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의 죽음에 관하여 매드앤미러 1
아밀.김종일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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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방식으로 ‘의심’을 대하는 두 여주인공의 서사가 펼쳐지는 판타지 호러의 장르적 재미가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초현실적인 설정에서 비롯된 무한 상상의 세계, 사랑의 관계에 대한 은유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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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의 죽음에 관하여 매드앤미러 1
아밀.김종일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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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배우자의 죽음에 관하여』는 출판사 텍스티(TXTY)의 프로젝트로 추진된 실험적 소설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 작품이다. 이 프로젝트는 20년 가까이 국내 장르 소설계를 지켜온 호러 전문 창작 집단 〈매드클럽〉과 환상문학웹진 〈거울〉이 협동으로 "매력적인 한 문장이 각기 다른 작가를 만날 때 어떻게 달라질까?"라는 흥미로운 상상에서 시작했다. 이번 첫 번째 실험작품집은 작가 아밀의 「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것」과 작가 김종일의 「해마」가 콜라보를 이루었다. 

출판사 텍스티에 따르면 매드클럽, 거울과 함께 수십 개의 한 줄 아이디어를 구상한 뒤, 각 작가가 선택한 한 줄을 토대로 16쌍의 작가 매칭을 진행했다. 소속은 다르지만 공통 한 줄로 만난 두 작가는 크루의 성향과 자신의 개성을 살린 한 쌍의 중편 소설을 기획했다. 여기에 장르적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호러·스릴러적 색깔도 가미했다. 그 첫 작품집이 바로 아밀 작가의 「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것」과 김종일 작가의 「해마」를 담은 『배우자의 죽음에 관하여』이다. 두 작가에게는 공통 한 줄로 ‘행복한 신혼, 죽음에서 돌아온 남편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이다. 공통 한 줄이 작가들에게 어떤 상상을 불러 일으켰을까?란 관점으로 소설을 읽으면 즐거움이 한층 더 클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것」은 여주인공 '은진'의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은진은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외면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믿는 미학자이다. 은진의 남자 친구인 동우는 가난한 무명 소설가지만 은진과 같은 가치관을 갖고 그녀를 늘 응원하는 존재이다. 소위 잘 사는 집 딸 은진은 그런 동우에게 아낌없이 금전적 지원을 베풀었고,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두 사람은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결혼식 날 밤, 은진은 동우가 친구와의 통화 중 자신에 대해 험담하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된다. "혐오스러울 만큼 못생겼지만 돈 때문에 참고 결혼한 거"라고. 은진은 분노한다. 그러나 정작 동우는 그저 상황을 무마하려고만 한다. 심지어 은진을 억지로 끌어안고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기 시작한다. 공포에 휩싸인 은진은 온 힘을 다해 동우를 밀어내고, 그는 중심을 잃고 넘어져 협탁에 머리를 찧어 죽는다. 패닉에 빠진 은진은 거리를 배회하다 한 노부인을 만난다.



같은 책 '공통 한 줄'의 또 한 작품 「해마」에서는 웹소설 작가 '회영'이 등장한다. 그녀는 요즘 악몽에 시달린다. 1년 전 그녀의 기억을 가져갔던 교통사고가 꿈에서 매일 같이 재현된다. 두 차가 정면충돌하고, 가해자가 웃는 얼굴로 앞 차창을 뚫고 날아와 남편 시광과 부딪쳐 한 덩어리가 된다. 회영이 남편에게 악몽에 대해 털어놓자 시광은 대학 동창인 정신건강전문의를 소개한다. 검사 결과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는 진단을 받은 회영은 한결 홀가분한 기분으로 치료에 전념하려고 하는데, 1년 전 교통사고 가해자의 여자친구 송아람이 회영의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내가 네 남편을 살려줄 수 있다. 단, 조건이 있어. 살해당한 오늘의 기억을 절대 일깨우면 안 돼.”

두 작품을 태어나게 한 주인공은 이 실험작품집을 구상한 텍스티다. 실험 소설이니만큼 작가의 독창성이나 문장력에 의존하기보다는 스토리와 유기적 구성으로 얼마나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느냐가 소설의 성공 여부를 가름할 의미 있는 시도다. 즉 소설 작품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실험적 시도라는 데 중점을 두고 읽는 것이 독자들에게 더 흥미로울 것이라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출판사 측 작품 소개글에 따르면 행복한 신혼 생활을 꿈꾸던 두 명의 주인공(「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것」의 은진과 「해마」의 희영)은 각자의 남편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었다. 남편은 ‘내게 사랑을 가르쳐 준’ 사람이었으며(「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것」), 진창과도 같은 삶을 꽃길로 만들어 준 사람이었다(「해마」). 그러나 결혼 후, 남편의 낯선 면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주인공을 감시하고, 남들 앞에서 극심한 모욕을 하는가 하면 힘으로 제압하려 하거나 끔찍해 보이는 동물 실험을 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평생 함께하자던 약속이, 함께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 이르러 족쇄가 되었다. 과연 두 명의 여성은 어떤 선택하게 될까.



이처럼, 「아름다움~」와 「해마」는 여성 주인공과 그녀의 남편 사이에서 발생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인상적인 '가정 스릴러'이다.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가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기념비적인 가정 스릴러 소설이라면, 국내에서는 서미애 작가의 『잘 자요, 엄마』와 김진영 작가의 『마당이 있는 집』이 큰 인기를 끌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K-가정 스릴러의 명맥을 이을 작품으로, 텍스티는 아밀 작가와 김종일 작가의 『배우자의 죽음에 관하여』를 자신 있게 선보인다.

두 작품은 공유하고 있는 공통 한 줄 만큼이나 강렬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아름다움~」의 은진은 남편이 자기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사실을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 마주한다. 「해마」의 회영은 낯선 이로부터 남편 안에 다른 존재가 들어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로 인해 행복해야 하는 신혼 생활에 ‘의심’이라는 균열이 생긴다. 이렇듯 두 이야기는 비슷한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각기 다른 개성과 강점을 가진 작가를 만나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진 이야기로 확장된다.

