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 : 실천편 - Teachers’ Curriculum 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
교육과정디자인연구소 지음 / 테크빌교육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약간의 우연이 작용하여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 책을 읽게 됐다. 5년 전만 해도 이런 책을 찾아서 읽었을 것이다. 책모임에서 읽었을 수도 있고 마음 맞는 동료들이랑 함께 읽고 실천에 도전했을 수도 있다. 이제 전성기(?)가 지나 내리막길이어선지 현상유지에 급급해서 교육서적들을 회피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진짜 열심히 하시는 선배님들은 그만두기 한 학기 전에도 배우고 도전하시던데.... 나를 조금 반성한다.

‘교사 교육과정’은 교육과정 재구성에서 한발 더 나아간 개념이다. 교사는 국가교육과정과 교과서를 그대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고 교육목표와 내용을 재구성하고 교과서를 비롯한 교재와 학습자료를 적절히 선택하여 가르치고 평가하는, 다시말해 교육과정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이 실행자가 주도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교육과정은 살아있는 것이 되기 어렵다. 교사 교육과정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어느 정도는 ‘뭐 그동안 내가 해왔던 거네~’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론과 공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해왔던 것에 불과하다. 농담 조금 섞어서 말하면 본능적으로 했던 거다. (본능이 가장 무서운 거라고 주장하고 싶다.ㅎㅎ) 그러다보니 정교하지 못했다. 이 책과 일련의 책을 읽으며 정교함을 좀 기르면 한층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전편 <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을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어서, 그 책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허술했던 점은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와 과정중심 평가이다. 이 책에서 불일치 유형을 4가지로 소개했는데 거의 모든 유형에 다 해당되고 특히 평가까지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했던 점이 가장 크게 보였다. 수업은 자유롭게 했지만 평가는 학년에서 정해 나이스에 올린대로 시행하다보니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들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피드백을 교실 내에선 그때그때 하지만 그게 가정에 전달되기에는 한계가 많았던 것 같다. 그 부분에 좀 고민을 해봐야되겠다. 또 내 성격상 숲을 보지 못하고 개별 나무만 들여다보는 경향이 좀 있다.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함) 학기 시작 전에 숲 지도를 한번 그려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걸 능력있는 이들과 함께 하면 상당히 유익하고 통찰을 주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이 책의 전편은 이론적인 내용인 것 같고, 이 책은 제목에 –실천편 이라는 단서가 붙어있어, 전체 1,2부 중 2부는 저자샘들의 실제 사례로 구성되어 있다. 초, 중, 고 사례가 골고루 들어있는데, 이 부분은 관심있는 내용만 훑어 읽었다. 연구하시는 선생님들이라 그런지 스케일도 크고 내용도 충실하다. 앞에서 내가 본능적으로 했다고 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음 학년도부터는 시작에 앞서 전체 조망과 개요 작업을 먼저 하고, 디테일은 실행과 함께 채워나가면서 교사 교육과정을 진짜에 가깝게 한번 운영해 보고 싶다. 그때 이 책을 다시 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용호동에서 만나 - 제13회 권정생문학상 수상작 창비아동문고 319
공지희 지음, 김선진 그림 / 창비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와, 오랜만에 단편집을 너무 재밌게 읽었다. 아이들 책을 고르는 교사의 눈으로 살핀 게 아니고 그냥 독자로 읽었다. 그러고보니.... 아이들이 좋아할 책인지는 모르겠다. 아이들도 보는 눈과 취향이 다양하니 각자 흥미와 느낌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참 재밌었다.

