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이름 사전 - 누구나 쉽게 이름 짓는 법
소담 지음 / 콜라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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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사전'이라는 표제어 때문에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모아놓은 '인명 사전‘과 헷갈릴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작명 사전'이다. 이름을 지을 때 필요한 것을 찾아보는 사전이다. 우리 이름은 대개 한자를 사용해 왔다. 누구나 남녀 구별 없이 한자 이름을 갖고 있을 것이다. 태어나면 갖게 되는 이름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사용하지만 작명 원리에 따라 짓는다고 한다. 특히 우리는 성과 이름을 모두 한자를 사용했다. 최근엔 이름의 경우 순우리말이나 한글 발음으로 듣기 좋은 이름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직 우리 나라 대부분은 한자 성을 그대로 갖고 있고, 이름도 한자로 지어 사용하고 있다. 한자 자체가 뜻글자이니만큼 한 자, 한 자에 각각의 뜻이 있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인간이 평생 사용할 것을 고려해 의미가 좋은 한자를 사용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무척 어려운 작명 원리가 있다고 한다. 사회적 인식이 아직은 한자 이름이 더 일반적이어서 한글 이름을 일부러 생각해놓지 않은 경우 대부분 한자 이름을 관례대로 짓고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잘 알지만 한자는 무척 어려운 글자다. 일반 사람이나 특히 한자 교육을 받지 않은 한글 세대인, 지금의 중년까지는 한자 이름을 짓기에는 무척 어렵다. 이 때문에 유명 작명인이나 작명소를 찾아가 이름을 의뢰해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엔 한글로만 된 이름이 이젠 낯설지 않을 정도로 시대가 변했다. 특히 법원에서도 출생 신고 시 이름 옆에 한자를 옆에 병기토록 해 이전 세대는 한자 이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한자로 성과 이름을 짓는 사람들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양반이나 일반 백성 중에서도 사회적 인식이 허용된 범위 내에서 가능했기에 한글 이름은 사람의 축에 들지 못하는 천민 계급에 사용하던 불행한 시대의 산물이지만 사회적 의식이 아직은 관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한 현실은 안타깝다.

 


 

조선 후기에 양반과 중인, 일반 백성, 천민 등의 신분 제도가 붕괴되면서 한자 이름을 모두가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신분 제도가 붕괴된 것은 시대적 흐름도 있겠지만 정치의 잘못으로 양반 신분을 돈으로 사고팔고 하는 바람에 신분 제도의 붕괴가 있었다. 신분을 돈으로 산 일부 사람들은 아예 성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누구나 양반 신분으로 한자 이름을 사용했을 것이다. 일반 백성은 그래도 양반들이 갖고 있는 성씨를 쉽게 살 수 있지만 천민들은 돈도 없는 데다 마땅한 아는 양반도 없을 터이니 잘 쓰지 않는 한자를 몇 개 골라 주었다는 말도 있다. 이른바 '천성(賤性)'이란 말도 생겼다. 여기에 그 성씨를 쓸 수는 없지만 들어본 독자들은 상당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모두 조선 시대 정치력 부재, 타락한 양반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성씨와 이름을 팔았다는 일이 더 수치스럽다.

과거야 어쨌든 지금은 한글 전용 시대이고 가능한 한 한글을 쓰도록 사회 인식이 바뀌고 있어 이름도 곱고 발음이 좋은 한글을 사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법원에서도 한글이름을 인정하고 출생신고에도 한자 병기 의무 사항을 삭제한 것으로 들은 적이 있다.

개명이 필요한 경우 한자로 사용하는 것보다 아예 한글 이름이나 발음상 한글처럼 들리는 이름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이들의 이름을 보면 우리말에 아름답고 듣기 좋은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자만 사용하던 조선시대가 나라말도 잃어버린 셈이라는 생각에 아쉽다. 또 예명이나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속 인물의 이름이 필요할 때 쓰는 캐릭터명도 한글로 바뀌어가는 추세여서 반가운 일이다. 작명 사전인 이 책 『만능 이름 사전』은 작명 원리를 알아두는 것도 유사시 필요할 것이란 생각에 예비 지식으로 구입을 하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란 예상을 해본다.

 

 

특히 삶이 잘 안 풀리거나, 발음상 듣기 거북한 이름, 뜻이 이름으로 쓰기에 맞지 않은 한자 이름도 아직 많이 있다고 해 저으기 놀랍다. 개명도 예전보다 쉬워졌고, 한글 이름도 가능한 시대 작명 사전이 웬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우리 이름은 너무도 소중하기에 꼭 이런 사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온전히 한글로 성과 이름을 쓰는 날로 바뀌기 전까지는 말이다. 독자들도 한 번쯤 '내 이름, 괜찮은 걸까?’라는 의문을 떠올려 봤을 것이다.

독자는 경험이 있다. 내 스스로 이름이 안 좋은 건가? 하는 의문을 떠올린 것은 아니다. 학교 다닐 때 부모 말씀을 제대로 안 듣고 빗나간 행동만 한다는 질책과 함께 어느 날 이름을 바꿔 부르기로 했단다. 한자를 쓰는 것은 그대로지만 서울의 유명한 작명가에게 적잖은 돈을 주고 받아왔단다. 호적상 이름을 바꾸는 것은 어렵고 귀찮은 일이니, 호적상은 그대로 두고 살면서 불리는 이름을, 말하자면 사온 것이다. 그래서 대학 다닐 때는 상당수 클라스 메이트들이 바뀐 이름을 불렀다. 심지어 졸업 당시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주는 상패에도 바뀐 이름으로 적혀 집에 아직 그대로 있다.

