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보이는 런던의 뮤지엄
윤상인 지음 / 트래블코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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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뮤지엄은 무료다." 이 말은 독자로서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독자는 꽤 오래 전에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많은 도시를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무료 개방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갔든 단체로 다녀왔든 대체로 일정에 박물관 혹은 미술관 관람이 한두 번씩 끼어 있었다. 그리고 일정대로 소화해 여러 미술관 등을 관람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무료 관람이란 없었다.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유지 관리비가 있을 터이니. 우리나라도 그렇다. 유료 관람이란 것을 이상하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을 펼치고서야 런던 뮤지엄이 무료란 사실을 접하고 적잖게 놀랐다. 이유도 파격적이다. 문화가 대륙에 뒤졌던 영국이 대영제국을 이루고 산업혁명으로 세계 최대의 왕국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영국은 섬나라다. 거기에 유럽 대륙으로 치자면 변방이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 유럽 대륙의 문명의 중심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로마 제국에서도 영국까지 영토를 넓히려다 별로 쓸모도 없는 대륙의 끝을 정복하기에 어려워지자 더 이상 정복을 포기하고 성과 담을 쌓아 북쪽의 사람들이 더 이하로 내려오는 것을 막는 데 그쳤다. 이때부터 유럽 문명으로부터 뒤떨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책 『이제서야 보이는 런던의 뮤지엄』은 영국이 최근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럽의 예술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대륙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와 문명의 본류에 합류하기에는 불리했으나, 런던의 미술관과 박물관 '무료 개방'이라는 전례 없는 정책으로문화·문명의 역전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관람객이 없어서 공짜로 열어둔 게 아니다. 그 전통을 깨기 싫은 것일 게 분명하다.

 


 

저자 윤상인은 '어쩌다 미술해설사'가 됐다고 털어놓는다. 그에 따르면 학교 다닐 때 좋아했던 과목은 영어와 역사 그리고 지리였다. 세계지도를 보며 대한민국 밖의 세상이 너무 궁금했고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문화와 관습이 다른 것이 신기했다. 결국 이러한 호기심은 세계여행을 꿈꾸게 했다. 20살에 떠난 세계여행은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 이란을 거쳐 유럽으로 향했고 영국에 정착하였다. 영국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런던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예술의 전당, 롯데 콘서트홀 등에서 〈아르츠 콘서트〉를 진행 및 강의를 했다. 현재는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미술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그가 런던에서 여행하던 중 화장실을 급하게 찾아야 했을 때 우연히 박물관을 발견했고, 그곳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돼 지금은 미술해설사로 활동중이다.

저자는 런던의 박물관이 무료인 이유를 알기 위해서 18세기로 시간을 돌려봐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 영국에선 산업 혁명이 일어났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의 상업적, 정치적, 군사적 위력은 기세등등했다. 그럴 만한 것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얻었을 정도로 전 세계에 많은 식민지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영국이 승기를 잡지 못한 영역이 있었다. 문화였다. 유럽 대륙에서 탄생한 문화가 섬나라 영국에 가장 늦게 전달되면서, 영국은 문화적으로 뒤처졌다. 그래서 국민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고자 뮤지엄을 만들어 무료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순히 뮤지엄을 공짜로 열어두어서 얻은 결과는 아니다. 그렇다면 런던의 뮤지엄은 무엇이 다르길래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낸 걸까? 저자의 안내를 받아 런던의 뮤지엄으로 떠나보면 오늘의 영국을 읽을 수 있을 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 중의 하나는 독자는 유럽 여행을 여러 번 다녀왔으면서도 아직 영국엔 못 가봤다는 사실이다. 이유야 그때그때마다 달랐겠지만 런던의 미술관이 무료 관람이라니 새삼 떠오른 영국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 몰랐던 사실에 적잖게 놀랐기 때문이다. 저자는 런던 여행의 가성비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뮤지엄에 들르면 된다고 말한다. 유럽 도시의 여느 뮤지엄과 달리 런던의 뮤지엄은 대부분 무료로 열려 있다. 아무리 공짜여도 효용이 없으면 가성비가 떨어질 텐데, 그럴 리는 없다는 것. 런던의 뮤지엄은 ‘영감의 창고’와 마찬가지란다. 그렇다면 물가가 비싼 런던에서, 뮤지엄만큼은 공짜로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18세기 영국은 국제 사회의 주인공이었다. 하늘은 새들의 영역이며 사람은 사슴이나 말보다 빨리 달릴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인식은, 영국이 인류에 선물한 제트 엔진과 기차의 발명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산업 혁명 이후 세계 곳곳에 건설한 식민지, 그 식민지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동인도 회사, 아편 전쟁의 승리로 얻은 홍콩까지. 영국의 상업적, 정치적, 군사적 위력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다 싶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영국이 승기를 잡지 못한 영역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문화였다. 유럽 대륙에서 탄생한 문화가 섬나라 영국에 가장 늦게 전달되면서, 영국은 문화적 변방이라는 이미지를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예술사에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나라, 문화적으로 뒤처진 나라라는 오명은 영국에 따라붙은 그림자였다. 변화가 일어난 건 그 무렵이었다.

