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시대1-5 (전5권) 세트
밀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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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野人時代)

                                                                                                         이환경

  이환경(李煥慶 1950. 6. 20 ) 인천 출생. 대한민국의 대표 사극 드라마 작가. 한국인의 역사인식에 이 정도로 거대한 영향력을 미친 작가는 아직 없다고 한다. 대표작품으로는 무풍지대, 파천무, 용의 눈물, 야인시대, 태조 왕건, 영웅시대[2], 제국의 아침, 연개소문 등이 있다.

 

  김두한의 이야기는 장군의 아들 등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진 바 있는데 이 작품은 그의 일대기를 그린 동명의 SBS 드라마 원작 소설이다.

 

  1966. 9. 22 정기국회 이틀째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 연설을 하던 김두환은 국무위원들을 향해 똥물을 퍼부었다. 그리고 수감되었다.

 

  김두한은 1918. 5. 15 서울에서 아버지 김좌진과 어머니 박계숙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좌진은 충남 홍성 출생으로 청산리대첩으로 유명한 독립군 사령관이었고, 조부는 홍성의 만석꾼 김형규라는 인물이었다. 김형규는 김좌진을 김옥균의 양자로 입적시켰다. 개화사상이 투철했던 김좌진은 1907년 고향에서 호명학교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애국운동에 뛰어들었다. 군자금 모금으로 투옥되기도 하였으며 1917년 대한광복단으로 활동을 하다 일본 순사의 총에 맞고 도주 중 박계숙을 만났고 김두한이 태어나기 전 만주로 떠났다. 그리고는 항일전쟁에서 혁혁한 명성을 날린다.

 

  그러나 김좌진이 명성을 날릴수록 박계숙은 고등계 형사들로부터 시달림을 받는다. 김두한의 외조모인 신씨가 비록 유복한 살림을 하고 있었으나 이로 인하여 집안이 풍비박산이 날 정도였다. 김두한은 일곱 살 때 어머니와 함께 종로경찰서에 연행되었을 때의 일을 뚜렷하게 기억했다.

 

  미와 경부는 박계숙을 매질하고 혹독하게 고문한다. 김두한은 일본인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파랗게 불을 뿜고 있었다. 김두한은 순사들의 눈을 피해 외할머니와 원노인과 함께 아버지를 만나러 만주로 떠나 아버지를 만난다. 김두한은 아버지에게 회중시계를 받고 눈물을 흘리며 서울로 향한다. 열차가 평양을 지날 무렵 외할머니는 숨을 거두고 김두한은 원노인과 달리는 열차를 탈출한다. 박계숙은 풀려났지만 고문에 의한 장 파열로 숨을 거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김두한은 개성에 있는 외삼촌 박도출의 집에서 자라게 되었다. 도박과 아편에 빠진 박도출은 아버지의 회중시계를 빼앗아 악질 고리대금 업자 가네야마에게 잡혔고 김두한은 시계를 되찾고 가네야마의 집을 불태우고 도망친다. 김두한은 산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유태권과 나석주를 만나 그들의 도움으로 순사들에게 쫓기면서도 무사히 경성에 돌아온다. 종로경찰서 앞에서 미와 경부를 만나 쫓기다 거지 정진영과 왕코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그들의 식구가 되어 수포교 시절을 시작한다. 그리고 왕초의 횡포에 맞서 왕초를 꺾고 새로운 왕초가 되었다.

 

  김두한은 삼청동에서 할머니와 큰어머니 오숙근을 만난다. 그리고는 원노인을 따라 살게 되고 그곳에서 유태권을 다시 만난다. 유태권은 무술의 고수였다. 김두한은 매일매일 체력을 단련하며 훈련하고 그로부터 무술 필살의 도를 배운다.

 

