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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밑의 검은 제국 - 인간을 닮은 가장 작은 존재 개미에 관하여
동민수 지음 / 유노책주 / 2024년 11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개미를 연구한 책을 보면 독자는 '파브르'라는 프랑스의 곤충학자가 생각난다. 어렸을 때 여름방학 숙제에 '곤충 채집'이 들어 있었는데 잠자리, 나비 등을 잡아 개학하면서 과제물 박스를 들고 갔다. 그때는 아무도 개미를 곤충 채집에 이용하지는 않았다. 아마 너무 작아서 과제물로 제출하기는 부적절해서였을 것이다. 개학 첫날 선생님이 곤충 채집에 개미를 채집해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지적을 하자, 누군가 "선생님, 개미도 곤충이에요?" 하고 되물었다. 그때 선생님의 답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곤충학자 파브르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 주셨고, 개미가 곤충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생물의 분류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셨지만 우리가 알아듣기 어려워서였을 것이다. 파브르에 대한 선생님의 가르침은 독자 개인적으로는 충격이었다. 특히 개미 관찰과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는 이야기와 세계에서 처음으로 〈곤충기〉를 써서 위인이 되었다는 말씀이었다.
누구나 어렸을 적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개미의 긴 행렬을 유심히 봤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독자는 간혹 개미집에 물을 부어 개미가 어떻게 되는지 보는 짓궂은 장난도 한 기억도 있다. 개미는 우리 주위에 흔히 존재했기 때문에 주목하거나 특별히 관찰할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상에 불편함을 주는 면만 부각될 뿐이고 조금은 '귀찮은 존재'였다. 특히 빵이나 먹을 것을 떨어뜨렸을 때 잠시 딴 일을 하고 우연히 내려다본 땅바닥에서 개미들이 몰려들어 이를 잘라 들고, 열 맞춰 집(개미 구명)으로 가던 모습은 대단해 보여서 신기한 듯 오랫동안 관찰했던 기억도 있긴 하다. 그리고 국어 시간에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를 읽었던 기억도 난다. 그때부터 개미는 부지런하고 베짱이는 게으르고 일하지 않으면서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는 상징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이 책 『내 발밑의 검은 제국』은 개미의 삶에 대한 개미 관찰 연구 기록이다. 저자 동민수는 개미 진화생물학 연구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개미의 삶의 방식이 인간과 놀랍도록 닮았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개미의 세계는매우 다채롭다. 이들을 단순히 작고, 까맣고, 모여 다니는 생명체로 정의하는 것은 이들의 놀랍도록 복잡한 생태와 다양한 생활 방식을 무시하는 일이다. 개미의 세계를 통해 우리는 진화, 적응, 협력의 힘을 다시 배운다.
'개미를 알수록 인간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개미』는 인간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베르베르는 20여 년간 개미를 관찰하고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미 사회와 인간 사회의 놀라운 유사성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개미들이 한 왕국을 건설하고, 다스리며, 성장시키는 과정을 지켜보면 그 모습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놀랍도록 닮았음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 또한 개미 사회가 단순한 곤충의 이야기를 넘어 거울처럼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기 때문이라고 저자 동민수는 말한다. 개미를 오랫동안 관찰하고 연구한 저자는 개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미를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신선한 통찰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밝힌다.
저자의 관찰 연구에 따르면 개미들은 무리를 지어 살며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하고 긴밀하게 연결된 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인간과 비슷하지만, 정작 우리는 개미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른다. 사실 개미는 너무 작아 일상 속에서 그들의 얼굴이나 사회 구조를 관찰할 기회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일단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개미의 세계는 경이로움과 신비로 가득 차 있다. 발밑에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제국, 개미들의 사회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흥미로운 세계를 보여 준다.
