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은 누구의 것인가 -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저작권의 역사
데이비드 벨로스.알렉상드르 몬터규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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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이 문장은 누구의 것인가』는 '저작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부제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저작권의 역사」가 책의 내용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많은 독자들이 아는 바와 같이 저작권의 개념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저작권이란 문학·학술 또는 예술의 창작물에 대하여 저작자가 가지는 재산적·인격적 권리의 총체를 의미한다. 외국인의 저작물은 대한민국이 가입 또는 체결한 조약에 따라 보호된다. 다만, 당해 조약 발효일 이전에 발행된 외국인의 저작물은 보호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서양 문명에서 처음 제정된 저작권의 역사는 짧다. 19세기 후반 국제간의 문화교류·통신이 활발해짐에 따라 저작권의 국제적 보호를 위하여 저작권의 국제조약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저작권에 대한 국제협약으로는 1886년에 체결된 〈만국저작권협약〉(베른조약)과 1952년에 체결된 〈국제저작권협약〉이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주로 가입하고 있는 〈만국저작권협약〉은 저작물이 저작되면 아무런 절차도 필요없이 곧 저작권을 인정하는 무방식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미국과 중남미의 여러 나라에서 가입하고 있는 〈범미주조약〉(몬테비데오조약)은 납본·등록 등의 절차를 거쳐야만 저작권을 인정하는 방식주의를 택하고 있다. 이 두가지 조약의 장단점을 보완하여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 〈세계저작권협약〉(Universal Copyright Convention, UCC)인데, 우리 나라가 1986년에 가입한 것이 이 조약이다.

국어국문학자료사전에 따르면 이 조약에서는 방식주의의 보완을 위하여 ⓒ기호와 저작자명, 저작연도 표시만 하면 저작권을 인정하고 있다. 1986년에 우리나라가 이 조약에 가입함으로써 〈저작권법〉이 같은해 12월 전면 개정되고, 1987년 7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되었다. 비록, 능동적으로 이 조약에 가입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선진국의 대부분이 가입하여 있고, 또 국제적으로 해적판 출판으로 물의를 빚어온 시점에서 이 〈세계저작권협약〉의 가입을 계기로 적극적이고도 현명한 방법으로 대처해간다면 우리 출판물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법 이야기가 나왔을 때 독자 개인적으로 생각 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1980년대 초반 일본의 주말 TV 드라마 가운데 하시다 스가코의 〈오싱〉이 큰 인기 프로그램으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시다 스가코는 우리 방송계로선 김수현 씨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오싱'은 여주인공 이름이며 표제어로 사용됐다. 이 드라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침울한 사회 분위기에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홋카이도를 무대로 하고 있다. 운명에 굴하지 않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나간 한 여성의 일대기를 다룬 것이다. 일본에서의 엄청난 인기 프로그램을 대본을 가져다 우리가 소설로 번안했다. 이를 출판사의 이름으로 소설 6부작으로 번안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출판사는 이 소설을 계기로 당시 벌어들인 돈을 사옥을 마련해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저작권에 관한 어느 조약에도 가입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출판사에서 소설로 번안된 책이 히트를 치자, 이를 비슷하게 베낀 수많은 '해적판'이 나타났으나 크게 재미를 본 것은 없다고 한다. 한 가지 예이지만 저작권법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독자가 아는 에피소드여서 적어 봤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저작권에 관련된 것이 이젠 차고 넘친다. 책장에 꽂힌 소설과 시, 스마트폰으로 보던 영상, 길에서 들리는 음악, 게시판에 붙어 있는 포스터, 여행 기념품으로 사온 캐릭터 인형···. 오늘날 우리는 무형의 콘텐츠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 무형의 창작물은 돈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인다. 이 모든 무형의 자산은 누구의 것일까? 이 수익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 이 책은 저작권에 관한 역사, 법률, 대상, 과정 등 모든 것을 다룬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뒤로 책과 지식의 유통을 인쇄업자들이 독점하게 되었다. 18세기 영국에서 이들의 지식 독점을 막기 위해 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저작물에 대한 권한을 저작권자에게 출간 후 28년 동안 보장했는데, 이것이 현대적 의미에서 저작권의 탄생이었고, 이후 저작권 개념은 많은 변화를 거쳤다. 출판된 글을 넘어서 소리와 인격까지 저작권의 대상이 되었고, 저작권의 보장 기간도 여러 이유로 점점 더 길어졌다. 이제 저작권은 복잡하고 강화된 수익 추구 수단이 되어 많은 기업들에게 독점적인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저작권은 수많은 단체의 이권과 법정 싸움을 거치며 오늘날의 모습으로 확립되었다. 이 책 『이 문장은 누구의 것인가』는 저작권의 탄생부터 오늘날까지, 그 변화 과정을 추적하며 저작권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해준다. 오늘날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권리 중 하나인 저작권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저작권은 18세기 초반 런던에서 생겨났다. 책 저자와 그의 양수인(讓受人)들에게 책의 인쇄 및 판매에 대한 독점을 단기간 허용해주는 것이 최초의 형태였다. 그런 독점이 허용되는 대상은 그 후 몇 세기 동안 점점 많아졌고 독점 가능 햇수도 거듭 늘어났다. 그다음엔 저작권의 범위가 차차 넓어져 축약, 각색, 공연, 번역 등등의 2차적 사용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저항이 있었지만 살금살금 전진하며 세력을 넓혀갔다. 저작권을 멈춰 세우려는 철학적·윤리적·현실적 논거가 먹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p.18)

우리나라 저작권 법 조항에 문학·학술 또는 예술의 창작물에 대하여 저작자가 가지는 재산적·인격적 권리의 총체. 외국인의 저작물은 대한민국이 가입 또는 체결한 조약에 따라 보호된다. 다만, 당해 조약 발효일 이전에 발행된 외국인의 저작물은 보호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대한민국 저작권법에서 저작물의 종류에는 소설·시·논문·강연·연술(演述)·각본 등의 어문저작물, 음악저작물, 연극 및 무용·무언극 등의 연극저작물, 회화·서예·도안·조각·공예·응용미술작품 등의 미술저작물, 건축물과 건축을 위한 모형 및 설계도서를 포함한 건축저작물, 사진저작물 영상저작물, 지도·도표·설계도·약도·모형 등의 도형저작물,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 등을 말한다.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기타 방법으로 작성한 2차적 저작물은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 그리고 편집물로서 그 소재의 선택 또는 배열이 창작성이 있는 편집저작물도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 그러나 법령, 국가, 또는 지방공공단체의 고시(告示)·공고·훈령 등, 법원의 판결·결정·명령 및 심판이나 행정심판절차 등에 의한 의결·결정 등,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작성한 편집물 또는 번역물, 사실의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 공개한 법정·국회 또는 지방의회에서의 연술 등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규정도 마련돼 있으며 점차 강화되는 추세다.

