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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당신의 죽음을 허락합니다 - 이토록 멋진 작별의 방식, ‘간절한 죽음이라니!’
에리카 프라이지히 지음, 박민경 옮김, 최다혜 감수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10월
평점 :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 460~377)는 '의학의 아버지' 혹은 '의성(醫聖)'이라고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의사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의료의 윤리적 지침으로, BC 5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수정한 〈제네바 선언〉이 일반적으로 낭독되고 있다. 〈제네바 선언〉이란 1948년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개최된 세계의학협회 총회에서 채택된 것으로, 1968년 최종적으로 완성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아래 전문)
"이제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 나의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 나는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 나의 위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하겠노라.
·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 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이 책 『아빠, 당신의 죽음을 허락합니다』의 저자 에리카 프라이지히는 1958년 스위스 바젤 출신의 의사로서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가정의학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 그녀는 의사로 절반의 삶을, ‘자발적 조력사망’의 전 세계 합법화를 위한 활동에 절반의 삶을 바치고 있다고 한다. 이 책도 그 활동의 일환으로 저술한 것으로 보인다. 프라이지히 박사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낙태가 더 이상 처벌 대상이 아닌 것처럼, 자발적 조력 사망도 그 기준이 완화되고 사회적으로 허용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이 그러한 변화에 작은 보탬이 되길 희망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진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해 인간 배아를 죽이는 것은 허용되는 반면, 왜 가혹한 불치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죽음을 간절히 원해도 끔찍한 고통을 끝낼 권리를 갖지 못하는 걸까요?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죽음에 대한 태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비록 그 변화가 더디고 시간이 오랜 걸린다 해도 말입니다.”
'은퇴 목사' 폴 콜러 주(스위스 바젤 프라텔른, 아우크스트 교구)는 「좋은 죽음이 없으면, 삶이 어그러진다!」는 제목의 〈서문〉에서 당초 저자가 일반 의사로 일할 때 "불치병에 걸린 중증 환자에게 '자발적 조력사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은 의사의 권한에 속할까?에 대한 질문을 수없이 반복했다고 한다.
* 자발적 조력 사망: 생명 종결의 최종 행위를 의사가 직접 하지 않고, 환자 스스로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투여하여 생명을 종결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환자의 자발적 의사를 전제로 하며, 환자가 최종 결정을 내리고 실행한다. 그 과정에서 의료인이 상담, 검진, 약의 처방 등 전문적 의료 지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의료인을 조력의 주체로 상정하는 의료조력사 또는 의사조력사로 불리기도 한다.('은퇴 목사' 폴 콜러 주)
이 힘든 질문을 수없이 스스로에게 던진 저자는 수년 간 이 문제와 씨름한 끝에, 마침내 확신을 담아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밝힌다.

〈서문〉에 따르면 불치병으로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 환자들이 에리카 박사를 찾아와, 사랑하는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유 의지에 따라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 연민 깊은 에리카 박사는 스위스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가혹한 운명에 처한 사람들을 보며 수많은 밤 잠 못 이루다, 마침내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더 이상 의사에게 강제력을 띠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원칙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중에는 "나는 누가 요청하더라도 치명적인 약물을 주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권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는 원칙도 있다.
그러나 에리카 박사의 마음은 2,400년 된 이 금기보다 환자를 향한 연민으로 훨씬 더 기울었다. 의료인으로서 첫발을 뗐을 때만 해도 에리카 박사는 자신이 조력사망을 제안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뿐 아니라 절대 펜토바르비탈나트륨(SP: 진정, 최면, 마취, 경련 조절 등에 사용되는 약물로 높은 용량 투여 시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같은 치명적 약물을 처방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자발적 조력사망 과정을 동반하는 일은 일말의 고려 대상으로도 삼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의사 초년생 때 에리카 박사가 가졌던 태도가, 의사로서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를 강렬하게 묘사한다. 너무 솔직해 불편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저자 에리카는 독자들을 환자나 환자 가족과의 진솔한 대화로 안내하는 동시에, 나아가 자기 내면으로도 초대한다. 책을 읽으며 그의 내면에는 신에 대한 깊은 믿음, 모든 생명의 원천에 대한 신뢰가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에리카 박사와 종교적 신념에 관해 직접 얘기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개혁교회 목사로서 그가 신뢰할 수 있는 의사임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고 '은퇴 목사' 폴 콜러는 털어놓는다.

