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역사 - 소리로 말하고 함께 어울리다
로버트 필립 지음, 이석호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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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독자는 예술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책 읽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을 배우면서 누구나 예술에 접근한다. 그러나 독자는 독서와 그림에는 약간의 재주를 보였기에 꽤 관심이 있었지만, 음악은 별로 잘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학문과 예술이란 개념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개인적으로 학원 등을 다니면서 따로 배운 사람도 없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모두 '공부'라고 생각하고 익혔을 뿐 다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예술이란 말의 이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이 미술 선생님이어서 그 선생님과 꽤 친했고, 독자가 그린 그림을 칭찬해 주시는 덕에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이 혼자 학교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 옆에서 그림 그리시는 모습을 보고 그림을 조금 더 익혔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음악·미술·문학 등 분야별로 나뉘어 각 담당 선생님에게 각각 따로 배우면서 '예술'의 개념을 비교적 정확하게 인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음악만은 집안 분위기 때문(독자의 부모님은 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지 노래 부르시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것 같다)인지 노래 부르는 것은 늘 친구들에 비해 뒤떨어졌다. 교실에서 합창을 할 때도 입만 달싹거릴 뿐 도무지 자신이 없었던 씁쓸한 기억도 있다. 독자와 음악과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어울릴 때 자리는 지키지만 스스로 나서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잘 다루고 싶은 욕심도 없었다. 고등학교에 가서 음악 시간(1학년 때 주 1시간)에 5곡을 집중적으로 가르쳐 주셔서 합창하면서 부르다 보니 조금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2~3학년 때 대학입시를 위해 음악·미술 시간이 빠지는 바람에 다시 멀어지게 됐다. 이처럼 고1때 클래식이라는 서양 음악을 몇 곡 배워 부를 줄 알게 된 것은 대학과 사회에서 매우 유용했다. 서양 음악 몇 곡을 알고 있는 것은 사회 생활에서는 또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젊은 시절엔 유행가를 누구나 듣고 또 부르기도 한다. 유난히 관심이 많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기타를 다룰 줄 알았다. 그러나 친구들과 부르는 노래는 모두 유행가이지 '성악'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즉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술 전공이 아닌 사람이 친구들과 음악을 접하는 것은 대개 대중 음악이다. 고1때 배웠던 5곡의 서양 음악을 안 것은 개인적인 품격을 높여주는 좋은 판단 요소로 작용된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사회 생활을 하면서 세계적 화가나 음악가에 대한 책을 가끔 읽었지만 체계적으로 읽지는 않았다. 몇 권 읽었다고 예술의 역사까지 알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서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었다. 이때 온라인 서점가에 음악, 미술, 문학 책과 정신의학, 심리학 책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로 화가의 생애나 작품의 해설 등이 많았다. 또 작곡가도 마찬가지다. 가끔 '서양 미술사'나 '서양 음악사'에 대한 책이 있었지만 독자로서는 거기까지 수준을 높일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예술 관련 구매한 책이 권수가 한 권, 두 권 늘어가면서 클래식 해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이때는 클래식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읽고 듣다 보니 위대한 음악가들을 다룬 책은 무척 재미가 있었다. 그들의 생애와 작품은 세계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물론 미술이나 문학도 마찬가지다. 

이 책 『음악의 역사』는 세계의 음악사를 의미한다. 클래식에 관심이 없었다면 읽지 않았을 책이다. 이 책은 음악의 기원부터 현대 음악까지 다룬다. 특히 우리가 말하는 클래식은 물론, 재즈와 록, 힙합, 케이팝 등 대중 음악까지도 모두 망라한다. 음악 이야기를 모두 40장(章)에 걸쳐 다루고 있다. 저자 로버트 필립은 1장 「음악의 '무엇'과 '왜'」에서 '음악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우리 인간의 삶에서 '음악'은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해 서술한다. 

"우리는 어머니 자궁 안에서부터 이미 음악의 여러 요소를 처음 접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도 태내 15주 무렵부터 듣기 시작한다. 어머니 배 속에 든 아기의 삶을 지배하는 소리는 어머니의 심장이 튀는 소리다. 어머니가 숨 쉬는 소리와 더불어 어머니의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가 언제나 거기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언제나 진행 중인, 그리고 우리 어머니의 활동량에 따라 빨라졌다가 느려지는 두 가지 리듬을 인식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사람들 대부분이 어떠한 종류는 리듬감을 갖고 태어나는 것도 놀랍게 여길 일은 아니다."(p.13~14) 

이어 저자는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움직이는 음악은 어떤 힘을 갖고 있을까?를 묻는다. 이렇게 시작한 '음악의 역사'는 세계 각지의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악기와 음악 전통의 특징, 그리고 인류 역사에서 음악의 변화 등으로 확대해 나아간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음악이라는 예술 형태를 둘러싼 궁금증은 무척 다양하고 그 범위가 방대하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음악의 역사를,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간추려 정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전제한 뒤 지역과 인물, 형태, 악기, 장르 등을 넘나들면서 세계 음악의 역사를 간결하고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이 책은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전통음악부터 중세 성가, 오페라, 뮤지컬, 클래식, 그리고 힙합, 케이팝 같은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변화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또 ① 여러 역사적 사건과 시대 상황이 음악의 발전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② 유명 작곡가들의 삶과 작품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③ 현대의 음악 장르와 그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 등을 분석하고 가늠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에 따르면 전 세계의 청년 인구 중 10억 명 이상이 헤드폰과 콘서트장에서 접하는 시끄러운 팝 음악 때문에 심대한 청력 상실을 겪을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 오늘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늘 자신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직간접적으로 음악을 가까이에 두고 있다. 각종 방송매체를 비롯해 매장과 커피숍, 길거리 등 어디를 가도 음악 소리가 들려오게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현대인들은 너무 고요하면 오히려 불안해하기도 한다. 부드러운 피아노 연주곡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리듬이 빠른 노래를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몸이 들썩인다. 그것이 '음악의 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에 대해 역자 이석호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기술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중류의 음악사 입문서를 읽고 접해보았지만, 로버트 필립이 쓴 이 책이 유독 빛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비유럽권 음악에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는 미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특별히 반가울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시장에는제목에 '음악사' 운운해놓고 정작 책장을 펴보면 내용은 '서양 음악의 역사' 혹은 '유럽 음악의 역사'인 책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역적으로 아프리카 대륙, 아랍 문명권, 인도, 동아시아 음악뿐만 아니라, 장르 면에서도 클래식과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록과 재즈, 케이팝까지 흡수합니다."(p.399)


이와 관련 저자가 주목한 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 세기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연속성과 문화 간 교류이다. 아랍-이슬람 세계의 마캄, 인도 음악의 라가와 탈라, 중국의 편종과 금(琴), 인도네시아의 가믈란, 아프리카의 폴리포니 등 다양한 문화권의 음악 전통이 다른 지역으로 어떻게 전파되거나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살펴본다. 아울러 이 책은 아메리카와 유럽 음악의 전통과 변화 양상을 살피는데, 특히 지중해 주변 문화권과 종교적 영향, 그리고 규칙에 따라 기호로 악곡을 기록하는 기보법이 발전하면서 유럽 음악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어갔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본다.

