰 때는 그들을 신격화하고 위인화하기 쉽다. 읽는 이가 안전하고 적절한 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그를 롤모델로 삼게 하기 위해서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키더는 정반대 글쓰기 전략을 취한다. 때로 갈등하고 흔들리기도 하면서도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 나가는 파머의 젊은 날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한 젊은이가 자신이 정한 가치를 지키고 자기 안의 모순을 몰아내기 위해 애쓰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의 면모를 부각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를 롤모델로 삼기보다는 그의 가치에 공감하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더 나은 시스템과 세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그려보게 한다. 역시 논픽션으로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작가다운 솜씨다.

 


 

책은 파머의 유년시절과 대학시절, 그리고 하버드 의과대학에 재학하는 동시에 캉주를 오가며 의료활동을 펼치던 시기를 되짚는다. 그리고 PIH를 설립하고 에이즈, 다제내성 결핵 등 세계를 휩쓴 질병 퇴치에 앞장서는 모습을 그려낸다. 파머는 유복하기는커녕 괴짜 같은 아버지 덕분에 버스와 보트를 집 삼아 자랐지만, 한 번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고 여러 관심 분야를 탐색하며 인류학자이자 의료인이라는 꿈을 키웠고, 세상 모든 사람을 자신의 환자로 여기며 의술과 인술을 펼쳤다고 저자는 기록한다. PIH를 설립하면서는 전 세계은행 총장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용(Jim Yong Kim)과 유명 소설가인 로알드 달의 딸이기도 한 오필리아 달(Ophelia Dahl)과 의기투합해 혼자만의 꿈을 함께하는 꿈으로 확장해나간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는 일을 하나씩 이루는 놀라운 결과 앞에서도 그는 한두 명의 가난한 환자를 직접 살피고 치료하기 위해 일곱 시간을 들여 산을 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독자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책의 주인공인 폴 파머 박사는 2022년 2월 6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얼마든지 편안하고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그는 하루에 70~80통에 이르는 이메일에 성심껏 답장을 쓰고, 보스턴과 캉주를 쉴 새 없이 오가며 환자를 돌보고, 여러 국가를 넘나들며 회의와 연설을 하고, PIH 기부자들에게 일일이 감사장을 보내는 ‘무모한 열정’으로 가득한 일생을 보냈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의 올바름을 믿었고, 그 일을 끝내 제대로 해낸다면 설령 지금 실패할지언정 헛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파머는 이제 세상에 없지만 저자는 그가 우리에게 남긴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 환자에 대한 구체적인 애정, 좌절에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태도, 무엇도 소홀히 하지 않는 섬세함, 함께하자고 말할 용기와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마음은 여전히 큰 울림을 전한다.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헌신적인 삶을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꿈이 무엇을 위한 것이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는 그의 젊은 날을 보는 동안 가슴 절절히 새겨지도록 저자는 글에 담았다. 어떤 일을 하든 책을 읽으며 ‘내 일의 본질’,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깊고 폭넓게 고민하고 자기 삶의 지도를 그려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을 독자에게 심어준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이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면서도 파머는 자신이 희생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구매할 수 없는 사람이 버젓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의술을 파는 현실에 모순을 느끼기에 그 불편함을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할 따름이라고 말한다. 숭고한 영혼에서 비롯된 말이리라. 이처럼 자신의 가치관을 단단하게 세운 사람은 수많은 역경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저자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파머가 스스로를 ‘절망을 모르는 사람’으로 칭한 것은 아마 그래서일 것이라고 추단하기도 한다. 아무리 많은 실패를 해도 자신의 길에 확신이 있고, 그 실패가 자기 내부의 불편함을 줄여나가는 과정임을 안다면 잠시 좌절할지언정 종국에는 꿈을 이룰 것이기에.

저자는 말한다. 원대한 꿈도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고. 폴 파머의 꿈은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나 더 크고 건실해졌다고. 특히 오필리아 달 그리고 김용은 그의 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동료이었다고. 그들은 쉴 새 없이 토론하며 각자의 나아갈 바, 함께 만들고자 하는 세상에 대해 고민하고 정립했으며 서로를 신뢰하고 응원했다. 이 세 사람의 이야기는 배우 맷 데이먼과 벤 애플릭이 총괄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벤딩 디 아크: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특히 맷 데이먼은 “폴 파머, 김용, 오필리아 달은 나의 영웅이다”라고 말하며 그들의 용기와 실천에 찬사를 보낸 바 있다. 또한 PIH의 열렬한 후원자인 톰 화이트(Tom White)와 파머의 인연도 감동적이다. “이승을 떠날 때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사회봉사에 뜻이 깊은 톰 화이트였지만, 그조차도 파머와 김용이 자신이 죽기도 전에 돈을 다 써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그는 많은 돈을 PIH에 기부했다. 그리고 걱정과 별개로 그는 단 한 번도 파머와 김용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만큼이나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는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인생을 바꾸었으며, 좋은 영향을 주고받았고 마침내 세상의 변화에도 기여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진정 쓰고 싶은 말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다들 비용 대비 효과니 뭐니 떠들어대는데, 살면서 단 한 사람의 목숨만 구해낸대도 꽤 괜찮은 인생이라는 거예요. 비용 찾고 효과 찾는 인간이 대체 누구를 구했습니까? 저는 죽어가던 미켈라를 살려냈고, 억울한 젊은이를 감옥에서 구해낼 거예요. 이거면 제 인생은 이미 성공한 셈이죠.”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갔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정말 끝내주겠죠?”(p. 309)

 

저자 : 트레이시 키더(Tracy Kidder)

‘살아 있는 휴머니즘의 펜촉’으로 불리는 미국 최고의 논픽션 작가. 1945년에 태어났으며, 하버드대학교와 아이오와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컴퓨터 엔지니어들의 장인 정신을 다룬 《새로운 기계의 영혼》으로 퓰리처상을 받았고, 전미 도서상, 로버트 F. 케네디상 등을 수상했다. 《고통은 너를 삼키지 못한다》 《홈타운(Home Town)》 《오랜 친구(Old Friends)》 《아이들 사이에서(Among Schoolchildren)》 《하우스(House)》 《노숙인(Rough Sleepers)》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현재는 매사추세츠주와 메인주를 오가며 지내고 있다.

 

역자 : 서유라

서강대학교 영미어문학과 및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백화점 의류패션팀과 법률사무소 기획팀을 거쳐 현재 전문번역가 및 작가로 활동 중이다.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좋은 권위』 , 『태도의 품격』 , 『인듀어』 , 『인재로 승리하라』 ,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일러스트 에세이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 『나와 작은 아씨들』 을 펴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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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9-02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한 리뷰글이었어요. 고맙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