이 책은 8개의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저자 에리카가 자신의 경험과 조력사망 상담 의사로서의 삶 등에 관한 가벼운 경험과 상담 내용을 글로 썼다. 「나와 아버지」, 「신앙의 문제」, 「삶의 질」, 「이례적 비상 당직」, 「조력사망 상담 의사로서의 두려움」, 「죽음, 그후」, 「나는 누구인가?」, 「라이프서클과 이터널스피릿」 등이다. 책의 번역판이 한국에서 출간되면서 최다혜 한국존엄사협회 회장의 〈감수의 글〉도 눈에 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지막 권리를 말하다!」란 제목의 글에서 최 회장은 "이 책은 한 스위스 의사의 개인적인 고백에서 출발하지만, 곧 생애 말기 환자들이 겪고 있는 절박한 현실로 독자들을 이끈다"며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을 선택할 권리,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자기 결정'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의료인의 시선과 우리가 마주한 법적·윤리적 공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썼다. 이 책은 단지 죽음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의 책임을 다시금 성찰하게 하는 기록이라고 최 회장은 단언한다.
첫 장 「나의 아버지」에서 저자는 아버지의 조력사망 도움을 준 경험을 되살린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소파에 편안히 누워, 긴 세월 수많은 시련으로 깊이 주름진 아버지의 얼굴은 이제 고요한 평화를 담고 있다. 죽음의 순간, 머리를 뉜 베개도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것으로 직접 고르셨다. 갈기를 휘날리며 힘차게 달리는 흰 종마가 그려져 있다. 아버지는 폭풍이 시작될 무렵 돌아가셨다.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서 비롯된 자율적인 죽음이었다. 아버지의 가장 간절한 소망이, 마침내 이루어졌다."(p.21~22)
이때 저자는 황망한 모습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아마도 병원에서 자연사일 경우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개인의 집에서 사망했을 경우 경찰에 신고하는 등의 절차가 있을 것이다. 아마 아버지의 딸이지만 의사인 저자가 아버지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죽음은 외관상 자살 방조이거나 약물에 의한 고의 살인이라고 의심해볼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저자는 이 상황을 이렇게 썼다. "아버지의 딸이자 의사인 내가 아버지께서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죽음을 실현하실 수 있도록 도왔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것이 의사의 본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 자기 생을 마감하는 과정을 도왔다."

두 번째 「신앙의 문제」에서는 저자는 아버지의 자기 결정에 따른 죽음에 동의한 이후로, 줄곧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웠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죄일까?" 적지 않은 마음고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밤이면 뒤숭숭한 악몽에 시달리고 아이에게 사고가 나는 꿈을 꾸고 화들짝 놀라 깨어나기도 한다. 매일 아침 자전거에 올라타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을 보고 이들 중 누구 하나 사고가 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슬금슬금 파고든다고도 털어놓는다.
저자는 의사 생활을 계속하면서 마음의 고통을 한동안 계속 앓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다시 의사 생활에 쫓기듯 살면서 많은 환자들이 죽음 직전에서는 존엄성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망가지는 모습을 계속 보았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저자의 가슴은 아버지에 대한 조력사망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이내 서서히 조력사망 상담 의사의 의지가 굳어가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의사조력사망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아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죽고자 하는 의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 의지가 반복적으로 발현될 때 비난하려 들지 않고 깊이 헤아리는 것이 목적이다. 환자가 죽고자 하는 의지를 논리적으로 이해시키지 못하면 의료조력사 시행은 불가하다."(의사와 전문 간호사가 조력 행위를 할 수 있는 국가, 예를 들어 캐나다의 경우 의료조력사로 명명하며 의사만이 조력할 수 있는 경우 의사조력사로 불린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 속에 있는 환자에게 평화를 주고 존엄한 방식으로 세상과 작별할 기회를 줄 수 있을 때, 나는 깊은 만족을 느낀다. 그들이 내게 전하는 감사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가장 비극적인 경우는 자기 결정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할 기회도 없이 남몰래 자살을 선택하는 환자들이다.