이 책 『만능 이름 사전』은 이름에 관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동시에, 누구나 쉽게 이름을 짓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개명, 작명, 예명, 캐릭터명까지 가이드만 따라가면 원하는 이름을 완성하도록 구성했다. 무제한 사용 가능한 이 책을 언제든지 꺼내서 ‘내 이름이 나와 잘 맞는지’ 분석하며 개명할 이름 후보도 꼽아 보고, SNS에서 사용할 예명도 지어본다면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또 언젠가 태어날 아기 이름도 좋고, 작가라면 내 작품 속 캐릭터 이름을 지으며 그들의 운명을 결정해도 좋을 것 같다. 한자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사주를 해석할 줄 몰라도 작명이 가능하도록 구성된 이 책의 안내와 우선순위 추천 글자, 필요한 팁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 이 책을 구성했다. 따라 하기만 하면 이름이 완성되는 샘플까지 충실히 담겨 있어 전문가의 코칭을 받는 느낌으로 즐겁고 편하게 이름 짓기에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더불어 ‘개명으로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 ‘작명소에서 당하지 않으려면?’ ‘예명만 사용해도 운이 달라지는 효과가 있을까?’ 등 궁금했던 질문에 관한 대답까지 함께 들을 수 있어, 이 책 한 권으로 이름 짓기라는 세계가 내 일상으로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 책에 ‘만능 이름 사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작명, 개명, 예명, 그리고 창작자를 위한 캐릭터명까지 원하는 모든 이름을 짓는 방법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또 내 이름이 정말 괜찮은지, 혹시 나와 잘 맞지 않은 이름은 아닌지 분석도 가능하고, 다양한 개명 후보들과 SNS에서 사용할 예명도 무제한으로 지어볼 것을 권유한다. 언젠가 태어날 아기 이름을 여러 가지로 지어보면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떠올려 보기도 하고, 귀요미 조카 이름을 지어서 추천하거나 예비부부 선물용으로도 좋다고 덧붙인다. 앞서 언급한 대로 글을 쓰는 작가라면 작품 속 캐릭터 이름을 만들어 보며 그들의 운명을 결정해줄 수도 있다.

이 책 『만능 이름 사전』은 한마디로 ‘누구나 쉽게 이름을 지을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이 책이 목표하는 바는 적어도 100점 만점에 90점 정도의 이름을 누구나 지을 수 있도록 쉽게 이름 짓기를 소개하는 것이라고 출판사 측은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기존 주류 성명학 기준을 토대로 하되, 여러 갈래가 있을 경우 그 기원을 꼼꼼하게 따져서 더 타당하다고 보는 쪽을 기준으로 삼았고 이때 기준으로 삼은 근거와 함께 다른 의견은 참고로 실어주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을 따라가기만 하면 보통 이상의 작명소에 가서 이름 짓는 정도는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출판사 측의 주장이다.

 


 

이 책 『만능 이름 사전』 한 권에는 이름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내 손 안에 잡히게 해줄 내용이 알차게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름 짓기의 방대한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가이드로 만들어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쉬운 방식을 제시하였고, 작명 과정의 핵심을 이해하여 나에게 필요한 경우에만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 필요한 경우 언제 어디서나 이용 가능한 책으로 기능하도록 사전식 배열이나 구성을 따른 독창적 이름 사전임을 강조한다. 이 밖에 다양한 예시로 작명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줌으로써 실제로 이름 짓기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성명학에 지식 없이도 누구나 자유자재로 손쉽게 원하는 이름을 지을 수 있게 되리라 출판사와 저자는 확신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7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만능 사전 사용법」-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기본 스텝과 가이드, 2부 「개념 한 스푼」-한눈에 알기 쉬운 개념 원리, 3부 「만능 글자 사전」-이름 짓기의 하이라이트, 좋은 글자 고르기, 4부 「주의할 글자」-주의하여 사용해야 할 글자와 그 이유, 5부 「실전 사례」-작명, 개명, 예명, 캐릭터명 실전 엿보기, 6부 「Q&A 상담소」-이름 짓기에 관한 궁금한 질문들, 7부 「수리사격 해설집」-수리사격81의 자세한 해설집 등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책은 독창적 특징으로 독자들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실제 작명해볼 수 있도록 관련된 모든 것을 실었다. 출판사가 내세운 여덟 가지 독창적 특징을 독자가 임의로 번호를 붙여 여기에 명기한다. 독자들이 이 책의 성격을 알고 읽는다면 더 빠른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① 국내 최초 다양한 목적에 딱 맞춘 이름 짓기 툴 : 그동안 좋은 이름 찾으려고 얼마나 헤매나? 가이드를 따라 하기만 하면 누구나 쉽게 이름을 지을 수 있는 『만능 이름 사전』 하나로 작명, 개명, 예명, 캐릭터명까지 명쾌하게 해결된다. ② 사주에서 이름 관련된 핵심 내용만 알기 쉽게 총정리 : 이름을 지으려면 사주를 알아야 한다고? 이름 짓기 전 사주와 관련해 체크할 포인트는 바로 오행의 분포다. 사주의 부족한 기운을 이름으로 채워 보완하는 방법을 모두 공개한다. ③ 글자에 담긴 뜻과 자원오행, 획수 정보가 한눈에 : 이름의 재료가 되는 한문 글자, 그 글자에 담긴 의미와 자원오행, 획수 정보까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주를 확인한 다음, 나에게 부족한 기운의 마음에 드는 글자를 찾아보는 재미에 푹 빠질 수 있다.

 


 

④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은 내가 직접 판단해 걸러내도록 : 여자 이름에 사용하지 않은 글자, 너무 뜻이 강해서 인생의 굴곡이 생길 수 있는 글자 등. 이러한 글자는 따로 분리해 주의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나서, 필요에 따라 유의해 사용하도록 하였다. ⑤ 발음오행? 자원오행? 내가 원하는 기준이면 적용 : 모든 조건에 딱 맞는 이름을 찾기 어려울 때를 대비해 성명학 주류 개념인 발음오행, 자원오행, 수리사격을 스스로 이해한 다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쪽으로 우선순위를 두어 적용하도록 하였다. ⑥ 찾았다! 나와 비슷한 사례 : 우선순위가 헷갈리거나 뭐가 더 좋을지 고민될 때는 이름 짓기 사례를 통해 남들은 어떻게 판단해서 이름을 짓는지, 어떤 기준이 중요한지 참고하며 내가 진짜 원하는 이름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⑦ 친절한 팁으로 옆에서 코칭받는 느낌 가득 : 궁금해할 만한 부분에 친절한 팁을 달아 옆에서 함께 있어 주는 느낌으로 이름이라는 세계를 탐험할 수 있다. ⑧ 이름이 나쁘다고? 작명가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 가능 : 이제 내 이름이 안 좋을까 괜히 불안해하거나 찜찜할 필요 없다. 오히려 작명소를 가더라도 전반적인 체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이름을 지어올 수 있다.

