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니체를 읽는가 (올컬러 에디션) - 세상을 다르게 보는 니체의 인생수업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송동윤 엮음, 강동호 그림 / 스타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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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독자에게 "신은 죽었다"고 말한 독설가로 인상 깊게 남아 있다. 그의 유명한 말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뜻이다. 독자도 그때는 몰랐지만 서양의 선진국들이 모두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르네상스나 산업혁명을 통해 강대국으로 올라섰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니체의 선언은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말이다. 특히 종교와는 대척점에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 역시 모두 기독교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서 니체의 발언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독설에 가까웠다. 그런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니체의 책과 니체에 관한 책을 꽤 여러 권 읽었지만 지금도 라틴어 원어로 된 성경을 대하듯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쏟아져 나온 철학책과 철학자 관련 책들 중 유독 니체가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음은 단순히 유명세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책 『나는 왜 니체를 읽는가』는 편저자 송동윤(이하 저자)이 가려 뽑은 니체의 짧고 유익한 문장에 강동호 작가의 그림을 더해 읽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이 두 배가 되도록 편집했다. 독자로서는 이해를 위해 글과 그림을 함께하는 즐거움이 이 책의 특장점이기도 하다. 저자는 니체를 만난 시점에 대해 책의 〈머리말〉을 통해 말한다. "5.18을 겪은 후, 견딜 수 없는 분노와 살아 있다는 자책감으로 방황하면서 두 곳의 대학까지 자퇴하고 우울증까지 찾아올 무렵, 우연히 니체가 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살기 위해 무작정 서울을 떠나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렇게 독일에서 안정을 찾으며 연극영화TV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박사과정까지 마치게 되었다. 이렇게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된 동기의 중심에는 니체의 책들이 위로와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다."(p.5)

 


 

“신은 죽었다”고 말한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사상가인 니체는 그의 사상 못지 않게 문학에도 천재적인 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신의 죽음은 니체의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오는 말이다. 『짜라투스트라~』는 니체의 사상과 철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서사시다. 모든 고뇌와 죽음을 초극한 '초인', '영원 회귀', '권력을 향한 의지' 등 을 다뤘다. 1880년대 3부까지 출간됐다고 한다. 당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아직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과 근대 휴머니즘의 영광에 신뢰를 보내고 있었던 시기이고, 따라서 신의 죽음이라는 현대의 니힐리즘적 상황을 선구적으로 감지하고 그 극복의 방도를 획기적인 철학적 에세이로서 결실을 본 이 책이 당초에는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무시되었다고 한다.

사회문화연구소가 2002년 펴낸 〈세계의 사상〉 시리즈 중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 따르면 제1부의 최종장에서 짜라투스트라는 그의 제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어느 날엔가 너희들은 나의 벗이 되고, 같은 희망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때 나는 재삼 너희들의 곁에 있어서 너희들과 함께 거룩한 정오를 축하하리라 생각한다. 〈모든 신들은 죽었다. 이제 우리들은 초인으로 살기를 원한다〉 이것이 언젠가 거룩한 정오에 있어 우리들의 최후의 의지이기를!".

당시 외면받고 당시 철학자들과 부조화를 겪으면서도 오늘날 니체가 다시 조명되고, 그가 여전히 최고의 철학자로 대접받는 이유는 "니체가 자신의 사상을 온몸으로 살아 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 송동윤의 말이다. 그는 이성만으로 형이상학을 설파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온 존재로써, 그리고 자신의 삶 자체로써 사상을 완성하고 설파했다는 점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니체는 시대가 민주주의를 외칠 때 반민주주의를 말하고, 모든 사람이 신을 숭배할 때 신을 배척하면서 신은 죽었다고 미치광이를 내세워 외쳤다. 그는 현대사상의 총아이자 이단아로 불리기도 하면서 시대를 조롱한 위대한 독설가이자 예술가적 철학자로 불리는 이유이다."고 말한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은 현실을 현실로서 인식하도록 하던 기존의 형이상학적 근거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니체는 기존의 절대적 가치가 더는 절대 가치를 갖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다. 인간은 이제 기존의 세속적 가치를 때려 부수고 새로운 가치를 정립해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니체의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의미로 독자로서는 이해한다. 니체는 교회의 인간을 배격하는 허위에 격분했고, 신의 죽음은 교회의 죽음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자신의 문제는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고 기도만 해 대는 인간에게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으로 저자는 해석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니체는 진정 용기 있는 인간이었다. 그는 허무주의에 무릎 꿇지 않고 싸웠다. 니체는 현실을 버리지 않고 끌어안았다. 니체는 삶을 사랑했다. 니체는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에 대한 가치도 스스로 결정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절대 가치는 지금부터 미래의 세상에 이르기까지 꼭 필요한 인간 유형인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능력을 가진 자’로서 이전의 한계를 극복해 내는 것을 말한다. 이 기존의 질서에 대항하는 자를 니체는 ‘초인’이라 말했다. 따라서 니체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을 위한 철학을 명확히 세운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란 지성보다도 본능, 합리보다도 의리, 이성보다는 정열을 존중하는 의지의 인간을 의미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 ‘초인’은 유한 속에서 무한까지 긍정하며, 죽음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적극적 인간으로 고통과 수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초인’이란 세속화하지 않는 본연의 인간이며, 운명적인 것을 체념하는 인간이며, 항상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을 극복해 가는 용기의 소지자를 뜻한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또한 ‘초인’의 미덕은 자기를 믿고 자기에 대한 긍지를 가지며 자기를 존경하고 누구에게나 엄격하게 행동한다는 데서 초인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짜라투스트라~』에서 니체는 최고의 가치가 완전히 전도됨으로써 헤어나기 어려운 깊은 공허와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권력에의 의지’를 천명하였다. 니체의 ‘초인’은 ‘권력에의 의지’를 통하여 규정된 현실에 의해서 존재한다. ‘권력에의 의지’를 갖고 ‘영원회귀’를 달관한 실존은 인류의 삶을 초월해 나가는 창조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초인’은 이 현실성을 위하여 존재하는 인간이며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인간 유형의 본질을 『짜라투스트라~』에서 말해 준다.

저자의 이 같은 주장은 니체가 지금 다시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더해가고 있는 것은 현실을 직시한 날카로운 통찰력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 또한 급소를 찌르는 직관력, 강력한 생기, 불굴의 혼, 그리고 높은 곳을 지향하는 의지는 그의 문장 속의 명구들이 사람들의 눈과 귀에 쏙쏙 들어와 마음에 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니체의 거의 모든 저서 중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한 번 쯤 읽어야 할 삶에 대한 내용과 지적대화에 필요한 것까지 골라 정리했다.

