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되는 한국의 산나물 50
이상각 지음 / 아마존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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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산나물은 나물 요리 또는 재료 자체를 일컫는 말이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식생활의 가장 중요한 찬거리의 하나이기도 했다. 이는 산지가 많은 한반도의 특수성이 반영된 삶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산나물 재료는 비교적 구하기 쉽고 조리하기도 간편해 매우 다양하게 먹어 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산나물을 캐서 먹는 일은 극히 드물다. 식재료가 천지인 도시 생활자들은 일부러 산에 가서 채취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가끔 시장에 나오는 산나물은 의외로 비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산나물이 약재로 쓰인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자칫 독성이 있는 산나물은 먹으면 탈이 날 수도 있지만 산나물을 캐는 사람들은 가려서 채취하기 때문에 약으로 쓰일 재료는 잘 식별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산에서 나오는 각종 식물들은 고대로부터 약용으로 쓰인 것들이 많다. 서양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도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데는 산에서 자생하는 나물이나 약초 등을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히포크라테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우리가 앓는 질병의 약은 모두 먹는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 『약이 되는 한국의 산나물 50』은 우리가 고통을 겪는 각종 성인병 치료나 정신적 건강까지 지켜주는 산나물 50가지를 가려 뽑아 효능과 요리법, 특별한 질병에 대한 좋은 특효약이 되는 산나물을 주로 실었다. 저자 이상각은 고려대학교에서 농학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The University of Georgia)에서 연구생활을 했다. 30여 년에 걸쳐 약용식물과 약초를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 산나물에 관한 약리 효능을 감안해 현대인들에게 많이 생기는 질병을 치료하는 산나물을 위주로 선별해 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저자에 따르면 산나물은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자연식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을 지켜주는 민족의 혼이 담긴 전통음식이다. 산나물은 오늘날 불균형한 식단에서 오는 부족한 영양소(비타민, 미네랄)를 공급하여 다양한 질병들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약이 되는 음식이다. 산나물은 온갖 항산화물질과 비타민과 미네랄 등 몸에 좋은 영양분이 듬뿍 들어 있다. 또한 산나물은 피를 맑게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혈액을 정화하고 산성체질을 개선하여 알카리성으로 만들어 주며 체내에 쌓인 노폐물의 배설을 촉진하여 여러 가지 질병의 증상을 개선하고 해소시켜 준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산나물의 섭취가 현대인들에게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이 책의 집필 취지를 밝히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식단을 건강식과 기능식에 맞추고 있고, 우리는 음식도 찾아가고 골라가며 선택해서 먹을 수 있는 시대다. 이제는 맛있게, 조금은 색다르게, 그려면서도 건강식과 기능성(약성)까지 갖춘 산나물을 소개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제 장수와 행복한 삶의 핵심인 '건강'을 위해 산나물이 포함된 토종밥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자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면서 봄이 되면 산과 들에서 직접 산나물을 찾는 사람이 놀랍게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또 도시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는 다양한 종류의 산나물이 등장하고 있다고 전한다. 저자는 건강을 생각할 때 도시환경은 스트레스를 증가시키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저하시키는 곳으로 현실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 살 수는 없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살다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자연에서 살아온 산나물은 우리가 자연에 머무는 동안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약초가 되었다. 자연은 늘 우리 마음속에 있다." 먼저 저자는 산나물을 언제 어떻게 먹는가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시작한다. 저자에 따르면 봄이 되면 새롭게 싹이 트는 잎과 꽃은 자연의 색깔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봄을 맞는 식물, 건강을 주는 식물, 즉 산나물을 기다리게 된다. 봄의 산나물은 향기롭고, 맛깔나고, 부드럽다. 봄이 지나면 식물은 생존을 위한 방어수다능로 억세(단단해)지고, 쓰(쓴)게 되고, 독성을 가지게 된다. 쓰고 독성이 강한 성분이 약성을 가진 물질이다. 대부분 식물들은 가을이 되면 뿌리에 양분을 저장하고, 봄이 되면 잎을 키우고, 튼튼한 꽃대를 만들어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 양분을 이용한다. 이와 같이 식물의 생활사에서 꽃이 피기 전까지가 나물채취에 가장 적합한 시기이다. 물론 식물 종류에 따라 꽃이 핀 후에도 나물로 이용하는 식물도 있다.

또한 산나물이 나는 곳은 낮은 산에서 높은 산까지 분포하며,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산나물의 성분은 맛과 효능을 결정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산나물요리는 전문가나 초보자 간에 재미있고 독창적인(특별한)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안내한다. 산나물의 향과 맛은 요리과정과 방법에 따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초보자일 경우 전문가나 책의 조언을 받기를 권유한다.


재료는 인공적인 환경에서 생장된 재배나물은 야생에서 자란 산나물보다는 비타민과 미네랄 함량이 부족하다고 주의를 준다. 야생에서 자란 산나물은 재배채소에는 없는 특수한 비타민, 미네랄, 무기성분, 향이 농축되어 있어 성분과 약성에서 월등한 차이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작은 차이가 우리의 모든 만성질환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가 있어 산나물을 꼭 먹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 셈이라고 밝힌다. 산나물은 재배채소보다 야생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강한 향과 특정한 물질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귀띔한다. 이 강한 향과 특정한 물질이 현대인의 질병과 희귀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약이 되는 셈이라고 설명해준다. 산나물이 질병 발생의 원인이 되는 부족한 영향의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약용음식인 이유이다. 이처럼 산나물이 건강에 놀랄 만한 효과와 효능을 주기 때문에 늘 먹어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렇다고 산나물을 먹는 방법에 특별한 요리법을 배울 필요도 없다. 

일반적으로 산나물은 향과 질가의 두 그룹으로 분리해서 생각하면 된다는 것. 요리하는 양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 뿐이다. 산나물 맛은 부드럽고, 쓰고, 달고, 시큼하고, 맵고 또한 자극적이다. 부드럽거나 향이 있는 산나물은 강한 양념을 안 쓰는 것이 좋다고 한다. 향이 없는 산나물은 강한 양념을 첨가해도 좋다. 또한 산나물 샐러드는 토마토, 견과류 등을 첨가하여 기능성을 향상시키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산마늘, 두메부추, 는쟁이냉이 등과 같이 매운 자극적인 맛을 내는 산나물은 당근, 과일을 넣어 매운맛을 잡아주는 방법도 제시한다. 우리가 평상시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음식물을 섭취해야 한다. 특히 음식물로 인한 질병을 예방하려면 비타민이 많고 항산화물질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 산나물의 섭취가 각종 생활습관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생활습관병은 식습관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날 가장 무서운 병인 암 발생의 원인은 칼로리의 과잉, 지방과 단백질의 과다섭취, 스트레스 등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산나물 요리법〉을 제외하면 50가지 산나물을 두 개의 장(章)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2장 〈야생의 약이 되는 산나물〉과 3장 〈야생의 약이 되는 나무나물〉이다. 책에 따르면 암에 좋은 산나물은 개미취, 산머위이고 중풍에 좋은 산나물은 어수리, 개두릅이다. 당뇨에 좋은 산나물은 둥굴레, 산뽕나무이고 고혈압에 좋은 산나물은 잔대, 엉겅퀴이다. 치매에 좋은 산나물은 곰취, 참취이다. 무엇을 먹느냐가 내 몸의 건강을 만든다. 약이 되는 산나물을 먹으면 질병 발생을 예방할 수 있고 건강수명을 연장시킬 수가 있다. 이 책은 산나물의 효능과 약성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건강은 먹는 산나물의 효능과 약성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산나물의 좋은 약성이 곧 질병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효능이다. 건강한 삶과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은 음식이 만들어 준다. 우리 주위에는 생명과 건강을 주는 자연, 그리고 그 속에는 식물인 산나물이 자라고 있다. 

