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아프다 - 교사 위기의 원인과 해법
송원재 지음 / 살림터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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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루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리뷰를 딱 한 문장으로 하라면 이렇게 하겠다. 이런저런 교육도서들을 읽어보았는데, 교사들끼리 마음을 터놓고 공감할 책도 있고, 수업에 도움과 힌트를 줄 실용적 책도 있고, 학부모에게 권하고 싶은 책도 있다. 이 책은 각계각층 모두가 읽었으면 좋겠다. 교사, 학부모, 정치인, 모든 시민들.

송원재 선생님과 직접 만나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맘대로 지인의 범주에 넣었다.페친인데다 가까운 사람들의 지인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일단 친인척이 전교조 해직교사이던 시절, 같은 지회에서 활동하던 선배님이라는 인연. 또하나는 절친의 은사님이라는 인연이다. 송선생님은 얼마전 퇴임하셨고 나의 퇴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는데 은사님? 중등교사라서 그게 가능하구나. 어느날 내 페북글에 선생님이 댓글 다신걸 보고 친구가 놀라서 전화를 했다.
"너 송원재 선생님이랑 아는 사이야??"
얘길 들어보니 친구 고딩때 사회선생님이셨는데, 수업이 좋아서 친구가 무척 존경했고 선생님이 맡으신 동아리에도 들었다는 것이다. 우린 어렸고 선생님은 젊었던 시절, 참 오래된 이야기다.^^

이후 선생님의 교직인생은 가시밭길 그자체였다. 한국 교육현대사의 질고를 모두 체험하신 분이라 하겠다. 하지만 내가 이분의 견해를 신뢰하고 글과 저서를 챙겨읽는 건 단지 고생을 하셔서만은 아니다. 고착된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상황에 따른 판단을 하시는 균형감각과 용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논리는 '내편 논리' 이기가 쉽다. 나도 툭하면 그러고 안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논리에서 벗어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게다가 선생님은 약자와 후배들의 눈물에 귀기울여 주시고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고 못된 자들의 입방아와도 싸워주셨다. 작년여름 그 뜨거운 광화문과 여의도의 아스팔트에서 함께있음을 느낄 때, 선생님의 존재가 정말 감사했었다. 나라면 '아 퇴직했는데 내가 왜? 이젠 알 바 아닌데 내인생이나 즐기자.' 할 텐데 말이다. 그 함께함의 결정판이 이 책이다. 이 책을 쓰느라 애쓰신 시간들이 그려지며 감사하다. 우리 공교육에 대해 이만큼 고민하는 사람 얼마나 있을까? 현직에 있는 나도 못한다. 삶아진 개구리처럼 분노할 줄 모르는 이들도 있고, 분노만 했지 방향을 모르는 이들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시야가 좁아서 눈앞의 것밖에 안보이기 때문에... 이 책은 그런 이들의 눈을 넓게 틔워줄 것이다.

이 책의 출발은 2023 7월의 그 아픈 사건과, 거기에서 촉발된 검은 점들의 유례없는 집회였다. 거기서 우리는 확인했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누군가 떠밀고자 마음만 먹으면 나를 보호해줄 장치는 어디에도 없는 낭떠러지 끝에 내가 서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터무니없이 휘두를 수 있는 칼자루를 제한하고 교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입법을 해달라고 외쳤다. 매 시간이 추모였고 매시간이 절규였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문제인식을 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이 책이 그 길에 길잡이 역할을 하게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1부-거리로 나온 교사들]은 문제상황에 대한 서술이다. 학교는 각종 횡포에 손쓸 방법이 없이 무력해졌다. 무법자들의 천국이 됐고 그것에 맞서려 했다가 만신창이가 된 교사들의 죽음이 잇따랐다. 자살율이나 정신건강 통계는 놀랄만한 위기상황을 경고한다. 일본의 사례에서 반면교사를 삼아야하는데 전철을 밟아가고만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2부-교사위기의 원인을 찾아서]는 오랫동안 넓은 시야로 교육의 숲을 보아온 저자의 분석이 돋보이는 장이다. 5.31 교육개혁이 가져온 '교육시장화 정책'을 첫번째로 꼽는다. 김영삼 정부부터 시작하여 진보, 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한결같이 유지되어온 이 정책에는 매우 위험한 요소가 깃들어 있었으나 그런 지적에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교사들의 얘기는 볼멘소리 취급하며 문대버리면 그만이었고 교사때리기 판만 슬쩍 깔아두면 알아서 신나는 스포츠가 펼쳐졌으니 그보다 쉬운 일도 없었다. 집단적 가스라이팅이었다고 할까. 나도 여기 오랫동안 당했다. 되돌아보면 나는 최선을 다해왔고 완벽한 교사는 아니라도 자학할 만큼 부족한 교사는 아니었는데도 늘 나의 부족함을 탓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였더라면 더 좋은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와서 그런 생각을 한다.ㅠ