이처럼 이 책은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몸집을 불려나간 과정을 생생하게 추적한다. 영국의 인기 판화가 호가스는 판화 또한 인쇄물이라며 국회에 진성서를 올렸고, 글이 아닌 판화 또한 저작권의 보호 범위에 들어갔다. 이후 인쇄소에서 찍어내는 출판물인 포스터도 보호 범위에 들어갔으며, 음반, 음악, 캐릭터, 프로그램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또한 처음에는 발표 후 최장 28년이던 기간은 저작자의 가족들을 위해 사후 10년이 되었다. 러시아에서는 19세기 중반 푸시킨 아내의 탄원으로 보호 기간이 사후 50년으로 늘어났고, 이제는 많은 국가가 사후 70년 동안 저작권을 보호한다. 이제 10여 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저작권 보호를 위한 국제 공조인 베른 협약에 가입한 상태다.

이처럼 저작권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다른 잡음들이 생겨났다. 여러 기업의 독점을 막고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당초의 취지와 다르게 이제 강화된 저작권법은 강대국의 거대 기업들을 위한 칼이 되었다. 전 세계 라이선스 계약금의 4분의 1 이상이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며 국가 간의 불평등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편 현재 발표되는 대부분의 저작물들은 창작자를 찾을 수 없는 ‘고아 저작물’이 될 운명에 처한다. 고아 저작물이란 저작자인 법인이 폐업하거나, 작가가 자식 없이 사망해 저작자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게 된 저작물들이다. 지난 세기에 발표된 저작물의 90퍼센트가 고아가 되었으며, 이 저작물들의 재사용 허가를 받지 못해 관련 논의가 멈추게 되기도 한다.

저자들의 안내에 따라 저작권의 역사를 탐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던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저작권을 둘러싼 다양한 분기점에서 다른 결론이 내려졌다면 저작권의 모습은 오늘날과는 달랐을 것이다. 저작권은 훨씬 강력하고 복잡해졌지만 여전히 모호한 면이 있다. 저작권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을 들어봄으로써 독자들은 저작권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새로 나올 책에 영화 리뷰를 싣기를 원한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캡처를 넣어도 될까? 삽입된 노래의 가사는? 저작권이 의식되기 시작한다. 누구에게 문의를 해야 하지? 저작자를 알아보고 문의를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닿는다. 이처럼 우리는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할 때면 당연하게 저작권을 의식한다. 그런데 이 생각은 언제부터 당연했을까? 창작물에 대한 권리는 창작자에게 있다. 창작물은 창작자의 재산이며, 타인의 창작물을 함부로 가져다 쓰는 것은 도둑질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늘날 상식적으로 퍼져 있는 이 개념은 처음부터 존재하던 것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저작자에게는 창작물을 언제 어떻게 발표할지를 결정할 권리가 있었고 타인이 멋대로 저작물을 발표해버려 시비가 붙기도 했지만, 발표된 저작물을 재배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도용과 표절은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을 때 윤리적 문제로 지탄받았을 뿐이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해 인쇄업자들이 책을 찍어내게 된 뒤로 출판된 글에 대한 권리는 인쇄업자에게 주어졌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독점권을 가진 인쇄업자들은 유명 저자들의 저작물의 유통을 관리했으며 타 지역에서 다른 이들이 멋대로 같은 내용의 책을 찍어내는 것을 막았다. 18세기 영국은 이들의 독점을 제한하기 위해 법을 제정했고, 이로 인해 저작물에 대한 권리가 저자에게 주어졌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현대적 의미의 저작권이 생겨난 것이란 말은 앞서 언급한 대로이다. 이후 프랑스에서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저작자에게 평생 보장하는 법이 만들어졌고, 점차 ‘독창성을 지닌 창작물은 저작자의 재산’이라는 개념은 전 세계로 퍼져갔다.

이 책은 4부 4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저작권의 탄생〉, 2부 〈독창적 표현이란 무엇인가?〉, 3부 〈저작권의 홍수〉, 4부 〈갈림길에 서다〉 등이다. 각 부는 44개의 장으로 나뉘어 별도의 제목으로 각각의 글을 게재함으로써 책의 주제인 '저작권의 역사'로 수렴된다. 

저작권은 18세기 초반 런던에서 처음 시작된 개념이긴 하지만 그 이전의 출판 인쇄물은 어땠을까? 이 책에서 독자에게 가장 흥미를 끈 데다 서양 사람들이 자의적 해석으로 저작권이 개념 지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이 있다. 5장 「저작권 이외의 책들」에서다. 이 책에서 공동 저자 데이비드 벨로스와 알렉상드르 몬터규(이하 저자)는 인쇄술은 중국의 4대 발명 중 하나로 꼽힌다고 명시한다. 8세기 당나라 때 목판 인쇄술을 지칭하는 것이다. 필경사가 필사한 종이(역시 중국의 발명품)를 목판에 뒤집어 붙이고 글자를 양각으로 새겨넣는 기술이다. 목판 하나에 텍스트 한 장 분량이 담겼다. 낱말 개수는 종이와 글자 크기에 따라 달라졌다고 기술한다. 목판만 있으면 사본을 한 권이든 100권이든 1,000권이든 그 자리에서 당장 찍어낼 수 있었다. 여러 묶음으로, 수년 동안, 어떤 때는 수백 년도 가능하다고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목판을 분해할 수 없기 때문에 거기에 새겨진 글자들을 재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각각의 목판에는 1회분의 재료와 기술이 녹아 있는 셈이다. 그래서 문학적·철학적·과학적 작품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에 비해 서양에서 책을 인쇄하는 방식은 아주 달랐고,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느냐의 문제가 더 까다로웠다고 말한다. 1458년 구덴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이기 때문이다. 이때 활자는 각각의 낱개로 분해되어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작권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인쇄술 덕분에 읽을거리에 드는 비용이 현저히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책을 구하기도 훨씬 쉬워졌다.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인쇄업자는 어떻게 원고를 손에 넣고, 저자에게서 그것으로 책을 만들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내는가? 답은 간단하다. 그 물건을 구매하거나, (고전 같은) 옛날 작품들 또는 성경처럼 저자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저작물에 대한 특권을 적법한 당국으로부터 (대개는 요금을 내고) 취득하면 된다. 둘째, 책이 인쇄되고 판매되기 시작하면, 그 구매자가 원고를 사거나 특권을 취득하지도 않고 직접 조판하여 똑같은 책을 찍어내는 것을 막을 방도가 있을까? 더 적은 착수비로 다시 인쇄한 책이 더 싼 값에 팔리면 초판의 시장성은 무너질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책은 품절되는 데 시간이 걸리고 복제는 금방 끝나기 때문에, 서양의 출판 사업은 강제적인 규제 없이는 발전할 수 없는 구조였다.

