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기 연습 - 퇴직 그리고 이후의 삶
김인구 지음 / 리브레토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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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에서 쉼표로>... 이 책은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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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기 연습 - 퇴직 그리고 이후의 삶
김인구 지음 / 리브레토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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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독자도 예전에는 열심히 살다 정년 퇴직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대부분 “인생, 이럴 줄 몰랐다.” "일만 하다 보니 어느덧 죽을 때가 다 됐네." 등 열심히 살았더라도 역시 많은 후회를 남기는 게 인생일까?라는 생각에 이르러서야 생각을 멈추게 된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왜 자책하는 말들이 많을까? 아마 현재의 '나'가 만족할 만한 은퇴 후 생활을 보장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독자는 이해한다. 필요한 경제력이나 노후에 즐길 만한 취미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익도 하다. 그렇다고 국가가 노후를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만족할 만하지는 못하더라도 국가 역시 국민 복지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고 본다. 다만 워낙 없는 나라라서 산업화와 민주화에 50년 이상 매달려 겨우 선진국 입구에 다다른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깝다는 것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다 안다. 50년 동안 부모와 또 그 아래 세대의 부모들까지 평생 돈 벌어 가족 생계 유지하고 자녀 교육에 번 돈의 거의 모두를 쏟아부었다. 그동안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열심히 일했다. 그건 지금은 중년의 나이가 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중심 세대가 보기에도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은퇴를 앞두거나 이제 막 은퇴한 사람들에겐 "나라는 부자가 됐지만 분배나 복지에 대해서는 소홀히 했다"는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느끼는 요즘에야 겨우 복지라는 부분에 눈을 돌리게 된 국가 입장에선 한꺼번에 노후 복지를 모두 해결해 줄 수도 없다. 이렇다보니 60~70세에 접어든 노년층의 복지 혜택은 엄두도 내지를 못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오늘을 사는 국민들은 중 은퇴를 앞둔 사람이나 은퇴한 사람은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예전에는 많은 이들이 의학과 기술 발전으로 늘어난 수명에 따라 인생주기가 길어졌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고, 또 알았다고 해도 주택 마련, 자녀교육 등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에 노후를 위한 별다른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은퇴 후 맞이하게 되는 현실은 녹록지 않고,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스스로 건사하기 어려운 81세 이후의 삶은 오히려 계획하지도 않고, 하기도 두렵다. 어쩔 수 없이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게 되리란 뻔한 미래에 절망할 뿐이다. 이런 현실에 직면한 50~60대가 노후 삶이 불안하고 두렵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고,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경고음에 미래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이럴수록 국가 차원에서 차근차근 준비해가야 한다.

이 책 『멀어지기 연습』은 우리나라 최고 기업이라는 S기업에서 거의 평생을 일하다 정년 퇴직한 저자 김인구가 은퇴 후 10년 동안 겪었던 정신적 혼란과 뒤바뀐 일상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리고 좀더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을 결심하고 계획하는 과정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낸 '홀로서기 연습'이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가장 아쉬웠던 점과 잘 했던 점을 되짚어가며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삶을 위한 준비를 해나갈 것을 당부하는 글이기도 하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책은 대기업에서 30년의 세월을 보낸 저자가 퇴직 후 겪는 삶의 거대한 전환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풀어냈다. 저자는 회사, 직함, 타인의 시선 등 평생 ‘가까워지려’ 애썼던 모든 것과 의식적으로 ‘멀어지는 연습’을 시작한다. 매일 가던 곳이 사라진 공허함, 명함 없는 삶의 막막함 속에서 그는 청소와 요리, 새벽 미사와 같은 소소한 일상으로 새로운 리듬을 만든다. 가족의 곁을 지키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서툰 설거지로 아내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손자와의 놀이 속에서 ‘지금’을 사는 지혜를 배운다.

이 책은 단순히 은퇴 후의 삶을 그리는 것을 넘어, 한 남자가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고, 종가의 후손으로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공공역사학자’이자 ‘칼리디자이너’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따뜻하게 보여준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방향을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멀어짐’이 단절이 아닌 더 깊은 연결의 시작임을 알려주는 다정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우리는 가까워지는 법만 배웠다」란 제목의 〈서문〉에서 저자는 30년 대기업 근무를 마치고 한 사람이 되며 발견한 '멀어짐'의 지혜를 아낌없이 풀어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우리는 평생 무언가에 가까워지는 법만 배워왔다. 성공에 가까워지고, 목표에 가까워지고,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가까워지려 애썼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것, 바로 '나 자신'과는 점점 멀어져 왔는지도 모른다. 매일 출근하던 회사가 사라지고, 명함이 없어지고, '부장님'이라는 호칭이 사라졌을 때 찾아온 공허함. 텅 빈 시간 앞에서 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했다." 

