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읽는 세계박물관 - 하룻밤에 만나보는 세계적인 박물관 탐방과 기행 단숨에 읽는 시리즈
CCTV 지음, 최인애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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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패자는 할 말이 없고, 기록할 것도 없으며, 남길것은 더더욱 없다.
할말도 많고, 기록할 것도, 많으며, 남긴 것도 많고, 따라서 왜곡도  많은 역사의 기록이란 승자의 독식에 한 장일 수밖에 없다. 더더구나 세계유수의 박물관들이 간직한 역사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지난 시간을 만나고 생각할 수 있는 곳, 지난 시간을 통해 우리의 미래까지도 예측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박물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이 지난시간을 왜곡해 거짓 자부심을 갖기 위한 것이 아닌,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시간을 통찰하기 위해 필요한 것처럼.

세계여행을 꿈꾸지만, 이미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세계의 모든곳을 여행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보지 않았어도 에펠탑을 본것처럼 상상할 수 있으며, 피라미드의 웅장함을 그릴수 있으며, 보스포러스 해협의 푸른빛을 떠올릴 수 있다. 어쩌면 시간과 공간까지도 넘나들며 살 수있는 환상적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루브르에서 공간이동을 하지 않고도 이집트를 통째로 만날수 있듯이, 가보지 않았어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세계 주요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  화려했던 인류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고, 퇴색된 빛은 그 장구한 시간들을 보주는 곳.  더불어 찬란한 문화유산이란 승자의 독식일 수 밖에 없음도 세계 5대 박물관에서는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동양 미술품의 소장과 전시에도 힘을 기울이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조야백도>라던가,<소림공곡도>등은 중국 고대회화이지만 화려한 뉴욕의 하늘아래에서 손상없이 잘 보존되고 있다. 
이들 주요 박물관이 국가와 경계로 구분할 수 없는 인류의 역사를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사야할 점이지만, 왠지 나는 박물관은 침략과 탈취의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 곳 같아서 별로 유쾌해지지가 않는다. 이것은 나 개인의 생각이다.

이 책에 실려있는 세계 5대 박물관 외의 주요박물관들을 돌아볼 때면 박물관이 지닌 역사성이나 다양성에 관해 놀랍기도 하다. 호주 시드니에 있다는 ’파워하우스 박물관’에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성화라던가, 호주 공업발전사의 커다란 이정표라는 1949년 가장 마지막으로 생산된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이처럼 박물관은 인간이 더 나은 생활, 더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한 부단한 노력을 증거한다.
그런가 하면 독일의 중세시대 군사 요충지였다는 ’그라츠’에는 ’무기박물관’이 있다. 1642년 지어진 무기고였던 이곳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중세시대의 무기와 갑옷을 비롯해 각종 전쟁도구들이 전시되어있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전쟁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박물관의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다. 더구나 인위적인 박물관 건물이 아닌 역사속의 무기고였다는 점에서 더더욱.
우리나라의 ’전쟁기념관’을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는 각종 탱크나 폭격기 등이 전시되어 있고, 6.25당시 전사자들의 이름을 복도에 병풍처럼 새겨두었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전쟁기념이 기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전쟁을 기념하자는 건 아닐테고...... 사람들은 폭격기나 탱크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그늘에 앉아 싸온 음식들을 먹는다. 나처럼 그들도 전쟁기념관의 의미를 찾지 못한 것이리라.  어쨌든 무기란 것이 사람을 죽이는 도구이고 보면 독일 그라츠의 ’무기박물관’이나 우리의 ’전쟁기념관’이 그다지 기분좋은 장소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내가 꼭 가보고 싶은 박물관은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박물관이다. 이곳은 자연재해가 만든 역사가 기록된 곳으로 온갖 부귀영화가 자연에 의해 묻혀버린 곳이다. 부귀영화의 덧없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그곳을 역시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지 않고, 이 책에서 만났다. 몇 백 년의 세월에도 색이 바라지 않은 벽화들이 있는곳, 폼페이 최후의 날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고통의 몸부림 그대로 굳어버렸다는 폼페인들이 있는 곳.... 절대적인 자연의 힘은 부귀영화의 극치였던 폼페이를 한순간에 땅속으로 묻어버렸다. 현대의 우리들은 자연조차도 우리 뜻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전례없는 오만을 품고 있다. 박물관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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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첫번째 '재현'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나는 비재현의 삶이란 "끊임없이 나를 부정할 것, 부정은 일생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재현했다. 두시간의 강의를 한마디로 짧게 정의할 수 있었던것은 강의를 제대로 느낀것이 아니라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은, 강의에 대해 사전에 책을 읽은 것도 아니요, 인문학적인 재현에 대해 들어본 바도 없거니와, 생각해본 바도 없이 너무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무생각 없이 들리는대로 듣기만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제대로 듣고 있는것인지 내가 내 귀를 의심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일주일동안 어설프게나마 내가 나를 넘어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지금껏 알아왔던 나를 부정한다는 것. 그것은 어쩐지 누군가 나에게 진짜 삶을 살라고 속삭이는 듯한 야릇한 흥분을 주었다. 