 


 

역사가 증명하듯 경제 성장이 폭발하면 부가 쌓이면 최고의 관심은 문화로 옮겨 간다. 로마 제국의 이탈리아도 그랬고,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의 시대적 강국들이 그랬다. 경제적 부는 자연스레 영국인들의 지적 호기심에 불이 피워올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문화적 변방이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들이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계몽주의 사상과 맞물리며 영국에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탄생시켰다. 그러고는 국민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만들었기에 뮤지엄을 무료로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료라고 해서 퀄리티가 떨어질 리 만무하다. V&A 뮤지엄에는 다비드 상을 포함해 대표적인 작품들이 공식적으로 복제되어 있어 여러 뮤지엄에 퍼져 있는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국립 미술관에서는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작품을 시대순으로 전시해 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월레스 컬렉션에서는 프랑스의 그 어느 미술관보다도 18세기 프랑스 주요 화가들의 회화와 장식 예술품, 고급 가구 등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은 V&A 뮤지엄, 국립 미술관, 월레스 컬렉션 등을 포함해 런던을 여행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11곳의 뮤지엄을 소개한다. 20여 년간 런던에서 뮤지엄 해설을 진행해온 저자가 공간적, 작품적, 역사적 관점을 넘나들며 뮤지엄에 대해 설명하기 때문에, 모르고 런던에 갔다면 보이지 않았을 것들이 이제서야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쯤에서 생기는 궁금증. 그렇다면 영국은 이러한 노력으로 문화적 변방에서 벗어났을까?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뮤지엄을 대중에게 활짝 열어둔 덕분에, 20세기 말과 21세기 현대 미술을 이끄는 많은 예술가가 영국에서 배출됐다. 이처럼 영감의 원천이 되고 심지어 대부분 공짜이니, 런던의 뮤지엄을 경험하는 게 런던 여행의 가성비를 끌어올리는 방법 중의 하나임은 분명할 듯하다.

 


 

이 책에서는 모두 11곳의 뮤지엄이 소개된다. 몰론 런던에 있는 미술관들이다. 1장에 1곳의 미술관에 대해 설명과 소장품, 미술관의 성격과 미술관의 주인 등이 자세하게 게재돼 있다. 저자가 미술해설사이니만큼 작품 해설은 기본이다. 미술관 내의 상징적 작품을 주로 해설하고 미술관 건립 당시 에피소드 등도 담았다. 또 이색적이고 독특한 미술관은 따로 설명한다. 1장 「V&A 뮤지엄」은 베낀 작품을 버젓이 전시하고도, 오리지널이 된 박물관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2장은 런던 한복판에 공짜로 펼쳐진 서양 미술 교과서란 별칭의 「국립 미술관」이 소개된다. 3장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프랑스를 런더너가 추억하는 방법이란 설명을 곁들인 「코톨드 갤러리」, 4장은 향락과 타락 사이에서 그네 타는 귀족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월레스 컬렉션」, 5장에서는 '태초의 문명인이 새겨 논 요즘 사람들을 위한 암호'라는 설명으로 「영국 박물관」을 안내한다.

이어 6장은 건축 천재의 이기적인 유언이 낳은, 1837년에 멈춰버린 집으로 알려진 「존 손 박물관」, 7장은 증기를 내뿜는 기차는 어떻게 영국 예술을 바꿨나?라는 질문으로 「테이트 브리튼」을 설명한다. 8장에서는 모던 작가의 아리송한 작품에는 뾰족한 메시지가 숨어 있다는 「테이트 모던」을 소개한다. 9장엔 놀랄 만한 가격의 비밀, 논란이 키워 낸 예술의 프리미엄이란 별칭의 「뉴포트 스트릿 갤러리」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10장은 예술과 광고의 경계를 부셔서 미래의 스타를 띄운다란 개념의 「사치 갤러리」를 담고 있으며, 마지막 11장은 도시의 풍경을 바꾸는 지붕 없는 갤러리 「스트릿 아트, 쇼디치」의 내용을 담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은 런던의 뮤지엄 관람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특히 런던의 뮤지엄이 무료로 개방된 원인에 집중하다 보면 역사뿐 아니라 역사가 주는 교훈까지 박물관을 통해 체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런던 여행의 가치를 더 높여줄 이 책은 영국 여행 전 꼭 미리 읽어두는 것을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마지막에 소개된 「스트릿 아트, 쇼디치」는 흔히 말하는 그래비티 미술관을 말한다. 오래전부터 쇼디치는 소외된 사람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장소라고 저자는 밝힌다. 책에 따르면 17세기 위그노라고 불렸던 프랑스 신교도들이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20세기엔 유대인들이 히틀러를 피하기 위해, 1950~60년대에는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이브리티시 드림을 꿈꾸며 모여든 곳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온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 덕에, 쇼디치는 문화적으로 다양성을 띤 독특한 타운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 쇼디치에서 가장 유명한 길은 〈브릭 레인〉이다.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이 정착할 당시 벽돌 공장을 비롯한 여러 공장이 많았던 탓에 브릭 레인이란 이름이 붙었다. 1킬로미터 정도 이어진 길에는 수십 개의 인도 커리집이 들어서 있고, 그 사이사이로 빈티지 숍과 나이트 클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길거리의 벽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작가의 그래피티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젊음의 열기와 예술가들의 열정이 솟아나는 곳이다.(p.258~259)

 

저자 : 윤상인

 