「죽음, 그후」라는 짧은 글도 눈에 띈다. "죽음의 두려움,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의사조력사망을 통한 세상과의 의식적 이별을 알기 전까지, 저자는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자주 목격했던가. 잠들듯 꿈꾸듯 고통 없이 영면에 드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환자를 통해 이 드문 순간을 경혐했고, 모든 사람이 이렇게 죽을 수 있기를 바라게 됐다고 기술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거리낌없이 독자들에게 펼쳐놓고 의미를 부여한다. 산골 마을의 요양원 같은 곳에 처음 갔을 때 그곳에 '수용되어 있는' 나이든 환자들의 모습은 쾌활한 모습이나 안정감은 찾아볼 수 없고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섬뜩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럴 때면 겪어보지 못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강제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고통에 시달린 사람들의 모습이 이랬을까 싶다고도 적는다. 너무 말라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할머니는 이불을 바쯤 덮고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쾡한 눈은 감겨 있다. 새하얀 이불이 검은 낯빛과 극명히 대비된다. 늘어지 낙죽 같은 팔의 피부와 뼈 사이에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다.(p.182)
앞서 언급한 한국존엄사협회 최다혜 회장의 〈감수의 글〉 가운데 일부를 인용하며 서평을 마친다. "우리나라의 환자들은 스위스와 같은 먼 나라로 떠나야만 조력사망이라는 선택지를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열 시간 넘는 비행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중증 환자에게 그러한 선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구조는 환자의 선택권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단지 법적·제도적 결여가 아닌 방치되고 있는 인권의 사각 지대라 할 수 있다. 더 이상 환자들이 삶의 마지막을 위해 국경을 넘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도 생애 말기 환자들을 위한 더 많은 선택지를 제도화하고, 그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책은 단지 몇 개의 사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조력사망에 대한 논의를 단순한 찬반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인간 존엄의 실현과 자기 결정권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하게 만든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제 ‘존엄한 죽음’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이 책이 생애 말기 환자의 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담론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감수자로서, 그리고 존엄한 죽음을 염원하는 시민으로서, 이 책의 뜻을 깊이 지지하며 그 길에 함께하겠다."

“저에게 인간다움이란 곧 자기 결정권을 갖는 거예요. 그게 내가 짐승과 다른 점이죠. 더 이상 내 일을 내가 결정할 수 없다면 타인이 나를 좌지우지하게 되고, 나는 더 이상 인간답다고 느끼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지금 여기 스위스에서 스스로 죽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수 없어, 안타까워요. 그렇게 되려면 정말 많이 것이 바뀌어야 하겠죠.”(p.167)
저자 : 에리카 프라이지히(Erika Preisig)
1958년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나 8남매 대가족에서 자랐다. 의대 졸업 후 영국 맨체스터에서 학업을 이어 갔다. 이후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가정의학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 그녀는 의사로 절반의 삶을, ‘자발적 조력사망’의 전 세계 합법화를 위한 활동에 절반의 삶을 바치고 있다. 아버지의 ‘자발적 조력사망’을 겪으며, 인간의 ‘존엄한 죽음’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면, 삶의 마지막 순간 역시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책이 그러한 변화에 작은 보탬이 되길 희망한다.
역자 : 박민경
이화여대에서 영문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홍보컨설턴트로 일했으며, 현재는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결혼 13년 차 허진호의 아내이자 허윤, 허솔, 허별의 엄마다. 언어와 언어 사이를 잇는 징검다리 같은 번역가로, 마음과 생각을 담담히 풀어내는 에세이스트로, 단단히 서고 싶어 지금도 분투하고 있다.
감수 : 최다혜
한국존엄사협회 회장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논문에서는 존엄사와 신체불훼손권을 확장한 ‘심신 온전성의 권리’를 다루며, 생애 말기 환자의 자기 결정권과 인간 존엄에 대한 법적 기반을 제시했다. 한국존엄사협회를 설립하고, 2023년 12월 조력사망 관련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존엄한 죽음을 위한 제도 개선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현재 경성대학교 외래 교수로 재직하며 인권과 헌법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