재현에 대한 두번째 시간이었던 오늘, 아니 이미 어제가 되어버린 강의에 대해 나의 느낌과 생각들이 소멸해 버리기 전에 뭔가 남기고 싶다.
나는 오늘 내가 부서지는 경험을 했다. 과거가 지금 현재의 나에게 문제가 된 것이아니라, 과거에 대한 나의 태도, 과거를 생각하는 방식이 지금의 나를 결정해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마그리뜨의 그림 '들로 나가는 방법'을 보았을 때는 갑자기 눈앞이 확 트이는 경험을 했다. 그건 어두운 방에서 커튼을 여는 순간 쏟아지는 빛 같기도 했고, 박하사탕을 와드득 씹는 순간 퍼지는 민트향 같기도 했다. 나는 분명 웃었는데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분명 입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내가 너무 프로이트의 위대함에 빠져있었나보다. 그로부터 해방되는 순간 느낀 희열을 다 표현할 수 없음이 아쉬울밖에.   

격월간<민들레>에서 책 한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던 노숙자가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고, 자포자기했던 삶을 끌어안게 되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버렸던 아이를 찾고 싶어졌다는 그는 인문학이 자신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에 좋다고 말했다. 
사유하는 나.
상식, 도덕, 관습, 견해, 재인.... 의 틀에서 벗어나 생각할 줄 몰랐던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다.  
상식과 도덕과 관습과 견해와 재인의 덩어리인 나를 깨는, 나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내가 진정한 내가 되는 것. 그것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내 목표가 되었다.  자본주의, 가족주의가 만들어낸 모든 정형화된 삶에서 등을 돌리려한다. 몰랐던 진실들을 이제는 좀 알아야 겠다.

내일은 없다. 따라서 올 희망도 절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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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 중이였어요. 인문학스터디를 함께 할 수 있다는 메일을 받은 것은...   헉~!! 소리나게 기뻤던 것도 잠시, 여행중이라 당황스러웠지만 날짜 계산을 해보니 다행스럽게도 돌아오는 날 저녁이더군요. 뭐 멀리 여행을 갔던 것은 아니었구요..  그렇지만 어쨌든, 첫강의가 있는날을 여행계획에 잡았다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내가 스터디에 함께 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접고 있었다는 거죠. 함께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기회가 나에게 오겠나... 하는 의심을 버리지 않은 거죠. 

사실은 올 겨울, 가족여행으로 인도여행을 계획했었는데 아이가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길게 여행을 갈 수가 없게 되었어요. 아마도 인문학스터디를 함께 하게 될 나의 운명이었나 봅니다. ㅎㅎㅎㅎ 채운 선생님 말씀대로 매일매일이 '사건'일 수 밖에 없는 좌충우돌 저입니다.  

어쨌든 인도여행을 다음기회로 미루고 아쉬운대로 2박3일을 여행기간으로 잡고, 아이가 좋아라하는 KTX를 타고 내가 좋아라하는 부산엘 갔었어요. 몇차례 다녀온 부산이라 특별날 것도 없는 여행이었는데 의외로 자갈치 시장을 처음 가본 아이가 미친듯이 좋아라 하더라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한테는 보수동 헌책방 거리를 다녀왔다는 것이 무척 만족스러운 여행이었습니다.  

헐레벌떡 KTX에서 내리자마자 툴툴거리는 남편과 아이와 작별인사를 하고 홍대거리로 달렸습니다. 조금은 기가 죽었던 것도 같아요. 최근에 홍대거리를 밟아본 일이 없었거든요. 달라도 너무 달라진 거리와 무엇인가 생각거리가 많아뵈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보며 조금은 많이 기가 죽은게 확실해요. 그러나 강의가 시작되고 저 자신이 강의에 매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행복하다'라는 느낌말고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지금도 잘 모르겠네요. 

