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사는 게 힘들까? -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나는 왜 사는 게 힘들까?』는 한 인물의 삶을 대상으로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40대에 들어선 교사로 학교와 학생 및 학부모들로부터 '좋은 교사'로 인정받고 있다. 학교에서 특별 지원 교육 업무를 맡고 있는 교사로 일하고 있다. 워커홀릭인 그녀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최근 건망증이 너무 심해져서 하지 않던 실수가 점점 늘어났다. 우산이나 안경, 지갑 같은 걸 어디 두었는지 자주 잊어버렸고, 가끔은 겨드랑에 물건을 낀 채로 어디 있는지를 찾는 경우도 많았다. 또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가 회의 시간이나 학생 면담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일까지 생겼다. 지금까지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잘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는데 이런 일들이 빈번해지자 그녀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급기야는 스스로 발달장애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이 여성은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까?

저자 오카다 다카시에 따르면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멀쩡하고 사회생활도 무난하게 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이 최근 많아졌다. 그런데 대부분 병원에 가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다.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어려워하는 사람, 언어적·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취약해서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소외감과 불안감 같은 불안장애를 느끼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저자는 ‘회피형 인간’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일본의 정신과 의사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바로 ‘그레이존’ 인간 유형이라고 설명한다. ‘그레이존(gray zone)’은 말 그대로 경계 영역에 해당된다는 뜻으로 자폐증이나 ADHD, 아스퍼거, HSP 등 발달장애와 비슷한 증세가 있지만 장애라고 진단 내리기는 힘든 사람들을 말한다.

 


 

그레이존의 유형은 매우 폭넓다고 한다. 성인 ADHD 증세를 겪거나, 항상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성공했으면서도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공허함이 강하거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거나, 조그마한 소리에도 움찔움찔 놀라거나, 운동신경이 너무 둔해서 사선으로 걷는다거나 하는 등등 다양한 증세가 있다. 이 책 『나는 왜 사는 게 힘들까?』는 바로 이런 사람들, 딱히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너무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 나이가 들수록 적응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사람들의 속마음과 인간관계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은 코로나19로 사회성과 관계력이 퇴화하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받으며 출간 이후 단기간 내에 1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교사 U씨의 경우도 그레이존에 해당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녀는 성인 ADHD 증세로 실수를 남발하긴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성실하게 공부에 임했고 교사가 된 이후에도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발달장애가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녀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 결핍감을 일로 채우기 위해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 될 정도로 과로했고, 그 여파로 잔실수가 늘어났다고 봐야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혹시 나도?' 하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무시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어 치료해야 하는지 여부를 가늠할 것을 조언한다. 많은 수는 치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경우지만 '과잉 우려'가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회피한다면 뒤늦게 발생한 여러 증세가 악화될 수 있는 애매모호한 상태를 없애라는 주장이다.

 


 

이 책의 강점은 이론이 탄탄하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빨리 읽힌다는 것이다. 자폐증에 대한 새로운 학계의 정보, 워킹 메모리의 기능,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사회생활의 상관관계, 협조운동 장애가 운동신경과 대인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 흥미로운 이론도 큰 지적 재미를 선사하지만,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오카다 다카시는 임상 경험에서 축적한 에피소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인들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무라카리 하루키, 나쓰메 소세키, 카프카 같은 소설가들뿐 아니라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톰 크루즈 등 현재 살아 있는 셀럽들의 에피소드가 대거 등장해서 읽는 재미를 더하기 때문이다. 독자도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유명인들의 이름이 주욱 나열되는 바람에 관심이 고조되었다.

저자는 장애도 아닌데 심리적으로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경우 애착 장애를 품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지적하면서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기업가인 제프 베이조스나 일론 머스크를 포함해서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까지 모두가 공통적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마음의 그늘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멀쩡하게 사회생활하면서 잘 살아왔지만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고 마음이 힘들다면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왜 내가 힘들 수밖에 없는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게 된다면 해결책도 스스로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케이스를 상담하고 치료했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살기가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그냥 가볍게 넘기면 훨씬 힘들어진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 경우 장애로 판정받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한 배려나 지원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거나 건강한 사람들과 대등하게 경쟁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는 우려가 높다는 주장이다.

 


 

