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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사는 게 힘들까? -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5월
평점 :
이 책 『나는 왜 사는 게 힘들까?』는 한 인물의 삶을 대상으로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40대에 들어선 교사로 학교와 학생 및 학부모들로부터 '좋은 교사'로 인정받고 있다. 학교에서 특별 지원 교육 업무를 맡고 있는 교사로 일하고 있다. 워커홀릭인 그녀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최근 건망증이 너무 심해져서 하지 않던 실수가 점점 늘어났다. 우산이나 안경, 지갑 같은 걸 어디 두었는지 자주 잊어버렸고, 가끔은 겨드랑에 물건을 낀 채로 어디 있는지를 찾는 경우도 많았다. 또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가 회의 시간이나 학생 면담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일까지 생겼다. 지금까지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잘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는데 이런 일들이 빈번해지자 그녀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급기야는 스스로 발달장애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이 여성은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까?
저자 오카다 다카시에 따르면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멀쩡하고 사회생활도 무난하게 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이 최근 많아졌다. 그런데 대부분 병원에 가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다.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어려워하는 사람, 언어적·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취약해서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소외감과 불안감 같은 불안장애를 느끼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저자는 ‘회피형 인간’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일본의 정신과 의사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바로 ‘그레이존’ 인간 유형이라고 설명한다. ‘그레이존(gray zone)’은 말 그대로 경계 영역에 해당된다는 뜻으로 자폐증이나 ADHD, 아스퍼거, HSP 등 발달장애와 비슷한 증세가 있지만 장애라고 진단 내리기는 힘든 사람들을 말한다.
그레이존의 유형은 매우 폭넓다고 한다. 성인 ADHD 증세를 겪거나, 항상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성공했으면서도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공허함이 강하거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거나, 조그마한 소리에도 움찔움찔 놀라거나, 운동신경이 너무 둔해서 사선으로 걷는다거나 하는 등등 다양한 증세가 있다. 이 책 『나는 왜 사는 게 힘들까?』는 바로 이런 사람들, 딱히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너무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 나이가 들수록 적응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사람들의 속마음과 인간관계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은 코로나19로 사회성과 관계력이 퇴화하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받으며 출간 이후 단기간 내에 1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교사 U씨의 경우도 그레이존에 해당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녀는 성인 ADHD 증세로 실수를 남발하긴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성실하게 공부에 임했고 교사가 된 이후에도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발달장애가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녀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한 결핍감을 일로 채우기 위해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 될 정도로 과로했고, 그 여파로 잔실수가 늘어났다고 봐야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혹시 나도?' 하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무시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어 치료해야 하는지 여부를 가늠할 것을 조언한다. 많은 수는 치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경우지만 '과잉 우려'가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회피한다면 뒤늦게 발생한 여러 증세가 악화될 수 있는 애매모호한 상태를 없애라는 주장이다.
이 책의 강점은 이론이 탄탄하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빨리 읽힌다는 것이다. 자폐증에 대한 새로운 학계의 정보, 워킹 메모리의 기능,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사회생활의 상관관계, 협조운동 장애가 운동신경과 대인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 흥미로운 이론도 큰 지적 재미를 선사하지만,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오카다 다카시는 임상 경험에서 축적한 에피소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인들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무라카리 하루키, 나쓰메 소세키, 카프카 같은 소설가들뿐 아니라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톰 크루즈 등 현재 살아 있는 셀럽들의 에피소드가 대거 등장해서 읽는 재미를 더하기 때문이다. 독자도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유명인들의 이름이 주욱 나열되는 바람에 관심이 고조되었다.
저자는 장애도 아닌데 심리적으로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경우 애착 장애를 품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지적하면서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기업가인 제프 베이조스나 일론 머스크를 포함해서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까지 모두가 공통적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마음의 그늘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멀쩡하게 사회생활하면서 잘 살아왔지만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고 마음이 힘들다면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왜 내가 힘들 수밖에 없는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게 된다면 해결책도 스스로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수많은 케이스를 상담하고 치료했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살기가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그냥 가볍게 넘기면 훨씬 힘들어진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 경우 장애로 판정받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한 배려나 지원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거나 건강한 사람들과 대등하게 경쟁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는 우려가 높다는 주장이다.