책에 따르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 열강이 전 세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유럽의 찬송가와 아프리카의 노래 및 춤이 뒤섞여 새로운 문화적 혼종 장르로 발현될 기회도 생겨났다. 이는 훗날 형식에 얽매인 유럽 음악의 주도면밀함을 버리고 대중음악에 좀 더 가까워지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이탈리아에서 악기 반주에 맞춰 시를 즉흥적으로 노래로 바꿔 부르는 오페라(극음악)가 성장하여 독일과 영국으로 퍼져나가며, 여러 악기가 개량되고 전문 연주자가 등장하면서 오케스트라라고 부름직한 최초의 앙상블이 구성된다.

17세기부터 18세기 초반까지는 음악가와 관객의 관계, 그리고 음악에 자금을 대는 방식이 크게 변화한 시기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본주의와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후 교회의 권력이 약화되었고, 음악가들은 귀족 궁정을 비롯해 교회 담장 바깥의 후원자를 물색하게 되었다는 것. 또한 상인 계급과 전문 직업인 계층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극장과 연주회장이 늘어났다. 이러한 사회 변화의 바람을 타고 오페라계에는 스타 성악가가 등장했고 카스트라토라는 남성 소프라노까지 양성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이는 변성기에 접어든 노래 잘하는 소년을 거세해 고음역 목소리를 간직한 채로 성인이 되게 하는 잔인한 과정이었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새로운 악기의 등장과 발전, 그리고 기악 레퍼토리의 증가는 연주회 및 가정 음악의 성장과 함께 18세기 후반을 거쳐 19세기까지 이어졌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공공 행사용 관현악곡의 수요가 꾸준했고, 사사로운 목적을 위한 실내악이 필요한 경우도 많았다.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 그리고 나중에는 피아노를 위한 독주 건반 레퍼토리도 늘어났다.



저자에 따르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과학기술이 나날이 발전하여 음악 산업이 본격화되었다. 상설 오페라 극장과 음악학교가 생겨나고 음악 출판업의 규모도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20세기 들어서는 세계사의 격변, 즉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음악의 역사를 새로운 방향을 돌려놓았다. 많은 모순과 적대적 견해가 가득한 가운데 해방된 흑인 노예들(아프리카계 미국인)에 의해 대중음악 장르가 배태되고 분화되었다. 1900년경 미국과 유럽 전역을 휩쓴 래그타임부터 끈질긴 저항의 느낌을 전달하는 블루스, 약동적이고 즉흥적 연주를 중시하는 재즈까지. 흑인 음악 전통으로 대표되는 20세기의 음악은 저항의 이면에 놓인 분노, 애도, 어리석은 인간의 폭력성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소망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기능했다.

지난 50년간 대중음악의 성장세는 거침이 없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나 집 안팎에서 언제든 원하는 음악을 즐길 수 있고 인터넷의 스트리밍 채널에 자신이 만든 음악을 업로드할 수 있는 시대다. 기업 가치가 수십억 파운드에 달하는 음악 회사들이 생겨났고, 레코딩 아티스트로 성공하면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쥘 수 있는 구조도 확립되었다. 음악 양식뿐만 아니라 뮤지션도 가지각색인데다 팝 음악을 즐기는 대중의 수는 어마어마하다. 오늘날의 음악계를 ‘용광로’라고 표현하는 것도 당연하다. 전 세계의 문화가 서양 클래식, 재즈, 팝 음악과 온갖 다양한 방식으로 어우러지고 교류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이 건축되고 있으며, 중국부터 베네수엘라까지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이 서양 클래식 음악을 배우고 있다. 음악 페스티벌은 전 세계 모든 대륙 출신의 뮤지션들을 초빙하는 것이 기본값이며, 여러 문화권 출신의 뮤지션들이 서양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도 일상화되었다.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음악을 만들어왔고,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가 처한 상황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낼 방법을 탐구해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건강과 안녕의 본질적인 요소인 음악은 인간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근본적인 형식이길 멈춘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 저자는 이에 따라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음악은 늘 우리와 함께 진화해나갈 것이라고 역설한다.


28장 「가정에서, 해외에서 연주하는 여인들」에서 저자는 음악 활동에서 여성들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꺼내든다. 독자가 서양 음악에서 여성들은 왜 위대한 음악가와 미술가들은 이름이 별로 없을까?라고 의문을 가진 부분에 대한 답이 나온다. 이 장에서 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집단에서는 남성이 전통적인 노래와 연주를 맡고 여성은 애가(哀歌)를 불렀다고 구분한다. 15세기에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여성들은 신분이 높은 빈객을 접대하기 위해 노래를 하고 오르간을 연주했다고 한다. 당시 부유한 상인들도 딸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쳤는데, 단순히 여흥과 교육 차원뿐만 아니라 남편감을 구하는 데 음악이 도움되었기 때문이란다. 유럽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음악 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기고 이를 표적 삼아 음악의 잠재적 위험성을 논하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저자 : 로버트 필립(Robert Philip)


음악가이자 작가. BBC 예술 프로듀서로서, 그리고 선임 교수로서 다년간 오픈 대학교와 함께 일해왔다. BBC의 제3라디오와 월드 서비스의 여러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일하면서 진행까지 맡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코렐리부터 쇼스타코비치까지 작곡가 68명의 400곡을 흥미롭게 분석한 [클래식 음악 애호가의 관현악곡 안내서(The Classical Music Lover’s Companion to Orchestral Music)], 20세기 초의 음악 공연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탐구한 [초기 녹음과 음악 양식(Early Recordings and Musical Style)], 오케스트라 음악에 대한 서사시적 연구서인 [녹음 시대의 음악 연주(Performing Music in the Age of Recording)] 등이 있다.


역자 : 이석호


보성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 대학을 졸업한 뒤 그라모폰 코리아의 편집 기자를 거쳐 EMI 뮤직의 클래식 부서에서 일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는 것이 낙이다. 그 낙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또한 즐거워 그럴 궁리를 하고 지낸다. 옮긴 책으로 『다시 피아노』,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말러와 1910년의 세계』, 『쇼, 음악을 말하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비평집 『경계의 음악』,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지휘의 발견』, 『인간으로서의 베토벤』, 『슈베르트 평전』, 『스타인웨이 만들기』, 『라흐마니노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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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밭의 파수꾼
도직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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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소설 작품 『마늘밭의 파수꾼』은 마늘밭에 거액의 돈(4억원 정도)의 주인을 둘러싼 사건을 다루고 있다. 마늘밭에서 수상한 돈뭉치가 발견됐다면 분명 불법 취득한 돈을 숨겨놓은 것일 가능성이 많다. 아마 궁금해 할 독자들도 있겠지만 '마늘밭의 돈뭉치'란 검색어를 입력하면 포털사이트에 관련 기사가 엄청나게 많이 뜰 정도로 화제가 된 사건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적 있다. 2011년 4월 10일 전북 김제시의 한 마을의 마늘밭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엄청난 현금(5만원권) 110억 원 가량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다. 당시 신문 방송 등 미디어를 통해 떠들썩했던 사건이라 한 번 접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현금 규모가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액수였기에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 한층 더 호기심을 끌었다. 국민들의 관심도 처음에는 정치적 불법 헌금이나 재벌의 비자금, 아니면 범죄 수익금 등 당시 여러가지 이유로 더 큰 관심을 가졌다. 