학창시절 제일 좋아했던 과목은 영어와 역사 그리고 지리였다. 세계지도를 보며 대한민국 밖의 세상이 너무 궁금했고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문화와 관습이 다른 것이 신기했다. 결국 이러한 호기심은 세계여행을 꿈꾸게 했다. 20살에 떠난 세계여행은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 이란을 거쳐 유럽으로 향했고 영국에 정착하였다. 영국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런던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예술의 전당, 롯데 콘서트홀 등에서 ‘아르츠 콘서트’를 진행 및 강의를 하였다. 현재는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미술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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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떠나는 세계 지형 탐사
이우평 지음 / 푸른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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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우유니 소금사막 등 전 세계 다양한 지형을 담은 이 책은 독자들에게 아름답고 신비로운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토록 아름다운 지구를 후손들에게 잘 보존해 물려줘야 한다는 환경 보호 인식을 가슴속 깊이 새기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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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떠나는 세계 지형 탐사
이우평 지음 / 푸른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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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아름답다. 물 맑고 산 좋은 금수강산이다. 어렸을 때 배웠던 말들이다. 이후 돌아다니면서 말로만 듣던 것을 직접 보고 확인한 바로는 한반도는 사람이 살기에 적절한 매우 아름다운 곳임에 틀림없다. 외국여행이 자유롭게 된 1990년대 들어 가본 몇 군데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지구 전제가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이라는 사실에 공감하게 됐다. 인류가 인공으로 만든 건축물이나 각종 구조물도 아름다운 곳이 많긴 하지만 대자연이 만들어낸 산과 바다, 특히 지형물은 상상하기 어려움과 놀라움과 신비스러움을 보여주었다. 지구의 나이는 45억 살이라고 한다. 45억 년 지구는 폭발하고 뒤틀리고 솟아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지금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위 이야기는 독자 개인의 입장에서 본 우리 지구이고 인류 과학의 발전은 지구 밖에서 본 지구의 모습도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항공기의 발전이다. 대기권 내이지만 비행기에서 본 지구의 모습도 이를 데 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산과 바다를 땅에서 바라본 것과 위에서 내려다본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이에 더하여 1968년 10월, 인간이 아폴로 우주선에 승선했다. 여러 차례의 테스트와 성공을 거친 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이 달 착륙에 성공했다. 암스트롱은 인간 최초로 달 표면에 우뚝 섰다.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도착한 우주인들도 기지국과의 통신에서도 달에 대한 설화 이야기를 한다. 달에 발을 내딛기 직전인 역사적인 순간, 기지국에서는 ‘남편한테 불사약을 훔쳐 달로 달아난 항아와 계수나무 아래 서 있는 토끼를 찾아보라’고 중국 설화를 인용하며 농담했고, 버즈 올드린은 ‘잘 찾아 보겠다’는 말로 응수했다고 한다. 이렇게 달과 계수나무, 방아 찧는 토끼의 환상은 깨졌지만 오히려 달에서 본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을 보고 갖게 되었다.

 


 

이 책 『세계 지형 탐사』는 전작 『한국 지형 산책』으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우리 땅 곳곳의 아름다운 자연과 특이한 지형을 소개한 이우평이 펴냈다. 저자 이우평은 이번에는 전 세계 대표 지형 56곳을 한 권에 담았다. 대상 지역이 지구 전체라서 약 700페이지에 이르는 대작이지만 그만큼 쏟은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랜드캐니언, 옐로스톤 국립공원, 아마존, 우유니 소금사막, 세븐시스터즈, 돌로미티, 치차이단샤, 파묵칼레, 나트론호, 울루루 등 여섯 대륙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지형들을 선별해, 각 지형의 현재 모습과 형성과정, 생태계 변화, 자연사적 가치 등을 최신 연구와 풍부한 이미지 자료를 토대로 알기 쉽게 소개한다. 45억 년 지구의 역사를 품은 다양한 지형에 관한 종합적인 안내서로, 지리·자연사에 관심 있는 독자뿐 아니라, 광활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모든 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것으로 저자는 기대합다.