교육시장화는 교육당사자 간 권리와 책임의 불균형을 가져왔다. '소비자'가 된 학부모와 학생에겐 권리만 강조되고 의무는 묻혔다. 여기에 불을 붙인 건 신중하지 못한 학생인권운동이었다. 교육을 방해하는 행위들까지 인권이라는 미명으로 정당화되었다. 교사에겐 권리는 증발되고 의무와 책임만이 어깨를 짓눌렀다. 학생인권은 중요하다. 하지만 현명하게 펼쳐갔어야 했다. 도취된 이들은 그늘을 보지 못했다. "권리 못지 않게 의무를 가르쳐야 한다. 자신이 행사할 권리 못지않게 내가 침해하면 안되는 남의 권리를 중요하게 가르쳐야 한다." 는 나의 글에 "아이들은 존중받은 경험이 있으면 존중하게 됩니다. 선생님이 먼저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해 보세요." 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런 원론을 누가 모르나? 깊지 못한 사상으로 학교를 몰아치는 동안 그 허점을 파고드는 인간의 본성이 활개를 치는데는 그리 많은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거기에 아동학대 처벌법은 미친 칼춤을 추어 교육을 마비시키고 교사를 사지로 내몰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입법의 본래 취지보다는 부작용과 억울한 피해자를 훨씬 많이 양산했다. 특히 정서학대 조항은 귀에걸면 귀걸이법이라 할 만했다. 교사는 그저 학부모의 은혜에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됐다. 내가 바로 그렇다. 상식적인 분들만 만나왔기에 지금껏 무사히 온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회에 일정비율 있기 마련인 몰상식자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게 올해일지 내년일지 알 수 없다. 만성적 불안이 교직을 뒤덮고 있다.

저자의 연구와 혜안이 돋보이는 장, 이 책의 차별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장은 3부와 4부다. [3부-교사위기의 해법]에서 저자는 '교육의 공공성' 회복을 역설한다. 2장에서 다룬 교육시장화의 폐혜로 우리 공교육의 공공성은 심하게 훼손되었고 공교육의 의미와 기본원칙마저도 혼란스럽게 되었다. 이 부분 사회적 설득과 인식 공유가 필요하다.
"공교육은 민주공화국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공적권리이지, 특정집단이 자기 욕망과 이익을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다." (158쪽)

이를 위해 권리만 부각된 현재의 구도에서 의무와 책임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저자는 뉴욕시 학생장전의 내용을 소개해 주셨는데, 여기에도 책임을 중시한 것이 명확한데 왜 우리는 권리 부분만을 참고했는지 의문이고 유감이다. 학부모의 의무도 마찬가지다. 학부모들 중엔 교사를 '국가교육과정을 실행하는 공적인 업무자'로 생각하지 않고 '내가 부리는 고용인'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이 주장하는 '세금론'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대꾸하기도 치사할 지경이다.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을 때 대노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종한테 대노하는 양반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자식이 물의를 일으키면 학교에서 뭘 가르쳤냐고 화를 낸다. 특수교육 또는 심리치료가 시급한 학생이 있어도 부모가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 학급 구성원만 피를 본다. (교사는 물론 골병) 학부모는 물론 학교 운영에 의견도 내고 참여도 할 수 있지만 그에 앞서 학생의 보호자로서의 의무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저자는 무분별한 민원에 교사개인이 먹잇감으로 던져지지 않도록 민원처리 시스템을 제안하고 있는데, 좋은 논의가 이어져 실효를 봤으면 한다.

"교사들은 가르치고 싶다.
학생들은 배우고 싶다."
지난 여름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다. 가르치기 위한 권리, 우리는 그것을 '교권'이라 생각했고, 보장해달라 주장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지금까지 교권의 개념조차도 명확히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장에서 저자는 외국의 다양한 교권보호제도들을 소개했다. 외국의 것을 무조건 따라할 순 없지만 참고하여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는 서둘러야 한다.

[4부-교권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 에서는 현재까지 되어온 상황을 알기 쉽게 잘 정리해주었다. 이전보다는 개선의 움직임이 없지는 않구나도 알수 있지만 아직도 멀었구나도 알 수 있다. 일단 0보다는 1이 훨씬 나은 것이니 다음 발걸음을 재촉하며 지켜보아야 하겠다.
또한 교권보호를 위한 정책 제안도 해놓았다. 소제목을 보면 아동학대 신고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 아동학대처벌법 이렇게 바꿔야 한다, 학교폭력 개념부터 바꾸자, 학교가 할 일과 경찰이 할 일을 구분하자 등등 조금이라도 학교의 현실을 아는 이들은 바로 느낌이 오는 내용들이다. 이 논의가 확산되어 납득되게 정립되고 상식적인 교육환경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저자는 맺는 말에서도 책 전체를 관통하는 통찰을 보여주었다.
"근본적 해법은 교육시장화 정책이 뿌려놓은 잘못된 교육 관념과 편협한 권리의식에서 벗어나, 교육활동의 주체인 교사, 학습의 주체인 학생, 교육의 협력자인 학부모가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자각하고 학교교육의 성공을 위해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협력할 방법을 다시 찾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교육의 대원칙에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282쪽)
이어 예시하신 다섯 개의 대원칙에 하나같이 크게 공감했다. 이 내용을 널리 공유하여 확산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연대를 당부했다. 그것은 선한 연대다. 여기에서 빠질 수 없는 멤버는 물론 교사다. 교사들의 지치고 괴롭고 억울한 마음을 알지만 (당연히. 나도 교사이니) 그렇다고 외면하고 흐린눈 하고 냉소만 하면 달라질 것은 없다. 퇴직교사도 이렇게 애를 쓰시는데! (물론 나는 퇴직하면 학교 쪽은 돌아보지도 않을꺼야;;;) 아직 우리 인생의 남은 날이 학교에 있을 거라면, 되어가는 일을 외면해선 안된다. 지난 여름의 그 거대한 물결이 체념과 냉소로 사그러들지 않고 반드시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길 바라며, 고생해서 책을 써주신 은사님 감사합니다. (내맘대로, 친구의 은사님은 나의 은사님ㅋ)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이 책을 진심으로 읽어보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추천하기에 조금도 주저되지 않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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