특히 그레이존은 하나 이상의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 그 때문에 장애가 아니라고 해서 기분이 나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높은 기대치에 눌려 더 괴로워하게 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는 이들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는데, 그것은 장애와는 또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상처 혹은 애착 장애 같은 문제이다. 또 단순히 '장애가 아닌 상태'라기보다는 아예 성격이 다른 고통을 겪고 있는 경우도 많다는 게 저자의 경험 상 주장이다. 이에 따라 발달장애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이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더 다양한 임상 케이스와 대응법, 노하우 등등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야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존이라는 용어는 유아기처럼 아직 증상이 확실치 않아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을 때 사용하는 경우, 그리고 청년기나 성인기에 증상이 나타났지만 진단 기준에 전부 해당되지 않아서 사용하는 경우 등 두 가지가 있는데 각자 사정이 다르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유아기나 학령기 초기에 그레이존으로 진단받은 경우에는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이렇게 어린 시절의 그레이존 성향과 성인이 된 이후의 그레이존 성향은 약간 다르지만 시레로는 다 연결되어 있다. 이 둘을 연속된 시점으로 봐야 비로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될지 가늠해볼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어떤 일이나 어떤 특성 때문에 유래한 것인지를 되짚어보면서 좀 더 깊게 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책은 모두 9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겉은 멀쩡한데 속은 너무 힘든 사람」, 2장 「같은 행동을 고집하는 사람」, 3장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사람」. 4장 「상상력이 없는 사람」, 5장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6장 「남들보다 몇 배 더 예민한 사람」, 7장 「주위가 산만하고 정리를 못하는 사람」, 8장 「몸의 움직임이 어색한 사람」, 9장 「공부를 힘들어하는 사람」 등이다. 1장에서 「겉은 멀쩡한데 속은 너무 힘든 사람」에서는 독자들은 장애만 아니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란 질문에 직면한다. 어렸을 때 그레이존이라는 진단명을 받았지만 크게 나쁘지 않아 방치했을 경우 악화된 사례를 들고 있다. 만약 이때 적절한 교육과 트레이닝을 시작했더라면 이 사람의 상태와 학교 생활은 달라졌을 거란 말이다. 저자는 "그레이존은 결코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상태가 아니라, 세심한 주의와 적절한 지원이 필요한 상태이며, 그것이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운명이 엇갈린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을 무난히 넘기고 30대, 40대가 된 이후부터 서서히 사는 게 버거워져서 병원을 찾는 사람은 어떨까? 사회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고 사는 게 버겁다는 느낌이 들자 도대체 왜 이러는지 그 답을 발달장애에서 찿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앞서 언급한 교사 U씨가 바로 그런 사례라는 지적이다. U씨는 어릴 때 집안 환경이 좋지 않음을 상담을 통해 고백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폭행 등 매일 매일 떨고 살았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일적으로도 성공하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항상 부족함을 느끼거나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느낀다는 건 마음속 깊은 곳에 어떤 문제가 잠복해 있는 거라고 봐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일반적인 발달장애 검사에서는 잘 하지 않지만 애착 장애(애착 트라우마) 검사를 해본 결과, U씨는 '공포회피형'이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저자는 전한다. 공포회피형은 상처받을까 봐 마음을 터놓는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 유형으로 그 누구에게도 애교를 부려본 적 없는 U씨의 성품과 일치했다고 한다.

 


 

2장에서는 같은 행동이나 패턴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문제다. 한 가지 행동 패턴에 집착하는 것만으로도 장애로 진단받는 경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상동운동(常同運動) 장애다. 이것은 어떤 단순한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게 특징이라 자폐증이라 판단하는 경우가 많긴 한데, 일상 생활이 힘들 정도로 증세가 심한 경우에는 상동운동 장애라고 진단할 수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DSM(아메리카정신의학회의 정신 쟁애 진단 및 통계 메뉴얼)의 진단 기준에 따르면 자폐증의 경우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장애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증세,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되어야 한다. 또 여기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증세는 ① 상동운동 ② 특정 행동이나 사고에 대한 집착 ③ 한정된 대상에 대한 강한 관심 ④ 감각 과민 또는 둔감, 이상 네 가지가 있는데 이 중 두 가지 이상에 해당되어야 한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증세'가 너무 긴 표현이므로 '집착증' 혹은 '고집증'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한 네 가지 증상은 자신이 신경 쓰는 것에 대한 강한 집착과 그 이외의 것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장에서 다루는 증세와 경험자 중 이 책에서 사례로 든 사람의 이름을 들어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①에 해당되는 증세를 갖고 있던 사람이 우리가 잘 아는 빌 게이츠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다. 어린 시절 사회성 발달이 늦어 어머니가 한 살 늦게 학교에 보낼까 고민할 정도였다. 백과사전을 즐겨 읽어 지식은 풍부했지만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특히 회사의 CEO가 된 이후에도 증세를 고치지 못한 버릇이 있는데 회사 내에서도 유명했다고 한다. 바로 격렬하게 의자를 흔드는 버릇이다. 생각에 집중하면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②에 해당하는 증세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갖고 있었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린 시절 독서와 피아노가 취미인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당시로서는 드문 외동아들이었던 것도 약간의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게 저자의 관점이다. 훗날 아내가 된 대학 때 만난 여성과 둘이 재즈 카페를 열었는데 제법 장사가 잘된 모양이었다. 친한 작가 한 명이 무라카미에게 "당신은 손님들이랑 거의 한 마디도 안 하잖아요?"라고 힐난조로 묻자 "아니에요. 제가 원래 말은 안 해도 안 좋은 같아서 노력하긴 했어요. 다들 저한테 사교적이지 못하다고 하시는데, 저로서는 정말 최선을 다한 겁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저자는 무라카미가 회피성 성향이 있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내는 섬세한 감성과 뗄레야 뗄 수 없는 특성임에 틀림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대인관계가 힘들어서 심리치료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다른 능력에 비해 지각 추론 능력이 낮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중략) 지각 추론이 약한 사람은 자신의 불만과 한탄만 늘어놓을 뿐 그 배경에 들어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한다.(p.104~105)

 

저자 : 오카다 다카시(おかだ たかし, 岡田 尊司)