지구의 겉표면(지각)는 대륙과 바다로 이루어졌다고 배웠다. 땅에서 지하 30km까지를 지각이라 한다. 겉모습은 공처럼 원형에 가깝고 자전과 공전을 한다고도 배웠다. 달을 위성으로 두고 있으며 태양계에 속한 행성이다. 일년에 한 번 꼴로 태양의 주위를 돈다. 사계절과 해가 떠오르고 서쪽으로 지는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의해 이루어진다. 지구의 위성 달도 바다의 흐름에 관여하는 등 제각각의 임무를 차질 없이 해내고 있다. 우주의 질서를 어기는 일이 없이 진행되고 있다. 만약 이 질서가 깨어진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대변화로 지구라는 거대한 땅덩이도 먼지 하나처럼 일시에 날아갈 수도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여기에 '만약'이란 이루어지지 않을 일을 인간이 상상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주의 탄생과 소멸은 만약에 의해 성립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전 세계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지구의 움직임에 의해 45억 년에 걸쳐 이루어진 결과가 현재의 모습이다. 직접 가본 사람들이 말로 제대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비경이 있고, 상대적으로 생물이라고는 전혀 살지 못할 것 같은 황폐한 곳에도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인간이 아름답다고 표현한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지도 모를 처음 보는 엄청난 모습에는 마땅히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있다. 사람의 힘은 물론 자연이 해낼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들이 지구 겉모습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 책은 지형·지질 경관의 미적 가치뿐 아니라 그 지형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떤 자연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환경·생태적 가치는 무엇인지, 그곳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등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구경도 하고 지식도 얻고... 일석이조 독서의 즐거움을 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우리는 지구의 겉모습, 지각이 5대양 6대주로 이루어졌다고 표현한다. 바다 위에 6개의 대륙이 떠 있는 형상이다. 바닷물도 대기권 안에서 끊임없이 순환하고, 대륙 역시 현재에도 움직이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판단한다. 지구의 45억 년 역사 중 100년도 채 못 사는 인간이 느끼기에는 기간 자체가 비교가 안 된다. 이 책은 각 대륙별로 모두 6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북아메리카〉, 2부 〈남아메리카〉, 3부 〈유럽〉, 4부 〈아시아〉, 5부 〈아프리카〉, 6부 〈오세아니아-대양〉 등이다. 1부에서는 옐로스톤 국립공원, 아치스 국립공원, 모뉴먼트밸리, 엔털로프캐니언, 그랜드캐니언, 더 웨이브, 브라이스캐니언, 데스밸리, 요세미티 국립공원, 하이트샌즈 국립공원, 스포티드 호수, 투크투야크툭 등이 소개된다. 이 서평에서는 가장 앞에 나온 옐로스톤 국립공원만 다룬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이하 옐로스톤)은 전체 면적이 약 9,000제곱킬로미터로 우리나라 경기도 면적과 비슷하다.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 면적의 3배가 넘을 정도로 광대하다. 옐로스톤강이 깎아 만든 평균 깊이 약 300m, 총길이 약 38km에 이르는 V자 대협곡이 발달했다. 이름은 계곡 일대의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융회암이 황 성분을 함유하여 노란색을 띤 데서 유래됐다. 이 지역을 저자는 「물과 열이 만들어 낸 간헐천과 온천의 집결지」란 제목으로 표현했다. 항공 사진인 듯한 이 지역의 모습을 본 순간 처음 본 독자로서는 압도감을 느꼈다. 화산지대에서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함에 정신을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다.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이런 색이 융화될 수 있는지 놀라움의 시작이다. 이곳은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옐로스톤의 상징인 그랜드 프리즈매틱 온천은 폭 90m, 깊이 50m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온천이다. 프리즘처럼 다채로운 색상으로 밝고 선명하게 보인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이곳은 19세기 초 모피를 얻기 위해 로키산맥 고지대에 있는 미지의 땅에 들어간 수렵가들 사이에 '지옥의 솥뚜껑이 열리는 장소'를 발견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허풍쟁이로 치부했다. 그러나 훗날 탐험대에 의해 그 소문의 장소가 옐로스톤이며, 그곳은 열수(熱水, 마그마가 식어서 여러 가지 광물성분이 분리되어 나온 뒤에 남은 뜨거운 수용액으로, 유용한 많은 광물성분이 용해되어 있다)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는 간헐천과 들끓는 진흙탕, 그리고 수증기를 내뿜는 분기공(噴氣孔 화산의 화구 또는 화산가스가 분출하여 나오는 구멍)과 온천 등이 넘쳐나는 화산지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책에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지형 특성이 잘 드러난 「나이카동굴」, 「그레이트블루홀」, 「카나이마 국립공원」, 「카뇨 크리스탈레스」, 「렌소이스사구」, 「아마존강」, 「우유니 소금사막」 등이 소개되지만 독자의 눈에 가장 띈 부분은 브라질 해안사구인 '렌소이스사구'이다. '사막과 호수를 넘나는 아름다운 모래언덕으로 새하얀 사구들이 물결치듯 끝없이 이어진다. 렌소이스사구는 건기에는 물 한 방울 없는 메마른 사막 같지만 우기에는 엄청난 양의 빗물과 강물이 흘러들어 새하얀 사구들 사이로 에메랄드 빛깔의 수많은 호수가 생겨나는 곳이다. 해안에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사구가 이토록 아름다운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렌소이스사구의 모래가 다른 사구 지역의 모래와 달리 하얀색인 것은 모래가 석영질이기 때문이다. '렌소이스'라는 포르투갈어는 '침대보'를 뜻하는데, 이는 침대보가 하얀색인 데서 유래한 것이다. 사구들의 높이는 해발 10~30m로 가장 높은 곳은 약 70m, 길이는 20~70km에 이를 만큼 장대하다. 렌소이스사구의 수많은 모래는 육지와 바다 사이에서 암석이 순환되며 생겨난 것이다. 사구 지역을 흐르는 대표적인 두 하천인 프레기사스강과 파르나이바강에 의해 육지부에서 침식된 모래가 바다로 운반된 뒤, 이 모래들이 조류와 해류에 밀려 다시 해안에 퇴적되어 거대한 해빈(海濱, 바닷가의 오목하게 들어간 해안에 모래가 쌓인 해변의 백사장)을 이루었다. 이곳 해안은 수심 약 70m까지 대륙붕의 경사가 평균 0.06도로 거의 수평에 가깝고 밀물과 썰물의 차가 7~8m로 크다는 점이 거대한 해빈이 만들어지는 데 한몫했다. 해안으로부터 내륙 약 50km까지 사구들은 현생의 활성사구다. 해수면이 현재 수준을 유지한 약 6,000년 전 이후부터 쌓이기 시작한 사구의 면적은 1,000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이 책에는 각 대륙별로 간추린 경이로운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주 다닌 곳도 있고,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지역도 있다. 대륙별로 5~10곳씩 임의 선정해 기술했지만 책 서평으로 쓰기에는 단 한 곳도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절경과 빼어난 외관의 풍경이 있고, 기괴하고 지구가 아닌 듯한 모습의 이색적 경관도 있다. 이 책 서평의 입장에서 마지막 하나를 더 꼽자면 아프리카 「리차트 구조」를 선택한다. 사하라 사막에 새겨진 리차트 구조는 언형의 지형으로 크기와 규모가 지름이 50km에 이를 만큼 방대하기 때문에 고도 10km 이상 올라가야만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독자들이 〈세계테마기행〉이나 〈걸어서 세계일주〉 등 TV 세계여행 프로그램에서 흔히 접할 수 없던 이유이기도 하다. 생긴 모습이 황소의 눈 같아서 '황소의 눈', 사람의 눈처럼 생기고 사하라사막에 있는 동그란 지형이어서 '사하라의 눈'이라 불리운다. 이외에도 '지구의 눈', '아프리카의 눈' 등의 별칭도 있다.

