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 - 포기하지 않으면 만나는 것들
김호연 지음 / 푸른숲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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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의 저자 김호연은 문단 데뷔 20년이 넘는 중견 작가이다. 20년이란 기간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데뷔 20년차의 작가가 왜 문인의 길에 회의감을 가졌을까? 이 회의감이 이 책의 저자 김호연을 읽는 주요 키워드이다. 중견 작가가 20년이 되어서야 소설가로서의 회의감이 든다고 고백한다면 무엇이 가장 큰 원인일까? 궁금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를 통해 자신이 '소설 쓰기'를 그만두려 했는지 밝히고 있다. "계속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생계가 되지 않는 소설을 붙들고 있어도 될지, 회의감이 들었죠." 저자는 바로 그때 ‘소설의 신’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나지막이 말한다. 

저자는 20년차 전업 소설가였지만 생계를 이을 만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영화·만화·소설을 넘나들며 온갖 이야기를 써나가는 전천후 스토리텔러다. 1974년 서울생으로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첫 직장인 영화사에서 공동 작업한 시나리오 〈이중간첩〉이 영화화되며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 두 번째 직장인 출판사에서 만화 기획자로 일하며 쓴 『실험인간지대』가 제1회 부천만화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만화 스토리 작가가 되었다. 같은 출판사 소설 편집자로 남의 소설을 만지다가 급기야 전업 작가로 나섰다고 한다. 이후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를 실천하던 중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로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마침내 소설가가 되었다.

책을 소개하는 온라인 사이트 〈예스24〉에 따르면 저자는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2013) 『연적』(2015) 『고스트라이터즈』(2017) 『파우스터』(2019)와 산문집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2020) 『김호연의 작업실』(2023)을 펴냈다. 영화 〈이중간첩〉(2003), 〈태양을 쏴라〉(2015)의 시나리오와 〈남한산성〉(2017)의 기획에 참여했다.


이 가운데 2021년 『망원동 브라더스』는 연극으로 상연될 정도로 적잖은 인기도 누린 듯하다. 네 편의 장편소설을 쓰고, 과연 다섯 번째 소설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프롤로그〉에 따르면 네 번째 소설 『파우스터』(2019)를 출간하고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저자는 심각한 고민이 잉태된 시점을 말하고 있다. 2019년 4월 말. 저자는 시내 대형 서점에 들러 신간 매대에서 사라진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듯하다. 책장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마침내 책장에 단단히 박혀 있는 책을 발견했다. 저자는 이 소설 『파우스터』를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얻었고, 이 소설을 쓰기 위해 3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래도 출판사의 선인세만으로 생활에 충분치 않아 시나리오를 썼다. 그것을 팔아 번 돈으로 시간을 샀다고 말한다. 시간은 '소설 쓸 시간'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메피스토펠레스에 영혼을 팔기하도 할 듯 몰두해 초고를 완성할 즈음 어깨가 마비돼 응급실을 찾았다고도 말한다. 

목 디스크 재발이란 진단이 떨어졌다. 결국 통증 병원 치료 후 작업실에 출근하는 루틴으로 재고 작업을 수행해야 했다고 한다. 잘 낫지 않는 고질병 목 디스크처럼 지난한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2018년 말, 마침내 출판사에 보낼 원고를 완성했다. 출판사에서 지적한 부분을 받아들이고 다시 수정을 거쳐 오히려 분량을 늘인 작품을 편집장은 놀랍게도 지지해 줬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드디어 544페이지에 달하는 정통 스릴러 소설 『파우스터』가 탄생했다. 처음으로 '벽돌책' 작가가 됐다고 자랑스럽게 늘어놓기도 한다. 더욱이 데뷔작인 『망원동 브라더스』가 독자들의 사랑을 얻고 영화와 연극으로 제작되면서 경제적 여유도 찾았다. 이제 소설가로서 마음껏 살면 되는가 싶어단다. 두번 째 소설 『연적』(2015)을 호기롭게 출간했을 때도 기대는 여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출판 시장은 자기 이야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작가에게 물을 먹이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고 출판계의 칼날 같은 단죄를 비유적으로 말한다.



세 번째 소설 『고스트라이터즈』(2017)는 카카오페이지에서 여러 차례 조회 수 1위를 기록해 기대가 높았다고 저자는 속내를 밝힌다. 그러나 출간된 뒤에는 역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 채 책장에 꽂히거나 '재고 없음'으로 분류됐다. 쓴맛을 다시 본 것이다. 저자는 그즈음 전업 소설가로 산다는 건 고라니로 사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고라니에 비유하는 이유도 밝힌다. 세계적인 희귀종이지만 한국에서는 애물단지 취급을 당하는, "잡아 죽이기도 뭣하고 죽이기도 하지만 보호하기에도 힘든 동물"이라고 적잖은 충격이 있었음을 은근히 표현한다

『파우스터』는 주인공인 야구 선수 준석의 강속구처럼 전력투구한 작품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동안 작품 성향과는 다른 스실러 장르에 도전했고, 그동안 쓴 소설 중 가장 많은 시간과 공력을 투자한 작품이라고 저간의 사정을 밝힌다. 출판사 역시 메이저급 회사로서 자신의 역량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저자는 대형 서점의 생리를 잘 아는 것 같다. "새 책이 서점 신간 매대에 머무르는 시간은 길어야 열흘 전후다. 이후에는 베스트셀러 매대로 옮겨가거나 서점에 돈을 내 전용 매대를 사야(매우 비쌈) 독자들에게 계속 책을 어필할 수 있다. 이 말은 출간 후 열흘이면 신간의 흥행 여부를 얼추 가늠이 된다는 말이다. 그날, 대형 서점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보며 나는 가능성 따위는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을 되뇌며 장벽 같은 책장에서 벽돌 같은 책을 뽑아 계산대로 향했다. 그게 내가 내 책을 사는 마지막 행위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멜랑콜리한 생각을 품은 채."(p.8)

이 책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는 180만 부 베스트셀러 작가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 『나의 돈키호테』의 집필 비하인드를 담은 에세이다. 네 번째 책의 기대감이 산산이 무너진 채 공원 벤치에 앉아서 걸려 왔던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소설 쓰기를 포기하려던 소설가”에게 한 줄기 빛은 그렇게 무심한 듯 찾아왔다. 돈키호테에 관한 글을 쓰는 조건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지던시에 3개월간 머물 자격을 선사하는 프로그램에서 온 전화다. 『불편한 편의점』으로 밀리언셀러 작가가 되기 바로 전의 일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써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처럼 스페인 체제 소설 쓰기는 저자의 고민이 해결되는 유일한 탈출구가 된다. 이 책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는 2019년 9월부터 11월까지, 저자가 스페인의 유서 깊은 레지던시 ‘헤지덴시아 데 에스튜디안테스’에 머물던 때를 담은 여행기이다. 저자는 그곳이 “다시 꿈꿀 수 있도록 해준 인생의 스프링캠프”였다고 강조한다. 모기가 없는, 맛있는 음식과 술이 있는, 아름다운 유산이 곳곳에 숨어 있는 스페인 곳곳을 그리는 이 이야기가 무엇보다 ‘돈키호테’라는 저마다의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하는 이야기인 까닭이다. 앞서 언급한 ‘헤지덴시아 데 에스튜디안테스’에 낸 제안서가 돈키호테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는 저자에 호응한 것이다.