도쿄대에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중퇴하고 교토대 의과대학에 다시 들어가 정신과 의사가 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오랫동안 교토의료소년원에서 근무한 후, 오카다 클리닉을 개업했다. 정신의학과 뇌 과학 분야 전문가로 주목받는 그가 꾸준히 주장하고 있는 ‘애착 이론’은 청소년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 때문에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상처를 가진 채 어른이 되었다』,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가 대표작이며 『나만 바라봐』, 『예민함 내려놓기』, 『심리 조작의 비밀』, 『애착 수업』, 『나는 네가 듣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등 수많은 책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나는 왜 사는 게 힘들까?』(원제: 발달장애의 그레이존?達障害「グレ?ゾ?ン」)는 딱히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회생활이 너무 힘든 사람들, 나이가 들수록 적응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사람들의 속마음과 인간관계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은 코로나19로 사회성과 관계력이 퇴화하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받으며 출간 이후 단기간 내에 1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역자 : 김해용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편집자로 일하며 다수의 일본 소설과 만화를 번역하고 편집했다. 주요 번역 작품으로, 이사카 고타로의 『AX』, 미야베 미유키의 『브레이브 스토리』, 『퍼펙트 블루』, 오쿠다 히데오의 『버라이어티』, 『방해자 1~3』, 『나오미와 가나코』, 이시다 이라의 『도쿄 돌』, 『슬로 굿바이』, 마미야 유리코의 『존댓말로 여행하는 네 명의 남자』, 히구치 타쿠지의 『내 아내와 결혼해주세요』, 다니 미즈에의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1~4』,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지성만이 무기다』,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도라에몽 : 진구의 달 탐사기』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지성만이 무기다』, 『도라에몽 : 진구의 달 탐사기』, 『신공룡 도감 : 만약에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모로 산다는 것 - 왕권과 신권의 팽팽한 긴장 속 조선을 이끌어간 신하들의 이야기, 개정판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킹메이커 정도전부터 실학자 정약용까지 각자의 개성으로 조선을 받쳤던 대들보, 신권에 대한 탐구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효력이 있다. 리더십과 팔로워십은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바른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모로 산다는 것 - 왕권과 신권의 팽팽한 긴장 속 조선을 이끌어간 신하들의 이야기, 개정판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 시대는 왕정이었지만 신권 정치라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왕이라고 해도 중요 정책을 혼자서 독단적으로 해나갈 수 없는 정치제제였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이미 정설로 굳어졌고, 많은 역사 비평가들도 이에 동조한다. 신권 정치는 조선의 기본 틀을 만든 정도전에게서 비롯된다는 것. 삼봉 정도전은 고려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나라 조선의 건국에 기본 틀을 마련하고 온 힘을 기울여 신하들의 정치를 강조했다.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서양 입헌 민주주의에서 많이 듣던 말이다. 조선은 이처럼 왕은 상징적인 존재일 뿐 실제는 대신들이 논의해 정책을 추진한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의회 민주주의에서 이 같은 정치 체제를 확인할 수 있다. 518년이란 거의 전무후무한 한 왕조의 지속 기간은 인류 역사에서 찾기 힘들다. 특히 서로를 침략해 국력을 신장하려 했던 근대 이전에 신권 정치가 가능했을지를 세심하게 살피기 위해 저자는 조선의 왕 27명의 참모(대신)들의 능력을 탐구한다. 이 책의 발간 취지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최고 전문가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저자 신병주는 전작 『왕으로 산다는 것』을 통해 이미 신권 정치 가능 여부의 발판을 마련한 바 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역사학의 탐구 이유다. 전작 『왕으로 산다는 것』에서 저자는 ‘조선의 리더십에서 국가경영의 답을 찾다’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시대는 달라도 한 나라를 이끄는 인물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국민에 의해 그 생명을 마감한 것처럼, 조선 시대에도 신임을 잃은 통치자는 왕위에서 끌어내려졌다. 시대의 흐름과 백성의 요구에 부응했던 왕은 성군으로 남았고, 그에 역행했던 왕은 혼군으로 기록됐다. 한 번의 큰 진통을 겪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오늘날 지금 여기서, 우리가 역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저자는 전작 『왕으로 산다는 것』을 통해 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의 27명 왕 대부분을 조명했다.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왕이 된 후 펼친 정책, 그 곁에 있었던 참모들, 왕의 라이벌 등 주요한 사건과 인물들에 대해 세밀하게 탐구했다.

 


 

매 순간 역사의 갈림길에 섰던 이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 이유와 결과는 무엇인지 지켜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현재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곳에 필요한 해법과 이곳에 필요한 리더에 대해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이 저자를 전작 집필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조선의 왕 27명의 면면과 자질, 참모의 역할과 한계 등을 전작을 통해 날줄과 씨줄처럼 교차 확인한 셈이다. 이에 『참모로 산다는 것』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왕의 잘잘못만으로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신하들의 책임도 막중하다는 의미다. 왕에 대한 연구만으로는 조선 시대 518년의 역사를 모두 조명하기도 힘들다. 이 책은 왕을 도와 조선을 이끌어간 참모를 중심으로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본 조선의 역사이고 이 책의 발간 이유다. 이 책과 전작은 모두 개정판이다. 『왕으로~』는 2017년, 『참모로~』은 2019년 각각 첫 출간됐다. 이번 책은 전작과 함께 모두 개정판이다. 그만큼 인기가 있었단 이야기일 것이다. 아니면 현재 대한민국의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정치는 바뀌지 않은 데서 비롯된 개정판 출간인지는 독자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500년 전의 조선시대, 시간적 거리가 무색할 만큼 정치가 움직이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 정치를 닮아있다고 많은 역사가들은 말한다. 조선 후기 당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왕의 참모이면서 당파의 핵심 인물로 활동한 참모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오늘날의 시대에도 여전히 리더와 그 참모들의 갈등은 당쟁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다. 예법과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 드러나는 이권 다툼과 자신들의 권한을 유지하기 위한 팽팽한 이해관계는 어느 시대에나 공통된 모습이었다. 이 책에서는 조선을 대표하는 참모들의 등장 배경과 활동, 그리고 그들의 삶이 현재에 주는 의미를 담았다고 저자는 밝힌다.