 

저자 : 소담

 

“본 바탕이 희고 그 맛이 슴슴하다는 것은 항상 변함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제가 닮고 싶은 성질을 호로 지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름 짓기를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낸 책이 없어서 주변 분들이 늘 막막해하는 것을 보고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료를 모으며 실용적이고 대중적인 관점에서 체계화하여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이름 짓기 책을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따라 하기만 하면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실용성과 더불어 성명학의 핵심 개념과 쟁점까지 다루어 이름 짓기를 내 손에 잡히는 일상의 영역으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만능 이름 사전》과 함께면 어려운 용어나 개념에 발목 잡히지 않고 자신에게 가장 맞고 필요로 하는 이름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 책과 함께 이름이라는 세계를 탐험하는 과정에서 이름 짓기에 대한 두려움이 기대와 즐거움으로 바뀌길 바랍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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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이해경 지음 / 유아이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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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고 정의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인류는 유사 이래 헤아릴 수 없는 크고 작은 전쟁을 끊임없이 해왔다. 따라서 권력층이나 왕조의 흥망성쇠는 병가지상사라고 할 만큼 흔하고 잦은 일이기도 하다. 강력한 왕조라 할지라도 500년을 이어온 왕조는 가장 강력한 왕조라 했던 중국이나 로마 등 세계 역사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다고 들은 바 있다. 그렇지만 500년을 넘긴 왕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은 518년을 이어온 한반도 작은 나라지만 영욕의 세월을 모두 헤쳐 나오며 518년 간 이어졌다.

물론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고 막강한 군을 보유한 일본의 야욕에 결국 무릎을 꿇고 국권을 상실했지만 이어온 세월이 500년이 넘는 나라가 무너졌다. 그러나 그 나라에 살던 사람들마저 정복하지는 못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다시 자주독립국으로 우뚝 섰다. 비록 이념 차이로 반쪽으로 나뉘었지만 세계 10대 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시 일어섰다. 이는 한민족의 자존심이자 대한민국의 자긍심으로 체화되었다.

이 책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은 고종 황제의 손녀이며 의친왕의 딸인 이해경 왕녀가 자신을 비롯한 황실 가족의 삶을 되돌아본 회고록이다. 저자는 세 살 때부터 궁에 살면서, 예절과 법도를 중시하는 궁궐 생활과 개화된 바깥세상 사이를 오가며 자랐다. 왕녀로 지낸 시간과 일제 강점기,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학창 시절, 해방을 거쳐 6·25 전쟁까지의 혼란 등을 고스란히 직접 겪었다. 국권은 회복했으나 왕조가 들어선 게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 수립으로 왕조의 식구들로 함께 궁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젠 거의 유명을 달리하고 얼마 남지 않았을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실제 궁 안에 살았던 왕족들은 이제 없다고 해야 맞을 듯하다.

 


 

저자 이혜경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대한제국 황실과 구한말의 숨겨진 역사를 황실 가족의 일생을 통해 자신이 직접 겪은 바대로 자신의 생애 범위 내에서 회고했다. 이미 113년 전에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황실의 일가는 저마다의 삶을 이어 가야만 했다. 또한 영친왕, 의친왕, 덕혜옹주, 이우 공 등 많은 황실의 가족이 망국의 설움과 더불어 비운의 삶을 살다 갔다. 한국 근현대사 속 격랑의 시대를 모두 거쳐낸 이해경 왕녀의 생생한 회고담을 통해 황실 사람들이 겪었던 시대의 아픔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우리 나라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역사에는 늘 즐거운 일만 아니기 때문이다. 또 즐거운 일보다 힘든 일에서 배우는 바가 더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본이 근대화 산업화를 이루고 막강한 군의 힘으로 한반도 및 대륙(중국) 침략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조선 왕조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권력층은 나라의 운명을 외면한 채 사욕을 채우고, 권력 싸움만을 계속했다. 근대화된 일본군에게 총 한 번 제대로 쏘아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나라를 빼앗겼다. 서양 특히 영국의 대영제국을 모델로 삼은 일본 제국주의와 군대는 영국의 식민 정책을 그대로 배워와 '동양 평화'를 앞세우며 식민지를 확대해가기 시작했다. 변변한 군대도 없고, 무기를 들여올 돈도 없는 조선 왕실은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꿔가며 최후의 방어에 진력했지만 일본군의 막강한 힘을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1910년 518년을 이어온 조선왕조가 막을 내렸다. 일본은 회유책으로 왕실과 왕조에 대한 보호한다는 얄팍한 술수를 앞세워 왕실 일가를 일본으로 데려가 일본 내에서만 거주하도록 강제했다. 감시 대상인 것이다. 일본으로 끌려간 왕실 일가는 대부분 "나라 빼앗기더니 이젠 민족마저 배반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궁지로 몰렸다. 굳이 문서로 확인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뻔한 일이다.

 

 

35년간 일제 식민지 생활을 해온 국민들에게 호의를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최종 책임은 황실에 있고, 빼앗기고 나서도 독립운동에 나설 입장도 못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사람들의 독립운동 참여가 커지자 독립투사들은 중국 등으로 몸을 피해 독립운동을 계속하고 새로운 체제의 임시 정부도 수립했다. 이젠 나라의 주인이 왕실이나 왕이 아니라 국민인 나라가 된 것이다. 저자 이혜경은 고종 황제의 아들 의친왕의 다섯째딸이다. 대한제국은 일제의 국권 침탈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대한제국은 근현대사 역사책에나 나오는 시절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동안 대한제국 황실에 대한 인식은 무능하여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항일에 대한 의지 없이 유약하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독자도 역사 시간에 그렇게 배웠다. 그것은 모두 일본이 만들어낸 국권 침탈의 명분이라는 것이 저자 이혜경의 주장이다. 황실 일가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았다는 것. 저자는 이러한 왜곡된 세간의 평가를 바로잡고자 자신이 경험하고 목격한 궁궐 안에서의 삶을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여러 가지 왜곡된 사실이 있었을 것이지만 저자의 부친인 의친왕에 대한 매국노·친일파 비난은 잘못된 것이라 바로잡고 싶다는 게 책 발간의 가장 큰 이유다.