이렇게 떠난 스페인에서 저자는 우리가 기대하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여행을 하지 않는다. 저자는 출간 계약도 하지 않은 원고를 하루 세 장씩 써야 했고, 경비를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으며, 철저하게 혼자였다. 그러나 그가 만난 스페인은 아름다웠다. 스페인의 햇살, 스페인의 문화유산, 스페인의 음식 그리고 스페인의 사람들까지. 저자는 그곳에서 쿠폰에 도장 10개를 찍으면 음료 한 잔을 무료로 주는 단골 카페를 만들고 147번 버스를 익숙하게 타고 다닌다. 『돈키호테』 원서를 찾아 서점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면 기차를 타고 훌쩍 떠나기도 하며. 그곳에서 저자는, 어느 동양인 여행객이 아니라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자신이 써야 할 글을 꿋꿋이 쓰는 작가였다. 

소설을 포기하려던 작가가 다시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저자가 머물렀던 3개월 간의 여행(?)을 샅샅이 보여준다. 

포기와 성취의 경계에서 저자는 무엇을 경험했을까? 도망치듯 떠난 스페인에서 저자는 대단한 일을 하지 않는다. 돈키호테의 흔적과 영감을 좇아 다만 걷고, 읽고, 보고, 대화할 뿐이다. 다시 소설을 써야 하는 이유는 낯선 도시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찾아 왔다고 저자는 책에서 토로한다. 


"이루고 싶은 꿈을 좇으면, 우리는 어느새 꿈 그 자체가 된다." 저자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글을 쓰고 싶구나.” 돈키호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이 어느새 그를 ‘돈키호테’로 만들어 준 것이라고 저자가 해석하는 대목에서 글에 대한 저자의 열정은 죽을 때까지 식지 않을 것으로 독자는 느낀다. 한국으로 돌아온 저자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던 외롭고 힘들었던 시기, 멈추어 뒀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그 원고는 결국 모두에게 위로를 준 소설 『불편한 편의점』이 되었다. 

저자는 “모험을 지속하는 동안은 언제나 돈키호테일 것이고, 집필을 멈추지 않는 동안은 계속 소설가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단순히 무모한 용기만으로 도전해 운 좋게 성공한 것이 아님을, 이 책에서 여실히 보여 준다. 꿈을 향해 다시 도전할 용기, 포기하지 않고 늘 대책을 궁리하는 자세. 저자의 이런 모습은 무엇보다 그의 순수함과 성실함에서 나온 것이란 생각이다. 이 한 권의 에세이에서 만나는 소박하고 소시민적인 저자의 모습은 그가 이제껏 그려 온 따스한 온기로 가득한 이야기 속 인물의 ‘실사화’ 버전이다. 저자 특유의 따뜻한 위로에 감동했다면, 이번 에세이에서 자신의 소중한 꿈을 좇는 저자의 여정 역시 감동으로 다가올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말하자면 소설 『나의 돈키호테』의 탄생기이자 취재기이기도 하다. 에세이지만 소설을 즐겁게 본 독자들만이 찾을 수 있는 재미있는 장치가 이 책 곳곳에 있다. 아직 소설 『나의 돈키호테』를 읽지 못해 못내 민망하지만 이 책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의 결말은 이미 모두가 추론할 수 있듯이 ‘꽉 닫힌 해피엔딩’이다. 궁색한 '무명작가'는 스타작가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 느낌이다. 우리도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기쁜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듯이 저자의 에세이는 만물이 생동하는 대한민국의 2025년 봄날을 스페인의 열정과 함께 독자들의 앞길을 환하게 이끄는 듯하다. 저자는 이처럼 독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저자가 이 책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를 읽고,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돈키호테가 있을 것 같아요. '나의 돈키호테'를 찾고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란 〈채널예스〉 대담자의 말에 저자의 답은 간단 명료했다. "간절함을 가지고 좇으세요. 그냥 찾는(looking for) 게 아니라 좇는(chasing)다는 생각으로 말이에요. 돈키호테가 쉽게 안 찾아지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어느 정도 집착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쉬운 게 아니니까 많이 좋아해야죠. 짝사랑하듯 해야 해요. 책을 보시면 저도 미친 사람 같잖아요. 스페인에 가서 돈키호테 동상에 말을 걸고, 세르반테스의 고향을 찾고요. 세고비아 관광지 중 멋있다는 데도 안 가고 나의 돈키호테만을 좇았거든요. 사실 거기 간다고 영감이 오겠어요? 그냥 가는 거예요, 그냥. 그 정도의 근성이랄까 간절함이 필요해요. 자신의 돈키호테가 있다면 그것을 짝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이곳에서의 3개월은 내가 다시 소설을 쓰도록 만들어 줬다. 돈키호테를 찾으며 배운 건 그 대책 없는 용기와 신념이었다. 세르반테스를 쫓으며 느낀 건 생을 향한 불굴의 의지와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집필욕이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손에 잡히지 않는 이익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돈키호테》에 담긴 수많은 무형의 가치들은 우리를 뒤흔들었다. 그래서 그 책은 인류의 고전이 됐다.(p.236-237 - 「22장 아스타 루에고」 중에서


