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울의 리듬
호원숙 지음 / 마음의숲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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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완서 작가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 그의 문학은 한국문단사에 적지 않은 발자취를 남겼다. 마흔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문단에 데뷔해서 그동안 못 쓴 것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놀랄 만한 작품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그의 문학은 전쟁 당시의 상황을 다룬 『나목』을 시작으로, 중산층의 삶을 다룬 『휘청거리는 오후』 등의 소설을 비롯해 억압받는 여성 문제를 다룬 『살아 있는 날의 시작』 등 작품 영역도 점차 확대되며 한국 문단의 중심축으로 우뚝 섰다. 이후 추리소설의 기법으로 씌어진 『욕망의 응달』, 독립투사와 친일파의 자손 문제를 다룬 『오만과 몽상』, 자신의 인생을 소재로 한 자전적 소설이자 대표작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을 발표함으로써 독자들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말년의 작품들은 그 동안 갈고닦아 온 날카로운 안목과 글솜씨의 정수가 그득한, 이른바 노년문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1980년 『그 가을의 사흘 동안』으로 한국문학작가상을, 81년 『엄마의 말뚝 2』로 이상문학상을, 90년과 91년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상과 이산문학상을, 93년 중앙문화대상을, 같은 해에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현대문학상을, 94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으로 동인문학상을, 95년 『환각의 나비』로 한무숙문학상을, 97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대산문학상을, 99년 『너무도 쓸쓸한 당신』으로 만해문학상을, 2000년 인촌상을, 2001년 『그리움을 위하여』로 황순원문학상을, 2006년 호암상을 수상하는 등 대한민국 문학상의 거의 휩쓸다시피 상복도 많았다.

2006년에는 전쟁 때문에 졸업하지 못했던 모교 서울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 수여를 제의하여 받아들였다. 서울대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한국인으로서는 7번째라고 한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에 시위대와 정부 양쪽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 때문에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양쪽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중도의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케이스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정부를 믿는다고 발언하였고, 4대강 정비 사업에 대하여는 정부가 잘 설명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등 사회·정지 문제에도 소설가로서, 지식인으로서 소신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박완서 작가는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학사 쪽에서, 여성 문학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선언한 작가라고 여겨도 무방하다. 물론 그녀 이전에 여성 문학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은희경, 공지영, 배수아, 김애란, 김숨, 황정은, 편혜영, 신경숙, 한강 등 여성 문학가들의 등장이 이루어지기 전의 시대에는 월등히 여성 문학가보다는 남성 문학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자전적인 세계 의식이 문학에 녹아 들어간 『나목』으로 등단한 이후 그녀는 남편과 아들이 사망하였을 당시에 잠시 절필했던 때를 제외하고 매년 쉬지 않고 집필 활동을 했다.

박완서의 글은 자전적인 체험 의식을 바탕으로 해서 쓰인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전부의 문학이 그런 것은 아니나, 작가 자신의 일생을 바꿀 정도로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던 6·25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유독 많다는 점을 들어서 '소설'이라기보다는 자전적 회고에 가까운 '수필형 소설'이라는 평가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지나치게 한쪽 방향으로 보는 시각으로, 박완서라는 작가는 자전적 체험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 단위인 '가족'을 통해 시대와 국가,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을 날카롭게 해부해낸 작가라는 게 많은 평론가들의 평가이다. 6·25에 대한 자전적 체험 뿐만 아니라, 익히 알려진 분단국가로서의 현실, 가부장적 가정 구도, 전후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반공주의, 여성, 중산층 등 6·25 전후를 비롯하여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 아래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예리하게 관찰한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가 6·25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듯한 생애의 전환점을 맞이했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그의 문학 깊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으로 독자는 판단하고 있다.

 


 

1984년에 가톨릭 세례성사를 받고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지냈다. 남편과 폐암으로, 같은해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묵주를 집어던지며 슬픔을 쏟아냈던 박완서 작가는 한때 개종하겠다고 선언할 만큼 생애 가장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이때 쓴 일기 묶음이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 딸이자 이 에세이의 저자 호원숙이 전한다. .2011년 1월 22일, 경기도 구리시 자택에서 담낭암 투병 중 향년 80세로 타계했다. 그는 평소 자신이 죽은 후 찾아오는 가난한 문인을 잘 대접하고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말라 당부했다고 한다. 묘는 남편과 아들이 묻힌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 있다. 많은 작품들이 경기도 구리에는 아치울천을 따라 동서로 길게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인 아치울마을에서 씌였다. 박완서 작가가 타계 직전까지 글을 쓰며 살았던 '아치울마을'. 이 책은 그의 맏딸인 수필 작가 호원숙의 에세이집이다.