사하라사막 서부 모리타니에 위치한 라차트 구조는 지구의 수많은 지질구조 가운데 가장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드넓은 사막지대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원형 소용돌이 모양을 하고 있다. 우주에서는 보는 방향과 시간대에 따라 빛의 굴절에 의해 다양한 빛깔로 보이기도 한다니 입이 쩌억 벌어질 뿐이다. 이 라차트 구조는 1965년 미국 우주선 제미니 4호가 지구를 돌며 지표면을 촬영하면서부터 알려졌다고 한다. 이후 우주에서 그 모양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 지구로 귀환할 때 사하라사막을 통과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리적 랜드마크로 이용되었다. 이 지형은 늦게 발견되기도 했지만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참여해 각기 다른 이론을 제시하고 있어 아직 정설로 내세울 확실한 발생설은 없는 형편이다. 다만 캐나다 퀘백대학교 매턴 교수의 새로운 주장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운데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괴레메 계곡의 암석기둥 곳곳에는 벌집 모양 같은 구멍이 수없이 뚫려 있다. 그 구멍들은 암벽에 굴을 파서 그 안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든 암굴 주거공간으로, 약 4,000년 전 이곳을 히타이트족이 지배할 당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암굴 거주공간을 만든 이유는 내륙의 초원 및 반건조 지역이어서 식생조건이 불리하여 목재가 귀했던 반면, 화산재가 굳어 형성된 응회암은 암질이 부드럽고 약하여 뾰족한 나무와 돌 등으로 쉽게 굴을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p.449)

 

저자 : 이우평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고등학교, 공주사범대학교 지리교육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리교육과를 졸업하였다. 1994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지리를 가르치면서 우리 땅에 내재된 역사문화와 자연사적 참가치의 발견 그리고 삶터의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 왔다. 특히 우리 자연과 지형에 대한 활발한 조사 연구는 물론, 전 세계 지리학의 정보와 이슈들도 꾸준히 살펴 모아 왔다. 《독서평설》에 ‘우리 땅 밟기’, 《과학동아》에 ‘길 따라 바위 따라’, 《월간 산》에 ‘백두대간’, 《사람과 산》에 ‘한국의 명산 지질 여행’ 그리고 일간지에 ‘시베리아횡단철도’, ‘히말라야트래킹’, ‘미국서부지형지질’, ‘터키-이집트이슬람탐방’ 답사기 등의 생생한 연재로 지리 대중화에도 힘써 왔다. 『고교생을 위한 지리 용어사전』, 『지리교사 이우평의 한국 지형 산책 1, 2』, 『이우평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나라 지리 이야기』를 썼으며, 『초등 세계지리 생생 교과서』와 고등학교 교과서 『사회』, 『공통사회』, 『한국지리』, 『세계지리』, 대안교과서 『살아있는 지리 교과서 1, 2』 등을 함께 펴냈다. 현재 전국지리교사연합회 상임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인천 부광고등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메일: lwp0424@nate.com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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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는 고요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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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주년 산문집 ‘이야기하는 바람’ 박범신 작가의 높고 깊은 산문 미학에 심취할 수 있다. 일상에 대한 성찰과 인생에 대한 통찰, 고요 속에 일렁이는 문학에 대한 순정한 갈망이 날것 그대로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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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는 고요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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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박범신은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박범신은 1973년 단편 「여름의 잔해」로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강산이 5번이나 변하는 동안 박범신의 문학은 등단 초기의 젊은 시절, 강렬한 현실 비판적인 단편소설들을 발표했다. 당시 문단에 굉장한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 많은 작가들 사이에 기억되고 있다. 80년대로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수많은 장편 베스트셀러를 펴내 이른바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랐으며, 90년대 문화일보에 『외등』을 연재하던 중 시대와의 불화로 돌연 “내 상상력의 불은 꺼졌다”고 말하면서 ‘절필’을 선언한 바 있다. 당시 박범신의 절필 선언은 많은 화제를 모았다. 1993년 『흰소가 끄는 수레』로 문단에 복귀한 뒤엔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면서 이른바 ‘갈망의 3부작’으로 알려진 『촐라체』 『고산자』 『은교』를 비롯해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뛰어난 소설을 계속 펴냈다. 자본주의 세계구조를 통렬히 비판한 3부작 『비즈니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소금』 등을 연달아 펴내 '역시 박범신'이라는 찬사와 함께 독자를 사로잡았다.