 


 

이 책 『나는 왜 니체를 읽는가』는 모두 15장(章)으로 구성됐다. 1장 「삶의 철학」, 2장 「흔들리는 양심」, 3장 「선악의 심판」, 4장 「사색의 감옥」, 5장 「아름다운 착각」, 6장 「존재의 가치」, 7장 「움직이는 권력」, 8장 「청춘의 고뇌」, 9장 「출렁이는 욕망」, 10장 「소유와 사랑」, 11장 「고통 속의 환희」, 12장 「고귀한 본능」, 13장 「학문의 자유」, 14장 「나를 찾아서」, 15장 「예술가의 열정」 등이다. 각 장의 소제목들은 저자가 붙인 것이지만 그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 삶 속에 내재되거나 드러난 것들이고, 그 하나하나는 그대로 철학적 명제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저자는 "니체 철학이 가진 독특한 특징은 거창한 학문을 지향해 정리된 것이 아니라, 정열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과 단편이 많다는 것"이라는 말로 규정한다. 단문, 단편이라고 하지만 그의 발상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예를 들자면 “인간에게는 육체라는 커다란 이성이 있고, 정신이라는 조그만 이성이 있다.”라는 식이다. 니체의 대담한 발상에는 예술적인 매력이 숨어있다는 해석이다. 칸트 같은 철학자라면 그것의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철학을 이용하지만, 니체는 그것을 무심하게 그냥 탁 하고 놔두는 것으로 비유적 표현도 정말 멋지다. 뿐만 아니라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핵심 키워드로 다시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쓰였다. 저자는 그 점에 있어서 니체가 "철학자 니체보다는 예술가 니체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니체의 그 점을 광기의 매력으로 보았다.

이 책은 니체의 저서 중에서 저자가 큰 의미를 갖고 뽑아낸 귀절들에 대해 인용하고, 저자의 주석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기술되고 있다. 구성 역시 저자의 책 구성 능력이 돋보이도록 유형별, 유기적 구성을 보여준다. 독자들의 이해와 독서 편의를 위해서다.

 


 

이 책 마지막 장 「예술가의 열정」에서 니체와 위대한 작곡가 바그너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특히 깊은 인상을 주었다. 니체는 자신의 저서 『음악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1872)의 서문에 자신의 사상이 바그너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반시대적 고찰』의 4부에 해당하는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와 이 작품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유고를 통해 바그너 음악의 위대성을 열정적으로 주장했다고 한다. 무엇이 니체를 바그너에게로 이끌었을까? 이 무렵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극에서 그리스 비극의 정신이었던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조화를 보았다고 『음악으로 철학하기』의 저자 강지은은 밝히고 있다. 아폴론은 질서 정연한 형식의 신, 꿈의 신으로 조형적인 미, 질서, 형식의 예술을 통해 미를 창조하는 힘을 가지며 개별적인 것의 원리가 된다. 조각, 회화 등 조형 예술에 관련한다. 반면 디오니소스는 카오스(chaos)와 황홀경의 신, 술의 신이다. 도취적이고 형식을 파괴하며 통제되지 않는다. 비조형적인 음악 예술의 영역과 관계한다. 니체가 생각하는 예술은 이 두 가지의 조화 속에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 봐도 나는 바그너의 음악 없이는 내 청년 시절을 견디어 내지 못했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독일인이 되도록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아픔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삼나무에서 뽑은 마취제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나는 바그너가 필요했다. 바그너는 모든 독일적인 것에 대한 뛰어난 해독제인 것이다. 해독도 독이다. 나는 독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p.328) - 「예술가의 열정」 〈바그너의 혁명〉 중에서

 


 

저자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0년간 호텔을 전전하며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여름에는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지내며 종교, 도덕 및 당대의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다. 그러던 중 1889년 초부터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

 


 

편저 : 송동윤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독일 보훔대학교에서 연극영화TV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일장신대학교 연극영화학 교수를 지냈다. 〈서울이 보이냐〉 〈바다 위의 피아노〉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으며 〈HID 북파 공작원〉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영웅의 부활』은 지금까지의 작품들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그의 네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소설 『흔들리면서, 그래도 사랑한다』는 우리의 내면에 조용히 존재하고 있는 삶의 원형을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으로, 이 첨단의 시대에 놓치고 있는 진정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사랑, 믿음, 깨달음의 의미를 체화했을 때 비로소 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두 번째 작품 『블랙 아이돌스』는 출구를 잃고 방황하는 아이들을 가두어 버리는 사회 시스템과 주류의 시선에 반항하면서도 주류의 시선에 갇혀 스스로를 잉여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학교 문제를 다루고 있다. 세 번째 작품 『5월 18일생』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몸소 겪었던 독재 타도 투쟁 및 봉사활동의 기억을 바탕으로 40년 세월을 관통하는 미움과 고통과 증오를 용서와 화해와 사랑으로 마무리하는 절절한 저자의 독백이다. 영화 관련 저서로 『송동윤의 영화 이야기』 『영화로 치유하기』가 있으며, 영화 〈리틀 션샤인〉이 2021년 3월에 촬영을 끝내고 개봉을 준비 중이다.

 

그림 : 강동호

 

조선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2022년 “imagine”(김냇과, 광주), 2021년 “Angel mine”(아인미술관, 전남), 2014년 저작걸이展(예술의 전당, 서울) 등 10회 이상의 개인전과 2022년 서울아트쇼(코엑스, 서울), 2022년 뱅크아트페어(인터턴티넨탈호텔, 서울) 등 90회 이상의 단체전, 2018년 광주 비엔날레 2018 “상상된 경계들”(아시아문화전당, 광주)에 참여했다. 밝은 색감과 창의적인 작업으로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혼종의 이미지들을 유쾌하게 그려내며 어린아이와 같이 자유분방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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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발견
박영수 지음 / 사람in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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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서 못 쓰고, 알아도 안 쓰는 우리말 328개를 톺아보다. 언어의 힘은 무척 강하다. 그러나 쓰지 않으면 죽는다. 한글은 오랫동안 말로 쓰지 않아 죽어 없어진 말이 수두룩하다. 지금 우리말 사전의 70% 이상을 한자어가 차지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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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발견
박영수 지음 / 사람in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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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치는 순간 "우리가 얼마나 우리 한글에 대해 모르고 살았나" 하는 자책감이 든다.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한글을 배우고 사용하고, 쓰고, 예술로 승화시키기도 하면서 '훌륭한 글자'라고 자부심까지 가진 한글에 대해서 말이다. 한글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조선 세종대왕이 글로써 자신의 뜻을 전달하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잦다는 판단으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오랜 노력 끝에 만든 문자 아닌가. 그러나 반포 후에도 여전히 나라의 공문서나 사적인 편지 등에 권력·지배 계층은 한자를 사용했다. 평생 한자를 배우고 살아왔기에 어쩌면 한자를 쓰는 게 더 편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문자를 만들었다면 사용할 수 있도록 당시 귀족 계급에서도 사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편다든지 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지 않았다.