저자는 약이 되는 대표적인 한국의 산나물 50종을 선택하여 그 효능과 섭취법을 책으로 펴냈다. 『약이 되는 한국의 산나물 50』을 통해 독자들이 자연의 고마움과 질병의 고통을 극복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산나물 중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곰취」와 나물나물 중 「두릅」을 여기에 소개한다. 먼저 「곰취」는 '곰달래, 왕곰취, 말곰취, 큰곰취라는 ① 별명을 갖고 있다. 아마 지역적으로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방에서는 ② 생약명으로 뿌리가 갈대처럼 굵고 칠처럼 생겼다 하여 호로칠이라고 한다. ③ 식물생태 및 나물특성에 대해 기술한다. 「곰취」는 깊고 높은 산속 큰나무가 듬성듬성 있으며 반그늘이고 촉촉한 땅에 드물게 난다. 습한 곳이나 습지에서 주로 자라지만 표고, 고도에 따라 자라는 환경이 다르게 나타난다. 표고가 높은 곳에서는 햇빛이 잘 드는 양지에 잘 자라고, 낮은 곳에서는 낙엽수림 아랫부분의 동북사면에 주로 자란다. 비옥한 사질양토에 잘 자라고 내한성, 내음성도 크나 내서성은 약하다. 7~9월에 줄기 윗부분에 노란색 꽃이 핀다. 곰취는 깊은 산속에 살고 있는 곰이 좋아하는 나물이라는 뜻으로 긴 겨울잠을 자고 난 곰이 영양보충을 위해 제일 먼저 먹는 산나물이라 한다. 쌉싸름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입맛을 도게 하여 산나물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또한 잎의 모양이 넓적하게 생겨 마치 곰 발바닥을 닮아 곰취라고 불리어지는 산나물이다.


잎에 알카로이드, 아스코르빈산이 있다. 항상화작용을 하는 비타민C와 베타카로틴이 들어 있다. 특히 어린잎에 비타민C가 풍부하다. 민간에서는 황달, 고혈압, 관절염, 간염 등에 쓴다. 효능은 혈액순환장애, 간질환, 폐를 든든히 하고 가래를 삭히므로 기침, 천식 및 감기에 이용한다고 ④ 효능을 적고 있다. ⑤ 채취 및 요리법으로는 3~6월에 새로 올라온 어린잎을 나물로 먹는다. 곰취는 약간 쌉쌀한 뒷맛과 함께 향긋한 향이 풍긴다. 된장에 쌈을 싸 먹으면 질근질근 씹히는 맛과 입안에서 그윽하게 퍼지는 깊고 순한 향이 일품이라고 기술하고 있다.(p.29~31)

흔히 우리가 두릅이라고 알고 있는 나무나물로서, 이 책에는 「두릅나문순」으로 표기돼 있다. ① 별명으로는 참두릅, 드릅나무, 나무드릅, 참드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② 생약명은 나무에 머리처럼 달린 나물이라 하여 목두채, 새순이 모여 달리는 나무라 하여 총목이라고 한다. ③ 산속 양지바른 숲가나 산기슭, 골짜기에 작은 군락을 이루며 자란다. 수직적으로는 표고 100~1,000m, 수평적으로는 전국에 분포한다. 낙엽관목으로서 높이 3~4m이고 산에서 자란다. 나무껒질은 회갈색이다. 원줄기는 가지가 많이 갈라지지 않고 가지나 잎자루에 거센 가시가 있다. 잎은 어긋난 겹잎을 가지고 있다. 개화기는 7~8월로 가지 끝에 자잘한 흰색 꽃이 모여 핀다.

두릅은 두릅나무의 어린순을 말한다. 향기와 촉감이 뛰어나 산나물의 왕이라고 부른다. 봄의 두릅은 금나물이라고 말할 정도로 귀한 나무나물이다. 봄부터 초여름에 가지 끝에 난 새순을 따서 식용하는데, 가지 한 개당 새순은 몇 개밖에 나지 않는다. 새순을 모두 채취해 버리면 그 포기는 시들어 버리므로 맨 끝에 있는 첫 번째 새순만 따고 두 번째, 세 번째 새순은 남긴다. ④ 두릅은 단백질, 칼슘, 비타민C가 푸웁하다. 해열, 강장, 건위, 이뇨, 진통, 거담 등의 효능이 있고, 특히 위의 기능을 왕성하게 하여 위경련, 위궤양에 효과가 있다.(p.207~209)