경찰의 추적 결과 이 사건의 마늘밭은 꽤 넓은 면적이어서 당시 가격인 1억원 정도에 새 주인 부부가 현금으로 매입해 마늘밭으로 일구었다고 알려졌다. 부부는 10개월 간 하루 종일 마늘밭을 일구면서 마을 사람들과도 접촉을 하지 않고 하루종일 열심히 일만 했다고 한다. 경찰 조사 결과 새 주인의 두 처남과 일당들이 2008년 1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불법 도박사이트를 통해 벌어들인 범죄 수익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들은 2008년 1월부터 2009년 2월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서버를 개설하고 중국 칭다오에 충·환전 사무실을 차린 뒤 홍콩에 서버를 두고 형이 한국에서 기획, 동생이 중국에서 콜센터를 운영하여 자금을 모았다. 확인된 규모만 매출액 1540억 원, 부당이득금은 17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사건 발생 후 대법원은 당시 밭 주인에 대해 징역 1년, 부인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하고 4100만 원을 추징했다. 불법 도박 수익금 110억 원은 전액 국고로 환수되었다. 검거된 작은 처남은 도박장 개설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이미 수감 중이었는데 출소를 단 3개월 앞두고 숨겨놓은 돈을 다 잃은 것이라고 국민들의 묘한 관심과 사사로운 돈 욕망을 드러내는 등 한동안 사건의 후속기사가 따르고, 재판 결과가 대법원에서 확정된 후 거의 국민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붙잡히지 않고 도주한 큰 처남은 출국금지와 더불어 수배된 상태지만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다(기소중지)고 한다. 사건 직전까지 이씨 부부에게 중국에서 국제전화를 건 기록이 있어 중국에 이미 밀입국한 상태가 아닌가 추정될 따름이다. 환수하지 못한 60억 원의 행방도 아직 알 수 없다고 알려진 사건이다. 사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중장비 기사인데 사건으로부터 10년 후에 나온 후속보도에서 "마늘밭 사건 때문에 삶이 몰락했다"고 토로했으며 경찰이 돈을 유실물이 아닌 범죄수익금으로 봤기 때문에 신고 포상금으로 200만원을 받았을 뿐이고 '조폭이 개입됐다'는 소문 탓에 수년간 불안에 떨어야 했다고 한다. 2022년 한 방송사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증인으로 나와서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였다. 가족까지 피해를 입을까봐 집을 떠나 외딴 여관을 전전하며 팔자에도 없는 '도망자 생활'을 한참 하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신변보호를 위해 사복 경찰들이 그의 집 주위에서 잠복했고 수화기만 들면 파출소로 연결되는 핫라인도 설치됐다. 개명까지 했으며 총포소지허가증을 받아 산 가스총을 머리맡에 항상 두고 자고 마당에는 도베르만 등 맹견 서너 마리를 풀어 놨다고 한다. 

사람들이 틈만 나면 '포상금으로 수억 원 챙겼냐', '마늘밭에서 빼돌린 돈은 얼마냐'고 묻는 등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고 ‘저 사람 돈을 빼 왔을 거다’, ‘어딘가에 은닉해놨을 거다’, ‘나누어 쓰자’는 시선에 스트레스가 엄청났다고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술회했다. 그의 부인도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 운영하던 식당도 문을 닫아야 했다. 굴착기 기사도 원래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한 달에 700만원씩 벌었지만 사건 이후 생업을 포기했으며 굴착기는 집 마당에 녹슨 채 방치돼 있다고 한다.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사건은 대중의 뇌리에서 잊혔지만 그는 스트레스와 분노로 매일 술을 마신 탓에 간암과 대장암에 걸려 투병하는 등 고통받을 뿐이었다. 그를 아는 주변 지인들은 여전히 전술한 질문을 해대곤 하고 심지어 신고하지 말고 그냥 입 다물고 있지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느냐는 말도 심심찮게 한다고 전해졌다. 


밭 주인 부부는 돈 주인 처남으로부터 허락받은 생활비 이상의 개인적인 지출을 2억 4000여만원 더 썼고 이 사실을 처남에게 들키는 것이 두려워 꾀를 냈다. 바로 그해 초 마늘밭에서 예전 땅주인이 심었던 나무들을 옮기는 일을 해준 굴착기 기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한 것이다. 자작극을 벌이던 중 자기가 쓴 돈 이상의 금액이 모자라다는 것을 안 밭 주인은 굴삭기 기사가 돈을 파갔다고 확신하고 "최근 땅에 묻어둔 17억 원 중 7억 원이 없어졌다. 작업 중 못 보았느냐?"며 그를 불러 협박했다.

허나 알지도 못하는 거액의 돈을 내놓으라는 밭 주인의 협박에 굴착기 기사는 경찰을 불러서 해결하자고 했고 이에 어이없게도 이씨가 응하면서 일이 커졌다. 처음엔 경찰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이들의 얘기를 믿으려고 하지 않았으나 굴착기 기사가 돈이 담긴 페인트통의 위치를 기억해냈고 밭 가장자리의 쓰레기 더미에서 진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돈들도 찾아낸 데다 밭 주인 아들의 차와 금고에서 거액을 추가로 발견한 뒤 뭔가 낌새를 느끼고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이 사건의 시작은 마늘밭의 주인 부부가 기사에게 굴착기 공사를 맡기고 일하던 굴착기 기사가 땅속에서 발견된 몇 겹의 비닐 봉투에 쌓인 것을 발견하고, 누군가 몰래 묻은 폐기물쯤으로 생각해 인근 쓰레기장에 버리고 퇴근했다고 한다. 

굴착기 기사를 다시 마늘밭 주인이 찾아오면서 사건의 진상이 서서히 떠오른다. 폐기물인 줄 알고 버렸던 비닐봉투에 4억원이 들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사건이 『마늘밭의 파수꾼』의 저자 도직에게 영감을 준 듯하다. 도박 수익은 아니지만 마늘밭에서 거액의 현금이 발견된다는 점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밭에서 재배하던 작물이 '마늘'로 같다. 이 소설 역시 마늘밭에서 밭을 일구던 유민에게 우연히 발견되면서 사건의 발단이 된다. 저자가 돈의 주인을 추적하는 경찰이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추적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조용한 시골 마을, 마늘밭 한가운데서 주인공 유민은 의문의 돈뭉치를 발견한다. 놀랍게도 그 돈의 주인은 과거에 죽은 줄 알았던 연쇄살인범 장수혁이다.