 


 

건국과 창업의 시기에 개혁을 진두지휘한 킹메이커 정도전을 시작으로 세종 시대와 성종 시대를 거치면서 문물과 제도의 정비에 기여한 한명회·신숙주·서거정,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은 전란의 시기 전쟁 극복에 힘을 다한 유성룡·최명길·장만, 당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 당파의 수장이자 왕의 참모로 활약한 송시열·김석주 등이 이 책에서 소개되는 주요 인물이다. 조선시대 굵직했던 사건을 중심으로 모두 7개의 장(章)로 나누어 대표적인 42명의 참모를 다루었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신권 정치의 실제와 현실적 가능 여부를 결과를 놓고 따져 본다.

조선 전기에는 킹메이커형 참모들이 다수 탄생하였다. 태조의 정도전, 태종의 하륜, 세조의 한명회와 신숙주 등이 대표적이다. 1장 「새 왕조를 설계하다」에서는 건국의 최대 공로자였지만 신권 중심주의를 주장하다 결국 제거되는 운명의 정도전을 소개한다. 정도전은 고려 말에는 혁명가로, 혁명을 성공시킨 후에는 조선왕조의 설계자로 생애를 마쳤다. 그가 태조를 도와 구상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은 500년 이상 왕조가 존속하는 기반이 되었다. 또 이방원이 왕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하륜, 세종과 함께 태평의 시대를 이끌었던 황희, 신분을 넘어 과학 조선을 이끈 장영실, 죽음으로 단종을 지키고자 한 사육신 성삼문, 성삼문과는 엇갈린 행보를 보이며 역사에 변절자로 남았지만 누구보다 유능했던 관료 신숙주를 다루었다. 특히 세종은 자신을 돕는 참모형 인재들을 적극 발탁하였다. 천민 출신의 과학자 장영실, 명재상 황희, 집현전의 중심 성삼문이 그들이다.

“군자 만년 큰 복을 누리리라” 경복궁의 이름에 들어 있는 뜻이다. 조선왕조를 설계한 킹메이커, 정도전이 정했다. 뿐만 아니라 각 전각의 이름 역시 정도전이 지었다고 한다. 왕의 공식 대외 행사를 집전하는 근정전, 왕비의 〈교태전〉도 마찬가지다.

 

 

“경의 자신을 위한 계획은 좋으나, 나의 의중은 어찌하려는 것인가?” 거듭 사직을 청했지만 집에 누워서 업무를 처리해도 좋다며 왕이 끝까지 곁에 두었던 명재상, 황희는 세종대의 충신이고 청백리의 상징으로 우리 기억에 남아 있다. 네 번의 사화라는 정치적 시련기 속에서도 묵묵히 학문에 전념한 왕의 스승, 이황도 왕으로부터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상서로운 구름 같은 것이 선생의 덕이요, 꾸미지 않고 소박한 것은 선생의 글이다“는 찬사들 받았다. 천민이지만 놀랍도록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 장영실은 태종이 발탁해 세종 시대에 참모로 활약했다. 그가 만든 자격루를 보고 세종이 “원나라 순제 때에 저절로 치는 물시계가 있었다 하나, 만듦새의 정교함이 아마도 영실의 정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다"고 거듭 칭송했다고 세종실록지리지는 왕의 말을 남겼다.

2장 「국가의 기틀을 다지다」에서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조화와 균형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성종은 서거정, 김종직, 김일손 등에게 고르게 역할을 맡겨 15세기 제도와 문물 정비를 완성하였다. 이 책은 조선 초기 최고의 문장가이자 관중과 포숙의 관계였던 서거정과 강희맹을 참모이자 문장가의 관점에서 살폈고, 간신·칠삭둥이 등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세조를 보좌하는 노련한 정치가의 면모를 보인 한명회, 피비린내 나는 무오사화의 발단이 된 〈조의제문〉을 쓴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과 그의 제자 김일손, 『악학궤범』을 편찬한 대표적인 예술 분야의 참모 성현을 다루었다.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반정에 의해 쫓겨난 왕에게도 참모는 있었지만, 왕의 판단을 더욱 흐리게 하는 간신이었다. 장녹수, 임사홍, 김개시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불통의 리더십을 보인 왕들을 더욱 혼군의 길로 가게 하였다.

 


 

3장 「폭군의 실정에 흔들리다」에서는 실록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연산군의 마음을 뒤흔든 시세 참모 장녹수, 폭정에 기름을 부은 간신 임사홍과 '대은암' 속 익살스러운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중종의 간신으로 기억되는 남곤, 중종의 절대적인 총애를 받다가 ‘주초지왕’의 역모 혐의를 쓰고 나락으로 떨어진 조광조, 호남 사림의 자존심 김인후와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으로 활약한 조식을 다루었다. “경상도관찰사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지만 장악원의 제조는 성현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악학궤범』을 편찬한 음악과 예술 분야 최고의 참모, 성현을 칭송하는 말을 왕에게 간언했다. 권력에 눈이 멀어 사림파 학자들을 어육으로 만든 기묘사화의 주동자, 남곤은 역사에 남을 추문과 오명을 경계하듯 "나의 원고를 불태워다오“란 말로 자신의 잘못을 알고도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결국엔 몰락의 길을 갔던 사람으로 역사에 오명을 남기고 만다. 남곤은 글을 잘 쓰고 문장이 훌륭했지만 이를 권력과 사용에 쏟은 결과로 역사에는 오명을, 문학과 훌륭한 지식은 모두 불에 타 날려버렸다.

