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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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은 프랑스를 제압하기 위해 히틀러가 침공했을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제 3제국의 막강한 군사력으로 유럽을 재편하겠다는 큰 야욕이었다고 하지만. 독자가 근거도 없이 밝혀지지 않은 그런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게 된 것은 프랑스가 약간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독일은 원래 프로이센이라는 이름의 국가명으로 오스트리아와 경쟁이자 동맹국 관계였다. 그러나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와 함께 동맹국으로서 전쟁을 일으켰고, 모두가 알다시피 연합군에 패했다. 연합군은 주변 강국 프랑스와 영국, 멀리 미국과 일본(일본은 참전함으로써 국제적 위치를 끌어올릴 기회)이 뒤늦게 참전했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미국과 일본이 참전함으로써 첫 세계대전으로 기록됐다. 독일은 첫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와 함께 패했다. 당시 독일은 과학 기술 강국으로 유럽의 새로운 제국을 꿈꾸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로마 제국처럼. 그러나 1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막대한 전쟁 경비를 배상해야 할 책임을 지게 됐다. 이 가운데 독일에게 빚 독촉을 가장 심하게 했던 나라가 프랑스라고 한다.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빈)로 그림 공부를 하러 갔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징집을 피해 프랑스로 도망쳤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독일의 젊은이를 지켜주지 않았다. 결국 독일 정부군에게 붙잡혀 강제 징용돼 참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패했다. 전후 독일 사정이야 패전국으로 막대한 경비 부담까지 떠 안았으니 나라 분위기가 어땠을지 말 안 해도 상상이 간다. 열심히 일해도 대부분의 돈이 전쟁 빚으로 나가고, 그렇다고 안 갚을 수도 없고... 이때 히틀러는 정당에 입당해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꾸준히 입지를 다져가며 프랑스에게 배상하는 전쟁 배상금으로 군사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역사에 기록된 사실이 아니니 독자가 상상해본 일이다. 다시 전쟁을 해서라도 기어코 프랑스를 굴복시켜야 한다는 히틀러의 광기는 인종 문제가 아니라 돈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히틀러는 특유의 듣는 이마다 감탄하는 연설로 독일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패전으로 우울한 빛만 감돌던 독일민에게 희망과 새 제국 건설의 꿈을 갖게 했다. 차근차근 입지를 넓혀가던 히틀러는 마침내 나치당의 설립하고 스스로 최고 의장의 자리에 오른다. 이때부터는 전쟁 준비를 해나가는 한편 전쟁의 명분도 쌓아갔다. 근처 이웃 국가들은 이같은 독일의 움직임을 눈치 챘지만 히틀러의 야욕 깊숙한 곳까지 현실화되리라고는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인류 최대의 비극인 2차 세계대전은 폴란드 침공으로부터 시작됐다. 압도적인 군사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폴란드는 총 한 번 제대로 쏘지 못한 채 무너졌고 인접 국가들도 반신반의 하면서 독일의 행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승승장구하자 히틀러의 숨겼던 야욕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동부 전선을 그대로 두고 서쪽으로 공격 방향을 바꾼다. 프랑스를 향한 것이다. 이미 전쟁 시작 전부터 '설마' 하며 지켜보던 프랑스는 단 며칠 만에 마지노선은 물론 수도 파리마저 내주며 무너졌다. 이제 독일에 대항할 만한 나라는 영국과 러시아(당시 소련)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일의 무기는 가공할 만했다. 최고의 물리학자 등 과학자들을 앞세운 무기 개발로 2차대전 중에 선보인 무기들은 연합군의 상상을 초월했다. 전투기 등 항공기, 잠수함(U보트) 등 해군함정, 탱크 등 육군 무기 등 그야말로 산전수전에 뛰어난 무기들을 장착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점령되지 않은 나라는 유럽의 여러 나라 가운데 섬에 위치한 영국과 광활한 영토의 러시아뿐이었다. 영국 등 연합군은 미국의 연합군 참전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중립을 지키겠다던 미국은 히틀러의 말 한마디로 참전하기로 바뀐다. 유럽은 이미 우리 제국에 편입됐다며 미국 역시 제 3제국과 함께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 그러나 싸우지도 않고 미국이 독일 히틀러 밑으로 들어갈 리 없다. 이로써 본격 미군의 개입이 시작됐다. 미국은 특별한 전쟁 준비보다는 대공황 뒤의 나라 경제 재건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역시 강대국의 면모는 잃지 않았던 것 같다. 참전을 결정하고 많은 산업체들이 군수 산업으로 전환되면서 막강한 무기를 생산 지원할 수 있었다. 병력 또한 5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소설 『우리 슬픔의 거울』은 이 같은 시대 배경에서 프랑스에서의 시민들의 질곡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또 작품 속에는 전쟁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삶뿐만 아니라 독일과 히틀러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보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레지스탕스(민간 게릴라 부대)에 참여한다. 전쟁 속에서도 삶은 이어가야 한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고 그들의 대처는 어떠했는지 이 소설 곳곳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전쟁이 끝난 후에 프랑스 국민들은 전쟁이나 독일인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군데 군데 묘사돼 있다. 독자들이 간혹 맞닥뜨리는 이 같은 프랑스 분위기를 알아채는 것은 이 소설 읽기의 또 다른 재미다. 이 책은 600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이다.