저자에 따르면 퇴직 초기의 달콤했던 여유는 곧 무력감으로 변했고, '제2의 인생도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렸다. 하지만 "이제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아요"라는 아내의 한마디가 전환점이 되었다. 비로소 '멀어지는 연습'을 시작했다. 청소와 요리, 새벽 미사 같은 소소한 일상으로 새로운 리듬을 만들고, 30년간 가족 곁을 지키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서툰 설거지로 아내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일상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진다. 누군가와 똑같이 할 순 없지만 좋은 제안에는 똑같이 하려는 결심만 세우고 실천에 옮긴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저자는 손자와의 놀이에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지혜를 배우고, 아버지의 동창회 이야기에서 인생의 유한함을 실감한다. 저자가 퇴직 후 겪은 정체성의 혼란과 그것을 경험하는 과정은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들이 겪는 일이지만,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6부 41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이름표를 떼다〉, 2부 〈새로운 리듬을 만들다〉, 3부 〈가장 가까운 사람〉, 4부 〈세대를 잇는 마음〉, 5부 〈인생의 유한함을 준비하다〉, 6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일〉 등이다. 1부에서 저자는 노후, 은퇴 후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다가 아침에 막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공허함과 무력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아내와 딸 등의 사랑의 조언 등에 힘입어 드디어 '홀로서기' 결심을 하고 의미를 새로 설정했다.



"이제 나도 안다. 살아있다는 의미를 찾으려면 매일 가는 곳을 새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그곳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꿈을 실현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을. 매일 가던 곳이 없어진 것은 끝이 아닌 내가 선택한 곳으로 가 보려고 한다. '멀어지기 연습'을 생각하게 된 첫걸음이었다."(p.23)

2부 〈새로운 리듬을 만들다〉에서 저자는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 위한 주변 정리와 청소를 실시한다.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해 무작정 시작한 청소와 정리. 그런데 신기하게도 먼지를닦고 물건을 정돈하다 보니 마음속 어지러움도 함께 정리되었다. 새벽 미사의 고요함 속에서, 글쓰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걷는 산책길에서 나는 새로운 리듬을 찾기 시작했다. 회사의 시계가 아닌 내 몸의 시계를 따르는 법을, 성과가 아닌 과정을 즐기는 법을 배워갔다. 때로는 멈춤이 전진보다 더 큰 용기임을 깨달았다."(p.45)

3부 〈가장 가까운 사람〉에서 저자는 가까운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다시 느낀다. 아내와 딸에 대한 소중함에 비로소 눈을 제대로 떴음을 완곡한 표현으로 풀어낸다. 15장 「이제야 앞치마를 둘렀다」는 그의 가족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깊숙이 감춰졌던 애틋함에 대해 자각한다. "그날부터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까짓 것 앞치마 두르는 게 뭐라고 마음이 짠했다. 60년 인생에 처음이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싱크대 앞에 서니 별것 아니었다. 그릇을 씻고 행주로 닦고 정리하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매일 해야 하는 일이어서 만만치 않았다. 아내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말했다. 

"고마워요."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흔들었다.

'아내는 30년 동안 매일 이 일을 했는데 나는 고맙다는 말을한 번도 제대로 한 적이 없구나.' 18장에 이르러 저자는 아내에게 '미리 보내는 편지' 한 장을 남긴다. 

"여보, 오늘처럼 눈 오는 날 혹시 내가 보고 싶거든 그냥 창문을 열고 눈 내리는 풍경을 즐겨요. 그래도 그리움이 밀려오거든 따뜻한 차 한 잔 하면서 당신이 좋아하는 조용한 음악을 들어요. 나 없는 날들에도 당신이 항상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가길 바래요. 물론 지금처럼 함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이하 생략)



은퇴 후 10년. 멀어지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회사에서 멀어지니 가족이 보였고 직함에서 멀어지니 이름이 보였고 현재에서 멀어지니 과거와 미래가 보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관계를 맺는다. 가족, 친구, 동료, 스승과 제자. 그 관계들은 우리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관계는 자신과의 관계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가 모든 관계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차근차근 되짚어보니 나 자신에 대한 물음표가 어느새 쉼표로 바뀌었다. (중략) 내가 새로 시작한 칼리디자인도 그런 쉼표가 되었다. 몽오종가의 오래된 기록을 현대 언어로 번역하며 나는 비로소 숨쉴수 있었다. 서둘지 않아도 되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그 지점에서 나는 편안하게 머물 수 있었다."(p.206~207)