저자 : 김호연


영화·만화·소설을 넘나들며 온갖 이야기를 써나가는 전천후 스토리텔러. 1974년 서울생.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첫 직장인 영화사에서 공동 작업한 시나리오 「이중간첩」이 영화화되며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 두 번째 직장인 출판사에서 만화 기획자로 일하며 쓴 「실험인간지대」가 제1회 부천만화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만화 스토리 작가가 되었다. 같은 출판사 소설 편집자로 남의 소설을 만지다가 급기야 전업 작가로 나섰다. 이후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를 실천하던 중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로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되었다.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2013) 『연적』(2015) 『고스트라이터즈』(2017) 『파우스터』(2019)와 산문집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2020) 『김호연의 작업실』(2023)을 펴냈고, 영화 「이중간첩」(2003), 「태양을 쏴라」(2015)의 시나리오와 「남한산성」(2017)의 기획에 참여했다. 2021년 『망원동 브라더스』에 이은 ‘동네 이야기’ 시즌 2 『불편한 편의점』을, 2022년 『불편한 편의점 2』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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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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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란 이름의 금박이 벗겨진 인간은 결코 만족을 모르는 잔인한 야수일 뿐이다." 선하고 성실한 사람에 의해 왜곡된 세상에 내놓는 작가의 처절하고 묵직한 메시지가 부조리한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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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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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구원』은 표제어부터 종교적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기독교적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독자들에게 '구원'(救援)'이란 단어의 뜻을 명확히 이해하면 좋겠다고 제안해 본다. 구원이란 기독교 등 서양의 종교에서 주로 쓰던 말이다. 국어사전은 ①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줌. ② [기독교]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 내는 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 임성순이 〈작가의 말〉에서 쓴 대로 소설을 쓴 것은 '이상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작가의 말'이 두 번 씌어 있다. 하나는 초판을 낼 때 쓴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개정판'의 〈작가의 말〉이다. 저자는 모든 작가들이 그렇듯이 첫 작가의 말에서는 작품의 내용에 집중했다. 작품의 주인공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가장 오래된 고전 중 하나이자 베스트셀러(성경을 말하는 것)에서 송두리째 별려 왔음을 밝힌다. "고급스럽고 고상해 보이는 부분들은 지난 2,000년간 그분(예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학문과 생각들,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낸 딜레마들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작품은 종교의 입장이나 교리를 대변하기 위해 쓴 게 아니라, 교리나 이론, 철학이 아닌 '사람'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새로 쓴 작가의 말은 뉘앙스가 다르다. 정확하게는, 작품 내용에 대해 변화한 저자의 의식이나 신념에 일어난 변화를 덧붙이고 있다. "당시에는 생각했습니다. 안일하게도. 이미 일어난 일일 뿐이라고. 세상은 분명 더 나아지고 있을 테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잔혹한 현실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낙관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일어났던 일이라 믿었던 비극이 최근 다시 일어났거나, 또다시 일어나려 하고 있으니까요.(p.361) 새로 쓴 저자의 말 주제는 '이상한 시대'라는 의문을 담고 있다. 과거 이뤘다 믿었던 시대정신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고, 선과 정의의 이름으로 가치관은 극단으로 치닫는 시대라는 저자의 지적은 묘하게도 우리 사회에 다시 일어날 일이 아닌, 적어도 저자가 그렇게 믿었던 일이 다시 일어났다는 뜻이다.



저자 임성순은 본격 문학과 미스터리 스릴러의 절묘한 접합으로 주목받는 작가이다. 저자는 만화영화 같은 포복절도할 스토리와 기법, B급 영화 같은 키치적인 유머 속에 순문학의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담은 신(新) 하이브리드 문학으로 한국 문학의 스펙트럼을 더욱 넓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독창적인 소재와 날카로운 문장으로 우리 사회를 파헤치는 소설가로 더 알려져 있다. 모두 정확한 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 임성순이 쓴 말은 아마도 지난 겨울 12·3 비상계엄 선포를 지목하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의료계 공백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전직 의사였던 범준.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자들을 돕는 회사를 설립해 그들의 장기를 시한부들에게 이식해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을 한다. 그러던 그의 앞에 과거 만난 적 있던 신부(神父) 현석이 나타난다. 그들이 처음 마주쳤던 것은 15년 전 내전이 끊이지 않던 아프리카에서였다. 의술로 사람들을 구원하려 의료봉사를 하러 온 젊은 의사 범준과, 신에게 헌신하며 종교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살피고 돌보고자 주임신부를 담당하게 된 신부 현석은 모두 거룩한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만의 이상적인 구원론을 펼치고자 도달한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 내면에 숨겨진 모순과 마주하게 된다.

어느 날 노동자 한 명이 현장에서 사고로 병원으로 실려 왔다. 범준이 수술을 맡았다. 범준에게 수술 명령이 떨어졌다. 환자를 본 범준은 그러나 당혹스러웠다. "가슴을 열자 환자의 상태가 한눈에 들어왔다. 철근은 심장을 아슬하슬하게 빗겨나 있었지만, 무명동맥을 찢었다. 외막뿐만 아니라 내막까지 손상된 동맥에서는 심장이 뛸 때마다 울컥울컥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꽂힌 철근을 빼지 않고 절단해 온 응급 요원의 처치는 훌륭했다. 이 상태라면 빼는 즉시 1분 내에 출혈 과다로 사망할 터였다."(p.45)


범준은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찢어진 무명동맥 주변의 혈류를 차단하고, 손상된 혈관을 벗겨낸 후, 인공 혈관을 봉합하면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 수술 경험이 많은 레지던트 3, 4년차라면 어렵긴 해도 불가능한 수술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피로 얼룩져 미끈거리는 동맥을 얼마만큼 세기로 단단히 잡아야 하는가부터 레지던트 1년 차인 그에게는 경험해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시간도 그의 편이 아니었다. 환자 상태가 계속 악화되면서 혈압이 지나치게 떨어지고 있다. 범준은 심호흡을 하고 '겸자'를 들었다. 겸자의 끝이 가늘게 떨렸다. 시선을 마주치자 주임 간호사는 미소를 지었다. 처치가 훌륭하다는 뜻이었다. 그녀 역시 범준이 집도하는 첫 수술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풋내기 이사에게 능숙한 간호사만큼 의지되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범준이 필요한 수술 도구를 말하기도 전에 넘겨주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처음 해보는 수술치고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과장이 들어와 처치를 잘못했음을 알아챈다. 범준이 어려움을 겪었던 겸자의 끝을 너무 꽉 잡아맸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과장은 범준의 실수를 탓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집도했다고 말하겠다고 한다. 이날 이렇게 범준은 의료사고로 한 생명을 죽게 한다. 그러나 그 죽은 생명의 장기로 세 사람의 목숨을 살린다. 과장은 범준의 실수를 비밀에 부치고, 세 사람의 생명을 살린 사실만 세상이 떠들썩하게 드러낸다.

철근을 뽑아낸 사내의 심장은 다시 뛰었지만, 환자의 의식이 돌아오지 못했다. 우려했던 대로 과다 출혈과 심정지로 뇌세포에 제대로 산소가 공급되지 못한 것이다. 범준은 틈만 나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그 환자를 보러 갔다. 환자의 곁은 중학생 딸이 지키고 있었다. 몇 년 전 뺑소니로 어머니를 잃었다는 열넷의 여자아이는 범준이 찾아오면 기대가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버지가 언제 깨어나느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범준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차라리 침대에 누운 환자가 자신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다. 이제 문제는 환자의 뇌사 상태를 검진해 선언하는 일이다. 신경외과에서 검사를 시작했고, 잠정적인 결론이 나온다. 남은 것은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정식으로 뇌사자의 처리 절차를 밟아가는 것뿐이다. 


수술 중 실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법도 했지만 스태프들이 입을 다물었으므로 과다 출혈에 대한 진실은 침묵 속에 묻힌다. 그는 그저 응급실에 너무 늦게 도착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수많은 안타까운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과장이 수술실을 나가며 말했던 자신이 집도한 것으로 하라는 한마디의 숨은 의미를 그제서야 범준은 깨닫는다. 과장은 이미 빈맥이 일어났을 때부터 환자의 회생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뇌보다 심장이 산소 없이 오래 버틴다. 그래서 과장은 일치감치 포기한 채 심장만을 되살린 것이다. 보호자인 여자아이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만 어린 여자아이가 사실의 정황을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모를 것이다.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할 뿐 뇌사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점은 의사로서 잘 안다. 때문에 어린 소녀에게 보호자의 삶을 위해서라도 엄청난 병원비 대신해 장기 이식을 위해 기증을 권하기도 한다. 