이 책은 현존하는 프랑스의 최고의 문호라고도 불리우는 피에르 르메트르가 썼다. 르메트르는 55세의 늦은 나이에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해 공쿠르상까지 거머쥐며 프랑스 문단의 거목이 된 인물이다. 르메트르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그리는 야심 찬 기획을 선보이며 등단했다. 그는 데뷔작으로 전작 『오르부아르』와 그의 명성을 확고히 한 『화재의 색』 등 이미 2편을 발표한 이후 이번 작품이 시리즈 3번째(3부) 작품이다. 이로써 그는 프랑스 리얼리즘의 전통을 계승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우리 슬픔의 거울』은 20세기 전반의 역사를 관통하는 3부작의 대미를 이루는 작품이다. 『오르부아르』가 제1차 세계 대전을, 『화재의 색』이 전간기(戰間期)를 다룬다면, 『우리 슬픔의 거울』은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르메트르는 양차 세계 대전이라는 역사의 큰 그림을 자신의 3부작 안에 담았다. 당초 소설을 처음 발표할 때 구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그는 '준비된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리얼리즘 기법으로 프랑스 사실주의 조류의 명맥을 이어가는 정도를 벗어나 정점에 선 것으로 평가하는 평자들도 있다고 한다. 문예사조나 세계 문학의 흐름이니 하는 전문적인 평가는 일반 독자가 하기에는 어렵다. 전문 평론가나 문학 비평가들에게 맡기고 독자는 소설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든다. 우선 충분히 재밌다. 특히 문장도 탁월하다. 감정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줄거리 전개와 적재적소에서 독자의 폐부를 찌르는 탁월한 대사 등이 잘 버무려져, 가장 비극적이어야 할 전쟁 이야기가 〈웃긴 동시에 어이가 없어서 기가 막히는〉 희극적인 이야기로 바뀌기도 한다. 프랑스 언론들로부터 '기교와 블랙 유머의 결정체'〈르 피가로〉, '악마 같은 플롯을 지닌 책!'〈르 파리지앵〉, '이것이 걸작이다. 이것이 예술이다'〈베르시옹 페미나〉라고 극찬을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절정에 이른 거장의 솜씨로 쓰인 이 작품은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우리 슬픔의 거울』은 현재 전 세계에 3부작 누계 360만 부가 판매되고 29개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여러 개성 강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뒤얽히며 진행된다. 루이즈는 초등학교 교사이자 퇴근 후 집 앞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종업원으로, 어느 날 레스토랑의 단골손님에게 그냥 보기만 할 테니 자기 앞에서 옷을 벗어 달라는 이상한 부탁을 받는다. 가브리엘과 라울은 마지노선에서 근무하는 군인으로, 갑작스러운 독일군의 공격에 전선이 무너지며 탈영병 신세가 되고 만다. 기동 헌병대원 페르낭은 같이 피란을 가자는 아내의 청을 뿌리치고 파리에 남음으로써 엄청난 비밀이 담긴 가방을 얻게 되나, 그로 인해 아내와 연락이 끊기고 만다. 이 인물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인생이 뒤틀려 버리는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소설은 이 평범한 인물들이 전쟁 통을 가로지르며 인생을 바로잡는 과정을 그린다.