「아름다움~」에서 은진은 의심을 애써 외면한다. 은진은 동우로부터 평생 그녀가 좇아온 신념을 송두리째 흔드는 비난을 듣고 동우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게 되지만, 죽음에서 돌아온 동우가 기억하지 못하기에 처음부터 없었던 일이라 여긴다. 결국 갈 곳을 잃은 의심의 에너지는 그녀 안으로 향하여 영혼을 좀먹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 심리의 미묘한 지점까지 탁월하게 포착하는 아밀 작가답게 인물의 다층성을 흥미롭게 부각한다. 배신당했지만 사랑받고 싶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예뻐지고 싶고, 미학자이지만 세속적 성공을 열망하는 아이러니가 중복되면서 한 곳을 향해 치닫는 작품에 비해 독자들에게 더 많은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출판사 측의 판단일까? 아니면 현재 우리 사회의 대인관계에 다중적 캐릭터로 대하는 현실에 대한 작가적 시선의 동기일까? 아무튼 한 번 읽으면 쉽게 잊히지 않을 인상적인 작품이다.

「아름다움~」와는 반대로 「해마」에서 회영은 의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남편의 정체를 파헤치기로 한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본능은 멈추라고 말하지만 끝내 위험에 뛰어든다. 금기를 어기고 추적할 때 긴장감이 만들어지고, 믿었던 이의 이면이 드러날 때 공포가 피어오른다. '한국 공포 소설의 대가'로 불리우는 김종일 작가의 작품답게 속도감 있는 전개와 생동감 넘치는 묘사는 여전히 돋보인다.



한편 「아름다움~」와 「해마」가 공유하고 있는 ‘죽음에서 돌아온 남편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는 공통의 설정은 초현실적인 면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사랑의 관계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은유이기도 하다고 출판사 텍스티는 밝히고 있다.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던 상대에게서 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한결같던 사람의 충격적인 이면을 발견하는 것이 연애의 과정이자 결혼 생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 앞에서 과연 우리는 사랑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반응할까? 

소설이기에 가능한 설정에 소설이니까 두 작품은 이에 대해 명쾌한 정답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를 바꾸는 것’에 집착하는 은진과, 상대에게서 문제의 근원을 발견하려는 회영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그들의 삶을 조명으로써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이는 소설 속 상황이나 사건이 자신에게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까?라는 문제 의식을 독자들에게 던지는 방식이다. 독자들의 관심은 한층 집중되고 소설 속 대화조차도 놓치지 않으려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는 갈등을 대하는 우리의 전형적인 반응이기도 하다. 이런 방식은 작가가 설계한 탁월한 장르적 재미에 빠져 정신없이 이야기를 따라가다가도 이따금 현실이 떠올라 씁쓸하기도 하다. 그리고 독자들은 질문하게 된다. 사랑의 관계를 지속하는 동안, 변함없이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독자들은 이에 대해 당장 답을 내리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낙관적인 것은 다시는 안 볼 듯 격하게 싸워도, 몇 번씩 이별을 되풀이할지라도,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고, 의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니까. 부디 이 두 편의 이야기가 사랑에 대한 모의실험이 되어 독자들이 가까운 이들과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에 도움이 되면 작가로서는 성공한 셈이다. 사회 상황, 인간 관계의 갈등을 푸는 방식을 소설에서 제시하고 그에 따르기를 은근히 종용하는 방식은 고전 소설에 많다. 고전 소설을 탐독하는 독자들은 그 소설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도 매몰될 수도 있다. 고전 소설에 매몰된 독자들이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의 갈등 해소 방식에는 미숙할 터다. 좋고 나쁜,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도덕적이나 비인륜적이냐의 문제도 아니다. 양심과 이성이 있는 인간은 현대적이다. 갈등과 부조리가 밖으로 현저하게 드러나는 근대식 소설 형식과 세계관은 현대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현실의 인간은 다중적 캐릭터와 다중적 인간 관계에 능숙하다. 따라서 이 소설이 제시하는 답을 구하려는 독자는 이미 현대식 사고 방식의 소유자일 것이다.



출판사 편집진은 실험적 소설집이니만큼 전례없이 파격적 편집 방향이 보인다. 책의 뒷 부분에 두 작가에게 공통 질문을 하는 인터뷰를 실었다. 〈7문 7답〉이다. 7가지 공통 질문이다. 독자들은 이 질문에 답해보든지 기억나지 않거나 의식하지 않고 읽어서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면 안 해도 상관없다. 이 질의 응답은 소설 작품집 안에 함께 싣는 경우는 없으니까. 다만 독자들의 실험 소설이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출판사가 의도한 질문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소설의 재미를 더하고, 다시 생각해볼 이유를 찾는다면 이 질문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답을 찾은다면 다른 어떤 소설을 읽더라도 작가의 의중을 파악하고자 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① 지금의 공통 한 줄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셨나요? ② 한 줄을 지금의 이야기로 기획하면서 스스로 가장 재미있다고 느끼셨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③ 원고를 쓰면서 가장 고민하셨던 지점은 어떤 부분인가? ④ 원고 중 가장 만족하시는 장면은 어떤 대목인가요? ⑤ 상대 장면 가져오기 미션에서 그 부분을 가져오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⑥ 상대 작가님의 작품을 읽어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을 가지셨나요? ⑦ 끝으로 작품을 읽으신 독자님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두 작가의 답변 중 한두 개의 의미 있는 답변, 흥미로운 답변을 여기에 발췌해 적어본다. 먼저 「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것」를 쓴 아밀 작가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역시 주인공인 은진의 심리 흐름인 것 같아요. 은진의 심리는 불안정하고 또 극단적인 변화를 겪는데, 그런 은진의 이야기 방식이 독자의 기대를 증폭시키기도, 또 배반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쓰는 '맛'이 이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아름다움에 관한 제 평소의 고민들도 이 소설을 계기로 풀어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현대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늘 아름다운 대상이 되기를 요구받으며 살아가는 경향이 있는데요.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능과 진정한 미의 가치가 여성들이 겪는 폭력적 현실과 어떻게 교차하고 또 반목하는지에 대해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 지점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p258~259)

네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은진이 동우를 죽이는 장면. 폭발적인 감정의 분출이 필요한 장면이었고 은진이 느끼는 배신감과 자괴감이 살인까지 이어지는 동력이 되어야 했는데, 그런 감정을 효과적으로 살려낸 것 같아서 만족스러워요. 쓰는과정도 재미있었고요."