4장 「임진왜란, 조선의 위기를 겪다」에서는 동인과 서인의 당쟁으로 비화되기도 했던 ‘십만양병설’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중심으로 선조 시대 최고의 참모 율곡 이이를 살폈고, 선조와 애증의 관계, 가사문학 분야에서 수많은 작품을 남긴 정철, 문신이자 돌격적인 의병장 조헌, 일본 장수 일본 이름 ‘사야가’에서 조선의 충신이 된 김충선, 7년에 걸친 임진왜란 과정을 『징비록』으로 남긴 유성룡을 다루었다. 국운이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린 임진왜란이나 정묘호란, 병자호란과 같은 국가적 위기의 시기에도 왕을 보좌하면서 이를 극복하는 리더십을 보인 참모들이 있었다. 유성룡처럼 영의정으로서 전시 정부를 이끌어간 인물, 조헌처럼 의병장으로 직접 행동한 인물, 이덕형과 같이 외교적 능력으로 위기를 해결한 인물들이 주요 업적과 함께 탐구돼 여기에 실렸다.

 


 

5장 「광해군의 그늘 속 참모들」에서는 우리가 어렸을 때 교과서에서 익힌 인물 '한음과 오성'이 나타난다.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을 유지했던 뛰어난 외교 참모 이덕형, 그 개혁적인 성향으로 실록에 매우 부정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홍길동전』의 허균, 인조반정 이후 사라진 북인 세력의 중심 광해군의 남자 정인홍, 상궁의 신분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한 광해군의 참모 김개시, 조선의 관료로서 최고위 직책인 영의정을 여섯 번 지낸 이원익을 다루었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도 국방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예지자, 율곡 이이는 “나의 몸은 다만 나라를 위할 뿐이다. 만약 이 일로 인하여 병이 더 심해져도 역시 운명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것으로 충정으로 참모의 역할에 온 힘을 기울인 명신이었다. 또 임진왜란 당시 왜군 선봉장에서 누구보다 충직한 조선 장군이 된 귀화인, 김충선에 대해 “바다를 건너온 모래를 걸러 금을 얻었다”고 칭송했다는 기록도 저자가 찾아내 여기에 남겼다.

조선 시대 역사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의 역사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인물이 어떤 행동을 했는가만 아니라 언동(말)까지도 전부 기록한 위대한 문화유산도 남겼다. “어떻게 하면 국사를 담당하여 김육과 같이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 말만 들어도 실물 경제 감각을 갖추고 조선에 화폐를 유통한 경제 관료 학자, 김육이 고심하고 총력을 기울였던 조선 시대 경제 회생을 위해 헌신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누구보다 잘 알려진 정약용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수없이 등장한다고 한다. 그는 엄청난 지식과 백성을 위한 정치의 근본을 알고, 왕에게 간언하고, 정책에 내놓고, 왕이 명하면 이를 기어코 완수해내는 명 참모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인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아무리 요순의 법이라도 실시할 곳이 없을 것이다”란 말을 남겨 유배의 아픔을 학문으로 승화했다.

 


 

6장 「명분과 실리 사이, 인조반정」에서는 광해군의 폭정에 반정을 일으켜 왕의 자리에 오른 인조를 중심으로 명과 청의 갈등 속에서 조선이 처한 상황과 병자호란의 과정과 극복을 다루었다. 선조에서 인조에 이르는 시기는 장만과 같이 국방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참모도 있었으며, 최명길처럼 명분론보다 실리론을 관철시켜 병자호란의 희생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공헌한 참모도 있었다. 마지막 장인 7장 「당쟁의 시대와 실학」에서는 비상한 실물 경제 감각을 토대로 수차·화폐 등을 도입하여 민생의 안정을 꾀했던 경제학자 관료 김육, 서인과 남인이 치열하게 대립하던 숙종시대 정치공작의 달인 김석주, 독특한 글씨 풍으로도 알려져 있는 소신과 원칙의 학자 허목, 정치와 사상의 중심이자 신권의 핵심이었지만 숙종에게 사약을 받은 송시열, 현실적인 정치가이자 『구수략』을 쓴 조선시대 최고의 수학자 최석정, 개혁정치를 추구하던 정조의 참모이자 실학자로 이름을 남긴 정약용 등을 다루었다. 특히 피폐해진 민생 경제 회복을 우선적으로 추진한 참모로는 김신국, 조경, 김육 등을 소개했다. 이들은 독자로서는 많이 듣지 못한 이름들이지만 이 책을 통해 되어 어느 정도 접근해갈 좋은 기회였다.