박범신은 양극화되어 있는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왕성한 집필로 동시에 큰 성과를 이루어낸, 우리 문단에서 매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낸 우리 시대의 대표적 작가이고, 25편 이상이 영화, 드라마, 연극으로 제작돼 다른 장르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으며, 네이버에 최초로 장편 『촐라체』를 연재해 수백만 독자를 사로잡음으로써 인터넷 장편발표 시대를 견인하기도 했다.

 


 

이 책 『두근거리는 고요』는 『순례』와 함께 등단 50주년을 맞아 펴낸 두 권의 산문집 중 하나다. 저자는 "자신에겐 오로지 죽을 때까지 현역작가로 살고 싶었던 ‘문학순정주의’의 가치와 모든 계파에서 자유로운 ‘인간중심주의’ 가치뿐이었으며 오직 그것들만을 신봉하며 살아왔다"고 술회했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평생을 '글쟁이'였던 작가답게 각 장의 제목 아래 부제로서 〈와초재 이야기〉, 〈문학 이야기〉, 〈사랑 이야기〉, 〈세상 이야기〉라고 달아 이야기꾼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1장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비어있는 집」, 2장 「나는 본디 이야기하는 바람이었던 거다」, 3장 「머리가 희어질수록 붉어지는 가슴」, 4장 「함께 걷되 혼자 걷고, 혼자 걷되 함께 걷는다」란 제목이 적혀 있다.

고향인 충남 논산에 있는 집필실의 이름이 와초재(臥草齋)이다. ‘와초’는 작가의 호(號)이다. 소설 『풀잎처럼 눕다』에 착안해 친구였던 소설가 김성동이 부르던 별명이었으나 점차 호로 굳어졌다고 한다. 와초재에는 제목으로 쓰인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비어있는 집”이라 쓰인 판석이 붙어있다. 와초재라는 현판을 걸기 전, 오랜 고심 끝에 직접 써 새겨온 것이라는 귀띔이다. 홀로 가득 차지 않고서는 작가로서 글을 쓸 수 없고, 따뜻이 비어있지 않으면 사람으로서 원만한 삶을 살 수 없으므로, 그 뜻을 가슴에 담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단독자로서 존재하는 ‘밀실’과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광장’을 수시로 오가며, 상상력으로 밀실뿐만 아니라 밀실을 둘러싼 우주까지 드높이 채우기를,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춤하며 광장의 삶에 깃들기를 소망한다.

 

 

저자는 홀로 와초재에서 지내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고 소소한 작물을 키우고 정처 없이 들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기고 밤 깊도록 글을 쓴다. ‘가난한 밥상’과 ‘쓸쓸한 배회’에서 행복감을 얻는 것은 자유로운 삶의 본원적인 심지가 거기에 박혀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이 봄, 이 여름, 이 가을이 아니면 못 볼 꽃을 그냥 지나쳐 왔을까.” 장편소설 『당신』의 한 구절이기도 하려니와, 이 짧은 문장에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죽은 아내의 산소에 놓아주기 위해 들고 온, 생전의 아내가 아꼈다던 그 책에 저자는 그렇게 써 주었다고 밝힌다.

온화한 마음결만으로 사랑을 완성할 수는 없다. 불온한 시대일수록 더욱 그렇다. 작가는 어긋난 욕망으로 들끓는 세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자본주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어른들과 부끄러운 줄 모르고 ‘대박!’이란 비속한 말로 자신의 이상을 설명하는 청년들, 정치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 또한 매일반이다. 그들에게 최상의 행복은 자본이 주는 소비의 감미, 기득권의 전략적인 방어밖에 없다.

사람에겐 세속의 욕망 말고도 완전한 사랑이나 신과 가까워지려는 초월적 욕망이 있다. 이루지 못할지라도 그것을 품고 살아야 삶의 품격을 얻을 수 있다. 추상의 가치를 이해하고 속 깊이 품을 수 있는 것도 인간만의 특권이다. 영원성이 그러하고 사랑이, 신이, 행복이 그러하다. 손으로 만져본 적도 없고 눈으로 본 적도 없는 가치다. 영원이든 신이든 행복이든, 따져보면 모든 게 사랑이라는 이름의 길로 통합된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로 요약된다. “사랑만이 가장 큰 권력이다!”

 


 

저자는 「연애 50년」이란 '작가의 말'을 통해 "소설보다 산문집이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더 온전히 드러나 자못 수줍다"며 "언어가 가진 한계와 그 함정을 생각해온 나날인바 이 책이 세상에 소음을 보태는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라고 썼다. 저자는 데뷔한 지 올해로 50년이지만 소설쓰기는 늘 홀림과 추락이 상시적으로 터져 나오는 투쟁심 가득 찬 연애와 같았다"고 고백한다. 먼 것과 가까운 것, 영원과 찰나, 그리운 것과 부족한 것들이 자신의 안뜰에서 매일매일, 격렬히 부딪치고 껴안고 또 아우성치며 찢어졌다는 말도 남긴다. 더러 황홀했고 자주 무서웠고 많은 순간은 끔찍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익숙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저자의 데뷔 50년은 수십 권의 소설을 써왔지만, 돌아보면 단 한 번의 미친 연애로 시종해온 것 같은 세월이라고 회고한다.