'지금까지의 나를 부정하고, 나를 벗어나 나와 세상을 조망해 볼 것'..... '부정은 일생동안 계속될 것'... 어제 강의를 제 방식으로 재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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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1
안애경 지음 / 나무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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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 사우나, 눈,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에 이어 최근에는 다양성과 평등이 보장된다는 핀란드의 교육이 내가 생각하는 핀란드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실제 서점에 나가보면 핀란드의 교육에 관한 책을 쉽게 만날수 있다. 여러권의 교육에 관한 책들 사이에서 생소하게도 핀란드의 디자인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핀란드의 눈 쌓인 숲을 닮은 표지를 한 이 책은 매일 기록적인 추위를 기록하고 있는 요즘에 읽기에 너무나 환상적인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겨울여행길의 기차 안에서 읽었다. 핀란드의 숲 처럼 풍성하진 못했지만 달리는 기차 창 밖으로 펼쳐지는 눈 쌓인 풍경이 너무나도 어울리는 아름답고 차가운 시간이었다. 
핀란드의 디자인은 간결하고 차갑고 이성적이다. 간결함과 차가움이 인위적이라거나 거부감을 주지 않는 이유는 자연을 조작하지 않고 이용하지 않고 거스르지 않는 어울림에 포인트를 두기 때문일 것이다. 도로를 내더라도 일부러 자연을 훼손해 직선도로를 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연을 훼손하고 결국엔 인간생명을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들고 부수고, 만들고 부수기를 즐겨야 하는 소비문화와 성장주의 문화에서는 자연이 ’주’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자연은 방해물이 될 뿐이다. 보기 싫다고 판단되는 나무들은 잘라야 하고  구불구불한 이차선 도로대신 직선의 사차선 도로를 시원하게 뚫어야 한다. 자연을 훼손한 자리엔 자연을 닮은 조형물이 들어서기도 한다. 그리고는 녹색성장, 녹색설계 등등 녹색을 운운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이 삶에 ’주’가 되는 사회에서는 인위적으로 ’녹색’을 강조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핀란드에는 소비성 물질이 풍부하지 않다고 한다. 화학 섬유 공장도 없으며 새것보다는 있는 것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고민한다고 한다. 소박함은 간결함으로 이어지고 절제는 차가움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변화에 민감하지 않은 핀란드인들은 아이들에게도 성장과 경쟁을 부추기지 않고 하나하나 다른 모두의 개성을 존중한다. 요즘의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핀란드의 교육방식은 바로 이점이다. 하나하나 모두가 다르고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교육도 디자인도 한 사회의 가치관의 반영임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사회 속에 역사가 살아있다는 것은 그들만의 전통과 문화가 오래도록 존재한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헬싱키는 100년 전후를 생각하며 도시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녹색성장도 100년 후를 생각하며 벌이는 공사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점은 헬싱키는 계획을 세우는데도 30년이 걸렸고,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오랜시간에 걸쳐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재검토하며 또 앞으로도 실현되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또, 도시의 변화는 개인의 이익과는 무관한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동요하지 않으며, 도시계획은 다음세대를 위한 변화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100년 후 까지도 생각한 녹색성장이라고 한다. 때문에 국민의 반대쯤은 간단히 무시되고, 계획이나 공사기간 또한 단기간이다. 빠른 변화, 눈부신 성장에는 오래도록 끌 시간이 없다. 도시의 변화에는 반드시 몇몇 개인의 이익이 상관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심사숙고 대신에 만들고 부수는 실용을 택한다고 해야하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은 잘 알지도 못했던 북반구의 핀란드라는 나라가 갖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막연하게 부러웠다. 항상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해 급급한 우리의 모습이, 일상이 예술이라는 핀란드인들의 비움 속에 겹쳐져 부끄러워졌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사대주의자인 것일까. 
항상 변하기를 갈망하고 실제로도 '급변'을 멈추지 않는 우리 사회 속에 진정 우리것인 역사가 살아있는지 의심스럽다.
촌스러운 우리말 대신 영어를 사용해야 격이 높아보인다는 천박한 상상력이 우리의 독특한 전통과 문화를 죽인다. 낡고 오래된 것들은 부숴야 하고, 남보기에 누추하고 지저분한 것은 감춰야 한다. 그러기에 서울은 내가 자랄때부터 내 아이가 자라고 있는 지금까지도 쉬지않고 성장하느라 계속 늘 항상 오래도록 ’공사중’이다.