저자 : 이상각


충북 음성출신으로 고려대학교에서 농학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죠지아대학교(The University of Georgia)에서 연구생활을 하였다. 30여 년에 걸쳐 약용식물과 약초를 연구하였고 또한 약용식물과 약초의 생태학적 분류와 전국의 자생지를 탐사하였다. 고려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였고 월드용문수목원장을 지냈다. 현재는 사단법인 야생자원식물소재연구회 자문위원장과 국립한경대학교에서 한방약초와 약용식물을 강의하고 있다. 2015년에 시리즈 I의 『한국의 특수야생자원식물』을 출간하고, 2021년에 시리즈 II의 『치매를 치유하고 뇌를 살리는 약용식물보감』에 이어 2023년에 다시 시리즈 III의 『암, 중풍, 당뇨, 고혈압에 좋은 한국의 약용식물과 약초차』를 출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특수야생자원식물』, 『한국과 세계의 자원식물명』, 『약이 되는 한국의 산나물』, 『식물원·수목원 조성과 관리』, 『치매를 치유하고 뇌를 살리는 약용식물보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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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 나라다운 나라를 어떻게 만들까
백낙청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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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주주의는 이제 진영의 승패 논리를 넘어서, 복합적인 시대적 과제를 진지하게 끌어안는 ‘변혁적 중도’의 자세와 상상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분단체제를 넘어 신자유주의 질서가 야기한 불평등과 배제에 맞서는 장기적 체제 전환의 구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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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 나라다운 나라를 어떻게 만들까
백낙청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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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의 표제어 가운데 '변혁'이란 단어는 핵심어이자 주제어에 해당되기에 그 뜻을 명확히 알아두어야 한다. 국어사전은 변혁(變革)을 '급격하게 바꾸어 아주 달라지게 함'이라는 명사형으로 풀이하고 있다. 유의어로는 '개혁'과 '혁명'을 꼽고 있다. '개혁(改革)'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침'으로 의미를 사전은 기술한다. 이에 비해 '혁명(革命)'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이라고 첫 번째 뜻으로 풀이한다. 이들 단어는 '개선(改善)', 즉 '잘못된 것이나 부족한 것, 나쁜 것 따위를 고쳐 더 좋게 만듦'이라는 뜻과도 비슷하게 사용된다. 이들 단어에 거의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혁(革)'은 가죽을 뜻하는 한자어다. 나쁜 무엇을 좋게 바꾼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고 한다. 개혁이든, 변혁이든, 혁명이든 기존의 것을 바꿀 때는 "사람의 가죽을 벗겨 완전히 모습을 좋게 고친다"는 의미로 아픔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이 책에서 '변혁'이란 단어도 '개혁'이나 '혁명' 등과 거의 같은 뜻을 의미하는 듯하다. 왜 더 많이 알려진 개혁과 혁명 대신 변혁을 사용했을까? 저자 백낙청은 우리 현대사에서 줄곧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주의 체제 확립에 헌신해 왔고, 문학지와 시사정론지에 글로써 투신했다. '변혁적 중도'란 말은 그가 만들어낸 문구인가? 그렇다면 변혁적 중도란 말은 어떤 개념일까? 독자로서는 정확한 뜻은 알지 못한 채 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몇 장 넘기지 않아 나름대로의 개념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변혁적 중도'란 말의 사용 시초와 개념을 정리하고 있다. "4·19가 이승만 독재에 대한 저항일 뿐 아니라 이승만정권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었다는 점은,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먼저 있었기에 한국의 민주화가 가능해졌다는 주류 담론에서 흔히 간과하는 사실이다. 또한 한국 민주주의와 '변혁적 중도주의'가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와 그의 '다시개벽' 사상을 계승한 강증산, 박종빈 등 종교지도자들, 3·1운동 이후 도산 안창호, 몽양 여운형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사상과 실천에 이미 그 뿌리가 있었다는 사실도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다른 한편, 한국과 한반도에 대한 서사의 세계사적 맥락에 관해서는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라는 틀로 이해하려고 시도해왔는데, 이 책 자체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변혁적 중도'의 스토리텔링에는 그 서사도 포함되어 있음을 밝혀둔다.(p.5)


이 책의 첫 문장은 가장 최근의 한국 정치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작년(2024) 말 윤석열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가 실패하고 그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나는 한껏 부푼 마음으로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고 선언했다." 이후 한 단락만 덧붙여 본다. "이재명정부의 출범까지는 무려 6개월이 넘게 걸렸고 그사이 국민들의 마음고생, 몸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나 또한 노년에 허풍쟁이로 낙인찍힐 위험을 자초했을 수 있는 정황이었다. 그러나 윤석열정권이라는 우리 헌정사의 '변칙적 사태'가 종국을 앞둔 상황이라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저자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정상적인 완주가 불가능한 시나리오를 스스로 써서 행동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러나 윤석열의 조기퇴진은 '변혁적 중도'의 필요조건이지 '때'의 도래를 담보하는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래도 저자는 2016년~17년 촛불대항쟁의 현장에서 시민들이 비록 '변혁적 종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낡고 익숙한 구호나 이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상과 노선에 대한 갈증을 드러냈다고 믿고 있다. 이번에 촛불과 응원봉을 들고 촛불혁명의 힘찬 재출범을 주도한 군중에게서는 그 점이 더욱 두드러졌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이들과 합세해 저자가 실제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쉽게도 한정되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래도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고 큰소리를 친 만큼 후속 노력에 나름으로 동참할 책임이 있음은 분명하다고 고백한다. 그 책임의 이행을 위해 생각한 것이 이 책의 발간이라는 말이다. 일종의 '변혁적 중도주의 독본'으로 이 책을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구성을 직접 밝힌다. 2013년체제의 관한 글은 기존에 펴냈던 책에서 주로 재수록했으며, 글들을 묶으면서 최근의 상황을 반영한 제2장을 새로 집필했다. 그밖에 윤석열 파면 이후에 진행된 두 개의 대담을 정리해 제4부로 실었고, 중간의 2~3부는 '변혁적 중도주의' 개념을 처음 제출한 제3장과 변혁적 중도와 개벽사상을 연결한 4장에서부터 최근의 칼럼들까지 '때'가 오기까지의 경위를 짚어주는 길고 짧은 발언들을 모았다.


〈서문〉에 따르면 '2013년체제' 구상을 밝힌 5장부터는 기존의 87년체제를 뛰어넘을 새로운 체재에 대한 기대와 절박감이 두드러졌던 것 같다. 이후 세월호참사 직후에 쓰인 6장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 2013년체제론 이후」와 촛불혁명 시작 이후의 일련의 글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런 절박감을 담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현실의 진행은 2017년 박근혜 퇴진 이후의 두어해를 빼고는 실패와 좌절의 시간이 성취의 기쁨보다 많았다. 어쩔 수 없이 국민들 사이에도 냉소의 분위기가 번졌으며 윤석열의 몰상식하고 무식하며 몰염치한 작태를 지켜보면서 아예 절망하고 (실은 지속이 불가능한) 현실에의 안주를 택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냉소와 절망과 손쉬운 안주를 끝내 뿌리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것이 세계가 감탄한 한국의 민주시민들이라고 저자는 감격과 감사의 말을 잊지 않는다. 다행히, 어쩌면 당연히, 그런 국민을 믿고 끈질기게 싸워온 정치가도 배출되었다고 지적한다. 덕분에 '변혁적 중도의 때'를 염원해온 저자의 지론을 '2025년체제'라는 새 표현마저 들먹이며 한껏 내세울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소회를 밝힌다.

저자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로서는 오랫동안 주장하고 지켜온 한국 민주주의체제의 견고함을 민주시민(국민) 자체의 역동적인 힘과 신념으로 지켜온 일에 안도와 자부심을 함께 느낀다는 노학자는 시민에 대한 감사의 책을 펴낸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현대사의 부침 속에서 분단과 전환을 동시에 사유해온 한국 지성의 좌표로서 끊임없이 논리와 정론을 펴온 학자로서의 보람을 느끼는 듯한 감회를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독자로서는 두 번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촛불혁명 이후 약 10년, 두번의 대통령 탄핵을 거쳐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한 2025년 지금, 한국 사회는 새로운 가능성과 중대한 기로 앞에 서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특히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중도’와 ‘통합’을 국가운영의 중심 키워드로 내세운 가운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논의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금의 정치적 격변기를 위기가 아닌 전환의 기회로 삼아 통합과 개혁을 아우르는 새로운 체제, 즉 ‘2025년체제’의 구체적 방향을 모색한다.