  몇 년이 지난 어느날 김두한은 아버지 김좌진 장군이 공산당원 박상실에게 암살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백야 김좌진 그는 불과 41세의 나이로 머나먼 북만주 땅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유태권이 만주에서 김두한을 데리러 보낸 최석규가 체포되고 원노인과 김두한도 종로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원노인은 고문으로 숨을 거두었고 김두한은 풀려났다. 삼청동에 들런 김두한은 할머니로부터 군자금 거금 1백 원을 받아 나와 종로로 향했다. 중국 밀선을 주선하겠다며 돈을 삼켜버린 털보를 조지고 김무옥을 병원에 입원시켜 버린다. 뿐만 아니라 보복을 위해 찾아 온 문영철을 돌려차기 한 방으로 끝내 버린다. 김영태의 전갈(傳喝)을 받고 만난 쌍칼은 돈을 돌려주며 독립운동은 만주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 상인들을 보호하는 것도 독립운동이라는 말을 듣고, 또한 그는 요시찰 인물로 만주로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는 그의 부하가 되어 주먹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혼마찌의 하야시패가 종로를 넘보기 시작함으로써 종로 일대의 주먹세계에는 태풍전야처럼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전국의 주먹황제라고 할 수 있는 구마적 고희경은 총독부를 등에 업은 하야시패와 손을 잡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고 그에 가장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 신마적 엄동욱과 쌍칼 김기환이었다. 신마적은 칼을 잘 쓰고 동경 유학까지한 인텔리였고 힘이 장사였지만 성격이 포악하여 부하들이 따르지 않아 독불장군으로 행세했다. 하지만 구마적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구마적과의 결투에서 패한 쌍칼은 조직을 떠나고 18세의 나이로 김두한이 종로 2가 주먹패의 새로운 오야붕으로 탄생한다.

 

  그런데 구마적은 종로 2가를 자기들에게 넘기라고 한다. 그러나 강하게 반발한 김두한은 구역을 접수하러 온 뭉치와 제비를 간단히 제압하고는 종로경찰서로 끌려 갔다 나온다. 김영태와 부하들은 구마적의 반격을 두려워 하며 마음 졸인다. 그런 중에도 신마적은 구마적의 부하들을 패고 김두한에게 행패를 부리고 일본 학생들을 두들기는 등 독자행보를 계속하고 있었으며 구마적은 하야시와 결탁하여 종로를 넘기고 이권을 취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명월관에서 설향에게 행패를 부리는 신마적을 찾아 간 김두한은 격투 끝에 신마적을 병원으로 보낸다. 얘기를 들은 구마적은 김두한이 점점 무서운 존재가 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하고 더 이상 놔두지 않기로 결심한다.

 

 종로패에게 상납금을 받으러 왔던 상하이박을 빈손으로 돌려보낸 김두한은 영철의 애인 아이란을 구하기 위해 하야시의 저택에 침입, 그로부터 현금 3천원을 강탈한. 하야시는 복면을 한 김두한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호시탐탐 앙갚음을 노리던 우미관패에 급습을 당하여 김두한은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 뭉치와 상하이박이 휘두른 각목을 맞은 김두한은 김영태에 업혀 길상사로 피해 누워 있었다. 그들이 떠난 종로는 우미관패들이 점령하여 상인들을 갈취하고 있었다. 김두한이 돌아왔다, 구마적에게 도전장을 던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 김두한은 멋지게 구마적을 제압하고 우미관을 접수했다. 우미관패들은 뿔뿔히 헤어졌다.

 

  김두한의 변한 모습을 본 할머니는 크게 실망한다. 김두한은 오야붕 회의를 소집했으나 참석하지 않은 자들을 찾아 나선다. 서대문의 작두를 제압하고 마포의 용식이를 압박하고 있을 때 상하이박에게 저격을 당했으나 다행이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상하이박은 하야시에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 당하고 결국 김두한에게 무릎을 꿇었다. 마포의 용식이와 시구문의 짝코도 굴복하므로서 김두한은 명실상부한 암흑가의 황제가 되었다.

 

  훔친 아편을 국내로 들여와 처분하려던 와싱턴이 야쿠자 아사히마찌패의 두목 다나카에게 초죽음이 되었을 때 김두한이 나타나 다나카를 부수고 아편을 불살라버린 다음 그를 구해 치료까지 시켜 준다. 그런 중에도 하야시의 처제 나미코의 구애를 거절하고 불량 학생들로부터 구해준 박인애를 만나 데이트를 즐기던 김두한은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고발되어 미와 경부에게 체포된다.

 

  나미코의 방문을 받은 박인애는 아버지에게 김인식과 결혼하는 조건으로 김두한을 석방해 줄 것을 요구하고, 그는 고발을 취소한다. 그러나 요 시찰 인물인 김두한은 8개월 동안 서대문 형무소에 구금되었다가 풀려난다. 출감하여 보니 종로경찰서에 마루오카 형사가 부임해 있고 조직은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한 달 동안 김무옥을 시켜 마루오카의 약점을 파악한 김두한은 마루오카에게 도발하여 그를 굴복시키고 오히려 그와 친하게 된다. 그후 평양축구단과 231의 싸움으로 종로경찰서에 연행되었을 때도 마루오카의 도움으로 풀려나게 된다.