저자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말한다. 최측근에서 왕을 보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철저히 견제하기도 했던 조선시대 참모들의 모습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의미를 제공할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참모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서 정치적, 학문적 능력을 발휘하거나 국난을 극복한 인물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왕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결과적으로는 국정 농단의 주역이 된 참모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참모들의 모습에서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왕조시대가 끝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사회가 도래했지만, 조선시대 참모들이 갖추었던 덕목들은 반복이라는 역사의 속성 앞에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는 물론 조선을 공부해야 하는 목적을 가진 학생들을 위해서도 쉽고 재미있고 정확하게 조선의 역사를 한눈에 알려주는 유용한 지침이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김신국의 경제정책은 양전의 철저한 시행으로 농업경제의 기반을 튼튼히 한 바탕에서 국가의 비용을 절감하는 절제와 생산 확대를 통한 국부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안이었다. 이것은 화폐유통과 함께 국용을 절제하고, 어업과 염업과 같은 바다에서 생산되는 이익을 국가재정으로 적극 확보하려는 정책에서도 두드러진다. 김신국은 고려 성종 대 이래로 화폐를 사용한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한 후, 외국과는 달리 우리만 쌀이나 옷감으로 유통한다면 백성이 곤궁하고 국가가 가난해진다고 파악하였다. 그는 ‘주식환무지법(酒食換貿之法)'을 제정하여 배고픈 사람들이 동전을 가지고 시장에서 쉽게 술 마시고 먹을 수 있게 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즐길 때 동전 사용의 묘미를 알 것이라 하였다. 김신국의 건의는 인조에 의해서 수용되어 그해 11월에 호조의 요청으로 인경궁에 주전청을 설치하고 동전의 주조 사업에 착수하였다. 김신국은 성중에 가게를 설치하고 술과 음식을 동전으로 사고팔게 하는 등 동전 유통의 현실성까지 미리 검토하였다. 17세기 중엽에는 강화·교동·연백 등 개성을 중심으로 중국 동전이 원활히 유통되고 의주와 안주 등 중국 접경 지역에서도 동전이 유통되었다. 숙종 대에 이르러 상평통보가 전국에 널리 유통되는데, 이러한 유통의 기반에 김신국과 같은 선구적인 관료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p.370)

 

저자 : 신병주(申炳周)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조선시대사학회 회장,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문화재청 궁능활용 심의위원, 외교부 의전정책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고 있으며, 역사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BS <역사저널 그날>, KBS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을 진행했으며, JTBC <차이나는 클라스> ‘매뉴얼의 힘, 조선 왕실 의궤’, ‘조선시대의 전염병과 리더십’, ‘연산군과 광해군’ 편에 출연했다. 현재 KBS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왕비로 산다는 것》, 《참모로 산다는 것》, 《조선 산책》, 《왕으로 산다는 것》, 《한 권으로 읽는 쇄미록》, 《56개의 공간으로 읽는 조선사》, 《책으로 읽는 조선의 역사》, 《조선 왕실의 보물, 의궤》, 《조선평전》,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조선을 움직인 사건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치울의 리듬
호원숙 지음 / 마음의숲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 박완서의 옛집 아치울에 가면 그의 딸 호원숙 작가가 엄마처럼 꽃을 가꾸고 글을 쓴다. 모녀간 서로의 문장은 사뭇 다르다. 호원숙 작가는 엄마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쓰지만 엄마의 문체가 아닌, 자신만의 글쓰기로 일정한 틀을 정하지 않아 자유분방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이끌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치울의 리듬
호원숙 지음 / 마음의숲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 박완서 작가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 그의 문학은 한국문단사에 적지 않은 발자취를 남겼다. 마흔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문단에 데뷔해서 그동안 못 쓴 것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놀랄 만한 작품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그의 문학은 전쟁 당시의 상황을 다룬 『나목』을 시작으로, 중산층의 삶을 다룬 『휘청거리는 오후』 등의 소설을 비롯해 억압받는 여성 문제를 다룬 『살아 있는 날의 시작』 등 작품 영역도 점차 확대되며 한국 문단의 중심축으로 우뚝 섰다. 이후 추리소설의 기법으로 씌어진 『욕망의 응달』, 독립투사와 친일파의 자손 문제를 다룬 『오만과 몽상』, 자신의 인생을 소재로 한 자전적 소설이자 대표작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을 발표함으로써 독자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말년의 작품들은 그 동안 갈고닦아 온 날카로운 안목과 글솜씨의 정수가 그득한, 이른바 노년문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1980년 『그 가을의 사흘 동안』으로 한국문학작가상을, 81년 『엄마의 말뚝 2』로 이상문학상을, 90년과 91년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상과 이산문학상을, 93년 중앙문화대상을, 같은 해에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현대문학상을, 94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으로 동인문학상을, 95년 『환각의 나비』로 한무숙문학상을, 97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대산문학상을, 99년 『너무도 쓸쓸한 당신』으로 만해문학상을, 2000년 인촌상을, 2001년 『그리움을 위하여』로 황순원문학상을, 2006년 호암상을 수상하는 등 대한민국 문학상의 거의 휩쓸다시피 상복도 많았다.

2006년에는 전쟁 때문에 졸업하지 못했던 모교 서울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 수여를 제의하여 받아들였다. 서울대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한국인으로서는 7번째라고 한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에 시위대와 정부 양쪽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 때문에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양쪽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중도의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케이스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정부를 믿는다고 발언하였고, 4대강 정비 사업에 대하여는 정부가 잘 설명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등 사회·정지 문제에도 소설가로서, 지식인으로서 소신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박완서 작가는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학사 쪽에서, 여성 문학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선언한 작가라고 여겨도 무방하다. 물론 그녀 이전에 여성 문학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은희경, 공지영, 배수아, 김애란, 김숨, 황정은, 편혜영, 신경숙, 한강 등 여성 문학가들의 등장이 이루어지기 전의 시대에는 월등히 여성 문학가보다는 남성 문학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자전적인 세계 의식이 문학에 녹아 들어간 『나목』으로 등단한 이후 그녀는 남편과 아들이 사망하였을 당시에 잠시 절필했던 때를 제외하고 매년 쉬지 않고 집필 활동을 했다.