저자는 우선 ‘변혁적 중도’라는 개념을 통해 오랫동안 모호하게 소비되어온 ‘중도’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중도란 단지 좌우 사이의 회색지대가 아니라, 기득권 체제의 반동과 기존 이념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실천적 전략이자 현실적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굴곡진 여정을 온몸으로 겪으며 이론과 실천을 함께 고민해온 저자는 ‘빛의 혁명’에서 다시 확인된 시민의 역량이야말로 새로운 체제를 수립할 가장 강력한 동력임을 역설한다. 어제의 혼란을 걷어낸 응원봉들이 앞으로 어떤 사상적 기초 위에서 민주주의 역사를 발전시켜나갈지, 이 책은 그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자 시민과 함께 써 내려가는 체제 전환의 설계도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2021년 윤석열정권 수립부터 2025년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의 정치적 격변을 생생히 담아낸다. 특히 윤석열정권을 일종의 ‘변칙적 사태’로 규정하고, 87년체제가 사실상 수명을 다한 이후 촛불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체제가 아직 성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시적이지만 심각한 일탈이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내란 정국이라는 엽기적 종말로 귀결된 이 사태 속에서도 한국 민주주의의 진화는 멈추지 않았음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12·3 항쟁 당시 주력세력이 된 젊은 세대, K팝 응원봉을 든 새로운 시위 문화의 등장, 그리고 ‘남태령대첩’에서 확인된 세대 간·계층 간 단절의 극복은 그 변화의 조짐을 선명히 보여준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K팝, K문학, K민주주의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촛불혁명의 놀라운 진전을 마주하며, 저자는 개인들의 각성을 하나로 묶어내는 실천적 사상으로서 ‘변혁적 중도’를 제시한다.

에에 따르면 ‘변혁적 중도’는 단순히 좌우 사이의 중간 입장을 취하는 절충적 노선이 아니다.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만들어온 정치·사회적 구조를 넘어서는 동시에, 신자유주의가 심화시킨 불평등과 경쟁 중심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려는 장기적 체제 전환의 전략이다. 이는 진보와 보수 등 다양한 흐름과 입장 간의 전략적 연대를 바탕으로 기존 이념의 한계를 뛰어넘고 대립과 반목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의 새로운 구조를 상상하는 정치적 기획이기도 하다. 특히 단기적인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보다는 분단의 극복과 민주주의의 질적 도약, 사회경제적 대안을 아우르는 장기적 비전과 실천을 동시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무엇보다 저자는 “비록 시민들이 ‘변혁적 중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낡고 익숙한 구호나 이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상과 노선에 대한 갈증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말하며, 변혁적 중도는 이미 촛불 이후 시민들이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실천해온 흐름과도 깊이 맞닿아 있는 노선임을 설명한다.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평화혁명을 통해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정부는 내란 정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국민통합과 사회통합을 달성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 앞에 서 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단순히 원래의 체제로 복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87년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국가 운영의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가장 최신의 글인 제2장 「‘국민주권정부’와 중도정치」에서 무엇보다 “이재명정부가 그간의 비방자·반대자를 무색게 할 정도로 잘해내는 것”(p.31)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잘한다’는 것은 단순한 행정 능력을 넘어서 국가의 체질을 바꾸고 시민의 역량을 제도화하는 정치적 전환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영의 승패 논리를 넘어서, 복합적인 시대적 과제를 진지하게 끌어안는 ‘변혁적 중도’의 자세와 상상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역설한다.

저자에 따르면 ‘변혁적 중도’는 특정 정권을 위한 일시적 전략이 아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고민하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시민 중심의 실천적 언어이자 이론적 자산이며 분단체제를 넘어 신자유주의 질서가 야기한 불평등과 배제에 맞서는 장기적 체제 전환의 구상이다. 더이상 좌와 우, 진보와 보수라는 낡은 이념 구도로는 한국 사회가 겪는 균열을 봉합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변혁적 중도’는 새로운 연대의 기반이자 사유의 출발점으로 기능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상의 사회적 실천을 가능하게 할 구체적인 장치와 제도를 함께 상상하고 설계하는 일이다. 시민의 참여 역량, 세대 간 연대, 정치 바깥에서 축적되어온 사회적 실천들을 제도적 힘으로 피어나게 만들 정치적 상상력이 요청되는 지금, ‘변혁적 중도’는 단지 관념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실천의 노선으로 우리 앞에 있다. 2025년체제를 향한 여정에서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사상적 기초로서 ‘변혁적 중도’는 여전히 유효하며, 이제 더욱 절실하다.

‘변혁적 중도’의 핵심에는 언제나 시민의 역량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중이 자리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이러한 시민적 역량을 단순한 정치 수사로 소비하지 않고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위치시키고 그 의미를 새롭게 밝혀낸다는 점에 있다. 저자는 4?19혁명은 물론, 그보다 더 먼 동학사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우리 근현대사에서 이어진 평화적 항쟁의 계보를 새롭게 구성하고자 한다. 촛불혁명 그리고 ‘빛의 혁명’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전환을 이끌어온 민중의 저력과 그 진화를 사상적으로 복원해내는 것이다. 이 작업은 현대사의 곡절마다 오랜 시간 이론과 실천을 함께 고민해온 저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며 그 깊이와 폭에서 독보적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촛불 이후 시민의식의 변화와 참여 역량을 바탕으로 분단 극복과 사회적 불평등 해소, 기후위기 대응 등 복합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의 철학과 실천 가능성을 다각도로 모색한다. 전환의 열쇠는 여전히 연대하는 시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 이 책은 그 곁에서 퇴행하지 않는 민주주의, 반복되는 정치적 과오를 끊어낼 사상적 기반을 제안함으로써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다음 100년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성찰과 실천의 방향을 동시에 가리키는 사유의 이정표로 오래 남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는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되 중도 내지 중용을 놓지 말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특히 단기적 과제에 매몰되거나 장기적 차원의 원론 제시에 머물지 말고 실효적인 최선의 해법을 찾는 데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또, 무엇이 최선이며 얼마나 실효적인지가 아직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중·단기적으로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면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일단 하고 보되 그것이 참된 ‘중도’에 해당하는지, 가장 바람직한 궁극적 해법으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물음을 멈추지 말자는 것이다.(p.186)


이재명 후보는 사상과 이념보다 실용을 중시하는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 그것이 내가 오랫동안 변혁적 중도를 얘기하며 강조해온 바와 통합니다. 낡은 언어, 낡은 이념, 낡은 사상에서 벗어나 더 유연하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발언하자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우리가 그만큼 준비된 대통령후보를 김대중 이후로는 만나본 적이 없다는 생각입니다.(p.301~302)


저자 : 백낙청(白樂晴)


문학평론가, 영문학자, 편집인. 1938년 출생하고 경기고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브라운대와 하바드대에서 수학했다. 박사과정 중에 1964년 서울대 영문학과 전임강사가 되었으며 나중에 다시 미국으로 가서 1972년 하바드대에서 D. H. 로런스 연구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하고 2015년까지 편집인을 지냈으며, 서울대 영문과 교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시민방송 RTV 이사장,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70년대 이래 민족문학론을 전개하고 분단체제론을 통해 한반도 문제의 체계적 인식과 실천적 극복에 매진해왔으며, 근대에 대한 탐구를 통해 새로운 문명전환의 사상을 연마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계간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으로 있다.