 


 

이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사연도 눈길을 끌지만 무엇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피란길 그 자체의 모습이다. 과연 리얼리즘 문학이다는 생각이 금세 들 정도로 사실적 묘사도 마음에 든다. 특히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목표를 위해 피란길에 합류하는데, 그럼으로써 독자들 또한 자연스럽게 전쟁과 피란길의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된다. 독자도 쉽게 동질감을 느꼈다. 어쩌면 독자의 핏속에도 수많은 외세 침략으로 곤궁한 전쟁을 겪었던 조상들로부터 받은 유전자가 내재되어서일까. 저자의 표현이 탁월해서일까? 아무튼 눈앞에 선하게 장면 장면들이 잡히고 상상된다. 매트리스를 차 지붕에 이고 트렁크에 온갖 잡다한 물건을 실은 채 길에 나선 가족들, 아이의 기저귀가 없어 천 쪼가리를 구걸하고 다니는 여인들, 인파에 휩쓸려서 아이를 잃고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을 외치는 부모들……. 이를 통해 독자는 전쟁이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유·무형의 희생이 얼마나 많은지를 실감할 수 있다.

이 소설 『우리 슬픔의 거울』이 전쟁의 비극에 집중함으로써 그 참상을 1차원적으로 보여 주는 소설은 아니다. 저자는 '국가'라는 거대 권력과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모순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낱낱이 보여 주며 희화화함으로써, 오히려 끊임없이 코미디나 시트콤 같은 상황을 연출한다.

일당백이라도 거뜬할 것인 양 굴다가 막상 전쟁이 나자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 지휘관들, 적이 목전에 왔는데도 파리의 최고급 호텔을 본부로 삼아 조직의 안위를 위해 〈히틀러는 매독 환자이고 동성애자이며 성 불능증을 앓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공보부, 1,000명에 달하는 죄수들을 피란민들과 함께 이동시키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세우는 군인들……. 이 외에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수많은 사건들은, 대부분 당시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일을 저자가 각색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책 뒤에서 저자가 스스로 밝힌 것이다.

 

 

이 거대 권력의 황당하고 무책임한 행동은 피란길에서 고통받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럼으로써 평범한 시민의 삶을 통제하고 제약하려 드는 권력과 시스템이 실은 얼마나 실체 없고 허술한지를 드러낸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우리와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여전히 지금 여기, 우리와 맞닿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입을 통해 슬쩍 얘기를 꺼낸다. 우리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의, 거대한 권력과 역사의 포로가 아니겠느냐고 하는 말이다.

 

"결국 자네와 난 언제나 포로 아니었어? 전에는 르 마얭베르그에서 포로였고, 지금은 여기에서 포로 신세지. 그리고 세 번째로 감옥을 바꿔서 독일 놈들 포로가 될 거야. 난 앞의 두 곳이 더 나을 것 같지만 뭐,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잖아."(p.580)

 

아무리 최악의 전쟁 중이라도 살아 있는 한 인간에게 희망은 있다. 없으면 만들어서라고 가지려 한다. 희망이 삶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우리 슬픔의 거울』의 등장인물들도 힘겨운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결국 '사람'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한다. 자신이 베풀었던 선의가 되돌아오거나, 타인의 작은 선의를 통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음으로써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간다. 이로써 이 소설은 우리에게 아주 당연하지만 소중한 진실을 제공한다. 전쟁이라는 재난을 자초하고 거대 권력을 부리며 수많은 이들을 고통에 내모는 것도 사람이지만, 그러한 비극 안에서 다시 희망을 만들어 내고 삶을 다시 살아 낼 용기를 주는 것 또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바로 『오르부아르』와 『화재의 색』에 이어 『우리 슬픔의 거울』까지, 피에르 르메트르가 쓴 3부작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자에게 읽힌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부유한 이들의 탈출은 이미 며칠 전에 끝났고, 지금은 그렇지 못한 이들이 군복 차림의 병사, 농부, 민간인, 장애인 들이 뒤섞인 잡다한 무리를 이루어 힘겹게 걷고 있었다. 한 시청 차량에 탄 어느 유곽의 매춘부들, 그리고 양 세 마리를 몰고 가는 목동 등 도로 위엔 그야말로 온 백성이 모여 있었다. 갈가리 찢기고 버려진 이 나라의 모습 자체인 이 피란민의 물결 속에서 자동차는 천천히 덜컹거렸다. 어디에나 얼굴들, 얼굴들이 있었다. 어떤 거대한 장례 행렬 같다고 루이즈는 생각했다.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패배의 가혹한 거울이 된 거대한 장례 행렬이었다.(p.458~459)

 

저자 : 피에르 르메트르(Pierre Lemaitre)

 