박완서의 글은 자전적인 체험 의식을 바탕으로 해서 쓰인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전부의 문학이 그런 것은 아니나, 작가 자신의 일생을 바꿀 정도로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던 6·25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유독 많다는 점을 들어서 '소설'이라기보다는 자전적 회고에 가까운 '수필형 소설'이라는 평가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지나치게 한쪽 방향으로 보는 시각으로, 박완서라는 작가는 자전적 체험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 단위인 '가족'을 통해 시대와 국가,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을 날카롭게 해부해낸 작가라는 게 많은 평론가들의 평가이다. 6·25에 대한 자전적 체험 뿐만 아니라, 익히 알려진 분단국가로서의 현실, 가부장적 가정 구도, 전후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반공주의, 여성, 중산층 등 6·25 전후를 비롯하여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 아래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예리하게 관찰한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가 6·25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듯한 생애의 전환점을 맞이했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그의 문학 깊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으로 독자는 판단하고 있다.

 


 

1984년에 가톨릭 세례성사를 받고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지냈다. 남편과 폐암으로, 같은해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묵주를 집어던지며 슬픔을 쏟아냈던 박완서 작가는 한때 개종하겠다고 선언할 만큼 생애 가장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이때 쓴 일기 묶음이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 딸이자 이 에세이의 저자 호원숙이 전한다. .2011년 1월 22일, 경기도 구리시 자택에서 담낭암 투병 중 향년 80세로 타계했다. 그는 평소 자신이 죽은 후 찾아오는 가난한 문인을 잘 대접하고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말라 당부했다고 한다. 묘는 남편과 아들이 묻힌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 있다. 많은 작품들이 경기도 구리에는 아치울천을 따라 동서로 길게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인 아치울마을에서 씌였다. 박완서 작가가 타계 직전까지 글을 쓰며 살았던 '아치울마을'. 이 책은 그의 맏딸인 수필 작가 호원숙의 에세이집이다.

"바라보는 것이 영감을 주었고 아름다웠으므로 그때그때 잊지 않기 위해 쓰게 되었다. 스쳐 지나가는 자연과 좋은 인연의 사람들, 일용할 양식들의 감촉을 기록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일상이 촘촘히 담겨 있다. 어머니가 세계문학전집을 들여주셨던 어린 날의 기억, "마당에 오는 봄"을 지켜본 2월 중순 어느 날,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보고 느낀 소감까지 다루는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도'에서는 전쟁의 비극에 관해 이야기하고 '프랑스 수도원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이태원 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 영혼들을 떠올리며 탄식한다.

딸이 아닌 '문학팬'으로서 모친을 사랑했던 순간들도 섬세하게 기록돼 있다. 저자는 원고 심부름을 하던 어린 시절을 "뿌듯하고 거룩했다"고 회상한다. "원고를 미리 꺼내 읽지 않았다. 나의 임무는 오직 충실한 배달부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원고에 대한 경외감, 비밀문서와 같은 떨리는 은밀함도 있었다"면서다.

 


 

박완서의 노란집이 있던 아치울. 타계하기 직전까지 집필하던 이곳에서 모친 박완서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쓴 호원숙 작가가 박완서와는 사뭇 다른 문장을 만들어내며 아치울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틀이나 짜임새의 구성없이 쓴 글,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주제를 만들어내지 않는 문장, 이것이 호원숙 작가의 글쓰기다. 구태여 어떤 메시지를 던지거나 작위적으로 글을 꾸며내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진솔하게 고백함으로써 그 안팎에 담긴 세계를 조명하게 만든다. 『아치울의 리듬』에서는 아치울에 사는 새와 나무와 구름이 펼쳐내는 리듬처럼 저자의 일상 다이어리가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풍경으로 펼쳐진다.

박완서는 한국 문학의 대표 격인 작가로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지만 딸 호원숙에게는 엄마이자 글을 쓸 계기를 주신 스승이다. 아치울에서 엄마 일을 돌보며 틈틈이 글을 써오는데, 어느 날 박완서는 호원숙만이 가지고 있는 글쓰기의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며, 그 재능이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완서가 언급한 재능이자 호원숙만의 글쓰기는 어떤 구성이나 얼개, 틀을 짜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이다. 쥐어짜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쉽게 술술 풀어가지만 결국 그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또 다른 새로운 형식의 자유로운 구성이 형성되는(plot free writing) 이야기다.

경가회 카페부터 오랫동안 호원숙의 글을 읽어준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편안하게 안정시켜주면서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글!’, ‘무심히 바라보았던 일상의 사물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는 이야기’. 매일 글을 쓰는 작가 호원숙은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일상을 포착하여 그 속의 의미를 발굴하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사물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이야기를 작가의 스타일로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 가져다 놓는다.

 


 

굳이 주제나 메시지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그 사물 자체에 담겨있는 자연스러움과 서정이 저절로 구성과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작가 호원숙의 글쓰기는 사랑 받고 자란, 곱게 자란 공주의 글쓰기 같다. 호원숙의 글을 읽은 독자들은 편안한 마음을 느끼기 때문에 때로는 쉽고 일기 같기도 하다. 이와 함께 호원숙의 글쓰기는 새로움을 지향하거나 특별함을 꾸며내지 않고 아치울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나가는 일상들을 기록하는 행위다. 이 책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 짧은 일상의 단편들이다.

