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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김요한 지음 / RISE(떠오름) / 2025년 7월
평점 :

<북카페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아무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 삶에 대하여」, 「이제, 살아야 한다.」가 이 책 『각성』의 첫 장과 마지막 장에 적힌 글귀다. 이 문구들은 표제어 '각성'과 잘 조화를 이룬다. 의도적으로 써넣은 문구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삶에 대해 되돌아보고, 그 끝에서 '살아야 한다'고 깨닫는다는 말과도 뜻이 통한다. 살아보고, 사유하고, 그리고 깨달음의 삶을 지속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 운영자이자 저자인 김요한은 이 에세이집의 소개글에서 비슷한 말을 내놓는다. "사람은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그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돌아야 하는가.
이 책 『각성』은 단순한 위로를 거부한다. 따라서 이 책에는 긍정도, 희망도, 달콤한 말도 없다. 대신 단 한 줄의 진심만 남는다. "지금 이대로는 무너진다." 무뎌진 감정, 흐릿한 중심, 피로한 관계, 반복된 실패는 각성의 주 대상이다. 이 책은 그 모든 균열을 해부하고, 어디서부터 다시 살아야 하는지 정확히 짚어준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을 줄이고, 기준을 세우고, 감정을 정리하라."고 제언한다. 이 책은 저자의 각성 훈련의 기록이자, 생존의 기술이다. 끝까지 살아남고 싶은 사람을 위한 단 한 권의 에세이집에 담긴 적지 않은 문장들. 저자가 사유하고 실천하고 다시 각성하고 난 남은 한 줄의 진실한 문장들이다. 저자는 모든 것을 잃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당신에게 "지금, 각성하라."고 강조한다.
이 책 『각성』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다. 흔들리는 인간의 구조를 해부한, 단단한 생존의 문장들이 줄을 잇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감정을 위로하거나 관계를 포장하는 방식 대신, 감정의 정리, 관계의 정돈, 자기 기준의 회복을 통해 삶을 근본부터 다시 세우려는 사람들을 위한 ‘훈련서’이다. 저자는 100개의 짧고 단호한 2음절의 단어들을 실천과 사유로부터 추출한 것들이다. 따라서 이 단어들은 하나하나 그 자체로 독립된 통찰이며, 동시에 하나의 흐름 속에서 점점 더 깊은 자기 해체와 재구성으로 나아간다.
책의 초반부는 감정과 관계로부터 흐트러진 개인의 상태를 직시하게 만든다. 말이 많고 소음에 반응하며 중심 없이 살아가는 일상의 파편을 정확히 짚어내고, 말보다 감정의 리듬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첫 단어 「진동」(1절)에 대해 깊은 사유의 변을 보인다. "사람은 우연히 어울리지 않는다. 모든 관계엔 파동이 있다. 진동수가 다르면 아무리 애서도 끝까지 어긋난다." 저자의 해설(실천)이 잇따른다. "억지로 웃는 자리, 괜히 말 많은 순간, 목소리가 자꾸 작아지는 관계. 이미 답은 거기 있었다. 맞지 않는 곳에 계속 남아 있는 건, 어리석음이고, 욕심이고, 비겁함이다. 지나고 나서야 보였다. 혼자인 게 아니었다. 혼자인 척, 살아 있는 척, 연결된 척. 오래도록 그런 척만 하고 살았다."라고 쓰고 있다. 자신이 주도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고 성찰한다. 그러나 깊은 깨달음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에 대해 성찰의 깊이를 한층 깊게 들어간다. "깨달음은 크지 않았다. 사람을 줄이고, 말을 줄이고, 핑계를 줄였다. 줄이는 건 버리는 게 아니었다. 밀도를 높이는 거였다." 어설프게 깨닫고 대충 꿰맞춤으로는 올바른 대인 관계에 이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결국 크게 깨닫게 된다. 관계는 상태다. 흐트러진 사람들 틈에 있다면, 흐트러진 건 내 안이란 깨달음에 이른다. 거기서 비로소 소음이 사라지자 고요가 들렸다고 토로한다. "그 고요 속에서야 비로소 본래의 나를 봤다."고 한다. 누구의 리듬에도 맞추지 않고, 흉내를 내지 않고, 억지로 웃지 않고,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곳에서만 존재했다고 고백한다.