195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195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프랑스문학과 영문학을 가르치다가 55세의 나이로 어느 날 소설을 썼고, 이 첫 소설 『능숙한 솜씨』로 코냑페스티벌 신인상을 수상했다. ‘형사 베르호벤 3부작’의 첫 작품이기도 한 이 작품은 “본격문학 이상의 품격을 갖춘 보기 드문 장르소설” “프루스트, 도스토옙스키, 발자크의 문체를 느낄 수 있는 수작” “추리?스릴러 대가의 탄생”이라는 문단의 호평과 대서특필로 격찬 받았다. 이후로 발표한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 『사악한 관리인 Cadres noirs』(출간 예정)으로 2009 미스터리문학 애호가상, 몽티니 레 코르메유 불어권 추리소설 문학상, 2010 유럽 추리소설 대상 등을 받으면서, 등단 후 연이어 발표한 세 작품이 모두 문학상을 수상하는 이례적인 이력을 쌓았다. 그의 작품에는 “히치콕이 살아 있다면 영화화하고 싶어할 작품으로 완성시키는데 주력했다”고 밝힌 저자의 장인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와 『사악한 관리인』은 현재 영화로 제작중이다.

 

역자 : 임호경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했다. 파리 제8대학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피에르 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카산드라의 거울』, 『신』(공역),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 조르주 심농의 『갈레 씨, 홀로 죽다』, 『누런 개』, 『센 강의 춤집에서』, 『리버티 바』,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 로렌스 베누티의 『번역의 윤리』, 파울로 코엘료의 『승자는 혼자다』, 기욤 뮈소의 『7년 후』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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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카페 - 평범한 일상이 철학이 되는 공간
크리스토퍼 필립스 지음, 이경희 옮김 / 와이즈맵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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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제어 '소크라테스 카페'는 미국에서 시작한 한 철학 모임의 이름이다. 교육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 크리스토퍼 필립스가 28년 전 미국에서 처음 조그만 모임을 시작했다. 지금은 참여 나라수가 10개국이 넘어섰고,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이 책 『소크라테스 카페』는 모임 현장에서 벌이는 토론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모임의 참가자들은 인종, 학력, 빈부, 나이를 초월해 저마다 갖고 있는 생각과 이념을 자유롭게 개진한다. 초등학생의 이야기를 교수가 경청하기도 하고, 노숙자와 CEO가 열띤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참가자들의 질문과 그 생동감 있는 대화를 망라한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마치 토론 현장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이 나누는 흥미진진한 대화는 일상적인 고민부터 삶의 심오한 질문까지 넘나들며 철학만이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해답을 들려준다.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고 싶거나,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 『소크라테스 카페』는 새로운 삶의 전환점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처음 한 서점에서 시작된 모임의 장소는 지금은 카페, 서점, 유치원, 양로원, 교도소 등 다양하고 어느 곳이든 구애받지 않는다. 21세기 현대인들은 '챗GPT'라고 불리는, 대화형 인공지능과 문장을 통해 질문을 주고받는다. Chat GPT는 작년 11월에 공개되어 5일 만에 사용자수가 100만 명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여전히 소크라테스에게 열광하며 그의 지혜를 듣고 싶어 할까? 그건 바로 소크라테스가 정답을 알려주는 철학자가 아닌, 정답을 깨닫게 해주는 철학자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지 않고 우리 내면에 잠들어 있는 저마다의 철학을 일깨워 주는 철학, 대화법을 소크라테스가 창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런 지혜를 공유하기 위해 열린 ‘소크라테스 카페’에서는 누구나 철학자가 되어 자기 생각과 의견을 거침없이 교환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호기심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신선하고 심도 있는 토론을 펼쳐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양로원에서 노인들은 저마다 살아온 세월의 깊이만큼 짙은 통찰력을 공유하며 감동을 선사한다. 교도소의 수감자들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회한과 그들의 미래에 관한 뜨거운 설전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건 삶의 방향성을 고뇌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내면을 알 수 있다. 모든 과정에서 ‘철학’은 강의실 안 교재로 학습하는 어려운 ‘학문’에서 누구나 활용하는 실용적 ‘지혜’로 거듭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 모임에서 가르치려는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 다른 사람을 통해 발상을 전환하길 원한다. ‘윤리적인 갈등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착한 거짓말은 옳은 걸까?’, ‘나는 왜 스스로를 괴롭히는가?’ 등 많은 이들이 고민해 봤을 법한 질문을 같이 공유하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명확한 관점을 얻는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자기 잠재력과 철학을 구현할 기회는 흔치 않다. 『소크라테스 카페』는 철학적 의견을 나누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거나 상대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준다. 때로는 흥미롭게, 때로는 사색에 빠져들게 만드는 대화로 철학에 쉽게 닿아보도록 하자. 또한 자신만의 관점을 지닌 ‘소크라테스’로 거듭나도록 하자. 이 책은 그 여정을 함께하는 친절한 안내서이다.