그는 유민의 연인인 이한의 큰아버지이자, 이한의 아버지를 살해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한에게는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이 큰아버지인 셈이다. 절대 마주쳐서는 안 될 인물과의 조우는 유민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더 충격적인 것은, 장수혁의 손에 아버지를 잃은 이한이 오히려 그와의 대면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촌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이한의 삶도 평탄치 않다. 의사 아버지와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과 수려한 외모로 일약 청춘 스타로 떠오르는 배우였다. 그러나 아버지를 살해한 연쇄살인범이 큰아버지 장수혁이어서 매스컴, 특히 사이비 기자들의 먹잇감이 된다. 떠오르는 스타 이한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연쇄살인범으로 지목된 사람이 큰아버지이니 여론이나 팬들의 열광이 한순간에 비난으로 바뀐다. 방송 출연이 막히고, 그것으로 그의 배우 생명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사건은 잊혀져 가지만, 이한은 다시 유능한 감독의 캐스팅으로 화려하게 컴백한다. 복귀는 했지만 어떤 스캔들에 휘말리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또 기획사에서도 그의 스캔들 예방을 철저하게 관리하게 된다. 아슬아슬하게 배우로 재기한 삶도 끝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민을 사랑하는 이한은 유민이 연쇄살인범의 조카인 이한과 연애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다시 큰아버지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추락한다면 다시는 재기하기 힘들다는 기획사의 판단과 이한의 순응으로 유민과의 관계를 철저히 숨긴 채 두 사람의 연애는 지속된다. 아버지를 살해한 큰아버지 장수혁은 추적하던 경찰(재범)에 덜미를 잡혀 극한 격투 끝에 다리에 총상을 입는다. 도주하다 물속으로 떨어져 결국 죽었을 것이란 형사 재범은결국 범인의 사체가 확인되지 않자 경찰 옷을 벗게 된다. 범인을 놓친 것을 원망하고, 큰아버지를 혐오해야 할 이한이 큰아버지에게 보이는 이한의 집착은 도대체 유민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유민이 흔들리는 심리에 따라 사건은 전개되어 나간다. 그의 연인인 유민은 그를 믿고 싶은 마음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의심 사이에서 몹시 혼란하고 집중력을 가질 수 없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나를 이만큼이나 좋아한다니’와 ‘이 사람과 같이 있기엔 지금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라는 마음이 공존했다. 그가 옆에 있기 때문에 더 빛이 나는 기분과 더 초라해지는 기분을 동시에 느껴야 한다니. 너무 잔인하고도 슬픈 일이었다. 나름대로 견고한 유민의 에고를 서서히 갉아먹어 갈 만큼.(p.10)



유민은 이한의 수상한 행적과 장수혁의 생존 등 여러 상황이 겹쳤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 과거 장수혁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신재범에게 연락한다. 장수혁 연쇄살인 사건의 진실을 집요하게 추적했지만 끝내 정리하지 못한 찜찜한 결말만 남긴 채 떠났던 그는, 유민의 연락을 받고 마을로 내려와 숨겨진 그날의 비밀을 다시 추적한다. 단순한 우연이라기엔 석연치 않은 정황들이 겹치고, 이 흔적이 드러날수록 유민은 점차 이한이 숨기고 있는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믿고 싶은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유민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한과 장수혁 사이에는 단순한 원한 이상의 어떤 감정이 있는 걸까?

사실 유민은 이 작품의 화자나 다름없다. 이어 벌어지는 사건이 모두 유민의 시선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유민이 밭의 주인이기 때문이지만, 수상한 돈이 발견됨으로써 유민과 그의 집에 얹혀 살던 사촌 동생의 돈에 대한 욕심이 발동한다. 유민의 순간적인 욕심은 인간의 돈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망이기도 하다. 자신이 물려받은 밭에서 갑자기 거액의 현금이 발견된다면 밭의 주인인 만일 주인이 따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당연히 유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욕망 차원에서 본다면 돈의 주인이 유민이 된다는 것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다만 돈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범위 내에서... 신고를 한다는 것 또한 인간의 양심이다. 법적 책임은 주인이 나타난다면 유민이 주인이 될 수 없는 것 또한 법으로서도 규정되어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돈을 몰래 숨겨놓았다는 것은 떳떳하게 번 돈은 아닐 터 유민은 잠시 욕망과 싸우다 결국 신고할 것을 내심 마음먹는다. 

감정의 균열과 서늘한 진실을 오가는 이 소설은 사랑과 불안, 신뢰와 의심이 교차하는 한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심리 스릴러이다. 집필 슬럼프에 빠지고 완벽한 톱스타 남자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자존감이 무너져 가던 작가 유민이 가진 감정선이나 심리를 좇다보면 연쇄 살인범이 돈의 주인으로 나타나면서다. 유민은 죽은 줄 알았던 연쇄살인범과 마주친다. 유민과 연인 이한, 그리고 이한의 아버지를 죽인 연쇄 살인범은 이한의 큰아버지... 긴장과 반전이 잇따르면서 독자의 시선은 책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연기하는 거 안 힘들어? 그때 이후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거 별로 안 좋아했잖아.”

아주 예민한 문제다 보니 유민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라도 그가 무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됐다.

“이젠 괜찮아. 오히려 연기할 때가 더 편해. 그 시선은 사실 나를 향한 게 아니거든. 배우 차이한을 보고 있는 것뿐이지.”(p.176)



이 소설은 그 사랑의 깊이만큼 커져버린 두려움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고립된 공간에서의 긴장감, 진심과 거짓 사이에서 오가는 심리 묘사는 마지막 장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한 편의 영화처럼 감정과 진실의 틈을 파고든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마늘밭의 파수꾼』은 장르의 외피를 입은 철학적 질문이자, 사랑이라는 감정의 어두운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심리 스릴러 특유의 서늘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인간 내면의 감정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놓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그려낸다. 우리는 비밀의 베일을 잡고 벗겨내려는 유민의 시선을 통해 사랑이라는 경계가 불분명한 감정을 탐구한다. 또한 이 소설은 범죄와 복수, 용서라는 소재를 넘어서 인간관계의 근원적 불안과 사랑의 다층적 면모를 조망한다. 독자들은 숨 막히는 전개 속에서 사건의 진상을 좇으며, 동시에 두 인물 간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따라가게 된다.

저자 도직은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해부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연민으로, 그리고 다시 자기기만과 공범의식으로 변질되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가족과 사랑이라는 가장 단단해야 할 연결 고리가 의심과 불신으로 균열될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고립되고 상처받는지 세세하게 풀어낸다. 이 책을 덮는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는 한 질문만 남을 것이다. “사랑은 어디서부터 파괴하고,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


“유민아, 진짜 아무것도 묻지 말고 나 한 번만 믿어줘. 내가 이 모든 일 다 수습할게.”

“이 일에 수습을 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는데. 설마 내가 모르는 일이 더 있는 거야?”

“내 개인적인 문제야.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걸 다 알 필요는 없잖아.”

이한은 울컥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한 번 깨물더니 눈을 부릅떴다. 습기 찬 목소리와 달리 커다란 눈엔 물방울 하나 맺혀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한은 세상에 화가 나있는 것 같았다. 혹은 버거운 자신의 운명에 대해 화가 나있거나.(p.305)


저자 : 도직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

세상 모든 일은 전부 다 사람이라서,

그리고 사랑이라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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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 자기 한계를 넘어선 열정과 호기심
이종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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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하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그의 이름은 수많은 학문 분야에서 거론되고,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로 널리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 인류가 분류해온 학문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재능을 보였으며, 심지어는 근대 과학의 기틀을 제공한 학자로서도 이름이 올라 있다. 그를 '다재다능' 혹은 '천재'라고 표현하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인 인물이다. 이 책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저자 이종호는 〈서문〉을 통해 그가 남긴 발자취는 다양하다 못해 화려하다고 평가한다. "다빈치에 따라다니는 경력은 화려하다. 해부학자, 건축가, 식물학자, 도시계획가, 의상디자이너, 무대디자이너, 요리사, 엔지니어, 발명가, 물리학자, 지리학자, 지질학자, 수학자, 군사 과학자, 음악가, 화가는 물론 사상가, 철학자 등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뛰어났던 만능인으로 불린다."(p.8)

이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다면적인 재능과 인간적인 면모를 풍부한 사례와 함께 조명하고 있다. 예술가이자 과학자, 발명가이자 철학자였던 그는 단순한 천재를 넘어, 인간의 한계를 끊임없이 탐색한 탐구자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빈치의 과학과 공학, 예술과 철학, 그리고 대표작인 작품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등을 통해 그의 천재성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 책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돋보이는 이유는 다빈치의 내면을 다뤘기 때문인 듯하다. 저자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여러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닦았고, 끝없는 호기심과 집요한 관찰력, 치밀한 장인 정신으로 오늘날의 명성을 이뤄냈다. 자신을 “성공하지 못했다”고 표현했던 그의 고백은 오히려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이 책은 다빈치의 재능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열정으로 이루어진 결과임을 밝힌다. 이는 다빈치를 신격화하는 대신, 우리 모두가 배울 수 있는 실천적 모델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자기 한계를 넘어선 열정과 호기심」이라는 부제가 잘 표현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한 천재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가능성과 도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다빈치의 창의성, 끈기, 호기심이 어떻게 위대한 업적을 이끌어냈는지를 탐구해 독자들에게 전한다.