과장과 함께 범준이 갔던 곳은 6인용 병실이다. 회진 시간이 아닌데도 찾아온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과장은 자신을 바라보는 환자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가장 안쪽의 창가에 누워 있는 한 부인에게로 간다. 

"오늘은 좀 어때?"

방금 전까지 장기 기증을 권하던 목소리와 너무 다른 말투에 범준이 오히려 민망할 지경이었다. 살집이 있는 창백한 안색의 아주머니가 힘겹게 상체를 일으키자 침대와 창문 사이의 보호자 침대에서 두 개의 작은 사람 형상이 따라 일어난다. 아이들이다. 일곱 살과 다섯 살 남짓의 아이들은 행색이 꾀죄죄하다. 목에는 씻지 않아 검은 줄이 있고, 입은 옷은 언제 빨았는지 다섯 살짜리 옷소매는 흰 콧물 자국으로 얼룩덜룩하다. 과장이 환자에게 다가가 '좋은 소식'이라며 전한다.

"기증자 찾았어. 내일 검사하고, 몸 상태가 나쁘지 않으면 바로 수술 잡자고."


과장의 눈에는 노골적인 혐오감이 드러났지만 환자 아주머니는 기쁨에 겨워 눈치채지 못한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연신 굽실거릴 뿐이다. 벌레를 내려다보는 듯한 과장의 시선과 아주머니의 비굴함이 만들어내는 대비가 너무나 극적이다. 범준은 애써 시선을 돌린다. 어리둥절한 막내 아이는 그 상황에서도 연방 흘러내리는 콧물을 소매로 닦고 있다. 병실은 나온 과장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복도에 비치된 손소독제로 손을 닦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범준의 눈빛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투로 과장은 말한다. "자넨 저 아줌마를 죽일 수 있나?"

"예?"

"이제 자네가 돌아가 수술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면 저 아줌마는 죽겠지."

갑자기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머릿속이 윙윙거리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네의 자기만족이, 그 잘난 윤리가 저 가족을 희생시킬 만큼 가치 있나?"

열린 병실 문 너머로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아주머니는 아이들과 얼싸안고 엉엉 울고 있었다. 서럽게 우는 큰아이 옆에서 막내는 목을 감은 엄마의 팔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숨이 막힌 것은 범준 자신이었다. 


의술이 인술이라고? 개뿔. 의술은 기술이다. 수십, 수백만 명의 목숨을 발판 삼아 지금까지 발전한 거야. 알량한 도덕 나부랭이가 의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없어. 한 명을 실수로 죽이면 그렇게 배운 기술로 열 명을 살리면 돼. 그게 의학의 도리지.(p.58)


저자는 이 소설에서 인간 본성을 진중하고 깊이 있게 파헤친다. 모순으로 이지러진 세계에서 인간은 얼마만큼 악해질 수 있을까. 성(性)의 세계를 대변하는 신부 박현석과 속(俗)의 세계를 표상하는 의사 최범준. 두 명의 인물은 처음에는 선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으나 제3세계에서 마주한 참혹한 광경을 겪으며 변화를 맞이한다. 이들에게 시시각각 주어지는 문제들은 독자들 역시 자신을 반추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비합리적인 사회와 시대를 향한 묵직하고 처절한 메시지를 작품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출판사 측이 제공한 작품 소개글에 이 말이 나온다. "각자의 부끄러움을 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그곳에서의 기억은 끝없이 그들을 괴롭힌다. 그 지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범준과 현석은 무엇을 목격하고 느꼈는가. 이처럼 이들의 포부가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이야기는 선과 악이 뒤섞인 모순적인 사회를 고발한다. 소설은 홀로코스트, 불법 장기 적출 및 이식, 자살 문제 등과 같은 사회적 사안에서부터 개인의 윤리와 도덕에 기대는 사소한 문제들까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도덕적 딜레마와 성과 속의 혼재를 통해 우리 안에 숨겨진 비열한 면모를 통감하게 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유리창 너머의 저 신부는 어쩌면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그곳의 기억을 공감하고 이해할 만한 인물이었다. 그도 15년 전 그곳에 남았을 터였다. 그리고 자신처럼 그 지옥을 어떻게든 겪어 나왔으리라. 그는 무엇을 보았던 걸까? 그리고 그 이후에 삶을 어떻게 견뎠을까? 그 기억이 그를 괴물로 만들었던 것일까? 마치 자신처럼.(p.156)


저자 : 임성순


1976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학창시절 대부분을 경기도 안양에서 보냈다. 어릴 때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고 만화, 영화, 게임 등 늘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처음 접한 디지털 1세대이자 미완성형 오타쿠로서 작가를 꿈꾸었으나 대학 시절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의 영향으로 연출부 생활을 하게 되어 여러 작품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였다. 장편소설 『컨설턴트』로 제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자본과 인간의 관계를 그린 「회사 3부작」과 제2차 세계대전 중 선상 반란을 소재로 한 『극해』, 40대 기러기 가장의 은밀한 즐거움을 그린 『자기 개발의 정석』과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SF 장편소설 『우로보로스』 출간하였다. 2018년 단편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포식자들』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하였으며, 독특한 상상력과 능숙한 스토리텔링으로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늘 새로운 소재와 주제로 화제를 모았다. 지금도 늘 주류가 아닌 주변부에서 투철한 B급 정신으로 세련된 아큐(阿Q)의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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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영화들
이남 지음 / 미메시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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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봉준호 영화들』은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휩쓸었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준다. 이 책이 〈기생충〉이란 영화를 평론하는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카데미상의 권위를 다루고 있진 않지만 독자 개인에겐 그야말로 충격적이었기에 다른 어느 기억보다 독자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기에 하는 말이다. 한국 영화는 이제 막 100년이 넘어서고 있는데 세계가 놀랄 만한 업적을 이룬 것은 절대적으로 탁월한 봉준호 감독의 재능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그동안 영화계 안팎에서 노력했던 많은 영화인들도 생각나게 한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봉준호 감독의 수상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을 이 책은 분석하고 있다. 책의 저자 이남은 풍자, 유머, 순수한 오락의 관점에서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봉준호의 재능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모두 성공을 거둔 그의 30여 년에 걸친 경력에 먼저 존중을 표한다. 불안한 현재의 한국을 영화로 표현하는 봉준호 감독, 그리고 그를 사회학적으로 비평하는 영화학자이자 평론가 이남의 세계가 매우 조화롭다.