저자 : 김인구


조선 정조 시대의 명신 몽오 김종수의 8대 종손으로 600년 청풍김씨 종가의 역사를 계승한 저자는, 삼성물산, 삼성JP모건, 삼성증권, KB증권에서 쌓은 풍부한 금융 경험을 바탕으로 퇴임 후 예술가로서 제2의 인생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학문적 영역에서는 성균관대 동아시아한문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며, 홍콩대학교 국제학술대회에서 칼리디자인을 학술적으로 발표하는 등 동아시아 문자 문화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종가의 소중한 고서와 유물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생활사박물관에 기탁·기증해 문화유산의 공공적 활용에 기여했으며 국립중앙박물관과 서울대 규장각, 수원화성박물관 등에서 관련 전시와 학술대회를 주도하며 전통문화의 보존과 현대적 계승을 실현해왔다. 특히 저자의 칼리디자인은 단순한 예술 활동을 넘어 종가의 역사와 기록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공공 역사학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국사대부리더십센터 활동을 통해 전통문화가 지닌 현대적 가치와 의미를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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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기상천외 세계지도 지식도감 지도로 읽는다
롬 인터내셔널 지음, 정미영 옮김 / 이다미디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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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20세기 말부터 뉴밀레니엄 초까지 세계의 가장 큰 이슈가 된 지역은 단연 '아랍'이다.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전에 이은 9·11 테러까지 모두 서양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아랍 간의 종교 분쟁의 모습을 띠고 일어났다. 실제 중세 십자군 전쟁처럼 종교 갈등이 전면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적어도 겉모습은 종교 분쟁의 모양새다. 세계 정세에 둔감한 독자도 이 기간 전쟁과 분쟁의 모습은 아프리카보다 오히려 훨씬 심각한 상태로 보여졌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 한반도 내에서는 종교 갈등은 없었던 것으로 배우고 있다. 오히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정치 이념적·사상적 갈등이 워낙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어쩌면 종교가 끼어들 틈이 없었을 것이다. 
전쟁까지 치르고서야 세계의 정치사상적 이념이 두 가지로 크게 나뉘어지는 바람에 남과 북은 각각의 정치·경제·사회적 갈등이 심해져 전쟁까지 치렀다. 이때가 미소간 냉전 시대로 돌입하는 시기다. 남과 북은 각각의 이념 토대를 중심으로 각각의 나라를 세웠다. 
이즈음까지 대부분의 우리 국민은 아랍에 대해  알지 못했고,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미국 등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로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분단에는 결사 반대였지만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노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의 정치·경제 체제에 따라 일찌감치 예고된 분단이었다. 냉전이 끝난 건도 어느날 갑자기였다. 마치 자고 일어나니 하늘에서 선물이 떨어진 느낌이랄까. 공산주의 종주국이자 구심점 역할을 한 소비에트 연방(구 소련)은 무너졌고, 결국 냉전은 끝난 것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인간 사는 세상이 그렇게 단조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체감했다.


냉전이 끝난 후 걸프전이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서 외부로 드러난 전쟁 명분은 모두 기독교, 특히 미국과 서방 사회에 저항하는 이슬람 세력에 대한 무력진압의 성격을 띠고 있다. 걸프전은 대부분의 독자들도 알다시피 이라크의 쿠웨이트 불법 침공에 따라 미국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무력으로 응징한 결과다. 이때 미군을 주축으로 한 이라크 주둔군은 후세인 이라크 정부가 버티자 전면 공격을 감행했다.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점을 공격 명분으로 삼았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라크 정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무기 체계 등 현저한 무력의 차이에 이라크 정부군은 제대로 전쟁 한 번 치르지 못하고 퇴각을 거듭하다 살아남은 자들끼리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반미' 최일선에 섰다.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ISIS로 일컬어지기도 함)를 결성해 무장테러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뉴밀레니엄의 해가 돋자마자 미국 본토에 있는 세계 무역센터 빌딩이 민간 항공기에 의해 자폭 테러를 당해 무려 3,000명에 이르는 사망·실종자를 내는 대참사를 일으켰다. 미국은 즉각 9·11 테러에 대한 보복과 오사마 빈 라덴 체포(사살 포함) 작전에 돌입해 십수 년만에 그의 아지트(파키스탄 소재)에서 사살했다. 그러나 그것을 명분으로 침공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에게 실패를 인정하고, 결국 철수하고 말았다. 