이 책은 〈서문〉과 〈맺음말〉을 제외하고 모두 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만능 슈퍼 천재〉, 2장 〈예술가 다빈치〉, 3장 〈불멸의 작품들〉, 4장 〈모나리자〉, 5장 〈천재들의 경쟁〉, 6장 〈다빈치 = 세계 기록〉, 7장 〈후계자가 없다〉 등이다. 책에 따르면 다빈치는 자신의 자기소개서에 "그림도 그릴 줄 압니다:라고 적었다. 당대에는 물론 현대에까지 세계 최고의 예술가 중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다빈치가 자신에 대해 이렇게 겸손하게 적은 것은 자신을 화가나 조각가로 불러주지 말고 군사 전문가(과학자)로 불러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그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대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 다빈치가 자신을 과학자라고 불러달라는 자체가 머리가 약간 간 이상한 사람의 넋두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빈치는 주위의 이같은 시선에 좌절하지 않았다. 만일 자신을 과학자로 불러주지 않는다고 체념했다면 다빈치에 대한 현재와 같은 평가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계속할 것이다." 이 말은 다빈치가 말년에 중얼거렸다는 이 말이 그의 노트에 남아 있다고 저자는 증거한다. 무엇을 계속하려고 한 것인지, 중요한 말은 생략되어 있지만 그 말이 무엇이든 다빈치는 어떤 일을 꾸준히 지속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기록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다빈치가 당대에 평생 계속했던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아웃풋 작업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라고 전한다. 그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모든 것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처럼 실패를 많이 한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당대에 일단 실패하면 재기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것이 당대의 시대상이라고 한다. 저자는 다빈치의 행동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두 가지 사실을 들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두 가지 사실을 죽을 때까지 견지했다고 설명한다. 

① 조사를 기반으로 노트에 끊임없이 기록한다.

② 그림을 계속 그린다.

다빈치는 사망할 때까지 이 두 가지를 단순하게 반복하며 이어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의 전 생애를 통해 모든 위업이 창출된 이유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애를 이야기할 때 어린 다빈치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어릴 적 행동을 심리학자들은 전형적인 ADHD로 진단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ADHD는 주로 아동기에 시작되어 학령기를 전후해 흔히 관찰되는 신경 발달 장애다. 대부분 주의 산만, 과잉 행동, 충동 조절 어려움 등을 나타낸다고 한다. 다빈치는 주위의 어른들을 붙잡고 납득할 만한 답을 얻을 때까지 계속 질문했다고 책은 언급한다. 다만 다빈치가 다른 ADHD 어린아이와 달랐던 것은 어른들에게 질문하는 것으로만 끝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빈치는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자연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실험을 계속했다는 것. 다빈치가 얼마나 많은 의문을 갖고 있었는지 그의 노트에 적혀 있는 글을 인용한다.

"인간이라는 한 종류가 형성하는 행위만 해도 얼마나 많으며 다양한가.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동물이 있으며 또 나무와 꽃이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언덕과 평지가 있으며, 샘과 강, 도시, 공공건물과 개인 건물이 있는가. 또 인간이 쓰기에 적절한 도구는 얼마나 다양한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해답을 찾으면서 시골길을 거닐었다. 어째서 흔히 바다에서 발견되는 산호초와 식물과 해초의 흔적 그리고 조개껍데기가 산꼭대기에서도 발견될까? 왜 천둥은 그것을 일으키는 시간보다 여운이 더 오래 지속될까? 그리고 번개가 치면 어째서 천둥이 그 뒤를 따라 이어지는 걸까? 돌이 떨어진 수면 위로 생기는 원은 얼마나 다양하며 새는 어떻게 공중에서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이상한 현상들에 대한 질문이 평생토록 내 생각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p.21~22)

저자는 이런 생각을 하는 다빈치가 살던 시대는 15세기에서 16세기 무렵(1452~1519)이다. 다빈치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영국의 케네스 클라크는 다빈치를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 가운데 가장 호기심이 많은 사람'으로 평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당시는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태동하기 직전이다. 과학은 아직 학문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천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다만 탐험가들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인도제국과의 무역을 위한 항로 개척에 나선 때다.

또 ADHD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갖고 있다고 현대 의학은 밝혀 냈고, ADHD가 삶을 영위하지 못할 정도의 병은 아닌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다빈치가 그림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은 부친 세르 피에로였다. 아들의 재주를 인정한 부친은 친구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제자가 되도록 주선했다고 알려져 있다. 베로키오는 당시 회화, 조각, 금속공예, 주조 외에도 건축공학, 산수, 음악에까지 조예가 깊은 만능천재였다고 많은 백과사전은 서술하고 있다. 덕분에 다빈치에게는 베로키오가 더없이 이상적인 스승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자연스러운 짐작이다. 실제 다빈치는 베로키오 밑에서 회화에서의 원근법을 배웠고, 빛의 전파나 음영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저자는 기술한다. 베로키오 집 옆에 롤라이우올로 형제의 스튜디오가 있었는데, 다빈치는 이곳에서 해부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화석을 공부한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피렌체 상공업조합에서는 14세부터 도제 수업을 시작해 6년 만에 졸업하므로, 이 규칙에 따라 20세가 되던 1472년 다빈치는 피렌체의 산 루카 화가조합에 등록되었다.

물론 많은 독자들이 잘 알다시피 다빈치가 화가가 된 것은 그의 천부적인 재주도 있지만, 사생아이기 때문에 존경받을 만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때문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당시 미술은 창조적 예술이 아니라 농노나 직공의 아들에게나 적합한 하루 계층의 직업이었다는 것.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 신분 제도와 비슷한 모양새다. 1471년 '일 모로(il Moro, 무어인)'라는 별명이더 유명한 밀라노 공국의 섭정 루도비코 마리아 스포르차가 피렌체를 방문했는데, 마침 베로키오가 그의 접대를 맡았다. 다빈치는 일 모로의 환영회에서 하프를 연주했다고 한다. 이때 피렌체의 실력자 로렌초 데 메디치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메디치가의 미술고문으로 임명했다. 다빈치에게는 인생의 새 전기를 맞는 셈이다. 르네상스를 연 가문으로 잘 알려진 메디치가는 예술과 학문을 중요하게 여겨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회화와 조각을 많이 수집했다. 당시 인간 유럽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의 영향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나체 조각이 기독교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발견하는 대로 파괴당하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부를 갖고 있던 메디치가는 귀한 미술품을 거리낌 없이 사들였다. 이때 메디치가의 미술고문으로 그 작품들을 감상한 것이 다빈치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독자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그의 과학적 사고력이나 관찰력, 과학을 하는 방법에 대한 신념은 근대 과학의 시초라고 한 점에서 비롯됐다. 그는 의학에서의 해부학뿐만 아니라, 생물의 관찰력, 과학을 이용한 군사 무기 등에 광범위하게 그의 관심이 갔다. 특히 실험을 통한 입증이나 상상력을 증거해 내는 방법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운 이유이기도 하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그는 화가로서 서양 미술사에 많이 등장하지만 실제 그의 그림은 유명한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등 20편에 불과하다. 

