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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시선 - 예견하는 신화, 질주하는 과학, 성찰하는 철학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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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철학서다. 철학을 왜 하는가. 아마도 불완전한 현재를 사는 인간들이 삶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사유하는 것이 철학일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보통의 사람들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의 형이상학적인 사유보다는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에 집착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철학은 어려운게 아닐까. 저자는 신화와 과학과 철학을 연계해 철학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글로 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난해함을 준다. 저자도 서문에서 밝혔듯이 철학에세이는 지식을 기반으로 쓰는 글이다. 따라서 읽는 사람에게도 저자와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는 만큼의 지식이 기반이 되어야 이 책을 읽어낼 수 있다. 솔직히 내게는 그만큼의 지식이 따라주질 않았다.  개념도 한참 모자르고, 신화에 대한 지식조차 짧았던 나는 저자가 펼치는 은유의 세계에 반발짝을 딛기도 힘에 겨웠다. 사건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는데 상상력을 갖기란 더더군다나 불가능했다. 철학 에세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는 일이 꿈 가운데 하나라는 저자가 사유하는 일을 버겁게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을 위해 조금더 쉽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는 없었을까. 문득,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어려운 글은 그 자체로 폭력이고, 권위이며, 기득권의 표현이라고. 글은 정신이므로 어렵게 써서는 안된다던..  비판적인 사유를 하던 창조적인 사유를 하던, 생활을 떠나서는 불가능하다. 철학이 일반인과 경계를 긋고 멀리 따로 가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쓰고보니 알아듣지 못한 탓을 내 지식의 짧음에서 찾지 못하고 저자의 방대한 지식의 양만을 탓한것 같아 어쩐지 부끄럽긴 하지만....... 내 생각엔 그렇다. 철학과 삶은 같이 가는 동반자이다. 어려운 사유만이 철학은 아니다. 냉철함과 균형감각만이 지성은 아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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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멋지고 아름답다 - 장애를 이겨낸 24인의 아름다운 이야기 푸르메 책꽂이 1
이승복.김세진.이상묵 외 지음 / 부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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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나는 그말을 믿었다. 간절하게 원하면 세상에 이루지지 않는 일은 없다.
그러나 어느순간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 소망이 아무리 절실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간절히 원하면 소망은 이루어진다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믿게되었다.  
문제는 간절히 원한다는 것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었던 데서 출발한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은 우연한 횡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소망에 대한 절박한 믿음이며, 뼈를 깎는 노력이고, 그리고 그전에 무릎이 꺾이는 좌절이 있어야 한다. ’간절히’ 의미는 편안한 기도가 아니다. 모든것을 포기해 본 자는 많은것을 바라지 않는다.  살아갈 이유 하나면 삶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간절한 소망은 삶을 살게 한다.

장애인에 대해 비장애인들은 근본적으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장애인은 불편한 존재들이므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보편적이다. 그들은 비장애인들과 달리 자기 한 목숨 부지하기도 벅차기에 사회적인 고민이나 애국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 또한 은연중에 갖고 있다. 장애는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라는 생각도 일종의 편견이다. 불편할 것이라는 것은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본 시각이다. 그들이 불편한 이유는 모든 사회적 시스템이 비장애인 위주로 설계되고 돌아가기 때문이고, 비장애인들의 편견어린 시각이 불편할 뿐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는 다만 ’차이’가 있다. 그 ’차이’란, 이 책의 주인공인 아름다운 사람 중 한 명, 뇌성마비 의사 김세현 보건소장의 말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는 ’걸리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신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간절한 소망을 갖고 노력하는데 걸리는 시간 또한 비장애인과 장애인에게는 차이가 있다. 장애가 있으므로 더 많이 소망하고, 더 많이 고통받고, 더 오랜시간 노력할 뿐이다. 불편한 몸과 오랜 고통의 시간들을 견딘 이 책의 주인공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줄 안다. 비장애인,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 다른사람의 꿈을 소중히 여길 줄 안다. 도움을 받을 줄 알고, 도움을 줄 줄 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때 세상이 진정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스스로 일어서는 아름다움을 안다. 산다는 것이 진정 감사한 일임을 안다.