"바라보는 것이 영감을 주었고 아름다웠으므로 그때그때 잊지 않기 위해 쓰게 되었다. 스쳐 지나가는 자연과 좋은 인연의 사람들, 일용할 양식들의 감촉을 기록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일상이 촘촘히 담겨 있다. 어머니가 세계문학전집을 들여주셨던 어린 날의 기억, "마당에 오는 봄"을 지켜본 2월 중순 어느 날,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보고 느낀 소감까지 다루는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도'에서는 전쟁의 비극에 관해 이야기하고 '프랑스 수도원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이태원 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 영혼들을 떠올리며 탄식한다.

딸이 아닌 '문학팬'으로서 모친을 사랑했던 순간들도 섬세하게 기록돼 있다. 저자는 원고 심부름을 하던 어린 시절을 "뿌듯하고 거룩했다"고 회상한다. "원고를 미리 꺼내 읽지 않았다. 나의 임무는 오직 충실한 배달부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원고에 대한 경외감, 비밀문서와 같은 떨리는 은밀함도 있었다"면서다.

 


 

박완서의 노란집이 있던 아치울. 타계하기 직전까지 집필하던 이곳에서 모친 박완서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글을 쓴 호원숙 작가가 박완서와는 사뭇 다른 문장을 만들어내며 아치울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틀이나 짜임새의 구성없이 쓴 글,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주제를 만들어내지 않는 문장, 이것이 호원숙 작가의 글쓰기다. 구태여 어떤 메시지를 던지거나 작위적으로 글을 꾸며내지 않고 자기 자신을 진솔하게 고백함으로써 그 안팎에 담긴 세계를 조명하게 만든다. 『아치울의 리듬』에서는 아치울에 사는 새와 나무와 구름이 펼쳐내는 리듬처럼 저자의 일상 다이어리가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풍경으로 펼쳐진다.

박완서는 한국 문학의 대표 격인 작가로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지만 딸 호원숙에게는 엄마이자 글을 쓸 계기를 주신 스승이다. 아치울에서 엄마 일을 돌보며 틈틈이 글을 써오는데, 어느 날 박완서는 호원숙만이 가지고 있는 글쓰기의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며, 그 재능이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완서가 언급한 재능이자 호원숙만의 글쓰기는 어떤 구성이나 얼개, 틀을 짜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이다. 쥐어짜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쉽게 술술 풀어가지만 결국 그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또 다른 새로운 형식의 자유로운 구성이 형성되는(plot free writing) 이야기다.

경가회 카페부터 오랫동안 호원숙의 글을 읽어준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편안하게 안정시켜주면서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글!’, ‘무심히 바라보았던 일상의 사물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는 이야기’. 매일 글을 쓰는 작가 호원숙은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일상을 포착하여 그 속의 의미를 발굴하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사물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이야기를 작가의 스타일로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 가져다 놓는다.

 


 

굳이 주제나 메시지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그 사물 자체에 담겨있는 자연스러움과 서정이 저절로 구성과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작가 호원숙의 글쓰기는 사랑 받고 자란, 곱게 자란 공주의 글쓰기 같다. 호원숙의 글을 읽은 독자들은 편안한 마음을 느끼기 때문에 때로는 쉽고 일기 같기도 하다. 이와 함께 호원숙의 글쓰기는 새로움을 지향하거나 특별함을 꾸며내지 않고 아치울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나가는 일상들을 기록하는 행위다. 이 책은 이렇게 해서 탄생한, 짧은 일상의 단편들이다.