이들 전쟁에 쏟아부은 미국이지만 결국 최종 목표는 달성했고, 더 이상의 불필요한 미군 희생이 생기지 않도록 철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베트남전에 이어 두 번째 실패한 전쟁임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무력을 과시하는 기회였고, 이슬람 입장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저항하겠다는 집념을 불태우고 있다.

수십 년간 중동 지역은 이렇게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어지며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중동 지역이 시발점이 될 것으로 내다보는 학자들도 있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분쟁은 직접 전쟁을 하는 것은 100년도 안 됐지만 사실 그들의 영토 갈등은 수천 년을 이어져 온 것이라는 게 역사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다. 대외적으로는 이스라엘과 아랍의 오랜 분쟁처럼 보였지만 이스라엘이 미국과 유럽 서방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자신들의 땅을 지키겠다는 각오다.



'아랍(Arab)'을 이야기하다 조금 길어졌지만 이 책 『기상천외 세계지도 지식도감』은 학문적 연구라기보다는 일반 상식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한다. 다만 상식적이지만 상식적이지 않게 보이는 것들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다. 궁금하고 호기심은 발동하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인간의 삶 등이 어우러져 복잡해지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들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다. 우선 '아랍(Arab)'은 어떻게 생긴 단어인가? 페르시아만·인도양·홍해로 둘러싸인 '아라비아(Arabia)반도'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통상적으로는 서남아시아·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아랍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을 지칭한다고 책의 저자 '롬 인터내셔널'은 밝힌다.

아랍은 지리적·역사적 상황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 한다고 하니 헷갈리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아랍(Arab)은 '아라비아(Arabia) 반도'를 지칭하거나, 7~12세기 무렵까지 아랍인들이 세운 아랍제국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됐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아라비아반도 인근의 국가들이 주권 수호와 상호협력을 위해 1945년 결성한 지역협력기구인 '아랍연맹'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통상적 의미에서 아랍(Arab)은 서남아시아·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아랍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을 통칭하며, 대부분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지역을 가리킨다. 

대체로 '아랍'과 '이슬람'을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기 쉬운데, 이 두 용어는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저자의 설명이다. 우선 '아랍'은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슬람'은 종교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랍(Arab)'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민족'에 관련된 용어로 7~12세기에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치는 세 대륙의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고 사라센 제국을 건설했던 민족이기도 하다. 아랍국가는 국민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는 이슬람국가이지만, 민족적으로 아랍인이 아니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모든 이슬람국가가 아랍국가는 아니다. 예컨대 중동에 위치한 이란의 경우 과거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했던 아리아인들의 나라로, 아랍인들과는 민족적으로 다르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물론 넘치는 인터넷 정보와 뉴스, 그리고 세계여행을 통해 하루가 멀다고 직접 또는 간접으로 세계 각지를 경험한다. 하지만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흥미로운 수수께끼가 많이 숨어있다. 더러 학창 시절, 지리 시간이나 역사 시간에 수업은 제쳐놓고 세계지도를 이리저리 들여다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독자도 그래본 경험이 있다. 이 책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 이야기, 놀라운 지형과 국경선, 그리고 땅의 신비한 현상과 기후의 비밀은 여전히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이 흘러도 되풀이하는 종교와 민족 분쟁의 지정학적 원인은 무엇일까?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구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세계 역사나 문화, 정치, 경제, 지리, 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비상식적이거나, 신비로 포장되어 있는 기묘한 현상 등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모두 96개 항목을 6장(章)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1장 〈기상천외한 재밌는 세계지도〉, 2장 〈지구의 놀라운 현상과 비밀〉, 3장 〈재미있는 땅, 이상한 기후〉, 4장 〈세계 각국의 깜짝 속사정〉, 5장 〈지역 분쟁의 불씨, 영토와 민족〉, 6장 〈상식을 뒤엎는 지리 이야기〉 등이다.

1장 네 번째 항목은 「제국주의 유럽은 여전히 미국에 살아있다!」란 주제가 흥미있어 보인다.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 열강들이 앞다퉈 식민지를 건설하고 착취와 수탈로 얼마나 잔인하게 식민지를 유린했는지를 살펴보면 인간의 악함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처칠 수상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화 중 영국이 식민지 잃을 것을 걱정하면서 미국의 태평양 전쟁에서 패하면 식민지를 잃게 된다며 동병상련의 지원을 요청했을 때 루스벨트가 우린 식민지를 갖지 않았고, 식민지를 경영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점잖게 받아졌다는 일화도 들은 바 있다. 그런데 미국 내에 제국주의가 살아 있다고? 이 책을 읽다보면 미·영의 수반이 만나서 낯뜨거운 이야기를 나눈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될 만하다는 느낌이다.