 

 

「21세기에 만나는 소크라테스」라는 제목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이 모임의 취지와 시작, 그리고 왜 이 모임이 확대되고 참여자들이 늘어나는가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만연한 자기도취와 편협성, 그리고 책임감의 결여에 맞서려는 온당한 노력으로 철학적 문답을 나누는 모임을 열기로 마음 먹었다. 목적은 더 명확했다. 공개적인 토론과 담론을 통해 참가자들 사이에 공감과 이해의 유대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이런 모임은 서로에게 격려와 용기를 북돋울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다시 말해 서로 특별한 탁월성으로 이끌어줄 재능을 발견하고 육성하도록 돕는 것이다. 내 생각에 고대 그리스에서 아테네라고 불렸던 탁월성, 숭고함, 미덕을 추구하는 일은 포용 범위를 넓히려는 개방적인 사회 내에서 가장 잘 성취된다."(p.7)

이런 숭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저자는 참가자들이 서로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대화법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것을 통해 현재의 사고에 안주하게 만드는 어떤 습관도 우리의 비판적 통찰력에 영감을 주는 습관으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이론가 다나 빌라(Dana Villa)가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인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도 해당될 것이란 저자의 주장은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스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독단적이어서가 아니라 끊임없는 투지를 지닌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크라테스가 대화로 시민들에게 스스로 깨우치고 많은 지식을 알아가도록 유도한 방법이었다고 이해한 것이다. 사실 끊임없는 투지라는 자질은 본질적으로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 자질이 어떤 태도로 향할지는 우리의 능력을 어떻게 잘 활용할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도주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함양해야 할 도덕적 규범이 무엇인지도 고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소크라테스 모임'은 매우 훌륭한 과정이라는 말이다.

 


 

저자의 이 같은 목적과 계획은 현대화된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을 이용해 다양한 시민들과 공공장소에서 철학적 탐구를 하는 모임이 필요했다는 설명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펼쳐졌다. 처음에 토론의 상대가 저자 주위에 사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지만, 소크라테스 카페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인도의 뭄바이부터 아프카니스탄의 카불, 시리아의 알레포, 이집트의 카이로, 일본의 도쿄, 튀르키예 그리고 한국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소크라테스 카페가 자리 잡았다. 이로 인해 저자는 소크라테스 카페가 서구적 감성을 가진 사람들과 장소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털어놓는다. 소크라테스 문답법은 아시아는 물론 남아프리카 공화국(원형을 이루며 주고받는 대화는 부족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부터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을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길 원하고, 자신과 대화하는 많은 사람들이 세계 시민으로서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지평을 넓히기를 원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소크라테스가 평생 아테네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 시민으로 거듭나기를 주장하는 것은 모순되지 않겠느냐는 반론도 저자는 예측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지구 곳곳을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광객들이 여행 중 마주친 사람들과 반드시 유대감을 형성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한 사람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풍부하고 깊은 탐구를 통해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연결하고, 우리 내면과 외부 사이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이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든 것의 온전함과 일체성에 더 밀접하게 연결되기 위해서다"고 답한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위엄이 수세기에 걸쳐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은 우연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더 사려 깊고 상상력이 풍부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기적절하면서도 놀라울 만큼 용기 있는 그의 노력 덕분이라고도 말한다. 그처럼 우리 모두 세상의 공동 창조자가 될 수 있도록 지식과 존재, 행동의 경계 확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는 것이 소크라테스 카페의 목적이자 존재 이유라고 말한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질문이란 무엇인가?」, 2장 「나는 어디에 있는가?」, 3장 「무엇을 원하는가?」, 4장 「대체 모두 무슨 말인가?」, 5장 「왜 이유를 묻는가?」와 부록으로 「철학자 해설」, 「소크라테스 카페를 시작하는 법」을 책 뒷 부분에 두었다.

'대화'란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진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 인간의 삶과 물건의 존재를 밝혀내는 방법으로 학문을 하고, 특히 철학을 했다. 질문은 우리가 무지에서 앎으로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고, 답을 구하는 근본임을 일깨워준 것이다. 그가 서양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이유다. 질문은 소크라테스 이후로 모든 학문의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서양 학문의 발전은 이 질문을 토대로 튼튼한 성을 쌓듯이 차근차근 축적되어 왔다.