AI가 ‘학습’이나 ‘훈련’을 위해 자주 접해야 하는 1차 자료들?이미지, 음향, 정보 데이터베이스?은 대부분 저작권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AI 도구 개발은 다시금 저작권 소송 시대를 열어젖힐 것이고, AI 자체는 아니더라도 그 산출물은 저작권 침해 혐의에 휘말릴 수도 있다. 다른 시대에 다른 매체를 상대로 만들어진 기존의 저작권 제도가 새로운 유의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지, AI가 현 시스템의 방해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계속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p.368)


저자 : 데이비드 벨로스(David Bellos)


작가이자 번역가이며 프린스턴 대학교 프랑스어와 비교문학 교수이다. 여러 편의 전기를 집필해 공쿠르상을 수상했으며,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을 영어로 옮겨 맨부커 국제 번역가상을 수상했다. 그가 집필한 번역학 입문서인 『번역의 일』은 여러 나라에서 출간되었다.


저자 : 알렉상드르 몬터규(Alexandre Montagu)


변호사이자 지적 재산권법, 국제 상업 거래, 뉴미디어 상업 및 기업법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의 창립 파트너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하버드 로스쿨,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프린스턴 대학교 비교문학과에서 겸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적 재산권: 새로운 시대의 돈과 권력』,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비롯한 많은 책과 기사를 집필했다.


역자 : 이영아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사회교육원 전문 번역가 양성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 시리즈, 캐런 M. 맥매너스의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우리 중 하나가 다음이다』, 『두 사람의 비밀』, 리처드 H. 스미스의 『쌤통의 심리학』, 조지 오웰의 『신부의 딸』, 『엽란을 날려라 』, 『숨 쉴 곳을 찾아서』, 앤서니 에브니의 『별 이야기』, 폴라 호킨스의 『걸 온 더 트레인』, 비비언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 이비 우즈의 『사라진 서점』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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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의 역사 - 인간의 숨겨진 욕망과 권력 관계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데이터에 관한 진실!
크리스 위긴스.매튜 L. 존스 지음, 노태복 옮김 / 씨마스21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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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이 책 『데이터의 역사』는 「인간의 숨겨진 욕망과 권력 관계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데이터에 관한 진실」이란 긴 부제를 갖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데이터는 단순한 수학적 통계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상업이나 정치적 사용을 목적으로 수집되고 활용되고 있다. 이 현상은 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권력 관계를 포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책은 저자 크리스 위긴스와 매튜 L. 존스가 함께 쓴 공동 논저다. 공동 저자 중 크리스 위긴스는 컬럼비아대학교 응용수학과 부교수로서 데이터의 역사에 관한 강의를 하며 〈뉴욕타임스〉의 데이터과학 부분 수석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두 저자가 함께 시작한 「데이터: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강의가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그 강의 내용이 이 책의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위긴스가 학생들에게 강의하던 어느 날의 일을 되살려내며 시작한다. 이날의 상황을 저자는 소설적 감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데이터, 그 진실과 권력의 역사」란 제목의 〈서문〉의 시작 부분이다. "2018년 4월 어느 날 아침, 봄 햇살이 컬럼비아대학교 셔머혼홀의 한 세미나실 동쪽 창문으로 비쳐 들던 그때, 나는 칠판 앞으로 다가갔다. 정량적 구체화, 즉 실증적 관찰 결과를 그에 대응하는 수치로 변환하는 마법과도 같은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돌프 케틀레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불멸의 '정규곡선'을 칠판에 그렸다. 케틀레는 스코틀랜드 병사들의 신체 측정치에 관해 자신이 얻은 데이터를 사용하여 이상적인 인간의 신체 상태를 알아내고자 했던 사람이다. 수학자들한테는 가우스곡선이라고 알려진 이 곡선은 IQ 검사의 유명한 '종 곡선'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데이터가 자연 현상의 실체를 밝혀내며 심지어 초월적인 실체까지도 밝혀낸다는 사실을 자연과학자들에게 알려준 곡선이기도 하다. 내가 느낀 흥분을 학생들도 함께 느꼈는지 보려고 몸을 돌려 그들의 눈을 응시했다. 한 학생이 내 시선과 마주치자 손을 들고서 물었다. '지금 페이스북에 관해 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p.8)

이날은 데이터가 악용되어 개인 사생활이 침해되고, 나쁜 목적에 활용됨으로써 사회 발전에 얼마만큼 악영향을 미칠지 미국 의회에서 밝혀지는 날이기도 했다고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이날 시대 문화를 뒤바꾸고 있는 실리콘밸리에 소재한 기술 기업의 불손한 CRO가 미국 상원에 불려갔다. 〈뉴욕타임스〉의 설명처럼, 상원의원들은 모든 시민을 대표하여 어떻게 우리 대학교 학생들을 포함해 수백만 명의 개인 데이터가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과정과 개인 사생활에 관한 규범을 어기고 나쁜 목적에 악용되었는지 이해하려고 했다. 의회 증언이 끝날 무렵 학생들은 선출 공무원들이 디지털 세계의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과 학생들 자신이 알고리즘과 함께 자라면서 체득한 지식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를 실감했다.

저자는 데이터에 관한 이야기는 경쟁으로 가득하다고 지적한다. 무엇이 참인지 정의하기 위한 경쟁, 데이터를 이용해 권력을 키우기 위한 경쟁,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이용해 어둠에 빛을 비추고 무력한 존재들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경쟁 등에 관한 설명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호기심으로 가득 찬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에서 나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아울러 과학사가이자 데이터과학자로서의 개인적 경험, 그리고 한 시민으로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살게 된 과정과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다르게 사는 길을 선택할 수 있을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온 경험에서 나왔다는 점을 역설한다. 기술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용자와 개발자처럼 우리는 기술의 앞날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집단적으로 그런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를 이해하고자 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아이디어와 기술이 이야기만이 아니라 진실과 권력의 역사도 함께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전한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들은 지 어느덧 10년은 되는 것 같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터져 나온 단어들도 몇 가지가 또렷이 떠오른다. 독자는 디지털 시대를 쫓아가기 바쁜 아날로그 세대기에 4차 산업혁명을 오히려 두렵게 느끼고 있지만 관련 학자들이나 업계는 굉장한 노력이 뒷받침되고 이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섰다고 공통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2016년 6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Davos Forum)에서 포럼의 의장이었던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이슈화됐다고 한다. 당시 슈밥 의장은 "이전의 1, 2, 3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적 환경을 혁명적으로 바꿔 놓은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 질서를 새롭게 만드는 동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에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기술, 드론,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등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말한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은 ① 1784년 영국에서 시작된 증기기관과 기계화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 ② 1870년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본격화된 2차 산업혁명 ③ 1969년 인터넷이 이끈 컴퓨터 정보화 및 자동화 생산시스템이 주도한 3차 산업혁명에 이어 ④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을 통해 실제와 가상이 통합돼 사물을 자동적·지능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가상 물리 시스템의 구축이 기대되는 산업상의 변화를 일컫는다고 백과사전은 규정하고 있다. 