저자 이종호는 〈모나리자〉에 대해 〈서문〉과 4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작품은 모델이 누구인가?부터 가격은 얼마나 될까? 등 많은 추측이 많고, 또 많은 부분이 밝혀지긴 했지만 아직도 이설(異說)이 있을 정도로 해묵은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서문〉에 따르면 '모나'는 유부녀 이름 앞에 붙이는 이탈리아 경칭이며, '리자'는 초상화의 모델이 된 여인의 이름이다. 〈모나리자〉를 팔면 루브르 박물관도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독자는 파리 여행 중에 루브르 박물관에 간 적이 있는데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줄을 30분 정도 서 있다 그냥 쭈욱 떠밀리며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크기도 예상보다 작았으며 그마저 멀리서 형태만 보고 온 셈이다.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서 제대로 보지 못한 점에 못내 아쉽다. 언젠가는 다시 가서 좀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볼 것이란 계획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임에는 틀림없지만 〈모나리자〉가 파격적인 명화로 부상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과학이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그가 평생을 두고 작성한 8,000장에 달하는 '다빈치 노트'도 함께 빛을 보기 시작했다. 노트로 인해 다빈치가 위대한 예술가이자 과학자로 자리매김하자 〈모나리자〉가 자연스럽게 세계에서 최고의 명화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1994년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다빈치가 남긴 수많은 기록, 즉 '다빈치 노트' 중 단 72페이지 분량의 「코덱스 레스터」를 3,080만 2,500달러(약 425억 원)에 낙찰받았다. 앞서 2017년 11월 15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 나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살바토르 문디(구세주)〉는 무려 4억 5,030만 달러(약 6,200억 원)에 낙찰돼 세계 예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저자는 「〈모나리자〉는 누구인가」에서 별도의 글을 통해 이탈리아 화가이자 도시계획가인 주세페 팔란티가 '리자'는 1479년 피렌체에서 태어나 16세에 부유한 비단 상인인 조콘도의 두 번째 아내가 된 리자 게라르디니라고 주장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미술사학자 실바노 빈체티는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은 15세기 보비오 지역의 실력자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딸 비앙카 조반나 스포르차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빈체티는 모나리자가 리자 델 조콘도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발표를 듣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여하튼 '모나리자'라는 이름도 의미심장하다. 다빈치는 1519년 프랑스에서 숨질 때까지 이를 간직했으면서도 기록을 남겨놓지 않았다.(p.193) 

〈모나리자〉에 앞서 〈최후의 만찬〉은 더욱 많은 의문점을 낳고 있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식당에 벽화로 소장되어 있다. 크기도 엄청나 가로 880cm, 세로460cm나 되며 총 열세 명이 그려져 있다. 예수와 열두 제자가 주인공이다. 책에 따르면 〈최후의 만찬〉이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은 그의 몇 안 되는 완성작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 중 가장 손상이 심한 그림으로도 알려져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최후의 만찬〉의 주제는 성경의 일부분이라 할 정도로 기독교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복음서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예수가 체포되기 전날 밤 열두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을 담았다. 옛는 제자들 가운데 배신자가 있다고 말하고, 떡과 포도주를 들어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을 담았다. 이 최후의 만찬에 쓰인 잔이 성배라는 전설은 잘 알려져 있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너희 가운데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고 말하자, 제자들이 깜짝 놀라는 순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최후의 만찬〉이 가장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일은 2003년 작가 댄 브라운이 소설 『다빈치 코드』를 발표한 뒤였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아직까지 후손이 이어지고 있다는 설정 때문이다. 그의 또 다른 소설 『천사와 악마』와 함께 두 소설이 영화화돼 상영을 앞두고 기독교계에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신성모독'으로 법정에 고소당한 후 법원에서 '표현의 자유'에 의해 기각되자 오히려 영화에 대한 인기만 높여주었다는 것이 한국 영화계의 귀띔이다. 


저자 : 이종호(李鍾鎬)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 등에서 연구했다. 과학기술처장관상, 태양에너지학회상, 한국발명교육학회 논문상, 고려대학교 이정덕 건축상, 국민훈장 석류장 등을 받았다.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세계의 여러 유적지를 탐사하며 연구해 기초 없이 빌딩을 50층 이상 올릴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을 비롯해 특허 10여개를 20여 개국에 출원하는 등, 이론과 실제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과학저술가)으로 신문, 잡지 및 인터넷에도 활발히 기고하는 등 과학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인의 뿌리』, 『로봇, 사람이 되다』, 『피라미드』, 『미래과학, 꿈이 이루어지다』, 『21세기 교양키워드』, 『미래과학, 세상을 바꾼다』, 『시크릿 방사능』, 『2030년 미래 한국에서는 어떤 일이?』, 『영화 속 오류』,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세계 7대 불가사의』,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 ,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한국 7대 불가사의』, 『과학으로 찾은 고조선』, 『황금보검의 비밀』, 『과학으로 증명된 한국인의 뿌리』, 『천재를 이긴 천재들』, 『로봇, 인간을 꿈꾸다』,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신성장동력』,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예문화유산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장편소설 『피라미드(전 12권)』, 『레전드클레오파트라(4권)』 등 총 130여권의 과학기술분야 저작을 출간하여 ‘출판 센츄리 클럽(100권 이상 저자)’ 일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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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메이트북스 클래식 23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정영훈 엮음, 최기원 옮김 / 메이트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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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독자는 그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의 『자유론』을 제대로 한 권 모두 독파한 적이 없다. 다만, 독자는 그와 그의 저서 『자유론』이 매우 많이 인용되고, 고전 해설 책에 언급된 내용을 통해 조금 알 뿐이다. 더욱이 그의 명언은 이곳저곳에서 굉장히 많이 인용되기 때문에 무지한 독자로서도 몇 문장 알고 있다. 그 중 하나인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우리는 자유롭다."는 말은 '자유'를 이야기할 때 어디서나 언급된다. 이 문장은 너무나 유명해서 오늘날까지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곳곳에서 인용, 재확산되고 있다. 이 문장은 자유를 방종으로부터 격리하고 인간이 누리는 최대한의 자유에 대해 정확한 규정이라고 믿고 수용되는 '자유'에 대한 문구다. 하지만 대한민국 오늘날의 정치계에서 보수 진영이 '자유'를 독점한 듯한 모습에서 상대적으로 진보는 '비민주'라는 의미로 비난하고 있는 것 때문에 '자유'에 대한 왜곡된 주장이 많이 있는 게 사실이다. 밀(Mill)이 정의한 '자유'라는 의미를 왜곡 사용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고 독자는 믿는다.