특히 그레이존은 하나 이상의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 그 때문에 장애가 아니라고 해서 기분이 나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높은 기대치에 눌려 더 괴로워하게 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는 이들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는데, 그것은 장애와는 또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상처 혹은 애착 장애 같은 문제이다. 또 단순히 '장애가 아닌 상태'라기보다는 아예 성격이 다른 고통을 겪고 있는 경우도 많다는 게 저자의 경험 상 주장이다. 이에 따라 발달장애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이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더 다양한 임상 케이스와 대응법, 노하우 등등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야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존이라는 용어는 유아기처럼 아직 증상이 확실치 않아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을 때 사용하는 경우, 그리고 청년기나 성인기에 증상이 나타났지만 진단 기준에 전부 해당되지 않아서 사용하는 경우 등 두 가지가 있는데 각자 사정이 다르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유아기나 학령기 초기에 그레이존으로 진단받은 경우에는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이렇게 어린 시절의 그레이존 성향과 성인이 된 이후의 그레이존 성향은 약간 다르지만 시레로는 다 연결되어 있다. 이 둘을 연속된 시점으로 봐야 비로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될지 가늠해볼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어떤 일이나 어떤 특성 때문에 유래한 것인지를 되짚어보면서 좀 더 깊게 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책은 모두 9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겉은 멀쩡한데 속은 너무 힘든 사람」, 2장 「같은 행동을 고집하는 사람」, 3장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사람」. 4장 「상상력이 없는 사람」, 5장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6장 「남들보다 몇 배 더 예민한 사람」, 7장 「주위가 산만하고 정리를 못하는 사람」, 8장 「몸의 움직임이 어색한 사람」, 9장 「공부를 힘들어하는 사람」 등이다. 1장에서 「겉은 멀쩡한데 속은 너무 힘든 사람」에서는 독자들은 장애만 아니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란 질문에 직면한다. 어렸을 때 그레이존이라는 진단명을 받았지만 크게 나쁘지 않아 방치했을 경우 악화된 사례를 들고 있다. 만약 이때 적절한 교육과 트레이닝을 시작했더라면 이 사람의 상태와 학교 생활은 달라졌을 거란 말이다. 저자는 "그레이존은 결코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상태가 아니라, 세심한 주의와 적절한 지원이 필요한 상태이며, 그것이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운명이 엇갈린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을 무난히 넘기고 30대, 40대가 된 이후부터 서서히 사는 게 버거워져서 병원을 찾는 사람은 어떨까? 사회에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고 사는 게 버겁다는 느낌이 들자 도대체 왜 이러는지 그 답을 발달장애에서 찿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앞서 언급한 교사 U씨가 바로 그런 사례라는 지적이다. U씨는 어릴 때 집안 환경이 좋지 않음을 상담을 통해 고백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폭행 등 매일 매일 떨고 살았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일적으로도 성공하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항상 부족함을 느끼거나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느낀다는 건 마음속 깊은 곳에 어떤 문제가 잠복해 있는 거라고 봐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일반적인 발달장애 검사에서는 잘 하지 않지만 애착 장애(애착 트라우마) 검사를 해본 결과, U씨는 '공포회피형'이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저자는 전한다. 공포회피형은 상처받을까 봐 마음을 터놓는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 유형으로 그 누구에게도 애교를 부려본 적 없는 U씨의 성품과 일치했다고 한다.