저자는 1997년 『나의 아버지 의친왕』이란 책을 낸 바 있다. 그 책의 주인공은 의친왕이었다. 이에 따르면 그동안 그 책의 내용은 대한제국과 아버지에 대해 언급한 여러 책에 인용되기도 했다. 의친왕의 딸인 나의 개인적인 기록이 인용될 정도라면 그만큼 대한제국 황실 가족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는 얘기이다. 이 책의 일부 내용은 전에 펴냈던 『나의 아버지 의친왕』의 내용과 겹치는 부분도 있다. 어차피 두 책 모두 저자와 가족이 살아온 이야기를 적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이유를 「대한제국을 회상하며」란 책 '머리글'에서 적고 있다. 첫째, 왕녀로 태어나 민간인이 되어, 또 재미 동포가 되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나의 삶의 여정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둘째, 대한제국의 황자였던 내 아버지 의친왕에 대한 왜곡된 평가를 바로잡고 싶은 마음에서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 사람 어느 누구도 행복한 생활을 한 사람은 없을 터, 조선 마지막 왕실 일가들도 처참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이 추측은 조선 사람들 모두가 직접 겪었기에,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나 기록은 행복이란 단어가 아예 없었을 것이란 점에 동의할 것이다. 어쩌면 당시 조선어 사전을 봐도 행복이란 단어는 빠져 있었지 않나 싶다. 저자 이혜경은 궁 안에서의 생활을 썩 내키지 않아 했던 것 같다. 저자는 어린 시절 생모와 헤어져 사동궁에 살면서 의친왕비의 보살핌을 받았다고 한다. 유모, 나인, 상궁같이 시중드는 사람이 늘 옆에 있었고, 소학교에 입학해서는 가까운 학교까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황실의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마음껏 놀 수도 없고,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라는 엄격한 예법의 굴레에 매인 궁중 생활을 답답해하며 자랐다. 여고 시절에는 일제의 전쟁 준비에 동원되는 근로 봉사를 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없었으며, 해방 이후 음대를 졸업하고 음악 교사로 일한 지 얼마 안 되어 6·25 전쟁을 맞았다. 전쟁 중 미군 부대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미군 부대의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다, 1956년 단돈 80달러만 가지고 유학을 떠났다. 성악가가 되리라는 꿈은 못 이뤘지만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동양학도서관에서 일하며 구한말 조선 왕조 역사에 남다른 애착과 흥미를 갖게 되었다.

책에 따르면 의친왕비에게 친자식은 없었지만, 의친왕은 여러 후실에게 많은 자녀를 얻었다. 하지만 의친왕비는 불평하는 법이 없었고, 후실에게 얻은 자녀 중 생모가 일찍 죽거나 사정이 있어서 생모가 기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거두어 주었다. 이혜경 왕녀 또한 세 살 때부터 궁으로 데려와 따뜻하게 길러졌고 그녀에게 의친왕비는 생모 이상으로 감사하고 소중한 사람으로 저자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준 사람이고, 어머니라고 부르는 단 한 분이다. 저자가 의친왕비에게 직접 들은 고종 황제의 외동딸인 덕혜옹주 이야기며, 고종 황제의 후궁들에 대한 평가는 실제의 황실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새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궁에서 보낸 어린 날과 학창 시절」, 2부 「내 삶을 휘저어 놓은 6·25전쟁」, 3부 「80달러 들고 떠난 미국 유학」, 4부 「나의 아버지 의친왕」, 5부 「나의 어머니 의친왕비」 등이다. 저자가 앞서 말하는 의친왕의 행적에 대한 기록 중 독자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4부 「나의 아버지 의친왕」으로 의친왕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기록이다. 독자 개인으로서는 배우지도 어떤 책에서도 읽은 적이 없기에 그렇다. 4부에서 저자는 〈빛바랜 역사책에서 찾아낸 아버지의 참된 모습〉, 〈기구한 출생과 양녕대군 같은 운명〉, 〈모함과 스캔들에 시달렸던 미국 유학 시절〉, 〈일본 권력자 앞에서도 당당했던 의친왕〉, 〈삼엄했던 일제의 감시〉, 〈실패로 끝난 상하이 탈출 시도〉, 〈탈출 실패 후 갇혀버린 의친왕〉, 〈일본의 귀족이 아닌 조국의 평민으로 살겠다〉, 〈해방 후에도 그치지 않은 고난의 삶〉 등으로 구성됐다. 저자는 의친왕이 상하이로 탈출하려다 실패한 상황은 『대동단실기』(신복룡 저)에 자세히 실려 있어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독립운동에 관한 부분이어서 내용을 간추려 이 책에 실었다.

이에 따르면 이강 공이 해외로 나가기 위해서는 신분을 숨기는 공작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힘으로써는 불가능한 일이요, 탈출을 도와줄 동지가 필요했다. 이처럼 자금 면에서나 탈출의 방법에서 자신의 힘으로써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김춘기와 그의 동료이자 상하이 임시정부의 내무 차장인 강태동의 루트를 통하여 상하이에 있는 김가진에게 전달되었다. (중략) 김춘기는 이강 공이 상하이로 탈출하기 위해서는 20만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만원이 불가능하다면 우선 10만원만 있어도 출국이 가능하다고 의친왕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이종욱으로서는 그만한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막중하고도 엄청난 일을 중도에서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마지막 카드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것은 대동단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단원들은 정운복을 이끌고 이강 공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정운복은 이강 공을 향하여 "전하! 결심하소서"라고만 말할 뿐 두려움에 질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두려움에 떠는 것은 이강 공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협의 무리도 두려웠고 경찰이 자기를 미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중략) 전협은 '우리 독립 정부에서 전하를 기다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오늘 그 시기가 도래하여 모시러 왔습니다. 전하가 결심하시는 대로 곧 출발하겠습니다'라고 설득했다. (중략)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마음이 진정된 이강 공은 전협을 향하여 강태동이란 인물을 잘 아느냐고 물었다. 전협은 자신과 김가진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강태동은 김가진이 보낸 밀사로서 이미 자기들과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제야 이강 공은 상하이로 망명할 뜻을 밝혔다."(p.229~231) 그러나 이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거사가 진행된 첫날 이강 공이 자취를 감추자 서울부터 안동으로 가는 열차는 물론 전국의 경무국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안동역에서 요네야마 경부는 종로경찰서 근무 시절 창덕궁을 드나든 적이 있어 이강 공의 얼굴을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강 공을 확인하자마자 즉시 경찰을 불러 이강 공을 둘러싸 체포했다고 『대동단실기』(p.128~152)를 인용해 이 책에 옮겼다.

