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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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전 피아니스트 스티브 바라캇의 내한 공연을 다녀왔다. 한때는 그의 음악을 미치도록 사랑했으므로 공연예약을 해놓고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설레였다. 공연은 설레였던 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 연주회에서의 노련함은 자칫 무성의한 태도로 비추기 쉽다는 것을 느끼게 한 공연이었다. 작곡 뿐 아니라 프로듀서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15년이 넘는 경력에 걸맞게 노련했다. 공연장을 꽉 채운 관람객들을 한 손에 휘어잡자면 그정도의 노련미는 당연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 당연함이 너무도 거북스러웠다. 2부 공연까지 마치고 커튼콜로 그의 자작곡 ’자장가’가 연주되는 동안 대형 스크린에서는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기아의 모습들을 비춰주었다. 까맣거나 혹은 누런 아이들은 거미처럼 말라붙은 팔다리를 늘어뜨리고 커다란 눈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와는 대조적인 너무도 아름다운 남자 스티브 바라캇... 그는 진지하고도 능란하게 ’자장가’를 연주했다. 
그가 유니세프 친선대사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는 공연 수익금의 일부분을 유니세프에 기부할 것이다.
그래서 스티브 바라캇의 아름다움이 배가 되었다는 따위의 소리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나는 화가났다. 무엇엔가 기만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라고 확실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순간의 그 느낌은 그랬다. 구걸하고 있는 까맣고 노란 아이들... 그리고 금발의 천사 스티브....
금발의 천사, 그들이 말하는 ’오지’로 개명내지는 구원의 손길을 뻗기전, 오지의 그들은 정말 무지하고 문명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답지 못한 생활을 해 오던 야만인들이었을까. 그래서 그들은 구원받아 마땅한 구원을 거부할 경우 쓰레기처럼 처리되어도 마땅한 존재였을까. 적어도 그들끼리는 행복했을 것이다. 서구의 문명이 행복의 척도가 되기 이전에는.

’워싱턴 합의’는 미국과 국제금융자본이 미국식 시장경제체제를 개발도상국 발전모델로 삼자고 미 행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합의를 말한다. 미국식 시장경제체제란 무엇인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야기할 수 밖에 없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던가. 이른바 세계화라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전도에 지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라는 시스템에서는 오직 시장의 자유로운 기능만이 합리적일 뿐이다. 합리적인 자유경쟁체제에서 해택을 받는 것은 이미 기득권을 쥔 소수의 그들뿐이다. 신자유주의는 없는 자들을 착취해 있는 자들의 배를 불릴 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내막을 잘 알지 못한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 화려한 자본의 담론에 이끌려 ’시장’과 ’경쟁’을 새로운 희망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열심히 일하면 우리도 언젠가는 이란 새마을운동 적 이야기를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경쟁이 이뤄질 수 없는 지점에서 게임을 시작하고 있다는 불합리를 도대체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있다는 것을 믿을수 없다. 살인적이고 국가적인 빈곤에서 자력으로 일어나려는 몇몇 나라의 시도를 다국적 기업과 손잡은 쿠테타 세력이 짓밟아 다시 국민이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나같은 한사람의 낭만적인 막연한 도움 가지고는 기아가 해결되지 않는다. 원조라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원조라는 것은 총과 빵을 함께, 그리고 주는 이들의 입맛에 맞게 조리된 임시방편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식민지는 유효한 것이다. 19세기와 같이 실제적인 국토 찬탈을 통한 식민지화가 아니므로 이를 신식민지화라고 명명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 지글러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고 했지만, 먹어야 산다는 당면과제 외에 남의 것을 빼앗아 내것을 늘리려는 욕망도 인간만이 갖는 것이 아닌가 싶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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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혼란스러운 - 사랑을 믿는 이들을 위한 위험한 철학책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규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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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36년 12월 11일 영국의 에드워드8세는 라디오방송에서 성명을 통해 "나는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 없고 그 무거운 책임을 짊어질 수도 없음을 알았다."고 밝히고 왕위를 물러났다.
바로 세기의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 ’원저공과 심프슨 부인’ 이야기이다.
사랑이 무엇이길래 에드워드8세는 영국의 국왕자리를 포기하고 이미 결혼한 기혼녀였던 심프슨부인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게 했을까. 
이들의 사랑은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규정하는 철학에서 말하는 사랑은 하나의 우발적 사고요, 흐려진 이성에 유감스러운 결과를 초래하는 감정의 혼돈에 불과하다는 결론은 적합하지 않다. 국왕을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한 에드워드의 사랑을 우발적 감정의 혼돈으로 결론내기에는 뭔가 그의 사랑을 질적으로 훼손시키는 듯한 느낌이 남는다.
여성과 남성의 사랑을 진화를 위한 보다 나은 후세를 남기기 위한 동물적 행위로 규정하는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결론도 적합하지 않다. 그러기에는 그 두남녀가 가장 우수한 후세를 생산할 수 있는 왕성한 생식기에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 <사랑, 그 혼란스러운>의 저자 철학자이며 평론가인 독일의 미남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생리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또는 운명적으로, 볼수있는 다각도의 위치에서 사랑을 설명하고 있다.  또 3부에는 현대의 사랑을 설명하며 진정 사랑이 존재하는 것인지 묻고 있다.