핀란드의 디자인을 산책하는 동안 지하철 4호선의 차가운 알루미늄 의자와 물이끼가 여전히 아직도 부자연스러운 청계천의 돌틈과 신문로의 키가 23m라는 ’망치질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디자인이 먼 곳에 와서 고생이 많다’는 손호철 교수의 말도 떠올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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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사교육>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굿바이 사교육 -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은 학부모를 위한 교육 필독서
이범 외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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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낯갈이가 심해서 옆집에 누가사는지도 모르고 집안에서만 아이를 키운 나는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을 무렵부터 같은 또래의 아이 엄마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어울림은 왜곡된 아이사랑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되었다. 뭐가 뭔지 모르고 마냥 놀기만 했던 우리아이는 영어는 커녕 그때까지 한글도 떼지 못했고, 방문학습지며, 미술교육이며 전무한 상태였다. 이웃 엄마들의 말을 들어보니, 우리아이는 모든 면에서 늦어도 한한참 늦은 아이였다. 엄마들은 하나같이 그상태로 학교에 입학한다면 무엇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것이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불안했다. 답답한 엄마 만나서 똑똑한 우리애가 바보가 되게 생겼구나.......

아이는 그때부터 피아노다, 미술이다, 학습지다, 한글이다, 가베다....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등2년 까지 온갖것을 배웠다. 그래도 난 다른엄마와 다르다며, 아이를 산만하게 만드는 태권도보다는 검도를 시켰고, 특별히 호기심이 많은 아이니까 삼십분 거리에 있는 영재과학교실을  직접 운전해 데려다주고 두시간을 기다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문법이나 공부로 하는 영어는 아이에게 재미를 주지 못하니 영화를 보며 영어를 체득한다는 특별난 영어학원을 다니게 했다. 그리고 특별히 공부하지 않아도 그때까지 시험점수는 잘 나온다고 아이가 똑똑하다며 엄마들을 모아놓고 자랑삼기를 즐겼다. 그렇게 2년을 넘길 무렵부터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눈치를 보는 일이 잦았으며, 학교 이야기는 하고싶어 하지 않아했고,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급기야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씀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이가 산만하다고 했다. 도통 집중을 하지 못하는데도 시험점수는 잘나오니 집에서 엄마가 많이 잡는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 지금이야 저학년이니 대충 통밥으로 통하지만 학년이 높아지면 산만해서 학교공부를 따라갈 수 없다고도 했다. 

나는 기가 막혔다. 아이는 그때까지 어딜가도 그림처럼 얌전하다는 소릴듣는 아이였다. 산만하다는 말은 도통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도대체 우리애가 산만하다면 다른애들은 '그림처럼'이 아닌 진짜 '그림'이란 얘긴가....
아이가 유치원 무렵 다른애들보다 배운게 없어 고민했던 것은 문제도 아니였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였다. 답답한 엄마 만나 똑똑한 애가 바보가 된 상황은 이제 현실이 된 것이었다.

나는 다시한번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아이가 산만하게 된 이유, 아이가 선생님을 싫어하게 된 이유, 아이가 학교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 아이가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이유, 아이가 더이상 웃지않는 이유............
학원을 하나씩 정리했다. 그리고 대신 놀이치료를 다니기 시작했다. 삼개월정도 놀이치료를 하면서 아이는 웃는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3학년이 되면서 모든 사교육을 그만두었다. 아이는 학교 외에는 다니는 곳이 없다. 그리고 지금 아이는 날마다날마다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아이의 웃음소리가 까마귀 소리처럼 까룩까룩 커졌다. 그리고 나는 인간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알고자하니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어느날 인터뷰기사를 통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란 곳을 알게 되었고, 등대지기 학교 온라인 수업을 신청했지만, 심리학 공부를 시작하고 시간이 여의치 않아 등대지기 학교 수업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메일을 통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소식은 꾸준히 듣고 있었고, 조그만 소책자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을 구입해 이웃 엄마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수첩만한 책자를 나눠주면 모두들 한결같이 말한다. "정말 이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
그러나 그건 소극적인 바람일 수 밖에 없다. 내 아이를 담보로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아이가 도태되지 않고 세상에 살아 남을 수 있을지, 어미들은 본능적인 걱정에 쌓여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공장에 조립공으로, 정수기 코디로, 전화 상담원으로 오늘도 바쁘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배짱으로 하나밖에 없는 금쪽같은 내새끼를 이렇게 팡팡 놀리고 있나..... 그건 나도 모르겠다. 어느날 갑자기 배짱이 두둑해졌다. 내가 동동거리지 않아도 아이가 세상을 잘 살아낼 것이라는 믿음, 생각보다 아이가 강하다는 믿음, 받아먹는 교육에 세뇌된 아이들 보다는 자유로운 행복한 어른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어느날 부터 갑자기 생겼다.
내가 지금껏 생각해 온 '성공한 인생'에 대한 설계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직접 내 손으로 내 생각으로 완성한 설계도가 아니었다. 나역시 세뇌되어 온 것이다. 성공이나 행복은 '상위'의 개념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1등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이는 소중하고 어여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 '굿바이 사교육'은 등대지기학교의 수업내용을 엮은 것이라고 한다. 등록만 해놓고 1시간도 수강을 못했던 나에게는 정말 행운같이 다가와준 책이다. 강의를 맡은 강사마다 나름대로의 교육철학이 있는 분들이다. 그러나 사교육이 아이를 망치고 우리의 미래를 망친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분들이다.