1cm도 되지 않는 개미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사실 개미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생명체라고 저자는 개미 관찰로 발견한 많은 것들을 이 책에서 풀어내고 있다. 개미 사회는 철저한 역할 분담을 통해 모두가 특정 임무를 맡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개미는 먹이를 찾고 둥지를 유지하며, 병정개미는 집단을 보호하고, 여왕개미는 번식에 집중하는 등 명확한 역할이 주어진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는 마치 인간 사회에서 직업에 따라 다양한 역할이 나뉘어 사회가 유지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또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면모도 인간과 비슷하다. 위험이 닥쳤을 때 개미는 자신을 희생해 집단을 구하는데, 이는 마치 전쟁 중 자신의 생명을 던져 동료를 구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처음에는 잘 관찰되기 어렵지만 개미 사회도 인간 사회와 마찬가지로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다른 집단을 약탈하고, 여왕을 암살해 권력을 빼앗고, 다른 개미를 평생 노예로 부리기도 한다. 인간 사회처럼 개미 사회도 협력과 경쟁, 빛과 그림자가 함께 존재하는 다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연구 결과를 써내려 간다. 이 책 『내 발밑의 검은 제국』은 단순히 개미의 생태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인간과 닮은 개미의 세계를 가장 흥미로운 방식으로 소개한다. 열네 살 때부터 개미의 매력에 푹 빠진 저자는 일본 오키나와과학기술원, 독일 프리드리히 실러 예나대학교, 프랑크푸르트 젠켄베르크 자연사박물관 등 여러 연구기관에서 개미를 연구하며 깊이 있는 지식을 쌓아 왔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지구를 움직이는 땅속 군주와의 만남-개미에 관한 오해와 진실〉, 2장 〈개미는 왜 멸종을 걱정하지 않을까?-진화하는 개미들〉, 3장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탄생한 거대 제국-체계를 만드는 개미들〉, 4장 〈승자는 상황도, 조건도 탓하지 않는다-전략적인 개미들〉, 5장 〈뭉치면 살 것이고 흩어지면 죽을 것이니-방어하는 개미들〉, 6장 〈속이고 배신하고 착취하는 약탈자들-권력을 쥔 개미들〉, 7장 〈결국 이타적인 존재만이 살아남는다-공생하는 개미들〉, 8장 〈광활한 지구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생존 전쟁-위협받는 개미, 위협하는 개미〉 등이다.
1장에서는 부지런함의 상징인 개미가 사실은 워라밸을 철저히 지키며 살아간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같이 우리가 몰랐던 개미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파헤친다. 또한, 개미가 의학의 키맨이라는 이유부터 이들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이야기까지 개미 연구가 우리에게 안겨 줄 수 있는 것들을 살펴본다. 2장에서는 개미의 기원을 탐구하며, 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지구에 나타났는지를 다룬다. 수억 년 전 공룡이 지배하던 시절에도 이미 존재했던 개미의 역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여러 차례 대멸종을 겪고도 살아남은 이들의 적응력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다시금 일깨운다.
3장은 손톱만 한 작은 개미들이 어떻게 거대한 군체를 이루고 제국을 세우듯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지를 다룬다. 생명이 싹트는 봄은 새로운 개미 왕국들이 탄생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때 여왕개미는 일명 ‘결혼비행’을 통해 짝짓기를 한 뒤, 날개를 떼어내고 일개미를 출산해 제국의 시작을 알린다. 개미들의 체계적인 조직력과 분업 체계를 보며, 마치 거대한 제국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듯한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4장에서는 사막의 열기 속에서 살아가는 사막개미, 군대식 생활을 하는 군대개미, 피를 빨아 생존하는 드라큘라개미 등 극한 환경에서도 생존하는 개미들의 치밀한 전략을 소개한다. 개미들의 놀라운 적응력은 변화무쌍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교훈을 전해 준다. 5장은 개미들이 자신과 군체를 보호하기 위해 구사하는 다양한 전략들을 탐구한다. 강력한 턱과 독침은 물론, 위장술, 자폭 등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존 경쟁을 벌이는 개미들의 치열한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냈으니 놓치지 않길 바란다. 6장에서는 개미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다룬다. 권력 다툼으로 여왕을 암살하거나, 적의 시체를 방패로 삼는 등 때로 인간 사회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들도 보인다. 이들의 생존 본능은 때로는 우리 사회의 이면과도 닮아 있다. 7장에서는 개미가 다른 생물과 어떻게 협력하고 공생하며 살아가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개미들은 여러 생물들과 협력하여 더 큰 생존 이점을 얻고, 유기적으로 얽힌 자연 속에서 공존하며 협력의 가치를 몸소 보여 준다.
마지막으로, 8장에서는 불청객들로 고통 받으면서도 다른 생물들에게 위협이 되는 개미의 양면성을 조명한다. 자연의 개미는 단순히 부지런하고 협력적인 생물 이상의 복잡한 존재로, 적응과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며 자연의 생태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모든 상황, 모든 생명에게는 다양한 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되새겨 보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자연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조화를 이루는 개미들의 삶을 엿보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운영 방식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다. 작지만 강렬한 생명들이 만들어 내는 복잡한 세계를 탐험하며, 우리 역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개미들이 보여 주는 생존의 지혜를 통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협력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를 저자는 기대한다.