제각기 떨어진 이야기들을 모아만 놓은 단편집이 아니고 ‘용호동’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함께 하는 작품들로만 구성된 책이다. 용호동은 재개발되고 있는 동네다. 작가님이 보신 실제 어떤 동네가 모델이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본다. 재개발 하면 들고 나는 사람들이 있다. 새롭게 단장한 곳에는 낯선 사람들이 주로 들어와있기 마련이고 오래 살던 사람들은 그곳을 두고 더 주변으로, 더 싸고 허름한 곳으로 밀려난다. 일명 젠트리피케이션이다. 그런데 이 책은 밀려나는 이들과 들어오는 이들의 갈등을 부각시키려 하지 않았다. 언제 떠날지 모르지만 그곳을 지키고 있는 찐 용호동 주민들의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

용호동은 기찻길이 지나가는 동네다. 나도 어렸을 때 경춘선이 지나가는 동네에 살았었다. 그 기찻길을 걸어 학교에 가기도 하고 동네 아이들과 놀기도 했다. 칙칙폭폭 기차가 와서 옆길로 내려서면 내 옆으로 기차가 날 휩쓸어 버릴 듯 지나가기도 했었다. 요즘 엄마들이 보면 기겁할 일이지만.... 지금은 그 동네의 기차역은 없어졌고 산책로와 문화공간 등이 생긴 것 같다. 그때 이사하지 말고 버텼으면 지금쯤 좋은 집에서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곤 한다.^^ 용호동도 비슷하다. 도시가 복잡해지면서 철도는 땅속으로 들어가고, 녹슨 철길은 새로운 명소가 되어 ‘용트럴파크’라 불리게 된다.

용트럴파크 맞은편에는 정우네 집이 있고, 집 앞에는 오래된 벤치가 있다. 얼마전부터 여기를 애용하는 노숙자 아저씨가 있다. 정우가 왜 집에 안들어가냐고 묻자 “지금은 표류 중이거든.”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 벤치를 뗏목이라 표현한다. 어느날 보니 그 ‘뗏목’이 쇠칸막이를 박은 다른 벤치로 교체돼 있었다. 뗏목조차 잃은 아저씨는 이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아저씨가 부르는 노래 “사람들은 벤치, 나무, 길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 이 가사의 의미를 음미해보고 싶다. 이 단편의 제목은 「벤치 아저씨, 표류하다」였다.

「안녕, 단팥죽」은 아주 달콤하고 향기로운 이야기였다. 정우 친구 석이가 살던 집은 이제 ‘까페 안녕’으로 바뀌었다. 이번 이야기는 그 까페 사장 차무진 씨 이야기다. 그리고 그 동네에 오래 산 소복 할머니의 이야기. 신세력과 구세력의 갈등이 아니라 서로에게 호의를 베풀고 함께 동업하게 된 이야기가 새롭고 따뜻해서 좋았다. 그리고 단팥죽을 파는 까페. 아이디어도 좋은 것 같다. 팥죽을 먹으러 식당을 찾아가게 되진 않는데, 까페에서 판다면 나도 먹어볼 것 같아서.^^

「수리수리 가게」는 수리수리 마수리~ 마술과 관련있는 가게가 아니다. 버려진 물건들을 ‘수리’하는 가게다. 거기서 홍비는 낡아빠진 옛 인형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마법을 체험한다. 아, 그러고 보니까 수리수리는 다중의 의미를 담은 작명! 그리고 그 되살아난 인형들을 가지고 마을 축제에서 공연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고마움에 가까운 호감을 느꼈다. 정말 인생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다.

「달구는 시속 3킬로미터로 달린다」에서 달구는 사람이 아니다. 유아차를 개조한 할아버지의 운송수단이다. 거기에 둥절이라는 개가 따라붙어 셋이 동네 일주를 하는 이야기다. 그 일주에 할아버지의 하루가 담겼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할아버지는 귀한 일을 하는 존재다. 시속 3킬로미터의 속력 때문에 때로 큰 차들에게 욕을 먹지만, 할아버지는 화내지 않는다.