    이 책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편역자(이하 역자) 정영훈과 최기원이 책의 맨 앞 부분의 〈엮은이의 말〉 가운데 「지금, 『자유론』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란 제목의 글을 통해 이 책의 재출간 취지를 밝힌다. 역자가 다시 한 번 우리가 『자유론』을 되새겨야 할 때라고 주장하는 점을 독자는 이해할 수 있다. 역자의 말은 최근의 우리 대한민국은 정치 실종 상태로부터 겨우 회복해 가는 과정에서 여전히 '자유'란 정의가 무분별하고 왜곡되게 사용된다는 점을 인식한 데 따른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좀 더 면밀한 『자유론』 해석을 통해 '자유'의 정의를 다시 새기고, 나아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책을 펴낸 것이다.

    "『자유론』은 19세기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탄생했다. 물질적 풍요와 기술 발전이라는 눈부신 진보의 그늘에서, 밀은 '개인의 고유함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감지했다. 그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진짜 '힘'이 단지 정부나 벌률 같은 외형적 권력만은 아니라고 보았다. 오히려 사람들의 무의식적 동조와 여론의 압력, 도덕 감정의 획일화야말로 개인의 삶을 침묵시키려는 본질적 원인이라고 보았다. 『자유론』은 단순히 '자우는 중요하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인식하지 못했던 통념과 가지 판단 속에서 자유가 어떻게 침해되고 내부에서부터 무너지는지를 분석한 보고서다."(p.6~7)


    앞서 언급한 밀의 명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우리는 자유롭다."는 간명한 원칙은 단순한 규범을 넘어 수많은 사유의 출발점이라고 역자는 밝힌다. 책에 따르면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각자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이 명제 속에는 도덕, 정치, 사회학, 심리학을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이 담겨 있다. 밀은 '다수의 폭정'이라는 개념을 통해 민주주의조차 쉽게 여론이라는 이름 아래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우리가 무심코 믿는 '사회적 상식'이 다른 삶의 방식을 얼마나 쉽게 억압할 수 있는지를 통찰했다. 그리고 밀의 이러한 사유는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다수의 여론과 사회의 도덕 감정이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예리하게 추적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자유론』을 읽어야 한다. 지금 시대에 더욱 절실한 『자유론』은 혐오, 여론 재단, 사회적 낙인 등 오늘의 문제들과 직결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겉으로 보기에 표현의 자유가 더 넓어진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침묵의 압박과 혐오의 낙인,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새로운 경계선들이 존재하며, 우리는 그 안에서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여론이라는 이름이 무형 권력 속에서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침묵이 살아남는 길이 되고, 다르게 사는 것은 곧 '이상한 것'이 되며, 소수자의 표현은 허용되되 '대중에게 불편한 건 금지된다'는 아이러니한 풍경 속에서, 『자유론』은 우리에게 되묻는다. "지금 당신이 누리는 자유는, 진짜 당신의 것인가?"

    역자는 밀이 『자유론』을 통해 ‘정부보다 무서운 것’, 바로 여론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폭력을 경고했다고 풀이하고 있다. 그는 ‘다수의 의견’이 언제든 소수의 표현을 억압할 수 있으며, 그 억압은 법적 제재가 아니라 도덕적 강요와 일상의 침묵 강요라는 훨씬 은밀하고 강력한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밀은 누구나 자기 삶의 방식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단순한 자유주의의 선언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책임을 지키기 위한 삶의 윤리라고 보았다고 역자는 해석한다. 밀은 끝없는 논쟁과 반론, 반대자의 목소리 속에서만 진리가 살아 숨 쉰다고 강조했다. 진리는 끊임없는 검증과 교차되는 관점 속에서만 살아남는다고 역설한 전제 조건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임을 명백하게 밝히는 대목이다.


    역자에 따르면 밀의 통찰은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이 점에서 『자유론』은 시대를 초월해, 불온한 목소리와 소수의 견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우는 고전으로 남는다. 『자유론』이 다루는 ‘혐오, 검열, 낙인, 여론 재단’ 같은 주제는 150년이 지난 지금도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현실과 맞닿아 있다. 오히려 오늘날은 법이 아니라 SNS 속 대중 여론이 검열의 주체가 되는 시대다. 그렇기에 『자유론』은 단지 과거의 고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는 철학적 무기가 된다는 것을 역자는 역설하고 있다. 

    역자는 『자유론』은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유는 원문임을 밝힌다. 원문은, 논리는 깊지만 표현은 장황하고, 문단은 길게 이어지며, 장(章) 제목만 있을 뿐 중간제목은 전혀 없어 독자들이 미로를 헤매듯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책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그런 진입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기획된 ‘편역본’이라고 밝힌다. 밀의 사유를 단순화하거나 축소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유의 흐름을 독자들이 놓치지 않도록 현대의 언어와 편집으로 친절하게 시각화하고 재설계했다는 의미다. 또 논지에 맞춰 중간제목을 일일이 달고, 장문의 문단을 적절히 나누어 사유의 맥을 잡기 쉬운 구조로 정비했다고 단언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다. 19세기는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세계 패권국으로 우뚝 선 때이다. 부강한 나라를 바탕으로 학문·예술에 치중할 뿐만 아니라 획기적인 발명이 산업 기술로 이어지면서 제1차 산업혁명을 태동시켰다. 산업혁명은 인류 사회를 새로운 세상으로의 대변혁을 일으키는 움직임이다. 기존 농업이나 의식주에 쓰이는 대부분의 필수품이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던 것을 '기계'가 대신하도록 바꾼 기계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흐름은 인간 삶의 기초적인 부분을 기계에 맡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계는 24시간 가동해 돌아가면서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노동력이 획기적으로 절감시키는 역할울 할 수 있다. 대량 생산 체제는 대량 소비로 이어지고 인류는 새 기술로 만들어내는 상품들에 열광했다. 이 대목에서 일반 국민과 지배 계층의 명암이 더욱 뚜렷하게 갈린다. 자본주의 심화 현상이다.


    밀의 『자유론』은 1859년 출간되었다. 『자유론』은 원래 5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서론〉에서 밀은 자유의 문제는 의지의 자유가 아니라 시민적 혹은 사회적 자유임을 밝히고, 자본주의 사회의 진전과 함께 지금은 권위에 도전하는 정치적 자유에서 다수자와 개인의 대립, 결국 다수자의 전제가 문제가 된다고 했다. 개인의 행복과 다수자의 행복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밀의 과제였다. 밀은 인간의 자유에 고유한 영역을 설정하고, 인간의 생활과 행위 가운데 개개인에게만 관계되는 부분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① 사상과 양심의 자유 ② 취미 및 탐구의 자유, ③ 단결의 자유 등이다. 그리고 이것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는 어떤 정치 형태라 할지라도 자유가 없다고 본다. 

    제2장에서 '사상과 토론의 자유'가 인류의 정신적 행복에 있어서 필요함을 4가지 근거를 들어 주장하고, 제3장에서는 개인의 자발성은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 자체가 존중되어야 하고 습관이나 전통에 의해서 억압되면 개인이나 사회의 진보가 정체되고 만다고 기술한다.

    제4장에서는 인간의 생활 가운데 개인에 속하는 영역과 사회에 속하는 영역간의 관계를 논하고, 타인의 행복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 사회의 권력이 행사되는 것은 좋으나, 그때 권력의 원천인 다수자의 의지가 소수자의 이익 혹은 행복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여론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다수자의 전제는 배제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제5장에서는 이상의 원리를 실제 문제와 결부시켜 예증한다.