이 책의 첫 장 첫 항목부터 '질문'이 이어진다. "한여름 화요일 밤, 이 특별한 주간 모임은 한껏 열기가 달아오르고 이번에는 '광기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대화는 구체적 사례로 시작해 더 많은 질문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히틀러는 미치광이였는가? 아니면 당시 미친 사회를 교묘하게 이용한 냉혹하고 치밀한 천재였는가? 잭 런던도 미치광이였는가? 애드거 앨런 포는 어떤가? 또 반 고흐는? 이들의 천재성에 광기는 꼭 필요한 것인가? 예술을 위해 건강을 망치는 사람은 모두 미치광이인가? 아니면 이런 예술에 혼신을 바치는 열정은 온전한 정신의 본질인가?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열정은 제정신인가? 신념도 없이 목숨을 버리는 일은 또 어떤가? 죽도록 싫어하는 일에 온종일 매달리는 회사원은 정신이 온전한가?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의 생명을 계속 연장하려 애쓰는 사회는 정상인 걸까? (중략) 질문, 질문, 질문.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p.19~20)

 


 

마지막 장은 「왜 이유를 묻는가?」이다. 첫 항목에서 〈질문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다시 내놓는다. 이 마지막 장에서는 이 항목 외에 〈내 호기심이 지나치다고?〉, 〈무지는 나쁜가?〉, 〈너 자신을 알라〉, 〈돈으로 살 수 없는 지혜〉, 〈벗과 함께 지혜의 길을 가라〉라는 세부 항목을 제시하고 독자에게 깊은 생각과 질문을 요구한다. '순수'와 '무지'의 차이는 무엇인가? 지혜는 돈으로 살 수 없다. '벗과 함께 지혜의 길을 가라'고 말했던 소크라테스 철학의 중심으로 다가가기를 저자는 권유한다. "소크라테스에게 탁월한 인간이란 지혜, 용기, 절제, 같은 덕목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다. 이유가 무러까? 이런 덕목을 갖추면 풍부한 공감 능력과 창의적인 통찰력, 자기 발견 등 다양한 풍요로움이 생기기 때문이다."(p.343)

 

저자 : 크리스토퍼 필립스(Christopher Philips)

 

온라인 상의 토론장 '필로소퍼(www.philosopher.org)'와 오프라인 상의 게릴라성 토론회 '소크라테스 카페'를 통해서 대중에게 쉽고 유쾌한 철학적 사유를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현대판 소크라테스. 질문을 던져서 상대가 스스로 자기 생각의 오류를 깨닫도록 하는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의 전파에 힘쓰고 있다. 현재, 교육자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며, 비영리 철학탐구단체 소사이어티 오브 필로소피컬 인콰이어리Society of Philosophical Inquiry를 이끌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소크라테스 카페』『소크라테스 씨, 질문 있어요!』『사랑, 그 위대한 악법』 등이 있다.

 

역자 : 이경희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어번역학을 전공하고 글밥 아카데미에서 출판번역 과정을 마친 후, 현재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며 좋은 글을 번역하는데 행복한 에너지를 쏟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원워드』,『왜 그들이 이기는가』,『히스토리』,『5분 작가』,『철학의 책』,『심리의 책』,『더그래픽북』,『위대한 예술』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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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뿐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법 -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좋은 사람들에게
바바라 베르크한 지음, 장윤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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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요구에 명료하게 던지는 ‘아니’라는 말은 당신 자신에게 ‘그래’라고 말하는 것이다.” 독일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베스트셀러 작가 바바라 베르크한이 전하는 내 세계와 관계를 지키는 ‘경계 짓기’의 기술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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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뿐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법 -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좋은 사람들에게
바바라 베르크한 지음, 장윤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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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거절하기를 무척 어려워했다. 심지어는 두렵기도 했다. 누군가 무슨 제안이나 부탁을 할 때 제대로 거절하지 못했다. 일일이 요구나 부탁을 다 들어주다 보니 나중에 어려운 부탁이 생길 때면 으레 독자들 찾아왔다. 속으로는 싫지만 싫다는 내색도 없이 알았어가 독자의 답변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대로 독자의 삶에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특히 돈 문제가 가장 해결하기 어렵고 가장 오랫동안 독자의 삶을 짓눌렀다. 엄격히 말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부탁을 들어주고 괴로워할 때 거절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읽을 만한 책을 소개시켜 준 지인도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책은 현실과 떨어진 심리적인 면을 강조하며 심리 강화를 위한 여러 가지 실천 방법을 일러줄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안될 듯했다.

어떤 이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는 그럴 듯한 말로 독자에게 충고를 했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거절해봐, 그럼 다음부터는 점점 거절이 쉬워질 거야"란 말이었다. 그러나 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끌려가자 다시 돈 문제를 갖고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그의 말대로 눈 딱 감고 거절할 이유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그보다 사소한 문제는 종종 거절함으로써 독자 삶에 침범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지금도 거절을 쉽게 하지 못한다. 이 책이 설명하는 "당신은 거절이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와 요구 사항을 줄줄이 들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당신을 찾는다. 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당신은 지쳤다"와 같은 상태로 지낸다.