2장에서는 같은 행동이나 패턴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문제다. 한 가지 행동 패턴에 집착하는 것만으로도 장애로 진단받는 경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상동운동(常同運動) 장애다. 이것은 어떤 단순한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게 특징이라 자폐증이라 판단하는 경우가 많긴 한데, 일상 생활이 힘들 정도로 증세가 심한 경우에는 상동운동 장애라고 진단할 수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DSM(아메리카정신의학회의 정신 쟁애 진단 및 통계 메뉴얼)의 진단 기준에 따르면 자폐증의 경우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장애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증세, 이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되어야 한다. 또 여기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증세는 ① 상동운동 ② 특정 행동이나 사고에 대한 집착 ③ 한정된 대상에 대한 강한 관심 ④ 감각 과민 또는 둔감, 이상 네 가지가 있는데 이 중 두 가지 이상에 해당되어야 한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증세'가 너무 긴 표현이므로 '집착증' 혹은 '고집증'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말한 네 가지 증상은 자신이 신경 쓰는 것에 대한 강한 집착과 그 이외의 것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장에서 다루는 증세와 경험자 중 이 책에서 사례로 든 사람의 이름을 들어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①에 해당되는 증세를 갖고 있던 사람이 우리가 잘 아는 빌 게이츠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다. 어린 시절 사회성 발달이 늦어 어머니가 한 살 늦게 학교에 보낼까 고민할 정도였다. 백과사전을 즐겨 읽어 지식은 풍부했지만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특히 회사의 CEO가 된 이후에도 증세를 고치지 못한 버릇이 있는데 회사 내에서도 유명했다고 한다. 바로 격렬하게 의자를 흔드는 버릇이다. 생각에 집중하면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②에 해당하는 증세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갖고 있었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린 시절 독서와 피아노가 취미인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당시로서는 드문 외동아들이었던 것도 약간의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게 저자의 관점이다. 훗날 아내가 된 대학 때 만난 여성과 둘이 재즈 카페를 열었는데 제법 장사가 잘된 모양이었다. 친한 작가 한 명이 무라카미에게 "당신은 손님들이랑 거의 한 마디도 안 하잖아요?"라고 힐난조로 묻자 "아니에요. 제가 원래 말은 안 해도 안 좋은 같아서 노력하긴 했어요. 다들 저한테 사교적이지 못하다고 하시는데, 저로서는 정말 최선을 다한 겁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저자는 무라카미가 회피성 성향이 있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내는 섬세한 감성과 뗄레야 뗄 수 없는 특성임에 틀림없다는 말을 덧붙인다.
대인관계가 힘들어서 심리치료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다른 능력에 비해 지각 추론 능력이 낮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중략) 지각 추론이 약한 사람은 자신의 불만과 한탄만 늘어놓을 뿐 그 배경에 들어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한다.(p.104~105)
저자 : 오카다 다카시(おかだ たかし, 岡田 尊司)
도쿄대에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중퇴하고 교토대 의과대학에 다시 들어가 정신과 의사가 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오랫동안 교토의료소년원에서 근무한 후, 오카다 클리닉을 개업했다. 정신의학과 뇌 과학 분야 전문가로 주목받는 그가 꾸준히 주장하고 있는 ‘애착 이론’은 청소년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 때문에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상처를 가진 채 어른이 되었다』,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가 대표작이며 『나만 바라봐』, 『예민함 내려놓기』, 『심리 조작의 비밀』, 『애착 수업』, 『나는 네가 듣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등 수많은 책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나는 왜 사는 게 힘들까?』(원제: 발달장애의 그레이존?達障害「グレ?ゾ?ン」)는 딱히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회생활이 너무 힘든 사람들, 나이가 들수록 적응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사람들의 속마음과 인간관계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은 코로나19로 사회성과 관계력이 퇴화하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받으며 출간 이후 단기간 내에 1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역자 : 김해용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편집자로 일하며 다수의 일본 소설과 만화를 번역하고 편집했다. 주요 번역 작품으로, 이사카 고타로의 『AX』, 미야베 미유키의 『브레이브 스토리』, 『퍼펙트 블루』, 오쿠다 히데오의 『버라이어티』, 『방해자 1~3』, 『나오미와 가나코』, 이시다 이라의 『도쿄 돌』, 『슬로 굿바이』, 마미야 유리코의 『존댓말로 여행하는 네 명의 남자』, 히구치 타쿠지의 『내 아내와 결혼해주세요』, 다니 미즈에의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1~4』,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지성만이 무기다』,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도라에몽 : 진구의 달 탐사기』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지성만이 무기다』, 『도라에몽 : 진구의 달 탐사기』, 『신공룡 도감 : 만약에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