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 - 소소하지만 의미 있게, 외롭지 않고 담담하게
무레 요코 지음, 손민수 옮김 / 리스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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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영화 〈카모메 식당〉을 감상하지 못했다. 영화는 좋아하지만 〈카모메 식당〉은 이상하게 볼 기회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원작도 못 읽었다. 때문에 작가 무레 요코도 잘 모른다. 독자는 물론 일본 책도 자주 읽는다. 주로 추리소설이나 옛날 근대 작가들의 작품이지만. 현대 작가들 중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무레 요코와 그의 작품들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감독 이름 오기가미 나오코은 지인을 통해 들은 적도 있는데, 무레 요코만은 이름도, 작품도 기억에 없다. 이 책 『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 소개글에서 "나이 들어서도 ‘나’를 잃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지키며 살아가는 저자"라는 문장과 "다양한 취향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담은 에세이"라는 점만 한 번 읽었을 뿐이다.

문외한으로서 한 작가의 작품을 평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또 독자는 전문 평론가도 아니고 이 책을 처음 읽어본 독자로서 저명한 작가를 감히 평한다고 하면 그 자체가 모순이 될 터이다. 오로지 책을 읽은 느낌만 전달하는 역할만 할 것임을 미리 알린다. 처음 읽은 무레 요코는 그가 얼마나 다양하고 사소한 즐거움에 호기심을 갖고 탐닉하는지 풀어내고 있다. 아마 오랜 기간 자신이 즐기며 자주 했던 일이라면 '취향'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저자도 책 속에서 전 생애에 걸쳐 다져진 것임을 알린다. 플라스틱 제품 안 쓰기, 뜨개질, 손바느질, 고양이와 놀기, 녹화한 TV 시청, 요리책 읽기 등 일상의 사소한 일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 애정만 갖고 있는 정도를 지나서 직접 실천하려는 것 또한 습관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특히 그가 새로 들인 습관 중 '물건 버리기'는 독자도 따라하고 싶다. 저자는 넘쳐나는 물건들에 둘러싸였던 삶에서 벗어나 드디어 오래된 물품을 버리고 비우는 행위를 통해 비록 추억의 물건은 사라지지만 기억과 애정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새롭게 얻은 이 지혜는, 그가 22년 넘게 함께한 고양이와 작별하고 27년간 지내왔던 익숙한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가장 담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책은 취향의 긴 역사 속에서 작가가 집요하게 수집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확고하게 완성된 삶을 누리며 그것을 위해 불필요한 것을 끊임없이 비우고 있음을 기록한 책이란 점에 공감한다.

무레 요코의 소설을 영화화한 〈카모메 식당〉과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취향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며 지금까지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그도 그럴 것이 웬만한 인기가 아니었으면 선뜻 영화화할 생각이나 했을까? 저자 무레 요코는 이들 책에서 읽는 이로 하여금 소소하고도 농도 짙은 취향에 빠져들게 만들며, ‘나도 취향을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고 한다. 독자들을 세뇌하는 이 ‘취향의 힘’이 제대로 드러난 책이 바로 이 책 『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이다. 그가 2023년 첫 번째로 발간한 신간 『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취향의 시작은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 ‘남의 집 냉장고 엿보기’부터였다. 저 부엌의, 저 문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문을 열고 안에 들어있는 걸 보고 싶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그래서 친구 집에 가면 항상 냉장고 문을 열고 확인했다는 대목에서 저자의 독특한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뜨개질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에서도 저자의 오랜 취향이 드러난다. 책 중간에 어머니가 들려주는 ‘털실 푸는 사람’에 관한 일화가 등장하는데, 엉망으로 엉켜 있는 실을 몇 시간에 걸쳐 공들여 풀어낸 이야기는 좋아하는 것을 위해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상징한다.

이 밖에도 탈 플라스틱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조금은 불편한 삶을 선택하고, 시행착오 끝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요리를 완성하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찾아서 듣고, 관심 가는 TV 프로그램을 녹화해두었다가 시간 내서 감상하고, 고양이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과 음악, 게임 영상까지 찾아보며 유튜브를 즐기는 등,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왕성한 작가의 다양한 취향이 기록돼 있다. 이 다양한 취향의 기록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취향 있는 삶에 관한 작가의 태도와 소중한 삶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멈추지 않는 탐색과 호기심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 좋아하기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삶, 그것이 바로 나이 들어서도 ‘나다움’을 유지하는 비결인 셈이다. 책을 읽는 동안 깜박 있었던 사실이 있다. 저자가 작가라는 사실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작가가 27년간 살았던 익숙한 집을 떠나 새로운 거처로 옮기면서 추억이 깃든 물건들과 이별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특히 22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온 고양이와의 이별은 잔잔한 슬픔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따뜻하고 평화로운 위로를 선사한다. 이 대목은 저자의 지혜를 빌려 쓸모없는 물건 버리기를 위해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욕망에 따라 한없이 채우기만 하는 젊음의 욕망이 나이가 들면서 허망한 것이었음을, 또 겉모습에만 치중하며 살아온 독자 스스로의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된다.