 


 

이 책 『가뿐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법』은 좀 더 강력하고 자신 있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키워주는 데 역점을 두고 쓰여졌다. 저자 바바라 베르크한은 싫다고 말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고, 다음부턴 나 먼저 생각할 거라고 다짐하지만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라 상황은 반복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의 영역을 알리는 경계선을 선명하게 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하는 ‘아니’라는 말은 단순한 거절 그 이상이다.” 저자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영역에 무엇을 들이고 무엇을 영역 밖에 둘지 결정하는 일이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해로운 것에서 보호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또한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바라고 원하는 것에 대해 ‘그래, 좋아’라고 말하며 그것들을 좇아 나갈 수 있도록 생각의 전환을 이끈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거절이 어려웠던 사람은 ‘아니’라는 말을 통해 남이 아닌 나를 아낄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지적한 것이 꼭 독자인 나를 지적하는 것 같아 여러 번 깜짝 놀랐다. "어떻게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지?" 저자는 거절하지 못해 자신의 삶을 어렵게 만든 많은 사람들의 사례를 직접 경험하고 상담함으로써 얻은 결론을 연구 끝에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거절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은 대개 자신이 원하는 걸 뒤로 미루고 남을 먼저 배려하고 돕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좋은’ 사람이라는 타이틀에 집착했다. 그것이 삶이 어려워진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제안이나 부탁을 들어주고 돕는 과정에 너무 많은 에너지, 집중력, 시간을 다 써버리고 지쳤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저자는 한마디로 단언한다. 우리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아니’라는 말이 우리의 마음 상태를 알려주는 ‘측정기’라고 말한다. ‘아니’라는 말은 무엇이 우리의 일상을 과하게 차지하는지를 책에서 사례를 들고, 자신의 경험과 연구 결과를 모두 내보여준다. 너무 많은 의무와 책임, 무리한 일정, 피로와 스트레스…. 자신의 일만 처리하기에도 세상은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남을 위해, 그것도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일마저 거절하지 못해 에너지와 시간을 써버린다면 과연 우리에게 남는 게 뭘까?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현실적으로 닥치면 마음 먹은 대로 잘 안될 뿐이다. 그 점을 고쳐야 내 삶을 되찾고 나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말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이들은 많은 문제를 늘 지닌 채로 살아간다. 그래서 이 책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많은 실천 방법을 제시한다. 때와 상황, 요구나 제안의 무게감, 그리고 자신이 해결하지 못할 일의 무게감 등을 모두 고려하는 방법들이 모두 등장한다. 책에서 한두 가지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방법을 선택해 실천해 볼 것을 저자는 권유한다.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지 않고서는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아니'라고 거듭 말하는 과정에서 ‘그래, 좋아’라는 말을 발견하게 된다. 부정적인 것들을 지우고 우리에게 더 나은 것을 찾아갈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저자 바바라 베르크한은 30여 년 동안 독일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활동하며 조직과 개인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코칭을 진행하고, 소통에 관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했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비판혁명』, 『화나면 흥분하는 사람 화날수록 침착한 사람』, 『도대체 왜 그렇게 말해요?』, 『나는 상처받지 않습니다』 등의 저서가 번역 소개되어 있다. 저자는 이번에도 인간관계, 조직 생활에서 소통 문제로 고민하고 갈등을 겪는 이들을 위해 자신만의 커뮤니케이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한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늘 다른 사람의 마음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다가 소진되어버린 이들을 위해, 나의 영역을 단단하게 지키는 거절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간, 에너지, 집중력, 주의력 같은 당신의 귀한 자산을 지키는 ‘아니’라는 말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저자는 자연스러운 자기표현을 가로막는 우리 내면의 ‘검열관들’과 거리를 두는 방법, 그리고 갈등 없이 거절하기 위한 조언과 각자에게 어울리는 거절의 말을 발견하는 법을 소개한다. 긍정적인 생각과 아니라고 말할 용기를 자극하는 ‘연습 노트’와 전략들도 함께 전한다.