「b의 낙서」의 화자는 구이구이 식당 집 딸이다. 구이구이 식당은 앞의 다른 작품에 나온다. 이렇게 이 책은 공간과 인물들이 살짝씩 겹치면서 연결성을 보여준다. (마지막 작품 「용호 슈퍼」도 그렇다.) 이 작품은 그라피티를 소재로 했다. 관심있던 분야가 아니어서 이 이야기에서 새롭게 보게 됐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자유로운 예술인들이 많이 나온다. (물론 돈은 안되겠지... 그게 문제....ㅠ)

마지막 작품 화자는 「용호 슈퍼」 아들이다. 인근 슈퍼들이 다 문을 닫거나 편의점으로 전향했지만 끝까지 버티고 있는 엄마는 가게 운영이 어렵지만 그래도 마음 퍽퍽하지 않게 살아간다. 귀신손톱 형이 유통기한 다된 것들만 용케 골라 반값 할인을 해달라고 할 때 심정 상할 만도 한데 흔쾌히 해준다. 회전이 잘 되지 않으니 유통기한 임박 제품은 자꾸 나올 수밖에 없고 매일 그런 걸로 끼니를 해결해야 되어도 그러려니 한다. 얌체같고 쪼잔하던 귀신손톱 형은 늘 그런 건 아니었다. 어떤 날은 돈이 생겼다며 정상 제품을 사먹는다. 알고보니 귀신손톱은 기타를 치기 위한 거였고 형은 작곡과 연주를 하는 사람이었다. 아이고야~~~ 예술은 배고프다더니...... 형은 슈퍼 앞 공터에서 버스킹(?)을 하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연주를 감상하며 어떤 이들은 기타 케이스에 지폐 한 장을 놓고 간다. 형은 이제 뻔뻔하게 저녁도 얻어먹는다. 근데 내가 슈퍼집 엄마라도 이 청년이 오면 밥이랑 찌개 퍼줄 것 같다. 맛있게 먹어주는 것도 복이거든.... 근데 이 청년이 뭐해먹고 살지는 걱정이다. 그냥 밥만 안굶고 살기를 바란다면 큰 걱정은 아니겠지. 이 작품의 도입에서 “지금도 밥은 먹고 살잖아요?” 라는 대화가 나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밥은 먹고 사는데, 우리는 불안에 대한 보험을 드느라 다들 힘든걸까?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 때문인걸까?

이렇게 6편의 단편을 다 읽었다. 꽤 오래 전 <영모가 사라졌다>만큼의 흥행작은 나오고 있지 않지만 공지희 작가님의 필력은 건재하다고 생각되었다. 특히 프랑스 가수의 노래라는 ‘벤치, 나무, 길’이라는 노래를 OST로 깔아놓은 듯한 구성이 인상적이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라 궁금하고 내 인생에서 벤치, 나무, 길을 성찰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 책을 학급에서 함께 읽거나 하진 않을 것 같지만 뭔가 통할 것 같은 친구를 만난다면 권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또 하나의 집 이야기와 놀 궁리 4
남찬숙 지음, 백두리 그림 / 놀궁리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찬숙 작가님 첫 책 <괴상한 녀석>이 2000년에 출판된 걸 보니 내가 작가님의 책을 읽은지 20년이 넘게 지났구나.... 아이들 책을 읽으며 독서지도를 고민하던 초기에 이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했었다. 괴상한 녀석도 그렇고 <니가 어때서 그카노>, <받은 편지함> 등.... 요즘도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작품 발표를 하시는데, 눈에 띄면 꼭 읽어보게 된다. 이 책은 작년(2021년)에 나왔다.

남찬숙 작가님의 작품들에는 대부분 주인공 아이의 가정사와 친구 관계 이야기가 함께 나온다. 상황이 너무 극단적이지도 않고 개연성이 있으면서도 해결이 궁금해 빠져서 읽게 되는 매력이 있다. 서사를 참 흥미롭고도 자연스럽게 하신다는 느낌이 든다. 극단적인 악역은 없고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 이해가 가서 인간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장점이 있다고 할까? 그 삶의 맥락을 고려해서 들여다보면 이해 못할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돌이키지 못할 상황까지 악화되지 않으려면 적절한 타이밍과 처신은 중요하다. 한없이 남의 이해만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책의 주인공 하나는 지금 두 가지 갈등 상황에 빠져있다. 일단 표면에 드러난 것은 카톡에서 친구 수민이에게 욕을 퍼부어 학폭 문전까지 간 일이다. 엄마가 싹싹 빌어 겨우 모면했지만 수민이 엄마 측의 요구로 공개사과를 해야 했다. 남찬숙 작가님의 책에서는 미운 사람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데 이 엄마는 진짜 싫었다. 공개 사과라니.... 아이들의 심리를 그렇게도 모르나. 그런다고 자식 주변의 관계가 좋아질 거라 생각하나. 수민이가 엄마보다 훨씬 나아서 그나마 다행. 이 엄마가 자식의 성적에만 집착하고 자율성을 주지 않는 것도 모종의 배경이 있긴 했는데, 난 그런 것까지 이해해주고 싶진 않다. 자식의 성취로 자기 존재 의미를 찾고 싶은 일종의 이기심인 거니까. 당신 그거 나쁜 거야 당신 안의 동기를 돌아봐! 내가 주변인이라면 한마디 해주겠다. (말만 그렇지 못할 거면서...;;;)