또 데이터(data)란 재료·자료·논거라는 뜻인 'datum'의 복수형이다. 넓은 의미에서 데이터는 의미 있는 정보를 가진 모든 값, 사람이나 자동 기기가 생성 또는 처리하는 형태로 표시된 것을 뜻한다. 어떠한 사실, 개념, 명령 또는 과학적인 실험이나 관측 결과로 얻은 수치나 정상적인 값 등 실체의 속성을 숫자, 문자, 기호 등으로 표현한 것이며 데이터에 특정한 의미가 부여될 때 정보가 된다. 데이터 자체는 단순한 사실에 불과하지만, 일련의 처리과정에 따라 특정한 목적에 소용되는 정보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사용되는 것이다. 데이터를 통해 만들어진 정보는 또 다른 정보를 위한 자료, 즉 데이터로 사용될 수 있다.

협의적 의미로는 주로 컴퓨터 용어로 정보를 작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를 뜻한다.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프로그램 등을 통해 개별 값들을 읽고 처리하며 저장하는 등의 작업이 수행된다. 이 때, 데이터는 숫자, 영자 혹은 주기(period), 정부(+, -) 부호 등의 특수문자에 의해 구성되며 디지털의 기본 단위로서 0과 1의 이진법으로 표기된다고 풀이하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서 빅데이터(big data)란 기존의 데이터 처리 응용 소프트웨어로는 수집, 저장, 검색, 분석, 처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규모인 데이터를 말한다. PC와 인터넷, 스마트 기기의 보급,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사용자가 급증함에 따라 인류 사회의 디지털 생활은 크게 변화했고, 곳곳에서 생성되는 데이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아래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 것이다. 얼마나 커야 빅데이터라고 할 수 있을까? 독자처럼 아날로그 세대는 가늠하기조차 힘들지만 이 정의도 시대에 따라 변해가고 있다. 30년 전에는 1기가바이트의 데이터가 빅데이터 문제가 될 수 있었으며 특수 목적의 컴퓨팅 자원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제는 기가바이트의 데이터는 보편적이며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기기에 의해 쉽게 전송 처리 및 저장될 수 있다. IDC가 2018년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의 총규모가 2025년에 175제타바이트(ZB, 1021)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누군가 175제타바이트를 블루레이 디스크에 저장한다면 디스크를 지구에서 달까지 23번 갈 만큼 쌓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빅데이터는 단순히 규모가 큰 특징만 갖는 것이 아니다. 흔히 빅데이터의 특징을 3V로 정의하고 있는데, 데이터의 크기(Volume), 데이터 종류의 다양성(Variety), 그리고 데이터의 입출력 속도(Velocity)이다. 여기서 크기는 이미 설명했듯이 빅데이터의 어마어마한 물리적 크기를 말한다. 다양성은 데이터의 형태를 의미한다. 기존의 기업 환경에서 사용되는 정형화된 데이터는 물론, 사진, 비디오, 소셜 미디어 데이터처럼 통일된 구조로 정리하기 어려운 비정형화된 데이터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 빅데이터다. 속도는 데이터의 고도화된 실시간 처리를 뜻한다. 융복합 환경에서 디지털 데이터는 매우 빠른 속도로 생산되므로 이를 실시간으로 저장, 유통, 수집, 분석 처리가 가능한 성능을 의미한다.

빅데이터의 성장에 대한 전망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빅데이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또한, 데이터의 품질이 낮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들어, 빅데이터에 비해 더 정확하고 양질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스마트 데이터(smart data)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간과 기계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는 미래 사회에는, 인간의 모든 행동이 데이터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빅데이터에서 스마트 데이터의 중요성은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데이터'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데이터 중심의 알고리즘에 기반한 의사결정 시스템의 축약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우리는 어떻게 데이터가 창조되고 활용되었는지와 더불어 그런 데이터를 활용해 사람들의 삶, 아이디어, 사회, 군대 운영 및 경제에 이바지하기 위해 어떻게 새로운 수학 및 계산 기법들이 경쟁적으로 개발되었는지를 탐구한다고 강조한다. 데이터에는 권력이 뒤따라오는데, 가령 무엇이 참인지를 규정하는 권력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데이터 역사의 핵심에는 수학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국가, 기업 및 시민 간의 불안정한 개입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그날 아침 우리는 단지 데이터만이 아니라 데이터가 중개하는 세계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저자에 따르면 데이터의 탄생 과정에 관한 수업을 개설하자는 생각은 2015년 11월에 시작되었다. 이후 2017년 1월 처음으로 수업을 시작하고서 금세 깨달은 것은 학생들은 데이터가 지금의 상태에 이른 과정뿐만 아니라 데이터의 윤리와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분석적이고 활용 가능한 기틀을 찾는 데에도 관심이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정치'란 '투표'와 같은 좁은 의미가 아니라 '권력의 역학과 관련된'이라는 넓은 의미의 단어다. 우리의 목표는 권력, 즉 기업 권력, 국가 권력 및 시민 권력이 재조정될 때 데이터가 갖는 지속적인 역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틀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 역사적 궤적을 통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지식을 지렛대 삼아 우리는 현재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결정할 수단과 도구까지 수중에 넣을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3부 1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데이터의 탄생〉, 2부 〈진화하는 데이터〉, 3부 〈데이터, 권력이 되다〉 등이다. 1부에는 1장 「권력이 된 데이터의 경고」, 2장 「숫자로 사회를 정의하다」, 3장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답」, 4장 「개인 차이의 과학」, 5장 「무엇을 위한 데이터인가?」가 함께 묶여 있고, 2부엔 6장 「전쟁과 데이터」, 7장 「인간 지능의 원리를 찾아서」, 8장 「빅데이터의 시대」, 9장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 10장 「진화하는 데이터과학」 등이 포함돼 있다. 마지막 3부에는 11장 「데이터를 둘러싼 윤리 전쟁」, 12장 「주의력 경제의 탄생」, 13장 「해결지상주의를 넘어선 해결책」 등이 있다.

1부에서는 국정 운영을 위한 데이터를 시작으로, 사회 개선을 위한 데이터 사용을 거쳐 '수리통계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탄생과 함께 데이터가 수학의 세례를 받게 되는 과정을 살핀다. 2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암호해독을 위해 데이터를 군사적으로 적용한 데에서 시작된 디지털 연산의 탄생 과정에서부터 영국 불레츨리 파크와 미국의 벨연구소,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기업과 기술 분야에 데이터를 적용한 사례까지 추적한다. 기업 권력으로부터 국거 권력 그리고 '시민 권력'으로까지 옮겨가면서 디지털화된 개인벙보 기록이 우리가 프라이버시, 특히 1970년대에 지배적인 국가 권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이해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또 '인공지능' 분야가 탄생하고 사그라들었다 시민, 소비자 및 적국에 대한 데이터가 점점 증가하며 '기계학습'이라는 형태로 잿더미 속에서 다시 부화하게 된 과정을 살펴본다. 