「해마」를 쓴 김종일 작가는 첫 번째 질문에 공들여 답변한다. "행복한 신혼, 죽음에서 돌아온 남편이 문득 낯설게 느껵진다는 미스터리와, 일생 중 가장 행복한 시기에 가장 불행한 사건과 맞닥뜨린다는 아이러니에 끌렸습니다. 행복과 불행, 기억과 망각, 삶과 죽음은 정반대의 개념 같지만,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 순식간에 뒤집히기도 하며, 심지어 둘이 한데 뒤섞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어느 한 사건을 두고 제 기억과 아내의 기억이 전혀 달랐던 적이 있습니다. 제 기억이 너무나 또렷했기에 자신만만하게 10만 원 내기를 걸었는데, 진상을 알고 보니 제 기억이 틀렸고 아내의 기억이 맞았더군요.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왜곡 가능성을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10만 원이라는 판돈을 어이없게 날리고서야 깨달았지요. 그 뒤로 인간사에서 해도 되는 호언장담이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라는 진리뿐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공통 한 줄을 봤을 때 그런 경험과 가치관을 승화하기에 딱 걸맞은 이야기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한 줄을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이 한데 뒤얽힌 이야기로 풀어보자고 결심했습니다.(p.262)


저자 : 김지현(아밀)


소설가이자 번역가, 에세이스트. ‘아밀’이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김지현’이라는 본명으로 영미문학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창작과 번역 사이, 현실과 환상 사이,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문학적인 담화를 만들고 확장하는 작가이고자 한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소설가이자 영미문학 번역가. 단편소설 「반드시 만화가만을 원해라」로 대산청소년문학상을, 단편 「로드킬」로 SF어워드를, 중편소설 「라비」로 2020 SF어워드 중·단편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아밀’로서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필진으로 단편소설을 다수 발표했다.

공동 작품집 『22세기 사어 수집가』,에 단편 「언어의 화석」을, 『여성작가 SF 단편모음집』,에 「로드킬」을,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2』,에 「방문자」를 발표했다. 옮긴 책으로는 『복수해 기억해』, 『흉가』, 『레딩 감옥의 노래』, 『캐서린 앤 포터』,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게스트』, 『캐릭터 공작소』, 『신더』, 『오늘 너무 슬픔』 등이 있다. 단편소설을 모아 소설집 『로드킬』을 냈다. 환상적인 이야기, 상상 속의 음식, 상상력을 자극하는 단어들을 좋아한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본 적 없는 풍경을 생생히 옮기는 번역자로서, 이야기의 집을 짓는 작가로서 어린 시절 책 속으로 떠나던 모험의 ‘유산’을 종종 느낀다. 그 매혹적인 탐험, 상상 속의 음식들, 원어와 번역어 사이에서 빚어지는 달콤한 오해를 나누고 싶어 산문집 『생강빵과 진저브레드―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책을 썼다.


저자 : 김종일


1975년 천안에서 태어났다. 엄격한 가정교육 하에 바르게 생활하는 모범생으로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여린 천성 탓에 사소한 일에도 상처를 입던 동심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배웠고 아홉 살 때부터 소설을 습작하며 작가적 소양을 쌓았다. 2004년 『몸』으로 국내 대표적인 장르문학상인 황금드래곤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장편소설로는 『손톱』, 『삼악도』 등이 있고,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 『과학액션 융합스토리 단편선』 시리즈 등 다양한 단편선에 참여했으며 윤태호 원작 만화 「이끼」를 소설화했다. 네이버 웹소설에 『마녀, 소녀』와 『나만의 스킨십 능력자들』을 연재했고, 호러와 스릴러를 넘어 미스터리와 판타지 로맨스까지 장르적 스펙트럼을 넓히며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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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의 정신과 의사 - 치료와 형벌 사이에서 생각한 것들
노무라 도시아키 지음, 송경원 옮김 / 지금이책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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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닿지 않는 담장 너머의 세상, 교도소 내 정신과 의사가 그려낸 또 하나의 의료현장이다. 그곳에서 한 정신과 의사는 범죄와 정신질환과의 관계에 대한 진료와 숙고를 거듭한다. 이 의사는 경험과 통계 분석을 통해 사회적 책임의식을 강조하며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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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의 정신과 의사 - 치료와 형벌 사이에서 생각한 것들
노무라 도시아키 지음, 송경원 옮김 / 지금이책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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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사는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갖춘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국가의 권력을 선거로써 뽑은 사람에게 맡기는 제도다. 또 자본주의는 시장 경제와 자유 경쟁을 근간으로 하는 것을 이르는 경제적 제도다. 우리는 이 체제를 시작한 지 100년도 안 된 나라다. 그러나 두 개의 분야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치열한 싸움을 통해 가장 빠른 속도로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룬 나라로 지칭되고 있다. 지금은 선진국 대열에도 들어섰다고 평가받고 있다. 수백 년 동안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싸워온 나라들의 수준에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자긍심은 갖고 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만큼 과정 상의 부작용도 많았고, 또 결과적으로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현상도 일부 벌어지고 있다. 법이란 게 결국 공동선,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에게는 일정 기간 사회와 격리한다는 '법의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이런 법을 집행하는 곳이 교도소다. 과거에는 감옥, 형무소(일본식 명칭)란 명칭을 썼지만, 대한민국은 1961년부터 죄 지은 사람들을 재판에 의해 일정 기간 격리하고 사회로 복귀시키는 교정 기관이라는 의미의 교도소(矯導所)로 지칭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교도소를 법무부장관 소속 하에 설치·운용하며 법무부에는 그 주관 기구로 교정본부가 있다. 각 교도소는 소장 1인(큰 교도소에는 부소장도 있음) 아래 수 개의 과(課)를 둔다. 과의 명칭은 총무과·보안관리과·작업훈련과·교화교육과·보건의료과·복지지원과 등이다.(두산백과) 법의 정확한 명칭은 모르지만 '교정시설에 관한 법'을 따로 두어 이 같은 시설이나 업무를 전담하는 공무원을 배치하는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재소자들의 최소한의 편의와 건강 등 기본적 권리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일본도 거의 비슷한 법과 시설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이상은 이 책 『교도소의 정신과 의사』의 저자가 일본인 의사이기 때문에 일본의 교정 시설에 대한 기초적 지식을 갖추기 위해 일부 백과사전의 풀이를 더했다. 교도소에 전문의가 배치된다는 사실은 흔히 알려진 사실은 아닐 것이다. 독자 역시 의무 시설은 있지만 전문의가 배치될 정도로 교도소가 배려하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 들었다.