 

저자 : 이해경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녀이자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손녀다.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의 다섯째 딸로 태어나 근현대사의 풍파를 겪으며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았다. 구한말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암약했던 대한제국 황실의 일원이자 목격자로서 평범하지 않은 세월을 보냈다. 열다섯 살에도 전담 유모를 두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목욕 시중을 드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보살핌을 받았지만, 세계대전과 6?25전쟁을 겪으며 남들이 공감하기 힘든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특별한 가정 환경이었기에 시련의 아픔은 더욱 컸다.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음악과를 졸업한 후 음악 교사로 일한 바 있으며, 자유를 찾아 195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동안 컬럼비아대 동양학도서관 한국학과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데 공헌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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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 그린 -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
버지니아 울프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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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을 볼 때마다 우리 시인 박인환이 떠오른다. 그의 시 〈목마와 숙녀〉에 '버지니아 울프'가 언급되기 때문이다. 박인환은 버지니아 울프를 동경했던 것 같고, 그의 시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독자는 고등학교 시절 박인환을 알았고, 그의 시를 즐겨 읽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 후 폐허의 서울 명동에서 문우 등 예술인들과 교유하며 대한민국의 가장 비참한 생활을 견뎌낸 시인이어서 기억이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그것보다는 그의 또 다른 시 〈세월이 가면〉은 곡까지 붙여 뒤에 한국인이 사랑하는 노래에 뽑힌 적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중략)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하략) - 〈목마와 숙녀〉

 


 

독자 개인적인 이유지만 〈세월이 가면〉 역시 박인환을 기억하기에는 매우 좋은 시이다. 어쩌면 박인환을 아는 사람이라면 으레 노래를 떠올릴 것이다.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그렇다면 〈목마와 숙녀〉 싯구처럼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는 버지니아 울프와 관련이 된 것일까? 독자가 알기에는 다른 두 인물이라는 것이지만 시인이 직접 밝히지 않는 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시 발표 후에 문학평론가들이 싯구의 문맥상 다른 인물로 추정하는 것이라고 분석한 글을 읽은 적도 있다. 〈목마와 숙녀〉를 몇 번이고 읽어 보면 시의 분위기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나 작품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이 책 『블루 & 그린』은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집이다. 울프의 삶은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태어나기는 영국 상류층에서 태어났지만 자랄 때는 무척 불우했던 모양이다. 낳아준 어머니는 울프의 출생 직후 사망했다고 하니 아마 산고를 이기지 못했던 것 같다. 새어머니는 울프를 상류층 자녀답게 성심껏 키웠지만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울프에게는 오히려 장애가 되었던 것 같다. 당시 유럽은 식민지를 세계 곳곳에 두고, 많은 재물을 침탈해 부를 쌓았으며 대제국을 유지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부가 유럽으로 쏠려갔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에게는 이 혜택이 전혀 돌아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고 자녀를 낳아 훌륭하게 키우는 역할만 담당하는 남성의 전유물처럼 생각했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버지 덕분으로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주장할 정도로 스스로를 만들어 나간 것으로 그의 생애를 평가하고 있다. 우울한 성격은 그렇게 형성되지 않았을까 하는 독자로서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들에게 버지니아 울프는 우울이나 어둠의 정서로만 비쳤던 오인의 그늘을 벗어던질 수 있다. 페미니즘, 여성 퀴어 등 시대를 초월한 주제의식을 포함해 다정함, 따듯한 사랑, 유머와 위트, 그리고 인간의 '마음의 비행'을 끝없이 추적하는 열정에 놀라운 온기를 느낄 것이다.

영문학자 손현주는 책의 뒷 부분에 있는 「버지니아 울프 : 장면 만들기의 마술사」란 작품 해설에서 한마디로 책과 울프를 정리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영문학의 거장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번에 출간된 울프의 단편 모음은 깔끔하고 매끄러운 번역으로 독자들을 울프의 작품세계로 안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울프는 영국에서 나고 살았지만 '하버드 대학생이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 선정됐다. BBC에서 뽑은 위대한 영국소설 25편 중 세 편을 싹쓸이한 유일한 작가, 뉴욕타임스 선정 인류의 필독서, 서울대학교 도서관 대출순위 TOP100에 언제나 올라 있는 작가가 버지니아 울프라는 것이다. 이처럼 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버지니아 울프는 독자들의 사랑과 놀라운 기록을 한몸에 몰고 다니는 주인공이었다. 이 책을 출간한 이유이다.

울프는 사망 직전까지 50여 편에 달하는 단편 소설을 썼으며, 『블루 & 그린』은 지금껏 소개되지 않았던 스케치글을 포함하여 모두 18편의 보석 같은 최고작을 엄선하여 담았다고 출판사는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그 위대한 문학에 가장 친근하고 깊숙이 다가갈 수 있는 베스트 단편집이다. 한편 정이현 작가는 “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이 소설을 ‘썼다’가 아니라 ‘쓴다’라고 쓸 것이다. 영원한 현재형으로. 이 시대의 가장 현대적인 고전이다.”라는 찬사를 바쳤다. 특히 강렬하고 생생한, 생명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여성들에 대한 포착이 뛰어나다는 추천의 글을 더했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인 『자기만의 방』에서 더 나아가 그녀가 창조한 언어의 낙원으로 나아가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이해도 높고 충실한 번역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민지현 번역가가 노력을 더했으며, 한국버지니아울프학회 임원으로 서울대학교에 출강 중인 영문학자 손현주의 세심한 해설을 곁들였다. 울프의 소설을 접해본 적 없는 입문자부터 오랫동안 사랑해온 마니아 독자까지, 그동안 비범했던 그녀의 삶 자체에 가려진 순수한 소설의 재미와 감동을 맛볼 수 있는 더없는 기회라고 출판사 측은 덧붙였다.

“사람의 평생을 단 하루에 담아 묘사할 거야.” 영화 『디아워스』에서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분)는 「댈러웨이 부인」을 쓰며 이렇게 말한다. 뇌리에서 잊을 수 없는 언어, 장면 만들기의 마술사, 여성 삶과 문학의 혁신가인 울프의 진가는 그래서 더욱, 짧은 단편에 있을지 모른다. “블루 & 그린은 세차게 터져 나온 자유의 함성이다.”(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중에서) 문학계에 다시 있을 수 없는 거장의 내면이 직조한 유려하고도 생생한 외침 속으로 들어가보자.

「본드 가의 댈러웨이 부인」은 장갑을 사러 가는 한 부인의 마음속에 지나가는 수많은 생각을 따라가는 역작이다. 울프는 공감은 물론 웃음마저 이끌어내는 글쓰기를 보인다. 「밖에서 본 여자 대학」, 「존재의 순간들」은 여성퀴어 서사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단비가 되어줄 고전 중의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는 작품이다. 마주하는 눈동자의 떨림만으로 가슴속에 파장을 일으킨 영화 〈캐롤〉에 못지않은 사랑의 미학을 맛볼 수 있다. 「프라임 양」,「불가사의한 V 양 사건」, 「라핀과 라피노바」 역시 다양한 여성의 세계를 차가울 정도로 똑바로 바라보는 눈과 묘한 유머센스,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 아픔이 교차한다. 그 짧은 문장과 장면에 순간을, 삶을, 세계를 담아내는 것은 오직 버지니아 울프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강화길 작가는 “버지니아 울프를 읽을 때면 늘 시간이 정지한다. 짧지만 강렬한 묘사들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머물렀다.”라고 추천사를 썼다. 이 말처럼 분명 1881년부터 1941년까지를 살다간 인물인데 그의 한 줄은 지금의 영혼에까지 일렁임을 일으킨다. 표제작 「블루 & 그린」은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 같은 언어에 젖어 푸르디푸른 파랑과 초록을 감각하게 만든다. 「과수원에서」는 카메라에 몽환적 필터를 씌운 것 같은 묘사를 자랑하고, 「월요일 또는 화요일」, 「현악 사중주」, 「유령의 집」은 비일상과 일상, 외부와 내면이 섞인 혼돈 속에 진실을 탐험한다.