이 책 『아치울의 리듬』에서 '리듬'은 자신의 삶을 정확히 알 때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내가 살아온 환경, 내가 영향 받았던 존재, 내가 현재 영향 받고 있는 존재를 정확히 알 때 언어로써, 삶으로써 리듬이 나온다. 호원숙 작가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글을 쓰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낸다. 아치울에서 지냈던 향토가 묻어나고 사물이 등장하고 그에 따른 마음이 드러난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은 아마도 호원숙 작가만이 그려내는 세계관에 따스함을 느끼기도 할 것이고, 또 아련한 감정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호원숙 작가는 슬픔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를 지녔다. 끝까지 응시하며 끝내 삶의 진실에 도달한다. 이러한 작가로서의 태도는 “어머니는 용감하고 아슬아슬하게 그 시대를 증언하였으니까”라는 책의 문장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진실에 있어서 태도를 굽히지 않았던 어머니의 태도를 호원숙 작가도 물려받은 것이다. 그 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리듬을 형성하고 세계관을 구축해낸다. 이곳에 초대된 독자들은 박완서 작가에 대한 향수도, 호원숙 작가가 만들어내는 언어적인 공간도, 아치울에서 만나는 사물들의 이야기도 전해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도 독실한 천주교인이다. 어머니 박완서의 영향이 컸을 듯하다. 종교를 믿는 일은 다양한 믿음과 연결될 수 있겠지만 그는 기도의 힘을 믿는 종교인인 것 같다. "기도는 내 주변 사람을 향할 수도 있고 더 먼 인류를 향할 수도 있다. 그 힘은 사랑이라는 구심점을 바탕으로 멀리 뻗어나간다. 아치울에서 시작된 사랑은 멀리 인류애로 뻗어나간다."고 저자는 말한다.

 

"요즘은 인류를 사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 또 내 자신을 온전히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아. 나는 바보처럼 그래서 주님의 사랑이 필요하구나 하며 중얼거리지. 내가 사랑으로 충만해야 사랑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어린아이처럼 간구하게 되나 봐. (…) 그리고 나는 주님께 분별력을 주십사 기도해. 세상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폭력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지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지 물어본단다. 주님은 어떤 방법으로라도 깨달음과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p.269)

 

이 세상에는 부조리와 폭력의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호원숙 작가는 그들의 상처와 슬픔에 눈을 떼지 않으며 애도하고 기도한다.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도〉에서 전쟁의 비극을 살피고 〈프랑스 수도원의 친구에게〉에서 “죽은 젊은 영혼들을 어찌할 것인가. 기도할 수밖에 없었어”(p.243)라고 말하며 이태원 참사를 살핀다. 기도는 그들의 사후를 기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남아있는 이들의 마음을 보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호원숙 작가의 기도 어린 문장들이 아직 끝나지 않은 참사의 순간들에 온전히 닿길 바란다. 진실된 마음은 종종 머나먼 곳까지 도착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사례를 지켜본 전례가 있음을 잊지 않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마당에 피어나는 꽃들을 색연필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린 그림이 어머니 책의 삽화로 들어가기도 했고 제 책의 표지로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전문적으로 단련한 것도, 늘 그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쑥스러웠지만 꿈꾸던 일이었습니다.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그리거나 작은 상 위에서 그립니다. 이웃에 제 그림을 봐주며 늘 칭찬만 해주는 미술 선생님이 계십니다.

나무나 꽃뿐만 아니라 아끼던 물건, 예를 들어 어머니가 신던 신발이라든가 멋진 사다리, 갈치 목에 걸린 낚시 바늘, 생선 뼈, 고장 나서 버리게 된 커피 그라인더 같은 것을 그리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우습지요. 요즘에는 파스텔로 콤포지션을 시도해 보았고 이번 책의 표지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흐름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작은 그림이라도 그리면서 위대한 화가의 그림이 왜 훌륭한 것인지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 〈예스24〉 호원숙 작가 인터뷰 중에서

 

저자 : 호원숙

 

어머니 박완서와 아버지 호영진의 맏딸로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고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나왔다. 『뿌리 깊은 나무』의 편집 기자로 일했고, 첫아이를 갖고부터 전업주부로 살다가 1992년에는 박완서의 일대기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을 썼다. 현재는 모교의 경운박물관 운영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월간 『샘터』의 에세이 필자 중 한 사람이다. 언젠가부터 그는 자신이 떠올렸던 것과 똑같은 구절을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발견할 때마다 ‘이제는 망설이지 말고 네가 먼저 써보라고’ 하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터넷 한쪽에서 ‘아침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1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치울에 머물며 『박완서 소설 전집』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등을 출간하는 데 관여했으며, 박완서 대담집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박완서의 말』을 엮었다. 일상에서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는 것 자체로도 큰 기쁨을 느낀 그는 2006년 첫 산문집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를 통해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마련해 준 세계 문학 전집을 보았을 때부터 꿈꾸고 그리워했던 문학에 한 발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 밖에 쓴 책으로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그리운 곳이 생겼다』 등이 있다. 띵 시리즈에 「엄마 박완서의 부엌」으로 참여했으며 '보신탕'을 싫어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