저자 노무라 도시아키는 책의 앞 부분의 〈서문(시작하며)〉을 통해 "이 책을 교정시설에서 오랫동안 정신과 의사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말한다. 이곳(교도소)에서 저자가 경험한 여러 일 중 일부를 글로 옮겨 엮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교정시설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그 후로 이따금 부딪치게 됐던 몇 가지 문제를 두고 생각했던 것들과, 중간중간 이와 관련해 의료기관에서 겪은 일들도 책에 담았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가 이 같은 한계를 미리 밝히는 것은 아마 일본 전체 교도소의 상황이 모두 이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두는 것이라고 독자에게는 읽힌다. 뒤에 있을지도 모를 부작용을 예단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예컨대 저자가 겪은 교도소의 경험은 특정 교도소에 국한된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 등 이 책을 읽은 사람들 중에 "일본의 모든 교도소가 상황이 이렇다"고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경우 자칫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일 것으로 독자에게는 이해한다. 

저자는 상근과 비상근을 합쳐 20년 이상을 교정시설에서 정신과 의사로 근무했다고 말한다. 비상근과 의료공조(상근의사가 다른 시설에서 진료하는 것)을 합하면 열 곳이 넘는 시설에서 진료를 보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자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교정의료에 몸담아온 의사들이 많기에 『교도소의 정신과 의사』라는 제목을 붙이려니 약간 주저되기도 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이중적인 의미도 포함하고 싶어 굳이 이대로 세상에 내놓기로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가급적 많은 사례를 들어 좀 더 생생하게 사실을 전달하고자 했으며, 그 과정에서 각 사례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장배경이나 생활환경, 범죄이력 등 몇몇 사항을 크게 수정했다고 밝힌다.

"교도소에 수용되는 이들은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범죄라고 해도 그 유형과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 낯선 행인을 폭행한 사람, 각성제를 팔아넘기려다 체포된 사람, 먹을 게 없어 편의점에서 주먹밥을 훔친 사람, 가족을 간병하다 지쳐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가 본인만 실패하고 살아남아 결국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 등등. 이처럼 교도소에는 온갖 인생이 다 있다. 소년원에는 비행이나 범죄를 저질러 가정법원에서 수용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만 14세 이상부터 만 20세 미만까지의 청소년이 들어온다.* 소년원에도 또한 다양한 삶이 있다. 마찬가지로 구치소나 소년감별소에도 다양한 삶이 있다.(p.8) 

* 한국의 경우 만 14세 이상 19세 미만의 청소년이 수용된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모두 11개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도소 의사로서의 첫발〉, 〈학대가 빼앗아간 것〉, 〈교정시설에서 바라본 가족의 형태〉, 〈보호실에서 들었던 제야의 종소리〉, 〈정신감정은 정신의학의 꽃인가〉, 〈부주의성과 산만함과 관용〉, 〈발달장애는 무엇을 가져왔는가〉, 〈노인의 병과 죄〉, 〈핀란드의 교도소〉, 〈왕진이 가르쳐준 것〉, 〈교정시설에서의 심리치료〉 등이다. 

저자에 따르면 교도소나 구치소, 소년원 등의 교정시설 수감자 중에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법을 어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감시설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주는 불안으로 인해 정신질환을 얻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이미 ‘몸의 구속’과 함께 ‘마음의 감옥’에 갇힌 자들이다. 그러나 법의 현실은 이들의 치료를 가로막아왔다. 극한의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섭식장애가 절도로까지 이어진 소녀, 의지할 곳 없어 좀도둑질을 반복하며 교도소와 바깥세상을 오가는 노인, 심한 정신질환으로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해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구치소에 계속 구금된 남성 등이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각각은 각기 다른 인격과 환경을 가진 사람들이고, 앞으로의 미래도 모두 다를 것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교정시설에서 온갖 인생을 만나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로부터 격리된, 담장 너머 또 하나의 의료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하며 우리가 그동안 애써 외면해온 우리 사회의 그늘진 이면에 한 발짝 다가가게 해준다.

두 번째 장 〈학대가 빼앗아간 것〉에는 한 소녀의 길지 않은 인생이 너무 쉽게 망가진 예가 적혀 있다. 출소를 코앞에 두고 극도의 불안과 흥분으로 발작을 보이는 소녀가 있었다. 어린 나이 때부터 유흥업소를 출입하며 온갖 비행을 일삼아 소년원에까지 왔지만, 소녀에게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이 있었다. 오빠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가족으로부터의 학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소녀는 출소 후 집이 아닌 보호시설로 보내졌다. 하지만 마음이 충분하게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소년원을 나간 소녀는 결국 보호시설에서 도망쳤다.



