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집 이야기와 놀 궁리 4
남찬숙 지음, 백두리 그림 / 놀궁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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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찬숙 작가님 첫 책 <괴상한 녀석>이 2000년에 출판된 걸 보니 내가 작가님의 책을 읽은지 20년이 넘게 지났구나.... 아이들 책을 읽으며 독서지도를 고민하던 초기에 이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했었다. 괴상한 녀석도 그렇고 <니가 어때서 그카노>, <받은 편지함> 등.... 요즘도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작품 발표를 하시는데, 눈에 띄면 꼭 읽어보게 된다. 이 책은 작년(2021년)에 나왔다.

남찬숙 작가님의 작품들에는 대부분 주인공 아이의 가정사와 친구 관계 이야기가 함께 나온다. 상황이 너무 극단적이지도 않고 개연성이 있으면서도 해결이 궁금해 빠져서 읽게 되는 매력이 있다. 서사를 참 흥미롭고도 자연스럽게 하신다는 느낌이 든다. 극단적인 악역은 없고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 이해가 가서 인간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장점이 있다고 할까? 그 삶의 맥락을 고려해서 들여다보면 이해 못할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돌이키지 못할 상황까지 악화되지 않으려면 적절한 타이밍과 처신은 중요하다. 한없이 남의 이해만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책의 주인공 하나는 지금 두 가지 갈등 상황에 빠져있다. 일단 표면에 드러난 것은 카톡에서 친구 수민이에게 욕을 퍼부어 학폭 문전까지 간 일이다. 엄마가 싹싹 빌어 겨우 모면했지만 수민이 엄마 측의 요구로 공개사과를 해야 했다. 남찬숙 작가님의 책에서는 미운 사람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데 이 엄마는 진짜 싫었다. 공개 사과라니.... 아이들의 심리를 그렇게도 모르나. 그런다고 자식 주변의 관계가 좋아질 거라 생각하나. 수민이가 엄마보다 훨씬 나아서 그나마 다행. 이 엄마가 자식의 성적에만 집착하고 자율성을 주지 않는 것도 모종의 배경이 있긴 했는데, 난 그런 것까지 이해해주고 싶진 않다. 자식의 성취로 자기 존재 의미를 찾고 싶은 일종의 이기심인 거니까. 당신 그거 나쁜 거야 당신 안의 동기를 돌아봐! 내가 주변인이라면 한마디 해주겠다. (말만 그렇지 못할 거면서...;;;)

위의 상황의 배경에는 하나의 가정사가 있다. 엄마와 자주 다투던 아빠가 가족들을 두고 시골에 내려가버린 일이다. 할머니 간호차 간다고 했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학원을 운영하느라 바빠 늘 지쳐있고, 오빠와 하나는 알아서 학교생활을 해나간다. 그러다 이 사달이 났다. 수민이에게만 아빠 얘기를 했는데, 비밀을 지키기로 단단히 약속했는데,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아빠 얘기가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수민이가 퍼뜨렸다고 단정한 하나는 톡에서 평소 해보지도 못한 욕들을 퍼부었고, 그걸 수민이 엄마가 봤고, 학폭 운운은 그래서 생겼다. 결말에서야 알게 되지만 수민이는 결백했고 그렇다면 하나의 오해였으니 전적으로 하나의 잘못은 맞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면 안 된다. 하나의 분노와 슬픔과 수치심.... 모범생이고 학급회장이었던 정체성 모두를 던져버리고 등교거부를 시작한다. 뜻밖에도 난 이부분에 공감이 되었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성격 유형에 따라서 견디기 힘든 감정이 다르다는데 이런 면에서 하나와 나는 비슷한가보다. 어쨌든 이 상황은 그러잖아도 힘들게 버텨오던 하나 엄마에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참다못한 엄마는 아빠를 소환한다. 아빠는 바로 올라왔다. 아빠를 따라 집을 나서는 걸 엄마는 말리지 않았다.

그렇게 아빠를 따라 시골로 내려온 하나가 며칠간 겪는 일들이 이 책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시골에서 보는 아빠의 모습은 서울의 아빠와 달랐다. 그런 모습이 또 하나의 분노를 자극했다. 특히 이웃집 남매 정은, 정우와 가깝게 지내는 모습이.... 이 과정을 극복하고 정은이와 친구가 되는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을까? 했는데 괜찮았다. 감정이 꼬이는 지점도, 풀리는 지점도 공감할 수 있어서 자연스러웠다. 아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대목도 그랬다.

산불이라는 큰 사건이 이 책의 절정 부분이 된 것은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결말에는 황급히 달려온 엄마와 함께 하나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렇다면 뭐가 달라졌지? 이 가족은 여전히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는 건데. 이 부분에서 제목을 다시 보면 뭔가 느낌이 온다. <또 하나의 집>
“아무래도 내겐 또 하나의 집이 생긴 것 같다. 방학을 하면 그 집에 가 봐야 할 것 같다. 검둥이도 보고 싶고, 정은이와 정우도 보고 싶고, 불탄 산에서 다시 돋아난 풀도 보고 싶고, 우리 아빠도 보고 싶으니까.”

어른들도 흔들린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흔들림을 다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나는 그 어른들의 시간 속에서 이제 여유과 평안을 찾은 것 같다. 서울의 엄마 집과 시골의 아빠 집. 엄마의 하던 일과 아빠가 찾는 일. 그 사이의 간격은 아직 크지만 살면서 조율할 부분이 있겠지? 한 뼘 자란 하나는 이제 조급하지 않게 기다리며 자신의 삶을 가꿀 수 있을 것 같다.

흔들리는 부모들과 그 진동으로 더 크게 흔들리는 아이들이 갈등으로만 치닫지 말고 이렇게 중간에 잠깐씩 돌아볼 기회들이 있으면 좋겠다. 누구나 행복할 자격이 있다. 특히 아이들은. 부모의 삶에 짓눌려 질식하지 않도록, 부모는 자신들이 힘들더라도 자식이 숨쉴 수 있도록 조금씩의 틈을 열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든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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