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노래 - 마틴 루터 킹 양철북 인물 이야기 2
강무홍 지음, 박준우 그림 / 양철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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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0일자 오마이 뉴스, 초등학교 3학년인 열살 꼬마가 영하의 날씨 속에 '4대강사업 반대'를 외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기사가 실렸다. 환경운동을 하는 어머니와 '고인물은 썩는다'등의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인 이 꼬마는 추위에 왜 이런걸 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4대강 공사)하면 안되니까..."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중에는 "세뇌다 세뇌.."라는 글이 있었다. 요즘 '열살이면 해야될 일, 해서는 안될 일' 쯤은 구분한다. 무조건 엄마가 피켓들고 나가 서있으라고 한다해서 아이가 고분고분 말을 듣지는 않을 나이라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자본 중에 '인지 형식'이란 게 있다. 부모의 평소 언행, 부모가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방식, 부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부모의 독서습관 등등..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지형식이 부모의 그것과 크게 다를 수 없다. 좋거나 싫거나 알거나 모르거나 아이에게 제1의 롤모델은 부모가 될 수 밖에 없다. 자녀에게 책읽으라고, 공부하라고 말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공부하는 모습, 책읽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모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도 중요한 것이 된다.

1955년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비켜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흑인 여성이 체포되자,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그녀의 행동을 자기 스스로 자신을 인간으로서 지키고자 하는 자존감있는 행동이라며 흑인 차별의 부당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의 이런 행동에 그때까지 침묵했던 많은 흑인들이 동참했다. 한번 일어난 흑인들의 권리 찾기 운동은 걷잡을 수 없었고, 이에 대한 백인들의 위협과 폭력에 간디를 존경했던 킹 목사는 비폭력 평화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도 반대했던 그의 비폭력 평화주의 운동은 백인에 대한 흑인들만의 해방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존엄, 보편적인 인간 해방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흑인들만이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 자유와 존엄에 대한 자각이 있는 백인들에게서도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육체적인 노예의 삶에서는 해방되었을지라도 정신적인 노예의 삶은 계속되었던 미국 남부에서 킹 목사가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비폭력 평화운동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인권 운동가이자 목사였던 그의 아버지로 부터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믿음을 자본으로 물려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 같은 꼬마가 뭘 안다고 나서냐? 네까짓 게 원하는 게 뭔데?"
꼬마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유요."
부모와 함께 시위에 나온 흑인 아이에게 던진 백인 경찰의 네까짓 게 뭐냐는 한 인간의 존엄을 뭉개는 질문 앞에 꼬마가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의 손을 잡고 무작정 따라 나선 나드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꼬마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세상을 본다.

나는 우리 아이가 나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조금더 인간다워지고자 노력한다. 물질적인 가치보다 정신적인 가치를 소중히 하기 위해 노력하고, 말과 다른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모든 사람은 다르며, 모든 사람은 다 존중받아야 마땅하고, 모든 사람은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믿으며, 아이에게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나에게 중요한 이 정신적인 가치를 아이에게 보여주는 데 킹목사의 정신과 일대기를 정리한 이 그림책은 더없이 훌륭한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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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경품이라던가에 당첨이 된 경험이 없었던 나는(당첨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니 시도하는 일도 없다. 물론 서평쓰기는 제외하고...) 우연히 알라딘 서재에서 '홍세화 선생과의 대화'를 발견하고 역시 당첨될 리 없다고 생각하며 신청했는데 덜컥 메일이 왔다. 축하한다고, 초대한다고... 

헉! 홍세화, 그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목요일이고 저녁이다.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목요일마다 있는 노래봉사를 쉬어야 한다. 더군다나 14일에 개인사정으로 봉사를 하루 쉰다고 같이 봉사하는 분들께 미리 양해를 구해 논 상태라 이번주도 쉬어야겠다고 말을 하기가  영 쉽지 않을것 같았다.

날씨도 추웠다. 연일 오늘이 최고로 춥다는 둥. 날마다 기록을 갱신하는 추위였고, 거기다 집도 멀다. 멀어도 너무 멀다. 집에서부터 두시간 거리이니, 참가 못하니 다른분들께 양보한다는 댓글을 달아야 할 이유가 적어도 세가지는 충분했다. 