사대주의 사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문자를 가졌다는 이유로 중국(당시 명나라)이 우리를 침략해 조선이라는 나라를 없애버릴 것이란 걱정 때문이었을까? 독자는 그런 일을 배운 적도 공부한 적도 없어서 주장을 내세울 능력은 되지 못하지만, 아마도 신분 질서 파괴라든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중국의 문명이 우리보다 앞섰고, 국력도 더 강했다. 그렇다고 앞서 나서서 자신들의 문자 사용을 기피하고 억제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후자,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독자가 생각하는 이유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들이 당시는 왕정과 신분 차가 뚜렷한 계급사회였다. 영국 등 일부 나라만 혁명 등을 통해 왕보다는 통치하는 사람을 따로 두었다고 하지만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고 의회라고 해도 구성원 모두가 귀족 등 기득권 세력이었다. 더욱이 우리가 한글을 만든 때는 15세기 초중반 때다. 이후 현재까지 500년 가까이 우리는 고유 글자를 가졌으되 실제 사용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단어들의 70~80%가 한자어들이다.(우리말사전에 등재된 것만 따져도 그렇다고 한다)

 


 

이 책 『우리말의 발견』은 한글의 역사나 한글의 수난사 등을 다룬 책은 아니다. 이 책을 펼치자마자 아름다운 우리말이 이렇게 많은데 오늘날 거의 사용하지 않아 사문화됐다는 데서 깜짝 놀라 독자의 개인 생각을 잠시 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이 책에서 언급한 단어는 사실 그리 많지는 않다. 328개에 불과하다. 표제어에 '발견'이라고 쓴 데도 이유가 있다. 잊혀져 가는 우리말을 사용한 예를 찾기 위해 시나 소설 작품을 읽고 저자 박영수가 '찾아낸' 것들이다. 이미 쓰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발견'이란 단어를 쓴 것으로 이해된다.

예를 들면 첫 장 첫 페이지에 두 단어 〈갓밝이〉, 〈상고대〉가 나온다. 갓밝이는 흔히 쓰지 않지만 상고대는 초겨울 TV에서 우리의 산 풍경을 보여줄 때 가끔 등장해 독자는 알고 있던 단어다. 그러나 매우 생소한 것은 사실이다. 책에는 작가 송기숙의 『녹두장군』에 이 두 단어가 함께 쓰인 문장을 보여준다. "초겨울 갓밝이의 냉기가 차갑게 볼을 할퀴었다 길가의 낙엽에는 서리가 내려 있고, 나뭇가지에도 상고대가 허옇게 피어 있었다."

저자의 설명이 뒤를 잇는다. '갓밝이'는 새벽 동틀 무렵의 희끄무레한 상태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접두어 '갓'은 '이제 막'이라는 뜻이다. 갓밝이에 이어 본격적으로 동트는 새벽이 된다. '동트다'는 캄캄한 하늘이 동쪽에서부터 트이다, 즉 환하게 밝아짐을 표현한 말이며, 한자어 여명(黎明)과 같다. '옻 칠(漆)' 자에서 따온 '검을 여(黎)' 자는 옻칠하면 반짝이는 윤이 나기에, 어두운 밤중에 빛나는 시간대를 이르는 여명이라는 말을 낳았다. 요컨대 어둠 속에서 밝은 해가 어둠을 살짝 비춘 상태가 '갓밝이', 점차 해가 솟아오르면서 세상을 밝게 비추는 시간이 '동틀 무렵'인 것이다. 겨울에 보이는 '상고대'는 나뭇가지에 쌓여 얼어붙은 얼음층이다.

 


 

저자에 따르면 언어는 힘이 세다. 언어는 단순히 생각을 주고받는 도구로서의 기능을 넘어 한 민족의 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말을 잘 지키고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말은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고, 최근에는 외래어나 신조어 등의 과도한 사용으로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어 안타깝다. 이에 잘 몰랐던 우리말을 다시금 살펴보는 동시에, 우리말에 애정을 가지고 공부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펴냈다. 정감 넘치고 쓸모 있는 우리말 328개를 날씨·음식·품성·생김새 등 14개의 범주로 나눠 세심하게 톺아냈다. 단순히 사전적 정의로 딱딱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작품의 사례를 통해 우리말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일상에서 글을 쓰거나 대화를 할 때 이 책에 실린 우리말을 적재적소에 활용해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될 것으로 독자는 생각한다. 단어의 뜻을 제대로 알고 적확한 곳에 사용하면, 나의 말과 글이 더욱 특별해진다. 매일 조금씩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어휘의 폭과 깊이가 늘어 한층 풍요로운 언어생활이 가능해질 수 있으리라 본다. 이것은 개인에게 적용되는 일이지만 언어란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우리말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의 어느 말이나 다 마찬가지다. 언어는 살아 있는 것, 생물(生物)이라서 쓰지 않으면 죽는다. 지금도 일부는 그렇지만 500년 전에도 정부 고위 관료와 일반 백성이 쓰는 말이 달랐다. 우리말이 다른 게 아니라 지배계급은 우리말을 한자어로 쓴 것이다. 그래서 한자로 쓰면 품위가 있었고, 지식이 높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한자어는 어려워서 배우고 익히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반 백성들은 글자 자체를 배우고 익히고 쓰는 일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그냥 백성들 사이에서 쓰는 단어, 언어로 글자 없이 말로만 소통했다. 그러나 고위층들은 한자어를 문서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의 언어 대신 될 수 있는 한 한자어를 사용했다.

 

 

조선 후기 실학 사상과 지배계급의 제배 부르기에 열중한 탐관오리 때문에 양반제도가 무너져 간다. 특히 돈이 많은 상인 계급이라든지, 농민들 중에 재산을 늘린 사람들은 양반을 돈 주고 샀다. 이른바 매관매직이 성행한 것이다. 당시 일반 농민이나 대부분의 상인·천민 계급은 성과 이름이 우리말식을 사용했다. 지금처럼 성과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은 중인 이상의 계급이다. 즉 가문을 나타내는 성과 가문에서 대를 잇는 아들들에게는 항렬자를 사용함으로써 양반 가문의 자식임을 표시했다. 이때 벼슬을 돈으로 주고 성도 하사받은 사람들도 양반행세를 한다고 한자를 어깨 너머로 자신의 이름을 쓰고 읽을 정도는 익혔다. 그러나 인정 받은 성은 별도로 주어졌다. 어느 가문에 입적될 수 없으니 항렬자도 못 썼을 것이다. 그리고 말투나 사용하는 언어도 양반들이 쓰는 대로 따라갔다. 당연히 조선 말에 이르러서는 양반 수가 많아짐에 따라 양반의 말투와 한자어가 우리가 쓰는 말처럼 됐다. 순우리말로 그대로 쓰면 돈 주고 산 양반 축에도 못 끼었을 테니...