사랑이란 말은 너무 흔하다. 살아가는 동안 개인적으로도 사회문화적으로도 사랑은 도처에 널려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대한 관심에서도 사랑은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모든것의 시작은 사랑으로 부터 비롯되는 것인지 모른다. 그만큼 사랑에 관한 정의도 많고, 철학도 많고, 사상도 많다. 그러나 나 개인적으로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이렇다’란 결론을 내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우습게 생각된다. 규정할 수 없는 것과 결론 내릴 수 없는 것은 그저그런대로 미지의 세계로 두기에 인간은 너무 호기심이 많고, 학문적인 체계를 좋아하는 것일까.

에드워드는 마침내 이혼한 심프슨 부인과 프랑스에서 정식으로 결혼했다. 어쩌면, 결혼생활은 그들의 연애생활에 비춰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약간의 위험, 모험 따위의 반작용에 반응폭이 더 커지니까..
에드워드는 72년에 윌리스는 86년에 세상을 떴고 둘은 영국 윈저성 안에 나란히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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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빈자리 낮은산 키큰나무 8
사라 윅스 지음, 김선영 옮김 / 낮은산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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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권위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어떤 사건 앞에 내 잘못은 없고 네 잘못만 있다고 한다. 그것은 상대적인 것으로 상대방이 나보다 약할 경우 더 빈번하다. 강한 남편과 약한 아내, 권위적인 교사와 자존감이 낮은 학생, 훈육을 좋아하는 부모와 자신을 실수투성이로 그리는 아이의 경우가 그렇다. 강한자의 잘못 떠넘기기는 자연학습되어 떠넘기기도 전에 약한자는 스스로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자책하며 자신을 괴롭힌다.
아이들의 경우, 어떠한 불행이 닥쳤을 때 그들은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이들이 아직은 혼자서 삶을 지탱할 수 없는 유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갖는 자책이다. 어른앞에 아이는 생물학적으로 늘 약자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처음으로 세상에서 맺는 관계는 양육자와의 관계다. 아기는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고, 욕구에 대처하는 양육자의 반응을 통해 관계를 학습한다. 그리고 차츰 양육자가 자신이 바라는 욕구에 제대로 반응을 해주지 않거나, 어느날 갑자기 자신을 돌보아 줄 양육자가 사라져 버렸을 때 아기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불행에 대한 아이의 자책은 아기가 어느정도 자라 아동기에 들어서도 한동안은 지속된다. 한밤중 부모의 싸움이라던가, 이혼이라던가, 혹은 죽음으로 부모를 잃게 되는 경우까지도 아이들은 말도 안되는 이유를 붙여 그것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자라지 못한 내면아이가 있어 자신에겐 불행할 타당한 이유라도 있는듯이 모든것은 자신으로 부터 비롯되었다고 믿기도 한다.
11살의 소년 제이미 역시 자신의 불행은 모두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믿었다. 자신이 잘못 선택했기 때문에, 자신이 잘못 말했기 때문에, 자신이 행동을 잘못했기 때문에....
반면에 자신보다 약한것을 짓밟기 좋아하는 권위적인 성격의 래리와 밀러 선생은 달팽이처럼 자꾸만 안으로 말아들어가는 슬프도록 약한 상태의 제이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제이미는 관계속에서 다시 상처받을 수 밖에 없다.
제이미가 필요로 했던 것은 자신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였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항상 제이미를 배신했다. 고양이 '미스터'가 그랬고, 아빠가 그랬고, 그레이 영감이 그랬고, 기억을 잃은 이모가 그랬다.
이쯤이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고 말하는 이유 또한 관계 속에 있다. 관계의 동물 인간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치료하기도 한다. 상처받고 두려움으로 관계를 기피하는 제이미가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는 관계 또한 존재했다. 일일교사 스톤씨, 괴상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오드리, 그리고 기억을 잃은 이모......