마지막 3부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데이터의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재 및 미래와 연결하여 어떻게 데이터와 권력이 국가의 관심사에서 기업의 관심사로 옮겨갔는지를 논의한다. 이를 위해, 한 단일 기업이 데이터 중심으로 작동하는 기술의 도움으로 전 분야를 재빠르게 지배할 수 있게 해준 금융협정 및 기업 모형을 살펴본다. 기업 권력의 문제점을 둘러싸고 다양한 잠재적 해결책에 대한 윤리적 논란이 빚어졌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 책에서는 연구 분야에 대한 응용 윤리의 역사를 추적하여 데이터 중심의 알고리즘이 제품으로 이용되어 우리의 개인적·정치적 현실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응용 윤리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아울러 살핀다.


저자 : 크리스 위긴스

컬럼비아대학교 응용수학과 부교수. 컬럼비아칼리지에서 학사학위를,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데이터의 역사에 관한 강의를 하며 <뉴욕타임스>의 데이터과학 부분 수석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데이터과학연구소 집행위원회의 창립회원을 맡고 있으며, 2010년에는 뉴욕시의 신생 기업과 학생을 연계해주는 비영리단체인 hackNY를 공동 설립했다. 2017년부터 매튜 존스와 함께 시작한 ‘데이터: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강의가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그 강의 내용이 이 책의 토대가 되었다.


저자 : 매튜 L. 존스

컬럼비아대학교 역사학 교수이자 데이터과학 및 사이버 보안 분야의 전문가. 케임브리지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과학기술사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은 후 초기 근대 유럽의 정보기술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과학혁명 속의 좋은 삶(The Good Life in the Scientific Revolution)》(2006), 《물질에 대한 계산(Reckoning with Matter)》(2016)이 있다.


역자 : 노태복

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환경과 생명운동 관련 시민 단체에서 해외교류 업무를 하던 중 번역의 길로 들어섰다. 과학과 인문의 경계에서 즐겁게 노니는 책들 그리고 생태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책들에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 『생태학 개념어 사전』, 『생각하는 기계』, 『진화의 무지개』, 『19번째 아내』, 『우주, 진화하는 미술관』,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수학의 쓸모』,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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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음조
한병철 지음, 최지수 옮김 / 디플롯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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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생각의 음조』는 우리나라보다 유럽에서 더 주목받는 철학자 현병철의 강연을 번역 출판했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생소한 분이다. 그러나 유럽에서 강연과 책을 쓰는 가장 많이 읽히는 철학자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고 한다. 책의 번역자 최지수는 저자 현병철에 대해 '첨예한 시선과 독창적 사유, 문학적 문체가 돋보이는' 철학자라고 소개한다. 현병철의 책은 세계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독일과 한국은 물론,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책의 말미에 〈옮긴이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다. 역자는 왜 세계는 한병철에게 열광하는가를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역자는 또 ‘진단과 명명의 철학자’ 한병철의 사유는 무엇으로부터 발화되는가. 그의 시선은 지금, 무엇을 직시하고 있는가? 등 많은 질문이 담겨 있고,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사유의 여정을 이 강연 번역서에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생각의 음조』는 한병철의 가장 고유한 목소리를 담아낸 유일한 책이라고도 역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한병철의 사유의 유래와 음조와 지향, 그리고 그가 펴낸 숱한 책들을 관통하는 사유의 궤적까지 담아냈다고 밝힌다. 피로사회와 불안사회 너머 희망의 정신을 향해, 지금 세계가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 한병철의 목소리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처럼 흐른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과 스페인어권 최대 규모의 출판사 〈플라네타〉는 2024년부터 2026년까지 강연과 클래식 연주를 함께 진행한 후 텍스트, 사진, 영상을 책의 형태로 펴내는 특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 책은 ‘한병철 콘퍼런스 트릴로지’의 첫 책으로, 한병철의 가장 내밀한 고백과 사유의 정수를 담고 있다. 디플롯이 펴내는 한국어판은 한병철이 직접 집필한 독일어 원고를 저본으로 삼아 우리말로 옮긴 뒤, 다시 스페인어 출간본과 비교하며 문장 하나하나를 다듬었다고 한다. 이는 ‘한병철의 목소리’를 가장 온전하게 담아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역자는 설명을 덧댄다.

철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의 저서를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독자는 철학을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접해본 적도 별로 없다. 학교 졸업 후 철학 서적을 읽은 경험은 이번 코로나 팬데믹 때부터다. 재택 근무를 하는 동안 남아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이것저것 읽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독자는 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 기껏 읽어봐야 베스트셀러, 특히 소설 작품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독자에게는 책을 다시 손에 잡는 좋은 습관을 가져다 주었다. 읽다보니 베스트셀러에 나오는 것들이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읽기에 좋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소설, 특히 판타지와 스릴러 소설 등이 대부분이었고, 정신 의학, 철학, 예술 분야의 책들이 많이 나왔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베스트 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이들 책들은 대부분 위안과 철학적 사유를 담은 책들이었다. 이 책 『생각의 음조』는 독자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쉽지 않다. 독자의 개인적 무지에서 비롯되겠지만 문장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강연 내용을 번역하다 보니 우리 작가가 쓴 글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미 독자들은 아는 사실이니 굳이 변명거리는 되지 않다. 철학적 사유나 철학과 다른 분야와의 접목으로 깊이를 더하는 책은 전문가들에게는 쉽게 통하겠지만 문외한인 독자가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조금 읽다 말 책이지만 이젠 조금 더 어른스럽게 생각해야겠다는 다짐 후 읽은 책이니만큼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라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이고 읽어볼 욕심이 생긴다. 처음 읽을 때보다 두 번째는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같고, 공감되는 부분도 더 많아진다. 더욱이 저자는 고려대 금속공학과를 다니다 독일로 유학을 간 철학자라니 더 관심이 갔다. 

음악과 철학의 하모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철학과 음악의 상호 동화 작용이라고 봐야 하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철학 자체도 어렵고 힘든 독자에게 이 책은 철학의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는 느낌을 받게 돼 어려움이 많이 가셨다. 또 이해 가능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믿고 용기를 내니 한결 진의에 수월하게 다가설 수 있게 해준 책이다.