 

  하야시패와의 대립은 서로 물러설 수 없게 되고 드디어 쌍방은 4040의 결투를 합의하였다. 그런데 김두한이 나미코를 만나고 있던 그 시간 아사히마찌패가 종로 곳곳을 기습하여 아수라장을 만들고는 들이닥친 순사들에게 우미관패들과 함께 종로경찰서로 연행되어 갔다. 위기에 처한 김두한은 새벽에 홀로 장충단공원으로 가서 40명의 사무라이와 혈투를 펼친다. 몇차례 칼을 맞은 위기의 순간 3명의 부하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달려들어 함께 처절한 혈전을 펼친다. 지친 김두한 일행이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 고노예와 하야시가 현장에 나타나고 가미소리의 비겁함을 질책하며 그들은 물러간다. 그 후 병원에 찾아 온 하야시는 패배를 인정한다. 김두한은 우미관으로 돌아왔다.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 지고 일본의 압제도 더욱 극렬해졌다. 그 무렵 정진영은 공상당과 접촉을 하고 있었다. 김두한은 레슬링 선수 황병관과 함께하던 자리에서 전쟁터로 떠나는 일본 헌병과 시비가 붙어서 3개월 동안 몸을 피해 우미관을 떠나 있다가 돌아왔을 때 그의 부하들은 모조리 잡혀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김두한은 다시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으나 노무라 대위와 약속한 유도 유단자 3명을 쓰러트리고 헌병대에서 석방되었다.

 

  떠나지도 않고 말썽을 피우던 상하이박은 마침내 주먹패 5백 명이 보는 앞에서 도끼로 손목이 잘리는 댓가를 치뤘다. 징용장을 받은 많은 주먹패들이 김두한에게 대책을 요구했다. 전국의 주먹패들이 모여 들었다. 총독부의 단게 총감을 만난 김두한은 반도의용청년대를 조직하고 주먹패들의 징용을 막아내었다. 그때 이정재가 청년대의 서기 일을 맡아 보게 된다. 일본은 또 김두한을 이용하기 위해 청년단 이정재 등 3명을 경찰로 임용까지 한다. 그런데 그들이 고등계 문달영을 체포해 취조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김두한은 김부미와 결혼한다.

 

  부민관 폭탄 투척 사건이 발생하고 다이너마이트를 구해 주었던 김두한은 또다시 미와 경부를 만나 고문을 당한다. 일본이 항복하고 김두한은 석방되었다. 그를 괴롭히던 미와 경부는 그의 부하 신영균에 의해 타살되었다.

 

  해방 정국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산당이 싫어서 평양을 떠나 온 황병관과 이화룡을 만나고 백의사 박용직을 만난 김두한은 아버지 김좌진 장군을 암살한 박상실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공산주의 활동과는 손을 끊고 백의사 단원으로 가입한다. 그리고는 박헌영을 납치하는 임무가 맡겨진다. 그러나 임무는 실패로 끝나고 정진영과 적으로 돌아섰다. 김두한은 유진산을 만나 대한민청 감찰부장 자리를 맡는다. 조병옥과 장택상도 만난다.

 

  시라소니와의 대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두한이 스스로 무릎을 꿇고 그를 형님으로 모셨다. 찬탁, 반탁 시위가 계속되면서 좌,우익의 충돌이 갈수록 심해졌다. 민청의 활동비가 부족하여 오숙근의 집도 잡히고 장안의 부호들도 털었다. 여운형 납치 사건과 관련하여 CIC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기도 하는가 하면 철도노조 총파업 현장에 뛰어 들어 사태를 진압하기도 하는 등 좌익 활동을 분쇄하기 위해 종횡무진 활약을 계속 했다. 그 과정에서 여공을 강간하던 양코가 김두한의 총탄에 응징을 당한다. 조선민청 대원들의 함정에 빠져 총상도 입었다. 대한민청 대원들은 시공관을 습격하고 조선민청 정진영과 김천호를 타살한다. 김두한은 살인교사범으로 체포되어 CIC로 끌려간다. 김두한은 사형선고를 받고 오키나와 미군 형무소로 이송 되었다. 그는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 대통령의 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

 

  김구가 안두희에게 암살되었다. 이듬해 북한 공산군의 기습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 했다. 부산에서 의용군을 모집하여 훈련시킨 김두한은 포항전투에 참전한다. 김무옥과 문영철은 그곳에서 전사하였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되고 김두한은 서울로 올라 왔다. 휴전이 되고 김두한은 대한건설부흥단을 건중친목회로 전환시켰다. 그곳에는 막대한 이권이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울의 주먹들이 다투어 모여 들었다.