책에 따르면 미국은 1776년에 영국 식민지가 독립하여 탄생한 나라이다. 건국 당시에는 아메리카 대륙 동해안에 있던 13개주에 불과했으나, 북아메리카 대륙의 중서부에 있던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의 식민지를 잇달아 손에 넣으며 점차 영토를 넓혀갔다. 현재 미국은 총 50개주이며,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이런 탄생 비화 때문에 미국 지명에는 아직도 곳곳에 유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향과 관련된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미대륙의 북동쪽에 있는 뉴잉글랜드 지방이다. 

뉴잉글랜드는 메인주, 버몬트주, 뉴햄프셔주, 매사추세츠주, 코네티컷주, 로드아일랜드주의 6개 주를 가리킨다. 이 지역은 강과 산맥에 둘러싸여 다른 지역과 교류가 적기 때문에 영국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 여전히 짙게 남아 있다. 이곳에는 도버, 포츠머스,그로틴, 댄버리, 뉴브리튼, 뉴런던 등 영국에서 유래한 지명이 다수 있으며 동부 지역 전체에 영국에서 유래한 지명은 100개가 넘는다. 미국 제1의 도시 뉴욕도 영국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남아메리카 칠레는 세로로 길쭉한 나라다. 영토 면적이 세계 5위 안에 드는 큰 나라들은 국내에서 시차가 난다. 그러나 칠레처럼 길쭉한 나라가 시차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기본 상식이다. 뭐 다 아는 상태이니 부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시차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서의 너비가 비행기로도 네 시간 이상 가야 한다는데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다. 중국을 가본 적이 없어서 더 몰랐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행객에게는 매우 불편할 것 같은데... 중국의 서쪽 끝자락인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서 동쪽 끝자락인 헤이룽장성까지 경도 차이는 60도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를 기준으로 하면 그것은 곧 4시간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시간대는 상하이와 난징을 지나는 동경 120도의 자오선을 기준으로 하는 단 하나뿐이다. 따라서 서해에 인접한 상하이가 일몰을 맞이해 저녁이 되었을 무렵, 티베트고원은 오후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이고, 서쪽 어느 지역은 시간으로 치면 이른 새벽인데 하늘은 이미 정오이며, 태양이 남쪽에 있을 무렵에는 오후 4시나 5시가 된다.



요즘 뜨거운 지역으로 떠오른 곳은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지역이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특별군사작전'을 명분으로 침공을 개시했다. 밀고 밀리는 우여곡절 끝에 이제 휴전이나 종전의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는다. 다만 영토 문제가 아직 말끔하지 않아 서로 폭탄을 주고 받으며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2025년 10월 7일 현재 올해 들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내 약 5,000㎢의 영토를 점령했으며, 전장에서 완전한 전략적 주도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푸틴 대통령이 밝혔다. 혼전 상태라고 봐도 될 듯한 분위기다. 소모전 형국으로 흐르는 전쟁을 종식하고 애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눈물을 이젠 닦아줘야 하지 않을까? 구 소련 체제에서 냉전 이후 반러시아로 돌아선 발트해 3개국에 관한 이야기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이른바 '발트 3국'이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동서 냉전 시대에는 구소련 연방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공화국 중에서도 발트 3국 연대가 가장 먼저 독립을 쟁취했다. 발트 3국은 언어와 문화가 모두 달랐지만, 협력을 이루며 독립운동을 전개해온 만큼 큰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언제나 열강의 표적이 되어온 역사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와 연대감도 느껴진다.

책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17년부터 1918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던 에스토니아, 내란 상태였던 라트비아, 대전 중 독일군에게 점령당했던 리투아니아는 러시아 제국의 붕괴와 독일의 패전을 틈타 1918년 각각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 독립은 20여 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1940년 3국 모두 소련에 다시 병합되고 만 것이다. 소련의 점령 정책은 매우 가혹해 많은 사람이 처형되거나 시베리아 유형에 처했다. 그 후 1941년에 독일과 소련이 전쟁을 벌이면서 발트 3국은 나치 독일군에 의해 점령되었으나, 1944년부터 1945년에 걸쳐 소련군이 독일군을 격퇴하자 다시 소련에 합병되었다. 발트 3국이 열강, 특히 소련의 표적이 되어왔던 것은 발트해와 면하고 있는 지리적 조건 때문이다. 소련의 부동항 확보 차원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소련의 지배가 가혹했던 만큼 개혁과 독립을 원하는 발트 3국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강렬했다.(p.260~262)