표제어 '생각의 음조'는 2023년 4월 23일,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샤론 프루샨스키가 한병철의 강연에 맞춰 바흐와 슈만의 곡을 연주했다고 〈기획자의 말〉이란 〈서문〉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이날 저자 한병철은 '생각의 음조'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자신의 사유에서 음악이 갖는 의미를 이야기했다고 책의 기획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현병철에게 음악은 단순히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는 동시에, 그 안에 깊이 깃들어 있는 존재잉. 이 음악적 고백은 그의 철학을 관통하는 음조와 주제로, 즉 대지의 고양, 형이상학적 갈망, 진정한 생물학으로서의 신학으로 발화된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프랑스 모음곡〉과 슈만의 〈어린이 정경〉 등 항상 그가 함께하는 음악을 경유하며 한병철 사유의 음조가 드러난다. 지금까지 자신이 펴낸 책들은 반복이 아니라 변주곡, 즉 위대한 개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음표라고 말한다. 이 때의 강연 제목이 그대로 이 책의 표제어가 됐다고 기획자는 알린다.

이에 앞서 같은해 4월 11일, 포르투에서 저자는 '에로스'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 강연에서 한병철은 신체적, 인격적 접촉이 점점 사라져 타자가 소멸된 사회를 이야기하며 사랑의 의미를 물었다. 오늘날 우리가 실제 만지고 접촉하는 거의 모든 것은, 심지어 치과에서 통증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것은 스마트폰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이틀 후 포르투갈 가톨릭대학교 인문과학대학 50주년 기념 강연에서 한병철은 '희망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그에 따르면 희망은 "우리를 우울과 지친 미래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도약이자 열정"이며, 이 미덕의 초월성에 대해 성찰한다. 흐망은 '영혼의 차원'이 되어, 즉 마음과 정신의 이정표가 되어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준다고 기획자는 전한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생각의 음조〉, 2부 〈에로스의 종말〉, 3부 〈희망의 정신〉 등이다. 1부에서 저자는 피아노와의 인연을 소개한다. 역자 최지수에 따르면 한병철이 두 대의 그랜드피아노를 즐겨 연주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한병철의 피아노와의 인연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그것을 날개 삼아 사유한다는 이야기는 '그랜드피아노'와 '날개'가 독일어로 같은 단어임을 생각할 때 일견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날개'는 동시에 검은 광 나는 기도용 염주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를 날아오르게도, 수련하게도 만드는 모순은 그의 생각의 음조를 이룬다. 그는 자신의 저작들을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에 빗대기도 하고, 〈사라방드〉, 〈시니의 사랑〉 등 다양한 곡과 연결 짓기도 하며 풀어낸다. 음악이라는 은유를 통해 그가 사유하는 방식을 설명할 때 우리는 그 어떤 백 마디 말보다 더 빠르게, 더 직관적으로 한병철의 '생각의 음조'를 이해할 수 있다. 

저자 한병철은 음악을 매개로 자신의 사유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두운 빛, 어두운 영롱함, 밝은 슬픔’과 같은 역설이 생각의 음조를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진실은 이러한 ‘모순적 아름다움’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의 책들이 너무 많이 반복한다고 불평하지만, 그는 자신의 책들이 반복이 아니라 변주곡에 가깝다고 말한다. 마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처럼, 멜로디는 변하지 않으면서 숱한 변주를 통해 멜로디는 명징해지고 밀도가 높아지며 아름다움이 깊어지는 것처럼. 한병철은 프리드리히 횔덜린, 베르톨트 브레히트, 롤랑 바르트, 로자 룩셈부르크, 페터 한트케, 가브리엘 단눈치오 등의 텍스트를 경유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사유의 음조와 글쓰기의 이상을 풀어낸다.

2부에서는 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꽃에 둘러싸인 저자의 안락한 방, 그리고 먼 타국에서 만난 플로레스 호텔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에서 과연 얼마만큼이나 '꽃향기'를 찾아 맡으며 살고 있는지 돌이켜보게 한다. 계속되는 강연에서, 접촉 없는 사회에 대한 그의 경종은 삭막한 '타자의 결핍'에 대한 더 깊은 성찰로 우리를 이끈다. 타자 없이 '자기참조'에 갇힌 자기애적 성과 주체인 우리는 외로운 성공 우울증에 빠지곤 한다. 반면에 그가 말하는 '에로스'는 타자를 고유의 타자성 안에서 경험하게 하며 자기애적 지옥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우리는 타자를 내 눈 안의 거울을 통해서가 아닌,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에로스'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꽃과 연관된 감각과 열정은 진정한 사랑, 진정한 자유, 진정한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한다.

3부는 앞서 언급한 피아노와 꽃을 다시 거론하며 축제와 희망의 개념으로까지 나아간다. 축제 없는 현대 사회, 노예이자 가축이 되어버린 신성이 부재한 지옥에서 우리는 '고양된 시간'과 '초월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축제 없는 시간은 곧 희망 없는 시간으로, 그러한 시간은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기존의 것, 뒤의 것만을 향해 있다. 한병철이 말하는 '희망의 정신'은 무언가를 단순히 바라는 차원을 넘어, 바츨라프 하벨의 말처럼, '저 너머'의 궁극적인 새로움을 '그럼에도 불구하고'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하이데거의 불안의 현상학과 함께 설명한다. 2부와 3부는 지금껏 한병철이 펼쳐왔던 사유의 정수를 다시 한번 변주하되 마침내 그가 도달한 희망의 정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피로사회』 『투명사회』 『에로스의 종말』 『타자의 추방』 『고통 없는 사회』 『정보의 지배』 『관조하는 삶』 『서사의 위기』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 등 핵심 저작들을 비롯해 가장 최근에 출간한 『불안사회』(원서 제목은 『희망의 정신(Der Geist der Hoffnung)』)까지 아우르며 평생 천착해왔던 사유의 궤적을, 그리고 바로 지금 그를 사로잡고 있는 ‘희망의 정신’을 고도의 우아한 언어로 이야기한다.

이 책의 즐거움은 무엇보다, 예컨대 하이데거의 철학 이야기뿐만 아니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피아노를, 바흐의 〈샤콘느〉로 바이올린을,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으로 독일어를 처음 배웠다는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는 점이라고 역자 최지수는 강조한다. 그동안 조각조각 접해온 음악과 꽃에 대한 한병철의 사랑, 그리고 그의 철학이 변주곡처럼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듯하다. 역자는 이 책을 통해 한병철의 철학적 사유를 이해하는 것에 더해, 언어와 생각, 세상을 향해 가지고 있는 그만의 음조, 그리고 그의 아리아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인다.

“짐승은 주인에게서 채찍을 빼앗아서 자기가 주인이 되기 위해 다시 자기 자신을 채찍질한다”고 카프카는 썼다고 한병철은 인용한다. “우리는 각자 고유해지고 싶어 하는 복제인간”으로, “가축의 떼” “절대적 노예”로 전락한다. 신자유주의적 성과사회는 끊임없는 자기 착취를 요구한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스스로를 최적화하며 ‘나’의 자유의지로 자신을 착취한다. 성과사회는 필연적으로 불안사회로 이어진다. 우울이 감염병처럼 창궐하고 불안과 혐오가 곳곳에서 촉발한다. 불안은 권력과 체제의 도구로 사용되며 희망의 씨앗을 질식시킨다. 저자 한병철은 바로 이 지점, “역사적 기로에서” 희망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리고 희망의 정신을 건져 올린다.