    이에 비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모두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왜 우리는 ‘자유’를 논해야 하는가?〉, 2장 〈우리가 틀렸을 가능성은 정말 없는가?〉, 3장 〈틀린 의견이라도 왜 여전히 필요한가?〉, 4장 〈인간의 개성이야말로 왜 자유의 본질이 되는가?〉, 5장 〈사회는 개인의 자유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나?〉, 6장 〈자유의 원칙은 현실에서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등이다. 내용의 전개는 밀의 『자유론』과 무척 비슷하다. 다만 밀의 『자유론』과 이 편역본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다른 점은 역자가 〈엮은이의 말〉을 통해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을 미리 밝힌 대로다. 밀의 위대한 사유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대의 독자가 끝까지 읽어낼 수 있도록 하는 '출간 취지', 즉 『자유론』 2장을 편역본에서는 〈우리가 틀렸을 가능성은 정말 없는가?〉와 〈틀린 의견이라도 왜 여전히 필요한가?〉로 2장과 3장으로 분리해 번역하고 편집했다. 


    독자가 앞서 털어놓은 대로 밀의 『자유론』은 그 철학적 깊이에 비해 실제 완독률은 그리 높지 않다. 이유는 분명하다. 기존의 완역본들은 학문적 엄밀성과 번역의 충실함에는 탁월하지만, 독자가 주제를 따라가며 사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조적 안내나 독서 가이드로서의 배려는 거의 없다. 독자들은 밀의 사유를 따라가기에 앞서 먼저 문장의 구조를 해석하고, 논리의 흐름을 정리하며, 필요한 경우 스스로 중간제목을 마음속에 설정해야만 한다. 문장이 길고 논리 전개가 복잡한 밀의 문체 특성상, 이는 철학 전공자에게는 익숙한 독서 방식일지 모르지만, 일반 독자나 철학 입문자에게는 상당한 진입장벽이자 피로감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역자와 편집진은 확언하고 있다.

    이 책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바로 그런 한계를 넘어서고자 기획된 편역본이다. 각 장의 제목을 새로 정비하고, 원문에는 전혀 없던 중간제목을 추가해 논리를 따라가는 길을 명확히 제시했다. 예를 들어, ‘혐오 발언과 자유’ ‘여론 독재의 실체’ ‘개인의 삶과 국가의 간섭’처럼 독자들의 인식 구조에 자연스럽게 걸리는 개념어들을 선별해 제목화함으로써, 추상적인 고전을 지금의 언어로 재배열했다. 문단도 적절한 길이로 나누고, 중요한 개념은 문맥에 따라 시각적으로 강조해 사유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세심하게 설계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기존 완역본과는 확실히 차별화된다. 철학 고전의 완독을 위한 안내자로, 입문자에게 진입로를 터주는 길라잡이로 이 책은 기능한다는 것이 역자와 출판사 측의 확신이다. 깊이는 그대로 두되, 독자의 길은 새롭게 열어주는 이 책은 『자유론』이라는 고전을 단순히 ‘읽는’ 텍스트가 아닌, ‘사유하고 내면화하는’ 경험으로 전환시켜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 이 시대에, 고전을 읽고 싶지만 늘 문턱에서 돌아서는 독자들에게 이 편역본은 매우 유용한 징검다리이자 철학적 디딤돌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정치에서 흔히 말하듯, ‘안정과 질서’를 중시하는 세력과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은 모두 건강한 정치에 꼭 필요한 구성 요소다. 특히 어느 한쪽이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을 분별해 질서와 개혁을 함께 껴안을 수 있을 만큼 시야를 넓히기 전까지는 더욱 그렇다. 이 두 관점은 서로의 결핍을 보완하며 존재 의미를 얻는다. 그리고 둘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각 세력이 이성과 균형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힘이다. 민주주의와 귀족주의, 재산권과 평등, 협력과 경쟁, 사치와 절제, 공동체성과 개별성, 자유와 규율 등 삶을 이루는 이런 상반된 가치들이 동등한 자유 속에서 표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가치가 동일한 수준의 재능과 열의를 지닌 사람들에 의해 똑같은 힘으로 주장되고 지지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양쪽이 정당한 제 몫을 인정받을 길은 없다.(p.111) - 「3장 틀린 의견이라도 왜 여전히 필요한가?」 중에서


    개인의 자유는 오직 한 가지 조건 아래에서만 제한될 수 있다. 그것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자유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오로지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 자신의 판단과 의지에 따라 스스로 행동한다면, 그 결과가 자신에게만 돌아가는 한 그 자유는 온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의견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은, 그 의견을 행동으로 옮길 자유 또한 보호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인간은 결코 오류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는 것들 역시 대부분은 진실의 단편에 불과하다.(p.127) - 「4장 인간의 개성이야말로 왜 자유의 본질이 되는가?」 중에서


    저자 :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밀은 18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에게 극도로 엄격한 영재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밀은 3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8살에 헤로도토스와 플라톤의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고, 8살부터는 라틴어를 배워서 오비디우스 등이 쓴 라틴어 고전도 읽었다. 12살부터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다. 13살 때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저작을 통해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4살 때는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몽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논리학, 고등수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17세 때인 1823년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입사하여 아버지의 조수로 일했으며, 그 후 1858년까지 재직하며 연구와 저술 활동을 병행했다. 20살 무렵 밀은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부딪힌다. 신경쇠약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작품을 읽고 다시 재기했다. 이때부터 밀의 사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엄격한 공리주의적 이성 제일주의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사색과 분석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감수성이 능동적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제한적인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경제학 사상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밀은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그는 사상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1865년부터 1868년까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학장으로 재임했고, 같은 기간 동안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866년, 그는 하원의원으로서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고, 보통 선거권의 도입 같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촉구했다. 또한 노동조합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과 아일랜드의 부담 경감 등도 주장했다.

    주요 저서로 『논리학 체계』(1843), 『정치경제학 원리』(1848), 『자유론』(1859), 『대의정부론』(1861), 『공리주의』(1863), 『자서전』(1873) 등이 있다.


    편자 : 정영훈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가톨릭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상담과 심리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에 줄곧 출판기획자의 길을 걸어왔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기획하고 있으며,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엮은 책으로는 『위대한 심리학자 아들러의 열등감, 어떻게 할 것인가』 『위대한 심리학자 아들러의 가족이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의 크리톤』 『키케로의 노년에 대하여』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하루에 5번 감사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세네카의 행복론』 『생텍쥐페리, 인생을 쓰다』 등이 있다.


    역자 : 최기원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연세대 국제대학원 국제관계학,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통역학으로 석사학위 취득. 현재 각종 국제회의에서 동시통역사로 활약하고 있으며,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월세보다 쏠쏠한 에어비앤비』 『페이스북 마케팅』 『고객카드로 이룬 테스코의 기적』 『슈퍼잼 스토리』 『나는 스무 살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디자이닝 브랜드 아이덴티티』등이 있고 『그래서 쉬운 영어』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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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스토페라 - 마에스트로가 들려주는 오페라 속 세계사
    양진모 지음 / 책과함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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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오페라를 감상하기 위해서도, 세계 역사의 흐름을 알기에도 모두 도움이 된다. 역사적 사건과 인간의 내면을 반영한 창작 예술이자 종합 예술인 오페라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감정까지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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