어디선가 모든 사람들은 잠재적인 장애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태어날 때 부터 장애를 안고 나온 것이 아니라, 불의의 사고로 누구나 한순간에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혼식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한 김진희 씨, 국가대표 체조선수로 연습 중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이승복 씨, 취재 차 간 외국에서 교통사고로 불구가 된 이상묵 씨, 천일평 씨, 멀쩡하던 두 눈이 어느날 갑자기 병으로 안보이게 된 노동주 씨, 송광우 씨, 산에서 사고로 열손가락을 잃은 김홍빈 씨, 두 팔을 감전사고로 잃은 석창우 씨......... 
어느날 갑자기 닥친 불행으로 그들은 몇번씩 죽음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으나, 결국 일어섰고 그들의 소망을 이뤘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이었다고 해서 고통의 크기나 강도가 다르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그들은 주변의 걱정을 들어야 했고, 자신의 방 한 칸만큼의 세상 밖에 모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어섰다.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며 꺾이는 무릎을 세워 자립하고자 노력했다. 그 노력이라는 것은 말이 쉬워 ’노력’이라는 한 단어일 뿐이지 건강한 몸으로 태어난 나는 상상조차 힘들다. 발가락으로 타이핑을 연습하고, 휠체어에 누워 그림을 그리려고 애를 쓰고, 언제나 항상 브이 밖에 그릴줄 모르는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기 위해 피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들이 이겨낸 고통의 시간은 자신과 주변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아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준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 지리라는............ 기적은 바로 그곳에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장애를 넘어 일어선 그들에게는 한결같이 사랑하고 믿어주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모든 사람은 잠재적 장애인이다. 따라서 사회적 시스템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이나 모두가 불편함이 없도록 계획되고 설계되야 하며 우리의 의식조차도 개조되어야 한다. 장애인은 불편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가는 타인들 일 뿐이다.  살기좋은 나라란,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들이 살기에 불편하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사회는 충분히 갖고 충분히 건강한 사람들이 더 갖고 더 건강해지는 사회가 아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먼저 가겠다고 아웅다웅하는 아수라장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잡아주는 사람사는 세상.....  <나는 멋지고 아름답다>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소망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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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자유를위한정치>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빵과 자유를 위한 정치 - MB를 넘어, 김대중과 노무현을 넘어
손호철 지음 / 해피스토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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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수수 의혹으로 나라가 또한번 시끄러웠다. 검찰은 혐의가 있으니 조사를 하는 것이라 했고, 당하는 쪽에서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언론에 먼저 흘린 노 전대통령의 경우와 같은 표적수사라고 주장했다. 나역시 당하는 쪽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같이 생각할 것이라고 믿었다. 혹한의 추위로 길을 걷기도 힘들던 지난해 12월 분식집에서 뜨거운 라면을 먹다 뉴스에서 한 전총리 소환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젓가락질을 멈추고 티브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뉴스보다 더 놀랄 일은 한쪽 테이블에서 쉬고 있던 분식집 아줌마들에게서 벌어졌다. "받았지, 받았지. 안받았겠어? 다 똑같은 놈들이라니깐...."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다 너처럼 생각하진 않는다던 친구의 목소리가 귀에 또렷이 들려왔다. 그리고 한 편으로 미디어의 힘이 바로 이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였구나.... 저들의 힘은..... 미디어 앞에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가정이나 의혹도 미디어를 통하면 '있던사실'이 되고 만다는 것을 체험하는 현장이었다. 

흔히, 정치하는 사람들은 그놈이 그놈이란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마도 우리가 지금껏 경험해온 정치는 늘 배신이 뒤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입바른 소리도 정권을 잡고나면, 먼저 자기들의 이득을 챙기기에 바빠 공약쯤은 무시되기 일수여서 더이상 정치인들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는 소리이기도 하거니와, 권력을 잡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우리 서민들은 폭넓은 가슴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일까... 왜 지레 우리는 우리의 권한을 포기하고 마는 것일까. 장유유서를 강조했던 유교문화의 영향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MB정부는 불통의 정부로 통한다. 역시 서민을 위한 정치, 경제를 살리는 정치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현재 서민을 위한 정치는 새 날아가는 소리가 된지 오래고 일부 기득권층을 위한 정책을 펴며 양극화를 더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에 반하는 사람은 자기 밥그릇 지키기도 어려운 시대다. "MB는 잡아다 고문하는게 아니라 밥그릇을 뺏는다"라는 우스갯 소리를 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정부는 어느날 갑자기 뚝 떨어진 정부가 아니다. 이 정부를 인정한 것이 바로 우리 국민들이였다. 부정도 좋다. 부패도 좋다. 경제만 살려내라..  그런 바람으로 탄생한 정부이다.