비평가들은 비관주의자라고 비난하지만, 한병철은 자신을 희망의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희망하는 사람만이 사유할 수 있다. 희망의 사람은 낙관주의자들과는 달리 세상의 비극과 삶의 부정적 측면, 그리고 예측 불가능성을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구조에 의문을 제기하고 완전히 다른 삶의 형태를 열망하며 행동으로 옮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긍정성 숭배는 사회를 탈연대화하지만, 희망은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화해와 연대로 이끈다. 긍정성의 주체는 ‘나’이지만 희망의 주체는 ‘우리’다.

“희망한다는 것은 ‘희망을 확장’하고 ‘희망의 불꽃을 퍼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희망은 혁명의 누룩, 새로운 것의 발효제, 즉 비타 노바(vita nova)의 시작점입니다. 불안의 혁명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불안은 모두를 복종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불안한 사람은 지배자에게 복종합니다. 다른 세상,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것만으로도 혁명의 잠재력이 자라납니다. 오늘날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은 희망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불안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며, 살아남기의 삶으로 축소되었기 때문입니다.”(p.169).


저자 : 한병철(Han Byung-Chul)


195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가 브라이스가우의 프라이부르크대학교와 뮌헨대학교에서 철학, 독일 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다. 베를린예술대학교 철학·문화학 교수를 지냈다.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그의 대표작 『피로사회』는 2012년 한국에도 소개되어 주요 언론 매체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한국 사회를 꿰뚫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으며, 이후 『투명사회』, 『에로스의 종말』, 『서사의 위기』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저자는 최신작 『불안사회』에서 불안이 잠식한 사회에서 끊어져 버린 연대와 만연한 혐오에 경종을 울린다. 짙은 불확실성과 깊은 무기력에 빠진 현대인의 삶에 필요한 것은 ‘희망의 정신’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희망에 관한 그간의 무지한 착각에서 벗어나 위기를 극복하고, 비로소 생기로운 삶을 되찾을 것이다.