저자가 부임한 의료소년원에는 이처럼 가족에게 성적 학대를 받고 불안증에 시달리는 소녀도 있고, 아버지의 잦은 폭력으로 인해 자신도 또래 아이들에게 폭행을 가하다 소년원에 들어온 소년도 있었다. 각성제 남용 후유증으로 시설에 들어온 아이들도 많다. 불량 청소년들에 의해 억지로 환각물질을 들이마시고 억울하게 들어온 소년에서부터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고 일찍부터 각성제에 손을 댄 소녀까지 저자는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이들을 숱하게 목격해왔다. 하지만 경찰에 붙잡혀 이곳에 오는 아이들의 경우 ‘증상’보다 어쩌다 환각제에 손을 대게 되었는지 ‘사건’에 주로 초점이 맞춰지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솔직히 소년원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약을 끊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종종 좌절감이 들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학대받은 이이들에 대한 치료 여부를 떠나 아이들이 비행을 저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교도소나 소년원에 근무했던 의사들은 대체적으로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저자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물론 치료 가능 여부를 생각하기 위해서다. 저자에 따르면 학대가 곧 비행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고 말한다. 다만, 영유아기에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안정감이나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한 경우, 안정된 인격을 만들어가지 못하고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심한 불안, 공포, 긴장 등을 느낄 경우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의 반응을 나타낸다. 첫 번째는 불안이나 긴장 등을 모두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불안이 심하거나, 장기간 지속되거나, 또는 그 사람에게 어떤 취약성이 있을 경우 기질이나 체질과 관련되어 우울, 공포, 불안, 긴장, 강박 등 여러 정신증상을 보이게 된다. 두 번째는 불안이나 긴장 등이 신체증상으로 전환되어 나타나는 것(신체화)이다. 두근거림, 발한, 변비나 설사, 어지럼증 등 자율신경증 증상에서부터 일어서고, 걷고, 말하기가 불가능해지는 등의 다양한 신체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과거 흔히 히스테리라고 불리던 전환장애**나 신체화장애***가 이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불안이나 긴장 등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행동화)으로, 이는 한층 더 어떠한 부적응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은둔 형태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도박 중독, 알코올 의존, 섭식장애, 다양한 일탈 행동 등으로 나타난다. 

** 전환장애 : 심리적 갈등에 의해 주로 운동이나 감각기능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는 질환을 말한다.

*** 신체화장애 : 심리적 원인이나 갈등이 여러 가지 만성적이고 복합적인 신체증상으로 나타나는 질환을 말한다.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부모와 가정의 문제만으로 청소년 비행과 범죄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대체로 소년원 내 아이들의 많은 가족이 가난하고 갈등으로 가득 차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고립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저자는 이들에게 필요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복지적 배려와 꾸준한 지지”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이런 배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은 소년원뿐만 아니다. 일반 재소자들이 있는 교도소의 노인 문제도 심각하다. 여덟 번째 장 〈노인의 병과 죄〉에서 한 노인의 사례를 든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의 남성이 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던 아내를 살해한 죄로 수감되었다. 수년간의 간병 생활이 불러온 비극이다. 이 남성 역시 경증이기는 해도 치매를 앓고 있었다. 그러니까 치매를 앓는 아내를 보살피던 남편 역시 치매에 걸렸고, 이에 앞날을 비관하여 소위 ‘동반 자살’을 꾀했으나 자신만 살아남아 살인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이 노인은 자기 행위를 반성하기는커녕 자신이 교도소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될 것이다. 과연 이 형벌이 의미가 있을까. “노인 수감자 중에는 절도나 무전취식 같은 경범죄뿐만 아니라 살인, 살인미수, 상해치사 등 중대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평생을 범법행위와는 거리를 두고 살다가 나이 들어 처음으로 그런 중대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관심이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부분 가족을 상대로 한 범죄였고, 간병 끝에 벌어진 범죄였다.”

인구 감소로 인해 수감자의 절대 수는 점점 줄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젊은 세대의 범죄율은 감소 추세다. 이에 관한 많은 분석이 있지만, “학교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과거에는 폭주족이 되어 거리로 몰려나왔다면, 요즘은 대체로 집에만 틀어박혀”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는 견해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교도소가 교도소 밖의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고령 인구의 범죄율은 증가하고 있다. ‘경제적 빈곤’, ‘고령자의 사회적 고립’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가령, 해고로 일자리를 잃고 노숙자가 되어 도둑질을 일삼다 붙잡혀 들어온 사람, 아픈 배우자나 자식을 수십 년간 돌보다가 더는 여력이 없어 이들을 죽이고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람, 치매를 앓고 인지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까지···.



저자는 일본의 법률에서 정신장애가 의심되는 피의자에 대한 처우는 교도소로 보내지느냐 의료기관으로 보내지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이케다 초등학교 사건을 계기로 2003년 '의료관찰법'이 제정되어 정신장애가 있는 범죄자가 특별한 시설에서 치료를 받는 구조가 마련됐다. 다만 이 법률의 대상은 심신상실(책임무능력)로 인정된 사람이나, 한정책임능력으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사람, 즉 교도소로 보내지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밝힌다. 일단 교도소에 들어가면 아무리 정신장애가 악화되어도 교도소를 나와 의료시설로 옮겨지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게 현실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런 사실은 우리나라 법률과 사법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교도소로 보내지는 이들은 어떤 유무형의 도움과 지원이 없다면 평범한 일상이 어려운 우리 이웃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들을 교도소에 수감하기보다는 복지제도나 의료제도를 개선하는 등 다른 방법을 모색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저자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사회에 시급한 화두를 던진다. 우리로서도 인구 감소, 노령화에 따른 소년원의 미성년자 범죄 유형 조사와 노인 범죄율 증감, 빈곤 노인층에 대한 복지·의료 제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저자 : 노무라 도시아키(野村俊明)