저자 : 롬 인터내셔널


1983년에 설립한 출판 기획 제작 그룹으로 지리, 역사, 과학 등 교양서와 비즈니스를 비롯한 생활 실용서 분야에 걸쳐 다양한 책을 펴내고 있다. 기획 단계에서 시작해 원고 집필과 제작까지 책임지는 통합 시스템으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내면서 출판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독자의 니즈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기획력을 바탕으로 연간 80여 종의 책을 만들어낸다.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세계지도 상식도감》, 《세계 분쟁이 한눈에 보이는 책》, 《도쿄의 숨겨진 명소를 걷는 지도》, 《강대국 미국의 비밀을 2시간이면 알 수 있는 책》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역자 : 정미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현재 출판 편집 및 번역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지도로 보는 세계지도의 비밀』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 『할머니의 수프』 『친구』 『내 친구는 멍구』 등 다양한 도서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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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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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용』의 원문 중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선사하는 명문장을 주자의 주석과 더불어 21세기 시선으로 저자가 재해석했다. 『중용』은 바로 이 균형과 조화, 성실과 진실을 통해 인간과 사회, 더 나아가 천지의 근본을 탐구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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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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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대학 다닐 때 독자는 개인적으로 『논어』를 홀로 공부할 때가 있었다. 한문 관련 학과가 아니기에 교과목에는 없었지만 교양서로서 읽어보려 했다. 지금처럼 책이 많이 출간되던 때도 아니어서 자세하게 풀이하고 주석까지 달아 펴낸 책은 대개 대학교재나 연구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주머니가 늘 얄팍했던 독자는 문고판을 사서 갖고 다니면서 한 문장, 한 문장 외우기 시작했다. 대략 문고판에 실린 것은 원문과 해설 정도였다. 약간의 주석은 머리말이 전부였다. 분량은 많지 않아 외워볼까 욕심을 내 시작했으나 한자 실력이나 한문 이해에 문외한으로서 외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스스로 선택했던 것이라 꽤 오랫동안 버스 통학 시간에 주로 외웠다. 결국 6개월 동안 들여다보며 암송하다 중단했다. 한문학을 공부할 것도 아닌데 너무 미련스러운 공부법인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많은 부분이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살아오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논어는 이후 내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설정하는 데 꽤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에 비해 『중용』은 이름만 들었을 정도였다. 사서삼경 중 하나라는 정도만 알 뿐이었다. 『중용』은 보통 『대학』과 한데 묶여 소개되기도 했다. 『중용』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은 해본 적 있지만 막상 중용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생활 전선에 뛰어든 이후에는 "중용을 지켜라"는 얘기는 수없이 했으면서도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견해를 전달하기 위해 입에 담는 정도였다. 누군가로부터 "중용은 좀 어려워 논어, 맹자 다음에 나이 먹고, 천천히 봐도 괜찮을 것"이라는 조언도 기억난다. 이제 와서 『중용』을 읽겠다고 시도한 것은 그때 누군가의 조언대로 '나이 먹음'의 때가 된 것일까?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중용』은 '한문 선생님' 박찬근이 쓴 책이다. 원래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었지만, 공자의 가르침을 책으로 써서 남겼다고 한다. 중국 문화권에서는 널리 읽힌 동아시아 사상의 핵심이라 불리는 고전이다. 지금은 서양에서도 많이 번역돼 읽히고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중용』의 내용은 군자의 길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보다 내면의 성실과 절제에서 비롯되며,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완성된다는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 『중용』은 주자의 해석을 바탕으로 고전의 난해한 문구를 현대적 언어로 풀어내, 독자들이 ‘중용(中庸)’의 가르침을 일상의 삶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군자는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간다(愼其獨)”는 가르침에서부터,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실천적 덕목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에도 유효한 자기 성찰과 인간관계의 지혜가 담겨 있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삶이 균형을 잃고 흔들리기 쉬운 시대, 『중용』은 ‘내 마음을 바르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이 책은 원문, 주자의 주석, 현대적 해설을 병렬로 구성하고, 일생에서의 중용 실천 사례와 더불어 자신을 향해 질문하며 뒤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중용’이라는 이름은 흔히 ‘적당히 타협하는 태도’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본래의 의미는 “치우치지 않고 한쪽에 얽매이지 않는 바름”,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지켜야 하는 도道의 중심”을 뜻한다. 『중용』은 바로 이 균형과 조화, 성실과 진실을 통해 인간과 사회, 더 나아가 천지의 근본을 탐구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고전의 시작은 공자의 말씀에서 비롯된다. “중용이여, 그것은 지극히 훌륭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오래도록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지키기 어려운 것이 바로 중용의 도이다. 『중용』은 군자의 도가 왜 은미하면서도 날로 빛나는지(闇然而日章), 왜 소인의 도는 겉으로 요란하나 끝내 사라지는지(的然而日亡)를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도는 요란한 과시가 아니라,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를수록 분명히 드러나는 성실함에서 비롯된다는 가르침이다.