그들은 닫힌 제이미를 바라보았다. 제이미를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애정을 갖고 바라보았다. 애정을 갖고 본다는 것은 그의 피상적인 모습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제이미의 숨겨진 아픈마음과 비밀스러운 상처를 본 것이다.  제이미를 온전히 지켜봐주고, 들어주며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제이미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성장소설인 11살 제이미의 이야기 <기억의 빈자리>는 나에게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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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자서전 -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
간디 지음, 함석헌 옮김 / 한길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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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옳으니 그르니 시비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고, 가능하면 거기에서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 아래서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또 우리가 사람을 그 드러난 행동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충분한 자료에 근거하지 않는 한, 그것은 한낱 믿을 수 없는 추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본문 p282)

'사티아그라하'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가르키는 힌두어다. 간디의 위대함이야 새삼 말 할 것도 없는 일임에도 한번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던 일이 없다. 그저 학교에서 배웠던 피상적인 내용, 영국 식민지 시절 악법에 복종하지 않는 시민불복종운동을 이끌었던 인도의 등불이라는 정도가 그에 대해 알고있는 전부였다.

물론 간디자서전을 읽은 지금도 알게 된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진리를 찾는 실험이야기는 중간중간 지루하기도 했고, 알수없는 힌두어 지명과 인명 그리고 연대별 정리가 아닌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왔다갔다 하는 통에 정신이 없기도 했으며,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이해 조차도 힘든 극도의 정신적 절제와 절식이나 단식이야기가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이부분에서 나는 간디가 탄력적이지 못한 인물로 느껴졌다. 자신의 틀에 아내와 자식들을 지나치게 옭아메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고 얻어야 하는 것은 그의 비폭력정신이다.

간디는 모든것에 편견이 없었다. 모든것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그 마음은 순결한 마음이다. 그 마음은 내 자신이 존엄할 때 모든 생명 또한 존귀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딛고 올라서려는 인간의 욕심은 실제는 자신의 존귀함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남을 존중할 줄 모르는 자는 결국 자신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다.
간디가 온생애를 통해 맞선 것이 바로 '인간존중'에 대한 것이다. 인종차별이라던가, 불가촉천민제도 같은 계급적 차별, 권력에 대한 비열한 복종 등은 그를 그저 평범한 식민시민으로 머물지 않게했다. 타고난 내향적 성격 탓에 첫 법정에서 제대로 입 한번 뗄수 없어 물러났던 그가 남아프리카에서의 인종차별에 대한 경험을 통해 타고난 운동가로 변모하게 된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 채식주의로 표현되었고, 자신이나 아내, 혹은 막내 아들이 병중에 죽는다 할지라도 동물성 영양은 섭취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이 되었다. 그점이 나에게는 견딜수 없는 답답함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내 안의 문제이다. 내 생각, 내 추측으로 간디를 평가해서 안되었다. 그것이 바로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을 보는 '비폭력대화'의 핵심이다.