영화 평론가인 저자가 봉준호의 모든 영화를 파헤치고 뜯어보고 해석하여 우리 앞에 내놓은 이 책 『봉준호 영화들』은 '사회학적 상상력'을 실현하는 봉준호의 영화 세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채프먼 대학교 영화학과 교수이기도 한 저자가 수년간 봉준호를 추적하여 글로 풀어낸 이 책은 첫 장편 영화 〈플란다스의 개〉부터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미키 17〉까지 봉준호가 자기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내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세밀히 분석해 밝히고 있다. "좁게는 한국 사회, 그리고 넓게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구체적 사회 현실에 뿌리내리는 봉준호의 영화들은 개인의 삶, 특히 사회 주변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개개인의 삶은 늘 더 큰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맥락 안에서 그려진다. 봉준호는 사회적 약자인 서민들이 겪는 어려움뿐 아니라 그들이 직면하는 사적인 문제들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곤경의 근본 원인을 이루는 사회 시스템과 공적인 문제들도 함께 드러낸다."는 게 저자 이남의 집필 취지이다.


저자가 살펴본 봉준호의 영화들을 둘러보면, 우선 〈살인의 추억〉은 연쇄 살인범을 잡지 못하는 형사들의 무능을 1980년대 군사 독재 정권이라는 더 큰 맥락 안에 위치 지어 바라보면서 당대 미결 사건에 대한 새로운 사회학적 해석을 내놓는 작품이다. 〈괴물〉은 박씨 가족이 겪는 비극의 근본 원인이 한국의 식민지 시대 이후의 상황들, 즉 미국에 관한 종속적인 관계뿐 아니라 부패하고 무능한 당국에 뿌리 둔다고 평한다. 〈플란다스의 개〉와 〈마더〉에서 주인공들의 도덕적 타락은 개개인의 괴물 같은 본성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약자들에게 강요된 가혹한 사회 경제적 조건에 의해 야기된 것으로 묘사된다. 

〈설국열차〉와 〈옥자〉에서는 봉준호의 영화 사회학이 더욱 노골적으로 정치화되어 기업의 탐욕으로 지구 온난화와 공장형 축산에 의한 동물 학대라는 심각한 문제들이 무시되어 버리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세계화 현상을 고발한다. 〈기생충〉은 신자유주의하에서 더욱 심화하는 계급 양극화 현상과 더불어 경쟁의 사다리에서 추락해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신분 상승의 가망이 없는 현실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봉준호의 여덟 번째 장편 영화이자 세 번째 영어 영화, 그리고 첫 본격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미키 17〉은 원작 소설이 천착하는 '인간 프린팅의 윤리와 정체성' 문제를 넘어 파시즘적 독재 체제, 식민주의, 자본주의의 노동 착취와 인명 경시에 대한 사회 비판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미키 17〉은 그가 기존 SF 블록버스터 장르를 재구성하는 창의적 실험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사회 정치적 변혁과 21세기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장이라는 맥락 안에 확실하게 자리 잡게 함으로써 그 영화들이 어떻게 한국인들 사이에서 커지는 불공정의 감정과 실패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데 목적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같은 감정 혹은 의식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오늘날의 시대적 추세에 의해 해외 관객들도 크게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감정 혹은 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화는 그들을 발생시킨 그 문화적 체계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영화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확신을 저자가 갖고 있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이해된다.


저자는 봉준호의 영화를 군사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한 한국 역사의 전환과 동시에 전개된 한국 영화 산업의 변화라는 이중적 맥락으로 바라보는 분석과 풍부한 한국 하위 텍스트의 문맥들이 그의 영화를 더욱 심도 있게 이해하고 즐기게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봉준호 감독과 처음 그의 작품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2011년 11월 몸담고 채프먼 대학교 닷지 영화 및 미디어 예술 대학에서 두 번째 부산웨스트 아시아 영화제를 조직하고 개최했을 때였다"고 말한다. 이 두 번째 영화제의 메인 게스트이자 〈부산웨스트 아이콘상〉 수상자로 초청돼 2박3일 동안 캠퍼스에 머물면서 영화 상영과 함께 마스터 클래스 등 학생들과 다양한 만남을 통해 영화와 영화만들기에 관한 자기 생각을 나누었다고 되새겨낸다. 이 영화제에서는 봉준호의 〈괴물〉 3D버전이 개막작으로 상영됨과 동시에 봉준호 작품의 미니 회고전이 개최됐다. 2009년 작품인 〈마더〉는 첫 부산웨스트 영화제에서 이미 상영됐던 터라 이 해에는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과 함께 그의 한국 영화 아카데미 졸업 작품인 단편 〈지리멸렬〉과 감시 카메라로 포착된 영상들로 구성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단편 〈인플루엔자〉가 상영됐다고 저자는 전한다.

책에 따르면 당시 봉준호 감독은 〈괴물〉과 〈마더〉가 미국에서 개봉하고 비평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이후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쌓은 세계적인 명성과는 아직 거리가 있는, 떠오르는 한국 감독 중 한 사람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저자가 한국에서 영화에서 영화 기자를 하다 뒤늦게 영화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후인 2000년에 데뷔했으므로, 그의 영화들을 DVD로, 혹은 영화제나 시사회 등을 통해 미국에서 챙겨 보았다. 또 대학원 졸업 후 채프먼 대학교에서 아시아 영화와 한국 영화 수업을 개설하면서 한국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 그리고 〈괴물〉 등을 소개하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머리말〉에서 밝힌 이 같은 사실은 저자 이남이 오래 전부터 봉준호 감독을 주목해 왔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독자에게는 읽힌다.


이어 저자는 "내가 봉준호 영화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서 한국의 1980년대를 다룬 방식에 있었다"고 강조한다. 1980년대는 한국에서 군사 독재 체제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 운동이 가장 격렬히 이루어지던 연대였고, 마침내 1987년 군사 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쟁취한 역사적인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저자는 한국 영화에서 1980년대 만들어진 영화들(특히 군사 독재 체제의 혹독한 검열하에 만들어졌던 이장호 감독의 1980년대 초 영화들과 1980년대 후반 등장한 코리안 뉴 웨이브 영화들)과 함께 현대 한국 영화에서 1980년대가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가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했다는 이야기다. 

2000년대에 부상한 뉴 코리안 시네마에서 1980년대가 어떻게 기억되고 묘사되느냐는 관점에서 볼 때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과 〈괴물〉은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다고 지적한다. 〈살인의 추억〉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건의 연쇄 강간 살인 사건이 잇따라 일어난 서울 근교의 한 시골 마을은 물론 한국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소재로 다룬 범죄/연쇄 살인범 영화지만 기존의 영화들처럼 살인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시대적인 맥락을 짚어냈다는 점이 독특한 영화였다고 말한다. 형사들이 범인을 끝내 잡지 못했던 주된 이유로 시민 보호보다는 정권 유지에 공권력을 동원한 1980년대 군사 독재 체제에 눈을 돌린 점, 즉 상업적인 장르 영화 안에 1980년대에 대한 감독의 사회적 해설/논평을 담고 있다는 점이 1980년대를 다룬 기존 영화들과는 확연히 달랐다는 사실을 근거로 한다.