그렇게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말은 거의 잊혀져 갔다. 민초와 소외된 천민, 상공인들의 언어들은 하나둘씩 죽어갔다. 수를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우리가 쓰는 말의 절반 이상은 사라졌을 것이란 게 독자의 시각이다. 문자 이전에 각 지역에서 그들만의 발성법으로 의사를 소통하던 인류의 조상들은 공동체가 커지고 오갈 수 있는 영역을 키워나갔다. 오로지 먹을 것을 구하고 신변 안전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문자는 없었지만 필요해서 문자를 발명했다. 그러다보니 문명의 발전으로 새로 생기는 단어들이 많아졌을 것이다. 꾸준히 더하고 사용함으로써 그 지역 언어는 그렇게 발전했다. 문자가 발전되자 의사 전달의 이유뿐 아니라 더 귀중한 이유도 알게 됐다. 바로 지역을 뛰어넘어 의사 전달이 가능해진 것이다. 또 시간을 초월하는 의외의 효과도 있었다.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가 된다. 인류의 역사는 문자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 책은 328개의 우리말을 관련된 말끼리 서로 묶어 모두 14개의 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비슷한 주제어로 묶은 것이다. 1장 「날씨, 풍경과 관계된 말」, 2장 「음식, 식욕과 관계된 말」, 3장 「심정, 기억을 나타낸 말」, 4장 「성질, 품성과 관련된 말」, 5장 「인체, 외모와 관련된 말」, 6장 「움직임, 행위를 나타낸 말」, 7장 「말, 입으로 하는 걸 나타낸 말」, 8장 「상태를 나타낸 말」, 9장 「생김새, 모양을 나타낸 말」, 10장 「냄새와 소리를 나타낸 말」, 11장 「곳, 자리」, 12장 「시간, 거리를 나타낸 말」, 13장 「물체를 나타낸 말」, 14장 「그밖에 알아두어야 할 우리말」 등이다. 저자는 「여는 글」을 통해 책 발간 취지를 밝히고 있다. "언어는 사고(思考)를 기록하는 기호이며, 경험 및 감정의 전달자다. 국제 교류가 활발해진 오늘날에는 출신 민족보다 어떤 언어를 일상용어로 쓰느냐에 따라 사고방식이 정해질 정도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영국식 혹은 미국식으로 사고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주의자들은 원주민에게 현지 언어를 금지하고 자국 언어를 강요했다. 이처럼 언어의 힘은 무척 강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길거리 가게 간판이나 광고는 외국어가 넘쳐나고, 방송에서는 재미를 위해 엉터리 말을 개코쥐코 떠드는 반면 아름답고 쓸모 많은 우리말은 점차 잊히고 있다. 하여 정감 넘치고 쓸모 있는 우리말을 다시금 살펴보는 동시에, 우리말에 애정을 가지고 공부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기획했다.”(p.4~5)

독자는 이 짧은 「여는 글」을 읽는 동안 '나의 한글'을 되돌아봤다. 자책도 많이 했지만 새로운 다짐도 했다. 저자가 「여는 글」에 남긴 문장을 독자는 아직도 뜻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이 책을 충분히 읽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순우리말이 대부분인 우리글 문장을 국민의 한 사람인 독자가 읽고 뜻을 알지 못하다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조금 과장한다면 영어보다 어렵다.

"머드러기 사 오라고 했는데 잔챙이를 가져와도 애오라지 받아들이고, 아기똥하고 반지빠른 사람의 불행에 잘코사니하다가, 슬금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치룽구니가 될 수도 있으며, 글을 쓸 때 불퉁가지와 행짜의 뜻을 몰라 연신 붓방아 찧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가 추천한 정감 넘친 우리말 몇 개를 먼저 소개한다.

 

달보드레하다 : ‘달보드레한’이라는 말은 입에 당길 정도로 약간 단맛을 이르는 우리말이다. 달큼한 맛에 보드라운 느낌이 있다는 뜻이니, 연하게 달큼함을 일러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음식의 단맛을 나타낼 때 쓰지만, 연인의 사랑스러운 분위기나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별뉘 : 볕뉘의 모습은 다양하다. 어두운 구름을 뚫고 나오는 햇빛도 볕뉘이고, 울창한 숲에서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도 볕뉘다. 볕이 누운 걸 이르는 ‘볕뉘’는 이름 그대로 해가 옆에서 비칠 때 자주 나타난다.

옴니암니 : ‘옴니암니’는 자질구레한 것까지 다 헤아려 따지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옴니’는 어금니, ‘암니’는 앞니가 변한 말이며, 모두 같은 치아인데 굳이 어금니니 앞니니 따질 필요가 있느냐는 뜻에서 생긴 우리말이다.

안다미로 : ‘밥심’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밥을 중요하게 여겼던 우리 문화에서 그릇에 담긴 밥은 대개 수북한 모양이었다. ‘수북하다’는 많이 담겨 높이 두드러진 상태를 가리키는데, 그보다 더 많이 그릇이 넘치도록 담긴 상태를 이르는 말이 있으니 ‘안다미로’다.

이 책에 수록된 328개 단어가 모두 소중하다. 몇 개만 무작위로 소개한 것일 뿐이니 굳이 특별히 암기할 필요가 없다. 그 무게는 328개 각각의 단어가 모두 같다. 갓밝이, 개코쥐코, 곰비임비, 구름발치, 돋을볕, 따끔령, 반지빠르다, 서붓, 암팡지다, 치룽구니… 이는 낯설지만 본래부터 우리가 사용하던 정겨운 우리말이다. 순우리말은 한자어와 외래어를 제외한 우리나라 고유어를 말한다. 토박이말, 토착어로도 불린다.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우리말의 사용빈도가 낮아지면서 점차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해가 쏟아 내는 광선은 공격적인 느낌의 ‘햇살’, 해가 비추는 빛은 ‘햇빛’, 해가 내리쬐는 뜨거운 기운은 ‘햇볕’이라고 한다. ‘햇볕’을 줄여서 ‘볕’이라고도 말하는데 땡볕 및 불볕처럼 낮에 쬐는 볕은 매우 뜨거움을 나타내지만, 아침에 해가 솟아오를 때의 ‘돋을볕’은 따스함을 풍긴다. 간밤의 어둠을 밀어내면서 천천히 솟아오르는 돋을볕에는 느림에서 나오는 여유와 온화함이 있는 까닭이다.(p.21)

 

‘곁말’은 사물을 바로 말하지 않고 다른 말로 빗대어 하는 말이다. 예컨대 숟가락과 젓가락을 모두 사용하는 문화권에서 ‘두매한짝’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다섯 손가락’을 의미한다. ‘매’는 젓가락의 한 쌍 한 쌍을 세는 단위이고, ‘짝’은 그중 하나를 이르는 말이니 젓가락 두 매와 한 짝을 합치면 다섯이 된다. 손으로도 음식을 집어 먹으므로 두매한짝은 다섯 손가락을 표현한 말임을 알 수 있다.(p.187)

 

저자 : 박영수

 

테마역사문화연구원장. 역사를 전공한 학창시절부터 거시사보다 미시사에 관심을 갖고, 일생 연구할 주제 100가지를 선정한 후 지금까지 탐험하고 있다. 또한 단어 어원과 문화관습 유래를 필생의 목표로 삼아 꾸준히 근원을 추적하고 있으며, 아울러 유명인의 인간적인 면모도 살펴보고 있다. 사진과 여행을 좋아하고, 취미로 세계 각국의 앤티크 인형과 도자기를 수집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 『기억해야 할 세계사 50 장면』,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음식의 세계사』, 『경복궁의 동물과 문양 이야기』, 『어린이를 위한 한국 미술사』, 『조선 시대 왕』, 『색채의 상징, 색채의 심리』, 『지도 없이 떠나는 101일간의 수학의 세계』 등이 있다.