저자에 따르면 『중용』은 ‘愼其獨신기독’, 즉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는 태도를 강조한다. 남의 시선이 닿지 않는 순간에도 스스로를 지키는 마음가짐이야말로 군자와 소인을 가르는 갈림길이라는 것으로, 이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절실한 교훈이다. 세상은 언제나 외형적 성취와 화려한 성과를 요구하지만, 진정한 힘은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스스로를 다스리는 데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또한 수신(修身)-사친(事親)-지인(知人)-지천(知天)의 점진적 과정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도를 따라 완성에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을 닦지 않으면 부모를 섬길 수 없고, 부모를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으며, 사람을 알지 못하면 하늘의 뜻 또한 알 수 없다는 단계적 연결은, 개인의 수양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우주적 이치가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음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중용』의 핵심은 충(忠)과 서(恕)의 실천이다.

저자 박찬근은 「혼돈 속에서 나를 찾는 이들에게」란 제목의 〈서문〉에서 『중용』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삶과 마음을 꿰뚫는 지극히 현대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를 삼가는 신독(愼獨)의 지혜는 디지털 시대의 익명성 뒤에 숨는 우리의 이중성을 성찰하게 하고, 감정이 발현되기 전의 고요함(中)가 절도에 맞는 조화로움(和)은 감정 조절의 중요성을 일깨운다고 설명한다. 또 큰 덕을 지닌 사람이 하늘의 명을 얻고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르침은 리더의 인격과 윤리적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고 밝힌다. 무엇보다 지극한 성실함(至誠)이라는 핵심가치는 불안정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길을 걷게 하는 강력한 '내면의 나침반'이 되어준다고 강조한다. 

“忠恕違道不遠(충서위도불원)”이라는 구절은, 충과 서에서 벗어나면 도에서 멀어지지 않는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주자는 이를 “충은 내 마음을 다하는 것이고, 서는 나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推己及人)”이라고 풀이했다. 결국 진실하게 마음을 다하고, 자신을 헤아려 남을 헤아리는 태도가 곧 중용의 길이다.



독자는 『중용』을 읽다 문득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절제'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절제(節制)의 사전적 풀이는 '정도에 넘지 아니하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함'이다. 영어로는 'moderation', 'self-control', 'restraint' 등이 사용된다. 절제라는 단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대로 '중용'에 가깝다. 옛 사람들은 절제를 인간이 가진 고유한 덕목의 하나로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구나 청소년기에 절제력을 키우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또 집안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듣고 배운다. 그러나 절제는 그리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종류의 정신 상태가 아니란 것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절제를 결심해서 한 번에 절제력을 제대로 발휘하며 평생을 산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해석한 '중용'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절제'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가 "대부분 실패하지만 또 어느 시기가 되면 다시 결심하고, 그러다 조금 후 또 실패한다. 이렇게 누구나 절제와 자기조절을 개선시켜 나간다"고 하는 부분이 너무나도 닮지 않았는가? '충동을 억제하는 방법'도 배워나가면서 절제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듯이 '중용' 또한 비틀거리면서 나아가다보면 '언젠가는 더 이상 실패하지 않는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절제가 승리하는 순간은 점점 늘어나듯이 중용 또한 점차 실천을 거듭해 몸에 충분히 익숙해지면 구태여 신경 써서 선택하지 않아도 언제나 중용의 편에 서게 된다는 점도 인격의 향상 측면에서 비슷하다. 절제력(중용의 선택)이 높아진 뒤에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닮았다. 언제든지 게으름과 나쁜 습관으로 되돌아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한 이 전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투를 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의 양은 점차 줄어 들어가리라는 희망이 있다는 후학들의 해석도 거의 판박이처럼 닮았다. 인격 향상에는 동서양이 따로 있지 않고, 시대 역시 정해지지 않고 평생 노력하며 몸에 배는 습관 같은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이번 독서를 통해 절실하게 깨닫는다.