위의 상황의 배경에는 하나의 가정사가 있다. 엄마와 자주 다투던 아빠가 가족들을 두고 시골에 내려가버린 일이다. 할머니 간호차 간다고 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학원을 운영하느라 바빠 늘 지쳐있고, 오빠와 하나는 알아서 학교생활을 해나간다. 그러다 이 사달이 났다. 수민이에게만 아빠 얘기를 했는데, 비밀을 지키기로 단단히 약속했는데,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아빠 얘기가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수민이가 퍼뜨렸다고 단정한 하나는 톡에서 평소 해보지도 못한 욕들을 퍼부었고, 그걸 수민이 엄마가 봤고, 학폭 운운은 그래서 생겼다. 결말에서야 알게 되지만 수민이는 결백했고 그렇다면 하나의 오해였으니 전적으로 하나의 잘못은 맞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면 안 된다. 하나의 분노와 슬픔과 수치심.... 모범생이고 학급회장이었던 정체성 모두를 던져버리고 등교거부를 시작한다. 뜻밖에도 난 이부분에 공감이 되었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성격 유형에 따라서 견디기 힘든 감정이 다르다는데 이런 면에서 하나와 나는 비슷한가보다. 어쨌든 이 상황은 그러잖아도 힘들게 버텨오던 하나 엄마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참다못한 엄마는 아빠를 소환한다. 아빠는 바로 올라왔다. 아빠를 따라 집을 나서는 걸 엄마는 말리지 않았다.

그렇게 아빠를 따라 시골로 내려온 하나가 며칠간 겪는 일들이 이 책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시골에서 보는 아빠의 모습은 서울의 아빠와 달랐다. 그런 모습이 또 하나의 분노를 자극했다. 특히 이웃집 남매 정은, 정우와 가깝게 지내는 모습이.... 이 과정을 극복하고 정은이와 친구가 되는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을까? 했는데 괜찮았다. 감정이 꼬이는 지점도, 풀리는 지점도 공감할 수 있어서 자연스러웠다. 아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대목도 그랬다.

산불이라는 큰 사건이 이 책의 절정 부분이 된 것은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결말에는 황급히 달려온 엄마와 함께 하나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렇다면 뭐가 달라졌지? 이 가족은 여전히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는 건데. 이 부분에서 제목을 다시 보면 뭔가 느낌이 온다. <또 하나의 집>
“아무래도 내겐 또 하나의 집이 생긴 것 같다. 방학을 하면 그 집에 가 봐야 할 것 같다. 검둥이도 보고 싶고, 정은이와 정우도 보고 싶고, 불탄 산에서 다시 돋아난 풀도 보고 싶고, 우리 아빠도 보고 싶으니까.”

어른들도 흔들린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흔들림을 다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나는 그 어른들의 시간 속에서 이제 여유과 평안을 찾은 것 같다. 서울의 엄마 집과 시골의 아빠 집. 엄마의 하던 일과 아빠가 찾는 일. 그 사이의 간격은 아직 크지만 살면서 조율할 부분이 있겠지? 한 뼘 자란 하나는 이제 조급하지 않게 기다리며 자신의 삶을 가꿀 수 있을 것 같다.