전자우편 feelingbox@empas.com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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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 2 상·하 세트 - 전2권 - 오상호 극본
오상호 지음 / 너와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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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정의가 실종된 사회'라고 폄훼되고 있다. 다만 사회 곳곳에 정의는 있지만 아직도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몇몇 곳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불의를 저지르는 몇몇 곳이 마땅히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 곳이어서 문제다. 쉽게 표현하면 시민들 대부분이 정의를 지키고 살아가더라도 불의를 없애고 처벌해야 하는 곳에서 불의가 횡행하고 있어 문제다. 과연 인류 사회는 정의가 실현될 수 없는 것인가? '정의'는 구두선에 그치는 것인가? 불의는 왜 계속되는 것인가. 사회가 발전하는데도 불의는 점점 더 사회를 막무가내로 뛰어다니며 혼란시키고 있는 현대 사회의 모습에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답하듯이 〈모범택시〉가 돌아왔다. 이번에 방영된 〈모범택시〉 시즌 2로서 지난 시즌보다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잡았다. 〈모범택시〉 시리즈는 베일에 가려진 택시회사 무지개운수와 택시기사 김도기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사적 복수 대행극이다. 사적 복수 대행이란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로써 이를 행위한 사람도 법에 의해 처벌받는다. 결국 정의로운 선택은 아니지만 시청자들은 열광한다. 자신이 미처 하지 못하는 행위를 대신 해줌으로써 대리만족일까? 아니면 폭력적인 보복 행위가 사회 지도층이나 불법으로 엄청난 부를 챙긴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인가?

 


 

이번 〈모범택시〉 시즌 2는 무지개운수를 떠나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고은, 최 주임, 박 주임. 도기만이 여전히 장 대표의 옆을 지키고 있다. 각자 애써 그리운 마음을 삭이며 지내고 있는데… 어느 날 장 대표의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린다. 다시 모인 도기와 무지개운수 멤버들. 특수부대 장교 출신 김도기가 착한 무력과 지력으로 악을 직접 상대하고 IT, 기계 전문가들인 무지개운수 직원들이 김도기를 돕는다.

어느 날, “내가 죽으면 우리 아들한테 안 가는 게 맞지요?” 사기를 당한 억울함보다 자식에게 피해가 가는 것이 두려운 이임순의 의뢰부터 도기의 택시로 뛰어든 서연의 사연. 거기에 사람의 믿음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순백교 교주 옥주만의 사연 등. 도기는 옥주만과 가까워지기 위해 급기야 도사로까지 변신한다. 오상호 작가는 “시즌 1은 각자 멤버들의 사연들과 과거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두운 면이 많았지만 시즌 2에서는 그런 것을 완전히 벗어나 시원하게 복수하고 시원하게 벌을 주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며 "멤버들의 활약도 훨씬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고 코미디도 많다”라고 설명했다. 재운행 첫날부터 눈 뗄 틈 없는 재미를 선사, 시즌 1 첫 방송 기록을 뛰어넘으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짜릿한 엔딩에 이르기까지 ‘아는 맛’에 ‘감칠맛’을 더한 이야기가 많은 호응을 끌어낸다. 여기에 피해자 사연의 리얼리티, 응징의 카타르시스, 유사 가족의 형태를 띠는 무지개운수 식구들의 관계성 등이 맛있는 이야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책 『모범택시 2』는 매주 손꼽아 기다리면서 시청하던 〈모범택시 2〉를 한꺼번에 읽을 수 있도록 상·하 2권으로 펴냈다. 모두 16회, 각 권 8회 분량씩 분재했다. 맨 앞부분에 시즌 2에 대한 시놉시스도 덧붙였다. 〈모범택시 2〉만의 속 시원한 응징, 현실과 맞닿은 통쾌함, 속이 뻥 뚫리는 킥을 날리는 느낌, 그 느낌 모두를 몰입해서 볼 수 있는 무삭제 버전 대본집이다. 드라마와 비교하며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으리라 독자는 믿는다.

〈모범택시 2〉는 지난 2월 17일부터 매주 2회씩 SBS 방송을 통해 시작했다. 8주 뒤인 16화를 끝으로 시즌 2는 막을 내렸다. 등장 인물 대부분이 시즌 1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분위기는 훨씬 밝아졌다. 그리고 저자 오상호의 뜻대로 코믹한 부분도 많이 끼워넣어 시청자들에게 훨씬 재밌는 드라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는 시청률이 지난 시즌 1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고 자평한다. 2023년 미니 시리즈 중 최고 시청률인 '최고 25.4%, 전국 21%'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최종회(16화)에 최고 시청률 25.4%를 기록한 것은 드라마 〈법쩐〉에 출연했던 문채원 덕이라고 SBS 드라마 팀은 보고 있다. 문채원은 강렬한 이미지를 선보인 〈법쩐〉에서 군검찰관으로 군복 차림이 인상 깊었는데 이번 〈모범택시 2〉에 깜짝 출연한 것이다. 이는 〈모범택시〉 시즌 3에 대한 사전 포석이라고 관계자들은 덧붙여 〈모범택시 3〉가 곧 제작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지난 시즌 때 인물 대부분이 그대로 출연했지만 이번 시즌 역시 가장 잘 된 부분은 인물(캐릭터)가 살렸다는 뒷말도 있다. 여기에 책에 실린 주요 인물을 다시 소개한다.

 

 

① 김도기(이제훈) :무지개 운수 택시기사.

전 육사, 특수부대(육군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 장교. 현 무지개 운수의 택시기사.

타고난 직관력과 냉철한 판단력, 그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 다수의 상대와 맞붙어도 결코 밀리지 않는 피지컬. 궁지에 몰렸을 때 당황하긴 커녕 유머를 날리는 유연함. 눈앞의 적을 뼛속까지 허물어뜨릴 수 있는 적재적소의 한점을 찾아내는 통찰력까지. 도기의 설계는 바로 이러한 기저에서 나온다. 김도기의 설계에 맞춰 택시회사의 멤버들이 움직인다. 그리고 도기 자신도 설계에 최적화된 인물로 본인을 바꿔버린다. 상대를 완벽하게 무너뜨리기 위해 도기는 주저 없이 모든 장르를 넘나든다. 도기의 설계에 따라 모든 판이 바뀐다. 그는 차갑게 따뜻하고 매혹적이면서 치명적이다. 의뢰가 없을 때의 도기는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믿기 힘들 정도로 다른 모습이 된다.