개인적으로 독자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와 비교하지 못할 만큼의 지능을 가진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단어인 줄 알았던 '집단 지성'이란 문구가 동물, 특히 작은 곤충에도 적용한 부분이다. ‘집단지성’이란 여러 사람이 의견을 공유하고, 각자의 능력을 쏟아 부으며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는 모습을 가리킨다. 이러한 집단지성의 중요성은 다양한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다. 저자는 '집단 지성'이란 개념이 미국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가 개미 사회를 관찰하다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밝힌다. 개미는 매우 작은 곤충이지만, 수천에서 수백만 마리가 모이면 놀라운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개미는 물류 시스템, 인터넷 네트워크, 인공지능 알고리즘 등 여러 분야에서 참고할 정도로 길 찾기의 달인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들 문구와 관련된 부분을 이 책의 각 장에서 다루고 있기도 하다. 개미들은 먹이를 찾을 때 페로몬을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최적의 길을 찾아낸다. 개미가 먹이를 발견하면 페로몬을 분비해 다른 개미에게 길을 안내하고, 이를 따라가는 개미들이 더 많은 페로몬을 남겨 먹이로 향하는 최적의 경로가 만들어진다. 또한, 평균 44톤의 흙을 파내어 거대한 농장을 만들기도 한다. 철저한 역할 분담과 협력으로 복잡한 터널과 방을 만들고, 그 안에서 곰팡이를 재배해 먹이로 삼는다고 한다.
개미 사회가 인간 사회와 닮았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미는 효율적으로 먹이를 찾고, 집을 짓고,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을 세우며, 서로 간단한 신호를 주고받아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마치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서로 협력하며 인생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개미들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복잡한 사회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식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생존의 원칙을 몸소 실천하기에 우리에게도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 책은 지혜롭게 살아가는 개미들의 세계 속으로 우리를 안내해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저축해 부자가 되기 어려우니 가상화폐나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 개미 세계에도 목숨을 담보로 하여 다른 개미집을 통째로 노리는 이들이 있는데, 바로 기생성 개미들이다. 이들은 다른 개미에 기생하며 원래 잘 살고 있던 여왕개미를 죽이고 그 개미 군체의 여왕개미 행세를 하며 왕국을 통째로 접수한다. ‘살아남기’라는 하이 리턴을 위해 개미들은 목숨을 걸고 다른 개미집의 권력을 찬탈한다. 어떤 기생성 개미들은 다른 개미집을 공격해 그 개미집의 애벌레와 고치를 훔쳐와 자신들을 위해 대신 일해 줄 노예로 부린다. 우리의 시선으로 보기엔 참 잔혹하기 그지없다. 개미 사회를 들여다보면 놀랍고 때론 불편할 정도로 사람들의 어두웠던 역사와 닮아 보이기도 한다. 사회성 기생 개미들이 벌이는 잔혹한 드라마는 외딴 정글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희귀한 현상이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여러분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p.156) - 「노예 제도가 합법인 사회」 중에서
저자 : 동민수
개미 진화생물학 연구자. 중학생 때 개미의 매력에 푹 빠진 뒤로 북남미, 유럽,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직접 개미의 생태를 관찰했다. 강원대학교에서 응용생물학을 전공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 P3(Prospective PhDPreview) 과정을 수료하고 일본 오키나와과학기술원(OIST) 생명복합다양성 실험실에서 연구인턴으로 근무했다. 현재 독일 프리드리히 실러 예나대학교, 예나 계통진화박물관, 프랑크푸르트 젠켄베르크 자연사박물관에서 개미의 진화생물학을 공부하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생태연구소에서 곤충 CT를 분석하는 일도 하고 있다.
개미의 매력은 알면 알수록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점에 있다. 개미는 크기는 작지만 놀랍도록 복잡한 생태와 다양한 생활 방식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 살며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난관에 부딪힐 때면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농사와 목축을 하는 등 고도의 경제 활동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다투거나 속임수를 쓰고, 전쟁을 벌이거나 다른 개미를 노예로 부리기도 한다. 마치 인간 사회처럼 말이다. 『내 발밑의 검은 제국』 책에서는 개미 사회의 여러 모습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내용을 선별해 소개하고자 했다. 개미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며, 그들의 행동과 생활 방식을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 사회와 닮은 이 작은 생명체의 놀라운 지혜를 통해 우리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저서로는 《부지런한 일꾼 개미》, 《한국개미사전》, 《한국개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