흔들리는 부모들과 그 진동으로 더 크게 흔들리는 아이들이 갈등으로만 치닫지 말고 이렇게 중간에 잠깐씩 돌아볼 기회들이 있으면 좋겠다. 누구나 행복할 자격이 있다. 특히 아이들은. 부모의 삶에 짓눌려 질식하지 않도록, 부모는 자신들이 힘들더라도 자식이 숨쉴 수 있도록 조금씩의 틈을 열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든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바, 집에 가자 달고나 만화방
도단이 지음 / 사계절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만화책들이 많다. 줄글책을 전혀 보지 않고 만화만 보는 게 아니라면, 가끔씩 ‘만화특집’ 독서를 기획하고 싶다. 여름방학 전 1학기 마지막주에 만화책 바구니를 구성해서 부담없고 즐거운 독서를 했었다. 읽기 집중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내용이 탄탄한 그래픽노블을 골라 읽었고, 편하고 즐겁게 읽고 싶은 아이들은 국내 만화가들의 창작만화를 골라 읽었다. 다음부터는 이 책도 바구니에 넣을 수 있겠다. 지난번 최고 인기만화는 남동윤 작가님의 귀신선생님 시리즈였는데, 이 책도 베스트5 안에는 들 것 같다. 아이들은 대부분 강아지를 아주 좋아하니까.

표지에 있는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단번에 눈길이 간다. 하지만 내용은 더 좋다. 170여 쪽의 제법 두툼한 분량에 반려동물에 대한 묵직한 생각들이 고루 담겼다. 생각은 묵직하나 내용은 재미있고 그 안에 든 감정도 풍부하다. 네모칸을 나누지 않고 세로 2단으로 그려나간 구성이 새롭다. 읽기도 편해서, 굳이 칸을 나눌 필요가 없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그려진 3~6쪽 정도로 1화가 구성되어 있고 총 33화까지 있다.

미노 아빠가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족의 협의하는 과정,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 등이 초반에 나온다. 결정된 이름은 제목에 나온 ‘심바’. 이 이름이 반가웠다. 나도 우리집 개 이름을 이렇게 짓고 싶었거든. 누렁이라 아기때 새끼 심바 느낌이 나서. 다른 이름에 밀려 그 이름은 채택되지 못했는데 이 책에 딱 나오다니! 이제 심바는 개를 키운 집들이 다 겪어본 그런 말썽을 피우기 시작한다.^^

이렇게 심바를 키우는 중에 미노 가족이 겪은 일들은 많은 정보와 시사점, 그리고 생각할 거리들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개를 좋아하거나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성향도 존중할 것. 그렇기 때문에 특히 산책할 때는 견주의 주의가 많이 필요하다. 이른바 펫티켓에 대한 내용들이 적절히 들어있다. 강아지 공장의 어미개들과 유기견들의 비참한 현실도 엿볼 수 있고 안내견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이런 주제들이 설명식으로 나열된 것이 아니고 스토리 안에 자연스럽게 잘 녹아있다.

눈물이 울컥 나는 장면들도 있다.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똘이.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에게 똘이는 자식이자 친구였는데... 어느날 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시신을 옮기는 구급차를 쫓아가는 똘이.... 그리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똘이. 개의 기다림은 너무 슬퍼.

또 다른 개 막내. 길에 쓰러졌다가 유기견 보호센터로 들어온 콜리 종이다. 미노 엄마는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이 개에게 유독 마음이 쓰여 갈등한다. 드디어 결심하고 센터를 찾은 날, 콜리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안락사 기한이 다 되었는데 망설였던 자신을 책하며 눈물짓던 엄마에게 온 문자. 콜리는 과수원의 새 식구가 되었으며 막내라는 새 이름도 갖게 됐다는.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엄마는 그 과수원의 사과를 주문해서 먹고, 스치듯 마주치며 인연을 계속 이어간다. 다행스럽고 행복한 이야기였다.