“사랑받기 위해 늘 모든 이들의 마음에 들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그리고 자기 내면의 생각과 일치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 주변 사람들은 당신에 대해 저마다의 생각을 품고 있다. 당신이 무얼 하든 관계없이 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이다. 당신은 언제나 가치 있는 사람이며 나무랄 데 하나 없이 잘하고 있다. 당신이 타인의 요구에 아니라고 말하든 그러자고 말하든 상관없이.”(p.42)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마음의 바탕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우리는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한다. ‘아니’라고 말하는 나를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게 여기지는 않을지, 관계가 깨지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거절하고 싶은 마음을 삼킨다. 독자의 과거를 궤뚫는 듯한 저자의 지적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하지만 걱정은 걱정일 뿐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은 다른 사람의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경계선’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저자는 당신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당신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고, 그리고 모든 개인에게 자신만의 영역이 있듯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 사람의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감정, 비난의 말은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의 것이다.

 


 

이와 함께 회전목마처럼 뱅뱅 돌며 머릿속을 지배하는 걱정에도 경계선을 그으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면의 비평가’ ‘내면의 감독관’ 그리고 ‘걱정 생산자’라는 세 골칫덩이는 우리가 진정한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막고 매 순간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비난한다. 불안을 자극하고 ‘해야 할 일’을 상기시키며 우리를 쫓기는 기분에 몰아넣는다. 이 생각에도 “아니! 걱정은 걱정일 뿐이야!”라고 의식적으로 선을 긋고 거리를 두어야 한다. 단단하게 경계를 지은 내 영역에서 진정한 마음의 지혜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자연스럽고, 명쾌하고, 가뿐하게, “아니. 난 싫어. 하지 않을래.”라고 말할 수 있다. ‘내면의 비평가’ ‘내면의 감독관’ 그리고 ‘걱정 생산자’ 등 세 골칫덩이는 독자로서는 생경한 단어다. 그러나 번역가의 덕택인지 우리말로 표현해도 아무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대로 뜻이 전해진다.

저자의 결론에 이르는 말은 쉽게 이해되고 누구든 실천 가능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각각의 개인차가 있듯이 모든 사람이 단번에 ‘아니’라고 잘 말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제대로 의식하고 준비하고 연습한다면 나를 지키는 거절의 말을 차차 더 쉽게 던질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거절 못 하는 이들을 위한 ‘거절 마인드 설계 안내서’다. 『가뿐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법』을 통해 우리는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것들에 “아니!”라 말하여 이별을 고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 지키고 싶은 것에 “예스!” 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얻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전략은 어린아이도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해서 많은 이들에게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아무런 미사여구 없이 단순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전략이다. 당신의 ‘아니’라는 말은 하나의 완전한 대답이다. (중략)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반복하자. 아니.” 이때 당신은 조용히 침착하게 있으면 된다. 상대방에게 당신이 이 아니라는 말을 아무런 흥분도 동요도 없이 무한히 반복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신이 지닌 확고한 거절의 뜻을 누구도 절대 거스를 수 없다고 말이다.(p.138~139)

 


 

독자가 읽었던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공저 『미움 받을 용기』란 책이 오버랩된다.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아들러의 심리학으로 인간은 능력이나 환경, 과거의 트라우마와 관계없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존재이며,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눈앞에 놓인 문제를 직시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책이다. 『미움 받을 용기』는 자유로워질 용기, 평범해질 용기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까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을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 형식으로 엮어, ‘어떻게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인가?’라는 인간 본연의 질문에 쉽고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준다. 그 책과 이 책 『가뿐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법』이 오버랩되는 것은 독자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저자 : 바바라 베르크한(Barbara Berckhan)

 

독일 함부르크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30여 년 가까이 기업, 관청, 협회 등 다양한 조직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관련 워크숍, 트레이닝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자 화술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지은 책으로 『화나면 흥분하는 사람 화날수록 침착한 사람』 『대화기술』 『싸우지 않고 이기는 사람들의 대화 호신술』 『비판 혁명』 『도대체 왜 그렇게 말해요?』 『나는 상처받지 않습니다』 등이 있다.

 

역자 : 장윤경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 독어독문학을 전공한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와 다름슈타트 대학교에서 공동으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다양한 분야에서 통번역 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출판 번역 에이전시 베네트랜스에서 리뷰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하버드 수학 박사의 슬기로운 수학 생활』, 『뉴스 다이어트』, 『No! 백번 말해도 No!』, 『거대한 후퇴』, 『세상에서 가장 기발한 우연학 입문』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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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1900~1945
토비아스 휘터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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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과학’의 토대를 쌓아올린 천재들의 놀라운 발견에서부터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종식된 반백년의 현대물리학 역사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다. ‘세상을 바꾸는 과학’의 찬란한 빛과 짙은 어둠을 탁월한 표현력과 문장으로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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