중반으로 갈수록 이 책은 더 냉정해진다. 무너짐의 반복에는 반드시 습관이 있으며, 결국 자신을 무너뜨리는 건 대부분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방식이라는 것. 그 통찰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실제 삶을 바꾸기 위해 감정을 조율하고 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생존 전략으로 이어진다.
「사랑」(41절)에 대한 저자의 말에 귀기울여 본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그 말의 무게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당신 앞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그 모든 걸 포함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p.93) 여기서 당신과 함께하겠다는 말은, 내가 살아온 모든 과거를 내려놓고 당신과 함께할 시간을 위해 새로 태어나겠다는 뜻임을 저자는 단언한다. 즉 내가 당신의 남편으로 살아간다는 건, 좋은 사람이라는 말보다 먼저, 당신에게 해롭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이라는 것이다. 당신 앞에서 더 이상 내 인생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선택하겠다는 다짐이 '사랑'이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역시 사랑은 우리 삶의 가장 크고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저자는 「사랑」에 이어 「소각」(42절)에서도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랑은 부드럽게 시작하지만, 끝은 항상 날카롭다. 처음엔 가볍게 스며들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의 모양을 지워가기 시작한다. 성격이 변하고, 말투가 달라지고, 자기 기준이 무뎌진다. 사랑이 깊어졌다는 증거는 감정이 아니라 손상이다."(p.95) 사랑은 사람을 무너뜨리며 다가온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저자가 사유한 사랑이 단계적으로 깊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처음엔 껍질을 벗긴다. 겉으로 붙이고 있던 단단한 말투, 체면, 이성 같은 것들을 하나씩 걷어낸다. 그다음엔 분류한다. 필요 없는 생각은 밀어내고, 필요한 가정만 남긴다. 거기까지 오면 이미 어느 쪽으로든 선택이 불가능해진다. 이후엔 갈아버린다. 사랑을 갈아 일관성과 자존감을 부순다. 자기 확신이 있던 영역이 모조리 백지화된다. 말은 줄어들고, 호흡은 거칠어지고,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표정을 분석한다. 그때쯤이면 자신이 사랑받고 있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사랑은 재구성'이란 결론에 이른다. "완성된 인간을 부숴서 다른 구조로 다시 짓는 작업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파괴와 소각의 단계가 포함된다. 사람을 빵처럼 구워내는 게 아니라, 가루로 만들어 태우는 과정이다. 태워진 사람만이 이후의 삶에서 쓸 수 있는 감각을 얻는다. 실천-파괴-소각-재구성의 구조를 사유해 낸다.
43절에서 저자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접근하고 사유한다. "사람들은 사랑이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그래서 점점 더 안전한 사랑만 찾는다. 확신 없는 시작은 피하고, 상처받을 가능성이 보이면 거리를 둔다. 말은 주고받지만 감정은 비껴가고, 함께 있어도 고요할 뿐, 깊어지지 않는다."
요즘 '사랑의 얕음(淺)'을 지적하는 말이다. 즉 이해 관계에 치중하는 듯한 사랑의 가벼움을 꾸짖는 것이다. 저자는 요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다. 요즘은 사랑도 컨트롤하려 든다. 강도 조절, 속도 조절, 감정 조절, 불확실한 건 감정 낭비라고 치부하고, 의심이 들면 먼저 물러나고, 기대하기 전에 출구를 찾는다는 것. 그래서 다들 관계는 잊는데, 기억은 없다는 말이다.

후반부로 가면 『각성』은 본격적인 절단과 복원의 구조를 보여준다. 무엇을 지워야 하는가, 누구를 정리해야 하는가, 어떤 기준으로 남은 감정을 다스려야 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저자는 ‘미뤄둔 삶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독자의 판단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마지막 10여 개의 절들은 인간관계, 감정, 중심, 집중, 구조, 단가, 태도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삶을 재정렬하는 ‘감정 없는 정리의 미학’을 제시한다.