천선란 작가는 “단정하고 정갈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것은 혼돈의 속삭임처럼 느껴진다”라고 이 책을 추천했다. 타오르지만 은근하다. 조각났지만 전체다. 어둡지만 빛이다. 차갑고도 따스하다.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일지도 모르는 모순을 꿰뚫는 18편의 단편을 통해, 울프는 훌륭한 스타일리스트로서의 문장, 그녀가 영향받은 그림과 음악의 접목, 퀴어를 포함해 평생 관심을 기울인 여성문제와 전기문 형태의 글쓰기 등 어느 형식에 안주하지 않고 한 작품 한 작품마다 서로 다른 시도를 감행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선물하는 형형색색의 꽃다발을 받아들 준비가 돼 있다면 언제든 이 책을 펼쳐볼 일이다.

 

하지만 그는 죽었다. 그가 나의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끔찍한 일이야! 너무나! 그렇게 무정했다니! 저기 그가 앉았던 노란색 안락의자가 있다. 낡았지만 여전히 견고한 저 의자는 우리를 능가하여 세상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벽난로 위 선반에 진열된 유리와 은 장식물도. 그의 생명은 벽과 카펫에 줄무늬를 그리는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처럼 덧없다. 내가 죽는 날에도 태양은 그렇게 잔디와 은 식기를 비추겠지. 그리고 앞으로도 수백만 년간 노랗고 넓은 오솔길, 이 집과 마을을 지나 무한히 먼 곳까지 비추겠지.(p.170)

 


 

특히 영문학자 손현주의 작품 해설은 버지니아 울프와 그의 작품을 세밀하게 분석해 울프와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순현주는 울프의 문학은 "기승전결을 갖춘 사건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내면을 의식의 흐름을 따라 서술하거나, 마치 피카소나 샤갈 등 인상파 화가들처럼 하나의 장면을 다각적으로 묘사하기도 했다"고 분석해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독자는 손현주의 해설을 읽고서야 뒤늦게 앞에서 읽은 작품들을 다시 읽는 등 몇 번을 읽고 해설과 작품이 절묘하게 잘 들어맞고 있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손현주의 상세한 해설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나 이미 읽었던 독자들에게도 울프를 읽는 지침서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시 시대적 상황은 물론 울프의 출생, 자라면서의 환경, 성격 형성 과정의 부모의 역할 등을 모두 섭렵해 작가론을 다졌다. 손현주는 또 울프의 대표작은 물론 이 책에 실린 짧은 단편들도 빠짐없이 그의 문학적 해석을 가했으며 그 지적은 영문학자로서 그의 울프에 대한 지식이 바탕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울프가 태어난 해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손현주는 시대적 상황을 빠짐없이 체크하며 울프의 활동과 발표한 작품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1882년 무렵은 빅토리아 여왕이 대영제국을 다스리던 빅토리아 시대 후반기였다. 여성의 역할은 아내와 어머니가 되는 것이었고 여성을 '집안의 천사'로 추앙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울프는 여성이 작가가 되려면 "자기만의 방과 1년에 500파운드의 수입"이 필요하다고 과감한 주장을 폈다고 말한다.

특히 『자기만의 방』에서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주디스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생애에 관한 이야기는 그중 가장 많이 논란이 되고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만일 엘리자베스 시대에 셰익스피어와 같은 문학적 재능을 타고난 여성이 있다면 그녀는 어떤 모습일까?라고 질문하면서 울프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가상의 여동생 주디스의 삶을 상상으로 재현해 냈다고 설명한다. "울프는 누구보다도 여성들의 억눌린 삶에 대해 분노하고 여성의 평등과 자유를 위해 싸웠다"고 평가하고 있다. 작가로서의 창조성과 여성운동가로서의 열정을 모두 갖춘 글로 투쟁하는 '문사(文士)'로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작품 해설을 놓치지 말 것을 권유한다.

 


 

저자 :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으로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실험하여 현대문학에 이바지하는 한편 평화주의자, 페미니즘 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 빅토리아 시대 소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환경에서 자랐고, 주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다.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턴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덩컨 그랜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 그룹은 당시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여성들의 적극적인 예술 활동 참여, 동성애자들의 권리, 전쟁 반대 등 빅토리아시대의 관행과 가치관을 공공연히 거부하며 자유롭고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어머니의 사망 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사망 이후 울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을 앓았다. 1905년부터 문예 비평을 썼고, 1907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하여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로서 울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70년대 이후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울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작을 남긴 야심 있는 작가였다. 그녀의 픽션들은 플롯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더욱 초점을 맞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해 쓰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출항』, 『밤과 낮』, 『제이콥의 방』, 『댈러웨이 부인』, 『파도』,『현대소설론』 등과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과 속편 『3기니』 등이 있다. 1927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인 『등대로』를 발표하며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올랜도』, 『물결』, 『세월』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 왔던 울프는 1941년 독일의 영국 침공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신 질환의 재발을 우려하여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역자 : 민지현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뉴욕에 살면서,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의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어메이징 브루클린』, 『너와 마주할 수 있다면』, 『동물농장』, 『카피캣』, 『갤럭시』, 『할아버지의 위대한 탈출』, 『불법자들: 한 난민 소년의 희망 대장정』, 『메이슨 버틀이 말하는 진실』, 『애자일 마인드』, 『홉킨스의 잘 팔리는 비밀』, 『사랑의 완성 결혼을 다시 생각하다』, 『공감』, 『감정의 역사』, 『선을 긋는 연습』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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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그 화려한 역설 - 69개의 표지비밀과 상금 5000만원의 비밀풀기 프로젝트, 개정판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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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자본주의 사회가 피워낸 성의 범람 현상이 중심축이다. 저자가 시공을 넘나들며 왜 현대 문명의 역설적인 현상을 지적하고 있는지, 또 미래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거라고 우려하는지를 젊은 세대의 삶을 중심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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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그 화려한 역설 - 69개의 표지비밀과 상금 5000만원의 비밀풀기 프로젝트, 개정판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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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문명, 그 화려한 역설』은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인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의 개정판이다. 소설 속 주인공 모제는 형사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여자친구 유리를 찾기 위해 온 도시를 뒤지고 다닌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유리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동시에 450년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어 있던 재미동포 흉악범 이카로스가 탈옥한다. 그를 쫒는 형사 모제는 떠난 여인 유리의 환상을 지우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모제의 일상이 드러나는 잠깐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지금 12시간씩 이 교대 잠복근무를 하다가 5시간으로 바뀌었다. 사흘 후부터는 10시간, 5일이 지난 지금은 12시간씩 근무 중이다. 현재의 근무체계도 일주일이 지나면 24시간으로 바뀌게 된다. 그 대신 잠복조는 조회나 석회에도 참석하지 않고 승용차로 출근한다. 식사도 불규칙한 근무체계와 비슷한 방법으로 해결한다. 근무교대를 해주는 류대도 지쳤지만, 나도 이제 한계가 왔다. 이쯤 되면 만사가 귀찮고 무엇을 해도 짜증만 난다. 그런데다 몸은 늘어지고 의식은 점점 더 몽롱해져 간다."(p.59)