첫 장에서는 집필실이 있는 〈와초재〉의 일상과 생각 등 단상 중심이다. 와초재는 아마 가족이 함께 생활을 하던 곳은 아닌 모양이다. 아내가 식사를 위한 반찬 등으로 잠깐씩 들르지만 오롯이 집필을 위한 공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따끔씩 아내가 내려와 있을 때면 식사 시간이 원만하다고 회고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글쟁이가 요리까지 잘한다는 말을 독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라면이나 제대로 끓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내가 내려왔다 2~3일 머무는 동안의 기억이 저자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나 보다. "모든 연애는 필연적으로 '일상화'의 과정을 겪는다. 이 수상한 세월 속에서 낭만적 사랑만으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나날이 깨달아야 하는 제도권 결혼생활에서선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결혼을 통해 사랑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의미에선 착각에 불과하다. '연애'는 나날이 조금씩 까먹고 그 자리에 '우의(友誼)'를 더께로 쌓는 것이 결혼생활일지도 모른다. (중략) 순서는 알 수 없으나 아내와 나는, 젊은 날 철없이 맹세했던 대로 ‘곁에서 죽는 것’을 지켜보게 될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2장에선 '결핍과 상처로부터의 자유'라는 글이 가장 독자의 눈에 띈다. 저자가 절필 선언을 한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으리란 기대에서다. 독자는 등단 초 저자의 소설을 좋아하다가 80년 대 들어 대중 작가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잠시 관심을 멀리했다. 이 때문에 그가 절필을 선언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무슨 이유인지도 모른다. 복귀 선언은 앞서 언급한 『흰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면서다. 책에 따르면 1993년 문화일보에 『외등』이라는 소설을 연재하다가 하루아침에 연재를 끊었다. 이른 새벽 신문사로 찾아가 출근하는 사장을 기다렸다가 다짜고짜 "오늘 이후 누가 권총을 뒤꼭지에 대고 쓰라고 해도 한 줄초자 쓰지 않을 거외다"라고 말했다. 10여매 짜리 '연재를 중단하며'란 글과 함께 신문 연재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절필 선언을 왜?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저자의 글을 쓸 때의 버릇이 건강뿐만 아니라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무지'했던 것 아닐까 유추할 수 있는 단서는 있다. 글을 쓰다가 졸음이 덮치면 눈이 감기지 않게 호치키스로 눈을 찍어두고 쓰자고 생각한 적도 있었을 정로도 한 달 700~800장의 원고를 쓸 때도 있었다고 말한다. 주위에서 건강 걱정을 안 할 리가 없다.

이는 첫 번째 원인이었을 것이고 그때의 근황이나 저자의 생각을 들어보면 두 번째 이유는 여전히 군부 독재의 끔찍한 유산이 사라지지 않은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한 글을 이어 적고 있다. 유신 이후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닫힌 시대와의 불화가 필연적으로 절필을 불러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80년 광주'가 준 충격과 트라우마는 세월이 가도 가시지 않았다. 장편 『불의 나라』를 쓸 때는 이태원을 그린 장면에서 미군을 비판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경찰서 대공과의 조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불온하기 짝이 없는 시대였다. 역사의 잔혹한 울돌목에서도 작가로서 겨우 밥 먹고 살기 위해 연재소설이나 쓰고 있었다는 자학과 새로운 시대의 아침이 영영 오지 않을 것 무위한 절망감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고 말한다.

 


 

4장 「함께 걷되 혼자 걷고, 혼자 걷되 함께 걷는다」 〈세상 이야기〉에서 '삶의 두 가지 길'이란 글은 독자에게 소개하고 이 책을 읽기를 권유하는 의미에서 여기에 쓴다.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과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인생관, 가치관 등이 잘 나타나 있다는 생각에서다. 역시 자신의 집필실에서 쓴 것으로 보인다. 와초재에서 계룡산 밑에 있나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이 글에서 저자는 "눈이 내린다. 계룡산 밑에서 산을 올려다 본다. 연접되고 중첩된 산의 실루엣이 아득하게 소실점에서 지워지고 있다. 그 소실점으로 가고 싶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욕망으로 쌓은 생의 기억들 하나씩 하나씩 지우면서 가면 좋을 것이다. 욕망에의 기억들은 얼마나 무거운가. 하나씩 기억들을 지우면서 걷다 보면 나의 온몸이 나뭇잎처럼 가벼워질 게 틀림없다."