간디가 국가의 횡포에 맞서 '비폭력운동'의 중심에 설 수 있기 위해 무한히 절제하고 절식하고 서슴없이 단식해야 했을 것이다. 그의 절제를 통해 인도는 조직적인 사랑의 힘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인도의 대중은 승리할 수 있었다.
간디는 자신의 생을 진리를 찾아가기 위한 실험이라고 표현했다
진리를 찾기 위해 티끌보다도 겸손한 마음과 믿음에 대한 확신, 그리고 자기 자신에겐 엄격함을, 그러나 생명을 가진 모든 것에는 평등한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함을 간디 자신이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이론으로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평생을 소박하고 가난하게 살면서 실천했다. 겁쟁이 선생은 결코 제자를 용감하게 만들 수 없고, 자제가 뭔지 모르는 선생은 결코 자제의 귀함을 가르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또하나, 그의 위대함은 단순한 실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제와 욕망에 대한 끊임없는 유혹에 시달렸으나 그 모든 것을 이겨냄에 있다. 자서전을 마치는 글에도 자신이 끊임없이 쉬지 않고 노력은 하면서도 자신의 속은 정결치 못함을 알기 때문에 세상의 칭찬이 달갑지 않다고 했다. 그도 결국 피조물의 하나일 뿐이였으므로 그 위대함이 더하다.

진정한 힘은 폭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정화를 통한 내적인 힘은 물리적 폭력을 이긴다. 그것이 간디의 비폭력무저항의 정신이다.
이론으론 이해가 가는데, 그것이 지금의 우리가 사는 극도의 물질만능 시대인 지금, 돈이 권력이고 돈이 생명까지도 덮는 이 시대에도 과연 정신이 물질을 이길 것인지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다. 너무 많이 보아왔다. 힘없고, 돈없고, 갈 곳 조차도 없는 민중은 항상 핍박 받아 왔음을......

 간디의 자서전 읽기를 끝내고 서평까지 마치고 난 오늘 아침 신문에서 우연찮게도 발견한 기사는 '서사하라의 간디' 19일째 단식 투쟁이라는 기사였다. 대서양의 스페인령 카나리 제도의 한 공항에서 모로코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하이다르 라는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사다. 그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비폭력 투쟁을 벌여온 공로로 지난해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고, 인권단체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모로코는 서사하라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을뿐 아니라, 미국의 어느 단체에서 '용기있는 시민상'을 받고 귀국하는 그녀를 공항에서 여권을 빼앗고 강제 추방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스페인의 한귀퉁이 공항바닥에서 19일째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기사에는 바닥에 모포를 깔고 앉은 하이다르의 사진이 함께 실렸다. 히잡을 쓰고 모로 고개를 돌린 그녀의 표정은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녀가 내뿜는 처절함을 느낄수 있었따. 상상할수도 없는 거대하고 조직적인 국가적 폭력 앞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 단식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결국, 비폭력 투쟁이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싶은 생각 또한 하게 된다. 왜냐하면 약한 자 앞에서 한없이 강해지는 인간답지 못한 인간들은 항상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신적 숭고함을 무기로 폭력과 맞서온 간디의 비폭력 정신은 작지만 큰 변화를 일으켜 왔고, 우리 인간의 자멸을 막는 힘이 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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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사지 마라 - 내 아이를 살리는 에코 살림법
서울환경연합 여성위원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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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해보겠다고 배추를 몇포기 샀다. 지금껏 얻어 먹거나, 사먹거나 했었는데, 아이가 커가니 김장쯤은 넉근히 해내는 엄마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작년엔 절임배추를 주문해 양념만 하는 김장흉내만 냈었는데, 아들이 왜 배추를 하룻밤동안 절이지 않는거냐고 묻는 통에 곤란했던지라, 올해는 직접 절여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거다.
믿음직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느라 배추를 능숙한 척 쩍쩍 갈라보였다. 
아들은 나의 배추 가르기 쇼가 별로 감탄스럽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배추를 보고 감탄했다. 
어쩌면 이렇게 크고 통통하고 벌레 먹은 것 하나없이 싱싱할까. 그다음 순간은 소름이 쫙 끼쳤다.
이렇게 훌륭하게 배추를 키우려고 얼마나 많은 비료와 농약을 사용했을까........
배추 뿐만이 아니다. 무도 내 다리 두배만하게 두껍고 크다. 역시 싱싱하게..