저서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합본개정판)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2』 『민족문학의 새 단계: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3』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4』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5』 등의 문학평론집과 연구비평서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 『D. H. 로런스의 현대문명관』을 냈고,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 『흔들리는 분단체제』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2013년체제 만들기』 등의 사회평론서와 『백낙청 회화록』(전7권), 『변화의 시대를 공부하다』 『문명의 대전환을 공부하다』 등 다수의 공저서 및 편저서가 있다. 제2회 심산상, 제1회 대산문학상(평론부문), 제14회 요산문학상, 제5회 만해상 실천상, 제11회 늦봄문익환통일상, 제11회 한겨레통일문화상, 제3회 후광김대중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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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콜의 어반 스케치 여행 - 여행 노트를 채우는 30가지 아이디어 카콜의 어반 스케치
카콜 지음 / EJONG(이종문화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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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나 인물 등을 표현할 때 가장 사실적인 것은 카메라로 찍는 일이다. 사실 그대로를 나타내는 기기이기 때문에 보도 사진 등이나 범죄 증거로서의 역할엔 가장 우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 법정에서는 목격자의 진술보다 사진 한 장이 더 강력한 증거로 채택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진,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에는 화가들의 그림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림은 있는 사실 그대로를 표현한다기보다 사실에 대한 화가의 해석 등이 가미된다. 또 시대에 따라, 정치 환경에 따라서도 변화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왜곡도 가능하다. 화가도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을 가진 채 그린 그림은 대체로 사실화, 인물화(초상화)라 할지라도 화가에 따라 다소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그것이 더 정확할 때도 있을 것이지만 아무래도 사실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데는 사진보다 좋은 것은 아직 없을 듯하다. 

그러나 그림은 그림만의 독특하고 탁월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즉 화가의 느낌이나 의식이 가미된다는 것이다. 사진은 기기인 카메라를 통해 사실을 찍어내기 때문에 조작 등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널리 사용되며 이는 사실의 세계를 나타낼 때 유효하다. 이에 비해 그림은 사실의 표현이 목적인 경우는 거의 드물다. 또 사실적으로 그린다 해도 화가마다 다를 수밖에 없어 있는 그대로로 표현할 때는 사진을 따라갈 수 없다. 그것보다는 화가의 의식과 느낌이 반영된 표현 방법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인문학·예술적 관점에서는 사진보다 훨씬 효용성이 크다. 그림은 시대에 따라 많은 방법이 동원되고 같은 지역 화가들끼리 한 흐름을 형성하기도 하는데 일단 많은 시간이 걸린다. 다른 학문의 증거로 사용되기에는 사진보다 빠르거나 정확하진 않지만 시대적 느낌이나 예술성 면에서는 화가의 그림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다. 

사진과 달리 순간적 이동에는 손의 움직임이 빛의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는 법이다. 빠르게 움직임을 포착할 때는 연필 등 도구를 사용해 순간적으로 느낌을 그려낸다. 이것이 스케치다. 아주 오래 전부터 화가들은 스케치를 해왔다. 그림의 밑그림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잘못 됐을 때는 쉽게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연필 등으로 그려 지우고 다시 그릴 수도 있는 스케치는 화가의 연습하는 시절에 수없이 그린다고 한다. 특히 그림의 대상이 변하거나 움직일 때는 순간 움직임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야 제대로 그림으로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데생이라고 석고상을 놓고 이쪽 저쪽 방향에서 그리는 연습을 수없이 되풀이하는 것을 학교 다닐 때 미술부 학생들이 연습하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런 스케치 기법을 여행에서 사진 대신 이용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클 것이다. 요즘은 휴대폰에 카메라가 달려 있고 카메라 성능은 큰 카메라로 찍을 때보다 더 세밀하고 선명한 화질의 사진을 얻을 수 있기에 '스케치 여행', '여행 스케치'란 말마저 많이 사라진 듯하다. 그러나 스케치 여행은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기록이자, 현지 분위기를 깊이 느껴 보는 경험이다. 카메라로 찍어서 기록할 수도 있겠지만, 서두르지 않고 펜과 종이로 그려 보면 더 오래, 더 선명하게 기억된다고 이 책 『카콜의 어반 스케치 여행』의 저자 카골(임세환)은 강조한다. 

이 책은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넘어, 일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태도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화가의 그림은 섬세하지만 정교함을 좇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순간의 감정에 집중한 자유로운 선들은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토닥이기도 한다. 이 책에서 보여준 그림 한쪽에 티켓이나 영수증을 붙이거나, 냅킨에 손 가는 대로 그리는 등 사소한 것을 재료 삼아 유연하게 완성한 그림은 누구라도 당장 드로잉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심어 준다. 독자들은 나만의 시선으로 소중한 기억을 겹겹이 쌓아가는 삶의 방식을 이 책 『카콜의 어반 스케치 여행』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카콜'은 필명 혹은 화명(?)으로 보인다. '어반스케치(Urbansketch)'는 도시의 경관이나 거리, 건물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도시민들의 일상을 스케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출근길 아침 버스 정류장, 자주 가는 단골 카페, 매일 걷는 집 앞 거리 등 매일의 일상부터 즐거운 여행,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행복한 시간, 함께하는 반려동물까지 눈앞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남다르게 기록하는 특별한 방법을 책에 담아내고 있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어려을 때 꽤 그림을 잘 그린 편이었다. 선생님으로부터 칭찬도 자주 받았다. 그림 그리는 시간을 좋아할 정도였다. 그러나 독자가 학교 다닐 때는 "공부 잘하는 것"이 최고였다. 이른바 출세하기 위해서도 공부를 잘해야 했고, 돈을 많이 버는 데도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대학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일반 가정에서는 특기, 그림이나 음악, 혹은 체육을 잘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것은 공부를 못하는 사람 중에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하는 공부쯤으로 생각했다. 또 사회적 대우도 그리 좋지 않았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의 모습이다. 

저자 카골은 “나는 그림을 잘 못 그려요”라고 미리 겁먹지 말 것을 주문한다. 미술을 전문으로 배우지 않은 일반인도 조금만 연습하면 얼마든지 나만의 작품을 그릴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이 책은 입문자를 위한 선을 그리는 방법부터 도형, 작은 소품, 풍경까지 차근차근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여러 종류의 펜과 다양한 기법을 소개해 그림 주제에 따라 멋지게 표현하는 방법들도 알려준다. 저자는 뜻이 있다면 집에 있는 노트와 펜을 들고 집 앞을 나서 보기를 권한다. 머릿속에서만 스케치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실제 그려보는 것만큼 잘하는 방법은 없다는 뜻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독자처럼 그림을 좋아하거나 또 그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시작할 것을 저자는 주문한다. 마음에 남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나만의 작품으로 남기는 방법과 과정을 이 책이 모두 가르쳐 준다. 어반스케치라면 도시에서의 일상의 모든 것이 해당된다. 

날씨와 계절에 따라 섬세하게 변하는 자연의 모습도 담아낼 수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경이로움과 감동을 안겨 주고, 다양한 그림의 소재가 되어 준다. 이 책은 단순 스케치부터 세밀화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일들을 단계적으로 소개한다. 다양한 드로잉 기법과, 흥미로운 모습까지 생동감 넘치는 스케치의 세계로 안내한다. 

