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 - [초특가판]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 람베르토 마조리니 외 출연 / 영상프라자 / 200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전거 도둑

(Ladri Di Biciclette, The Bicycle Thief)



 감독 : 비토리오 데 시카

 출연 : 람베르토 마지오라니. 엔조 스타이올라. 리아넬라 카렐 등

 수상 : 1949년 제15회 뉴욕 비평가협회상 외국영화상

         1950년 제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수상 등


 1948년에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영화다.


 거리에서 일자리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 중 리치의 이름이 불리고 일자리가 생겼단다이제 가난에서 탈출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반드시 자전거가 있어야 한다는데 리치의 자전거는 생계비 때문에 전당포에 잡혀 있었다.


 리치가 자전거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놓치게 되었다고 실망하자 아내 마리아는

침대 시트를 전당포에 잡히고 돈을 마련하여 자전거를 찾아오게 한다.


 제복에 모자와 구두까지 지급받게 된 리치는 기쁨을 참지 못하였고 드디어 출근하는 첫날, 아들 부르노를 태우고 직장으로 향했다.


 리치가 맡은 일은 벽보를 붙이는 일이었는데 동료로부터 간단한 요령을 배우고

동료와 헤어져 혼자서 사다리를 메고 벽보를 붙이러 나섰다.


 그런데 한창 사다리에 올라 벽보를 붙이고 있는 사이 수상한 세 명의 남자들이

자전거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한 청년이 냅다 자전거를 훔쳐 달아났다.


 리치는 사다리에서 급하게 내려 자전거 도둑을 쫓아가는데......


 참 가슴 아프고 슬픈 영화였다.

 가족의 생계가 달려 애지중지하던 자전거를 도난당한다는 것은 곧 가족 모두를 절망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었는데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더니 자전거를 잃고, 상심한 나머지 아들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비참한 상황이 너무 가슴 아프고 속상했.


 그리고 수많은 망설임 끝에 저지른 실수가 아들 때문에 용서를 받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울먹이며 아버지를 따르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군중 사이로 멀어져 가는 부자의 모습들이 한 동안 시야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쁜 도둑 시키들.


 이 영화는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하는데 배경이 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당시의 로마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으며,

 리치를 연기한 람베르토 마지오라니는 공장의 노동자였고, 부르노를 연기한 꼬마 엔조 스타이올라는 거리의 부랑아였으며 안토니오의 아내를 연기한 리아넬라 카렐의 실제 직업은 기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비전문 배우가 연기했다 하니 리얼리즘도 이런 리얼리즘이 없는 것 같다.

 아픈 시대를 산 아픈 슬픔을 이해한 영화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3-02-03 22: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진정 리얼리즘이군요.
배우들의 배경을 알려주셔서
영화를 보게 된다면(부디 찾을 수 있기를!) 감동이 더해질것 같습니다. ㅜㅜ

하길태 2023-02-04 07:34   좋아요 1 | URL
그런데도 출연자들의 연기가 좋았습니다.
부디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전거 도둑 - [초특가판]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 람베르토 마조리니 외 출연 / 영상프라자 / 200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전거 도둑] 1948년에 제작된 이탈리아 영화다. 유일한 생계 수단인 자전거를 도둑맞은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다시 찾기 위해 로마 시내의 돌아다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경제 침체기의 이탈리아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네오리얼리즘의 대표작 중 하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트니스 [파라마운트 새봄맞이 세일]
파라마운트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위트니스

(Witness)



 감독 : 피터 위어

 출연 : 해리슨 포드. 켈리 맥길리스. 카스 하스. 조세프 소머 등

 수상 : 1986년 제5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편집상 수상


 1985년 미국에서 제작된 스릴러물이.


 1984, 펜실베니아.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엄격한 규율에 따라 부락을 이루고 살고 있

는 아미쉬 교도 레이첼은 미망인이 되고나서 8살 된 아들 사뮤엘을 데리고 도시

나들이에 나선다.


 모자는 모처럼의 나들이에 한껏 마음이 부풀었지만, 환승역에서 볼티모어로 가는 기차는 3시간이 연착될 것이란다.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사뮤엘은 모든 것이 신기하여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화장실에서 한 남자가 두 명의 괴한에게 살해당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사뮤엘의 신고로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데 피살된 피해자는 경찰이었고 목격자는 사뮤엘이 유일했다.


 담당 형사인 존 북은 범인을 잡기 위해 모자를 자신의 여동생 집에 묵게 하고 사뮤엘을 경찰서로 데려와 용의자를 한 사람씩 확인 시킨다.


 그러던 중 사뮤엘은 사무실에 게시된 신문 속의 마약 단속반 맥피 형사가 범인임을 알아본다.


