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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도서관 ㅣ 다봄 어린이 문학 쏙 3
앨런 그라츠 지음, 장한라 옮김 / 다봄 / 2022년 9월
평점 :
약간의 기시감과 동시에 완전 새로운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초반부터 결말까지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사건들을 따라가며 지켜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기시감이라는 것은 아이들이 어른들에 대항한다는 점이다. 부당한 억압에 그냥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것, 어른들의 금기에 순종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작당을 펼쳐나가는 것. 『프린들 주세요』에서도 느껴봤고(마지막에 반전이 있었지만), 『마틸다』도 좀 그랬고, 『클로디아의 비밀』에서도 있었던 듯한 그 느낌. 하지만 소재는 새로웠다. 일단 학교도서관이 배경이라는 점이 내 눈을 딱!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 도서관엔 어른들이 지정한 ‘금서’가 생긴다.
그 금서들이 가상의 책이었대도 대충 재밌게 보았을 것 같기는 한데, 실제로 있는 책들이어서 더 흥미로웠다. 익히 아는 책도 있었고 처음 보는 건 검색해서 찾아보기까지 했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 보니 이 책들은 지난 30년간 미국 도서관에서 항의를 받거나 서가에서 없앴던 이력이 한번이라도 있는 책들이라고 한다. 우아, 그랬단 말이야? 널리 알려진 책들부터 소개해 보자면
- 안녕하세요, 하느님? 저 마가렛이에요 (주디 블룸)
- 마틸다 (로알드 달)
- 탐정 해리엇 (루이즈 피츠허그)
- 클로디아의 비밀 (E.L.코닉스버그)
- 구스범스 시리즈 (R.L.스타인틴)
- 캡틴 언더팬츠 시리즈 (대브 필키)
등등.....
심지어 대브 필키라는 작가는 도서관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등장하기까지 하니... 생존하고 있는 인물이 동화에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 않을까? 하여간 이런 식으로 관심을 자극하는 재미난 요소들이 많이 있다.
화자인 에이미 앤은 말썽쟁이 두 동생을 둔 첫째다. 부모님은 바쁘고, 동생들의 요구는 많기에 에이미는 늘 뒷전이다. 집은 엉망이고 에이미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차분히 숙제를 할 만한 공간도 없다. 에이미는 욕구를 삼키는 법을 학습했다. 그래서 말없는, 착한, 희생적인 아이가 되었고 도서관을 자신의 보금자리로 선택했다. 거기서 좋아하는 책을 보고, 보고, 또 본다.
그러던 어느날, 청천벽력같은 사건을 접했다. 에이미가 제일 좋아하는 책, 『클로디아의 비밀』이 그 자리에 없다! 스펜서 부인이라는 학부모가 도서관의 일부 책들에 이의를 제기했고 학교이사회에서 대출금지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학생에게 부적절하다.’
위에 적은 책들이 그 목록의 일부다. 대충 견적이 나오지? 주인공 아이가 가출을 했다, 선생님(어른)을 악당으로 묘사했다, 성적인 설명이 너무 노골적이다(목록 중 성교육 책도 있었음), 정신건강에 해로워보인다, 주인공 행실이 불량하다 등등이 있겠지.
이에 분노한 사람은 첫번째로 사서선생님이고, 두 번째는 에이미 앤이다. 사서선생님은 이사회에 출석하여 발언하기로 했고, 에이미도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서 에이미는 얼어붙어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사서선생님의 말씀은 훌륭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최대한 다양한 책과 최대한 다양한 시각을 접하게 하는 건 우리 교육자들의 임무입니다....(중략)... 아이들 각자가 무얼 읽을 수 있고 읽을 수 없는지 결정하는 권한은 부모님 각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결정을 강요할 수는 없죠. 학교 이사회가 이 책들을 없애라며 밀실에서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을 뒤집기를, 또 도서실에 있는 자료에 대해 아직도 우려하는 부모가 있다면 바로 이 이사회가 수립한 재검토 규정을 따를 것을 정중히 요청합니다.” (43쪽)
평상시 에이미의 성격대로, 마음속 가득한 말을 비록 이사회에서는 하지 못했지만 단짝 친구인 레베카와 또다른 친구 대니와 대화를 하면서 아이들은 뭔가 일을 만들어 가게 된다. 그것은 바로 ‘비사도’였다. ‘비밀 사물함 도서관’이라는 뜻이다. 에이미의 사물함은 금서들을 모아 원하는 친구들에게 빌려주는 비밀 도서관이 되었다. 당연히 위험이 뒤따랐고, 이야기는 흥미를 더해간다. 여기까지가 잔재미라면 마지막 한방은 정말 큰 웃음을 준다. 마지막 아이들이 문제를 해결한 방식, 어른들이 했던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어 스스로의 모순을 깨닫게 하는 방식. 좋은 의미의 미러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너무 다 말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지만 말 안할 수가 없네.ㅋㅋ) 모든 아이들이 도서실의 책에 대하여 재검토 요청 서류를 작성한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말은 지어내기 나름이고 트집은 잡기 나름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결국 도서실 책의 태반이 퇴출될 위기에 놓인다.
너무 교훈적이지도 갑작스럽지도 찜찜하지도 무례하지도 위험하지도 않은 결말이라 생각되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에 『헝거게임』을 읽으려는 에이미를 부모님이 부드럽게 설득하고 책을 치우는 장면도 좋다고 생각했다. 도서관 책을 일부 학부모 입김으로 폐기하면 안되지만 발달 시기에 적당한 책을 선별하는 노력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영화도 12세, 15세, 19세가 있잖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사실 『헝거게임』을 안 봐서 그 책에 대해서는 뭐라 판단을 못하겠다.ㅎㅎ
스펜서 부인이 이사회를 등에 업고 학교를 좌지우지하고, 사서선생님은 고용의 위협을 받는 모습을 보며 분통이 터졌다. 어디나 저런 인간들이 있네.... 하지만 막장은 아니었으니 우리 상황보다는 훨씬 낫다고 보겠다. 한편으로는 나의 편견과 좁은 소견을 돌아보게 되어 살짝 반성도 되었다. 요즘 점점 독서력이 떨어져 동화도 긴 것은 오래 걸리는데 간만에 300쪽이 넘으면서 한번에 쭉 읽히는 책을 읽어서 기분이 좋다. 그래도 아이들이 읽기에는 분량의 압박이 있으니 고학년 정도는 되어야 추천할 수 있을 것 같고, 교사들도 한번 읽어보면 생각할 거리가 많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