이와 함께 〈괴물〉은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학생 운동가 출신인 박남일 캐릭터를 통해 1980년대 학생 운동의 유산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비롯해,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1980년 5·18 민주화 운동뿐 아니라 1980년대 민중 운동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많아 1980년대가 어떻게 기억되는지를 보여 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되는 영화였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 책은 모두 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새로운 문화 세대의 등장」 2장 「영화적 '변태': 전조(轉調), 시각적 개그, 낯설게하기의 기법」 3장 「사회 부조리와 실패의 내러티브: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서의 글로벌 장르와 지역 정치」 4장 「내면의 괴물들: 〈플란다스의 개〉와 〈마더〉에서의 도덕적 모호성과 아노미 215」 5장 「지역을 넘어서: 〈설국열차〉와 〈옥자〉에 나타나는 글로벌 정치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6장 「〈기생충〉의 파국적 상상력」 7장 「〈미키 17〉: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SF 장르의 봉준호식 변조」 등이다.


1장에서는 영화감독 봉준호의 약력을 소개하면서 그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다양하고 혼종적인 문화적 영향들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또 장편 영화로 데뷔하기 전 만들었던 단편들과 시나리오 작가로서 작업한 작품들을 분석한다. 이러한 개인적인 배경과 함께 봉준호와 그의 영화들을 '뉴 코리안 시네마'의 맥락 속에 배치한다. 2장은 봉준호 영화의 형식적 기법과 시각적 표현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적인 것에 대한 봉준호의 관심이 어떻게 시각적인 형식을 통해 전달되는지 자세히 살핀다. 구체적으로, 봉준호의 장르 꺾기와 혼합, 그리고 서로 다른 톤을 뒤섞는 전조(轉調)와 같은 영화 기법, 한국화의 진경산수에 비견할 만한 할리우드 장르의 한국적인 변용과 리얼리즘 미학, 그리고 일상적 공간을 낯설게하기 기법에 대해 논한다. 봉준호는 〈플란다스의 개〉의 평범한 아파트 지하실, 〈괴물〉 속의 한강 하수도 등 종종 사람들이 간과하는 공간을 잘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영화는 이러한 일상적인 공간들을 공포나 재난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3장에서 저자는 범죄 영화(〈살인의 추억〉)와 괴물 영화(〈괴물〉)의 내러티브에서 봉준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국의 지역 정치를 중심으로 할리우드식 장르를 전복하고 재발명하는가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봉준호는 '실패의 내러티브'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이 실패의 이야기들이야말로 특별히 한국적인 내러티브 형태를 형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두 영화 모두 특히 1980년대를 현대 한국 사회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중요한 전환기로 보고 있다. 4장에서는 〈플란다스의 개〉와 〈마더〉에서의 도덕적 모호성과 아노미를 다룬다. '압축된 근대성'이라는 전후 한국의 집단적 체험이 개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들이 이 두 영화에서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가를 탐구한다. 두 영화는 1990년대 후반 평범한 한국인들이 한국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채택으로 인해 야기된 도덕적 딜레마를 끌어안고 마주하면서 벌여야 했던 감정적인 혼란과 싸움을 묘사하고 있다. 이들 영화에서는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에 한국이 겪은 주요한 정치, 산업, 경제적인 변화의 결과가 초래한 도덕적 혼란과 아노미가 개개인의 삶 속에서 심화하는 양상을 드러낸다.

저자는 5장에서 〈설국열차〉와 〈옥자〉에 나타나는 글로벌 정치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다룬다. 저자는 두 영화를 세계 영화의 맥락 속에 두고 그 급진적인 정치성을 서술한다. 먼저 〈설국열차〉의 열차와 〈옥자〉의 미란도 그룹이 어떻게 현재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축소판인가를 살펴보고, 이어 영화를 둘러싼 초국적 공감대 형성이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확장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두 영화는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부정과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사회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가 새롭게 상상하고 제안한 초국적인 '정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어 6장에서 저자는 〈기생충〉을 봉준호의 이전 영화들의 연장선상에 놓고 봉준호 영화의 특징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는 한편 이전 영화들과 대비되는 새로운 점들을 부각한다. 〈기생충〉은 그의 이전 작품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환기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흔히 개별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어 온 감정의 사회학적인 측면을 천착하는 새로운 면모로 전작들에서 벗어나고 있다. 영화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모멸감이 형성되는지 보여 주고, 이 감정들의 폭발이 어떻게,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총체적 파국으로 이어지는지를 드러낸다.

또 7장은 가장 최근 개봉한 영화 〈미키 17〉이 대상이다. 저자는 이 영화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SF 장르의 봉준호식 변조'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흔히 스펙터클을 전면에 내세워 서사가 상대적으로 약한 것과 달리, 주인공 미키 17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관객을 몰입시킨 후,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특수 효과 스펙터클을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구성을 택함으로써 장르적 쾌감과 이야기의 완결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연출 방식을 보여 준다. 〈미키 17〉은 봉준호의 영화적 확장을 보여 주는 동시에 향후 그의 영화적 실천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가늠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미키 17〉은 한국적 로컬리티에서 구축해 온 장르적 감각과 비판적 시선을 세계적 블록버스터라는 산업적 조건 안에서 재구성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조율해 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p.383)


저자 : 이남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언론 대학원 영상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앙일보』 영화 담당 기자로 활동하다 2000년 유학을 떠나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USC 영화 대학에서 아녜스 바르다를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주 채프먼 대학교 영화 및 미디어 대학에서 영화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 영화와 동아시아 영화, 여성 영화 등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다. 2018년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가 기획한 [비주얼 히스토리]의 하나로 이창동 감독에 관한 연구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2023년 권위 있는 학술 참고 자료 시리즈인 웹 사이트 Oxford Bibliographies의 [봉준호] 항목을 맡아 주요 연구 문헌을 선별하고 해설을 작성했다. 2024년에는 비디오 에세이 「Aging, Empathy, and Cinematic Metamorphosis: Through the Lens of Agnes Varda」를 학술 비디오 에세이 저널 『[in]Transition』에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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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지정학 전쟁사 지식 도감 지도로 읽는다
조지무쇼 지음, 안정미 옮김 / 이다미디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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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인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고 말하는 역사학자들이 많다. 그만큼 전쟁은 인류 역사에서 변화·발전을 가져 오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는 뜻일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사실 이 말은 서양 사학자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서양, 특히 유럽은 오랜 역사와 함께 엄청난 전쟁을 끝없이 치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럽은 유사 이래 고대부터 현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멈춘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로 많은 전쟁을 치렀으며 지금도 역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시대에 따라 크고 작은 전쟁이 모두 전쟁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고 볼 때 이는 조금은 과장된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지만, 사실은 일부 서양 사학자들의 말에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인류의 삶은 전쟁과 함께한다고 말해도 틀린 지적은 아니다. 서양 사학자들이 보는 견해로는 유럽 지역의 경우 1885~1914년 30년 정도가 유럽에 전쟁이 없던 평화롭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서양사에서 고대 도시국가로부터 현대의 가장 부유한 대륙이 되기까지 전쟁은 유럽인들과 함께했다는 이야기다.