오늘날 인간관계의 위기와 사회적 갈등 속에서 더욱 생생한 울림을 주는 가르침이다. 현대사회는 빠른 변화와 경쟁, 과잉의 유혹으로 흔들리기 쉽다. ‘중용’은 그런 시대에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내적 중심을 일깨운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보다 내실을, 단편적인 성과보다 꾸준한 성실을,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성찰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중용』은 작은 성실의 지속이 결국 큰 성취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흙 한 줌이 쌓여 언덕이 되고, 물 한 바가지가 모여 큰 강을 이룸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원문과 함께 상세한 주석과 해설을 곁들여, ‘현대적 해석’과 ‘일상에서의 중용 실천 사례’ 그리고 해당 구절을 현실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 자신을 향해 질문하고 뒤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함으로써 독자들이 난해한 고전을 일상의 언어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철학서로서의 깊이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실천적 지혜를 담아내어, 자기 성찰과 인간관계, 더 나아가 사회적 조화와 평화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수적인 길잡이가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신독과 중화의 힘, 실천의 여정〉, 2장 〈삶의 혼란 속에서 도를 묻다〉, 3장 〈지금, 여기서 실천하는 중용〉, 4장 〈덕의 실천에서 통치까지 지혜를 넓히다〉, 5장 〈중용의 궁극과 인간의 완성〉 등이다. 1장 세 번째 항목 「신독: 은밀한 곳의 진실」이란 제목의 글에서 『중용』의 핵심 사상의 하나인 '신독'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있다. 앞서 말한 바대로 '원전-주자의 해석-저자의 현대적 적용'의 순서로 살핀다. 한자는 생략하고 번역문을 여기에 적어본다.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 君子愼其獨也("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감추어진 것이요, 가장 분명히 나타나는 것은 미세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 

책에 따르면 주자는 먼저 '은'을 어두운 곳으로, '미'를 세밀한 일로 정의한다. 그리고 '독'을 남이 알지 못하고 자신만이 홀로 아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외부의 시선이나 감시가 없는, 오직 자신만이 아는 내면의 세계 또는 은밀한 상황을 의미한다. 이어서 주자는 "아무리 은밀하고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사소하고 미세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 흔적이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 기미는 이미 움직인 것"이라고 했다. 또한,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해도 자신은 홀로 알고 있으니 천하의 어떤 일도 이보다 더 뚜렷하고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신독'이 단순히 은밀한 곳에서 조심하는 것을 넘어,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아주 작은 부정적인 생각이나 욕망의 싹을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도덕적 타락을 예방하고 도를 온전히 지키려는 적극적인 자기 수양의 태도임을 보여준다고 풀이한다. 여기에 저자는 현대적 해석과 적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 문장들은 현대인에게 '자기 양심'의 중요성과 함께 문제의 초기신호 감지 능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오늘날의 언어로 해석하자면 작은 습관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보이지 않는 순간의 선택이 결국 큰 차이를 만든다.'라는 메시지와도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는 것. 또 앞의 한자 구절은 "아무리 작은 생각이나 행동이라도 결국은 큰 영향을 미치며, 그 진실은 외부 시선이 없는 '은미하고 미세한 곳'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는 통찰을 전한다. 이는 마치 빙산의 일각처럼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 물밑의 내면이 훨씬 크고 중요하며, 모든 결과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특히 '독(獨)'이라는 개념은 현대인의 '개인적인 공간과 내면세계'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와 있을 때의 모습과 낯선 사람들 앞에서의 모습,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모습이 다르다면, 그것은 진정한 ‘도’를 따르지 않는 모습일 수 있다. ‘도’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일관되게 지켜져야 할 ‘삶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특히, “군자는 보지 않는 곳에서도 삼가고, 듣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한다”는 말은 현대인의 ‘디지털 자아’와 ‘오프라인 자아’ 사이의 간극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온라인공간에서는 익명성 뒤에 숨어 무책임한 발언을 하거나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p.21)


저자 : 박찬근(朴贊謹, 단산(檀山))


1962년생으로 공주사범대학 중국어교육과를 졸업, 한문교육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병주(屛洲) 이종락(李鍾洛) 선생님께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사사받았으며, 1989년부터 중·고등학교 한문 교사로 재직 중이다. 1991년 경기도 파주에서 단산학당(檀山學堂)을 열어 기초한문부터 사서삼경을 완강했고, ‘단산학당’이라는 사이트에 게재하고 있으며, 2019년 유튜브 채널 ‘한문아카데미’를 통해 사서삼경 및 기초 한문 강의 등재 중이다. 현재 현화고등학교에서 고전아카데미를 개설하여 고전원전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역사천자문』, 『성어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가 있고, 어휘력을 늘릴 수 있는 『어늘짱(어휘를 늘리는 짱)』이 있다. 『한문해석법』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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