더 큰 문제는 정권이 바뀐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을 것이라는데 있다. 현재 민주당은 노 전대통령과 김 전대통령의 유업을 잇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던 때의 실책을 인정하지도 국민앞에 사과하지도 않고 있으며 아직도 패권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일이기때문에 해서는 안된다라는 주장을 펴기도 하고 반MB를 위해 야당들이 민주당을 중심으로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연합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뒤에는 자기들의 노선대로 다시 찢어지면 그뿐이다..? 

한국일보와 프레시안에서  대표적인 진보논객으로 활동하고 있는 손호철은 이 책에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여당인 한나라당에 대한 질책과 그에 맞서는 제일 야당인 민주당의 뼈를 깎는 각성과 동시에 진보신당을 비롯한 소 정당들의 자기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단순히 MB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김 전대통령과 노 전대통령을 넘어서 진정한 서민을 위한 정치, 일상을 위한 정치를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게 맞다. 그러나 그 정치인을 뽑는 것은 우리 국민들이다. 우리의 권리를 너무 쉽게 방기하고 정치인은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손쉬운 변명거리를 찾아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할 때다. 2010 지방선거가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 누가 나를 대변해 줄 대표가 되어줄지 내 자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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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이란 무엇인가 개념어총서 WHAT 1
채운 지음 / 그린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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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굳이 헤겔을 들먹이지 않아도 내가 갖은 욕망이라는 것이 타인과의 비교우위에서 나오는 것임을 거부할 수 없다.  따라서 욕망을 추구하는 삶이란 재현의 삶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반화된 개념을 내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한치의 어긋남도 허용하지 않으며 언제나 주어진 문제에 대한 답만을 찾으며 살때 우리는 모범생이란 닉네임을 달 수 있다. 모범생은 선구자가 될 수는 없지만 또한 낙오자가 되지도 않는다. 못해도 중간은 가는 인생이라고 해야하나......
매사가 재현이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으니까.
발언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은 삶을 거부하거나 거역해서는 중간자의 삶을 살 수 없다. 안락하고 편안한 인생은 거역하지 않을때 보장된다. 다른것은 거북한 것이다. 다른것은 불결하고, 야만적이고, 죄악이다. 따라서 다르다는 것은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재현을 거부하기 때문에 체제를 불안하게 한다.  주어진 것을 거부하는 것이 바로 악이다. 그것은 '모두'를 부정하는 것이다. '모두'라는 하나의 방향, 하나의 질서가 평화와 안녕을 보장한다. 재현의 삶은 도덕과 규율과 엄격함과 권력이 판을 치는 삶이다. 내 위의 권력을 인정할 때 내 아래의 복종 또한 필수적이다. 여기에 다른 사유는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암묵적인 법칙이다. 이는 삶을 게으르지만 안락하게 한다. 거부하지 않으면 최소한 탈락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진정 '산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산다'기 보다 '살아진다'고 해야 맞는 것이 아닐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답안은 필요없다. '살기'위해 익숙함을 던져야 한다. 필요하다면 불편한 한대 잠을 자청해야 한다. 안락은 때때로 인간성을 말살하고 나를 나답지 못하게 한다. 나는 대량생산되는 마로니 인형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인식할 때다.
매일매일이 사건의 연속이다. 내일은 더이상 오지 않고 날마다 오늘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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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속의 세상, 세상속의 교회>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법학자 김두식이 바라본 교회 속 세상 풍경
김두식 지음 / 홍성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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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나는 기독교인입니다. 더 자세히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가톨릭은 기독교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분들을 만나면 묻지도 않는데 나는 꼭 얘기합니다. 가톨릭도 기독교거든요... 개신교가 가톨릭에서 분파한거잖아요........... 