마지막에 여러 마리 개들이 자기소개를 하길래 웬일인가 했더니 모두 버려진 개들인게 아닌가. 자기 소개 안에 버려진 이유가 들어있었던 것. 너무 활발해서, 털이 많이 빠져서, 너무 커져버려서, 짖어서...ㅠ 그리고 그 아이들은 기다린다. 버려졌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 것이 더 슬프다. 사람들은 선택한 생명에게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니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닌 것이다. 올여름에도 휴가지에 유기견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리고 유기견의 개체수도 유행하는 종에 따라 변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뭐든 인간 취향대로, 인간 맘대로인 것이지. 내 안에도 그런 속성이 있다. 깊이 들여다볼 문제다.

반려인들, 예비 반려인들에게는 필수인 책이다. 만화라는 형식을 빌려 재미와 가독성을 높였고 내용과 주제의 묵직함은 튼튼하게 유지했다. 그림도 너무 귀엽고, 미노 가족들이 평범하면서도 참 인간적이고 좋은 사람들이어서 친근하고 마음이 흐뭇했다. 반려인이 아니더라도 읽어보면 재미있고 따뜻한 느낌을 채워줄 만화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개 보드리 - 전쟁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학교 그림책 읽는 시간
헤디 프리드 지음, 스티나 비르센 그림, 류재향 옮김 / 우리학교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작가는 유대인이고 홀로코스트를 경험했다. 직접 체험하셨다고? 그럼 나이가 많겠네? 하고 봤더니 90세시라고 한다. 그 나이에도 이렇게 작품활동을 하시고 강연도 다니신다니. 홀로코스트를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 그런데도 계속 말해야 하나? 작가는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으로.

이 책은 판형도 작고 내용도 간결한 그림책이다. 스티나 비르센 그림작가의 수채화가 아름답다. 수채화 특유의 색감에 평안함과 행복, 긴장과 공포와 절망, 재회의 기쁨까지 모든 감정을 잘 담았다.

작가는 어린시절에 가족이자 친구인 개 '보드리'를 키웠다. 홀로코스트의 검은 그림자는 순식간에 닥쳤고 작가의 가족은 끌려갔다. 보드리는 계속 쫒아왔지만 기차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그렇게 보드리는 가족을 잃고 마을에 남겨졌다.

개는 기다림의 동물이다. 기다리는 뒷모습은 애처롭다.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주인이 버리고 간 개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는 얘길 들었다. (정확하진 않다. 아닐수도)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잠깐이면 될 거라고 했잖아
여기 서 있으라 말했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물끄러미 선 채 해가 저물고
웅크리고 앉아 밤이 깊어도
결국 너는 나타나지 않잖아
거짓말, 음, 거짓말"

보드리는 1년이 넘도록 그렇게 기다렸다. 가족은 약속을 하지도 못했고 약속을 지킬 상황도 아니었으니 거짓말이라곤 할 수 없는 이별이었다. 하지만 불행중 다행이다. 부모님을 잃었지만 작가와 동생은 구사일생으로 돌아왔다. 그 재회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보드리의 꼬리, 그리고 울음, 기쁨의 포옹, 흥분이 가신 후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눈빛까지.

전쟁의 아픔을 표현하는 수많은 방식이 있겠지만 이 책은 목석처럼 앉아 하염없이 가족을 기다리는 보드리의 모습에 슬픔과 안타까움을 담아 독자들에게 건네준다. 그렇다면 그들의 재회는 희망을 전해준다고 할 수 있겠지.

홀로코스트는 과거의 일이지만 인류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전쟁과 폭력을 이어가고 있다. 홀로코스트가 인류에게 준 경고와 각성이 없지는 않겠으나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니 계속 말하는 수밖에 없겠지.

지금도 사랑하는 가족이 죽거나 생이별하고, 그 틈바구니에서 동물들의 생명은 고려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보드리의 목을 끌어안고, 뛰놀고, 가족이 함께 저녁을 보내는 그정도의 행복. 이걸 모두가 어렵지 않게 가질 순 없는걸까. 지금도 비탄에 빠진 세계 곳곳에 싸움이 그치고 평화가 깃들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