왜 인류는 끊임없이 전쟁을 해야만 했을까? 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략적으로 우리 인간의 본능은 늘 남과 비교해 우월하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즉 자존심과 욕망의 결과가 전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부터 전쟁의 원인은 의식주에 크게 좌우됐다. 영토 싸움이고 국가간 전쟁이다. 영토 싸움이란 결국 전쟁으로 귀결된다. 근현대로 들어올 때부터는 국가간 협력과 상호 무역에 의해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제도적 장치도 만들었지만 전쟁을 막지는 못했다. 어떻게 보면 전쟁 휴지기를 틈타 오히려 더 큰 전쟁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 이를 증명한다.

이 책 『지정학 전쟁사 지식 도감』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대표적인 전쟁사를 지정학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라는 점에서 일본 학자가 썼다는 이유로 배척할 수는 없다. 전쟁을 통해 본 세계 역사의 흐름을 짚어내는 데에는 오히려 적절할 수도 있다. 단 전쟁을 조망하는 선에서 책은 집필돼야만 하고, 다시 전쟁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책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의 전쟁에 관한 논점은 극우단체나 극우정치인의 논리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 일본의 책임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다행히 이 책은 저자 조지무쇼((ぞうじむし) 자신의의 저서 『한눈에 꿰뚫는 전쟁사 도감』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 책을 재출간했다는 점에서 올바른 역사 인식과 전쟁에 대한 관점이 세계사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라는 독자의 마음이다.


재출간된 이 책은 초판 발간 때의 책 속 도판을 전면적으로 보완하고, 지도와 본문의 내용도 결정적인 전투의 전술과 전략을 보충해 전쟁사를 다양한 각도로 해설하고 있다는 게 공감대를 형성할 있다고 독자는 판단한다. 저자도 〈들어가는 말〉을 통해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전쟁이 인간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바꾸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인류는 지금까지 수많은 전쟁을 되풀이하면서 발전해 왔다. 또한 세계사이든 국가 단위의 역사이든 역사는 크고 작은 전쟁의 기록물일 뿐이다. 인간의 갈등은 정치가 해결하고, 정치의 갈등은 전쟁이 해결한다. 집단과 집단, 그리고 나라와 나라가 전쟁에 이르게 된 경위는 실로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전쟁에는 몇 가지 패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세계의 전쟁의 패턴을 다섯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① 해양 국가와 대륙 국가 - 가치관의 대립

② 기독교와 이슬람교 - 종교의 대립

③ 선발 제국주의와 후발 제국주의 - 경제의 대립

④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 이데올로기의 대립

⑤ 동서 냉전과 민족 분쟁 - 민족의 대립


이 책에서는 인류사의 지정학적 충돌을 상징하는 결정적인 전쟁을 다루고 있다. 대륙 국가끼리의 영토 분쟁, 대륙 국가와 해양 국가의 대립,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분쟁, 제국주의 전쟁, 이데올로기 갈등, 각 지역과 민족 별 분쟁 등 시대의 흐름을 상징하는 전쟁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개별 전투를 하나씩 살펴보는 과정에서 시대나 지역이 전혀 다른 전쟁인데도 원인, 과정, 결과에서 의외의 공통점이나 역사적 진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이 책에서는 표제어에서 나타나듯이 인류사의 지정학적 충돌을 상징하는 결정적인 전쟁을 다루고 있다. 영토 분쟁, 대륙 국가-해양 국가의 대립, 기독교-이슬람교의 종교분쟁, 제국주의 전쟁, 이데올로기 갈등 등이며 각 지역과 민족 별 분쟁 등 시대의 흐름을 상징하는 전쟁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기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별 전투를 하나씩 살펴보는 과정에서 시대나 지역이 전혀 다른 전쟁인데도 원인, 과정, 결과에서 의외의 공통점이나 역사적 진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부모와 형제 간에도 서로 칼과 총을 겨누는 참혹한 곳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가 전쟁터로 얼룩진 지 76년이 지났고 이 땅에 전쟁이 멈춘 지 68년이 되었다. 그 사이에도 지구에는 전쟁이 멈춘 적이 없지만, 이 땅에서는 인간의 삶을 가장 처참하게 만들어 버리는 전쟁이 없는 시기였다. 그러나 전쟁이 없었을 뿐 우리의 삶은 평화와 행복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칼, 총으로 상대를 겨누는 전쟁과 다름없는 삶의 전쟁이 계속돼 왔다. 이념의 대립, 권력 다툼, 독재와의 전면전 등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이 또 다른 전쟁이었다. '저자가 이에 증거로 내세우는 거의 모두가 반박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사회의 혼란과 법과 양심이 결핍된 세상은 사회적 약자들을 거칠게 다루었다. 고아가 된 아이들, 장애를 가진 사람을 청소하듯이 모아 강제로 집단 수용소에 가두고 노동 착취와 감옥 생활을 방불케 하는 삶을 살게 했으며 여성은 납치, 사기, 협박, 감금에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안타까운 삶을 살았다. 그리고 한 해 몇 만 명씩 실종되어도 생사 확인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저자는 과거의 전쟁은 물론,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전쟁은 지정학적 갈등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명충돌이나 경제전쟁, 민족분쟁 등도 이런 전쟁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현재 지구상에서 빈발하는 각종 테러도 앞서 열거한 갈등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도시 국가 로마와 해양 강국 카르타고의 포에니 전쟁은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전쟁이고, 섬나라 영국과 대륙 국가 스페인이 맞붙은 아르마다 해전은 제해권을 장악한 영국이 세계 최강국의 자리에 오르게 한 결정적인 전투였다.


또 중동의 시나이반도와 지중해 연안의 발칸반도도 고대로부터 분쟁이 끊이질 않았던 화약고로 유명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부터 십자군 원정과 세계대전 등 대규모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무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늘 전쟁의 불길에 노출되었던 이유는 교통의 요충지라는 이유도 있다. 즉 다른 문명이 만나는 교차점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전쟁터로 변하기도 했다. 이 책은 세상을 바꾼 28가지 중요한 전쟁을 입체 그래픽 지도와 풍부한 컬러 도판을 활용해 쉽고 흥미롭게 설명한다. 전쟁이 발발한 시대적 배경, 역사적 인물, 전쟁의 전술과 전략 등 당시 전투 상황을 그래픽 지도 위에다 생생하게 재현했다. 이런 그래픽 지도를 보는 것만으로 전쟁사는 물론 복잡한 세계사를 한눈에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앞서 분류한 대로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해양 국가와 대륙 국가〉 2장 〈기독교와 이슬람교〉 3장 〈선발 제국주의와 후발 제국주의〉 4장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5장 〈동서 냉전과 민족 분쟁〉 등이다. 책에 기술한 순서대로 28가지 전쟁을 지정학의 구도로 살펴보면 세계사의 중요한 포인트를 파악할 수 있다. 과거에 일어났던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이해한다면 현재의 국제정세는 물론이고, 앞으로 세계의 미래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대한 전망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전쟁이 인류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할 수 있는 윤곽이 갖춰진 셈이다. 다음으로는 이를 연대순으로 머릿속에 새기면서 언제 일어난 전쟁인지, 왜 일어났는지, 결과가 세계 역사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잠깐 잠깐 대입해 생각하면서 읽어나가면 세계 역사에 대한 명확한 흐름은 물론 세부적인 분석의 논거를 마련한 셈이다. 