그러나, 홍세화다.... 기회가 왔다. 나는 물론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았다. 아니, 너무나 너무나 벅찬 시간이 었다.  

'인간의 존엄'에 대해 이야기 할 땐, 가슴이 떨렸고 눈가엔 눈물조차 맺혔다. 이 나라에서는 사회적 경제적 조건이 인간 존엄의 기준이 된다는 말씀, 그래서 보통의 양심을 갖고, 보통의 내 생각을 갖은 '인간의 존엄 경계선'에 선 우리들은 고통과 불행이 나의 일이 될까봐 불안에서 오는 소유와 굴종과 경쟁을 반복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을때 나는 견딜수 없이 떨렸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 줍니다."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이 광고문구. 홍세화 선생님은 격분하셨다.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런식의 광고를 할수 있나. 그러나 광고를 만든 사람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인 나 역시 이웃을 생각하지 않은 면에서는 마찬가지인 인간이다. 그 광고를 들으며 한번도 이웃을 생각한 적이 없다. 허.... 그랬다. 이런것이 바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제도 교육과 미디어를 통한 입력이다. 세뇌다. 사는 곳이 나를 말해주는 세상, 갖은 것이 나를 말해주는 세상 속에서 나의 최소한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나는 그렇게도 동동거리며 바쁘게 세상을 가고 있다. 갖은것이 없는 자는 존엄도 없으므로.....

내 아이에게 말하고 싶었다. 너는 그렇게 살지마. 너는 오지않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당잡혀 살지마. 굴종하며 살지마. 최소한 네 가치가 소유한 것으로 규정되는 그런 사회에서는 살지마.... 

묻고 싶었다. 그렇게 살게하고 싶지 않은 내 아이... 이 굴욕의 제도교육 속에서 어떻게 빼내어야 하나요. 홈스쿨링을 시켜야 하나요..... 그러나 나 역시 제도교육 속에서 성장해 왔다. 내 머릿속에 입력되어있는 내 생각은 이미 제도교육 속에서 완성된 것이다. 이런 내가, 아이가 진정한 자유인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나요....?   

매트릭스... 영화속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씀, 백번 천번 공감한다. 선생님의 강연 내용은 '생각의 좌표' 속에 잘 녹아있다. 책으로 읽을 때보다 강연이 공감이 더 크고 감동이 더큰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선생님 말씀대로 더더욱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내 생각이 진정, 내 생각인지'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았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선생님의 강연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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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동화 보물창고 4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함미라 옮김, 최혜란 그림 / 보물창고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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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폭발이 있었다.  

누가, 무엇을 얻기위해 터트린 핵인지 구구한 설명없이 독일의 한 평범한 12세 소년, 롤란트의 가족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방문하러 가는 차 안에서 핵이 폭발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아수라장... 소박하고 평범했던 한가정은 그렇게 아수라 속에 빠지게 되었고, 마을과 도시가 순식간에 날아가버렸다.  모든것이 날아가던 순간에 흔적도 없이 목숨을 날려버린 사람은 오히려 행복하다. 그순간 죽지 못했던 사람들은 너덜거리는 육체와 정신을 안고 서서히 죽을날까지 고통을 받았다. 그들은 무엇때문에 자신들이 그렇게 고통받으며 죽어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이 그렇게 죽음으로서 무엇인가를 얻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 순간 핵폭발을 일으켰을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흔히 헐리우드판 블록버스터 재난영화에서 보듯이 폭발을 일으킨 사람도 모두가 재앙속에 잿더미로 변하고 만 것일까. 

나는 아닐것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들은 잿더미가 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가족과 마주앉은 저녁식탁이 너무나도 감사했던 평범사람들 속에 그들은 속하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에 그들은 두더지처럼 숨어서 너덜해진 채로 죽어가는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의 소망인 아이들이 죽을듯한 갈증에 시달리고, 머리가 빠지고, 피부는 검뭇하게 타들어가 죽어갈 동안, 먹을 것이 없어 서로가 서로를 약탈하는 짐승으로 변해갈 동안, 그들이 굶어죽기를 그들이 타죽기를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것 같은 생각에 뒷꼭지가 쭈뼛해지는 느낌이다. 