도기의 마음속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어머니를 죽인 살인마에 대한 복수는 끝을 보았지만, 아픔은 한순간에 치유되지 않았다. 아직도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휘슬소리에 현실은 악몽이 된다. 하지만 도기 옆에는 자기 안의 깊은 터널을 빠져나오게 해준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무지개운수 식구들. 그들이 있기에 도기는 오늘도 택시미터기를 켜고 운행을 시작한다.

 


 

② 장성철(김의성) : ‘무지개 운수’의 대표, 범죄피해자 지원센터 ‘파랑새 재단’ 대표.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 대표이자 파랑새 지원센터 회장. 택시 회사를 운영하는 지역 유지였던 부모님 덕분에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느 날, 부모님이 나이든 사람과 약자만 노리던 연쇄살인범 오철영에 의해 살해 당하는 비극을 겪는다. 장대표의 법에 대한 불신은 거기서부터 비롯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택시 회사를 운영하는 한편, 파랑새 지원센터라는 범죄 피해자 재단을 통해 자신과 같은 상처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돕는데 힘쓴다. 파랑새 지원센터에서 끊임없이 범죄피해자들의 울분과 억울함을 목격하게 되면서 장대표는 이 사회의 법망에 생각보다 많은 구멍이 나 있고, 그 구멍을 활용하는 놈들이 있다는 것을 수도 없이 적나라하게 느낀다. 누군가는 그 구멍을 막아야한다...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그때부터 장대표는 택시 회사 안에 아주 특별한 또 다른 택시 회사를 만들고 특별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은다.

대외적으로는 파랑새 지원센터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도 많이 하는 한편으로 공권력의 사각지대에서 불법을 저지르는 이들을 단죄하는 무지개 택시 회사를 진두지휘한다. 겉보기엔 자상하고 사교적이며 어떤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는 친화력. 그는 깊은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가 누구보다 따뜻하게 그를 보듬고 위로해 줄 줄 아는 인물이다.

 


 

③ 안고은(표예진) : ‘무지개 운수’의 경리과 직원. 자칭 IT전문가. 타칭 해커.

꿈 많은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각별했던 친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진. 고은은 캐나다로 이민 가자는 부모님을 따라가지 않았다. 방 안에 틀어박혀 컴퓨터 해킹 기술들을 익혔다. 어느 날, 찾아온 파랑새 지원 센터 대표이자 부모님의 친구인 장대표의 스카웃 제의를 받아 모범택시 멤버로 합류한다. 언니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유데이터 일당에 대한 복수를 끝낸 후, 고은은 조금 더 성숙해졌다. 경찰 시험에 단번에 합격하여 경찰서 정보과에 취직. 고은은 무지개운수를 잠시 떠난다. 그런데, 오히려 떠나고 보니 의문이 든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그냥 참고 있으면.. 우린 왜 거기에 앉아 있는 거죠?”란 명대사를 남겼다.

 

④ 최주임(장혁진) : 이름 최경구. ‘무지개 운수’ 정비실 엔지니어.

자동차기업 신차개발팀 선임 연구원 출신으로 현재 무지개 운수 정비실을 책임지고 있는 최경구 주임. 몸은 쉬어도 절대 입은 쉴 수 없는 전형적인 외유구강형. 일반택시 회사에서 그의 업무는 일반택시 정비. 모범택시 운행이 시작되면 도기를 백업한다. 일이 없을 땐 모범택시를 업그레이드 시킬 발명품을 개발하며 본인만 ‘무지개 운수 브레인’ 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밝은 성격 탓에 상처 한 번 없이 살아왔을 것 같은 같지만 상처 없는 사람 없다고 최주임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가 새겨져 있다. 무지개운수에 경찰이 들이닥치자 장대표는 최주임을 해고했다. 그 후 다시 신차개발팀으로 돌아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 가끔 서글퍼진다.

나, 갱년기인가?

 


 

⑤ 박주임(배유람) : 이름 박진언. ‘무지개 운수’ 정비실 엔지니어.

유명 항공사 항공기 정비원 출신으로 똥차를 스포츠카로 만들 수 있는 뛰어난 손기술을 지닌 한국의 맥가이버. 여기저기 간섭하고 다니는 최주임의 전담 추노꾼. 박주임 역시 주임이지만 과묵한 성격 탓에 정비, 수리, 세차, 운전.. 등등 온갖 일은 다 하면서도 티가 안 난다. 언제까지나 모범택시 멤버들과 함께라면 비록 모든 공이 전부 최주임에게 돌아가더라도 괜찮다. 최주임이 옆에서 떠들던 말던, 개의치 않고 묵묵히 자기 일에 매진한다. 역시 장대표에 의해 해고된 후 로켓 개발팀에 입사, 6차 발사체성공 후 러시아로 발령난다. 반가운 일이기도 한데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⑥ 온하준(신재하) : 무지개 운수에 새롭게 취직한 신입 일반 택시기사. 싹싹하고 해맑은 성격과 귀여운 외모 덕에 도기를 비롯한 동료들에게도 호감을 산다. 회사 근처 도기 집 아래로 이사 올 만큼 열정적인 하준. 그러나 열정만큼 일은 쉽지 않다. 운행에 나갔다하면 사고를 치던 하준은 어느날, 우연히 지하정비실로 들어가는 비밀 통로를 발견하게 되는데...

 


 

드라마 중 또 다른 재미는 명대사가 나온다는 것이다. 명대사는 새로운 유행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두고 두고 회자되면서 드라마의 인기는 물론 출연자들의 인지도 상승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도기 : 현실이 절망적일수록 보물의 유혹과 욕망은 더 강렬해질 테니까.

고은 그런데 왜 자아 성찰이라고 그랬어요?

도기 : 가장 선한 사람들만 골라서 피해를 준 그 뒤틀린 마음속을 본인도 경험해 봐야죠.

장 대표((E) : 꼭 감옥 같구먼. 본인의 욕심이 만든 감옥.(4화 「두 번째 운행」, 1권 P.284)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그냥 참고 있으면… 우린 왜 거기에 앉아 있는 거죠?"

 

"원칙이니까. 할 수 있다고 해서 원칙 무시하고 선을 넘어 가면 그때부턴 경찰이 아니라 범법자지.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원칙. 우린 직장인이야. 해고 조심. 감봉 조심. 인사 고과 점수 조심."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해선 안 되죠."