니혼의과대학 명예교수. 정신과 전문의. 1954년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나 1978년 도쿄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교육학연구과 교육심리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전공을 바꿔 니혼의과대학 의학부에 입학, 정신과 수련의를 거쳐 니혼의과대학 부속 제1병원과 다수의 교정시설에서 정신과 전문의로 일했다. 이후 니혼의과대학 의료심리학교실 교수로 재직하다 2020년에 정년퇴임을 했다. 주요 저서로 《비행정신의학非行精神??》(공저), 《비행과 범죄의 정신과 임상非行と犯罪の精神科臨床》(편저), 《심리치료의 기본精神療法の基本》(공저), 《생명윤리의 교과서生命倫理の?科書》(편저), 《심리치료의 실천精神療法の??》(공저) 등이 있다. 2022년 1월 25일, 향년 6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역자 : 송경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교육대학원에서 일어교육을 전공했다. 재미가 일이 되고 일이 재미가 되는 삶을 꿈꾸며,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작품을 기획, 검토 및 소개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현재 소통인(人)공감 에이전시에서도 번역가로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종교의 흑역사』, 『아는 만큼 보이는 세상: 물리 편』, 『같은 소재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글쓰기 매뉴얼』, 『마지막 산책』, 『대중을 사로잡는 장르별 플롯』, 『100세까지의 독서술』,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 『왜 케이스 스터디인가』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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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인생론 - 삶이 너의 꿈을 속일지라도
헤르만 헤세 지음, 송동윤 옮김 / 스타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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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것 같다. 글의 내용에 동양적 관념이 가미되어서일까? 혹자는 그가 불교나 붓다를 공부할 정도로 동양의 심상에 관해 깊이 알고 있는 것 같다는 평가를 한다. 그러나 독자는 그가 우리 청소년 혹은 청년들에게 강조하는 희망과 사랑이란 주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거의 모든 글에는 삶과 사랑이 담겨 있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방황과 좌절, 역경 극복과 열정으로 세상을 끌어가는 희망을 준다. 이 같은 신념은 헤세가 살던 시대적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헤세가 서른일곱이 되던 1914년 8월, 독일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다. 이로써 전 세계가 전쟁의 포화에 휩싸였으며, 민족주의, 군국주의가 독일을 휩쓸었다. 인도주의자, 평화주의자였던 헤세로서는 이런 식의 극단적인 애국주의에 동조할 수 없었고, 독일 국민에게 평화를 호소하는 글을 발표하자, 이 글로 인하여 독일인들에게 매국노, 반역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헤세는 전쟁 기간에 독일에서 글을 발표할 통로가 막혀 할 수 없이 스위스로 건너가 전쟁포로 구호소에서 일을 도왔다. 이 시기에 아버지의 죽음과 아들의 투병, 그리고 아내가 정신병을 앓는 등 고난이 이어졌다. 그때 헤세는 신경쇠약에 걸려 카를 융의 제자 J. B. 랑 박사에게 정신분석을 받았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작풍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고, 그 변화는 1919년 대표작 『데미안』으로 나타난다. 청소년의 고뇌와 자기 인식을 탐구하는 과정을 그린 이 성장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 후 혼란과 우울증에 빠진 독일 국민에게 큰 영향을 끼치며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 『헤르만 헤세 인생론』은 독일에서 연극영화TV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교수를 지낸 송동윤 감독이 헤세의 글 가운데 '인생'이라는 태마로 삶의 중요한 주제가 담긴 글들을 엄선해서 정리했다. 해세는 톨스토이처럼 『인생론』이라는 제목의 책을 따로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늘 인생이 담겼고 사랑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세월이 지나도 세대와 문화를 초월해 사랑받는 헤세의 작품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젊은이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방황하고, 아파하면서도 식지 않는 열정으로 도전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삶은 저마다 충분히 빛나고 아름답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편역자가 ‘인생론’이라고 붙인 것이다.



편역자는 「꿈꾸며 아파하는 삶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대체로 고뇌하고 방황하며 아파하는 청춘에게 깊은 위안을 주는 것들이 많다. 그는 자신을 시인이자 괴로워하는 자, 탐색자, 고백자로 정의하며, 이러한 자기 인식을 통해 인생의 본질을 탐구했다"고 설명한다. 또 "그의 작품과 생애는 상처와 위기,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간직하면서도 놀랄 만큼 일관된 주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정신에 의해 다스려지는 존재 형식의 가능성, 문화 위기 속에서 인간이 직면하는 도전과 실패, 사랑과 이별과 같은 우리가 살면서 눈앞에 늘 직면하는 현실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다."고 말한다. 

편역자는 헤세에게 영혼이란 '사랑이며 미래'라고 역설한다. 편역자에 따르면 영혼은 우리에게 위대한 모습을 이루도록 하는 원천으로, 사랑이란 모든 것을 자신의 중심으로 끌어들여 시간을 극복하고, 비평, 교양과 지성이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다. 헤세는 인간이 사랑을 통해 현실을 초월하고 영원한 신의 미소 속에서 웃음을 되찾는 순간을 행복으로 보았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작품 속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며, 여전히 흔들리며 방황과 고뇌를 거듭하고 있는 청춘들을 어루만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헤세의 사랑에 대한 관점은 예술을 통해 더욱 빛난다고 편역자는 강조한다. "사랑이 예술 속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될 때, 청춘은 그 빛을 더한다. 헤세의 문학은 여전히 흔들리는 청춘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주며, 삶의 여정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그의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진정한 자아와 조화를 이루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p.6~7)