눈앞에 있는 멋진 순간을 남기고 싶을 때 사진보다는 좀 더 특별한 방법으로 기록을 남기고 싶은 독자들은 거리낌없이 이 책을 집어들고 한 번 훑어보기 바란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왠지 자신도 없고 재주도 없어서 주저하고 있는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소위 ‘곰손’이라도 매일 꾸준히 즐기다보면 어느새 멋진 나만의 작품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초보자여도 쉽게 따라 그리고 완성할 수 있다. 이 책이 가진 특장점이다. 책은 다음 3가지 단계를 거치도록 안내한다. 

① 차근차근 시작해보는 그리기 수업 

이 책은 펜을 잡고 그릴 때 손목과 팔의 방향부터 직선, 곡선, 도형까지 순서대로 차근차근 그려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꼬불꼬불한 선을 이어 그리다보면 다양한 모양의 나무가 되고, 원통을 그려 연습하다보면 따뜻한 음료가 들어 있는 머그잔이 완성된다. 물감을 사용해 간단한 수채화 기법으로 예쁜 꽃도 그려볼 수 있도록 그리는 순서를 단계별로 소개한다.

② 다양한 느낌을 주는 도구와 드로잉 기법

어반스케치는 사용하는 도구에 따라 각각의 특별한 느낌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연필, 채색할 때 편한 라이너펜, 수채화 느낌을 줄 수 있는 플러스펜 등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나 상황에 맞는 도구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펜으로 그린 스케치들을 모았다. 또한 건물을 지으려면 기초공사가 중요하듯 어반스케치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하는 드로잉 기법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다.

③ 보고 그리기에 도전하기

차근차근 연습하며 가까운 소재를 능숙하게 그릴 수 있게 되었다면 이제 보고 그리는 것에 도전해보도록 안내한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 쉽게 볼 수 있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좋아하는 명화, 즐거웠던 여행지 사진들을 보며 하나씩 나만의 느낌을 넣어 그려보자. 또한 그림에 입체감을 주기 위해 소실점과 투시도에 대해서도 예시를 들어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스케치 여행이란 세상을 깊이 경험하고,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기록이다. 여행 중에 그린 저자의 스케치를 300점 가까이 수록한 이 책 『카콜의 어반 스케치 여행』은 어느 페이지에서도 그림이라는 여행 방식의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수하물을 부치고 탑승 시간을 기다리며 바라본 비행기, 이색적인 거리와 건물, 현지의 작은 카페와 한 끼의 미식까지,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주한 장면들이 하나둘 펼쳐진다. 22만 팔로워에게 사랑받는 인플루언서답게, 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 소재도 가득하다. 포인트오브뷰, 블루보틀처럼 트렌디한 장소는 물론, 을지로와 서촌 거리처럼 예스러우면서 감성이 살아 있는 풍경까지 폭넓은 그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때로는 작가가 자신의 스케치로 누군가의 일상에 작은 기쁨을 전한 순간도 찾아볼 수 있다. 커피를 기다리는 사이, 엽서나 종이컵에 그려 건넨 그림 한 장은 뜻밖의 이벤트가 되어 주고받는 두 사람의 평범한 하루를 여행처럼 특별하게 만든다.

이 책은 스케치 여행의 준비와 모든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1장에서는 작가가 애용하는 펜과 노트를 소개하며 최소한의 도구로 가볍게 여행의 첫 발을 뗄 수 있도록 돕는다. 빈 노트를 마주하면 선뜻 무엇을 기록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는데, 2장에서는 이런 고민을 덜어 줄 30가지 스케치 아이디어를 소개한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상적인 장면부터,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인상적인 풍경까지 다양한 시선과 소재가 담겨 있다. 3장에서는 작가가 도쿄, 오사카, 경주를 여행한 기록을 함께 따라가 본다. 그림과 사진, 짧은 에피소드가 함께 실려 있어 여행의 감정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이 밖에도 스케치 여행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줄 여행 팁과, 매 순간 달라지는 현장에서 장면을 포착하고 그리는 작가만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한다. QR 코드로 제공되는 1분 드로잉 영상 다섯 편은 작가의 드로잉 방식을 참고할 수 있어 유용하다. 이 책은 어반 스케치를 막 시작한 이들에게는 다음 장을 채우고 싶게 만드는 용기를, 여행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그림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건넨다. 그림이 먼저든 여행이 먼저든,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기를 저자는 기대한다.



독자처럼 그림에 문외한이어서 기초 상식도 갖춰지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스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백과사전 내용을 여기에 기술해 본다. 일반적으로 미술가들이 본격적인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예비적인 착상을 기록해두기 위해 그리는 대략적인 밑그림 혹은 대상물을 신속하게 묘사하는 습작을 스케치라고 한다. 단순히 약화라고도 하는 스케치의 개념은 르네상스기에 확립되었고 치밀하게 묘사하는 에튀드와는 개념상 구별하여 사용한다. 또 그 자체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소품을 가리키기도 한다. 전통적인 밑그림용 스케치는 대체로 전체 구도와 배치에 역점을 둔다. 이것은 주로 미술가의 작업지침으로 사용되지만, 라파엘로Raffaello Sanzio(1483~1520)나 루벤스Pieter Paul Rubens(1577~1640)같이 많은 조수들을 고용하여 함께 작업하는 공방의 경우에는 스승이 조수들에게 작업을 지시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고 미술용어사전은 기술하고 있다.

스케치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첫번째는 크로키로서 작가가 보고 기록해두고 싶은 정경이나 사건을 재빨리 그린 것이다. 두번째는 일반적으로 색채를 사용하여 풍경의 분위기와 전체적인 인상을 기록하는 포샤드이다. 세번째로는 초상화와 관련되어 모델이 될 인물의 순간적인 표정이나 신체적 특징을 표시해두기 위한 스케치가 있다. 


저자 : 카콜(임세환)


그림 속에 순간을 담는 어반 스케처. 어디를 가든 항상 스케치북과 펜을 들고 다닌다. “막 그려도 돼. 즐겁게 그리자!”라는 마음가짐에서 출발해 10년째 어반 스케치를 그려오고 있다. 평소에 지나치던 것을 들여다보게 하고, 자유롭게 세상을 담는 어반 스케치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2015년 디즈니 주관 스타워즈 더 포스 어워드 아트 대상 수상

스파이더맨 홈 커밍 아트 우수상 수상

[어벤져스], [미녀와 야수], [스타워즈] 등 여러 영화와 콜라보 작업 및 배경 작업

사쿠라 100주년 한국 대표 아티스트 엠버서더 선정

인스타그램 15만 팔로워 @shlim204

클래스101과 패스트캠퍼스 등에서 온오프라인 드로잉 강의 진행

저서 『드로잉 인 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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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시간과 운명, 인생의 본질에 관한 세네카의 가르침 현대지성 클래식 68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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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는 로마 제국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세네카가 쓴 에세이집이다. 흔히 생전에 많은 위대한 일을 한 인물들은 "인생은 너무 짧다"고 말한다. '의학의 아버지'라고 추앙받는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명언을 남겼다는 말로도 유명하다. 의학자인데 왜 '학문'이란 말 대신 '예술'이란 표현을 했을까? 이는 당시 로마의 문자인 라틴어의 번역 과정에서 나온 말이라고 책의 역자 박문재는 밝힌다. "vitam brevem essc, longam artem." 이 문장에서 라틴어 원문에는 '아르트(art) 한 단어로 되어 있다. 여기서 아르트는 기술, 기예, 학문, 지식 등을 의미한다고 주석을 달아 해석하고 있다. 인간이 배워야 할 기술과 학문은 끝이 없으나 인생은 너무 짧다는 한탄을 담고 있다는 것. 