책의 순서대로 1장에서 해양 국가와 대륙 국가의 충돌을 살펴본다. 고대부터 중세에 걸쳐 일어난 전쟁의 배경은 지정학적인 이유가 대부분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기원전 2~3세기의 100년에 걸친 포에니 전쟁은 내륙으로부터 팽창해 나간 대륙 국가 로마와 지중해의 해양 교역로를 장악해 나간 해양 국가 카르타고의 전쟁이었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대립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려는 해양 국가 간의 충돌이었다. 이처럼 특정 지역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전쟁을 지정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쟁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대륙국과 해양국의 전쟁은 해양국은 섬나라 및 연안국으로서 해양 교역을 산업의 중심으로 삼는 국가를 말한다. 사람이 살기 위한 영토의 획득보다는 항구 등 교역 거점의 확보를 가장 중요시 한다. 영국과 일본, 네덜란드, 미국 등이 대표적 나라이다. 앞의 세 나라는 해양 국가로서 묶어 판단할 수 있지만 미국을 해양 국가로 분류한다는 것은 지리적 잇점을 통한 교역 국가를 부의 원천으로 삼은 것으로 독자에는 읽힌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에 독자는 선뜻 공감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내륙국도 하닌 하나의 거대한 대륙에 위치한 대륙국가이다. 또 서양인들이 신대륙이라고 발견해 수많은 사람이 이주한 곳으로 이주민의 국가이기도 하다. 다만 이주민 대부분이 서양인들이고, 개척한 사람들이 해외 식민지 개척의 일환으로 아루어진 나라다. 미국은 대부분이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였고 1750년대 이르러서야 비로소 독립국가로 발돋움한 나라다. 이를 교역을 위한 섬나라와 함께 해양 국가로 분류하기에는 독자로서는 선뜻 동의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쓴 내용에 대해 독자로서 이를 인정하고 읽어나가야 할 것이다. 저자도 "대륙 국가는 대륙의 중앙부에 주축을 두고, 내륙 자원의 생산과 이동을 산업의 중심으로 삼는 국가"를 정의하고 있다. 육상 운송과 강을 이용한 수상 운송을 중시하며, 군사적인 전략에서는 영토 획득을 가장 우선시 한다. 중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이 대표적인 나라다. 저자의 관점이 미국에 관해서 독자와 조금 다른 점은 분명하다. 미국은 18세기 후반 독립한 신생국이다. 뿌리가 유럽인들이라고 해양 국가로 분류한 것은 다소 의외다. 자칫 이 분류가 시선이 다르다면 20세기 들어 가장 큰 전쟁, 1-2차 세계대전을 누가 일으켰는지 살펴보면 다른 분석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쟁사를 제대로 읽으려면 전쟁의 원인을 큰 묶음으로 분류하다 실수가 있으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산출할 수도 있다. 전쟁사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원인도 굉장히 중요하다. 

1장에서는 「고대~중세의 전쟁사」(개괄) 「포에니 전쟁 BC 264∼146년」, 「가우가멜라 전투 BC 331년」, 「진시황의 중국 통일 BC 221~210년」, 「투르-푸아티에 전투 732년」, 「십자군 전쟁 1096~1270년」, 「레그니차 전투 1241년」 등 6개의 주요 전쟁이 기술된다. 비전공 독자로서 잘 모르는 「투르-푸아티에 전투 732년」가 눈에 띈다. 이 전쟁은 서유럽을 침공한 이슬람 세력을 기독교의 프랑크 왕국이 방어했다는 전투를 말한다. 당시 프랑크 왕국은 현재 프랑스와 독일 일부 지역이 포함되는 지역의 국가였다.


8세기에 현재의 프랑스 서부를 무대로 일어났던 투르-푸아티에 전투는 기독교 교권과 이슬람 교권이 역사상 처음 대규모로 격돌했던 전쟁이다. 책에 따르면 원래 5세기에 서로마 제국이 붕괴한 후, 서유럽에서는 게르만족의 소국 간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현재의 프랑스에서 독일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했던 프랑크 왕국이다. 이에 비해 중동에서는 7세기에 이슬람교가 발흥한 이후로 서아시아 전역부터 북아프리카까지 교단의 세력이 확산하고 있었다. 당시 이슬람 문화권은 여러 분야에서 서유럽 국가들에 앞서 있었다. 특히, 본래 유목민이 중심이었던 만큼 기병의 운용이나 군마의 품종도 서유럽에 비해 월등했다. 이슬람 세력은 711년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한 데 이어, 718년에는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한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레오 3세는 격전 끝에 이슬람군을 물리쳤다. 

그러나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한 이슬람 세력은 점점 프랑크 왕국령에 위협을 가하게 된다. 이처럼 확대되어 가는 이슬람 세력 앞에 위기를 느낀 서유럽의 기독교 문화권이 방어전의 하나로 치른 결전이 바로 732년의 투르-푸아티에 전투였다. 


저자 : 조지무쇼(Zojimusho,ぞうじむし, 造事務所)


‘쉽게, 재미있게, 정확하게!’라는 3대 슬로건을 내걸고 1985년 창립한 일본의 기획편집집단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기획, 집필, 편집에 참여해 복잡하고 어려운 지식과 정보를 쉽고 간단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종교, 문화 등에 조예가 깊고, 경제를 비롯한 생활실용서까지 여러 분야에서 단행본을 중심으로 다양한 출판활동을 하고 있다. 1년에 평균 40여 종의 단행본을 펴내고, 다수의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독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주요 도서로는 『세계의 신들을 알 수 있는 책』, 『천사와 악마를 알 수 있는 책』, 『세계를 알 수 있는 지도장』, 『100글자로 알 수 있는 심리학』,『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 『30가지 발명품으로 읽는 세계사』,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전쟁사도감』,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황제의 세계사』 등 다수가 있다.


역자 : 안정미


부산에서 출생해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잡지사에서 기자로 근무했다. 현재프랑스어와 일본어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J'aime lire’시리즈 아동용 동화 5권과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십자군 전쟁』, 『영원한 일본』 등 많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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