교육평론가 이범은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에 대한 전체적인 맥락과 교육문제의 핵심 용어들, 요즘 한참 이슈인 입학사정관제도 등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법제화된 제도에 관한 글은 머리가 아파 별로 읽고 싶지 않은데 이분의 설명은 쏙쏙 잘도 들어온다. 주입식 교육은 결국 기득권세력의 체제 유지 방법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되니, 내아이가 그들의 박자에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 또한 이해하게 되었다.
딸 솔빛이를 원어민 수준의 영어실력으로 키워낸 이남수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서는 어떠한 육아서도 내아이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남들이 말하는 어떤 좋은것도 내 아이에게는 내 아이만의 박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내 아이에게도 약이 된다.
부모가 가진 인지환경이 곧 아이의 인지환경이 된다는 이우학교의 이수광 선생님,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라는 신을진 선생님, 애를 놀리더라도 목적의식을 심어주는데 게을르지 말아야 한다는 조기숙 선생님,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연대를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현재 우리의 문제를 직시하게 하는데 있다고 말하는 부산 인디고 서점의 허아람 선생님, 그리고 얼마후 올 사교육 걱정없는 온전한 세상을 위해 오늘의 발판될 각오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꾸려가고 있는 송인수 선생님, 이들은  내아이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이와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기에 행동하는 등대지기이다.  

입시를 위한 주입식 교육이 체제유지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인지한 내가 갑자기 용기백배해서 아이에게 물었다.
"너 홈스쿨링 할래...?"
"정....말..?"
아이가 좋아서 펄펄 뛸줄 알았는데 의외로 시큰둥하다. 이 엄마가 믿음직하지 못한 것일까 왠지 서운한 생각이 들어 다시 물었다.
"방학에 하루종일 같이 놀고, 돌아다니고, 요리하고 재밌지 않아?"
"재밌고 좋은데........ 친구가 없잖아...."
"........."
나는 정말 너무나도 저돌적이고, 무식하고, 단순하며, 답답한 엄마인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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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차기 2010-01-17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살 되는 아들의 아빠입니다. 훌륭하신 서평 잘 봤습니다. 이 책을 사놓고도 제대로 펴지도 못했어요. 그래도, 다른 아빠 엄마에게 선물할 거라고 들어왔는데, 좋은 서평을 보게 되어 기쁩니다.그리고, 감사하고요.
올해는 드디어 아들놈이 유치원을 가게 됩니다. 걱정이 앞섭니다. 한글도 못뗀 것은 당연하고요,숫자도 4까지만 셀 줄 알고, 영어는 뭐 말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지금 다니는 미술학원에서는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아서 새로운 친구들과 잘 융화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도 빨리 이 책을 읽고 우리 아이들이 어떤 것을 배우고, 어떻게 배워나갈 지를 진지하게 고민할겁니다.

비의딸 2010-01-18 09:15   좋아요 0 | URL
제가 겪어보니까 정말 고민은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거였든요. 그런데 친구가 없을까봐 홈스쿨링 못한다는 그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아이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낄때마다 눈물나게 고맙고 감사할 뿐이죠.... 부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면 아이에게도 중요한 것이 되잖아요. 고민하는 아빠를 둔 옆차기님네 꼬마는 분명 잘 커나갈꺼라고 생각합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주는 아빠들을 가끔보는데 그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보여요. 옆차기님도 참 아름다운 아빠신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