승자독식. 쓸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려는 그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였는지 소름이 끼친다. 나는 확실히 많이도 불순해진 것 같다. 아무것도,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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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aalsrms 2010-01-06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 저도 그책보고있는뎅ㅋㅋ
 
호모 엔젤리너스
이명희 지음 / 네오휴먼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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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자원봉사를 하게 해 진학하는데 가산점을 준다고 한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마치 학교에서 무슨 편법을 강요하는 것처럼 불쾌했다. 그렇게 하는 봉사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고, 인간적인 정까지도 학업하고 연계시키는 것 같아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바꿔 생각해보니 그렇게 강제적으로 하는 봉사라도 하고보면 아이에게 가산점 외에도 다른 어떤것이 남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평생 알 수 없을 테지만, 경험했던 일은 평생 잊혀지지 않고 남아있을 테니까. 
내가 학교다닐 때는 자원봉사라고 하면 무척 거창하게 생각되었다. 물론 초.중.고 생활 중 한번도 봉사라는 걸 해 본 적없고, 대학 중에는 전시회장이나, 공연장에서 자원봉사를 해 본 기억은 있다. 그리고는 종교생활 중에 하는 봉사가 전부이다.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난 후에는 몸과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봉사보다 조금 더 손쉽고 생색도 나는 일정 금액을 매달 자동이체하는 기부를 꾸준히 하고 있으니, 나라는 사람은 자기 생각만 하며 사는 인간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나 스스로 생색을 내고 있다. 연말정산시 가장 떳떳하게 청구하는 항목이라고 할까.... 
돈으로 하는 기부도 안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시간을 투자해야하고, 마음과 몸을 모두 요하는 한단계 높은 봉사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없어서, 나는 약해서, 나 살기도 바쁜데.... 등등의 안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진정한 나눔을 요하는 것에는 나눠줄 마음을 갖지 못한 편협한 내가 겉치장만을 번드르르하게 하고 있다는 증거일 지 모른다.

호모 엔젤리너스 Homo Angelinus. 인류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오부지가 착한 인류, 잘 먹고 잘 살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인류를 넘어, 나누고 살 줄 아는 멋진 날개 단 천사 같은 인류를 꿈꾸며 저자가 붙여 본 것이라고 한다. 
인류는 정말 모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달려왔다. 나 하나 잘나기 위해 옆사람쯤이야 넘어가든가 꼬부라지든가 관심없이...
자본이라는 것은 늘 강한자가 살아가기에는 충분한 조건이 되지만 약자에게는 건널수 없는 강과도 같다. 약자는 강자를 위한 디딤돌의 역활을 할 뿐이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지금, 한정된 자연자원도 고갈되어 가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간적인 도리도 고갈되어 가고 있다. 어쩌면 지금이 우리가 서로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적기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내것, 우리것만을 고수하며 살기에는 모든것의 끝이 너무나도 뻔히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활동으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봉사를 하는 호모 엔젤리너스들의 이야기가 있다. 
난치병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  자신도 장애인이면서 시각 장애인을 위해 책읽어주기 봉사를 하는 사람, 전혀 봉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문화를 후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 늘 부딪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더 알기 힘든 헌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제도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변호사 이야기.... 이 모두가 남이 시켜서가 아닌 호모 엔젤리너스들의 자발적인 봉사이다. 
나는 아이들이 강제로 학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하는 봉사도 나름 남는 것이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마음을 접었는데, 이유는 봉사는 학습되기 때문이다. 봉사가 학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한 번 해보면 자꾸하게 되기 때문에 학습이다.봉사가 학습이 되고, 한 번 하면 자꾸 봉사하게 되는 이유는 호모 엔젤리너스들이 늘 하는 말인 바로 그것이다. 
"봉사는 남을 위한 배려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책을 좋아하고, 목소리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책읽어주기 봉사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 아마도 근사하게 해 낼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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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에 읽는 긍정의 한 줄 긍정의 한 줄
스티브 디거 지음, 키와 블란츠 옮김 / 책이있는풍경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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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아홉시 반, 우리집에는 어떻게 하면 안 자볼까 꾀를 내는 아이와, 어떻게 하면 열시 전에 재워볼까 궁리하는 엄마가 있다.
아이를 살살 달래 동화책을 한권 들고 먼저 자리에 누워 기다리면 아이는 갖은 핑계를 대며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은 책읽는 소리에 쫓아와 두눈을 말똥말똥 굴린다. 그리고 이야기 한편이 끝나갈 무렵이면 아이는 어김없이 꿈나라에 빠져있다. 조금전까지 안자겠다고 갖은 수를 쓰던 잠든 아이의 모습은 천사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렇게 잠드는 것이 순간인지....