나는 환경을 생각한다.
그래서 생협을 자주 이용한다. 저농약, 무농약, 유기농.... 먹거리들을 구입해 나름 가족 건강을 챙긴다고 노력중이다. 생협을 이용하면 좋은 점 또 하나는 매장을 돌아다니며 구입하지 않으니 시간이 절약되고, 쓸데없는 물품을 잘 사지 않게 된다. 또, 생각처럼 물품가격이 비싸지도 않다. 외려 유통비를 절약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를 하니 저렴하고, 또 조합비를 내고 조합원이 되면 일반가보다 저렴하게 물품을 구입할 수 있다.
그리고 가끔은 환경을 생각한답시고 무공해 비누, 치약을 사용하기도 한다.
또... 일회용품을 사용하게 되면 조금은 양심에 걸려하고, 다음부턴 쓰지말아야지 마음 먹기도한다. 또... 왜 내가 환경주의자냐면... 에너지도 절약하려고 나름 애쓴다. 멀티탭을 이용해 쓰지 않는 전원은 끄고, 전기등이며 모니터를 잘 끄지 않고, 보일러를 밤새 마구 돌려대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해대기도 한다. 남편이 콧방귀를 안뀌니 문제지만.....
그런데.. 여기까지 나의 환경사랑은 여기까지가 전부인거 같다.

나는 사실 환경보다는 내 편의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일회용 키친타올이며 행주를 지나치게 사랑하고, 자주 장바구니를 안들고 다니며, 머릿결을 좋게해준다는 미용용품 애용자이고, 한겨울에도 반팔티를 입어주고, 강력한 세정제로 박박 문질러 청소를 하고, 외식을 집밥 먹듯 한다. 또 비쌀 수록 좋은 화장품이란 생각을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으며, 가끔은 아이에게 간식으로 페스트푸드를 내밀기도 한다. 이 외에도 내가 환경론자가 아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실들은 많이 있다.

환경을 생각하며 생활 모든것을 슬로우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도처에 빠르고 편리한 물품들이 깔려 유혹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귀찮아서, 대부분은 시간이 없어서..... 편리하게 이용하고, 애용하고 나면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나를 편리하게 했던 그것들이 나와 내 아이와 그리고 이땅을 얼마나 오염시키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일회용 컵이 자연분해되는 기간이 20년 이상이라고 한다. 알루미늄캔은 10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땅은 한정되어 있고, 쓰레기는 날마다 넘쳐난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쓰레와 더불어여야만 가능하게 되는게 아닐까.
그땐 아마 방독면을 일상용품으로 쓰게 되는게 아닐까....... 

에코맘... 아이들이 건강한 세상에서 살아가길 소망하는 엄마들이 더나은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거다. 더 많이 똑똑해지고 더 많이 현명해지는 에코맘들이 많아져서 작은 것 부터 실천할 수 있을 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건강해 지는 거다.
이 책은 그 방법들을 하나하나 알려준다. 먼저... 가습기를 치우고 숯을 물에 담궈 방방마다 놓아둘 생각이다. 그리고 내 전용컵을 들고다닐 작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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