편역자 송동윤의 집필 취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헤세의 작품 중에서 청춘이라는 태마로 삶의 중요한 세 가지 주제인 인생, 사랑, 예술 분야의 글들을 엄선해서 옮겼다. 세월이 지나도 세대와 문화를 초월해 사랑받는 헤세 문학작품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헤세는 당시의 혼탁한 분위기 속에서 절망하고 고뇌하는 이들에게 맑은 공기와도 같은 위안과 희망이 되어주었기다고 편역자는 평가한다. 요즘처럼 우리 젊은이들이 진로의 고민과 막연한 미래 때문에 힘들어하고 인생의 덧없음과 각박한 현실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질 때 읽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낼 수 있도록 청년들을 안내하고자 이 책을 펴냈다고 밝힌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내 작은 인생론〉, 2장 〈젊은 날을 위하여〉, 3장 〈자라투스트라의 부활〉, 4장 〈도스토옙스키에 대하여〉, 5장 〈행복을 위하여〉 등이다. 각 장은 2~10개의 소항목으로 나눠 헤세의 「생애」, 「영혼」, 「언어」, 「시(詩)」, 「독서」, 「전쟁」, 「운명」, 「고뇌」, 「고독」, 「조국」, 「독일 사람」, 「신앙」, 「행복」 등에 대해 쓴 많은 글들을 발췌해 유형별로 묶었다. 각 장의 제목에는 이렇게 묶인 항목들의 소주제에 따라 정해졌다. 다만 4장 〈도스토옙스키에 대하여〉에서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통해 '유럽의 몰락'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백치』에 대한 수상(隨想)을 게재했으며, 「도스토옙스키의 불가사의」란 소주제에서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성과 작가로서의 위대성 등을 극찬하는 내용도 볼 수 있다. 단순한 작품론을 뛰어넘어 그 작품에 갖는 유럽 문명의 종말을 선언하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요청하는 헤세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를 함유하고 있다는 점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다. 

1장 「내 삶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헤세는 "스무 살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 눈에 띈 모든 문학 서적들을 반 이상 읽었으며, 철학과 예술사와 언어학 등에도 끈질기게 집념을 보이면서 수많은 습작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서점의 점원으로 취직을 했다. 그리고 책 속에 묻혀서 처음에는 새로 나온 것들에만 집착하여 읽었는데, 점차 오래된 책과의 관계를 통해 보다 더 정신적인 위안을 받으며 지혜를 터득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물여섯 살 때 최초로 문학상이라는 것을 수상하면서 나는 그동안 호구지책으로써의 책과의 씨름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털어놓는다. 

헤세는 1905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전제적 통치에 반대해 망명 등 험난한 삶의 길로 들어선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암으로 죽자 29세의 나이로 독일제국 황제가 되었다. 젊은 황제는 제국을 보다 강력한 황제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비스마르크를 내쫒는 등 강력한 나라의 기틀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정책을 실시한다. 결국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이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독일은 전쟁의 배상금을 물어줘야 할 상황에 빠진다. 사실상 독일 제국의 종언이다.



시대적 상황에서 헤세는 독일에서 스위스로 옮겨 글을 쓰기 시작한다. 결혼도 하고 정착하려고 마음을 정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헤세는 전쟁이 끝난 1919년 봄, 스위스의 한적한 시골에 들어가 은둔자가 된다. 그곳에서도 헤세는 가업이기도 한 인도와 중국의 지혜에 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새로운 체험이 때로는 동방의 비유로 가득 찬 말로써 표현되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헤세를 '불교도'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한 인간이 개인적으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면 헤세는 마음속으로부터의 동경 때문에 틀림없이 너무나 오래되었지만, 신비에 가득 찬 공자의 말씀을 따랐을지도 모른다고 털어놓는다. 소소한 개인사를 털어놓던 이 책에서 헤세의 소년 시절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시인으로서 등단하고 책을 쓰고 전업 작가가 되기까지의 개인 신상 문제를 아주 건조하지만 깔끔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아버지는 괴테의 시를 읽어줄 정도로 다정다감한 한편 잘못에 대해서는 추상 같은 벌을 주었다고 헤세는 회고한다. 어머니는 걱정과 애정으로 소년 헤세를 지켜보았으며, 아버지는 도덕적인 면을 강조하는 엄한 성격이었던 것 같다. 헤세가 3학년 때의 에피소드와 아버지가 준 편지를 소개하고 있다. 한 가난한 한 직공의 집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깬 일이 있는데 화가 난 직공이 달려와 아버지에게 일러 바치면서 헤세를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며 다니는 악동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헤세를 불러 추궁했으나 과장 왜곡한 직공의 말을 수긍할 수 없어 결코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아버지는 추궁했지만 굽히지 않고 침묵으로 반항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처럼 무거운 집안 분위기에서 지내면서도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추궁도, 윽박지르지도 않았으며 어느날 예정된 1주일 간의 여행을 떠나면서 헤세에게 남긴 편지가 있어서 이 글에서 일부를 소개하고 있다. 

"나는 네가 고백하지 않은 잘못 때문에 너를 벌주었다. 그러나 만약 네가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내게 거짓말을 했다면 앞으로 나는 너와 더불어 말을 할 순 없을 것이다. 만일 그 받래라면 내가 너를 매질한 것은 잘못이다. 1주일 후 내가 돌아왔을 때 우리 중 어느 쪽이 상대편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란다."(p.54)

아버지와의 기억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헤세는 많은 부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다. 라틴어를 좋아했고, 라틴어 학교에 입학할 자격을 인정받은 헤세는 수도원 부속 상급학교에 입학하기까지 1개월의 휴가 기간에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보낼 때 처음으로 괴테의 시를 낭독해주었다는 사실도 밝힌다. 「모든 봉우리에」라는 시로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시였다고 한다. 봉우리마다 / 안식은 깃들고, / 가지마다 / 바람의 / 숨결은 멎고 / 새들은 숲에서 잠잠하다. / 기다리라! 이윽고 / 너에게도 안식은 오리니(p.62)