 

연출 : 이단, 장영석

극본 : 오상호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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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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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은 프랑스를 제압하기 위해 히틀러가 침공했을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제 3제국의 막강한 군사력으로 유럽을 재편하겠다는 큰 야욕이었다고 하지만. 독자가 근거도 없이 밝혀지지 않은 그런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게 된 것은 프랑스가 약간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독일은 원래 프로이센이라는 이름의 국가명으로 오스트리아와 경쟁이자 동맹국 관계였다. 그러나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와 함께 동맹국으로서 전쟁을 일으켰고, 모두가 알다시피 연합군에 패했다. 연합군은 주변 강국 프랑스와 영국, 멀리 미국과 일본(일본은 참전함으로써 국제적 위치를 끌어올릴 기회)이 뒤늦게 참전했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미국과 일본이 참전함으로써 첫 세계대전으로 기록됐다. 독일은 첫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와 함께 패했다. 당시 독일은 과학 기술 강국으로 유럽의 새로운 제국을 꿈꾸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로마 제국처럼. 그러나 1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막대한 전쟁 경비를 배상해야 할 책임을 지게 됐다. 이 가운데 독일에게 빚 독촉을 가장 심하게 했던 나라가 프랑스라고 한다.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빈)로 그림 공부를 하러 갔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징집을 피해 프랑스로 도망쳤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독일의 젊은이를 지켜주지 않았다. 결국 독일 정부군에게 붙잡혀 강제 징용돼 참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패했다. 전후 독일 사정이야 패전국으로 막대한 경비 부담까지 떠 안았으니 나라 분위기가 어땠을지 말 안 해도 상상이 간다. 열심히 일해도 대부분의 돈이 전쟁 빚으로 나가고, 그렇다고 안 갚을 수도 없고... 이때 히틀러는 정당에 입당해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꾸준히 입지를 다져가며 프랑스에게 배상하는 전쟁 배상금으로 군사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역사에 기록된 사실이 아니니 독자가 상상해본 일이다. 다시 전쟁을 해서라도 기어코 프랑스를 굴복시켜야 한다는 히틀러의 광기는 인종 문제가 아니라 돈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히틀러는 특유의 듣는 이마다 감탄하는 연설로 독일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패전으로 우울한 빛만 감돌던 독일민에게 희망과 새 제국 건설의 꿈을 갖게 했다. 차근차근 입지를 넓혀가던 히틀러는 마침내 나치당의 설립하고 스스로 최고 의장의 자리에 오른다. 이때부터는 전쟁 준비를 해나가는 한편 전쟁의 명분도 쌓아갔다. 근처 이웃 국가들은 이같은 독일의 움직임을 눈치 챘지만 히틀러의 야욕 깊숙한 곳까지 현실화되리라고는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인류 최대의 비극인 2차 세계대전은 폴란드 침공으로부터 시작됐다. 압도적인 군사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폴란드는 총 한 번 제대로 쏘지 못한 채 무너졌고 인접 국가들도 반신반의 하면서 독일의 행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승승장구하자 히틀러의 숨겼던 야욕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동부 전선을 그대로 두고 서쪽으로 공격 방향을 바꾼다. 프랑스를 향한 것이다. 이미 전쟁 시작 전부터 '설마' 하며 지켜보던 프랑스는 단 며칠 만에 마지노선은 물론 수도 파리마저 내주며 무너졌다. 이제 독일에 대항할 만한 나라는 영국과 러시아(당시 소련)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일의 무기는 가공할 만했다. 최고의 물리학자 등 과학자들을 앞세운 무기 개발로 2차대전 중에 선보인 무기들은 연합군의 상상을 초월했다. 전투기 등 항공기, 잠수함(U보트) 등 해군함정, 탱크 등 육군 무기 등 그야말로 산전수전에 뛰어난 무기들을 장착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점령되지 않은 나라는 유럽의 여러 나라 가운데 섬에 위치한 영국과 광활한 영토의 러시아뿐이었다. 영국 등 연합군은 미국의 연합군 참전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중립을 지키겠다던 미국은 히틀러의 말 한마디로 참전하기로 바뀐다. 유럽은 이미 우리 제국에 편입됐다며 미국 역시 제 3제국과 함께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 그러나 싸우지도 않고 미국이 독일 히틀러 밑으로 들어갈 리 없다. 이로써 본격 미군의 개입이 시작됐다. 미국은 특별한 전쟁 준비보다는 대공황 뒤의 나라 경제 재건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역시 강대국의 면모는 잃지 않았던 것 같다. 참전을 결정하고 많은 산업체들이 군수 산업으로 전환되면서 막강한 무기를 생산 지원할 수 있었다. 병력 또한 5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소설 『우리 슬픔의 거울』은 이 같은 시대 배경에서 프랑스에서의 시민들의 질곡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또 작품 속에는 전쟁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삶뿐만 아니라 독일과 히틀러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보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레지스탕스(민간 게릴라 부대)에 참여한다. 전쟁 속에서도 삶은 이어가야 한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고 그들의 대처는 어떠했는지 이 소설 곳곳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전쟁이 끝난 후에 프랑스 국민들은 전쟁이나 독일인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군데 군데 묘사돼 있다. 독자들이 간혹 맞닥뜨리는 이 같은 프랑스 분위기를 알아채는 것은 이 소설 읽기의 또 다른 재미다. 이 책은 600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이다.

이 책은 현존하는 프랑스의 최고의 문호라고도 불리우는 피에르 르메트르가 썼다. 르메트르는 55세의 늦은 나이에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해 공쿠르상까지 거머쥐며 프랑스 문단의 거목이 된 인물이다. 르메트르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그리는 야심 찬 기획을 선보이며 등단했다. 그는 데뷔작으로 전작 『오르부아르』와 그의 명성을 확고히 한 『화재의 색』 등 이미 2편을 발표한 이후 이번 작품이 시리즈 3번째(3부) 작품이다. 이로써 그는 프랑스 리얼리즘의 전통을 계승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우리 슬픔의 거울』은 20세기 전반의 역사를 관통하는 3부작의 대미를 이루는 작품이다. 『오르부아르』가 제1차 세계 대전을, 『화재의 색』이 전간기(戰間期)를 다룬다면, 『우리 슬픔의 거울』은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르메트르는 양차 세계 대전이라는 역사의 큰 그림을 자신의 3부작 안에 담았다. 당초 소설을 처음 발표할 때 구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그는 '준비된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리얼리즘 기법으로 프랑스 사실주의 조류의 명맥을 이어가는 정도를 벗어나 정점에 선 것으로 평가하는 평자들도 있다고 한다. 문예사조나 세계 문학의 흐름이니 하는 전문적인 평가는 일반 독자가 하기에는 어렵다. 전문 평론가나 문학 비평가들에게 맡기고 독자는 소설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든다. 우선 충분히 재밌다. 특히 문장도 탁월하다. 감정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줄거리 전개와 적재적소에서 독자의 폐부를 찌르는 탁월한 대사 등이 잘 버무려져, 가장 비극적이어야 할 전쟁 이야기가 〈웃긴 동시에 어이가 없어서 기가 막히는〉 희극적인 이야기로 바뀌기도 한다. 프랑스 언론들로부터 '기교와 블랙 유머의 결정체'〈르 피가로〉, '악마 같은 플롯을 지닌 책!'〈르 파리지앵〉, '이것이 걸작이다. 이것이 예술이다'〈베르시옹 페미나〉라고 극찬을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절정에 이른 거장의 솜씨로 쓰인 이 작품은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우리 슬픔의 거울』은 현재 전 세계에 3부작 누계 360만 부가 판매되고 29개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여러 개성 강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뒤얽히며 진행된다. 루이즈는 초등학교 교사이자 퇴근 후 집 앞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종업원으로, 어느 날 레스토랑의 단골손님에게 그냥 보기만 할 테니 자기 앞에서 옷을 벗어 달라는 이상한 부탁을 받는다. 가브리엘과 라울은 마지노선에서 근무하는 군인으로, 갑작스러운 독일군의 공격에 전선이 무너지며 탈영병 신세가 되고 만다. 기동 헌병대원 페르낭은 같이 피란을 가자는 아내의 청을 뿌리치고 파리에 남음으로써 엄청난 비밀이 담긴 가방을 얻게 되나, 그로 인해 아내와 연락이 끊기고 만다. 이 인물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인생이 뒤틀려 버리는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소설은 이 평범한 인물들이 전쟁 통을 가로지르며 인생을 바로잡는 과정을 그린다.