이 책은 소설 작품이다. 목차에 보면 〈제1부〉 1파트 - 19파트, 〈제2부〉 20파트 - 50파트, 〈제3부〉 51파트 - 69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부'와 '파트'로 구별돼 있지만 3부 69장(章)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이 소설의 이력은 다소 의아하고 모호하기도 하다. 「작가의 말」을 통해 저자 최인이 이 책의 탄생에 대해 간략하게 써놓았는데 여느 소설과 조금은 다른 태생 기록을 갖고 있다.

 


 

저자는 이 소설을 구상할 당시 20년이나 30년 후의 이야기를 써 보자 생각하고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20~30년 후의 이야기답게 가볍고 스피디하고 파격적인 표현으로 일관했다고 밝힌다. 소설을 읽어 보면 성관계 묘사가 다소 파격적이긴 하다. 간겷한 단문을 사용해 독자의 호흡도 잘 살릴 수 있다. 또 파트에서 파트로 넘어갈 때도 거리낌없이 넘나들고 있어 시공간의 다른 느낌을 준다. 이 책은 한 신문사에서 주최한 「1억원 고료 국제문학상」 당선작이다. 당시 심사를 맡았던 심사위원들이 당선작으로 선정할 때 묘사뿐 아니라 빠르고 참신하고 재미있다는 점에 있었다고 저자는 기억한다. 그러나 당선작으로 뽑힌 이유인 가볍고 스피디하고 파격적인 전개가 출판의 장애물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당선작으로 확정한 2002년 당시 출판사들은 당선 이유를 이유로 출간을 거절했다. 결국 20~30년 후를 내다보고 쓴 소설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저자가 출판 거절 이유로 답변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다른 이유가 있는데 출판사들이 적절한 변명으로 둘러댄 것인가? 아니면 성 관계를 지나치게 파격적으로 묘사해서인가? 저자도 적절한 답변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독자로서는 더욱 궁금하긴 하다. 독자의 생각으로 "혹시?" 하는 부분은 소설인데도 해석하기 어려운 철학적 저서, 성경, 동양 고전, 찰학 이론, 문학이론서 등을 인용해서인가?란 점이다. 이 책은 저자가 말한 대로 69개 파트 시작 부분에 제목만 읽어도 머리가 아플 만한 명저들을 파트 수만큼 인용했다. 마치 파트의 제목처럼 어김없이 인용문이 먼저 시작하고 소설 본문이 뒤따르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그렇다고 출판 거절 이유가 될까? 독자들이 외면할 것 같아서? 즉 잘 안 팔릴 것 같아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독자도 갖고 있다. 소설은 우리 삶이나 인간의 감정을 모두 형상화해 알기 쉽게 전해주는 문학 서술 방식인데 철학 이론의 한 부분을 먼저 인용하고 그 부분에 대한 해석을 하듯이 본문을 이어놓는다면 독자들이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으리란 생각은 출판을 모르는 독자도 들긴 한다. 아무튼 태어나기 어려운 이력을 지닌 채 일정기간(공모전 당선작이니만큼 출판권이 주최 신문사에 있을 것)이 지나고 출판권을 저자에게 되돌려 주었다고 한다.

저자는 당선작보다 더 좋은 소설을 쓰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결론 짓고, 9편의 장편을 추가로 쓰기에 이르렀다고 회고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최근 새로 쓴 9편의 소설도 탈고가 완료되었고,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만 남았다.(독자가 알기로는 몇 편인가 발표되었다) 드디어 저자는 그동안 틈나는 대로 수백 회 이상 탈고하고 이 작품을 출판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이 소설을 20년 이상 끌어안고 씨름한 것은, 파격적인 표현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문장을 갈고 다듬는 괄골요독(刮骨療毒)*의 과정과, 좋은 글을 위해 육신과 영혼을 아낌없이 바치는 사생취예(捨生取藝)**의 정신으로 일관했다고 덧붙인다.

 

* 괄골요독(刮骨療毒) : 뼈를 깎는 고통을 안고 독소를 씻어내다.

** 사생취예(捨生取藝) : 삶을 기꺼이 바쳐 예술을 얻는다.(이상 독자 주)

 


 

이 소설은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이 있다. 〈비밀풀기〉 현상 공모다. 현상 공모 내역을 보면 쉽지 않은 비밀인 듯하다. 문제가 표지에 있다는 점 외에는 어떤 힌트도 주어지지 않았다. 현상금의 파격일 뿐만 아니라 출판계에도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독자로서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현상금은 무려 5,000만 원. 책 표지에 69개의 비밀이 있으며, 이것을 푸는 첫 번째 독자에게 5,000만 원의 상금을 지급한다는 것. 이 개정판뿐만 아니라 초판본 구매자도 자격이 주어진다. 해답은 10~50자 이내로 쓸 것을 주문하고, 긴 문장이 필요한 경우 글자 수를 초과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답 앞에는 반드시 일련번호(1에서 69까지)를 붙일 것을 특별 요청한 것으로 보아 이 책의 69편으로 이루어진 것에 다소의 힌트가 되지 않나 싶다. 다만 독자의 추정일 뿐이다. 이처럼 상금액이나 비밀풀기 공모가 파격적이긴 하지만 독자로서는 '특전'에 더 시선이 간다. "연인이나 커플, 부부가 도전할 경우 비밀 3개를 면제해 줍니다."