이 책 『아치울의 리듬』에서 '리듬'은 자신의 삶을 정확히 알 때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내가 살아온 환경, 내가 영향 받았던 존재, 내가 현재 영향 받고 있는 존재를 정확히 알 때 언어로써, 삶으로써 리듬이 나온다. 호원숙 작가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글을 쓰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해낸다. 아치울에서 지냈던 향토가 묻어나고 사물이 등장하고 그에 따른 마음이 드러난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은 아마도 호원숙 작가만이 그려내는 세계관에 따스함을 느끼기도 할 것이고, 또 아련한 감정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호원숙 작가는 슬픔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를 지녔다. 끝까지 응시하며 끝내 삶의 진실에 도달한다. 이러한 작가로서의 태도는 “어머니는 용감하고 아슬아슬하게 그 시대를 증언하였으니까”라는 책의 문장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진실에 있어서 태도를 굽히지 않았던 어머니의 태도를 호원숙 작가도 물려받은 것이다. 그 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리듬을 형성하고 세계관을 구축해낸다. 이곳에 초대된 독자들은 박완서 작가에 대한 향수도, 호원숙 작가가 만들어내는 언어적인 공간도, 아치울에서 만나는 사물들의 이야기도 전해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도 독실한 천주교인이다. 어머니 박완서의 영향이 컸을 듯하다. 종교를 믿는 일은 다양한 믿음과 연결될 수 있겠지만 그는 기도의 힘을 믿는 종교인인 것 같다. "기도는 내 주변 사람을 향할 수도 있고 더 먼 인류를 향할 수도 있다. 그 힘은 사랑이라는 구심점을 바탕으로 멀리 뻗어나간다. 아치울에서 시작된 사랑은 멀리 인류애로 뻗어나간다."고 저자는 말한다.

 

"요즘은 인류를 사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 또 내 자신을 온전히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아. 나는 바보처럼 그래서 주님의 사랑이 필요하구나 하며 중얼거리지. 내가 사랑으로 충만해야 사랑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어린아이처럼 간구하게 되나 봐. (…) 그리고 나는 주님께 분별력을 주십사 기도해. 세상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폭력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지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지 물어본단다. 주님은 어떤 방법으로라도 깨달음과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p.269)

 

이 세상에는 부조리와 폭력의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호원숙 작가는 그들의 상처와 슬픔에 눈을 떼지 않으며 애도하고 기도한다.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도〉에서 전쟁의 비극을 살피고 〈프랑스 수도원의 친구에게〉에서 “죽은 젊은 영혼들을 어찌할 것인가. 기도할 수밖에 없었어”(p.243)라고 말하며 이태원 참사를 살핀다. 기도는 그들의 사후를 기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남아있는 이들의 마음을 보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호원숙 작가의 기도 어린 문장들이 아직 끝나지 않은 참사의 순간들에 온전히 닿길 바란다. 진실된 마음은 종종 머나먼 곳까지 도착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사례를 지켜본 전례가 있음을 잊지 않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마당에 피어나는 꽃들을 색연필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린 그림이 어머니 책의 삽화로 들어가기도 했고 제 책의 표지로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전문적으로 단련한 것도, 늘 그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쑥스러웠지만 꿈꾸던 일이었습니다.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그리거나 작은 상 위에서 그립니다. 이웃에 제 그림을 봐주며 늘 칭찬만 해주는 미술 선생님이 계십니다.

나무나 꽃뿐만 아니라 아끼던 물건, 예를 들어 어머니가 신던 신발이라든가 멋진 사다리, 갈치 목에 걸린 낚시 바늘, 생선 뼈, 고장 나서 버리게 된 커피 그라인더 같은 것을 그리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우습지요. 요즘에는 파스텔로 콤포지션을 시도해 보았고 이번 책의 표지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흐름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작은 그림이라도 그리면서 위대한 화가의 그림이 왜 훌륭한 것인지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 〈예스24〉 호원숙 작가 인터뷰 중에서

 

저자 : 호원숙

 

어머니 박완서와 아버지 호영진의 맏딸로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고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나왔다. 『뿌리 깊은 나무』의 편집 기자로 일했고, 첫아이를 갖고부터 전업주부로 살다가 1992년에는 박완서의 일대기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을 썼다. 현재는 모교의 경운박물관 운영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월간 『샘터』의 에세이 필자 중 한 사람이다. 언젠가부터 그는 자신이 떠올렸던 것과 똑같은 구절을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발견할 때마다 ‘이제는 망설이지 말고 네가 먼저 써보라고’ 하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터넷 한쪽에서 ‘아침 산책’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1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치울에 머물며 『박완서 소설 전집』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등을 출간하는 데 관여했으며, 박완서 대담집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박완서의 말』을 엮었다. 일상에서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는 것 자체로도 큰 기쁨을 느낀 그는 2006년 첫 산문집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를 통해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마련해 준 세계 문학 전집을 보았을 때부터 꿈꾸고 그리워했던 문학에 한 발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 밖에 쓴 책으로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그리운 곳이 생겼다』 등이 있다. 띵 시리즈에 「엄마 박완서의 부엌」으로 참여했으며 '보신탕'을 싫어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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