순식간에 잠드는 아이와 달리 나는 잠이 들기까지 갖가지 생각 속에 빠진다. 아마도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잠드는 속도와 비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잠이 들기 전까지 책을 읽다가도, 책을 덮고 잠을 청하면 온갖 것들이 다 튀어나와 내 머릿속을 꽉 채운다.
나는 '극 소심녀'이다. 무엇인가 무지하게 억울한 일을 당해도 선뜻 나서서 사과를 받아낼 용기가 없어 울그락불그락 얼굴빛만 카멜레온마냥 바꾸어 대다가 좋은게 좋은거지... 말도 안되는 억지논리로 나 스스로를 달래고 마는.....그런날 잠자리에서 나는 맨정신으로 하지 못했던 말들을 상상속에서 쏟아대느라 엄청 말똥한 정신으로 새벽까지 눈을 굴리곤 한다. 
또 어떤날은 돼지란 돼지는 다 나와 내 상상 속에서 널을 뛴다. 이렇게 정신없이 돼지들이 널뛰는 상상을 하면 그 상상이 꿈으로 이어져 내 꿈속이 온갖 돼지로 치장되지 않을까 하는 반쯤은 믿지도 않는 그런 생각들로 채우기도 하고, 또 어떤날은 그닥 크게 잘못한것도 아닌데 '내가 왜이럴까'  자책에 빠져 잠든 남편에게로, 아이에게로 종종 걸음으로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나름 고단한 내 하루가 스르르 잠 속에 녹아들고 자는건지 마는건지 모르겠는 무엇인가 불편한 선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맞는 찌뿌둥한 아침.........

내가 좋아하는 사회심리학과 최순영 교수는 잠자리에서 온갖것들을 향해 이를 갈지 말고, 하루중 있었던 일 중, 감사할 일 세가지만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게 말이 쉽지 실천은 어렵다. 감사할 일 보다는 억울한 일이 먼저 떠오르고, 억울해 하다보면 감사쯤은 개눈감추듯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이 예쁜 책 한권을 만났다. <잠들기 전에 읽는 긍정의 한줄>
이 책은 처세술로 빼곡한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그저 마음의 균형을 잡아주는 생각거리라고 할까.
세상살이를 하다 보면 잠들기 전의 시간은 평온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어쩌면 후회와 근심이 있는 시간이기도 한 잠들기 전의 찰라에, 막연한 불안과 불평을 대신할 긍정적인 생각거리를 제공해 주는 책이다. ' 내 삶을 윤택하게 하는 건 바로 나', '누구나 도움이 필요하다', '베푸는 삶'........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날마다 한 챕터씩 읽을 수 있게 편집되어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든, 잠자리 한켠에 두고 밤마다 한 챕터씩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꼭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일은 꼭 하지 않게 된다. 긍적적인 생각만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을 더 떠오르게 한다. 어떤 개념을 떠나 그냥 습관처럼 한 날 한 이야기를 읽고 눈을 감으면 그것이 줄기를 타고 내 생각들을 정리하게 한다. 그것은 원망도 아니고 불평도 아니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나를 느낀다.
이 느낌이 꼭 긍정적이라거나 할 수는 없지만 불편하지는 않다. 그리고 그 불편하지 않음은 나를 평안한 잠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그리고 맞는 아침은 단 한마디 뿐 다른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기분 좋은 아침!'

몇권을 주문해 가까운 지인들에게 새해 선물을 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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