다른 대부분의 장의 서문처럼 들어가는 인용문(고딕처리)이 첫 장(파트)에는 인용하지 않고 저자의 지론을 써놓은 듯하다. 인용문이란 아무런 표식도 없기 때문이다. 소설 형식의 문체라기보다 논저나 사상서 같은 느낌이다.

"사회적 분열과 해체기의 인간들은 하나의 극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사랑 면에서는 쾌락이나 금욕을, 감정 면에서는 충동이나 절제를, 행동 면에서는 방종이나 겸손을, 생할 면에서는 파격이나 관례를, 이념 면에서는 극좌나 극우를, 그러나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행과 불행, 선과 악 같은 본질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은 가치관과 이념은 물론이고 진실과 진리까지도 표묘(??)*** 속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p.11)

 

*** 표묘(??) : 끝없이 넓거나 멀어서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어렴풋함.(저자 주)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급진적인 현대문명과 왜곡된 자본주의에 대한 묵시록적 기록이란 출판사 측 소개글처럼 '문명의 역설'에 주목된다. 특히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서구사상과 서구문명이 다다른 막다른 골목을 냉정한 눈으로 지켜보며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 무거운 주제의식을 가벼우면서 재미있고 스피디하게 다루는 방법을 선택했다. 즉 적의 칼로 적을 제압하는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의 전략이 엿보인다. 조금 어렵게 썼지만 서양 문명의 빛나는 발전 속의 그늘지고 어두운 문화를 지적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소설 속의 세계는 가볍고 경쾌하고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춤추고 노래하고 술 마시고 섹스하며, 사소한 것에 탐닉하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젊은 인물들이 소설을 끌고 간다. 이 책에 섹스가 자주 묘사되는 이유이다.

'모제'와 '집주'와 '이카로스'는 상징으로 가득 찬 이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는 세 명의 인물이다. 또한 형사 모제(27세)는 풍요와 자유의 얼굴을 한 신세대 문화의 전형적인 수혜자이다. 그는 21세기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자유분방한 형사이다. 모제는 삶에 대한 집착도 목적도 없다. 순간을 즐기고 소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팝송, 패스트푸드, 양주, 자유로움, 바, 나이트클럽, 섹스 등이 모제를 나타낼 수 있는 기호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고 만다. 지난밤을 디나와 섹스로 지새웠다는 걸 밝힐 순 없다. 다미에게 나는 오빠이면서 아빠 같은 존재니까.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p.23)

 


 

새로운 세대의 형사답게 모제 주변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있다. 그들은 누구든 가리지 않고 섹스를 즐기는 새로이 등장한 새로운 세대이다. 여자친구 유리(24세), 편한 친구 파라(27세), 술집 호스티스 디나(22세), 마담 지바(37세), 친구 동생 마리(20세), 화교 나래(20세), 번역작가 미사(35세), 꽃집을 경영하는 피여나(24세), 가출 학생 다미(16세)가 그들이다. 그들 중 유리는 이 혼탁한 도시문명에서 발견하기 힘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여자이다. 그런 유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소설은 현재형 문장 특유의 빠른 속도감과 풍요한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기표들에 대한 산뜻한 묘사로 쉽게 읽히는 미덕을 지녔다. 작가는 이렇게 화려하고 산뜻한 포장지 속에 비수를 숨겨 놓았다. 그 비수는 작고 둔중하면서도 날카롭다. 서구사상사와 문명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창조해낸 인물과 사건들은 하나같이 상징적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진지하다. 그러나 전혀 무겁지 않다. 빠르게 읽히는 문체와 기발한 이야기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최인의 소설은 늘 그렇듯 흥미롭고 재미있고 반전의 묘미가 있다. 그리고 시대의 아픔과 상처와 모순을 지적하고 세련되게 아우른다. 달콤하고 세련된 문장을 선물상자 속에 포장한, 한마디로 경쾌한 신세대형 소설이다, 라는 평이 말해준다.

"허다한 전설에 있어서 동물과의 친교와 동물의 언어 이해는 낙원적 징후를 보여준다. 태초에, 즉 신화적 시대에는 사람은 동물과 평화스럽게 살았으며 동물의 언어를 이해했다. 성서에 나오는 인간타락의 전승에 비교될 원초적 파국이 오기 전까지 인간은 오늘날과 같은 삶, 즉 죽어야 하며 성적이고, 자신을 양육하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하며, 동물과 대적관계에 놓인 것 등과 같은 생활을 하지 않았다.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중에서(p.152)

 


 

독자 역시 저자의 의식 흐름을 따라가기 벅차다. 소설에 사용되는 용어뿐만 아니라 각종 세계적 명저에 대한 저자의 탐구나 열정에 미치지 못한 원인이 클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에 대한 주제가 확실한 소설이니만큼 읽어가는 데는 큰 문제를 겪지 않는다. 더욱이 독자로서는 저자의 전작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를 이미 읽고서 저자의 소설 형식에 낯설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신세대'란 용어는 쓰지 않지만, 신세대든 MZ세대든 이 소설에서는 상관없다. 시대의 청춘을 가리키는 용어는 계속 바뀌어도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여기 문명, 그 화려한 역설 속에 흔들리며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겨보면 즉각 알게 될 것이다. 어느덧 각각의 인물들에게 몰입되어 자칫 ‘화려해 보이는’ 그들의 미래를 나도 모르게 응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 모든 것이 역설적이고 불투명하고 모순적일지라도.

이번 개정판에서는 초판본의 본문, 표지 등 220개의 비밀을 69개로 대폭 줄여, 어렵게 느껴지던 비밀 풀기의 난이도를 낮췄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가벼움 속에 진지함과 깊이감을 숨기고 있는 이 소설은 결국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죽음과 무덤이 있는 곳에서만이 부활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펼친다면 이제 감탄하며 책장을 넘기는 일만 남았다. 지금까지의 소설 읽기와는 다소 다른 느낌의 소설 읽기를 시도한 작품이다.

 

저자 : 최인(崔仁鎬)

 

본명은 최인호다. 경기도 여주시 명성황후탄강구리에서 태어났다.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 「비어 있는 방」으로 등단했으며 2002년 『문명, 그 화려한 역설』로 1억 원 고료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2008년-2019년 12년간 ‘최인소설교실’을 운영했다. 인천지방경찰청에서 13년 근무했으며 파출소장과 형사반장을 역임하였다. 저서 『안개 속에서 춤을 추다』, 『킬리만자로 카페』, 『뒤로 가는 버스』, 『장미와 칼날』, 『크리스마스 전야』, 『그 바다엔 낙타가 산다』, 『인베이더』, 『그들 그리고』,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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