 


 

이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사연도 눈길을 끌지만 무엇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피란길 그 자체의 모습이다. 과연 리얼리즘 문학이다는 생각이 금세 들 정도로 사실적 묘사도 마음에 든다. 특히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목표를 위해 피란길에 합류하는데, 그럼으로써 독자들 또한 자연스럽게 전쟁과 피란길의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된다. 독자도 쉽게 동질감을 느꼈다. 어쩌면 독자의 핏속에도 수많은 외세 침략으로 곤궁한 전쟁을 겪었던 조상들로부터 받은 유전자가 내재되어서일까. 저자의 표현이 탁월해서일까? 아무튼 눈앞에 선하게 장면 장면들이 잡히고 상상된다. 매트리스를 차 지붕에 이고 트렁크에 온갖 잡다한 물건을 실은 채 길에 나선 가족들, 아이의 기저귀가 없어 천 쪼가리를 구걸하고 다니는 여인들, 인파에 휩쓸려서 아이를 잃고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을 외치는 부모들……. 이를 통해 독자는 전쟁이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유·무형의 희생이 얼마나 많은지를 실감할 수 있다.

이 소설 『우리 슬픔의 거울』이 전쟁의 비극에 집중함으로써 그 참상을 1차원적으로 보여 주는 소설은 아니다. 저자는 '국가'라는 거대 권력과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모순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낱낱이 보여 주며 희화화함으로써, 오히려 끊임없이 코미디나 시트콤 같은 상황을 연출한다.

일당백이라도 거뜬할 것인 양 굴다가 막상 전쟁이 나자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 지휘관들, 적이 목전에 왔는데도 파리의 최고급 호텔을 본부로 삼아 조직의 안위를 위해 〈히틀러는 매독 환자이고 동성애자이며 성 불능증을 앓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공보부, 1,000명에 달하는 죄수들을 피란민들과 함께 이동시키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세우는 군인들……. 이 외에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수많은 사건들은, 대부분 당시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일을 저자가 각색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책 뒤에서 저자가 스스로 밝힌 것이다.

 

 

이 거대 권력의 황당하고 무책임한 행동은 피란길에서 고통받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럼으로써 평범한 시민의 삶을 통제하고 제약하려 드는 권력과 시스템이 실은 얼마나 실체 없고 허술한지를 드러낸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우리와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여전히 지금 여기, 우리와 맞닿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입을 통해 슬쩍 얘기를 꺼낸다. 우리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의, 거대한 권력과 역사의 포로가 아니겠느냐고 하는 말이다.

 

"결국 자네와 난 언제나 포로 아니었어? 전에는 르 마얭베르그에서 포로였고, 지금은 여기에서 포로 신세지. 그리고 세 번째로 감옥을 바꿔서 독일 놈들 포로가 될 거야. 난 앞의 두 곳이 더 나을 것 같지만 뭐,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잖아."(p.580)

 

아무리 최악의 전쟁 중이라도 살아 있는 한 인간에게 희망은 있다. 없으면 만들어서라고 가지려 한다. 희망이 삶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우리 슬픔의 거울』의 등장인물들도 힘겨운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결국 '사람'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한다. 자신이 베풀었던 선의가 되돌아오거나, 타인의 작은 선의를 통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음으로써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간다. 이로써 이 소설은 우리에게 아주 당연하지만 소중한 진실을 제공한다. 전쟁이라는 재난을 자초하고 거대 권력을 부리며 수많은 이들을 고통에 내모는 것도 사람이지만, 그러한 비극 안에서 다시 희망을 만들어 내고 삶을 다시 살아 낼 용기를 주는 것 또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바로 『오르부아르』와 『화재의 색』에 이어 『우리 슬픔의 거울』까지, 피에르 르메트르가 쓴 3부작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자에게 읽힌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부유한 이들의 탈출은 이미 며칠 전에 끝났고, 지금은 그렇지 못한 이들이 군복 차림의 병사, 농부, 민간인, 장애인 들이 뒤섞인 잡다한 무리를 이루어 힘겹게 걷고 있었다. 한 시청 차량에 탄 어느 유곽의 매춘부들, 그리고 양 세 마리를 몰고 가는 목동 등 도로 위엔 그야말로 온 백성이 모여 있었다. 갈가리 찢기고 버려진 이 나라의 모습 자체인 이 피란민의 물결 속에서 자동차는 천천히 덜컹거렸다. 어디에나 얼굴들, 얼굴들이 있었다. 어떤 거대한 장례 행렬 같다고 루이즈는 생각했다.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패배의 가혹한 거울이 된 거대한 장례 행렬이었다.(p.458~459)

 

저자 : 피에르 르메트르(Pierre Lemaitre)

 

195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195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프랑스문학과 영문학을 가르치다가 55세의 나이로 어느 날 소설을 썼고, 이 첫 소설 『능숙한 솜씨』로 코냑페스티벌 신인상을 수상했다. ‘형사 베르호벤 3부작’의 첫 작품이기도 한 이 작품은 “본격문학 이상의 품격을 갖춘 보기 드문 장르소설” “프루스트, 도스토옙스키, 발자크의 문체를 느낄 수 있는 수작” “추리?스릴러 대가의 탄생”이라는 문단의 호평과 대서특필로 격찬 받았다. 이후로 발표한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 『사악한 관리인 Cadres noirs』(출간 예정)으로 2009 미스터리문학 애호가상, 몽티니 레 코르메유 불어권 추리소설 문학상, 2010 유럽 추리소설 대상 등을 받으면서, 등단 후 연이어 발표한 세 작품이 모두 문학상을 수상하는 이례적인 이력을 쌓았다. 그의 작품에는 “히치콕이 살아 있다면 영화화하고 싶어할 작품으로 완성시키는데 주력했다”고 밝힌 저자의 장인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와 『사악한 관리인』은 현재 영화로 제작중이다.

 

역자 : 임호경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했다. 파리 제8대학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피에르 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카산드라의 거울』, 『신』(공역),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 조르주 심농의 『갈레 씨, 홀로 죽다』, 『누런 개』, 『센 강의 춤집에서』, 『리버티 바』,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 로렌스 베누티의 『번역의 윤리』, 파울로 코엘료의 『승자는 혼자다』, 기욤 뮈소의 『7년 후』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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