저자가 녹화해두었다가 나중에 보게 되는 캐나다 방송 프로그램 ‘행복한 삶을 위한 다운사이징’에서는 추억과 애정은 간직하되 불필요한 물건들은 미련 없이 정리하는 비움의 삶이 그려진다. 작가는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추억이 담긴 물건에 둘러싸여 있고 싶은 것이다’라는 데 크게 공감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유품을 처분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애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저자의 마음에서 '사랑'에 대한 마음의 표현을 평소 일상에서 자주 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비움의 실천을 통해 완성되는 자기만의 담백한 삶에서 저자는 비우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비로소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임을 에둘러 전하고 있다. 저자의 일상에서의 원숙한 삶의 지혜가 돋보이는 이유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자기만의 확고한 취향으로 완성된 컬러풀한 일상, 시간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추억의 힘을 믿으며 비우는 삶이 저자가 드러내놓지 않은 자기만의 삶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것이 저자 무레 요코가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장 의미 있는 메시지라고 독자는 읽어낸다. 책 날개에서 전하는 저자 무레 요코의 나이는 69세로 추정된다. 작가로서의 삶, 일반인으로서의 삶, 또 사회 지도자로서의 삶으로도 튀지는 않지만 내면의 내공을 쌓아 '자기만의 삶' '나만의 삶'을 살아온 원숙한 지혜가 깃든 저자의 단아한 모습이 눈앞에 그림처럼 나타난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심지어 그의 작품마저 이 책이 처음인 독자로서 그의 모습을 선뜻 그려낼 수 있는 것도 그의 일상의 지혜가 녹아 있는 이 책의 힘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 마지막 장인 22장 「TV가 있는 생활로 돌아가다」에서 그가 쓴 귀절이 앞으로 독자의 삶에서도 매우 소중한 메시지가 될 것이기에 공감과 감사를 드리고 싶어서다. "필요 없는 물건들을 처분하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체력이 뒷받침되는 50대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은데, 가족들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자기 마음대로 하지는 못 할 것이다. 스스로에게 필요한 물건의 적정량이 얼마만큼인지 늘 염두에 두고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가진 물건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방송을 보며) 든 생각은 많은 물건으로 인한 고민과 집의 크기와는 상관없다는 점이다. 매일 쓰지 않는 물건으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은 모두 같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상자더미에 묻혀 사는 것, 사용하지 않는 물건 때문에 오천만 엔 가까이나 지불한다는 것.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돌아보게 한다.(p.211)

 


 

자신의 생활에 수고로움을 더한다거나, 조금 귀찮아도 스스로 움직여 본다거나,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주변에서 도움을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옛사람들의 좋은 관습들이 조금씩이나마 되살아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울해지곤 했는데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긴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밝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p.154)

 

저자 : 무레 요코(むれ ようこ,群 ようこ)

1954년 도쿄에서 태어나 니혼대학교 예술학부를 졸업한 후 광고회사 등을 거쳐, 1978년 ‘책의 잡지사(本の雜誌社)’에 입사했다. 이때 지인의 권유로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1984년에 에세이 『오전 0시의 현미빵』을 발표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여성들의 소소한 일상을 경쾌하고 유머 넘치는 문장으로 표현하면서 ‘요코 중독’ 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카모메 식당』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은 삶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어나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출간 당시 고양이와 음식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여성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인기에 힘입어 2013년 동명의 4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져 WOWOW TV를 통해 방영되었다. 그 밖의 작품으로 『무인양녀』, 『일하는 여자』, 『외톨이 여자』, 『미사코, 서른여덟살-』,『작가 소노미의 만만치 않은 생활』, 『개나리 장』, 『일하지 않습니다』, 『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 『구깃구깃 육체백과』,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 『나랑 안 맞네 그럼, 안 할래』, 『그렇게 중년이 된다』, 『지갑의 속삭임』, 『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 등이 있다.

 

역자 : 손민수

상명대학교 일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본어학원 강사 및 삼성전자, 삼성SDI 등 기업체 전문 통번역자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아이디어는 재능이 아니다>가 있다. 일본의 좋은 책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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