    공교롭게도 라틴어 수업이 되어 버린 듯하나, 이 책은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가장 날카로운 철학적 자기계발서다. 부와 성공, 바쁜 일정, 남의 기대를 좇느라 정작 자신을 위해 살았던 시간이 단 한 시간도 없었던 사람들에게 세네카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소진하며 타인의 일에만 매달릴 뿐, 정작 자신을 돌아보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말이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에 사로잡혀 현재를 희생하며, 이는 인생의 가장 큰 손실이라고 세네카는 이 책에서 지적한다. 세네카는 사람들이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영원히 살 것처럼 시간을 허비한다고 말한다. 결국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않는다면, 긴 세월을 살았더라도 어린아이처럼 요절한 것과 다름없다. 세네카에 따르면 현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시간을 철저히 지켜 자신을 위해 온전히 사용하며, 매 순간을 의미 있게 채운다. 현자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지금으로 존재하며, 시간 전체를 아우르는 넓고 깊은 삶을 살아간다. 세네카는 독자들에게 지금 현재를 살고, 모든 방해물을 버리고 오직 지혜를 탐구하며 진정한 자유를 누릴 것을 권한다.


    세네카는 또 욕망에 휘둘리고, 성취에 중독되고, 명예에 집착하는 한 인간은 ‘죽기 전까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사람’으로 끝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진짜 시간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시작된다고. 지혜를 탐구하고, 현재에 몰입하며, 나만의 시간을 지킬 때 우리는 더 이상 ‘시간에 쫓기는 인간’이 아니라 ‘시간을 주도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역설한다.

    이 책은 바쁘게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고, 시간과 하나뿐인 인생을 올바르게 활용하는 지혜를 일깨운다. 세네카의 통찰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삶과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출판사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는 세네카의 에세이 14편 전체를 67~68번(책 시리즈 넘버)으로 소개한다. 특히 단어나 표현의 오류를 벗어나기 위해 중역을 피하고, 라틴어 원전을 완역했다. 앞서 언급한 박문재 번역가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독일 보쿰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또한, 고전어 연구 기관인 비블리카 아카데미아Biblica Academia에서 오랫동안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익히고,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원전들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에는 역사와 철학을 두루 공부했으며, 전문 번역가로 30년 이상 인문학과 신학 도서를 번역해왔다. 철학적 깊이와 현대적 맥락이 조화된 정중한 번역으로, 누구나 고전의 핵심을 맛볼 수 있도록 돕는다. 고전은 오래된 책이 아니라, 지금도 작동하는 통찰이다. 세네카의 문장은 내면이 무너질 듯한 순간마다 꺼내 읽는 마음의 연고가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는 앞서 언급한 대로 세네카 에세이 14편 가운데 7편을 완역해 실었다. 나머지 7편은 이미 시리즈 67번으로 완역 출간됐다. 이 책은 각 편에 에세이 하나씩 7편을 실었다. 독자들이 읽을 때 원전의 맛을 살리기 위해 행과 장을 책 본문 옆에 그대로 표기했다. 또 라틴어 원전을 번역했기에 역자의 주석이 많이 실려 있어 독자들의 즉시 해석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제1편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제2편 〈행복한 삶에 대하여〉, 제3편 〈은둔에 대하여〉, 제4편 〈섭리에 대하여〉, 제5편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 제6편 〈어머니 헬비아에게 보내는 위로〉, 제7편 〈폴리비우스에게 보내는 위로〉 등 모두 7편이다. 세네카는 후기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로마 제정시대 정치가다. 네로(Nero) 황제의 스승으로, 그리고 황제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발각되어 네로에게 자살을 명령받은 일로 그의 이름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세네카가 군주 아래에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는 논지를 전개함으로써, 제정체제의 이념적 좌표를 마련했다는 사실은 별반 주목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어쩌면 네로 황제의 폭정이 세네카의 사상보다 더 극적이었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일부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세네카는 지금의 스페인 코르도바(Córdoba)의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수사와 웅변에 뛰어났던 노(老)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이고, 그의 형은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갈리오(Lucius Iunius Gallio) 총독이며, 그의 동생인 멜라(Annaeus Mela)는 로마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사람인 루카누스(Marcus Annaeus Lucanus)의 아버지다. 불행하게도 이 세 형제와 조카까지 모두 네로 황제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집안의 가풍이었던 학자적 자세와 도덕적 지조가 폭군과의 타협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스페인 태생이지만, 세네카는 로마에서 자라고 컸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제국의 심장부로 들어갔다. 일찍이 아버지에게 수사학을 공부했고, 이후 스토아 철학의 대가였던 섹스투스(Quinti Sextius Patris)의 제자가 된다.

    칼리굴라(Caligula) 황제의 시기를 받아 시련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서기 31년 세네카를 코르시카로 귀양을 보낸 황제는 전임 클라우디우스(Claudius)다. 이 시기에 쓴 『분노에 대하여』(De Ira)에서 보듯 그는 감정을 다스리며 로마로 돌아오는 날만 기다렸다. 그리고 서기 49년 마침내 로마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를 로마로 부른 사람은 이후 황제가 될 네로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Julia Agrippina Minor)였다. 그녀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네 번째 부인으로, 다른 부인의 소생을 제치고 자기 아들을 황제로 만들려는 생각에 세네카를 아들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 책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는 첫 문장부터 독자들을 압도한다. “인생은 짧지 않다. 우리가 짧게 만들 뿐이다.” 이 문장은 단지 경고나 권유의 의미로 쓰인 게 아니다. 바쁘게 살지만 정작 삶을 소유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던지는 경종이다. 세네카는 이 에세이를 통해 시간을 ‘보내는’ 삶에서, 시간을 ‘사는’ 삶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한다. 단순히 속도를 줄이라는 말이 아니다. 세네카는 일과 쉼, 세속과 철학, 바쁨과 몰입의 균형에 대해 근본적으로 묻는다. 그가 파울리누스에게 보낸 이 책들의 글은, 고위 공직을 내려놓고 ‘철학적 은둔’으로 들어가라는 편지에 쓰인 글들의 모음집이다. 세네카는 은둔을 소극적 회피가 아니라, 자신과 마주하는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본다.(별도의 책이 있다.) 오늘날의 ‘워라밸’이나 ‘리추얼 루틴’이라는 단어가 지향하는 바와도 닮아 있다. 휴식은 단순한 쉼이 아니라 삶의 본질로 복귀하는 시간이며, 나를 중심에 세우는 내면 훈련이기도 하다.