나는 사실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어렸을때 놀이터에서 놀다가 사탕준다는 말에 홀랑 넘어가 다니기 시작한 교회입니다. 설렁설렁 가다안가다 교회가 결혼 후, 시누이 덕에 확실한 신앙이 되었습니다. 주일마다 시댁 식구들과 서울시내 한복판의 대형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보수적인 것은 강압적인 것과도 일맥상통하는지 시누이는 꼭 그 교회 그 목사님만을 강조하고 강요했습니다. 그 외의 것은 모두 이단이었습니다. 시내 한복판의 교회에서 예배가 어려울때는 가까운 곳에 있는 교회 지부에서 스크린을 통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몇년을 교회에서 보냈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때로는 누가 알아줄까봐 미리 몸을 사리면서 주일예배만은 꼭 참석했죠.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지 사람을 믿는것은 아니므로 사람들과 굳이 섞일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예배 중에 교회에 불신이 생겼습니다. 교회 어디를 둘러봐도 하느님이나 예수님이 아닌 목사님에 대한 칭송이 넘쳤습니다. 불현듯 너무나 낯설어진 교회... 내가 믿는 것은 목사님이 아니란 생각...  그길로 가족을 챙겨 예배 중에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후 주일마다. 이 교회 저 교회를 전전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주일마다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는 어린양이 된 것이죠. 그렇게 몇달을 또 전전하다가 학생때 가톨릭 신자였던 남편이 성당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렇게 나는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성당에도 권위적인 신부님은 계시고, 형식도 많고, 강제적인 행사도 많지만 공동체 생활은 확실히 하고있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훨씬 더 안정되었고, 봉사에 대한 개념도 생겼습니다. 공동체 안에 확실히 함께 있다고 느끼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기독교인이며, 가톨릭 신자임을 자랑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여전히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이해되지 않기도 합니다. 자신들만의 정의를 부르짖으며 행하는 타민족에 대한 명백한 살인행위들을 왜 방관하시는 건지, 한겨울에 갈 곳도 없는 사람들을 내쫓는 공권력의 부당함을 왜 그냥 보고만 계시는건지, 옳지 않은 일을 하느님의 일로 행하는 것을 왜 두고 보고 계시는건지.... 윌리엄 폴 영의 소설 <오두막>의 맥은 자신의 막내딸이 살인범에게 살해되도록 방관하신 하느님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나 역시도 하느님이 하신일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엔 이토록 부당한 일들이 항상 넘쳐나고 있으니까요. 폴영은 말합니다. 불가능이란 없으신 하느님은 세상의 악을 수용하신다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하느님은 살인범까지도 사랑하고 계신다고.  아직도 나는 여전히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분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합니다. 그분은 틀림없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가 서로 사랑을 나누길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김두식 교수님의 교회 공동체에 대한 생각에 많은 부분을 공감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권력과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공동체,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공동체, 그리하여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세상의 권력에 따라 발 딛을 곳을 넓혀가며, 나와 다른 사상, 다른 종교, 다른 계층을 구분짓고 배척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도 번번하게 너무도 태연하게 많은 기독교신자들이 예수님의 사랑에 반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리고 주일이면 교회안에서 자기 자신들의 안위와, 번성을 위해 기도합니다.  

처음에는 책 제목을 건성으로 보았는데, 이제는 너무나 선명하게 읽힙니다. 사회 속의 지위가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사회의 가치와 권력이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공존하며 존중된다면 진정 교회를 통해 예수님이 이루고자 하신 사랑은 교회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무한경쟁, 무한성장만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를 위해 봉사하는 교회 공동체를 꿈꾼다면 너무 느슨하고 결국엔 도태할 수 밖에 없는 믿음이 될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두식 교수님은 말합니다. 형식에 매몰된 오늘날의 교회속 세상을 버리고 예수님이 강조하신 본질이 무엇이었나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 회복의 길이며, 당장 교회에서 무엇을 새로 시작해야 할지 교인이라면 모두 고민하자고... 그리하여 지친 세상 속의 진정한 등불이 될 수 있는 교회를 만들자고.  

하느님은 언제나 내 편이니 언제나 나만 승리할 것이라는 독선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기독교인은 배려없는 이기주의자들이라고 짐작하고 눈살부터 찌뿌리는 사람이나 모두 한 번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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