저자는 이어 "사람에겐 두 가지 층위의 욕망이 있다"고 전제하고, "하나의 묙망은 더 큰 아파트 더 빨리 달리는 자동차 등을 갖고 싶은 세속의 욕망일 것이고 다른 하나의 욕망은 불멸, 완전한 사랑, 신과 가까워지려는 초월적 욕망일 것이다. 모든 예술가의 최종적인 욕망이야 죽은 다음에도 살아남기, 이른바 불멸에의 욕망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가. 사랑도 마찬가지. 평생 완전한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다시 보면 늘 이렇게 빈손이다. 그래도 그렇다. 오직 한 가지, 자본주의적 소비의 욕망만 따라서 살 수는 없다. 이루지 못할지라도 초월적인 욕망을 품고 살아야 참된 삶의 품격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삶은 그런 관점에서 두 종류가 있다. 소비 생활의 만족을 위해 오로지 헌신하지만, 결코 충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삶이 있고, 소비가 주는 안락을 조금 유예하거나 희생하더라도 영혼의 안락을 얻어 삶을 보다 높은 성지로 끌고 가려는 삶이 있다."((p.257~258))

 


 

저자 : 박범신(朴範信)

 

1946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원광대 국문과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78년까지 문예지 중심으로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ㆍ단편을 발표, 문제작가로 주목을 받았으며, 1979년 장편 『죽음보다 깊은 잠』『풀잎처럼 눕다』등을 발표, 베스트셀러가 되어 70~8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빛나는 상상력과 역동적 서사가 어우러진 화려한 문체로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밀도 있게 그려낸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작품 중 70년대와 80년대에 발표된 작품들은 폭력의 구조적인 근원을 밝히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또한 도시와 고향이라는 이분법적인 대립구조를 통해 가치의 세계를 해부하려는 시도로 인해 대중작가라는 곱지 않은 평을 듣기도 했다.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중 1993년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문학과 삶과 존재의 문제에 대한 겸허한 자기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가졌다. 사유의 공간으로 선택한 곳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멀게 느껴지던 히말라야였다.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를 여섯 차례 다녀왔으며 최근에는 킬리만자로 트레킹에서 해발 5895미터의 우후루 피크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1996년 유형과도 같은 오랜 고행의 시간 끝에 [문학동네] 가을호에 중편소설 「흰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재개한 후 자연과 생명에 관한 묘사, 영혼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 세계로 문학적 열정을 새로이 펼쳐보이고 있다. 명지대 교수, 상명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외등』은 그가 글쓰기를 떠나기 전의 문학세계와 그 후의 문학성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으로, 해방 후의 현대사의 흐름을 같이 걸어온 주인공 서영우와 민혜주, 노상규 이 세 인물들을 통해 잃어버린 사랑의 원형을 찾아 결국엔 죽음에 이르는 피빛 사랑을 그려내면서 해방 후 현대사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더러운 책상』은 특이하게 '단장'으로 이뤄져 있다. 박범신의 자전적 소설로도 볼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그가 겪었을 젊은 날의 고뇌들이 그렇게 표현된 것처럼 평가받는다. "새벽이다. 무엇이 그리운지 알지 못하면서, 그러나 무엇인가 지독하게 그리워서 나날이 흐릿하게 흘러가던, 그런 날의 어느 새벽이었을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살고자 했던 그의 고민을 엿보게 해준다. 작가 박범신은 이 작품으로 창작과비평사가 제정한 2003년 제18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들, 쓸쓸하다』에서 박범신은 그의 문학인생 못지않게 녹록치 않았던 남자인생 60년을 이야기한다. 오로지 아들 하나를 욕망하던 어머니의 늦둥이 외아들로, 수많은 복병에도 불구하고 30년 이상 한 울타리를 지켜온 남편으로, 수십 년간 밥벌이를 감당해야 했던 고단한 아버지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이 땅에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짚어본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어가는 사회 구조 안에서 이제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남자들, 즉 구시대의 ‘화려한 권력자’에서 이 시대의 ‘쓸쓸한 인간’으로 자리바꿈한 중년 남자들의 현주소를 살펴봄과 동시에, 이제는 사회의 구석자리에서 불안한 헛기침만을 날릴 수밖에 없는 그 ‘쓸쓸한’ 남자들의 진솔한 속내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비우니 향기롭다』는 더욱 더 소유하고자 하는 물질 만능주의 현실에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안내서이다. 내면의 깊이가 더욱 확장된 저자가 히말라야에서 깨달은 바는 진정한 삶의 행복은 가지려는 마음보다 비우려는 마음에 있다는 것. 이는 바로 불교 철학의 '무소유'와 직결된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만 살아가는 기쁨이 더 줄어든 시대. 이 책은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이 외의 작품으로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물의 나라』 『겨울강 하늬바람』 『킬리만자로의 눈꽃』 『침묵의 집』 『와등』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등이 있고, 소설집에 『토끼와 잠수함』 『덫』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등이, 연작소설에 『빈 방』 『흰수레가 끄는 수레』 등이 있다. 2001년 소설집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로 제4회 김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 『나마스테』로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2007년 9월부터 2008년 1월까지 5개월동안 네이버 블로그에 「촐라체」라는 소설을 연재하였다. 이 소설은 2005년 1월 히말라야 촐라체봉(6440m)에서 조난당했다가 살아 돌아온 산악인 박정헌·최강식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또한 『촐라체』와 『고산자』와 함께 ‘갈망의 삼부작(三部作)’인 은교에서는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감히 탐험하고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소설은 또 무엇인가. 젊음이란 무엇이며, 늙음이란 또 무엇인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풀어내는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은 최근에도 『비즈니스』, 『빈방』, 『외등』, 『힐링』,『소소한 풍경』등을 발표하며 꾸준히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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