역자 : 최지수


영어 및 독일어 번역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국제회의통역전공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통역사로 일하며 경제, 법, 제약,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문서를 번역했다. 현재 출판번역 에이전시 글로하나에서 영미서와 독일서 번역 및 리뷰에 매진하면서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통번역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역서로는 『프렌드북 유출사건』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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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스 :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제나 새터스웨이트 지음, 최유경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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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인간을 통해 보여주는, 열렬한 감정선과 서스펜스로 긴장감을 자극하는 압도적 로맨스 스릴러 소설이다. 이 소설은 로맨스 스릴러이지만 저자는 지금 우리 세상에서 보여지는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현주소 그리고 미래 인간의 모습에 투영해 소설 차원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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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 새터스웨이트 지음, 최유경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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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이 책 『신스』의 표제어 '신스'는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이란 부제를 갖고 있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대한 풀이가 부제로 채택됐다. ‘줄리아’라는 인조인간, 즉 전 세계 세 번째 '신스'다. 신스는 AI(인공지능)이 탑재된 여성 인조인간이다. 작중 인물 줄리아는 오로지 ‘조쉬’라는 남자의 니즈에 맞추어 만들어진 여자다. 줄리아는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많은 인간 여자들과 경쟁한다. 그 프로그램 안에서 사랑과 상실이라는 감정을 겪은 줄리아는 결국 그의 마음을 차지하는 데 성공하고, 그와 결혼해 완벽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행복을 꿈꾼다. 이 작품은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정교하게 현실에 대입했다는 평가로 전 세계를 주목하게 만든 제나 새터스웨이트의 데뷔작이라는 데서 작가의 상상력과 소설적 스토리를 잘 엮어낸 대가의 면모를 선보인다. 열렬한 감정선과 서스펜스로 강한 흡인력을 자아내는 이 소설은 출간 전부터 마리끌레르를 포함하여 각종 영미 문학 비평계의 호평을 받으며 2024년 최고의 기대작으로 떠올랐다고 알려져 있다.
『신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은 출간과 동시에 독자들로 하여금 '사회적인 논점과 사려 깊게 짜여진 인물들을 바탕으로 잘 쓰여진 매력적인 스릴러'임을 증명했다. 이 작품은 책을 여는 순간, 독특하고 흥미로운 AI 서스펜스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주인공을 바라보는 독자로 하여금 객관적인 시선을 갖게 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탐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재미를 뛰어넘어 완벽한 걸작이라고 평가되는 이유다. 스릴러, 공상과학, 로맨스를 결합하여 빠른 속도감으로 전개되는 서사를 온몸으로 접하게 될 독자들은 벼락같이 등장한 이 최고의 페이지 터너에 열광하게 될 것이다.
이 소설 작품이 전개되며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우리 눈에 익숙하다. 어느 날 캠핑을 하러 간 남편의 연락이 두절된다. 그리고 남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아내는 경찰에게 남편의 실종을 신고하지만, 경찰은 사소한 증거를 내세워 그녀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점찍는다. 경찰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건으로 보고, 그녀의 알리바이를 조사하기도 한다. 이 소설 전개는 기존의 범죄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유사하다. 경찰의 판단도 이상할 것 없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이 신고한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일반적 사건을 대하는 모습과 사뭇 다르다.
경찰은 그녀를 범인 취급하는 걸 넘어서 자신이 그녀를 혐오하고 있다는 걸 숨기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유는 바로 그녀가 보통의 사람이 아닌, 첨단 테크놀리지의 기술로 탄생한 인조인간(신스)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모든 것이 같은 신스는 아픔도 느끼고 슬픔과 기쁨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인 줄리아는 여기에다 더해 최초로 임신까지 가능했던 새로운 유형의 인조인간이다. 그야말로 거의 인간과 다름없게 만들어진 인조인간이다. 
더욱이 그녀와 결혼한 남자 조쉬는 그녀가 신스라는 걸 알면서도 결혼했다. 둘이서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 생생하게 리얼리티 방송 프로그램에 방송되었다. 이른바 인간과 인조인간으로 유명인 커플이다. 하지만 이들의 로맨스는 누군가에겐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딜 가든 그들을 따라오는 혐오와 비난의 시선이 그치지 않는다. 이 문제는 결국 부부의 사랑에도 영향이 미치기 시작했고 조쉬의 실종은 이런 배경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그러나 신스와 인간의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존재만으로도 받아야 하는 혐오와 차별 등은 상상을 초월한다. 줄리아가 꿈꾸고 그리던 행복한 미래는 혐오와 차별의 힘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위태로운 결혼 생활 중, 캠핑을 떠난 후 실종된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녀는 남편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다. 자신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는 경찰도, 계속해서 자신을 감시하는 이웃집 남자도, 딸을 극진히 보살펴주는 베이비시터도, 심지어 자신을 만든 개발자조차 믿을 수 없다. 줄리아의 세상은 오로지 조쉬뿐이다. 무엇보다 사건 열쇠의 중요한 포인트는 줄리아는 사람을 해칠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누명을 벗기 위해 스스로 수사에 나선 줄리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니며 숨겨져 있던 진실에 접근한다.
주인공 줄리아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라는 두 타임라인으로 정교하게 섞여 전달된다. 과거 편은 그녀의 신비로운 탄생부터 연애 프로그램 속 조쉬와의 달달한 로맨스, 그리고 그의 실종 직전까지의 긴박한 상황을 비춘다. 현재에서는 조쉬가 실종된 후, 자신을 의심하는 경찰의 눈을 피해 사라진 그날의 기억과 묻힌 진실을 파헤치는 줄리아를 묘사한다. 이처럼 이 소설은 한 사람의 서사를 두 분야로 나누어 전개하다가, 현재와 과거가 맞물리며 실종 사건의 비밀이 드러나는 클라이막스에서 한데 뭉쳐있던 카타르시스가 터질 수 있도록 짜임새를 섬세하게 구성했다. 특히,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그 ‘한 여자’가 인조인간이라는 점이다. 인간이었다면 자연스럽게 느껴질 부분들이 인조인간이기 때문에 더욱 이질적이고, 혼란을 야기하며, 흥미로워진다. 로맨스가 꽃피는 사랑스러운 순간부터 얽히다 못해 엉켜가는 비극의 결말까지 복잡하고 세밀한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들은 ‘줄리아’라는 존재에게 이입하고, 더 나아가 그 존재가 주는 딜레마에 대해 사유하게 될 것이다.
『신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의 페이지를 거듭 넘길수록 우리는 인조인간인 줄리아에게 공감하게 된다. 우리와 같이 자율적인 감정을 가지고,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칠 수 있고, 육아까지 해내는 그녀는 작품 속에서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완벽하게 설계된 여성 인조인간에게 일반적인 여성과 엄마의 삶을,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약자가 되기를 바라는 현실과 같기에 감정을 함께할 수 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약한 존재를 보면 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배척하고, 혐오한다. 차별은 투명하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의 모습으로 우리 사이에 자리한다. 우리는 그 벽을 세우기도 하고, 혹은 벽에 가두어지기도 한다. 이 소설 안에도 인간과 신스라는 존재적 차이가 느끼는 감정에 한계를 그어버리는 인물들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온전한 사랑을 느끼게 되는 줄리아를 통해, 복잡하고 잔인한 차별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또한 이 책은 사건을 밝히는 과정에서 혐오와 폭력에 희생된 여성들을 조명하고, 현시대의 차별에 대한 시의적절한 논제를 던진다. 이 소설로 하여금 성장 배경도, 신념도, 관심사도 모두 다른 줄리아들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을 오롯이 마주한다면 현존하는 차별에 맞설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우화 속 나그네의 옷을 벗게 만든 건 추운 바람이 아닌 따뜻한 햇살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연대하여 작은 사랑을 만들어 낸다면 그 햇살은 용기가 되고, 그 용기는 작은 움직임이 되어 차별의 유리에 틈을 남길 것이다.
이 소설은 인조인간과 인간의 사랑이 가능할까?란 기초적 질문에서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또 인간보다는 신스가 진정으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인가?란 질문도 덧대진다. 그리고 주제와 연결되는 인조인간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다. 이는 인간이 자신과 다른 인간을 보는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대변한다. 현재 우리 문명에 맞지 않는 저급한, 그리고 사회의 하층 계급으로 살아가도록 규정 짓는 현실의 인종 차별 의식과 맥락이 닿아 있다. 저자 제나 새터스웨이트는 우리가 사는 현재 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무거운 주제, 인종 차별과 혐오에 대한 주제에 소설이 품는 내용을 접목시킨다. 
소설에서 줄리아라는 여성 신스는 오히려 인간보다 훨씬 순수하고 돈과 명예, 신분 등 계산 속 현실의 인간보다 더 진실한 사랑을 추구한다. 이런 점에서 차별과 혐오의 밑바탕에는 열등감이나 콤플렉스가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차별하고 혐오하는 주체는 열등 의식이 깔려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이를 통해 저자는 혐오와 차별 사회의 극한적 갈등을 해소하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학적 사유를 보여준다고 독자에게는 읽힌다. 이 점은 이 책을 읽는 독자 누구에게나 느낄 수 있는 묵직한 주제이며,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고 이해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거짓말이 간절하다. 내가 그 거짓말을 믿어야만 우리 가족이 서로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마치 프러포즈의 순간처럼, 찰나의 순간이 있다. 지금 내 눈앞에 두 갈래 길이 있고, 나는 그 갈림길에 서있다. 그리고 나는 말한다. 가슴속의 모든 거친 욕망을 담아 말한다.
나는 당신을 믿는다고.(p.408)
“줄리아 월든, 당신은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만들어 줘요.” 그는 눈물을 참으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뜬다. “나와 결혼해 줄래요?”
TV에는 지금쯤 달달한 배경음이 깔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승리의 오케스트라 음악이 우리 주위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것 같다.(p.337)

내가 잃게 될 기억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시간조차 없이 머리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온다. 두개골이 불타오르는 듯하다. 비명이 침묵을 찢으며 혀끝에서 터져 나온다. 내 마지막 생각은, 이 비명을 이웃들이 들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게 까맣게 변했다.(p.523)

저자 : 제나 새터스웨이트(Jenna Satterthwaite)

미국 중서부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성장하고 프랑스에서 잠시 살았던 제나 새터스웨이트는 현재 시카고에서 남편과 세 자녀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작가다. 스페인의 사라고사 전문 음악원에서 클래식 기타를 전공한 그녀는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프랑스어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일반 사무직으로 근무하며 향긋한 커피와 함께 수많은 이메일을 작성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한때 부업으로 포크 밴드 '쏜필드(Thornfield)'에서 싱어송라이터로 활약한 적도 있다. 겨울이면 벽난로 앞에서 아늑하게 노트북을 펼쳐놓고 열정적으로 소설을 집필하고, 여름이면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햇볕에 살짝 그을리는 여유를 가지고, 소설은 어떻게 쓰는 건지 고민하며 생각에 잠기는 것이 일상의 낙이다. 초밥을 사랑하고, 자신만의 안식처인 침대에서 책 읽기를 즐기며, 여성들이 자신의 힘을 되찾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신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은 그녀의 데뷔작이다. 

역자 : 최유경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군중심리》, 《싯다르타》, 《마리메꼬: In Patterns Marimekko》, 《뉴욕 최고의 퍼스널 쇼퍼가 알려주는 패션 테라피》, 《아이의 영재성을 키우는 부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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