 범인을 알게 된 존 북은 상사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는데......


 범인은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자 오히려 존을 죽이려 총격전을 벌이고 존은 총상을 입고 아미쉬 마을로 몸을 숨기지만 부패 경찰 일당들은 집요하게 그를 찾아 나선다.


 영화는 확실하게 고전적인 스릴러의 전형을 보는 듯 아기자기하게 전개되면서 그 사이에 애틋한 사랑을 양념으로 추가함으로써 주제의 단순화를 회피했는데 스릴러 속의 사랑, 40대 초반의 해리슨 포드의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트니스 [파라마운트 새봄맞이 세일]
파라마운트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위트니스] 해리슨 포드 주연의 스릴러물이다. 아미쉬 교도인 8살의 사뮤엘이 도시 나들이를 나섰다가 살인 사건을 목격한다. 그런데 범인은 같은 경찰관인 마약 단속반 형사였다. 사실을 알게 된 담당 형사 존이 이를 상관에게 보고하지만 오히려 그들 일당의 표적이 되어 아미쉬 마을로 몸을 피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에 이르는 병 범우고전선 7
키에르 케고르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199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에 이르는 병

(Sygdommen til Døden)

                                                                    키에르케고르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싫어서 읽을거리들을 의식적으로 가볍고 흥미 위주로 바꾸었는데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흘러 왔다.


 키에르케고르는 덴마크의 종교 사상가인데 주관적이고 주체적인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주관적인 사상가라는 것은 주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사상가를 의미하는데 주관적 진리는 그의 생활 체험을 떠나서는 그의 사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많은 서평이나 해설들이, 이 책에서 작가가 주장하는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며, 이 절망이 현대인의 자기 상실, 즉 자기 소외의 과정이라 설명하고 이를 탈피하는 길은 신을 믿는 길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나 같이 철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그렇게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 * * * *

 “이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요한복음 114)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죽음은 모든 것의 종말을 뜻하기 때문에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적으로 해석한다면, 죽음은 결코 모든 것의 종말이 아니기 때문에 무한히 많은 희망이 죽음 안에 존재하고 따라서 죽음 역시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다.

 절망은 정신에 있어서의 병인데 정신이란 자기(自己). 자기란 자신에 대한 하나의 관계인데 정신과 자기는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언제나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절망이란 죽도록 앓고 있으면서도 죽을 수 없고 그렇다고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닌, 죽을 수 있다는 희망마저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이 최후의 의미에 있어서의 절망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하지만 절망의 죽음은 항상 삶으로 옮겨지기 때문에 절망자는 죽을 수가 없다.


 질병은 보편적이다.


 완벽하게 건강한 인간이란 단 한 사람도 없듯이 절망하고 있지 않은 인간은 한 사람도 없다. 누군가 자신은 절망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조차 절망하고 있

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이 절망하고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절망하고 있지 않은 것, 자신이 절망하고 있는 것을 의식하고 있지 않는 것도 바로 절망의 한 형식이다.


 절망은 행복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데 완전히 양의적(兩義的)이기 때문에 그 병에 걸리지 않았음이 최대의 불행이며, 이 병에 걸리는 것이 참된 신의 선물인 것과 같은 그런 병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절망하고 있다고 꾸밈없이 말하는 자야 말로 한 걸음 더

구원에 다가서고 있는 셈이다.


 절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무한성(無限性)과 유한성(有限性), 가능성과 필연성의 규정 하에서 고찰되어야 하는데 그들은 각각 한 범주 안에서 서로 대체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 * * * *

 이상은 키에르케고르가 주장한 죽음의 이르는 병의 전반부의 대강을 간추려 본 내용인데 신학에 기반을 두고 풀어가는 단어들의 철학적 개념과 사유들이 나 같이 범속한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정독에 거듭 읽기를 반복하며 읽던 중 변증법에서 그만 혼란을 일으키고 말았는데 그래도 읽기는 다 읽었다. 하지만 한 겨울에 난닝구 한 장에 맨발로 거리를 쏘다니거나 무더운 여름철에 두터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춥다고 떨떨 떨 것이 아니라면 권하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역자도 그런 내용을 알고 있는 듯 이 주관적인 사상가의 글이 이해하기 어려운 바 참고서와 해설서를 읽는 것보다 그의 전기를 연구한 후 그의 작품을 끈기 있게숙독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이 우리나라의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이래로 수년 동안 중쇄를 거듭하면서 꾸준히 팔려 나갔고 중고등학교 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철학적 소양을 가진 지식인이 많다는 반증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3-02-07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길태 2023-02-07 21:23   좋아요 1 | URL
예,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님도 좋은 시간 보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