    이 책은 ‘부유한 철학자는 위선자’라는 비판에 대한 세네카의 직접적인 대답이기도 하다. 그는 철학자도 부를 가질 수 있으며, 물질이 정신을 얽매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유를 해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돈을 벌 것인가, 덜 벌고 만족할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의 프레임 속에서 고민하는 현대인에게, 세네카는 스토아의 엄격함과 현실의 유연함 사이에서 ‘철학적 균형감각’을 유지하라고 조언한다. 절제와 자유, 안락과 자율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그의 통찰은 미니멀리즘과 욜로 사이에서 흔들리는 우리에게 여전히 강력하다. 『은둔에 대하여』는 네로 치하의 폭정 속에서 정계를 떠난 세네카가 ‘물러남’의 철학적 의미를 재해석한 글이다. 그는 은둔을 패배가 아닌 성숙한 선택으로 바라보며, 침묵과 거리두기를 통해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또 『섭리에 대하여』와 세 편의 위로서들은 운명과 상실을 대하는 자세를 제시한다. 그는 고난과 슬픔조차 우주적 질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스토아 철학의 중심 원리를 전하며, 인간적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냉소적인 대신, 그 고통을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힘을 강조한다. 세네카의 글은 삶의 ‘어떻게’를 묻는 사람보다, 삶의 ‘왜’를 붙잡으려는 이들에게 더욱 빛난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7편의 에세이는 그 질문에 응답하는 철학적 여정의 안내서다. 그의 문장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한다. “시간은 당신의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누구에게 넘기고 있느냐는 것이다.”


    〈현대지성 클래식〉은 세네카의 에세이 14편 전체를 두 권에 나누어 완역해 소개했다고 앞서 독자가 언급했다. 특히 라틴어 원전의 정교한 뉘앙스를 살려내되, 독자들이 그 진수를 맛볼 수 있도록 세심히 다듬었다는 말도 이미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면 세네카는 철학을 ‘인생의 기술’이라 보았고, 그 기술은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쓰는가에 달려 있다고 판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단지 ‘시간을 절약하라’는 조언을 넘어서, 시간을 ‘진짜 나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고대 로마 제국에서나 현대 우리들의 삶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삶의 원칙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이 시점에 2,000년 전의 한 철학자가 쓴 철학적 사유가 서공을 초월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독자는 판단한다. 특히 다음은 이 책이 던지는 철학적 전환의 지점들이다.

    ① 시간을 흘려보내는 삶에서 시간을 ‘사는’ 삶으로

    이 책은 단순한 시간 관리가 아니라, 인생 자체의 통제권을 회복하게 돕는다. 불필요한 일정을 줄이고,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며, 내 시간을 ‘나를 위해’ 쓰는 삶으로 전환하게 하는 것이다. ‘바쁘게 살지만 공허한 삶’에서 벗어나, 진짜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기술을 배운다.

    ② 불안에 휘둘리지 않는 힘: ‘내면의 안전지대’ 구축

    세네카는 외부 조건이 아닌, 내면의 태도가 행복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돈, 명예, 성공에 끌려다니는 삶에서, 적당히 소유하고도 만족할 수 있는 삶으로! 삶의 리듬을 되찾고 싶은 사람에게, 절제와 몰입의 균형 감각을 제시한다. 더 많이 가지는 대신, 덜 불안해지는 삶을 설계할 수 있다.

    ③ 상처를 견디는 힘: ‘회복 탄력성’ 강화

    누구도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고통과의 관계를 바꿔야 한다. 세네카는 말한다. “고통은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실망, 상실, 부당함에 무너지지 않고, 철학적 거리두기를 통해 감정을 정돈하며, 자신을 지키는 기술을 익힌다. 이 책으로 감정적 회복력을 키울 수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신의 재산에는 유별나게 민감하지만, 시간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관심하다. 아무 대가도 없이 타인의 요구에 시간을 쏟아붓고, 쓸데없는 걱정과 쾌락, 야망, 헛된 기대에 하루를 몽땅 넘긴다. 그러면서도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부족은 현실의 조건이 아니라, 잘못된 시간 사용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네카는 진짜 문제는 ‘삶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타인의 욕망과 시선에 휘둘리고, 거절하지 못한 요구에 응하며, 자신을 위한 시간은 끝내 마련하지 못한 채, 결국 삶은 허무하게 흘러간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조차 꺼내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의 끝에 도달한다. 세네카는 이 책에서 ‘현자만이 시간을 소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과거의 위대한 지성들과 교류하며, 시간의 소유권을 되찾는 일이다. 그는 삶의 모든 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지혜로 재구성한다.


    오직 지혜를 탐구하는 데 시간을 쓰는 사람들만이 진정 한가롭고, 오직 그들만이 제대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헛되이 쓰지 않고 잘 지킬 뿐 아니라, 모든 지나간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덧붙이기 때문입니다. 신성한 가르침의 창시자들은 우리를 위해 태어났고 우리의 길을 닦아준 빛나는 스승들입니다. 어떤 시대도 우리에게 닫혀 있지 않고, 우리는 모든 시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큰마음으로 인간의 나약함이 만든 좁은 한계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리가 누빌 수 있는 광활한 시간이 열립니다.(p.40~41)


    저자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후기 스토아철학 대표 사상가. 고대 로마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정치인이며, 시인이자 비극작가이다. 기원전 4년 에스파냐에서 태어났으며 로마에서 자라면서 수사학과 변론술, 철학을 공부했는데 특히 스토아 철학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젊어서는 천식과 결핵을 앓았고,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도 여러 차례 했다. 늦깎이로 정계에 입문하지만 8년간 코르시카 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다시 로마로 복귀할 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에게 맡겨진 직책은 어린 네로의 가정교사라는 숙명적인 자리였다. 결국 세네카는 5년 동안 네로의 가정교사로 일하고, 네로가 황제가 된 후에는 10년 동안 보좌역을 맡게 된다. 황제가 된 네로는 처음에는 선정을 베풀었으나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후로 폭정이 극에 달한다. 이에 절망을 느낀 세네카는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과 집필 활동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황제 암살 계획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게 되면서 네로로부터 즉각 자결하라는 명을 받는다. 결국 세네카는 자신의 제자였던 황제의 명을 받들어 스스로 정맥을 끊고 독약을 마시며 생을 마감한다.

    공포와 광기가 가득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부침이 많은 삶을 살아온 경험이 세네카의 철학적 근간을 만들었다. 그는 후기 스토아철학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12편의 에세이와 9편의 비극작품을 남겼다. 그가 남긴 저서들은 널리 애독되었는데, ‘제 2의 세네카’로 불리는 몽테뉴와 단테, 루소, 흄,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알랭 드보통 등 세계의 지성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저서들은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에게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다.


    역자 :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독일 보쿰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또한, 고전어 연구 기관인 비블리카 아카데미아Biblica Academia에서 오랫동안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익히고,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원전들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에는 역사와 철학을 두루 공부했으며, 전문 번역가로 30년 이상 인문학과 신학 도서를 번역해왔다.

    역서로는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실낙원』(존 밀턴) 등이 있고, 라틴어 원전을 번역한 책으로 『고백록』(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위안』(보에티우스), 『유토피아』(토머스 모어) 등이 있다. 그리스어 원전에서 옮긴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이솝우화 전집』 등은 매끄러운 번역으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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