독자가 '맑은 영혼의 소유자'로 알고 있는 헤세가 쓴 「영혼에 대하여」란 제목의 글이 이 책에 있다. 맑은 영혼 헤세는 영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헤세는 말한다. 영혼이란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어디에나 준비되어 있고, 어디에서나 느낄 수도 있고, 요구되고 있다고. 그러나 우리가 돌이 아닌 동물을 운동의 소유자이며 표현이라고 느끼고 있듯이 (돌에도 운동, 생명, 구성과 해체, 진동이 있겠지만) 우리는 무엇보다도 인간에게서 영혼을 찾고 있다. 우리는 영혼이 가장 분명히 나타나 있고, 괴로워하고, 행동하고 있는 곳에서 영혼을 찾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전에는 두 다리로 걷게 되는 것, 동물의 모피를 벗기는 것, 도구를 연구하고, 불을 만들어 내는 것을 과제로 하고 있었던 것처럼 현재는 영혼을 발전시키는 것을 과제로 하는 세계의 일부분, 즉 특별한 분야기 되어 있다고 헤세는 쓰고 있다. 즉 우리에게 있어서 인간의 세계 전체가 영혼의 현현이 되는 것이다. (중략) 우리가 유물론적으로 생각하거나, 또는 이상주의적으로, 또는 그 어떤 다른 방법으로 생각하거나, '영혼'을 신적(神的)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불타버리는 물질로 생각하거나 마찬기지이며, 우리는 모두 영혼을 알고 있고, 높이 평가하고 있어 영혼이 깃들어 있는 인간의 눈초리, 예술, 영혼의 구체화는 일체의 유기적인 생명의 가장 높고, 가장 신선하고, 가장 가치 높은 단계이며 물마루(波頭)로 상징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같은 인간들이 우리에게 있어 가장 고귀하고 가장 높고, 가장 가치 있는 관찰의 대상이 된다는 주장이다. 헤세는 이런 문제는, 쉽게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에는 영혼에 물어볼 것을 제안한다. 이성이나 역사에 묻지 말 것을 조언한다. 

이 책에는 「유럽의 몰락」이라고 쓴 독후감이 게재돼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헤세가 읽고 독후감을 썼다. 헤세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카라마조프적인 악덕을 엄벌해야 할 당위성에 열변을 토한다. 그 열변에 감추어진 진짜 의미는 시민들의 조소를 이끌어내려는 '러시아적 인간'의 표상으로 묘사된다. 러시아적 인간은 위험하고, 가련하고, 무책임하고, 그러면서도 상냥하고, 유순하고, 몽상적이고, 잔인하고, 지극히 어린이 같은 인간이다. 헤세는 그런 인간은 오늘날에도 흔히 그렇게 부르고 있지만, 그런 러시아적 인간은 벌써 오래전부터 유럽적인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헤세는 지적한다. 바로 이것이 '유럽의 몰락'을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이 러시아적 인간은 도스토옙스키가 그것을 결정적인 모습으로, 그 무서운 의미를 남김없이 파악하여 세계에 드러내 놓은 것이라는 게 헤세의 의견이다. 러시아적 인간은 카라마조프다. 표도르 파브로비치이며, 드리트리이며, 이반이며, 알료사이라고 비유한다. 이 네 사람은 외관이 아무리 달라 보일지라도 필연적으로 연결 지워져 있으며 모두 함께 카라마조프라고 헤세는 강조한다. 



이 대목에서 헤세는 꼭 주목해야 할 하나의 사실을 다시 인식하도록 주장한다. 이반이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문명인으로부터 일개의 카라마조프인 것으로, 유럽인으로부터 러시아인으로, 형태가 갖추어진 역사적 타입으로부터 무형성(無形成)의 미래의 소재로 되어간다는 점을 다시 각인할 것을 주문한다. '러시아적 인간'(이런 인간은 훨씬 오래전부터 독일에도 있다)은 히스테리 환자라고도 할 수 없고, 술주정뱅이라고도 할 수 없다. 또한, 시인이라고도, 성자라고도 할 수 없다. 모든 그러한 성질의 병존동거(竝存同居)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러시아적 인간인 카라마조프는 살인자이며 동시에 재판관이다. 야인이며 동시에 가장 섬세한 영혼이다. 완전무결한 이기주의자인 동시에 완전무결한 헌신적인 영웅이다. 유럽적인 고정된, 도덕적, 윤리적, 교리적 입장에서는 이 인간의 참모습을 구명할 수가 없다. 이 인간 속에는 밖과 안, 선과 악, 신과 악마가 함께 존재하고 있다.(p.255)


저자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년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며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892년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인이 되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하여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출간했다.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문단에서도 헤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면서 문학적 지위도 확고해졌다. 같은 해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했으나 1923년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다. 1906년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에는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데미안》과 《동화》,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을 출간했다. 인도 여행을 통한 체험은 1922년 출간된 《싯다르타》에 투영되었으며,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


역자 : 송동윤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독일 보훔대학교에서 연극영화TV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일장신대학교 연극영화학 교수를 지냈다. 〈서울이 보이냐〉 〈바다 위의 피아노〉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으며 〈HID 북파 공작원〉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영웅의 부활』은 지금까지의 작품들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그의 네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소설 『흔들리면서, 그래도 사랑한다』는 우리의 내면에 조용히 존재하고 있는 삶의 원형을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으로, 이 첨단의 시대에 놓치고 있는 진정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사랑, 믿음, 깨달음의 의미를 체화했을 때 비로소 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두 번째 작품 『블랙 아이돌스』는 출구를 잃고 방황하는 아이들을 가두어 버리는 사회 시스템과 주류의 시선에 반항하면서도 주류의 시선에 갇혀 스스로를 잉여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학교 문제를 다루고 있다. 세 번째 작품 『5월 18일생』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몸소 겪었던 독재 타도 투쟁 및 봉사활동의 기억을 바탕으로 40년 세월을 관통하는 미움과 고통과 증오를 용서와 화해와 사랑으로 마무리하는 절절한 저자의 독백이다. 영화 관련 저서로 『송동윤의 영화 이야기』 『영화로 치유하기』가 있으며, 영화 〈리틀 션샤인〉이 2021년 3월에 촬영을 끝내고 개봉을 준비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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