70절 「징후」에 이르면 "누군가 이유 없이 싫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단언한다. 설명은 안 되지만 몸이 먼저 반응한다면, 이미 감지된 것이다. 머리는 속아도 감정은 속지 않는다. 이성은 타협을 하고, 예의는 무시를 덮지만, 기분은 본질을 먼저 알아차린다고 주장한다. 이유 없는 거부감은 대개 오래 참은 감정의 요약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아무 일 없었지만 불편하고, 말 한마디 없었는데 피로하다면, 그건 반드시 언젠가 증명된다고 강조한다.
"사람을 싫어한다는 감정은 절대 가볍지 않다. 대부분은 무시하고 지나가지만,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처음의 그 불쾌감이 맞았다는 걸. 사람은 말보다 공기를 통해 상대를 인식한다.(p.162)
저자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거나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작은 이유를 놓치기 때문으로 규정하는 것 같다. 억지로 웃으며 대화하더라도 마음 한구석은 긴장을 놓지 않는다. 그 긴강감은 이유 없이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판단이 아니라 감각이고, 감각은 생존에 가깝다. 그걸 무시하는 이유는 대체로 관계를 맺는 법만 배우고, 관계를 끊는 감각은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가장 날카로운 자기 보호는 싫다는 감정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보다, 위험한 사람을 먼저 피하는 능력이 더 절박하다. 설명 없이 불편한 관계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소모시킨다. 감정이 먼저 꺼지려는 사람과는, 나중에 이성도 어긋나게 되어 있다."(p.163) 그래서 이유 없는 기피는 무시하지 않고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 『각성』은 읽는 사람을 설득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삶을 끝까지 살아내기 위한, 단 하나의 기준을 찾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문장이다. 그 문장을 끝까지 읽고 나면, 더는 ‘예전처럼 살 수 없다’는 감각이 남는다. 저자는 이 책은 기억에 남는 책이 아니라, 결국 삶의 방식에 남는 책이길 원한다. 이런 저자의 바람은 우선 실천 없는 각성은 무의미하다는 말로 이해된다. 실천, 반복함으로써 「내성」(91절)이 생기고, 깨달음으로써 「절연」(92절)할 수 있다. 감정을 「단속」(94절)함으로써 실패의 반복 이유를 「복기」(95절)를 통해 구조적 오류를 바로잡음으로써 「복원」(98절)해야 한다. 「복원」의 일부를 여기에 기술한다. "사람은 망가졌을 때 누군가를 찾는다. 이해해줄 사람, 들어줄 사람, 위로해줄 사람. 하지만 진짜 복원은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삶이 흐트러졌을 때 필요한 건 설명이 아니라 조용한 수리다. 어디서부터 망가졌는지, 어떤 말에서 무너졌는지, 어떤 감정을 방치했는지 스스로 되짚어야 한다. 감정을 정리하지 않고 위로를 먼저 찾으면, 회복은 미뤄지고 무너짐만 늦춰진다. 타인은 감정을 이해할 수 있어도 구조까지는 만져주지 못한다. 조각난 자존감, 휘어진 표정, 뒤틀린 말버릇은 결국 내가 고쳐야 한다. 무너진 걸 고치는 건 기술이다. 그리고 그 기술은 외로움 안에서만 습득된다.
마지막 장(100장)은 「시작」이다. 아이러니하게 느낄지 모르지만 이 책의 내용은 아이러니가 아니라 '필연성'이 가득 채우고 있다. 필연성을 추출해낸 것은 책의 표제어로 쓰인 '각성'이다. 우리말로 '깨달음'이라고 해도 크게 다른 뜻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절에 가서 시작한다는 말은 "이제, 살아야겠다."는 책의 마지막 문장과 잘 어울린다.
누구나 잘나갈 때는 그럴듯하다. 말이 많고 관계가 빽빽할수록 중심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주변의 반응이 빠르고, 하루가 시끌벅적하게 돌아가면, 마치 삶의 궤도가 정확한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는 그 모든 것이 빠져나간 후에 드러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연락이 끊기고, 계획이 흩어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그 정적 속에서 드러나는 말투, 표정, 생각이 당신의 실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외부 자극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태도, 그게 중심이라고 강조한다.
"지금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면, 그곳이 바로 시작점이다. 남겨진 그 순간이 당신의 전부고,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침묵은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게 한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삶의 방향을 정해주는 건 글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어야 한다."(p.220~221)
저자 : 김요한
떠오름출판사를 운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