 

  이정재는 해방전 반도의용대의 김두한 밑에서 총무를 맡기도 하였으나 그와 결별했고 피난시절에는 부산의 토박이 주먹들에게 위기에 몰렸을 때 시라소니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는데 동대문파의 보스가 되어 있었다. 그는 이기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정치테러의 배후에 항상 그가 있었다.

 

  조병옥의 권유를 받은 김두한은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한다. 김두한은 제3대 민의원 선거에서 종로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그러나 자유당의 공작으로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 되어 자유당에 입당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건중친목회는 이권 분배 문제로 부하들간의 갈등이 표출된다. 평소 시라소니의 행동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이정재의 부하들이 시라소니를 암습하여 만신창이를 만들고 이석재는 그나마 온전한 왼쪽 다리마저 쇠뭉치로 박살을 냈다. 이 사건으로 시라소니는 무려 6개월 간 병원 신세를 졌고 그 이후로 암흑계를 떠나 기독교에 귀의하여 죽을 때까지 선교사업에 일생을 바쳤다. 동대문파와 명동파는 결국 화해를 했다.

 

  김영태와 신영균도 이제는 국회의원인 김두한을 떠나야 했다. 이정재는 동대문 상인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폭력조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시라소니에 대한 복수로 전 켈로부대 대원들의 습격이 있었다.

 

  3선 개헌으로 국회는 아수라장이었다. 이정재를 위시한 정치 깡패들은 국회에까지 들어와 국회의원들을 위협했다. 김두한이 특무대에 연금되는 동안 3선 개헌은 부결되었으나 정부는 사사오입하여 가결이라고 담화문을 발표했다. 정치가 혼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정치인 40명을 제거하라는 밀명을 받은 김동진이 이영숙과 손을 잡고 조직을 배신하자 이석재는 김동진을 저격한다. 이정재는 조직을 유지광에게 맡기고 구속된다. 유지광은 남은 이영숙마저 제압한다. 이정재는 18일만에 석방되었다. 부패한 정권을 등에 업은 동대문 사단의 행패는 갈수록 심해졌다. 연예계를 휘어잡고 있는 임화수는 김희갑을 폭행하기도 하는 등 온갖 행패를 일 삼았으며 유지광의 부하들은 선거 유세장마다 나타나 야당 활동을 방해했다. , 부통령 선거에서 개표부정까지 모의했지만 이기붕은 결국 선거에서 지고 말았다. 이정재의 정치행사에서의 깡패 행위는 더욱 심해지고 김두한과는 더욱 대립하게 되었다. 국회에까지 찾아와 난동을 부리며 김두한에게 도발하지만 김두한은 주먹이 아니고 국회의원이었다.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은 이대통령의 양자로 경무대로 들어 간다. 민주당은 장충단 공원에서 시국강연회를 계획하고 그 경비를 김두한이 맡아서 옛날 부하들에게 부탁을 하게 된다. 연설장에 난입한 유지광이 이끄는 폭력배들은 국회의원들을 폭행하고 난장판을 만든다.

 

  이정재가 유지광을 앞세워 명동을 공격한다. 함정에 빠진 명동파는 차례로 구속되어 살실상 완전히 붕괴되기에 이르렀다. 이정재는 명동이 붕괴되자 이천으로 내려가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그러나 낙선을 우려한 이기붕이 이정재의 선거구를 가로챘다. 이 선거에서 김두한은 패배했고 이정재는 동대문을 임화수에게 맡기고 물러났다.

 

  조병옥이 서거하고 선거는 장면과 이기붕의 대결이 관심사였다. 마침내 운명의 3. 15. 자유당의 지시를 받은 임화수와 유지광은 몰표를 투표함 속에 넣기 시작했다. 한 낮이 되자 마산에서 부정선거에 대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유지광 일당이 고대생들을 습격한다. 이것이 기사화되면서 시위는 더욱 격화되고 마침내 경찰은 시위대에 발포를 하고 만다. 결국 이기붕 일가는 자살하고 이승만 대동령은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한다.

 

  장면과 선거구가 겹쳐 홍성에서 출마한 김두한은 뜻을 이루지 못한다. 과도정부가 들어서고 동대문 조직이 모조리 검거되었다. 윤보선이 대통령이 되고 종로의 보궐선거에 도전하였지만 다시 고배를 마신다. 그리고 5. 16 쿠데타가 일어났다. 폭력배 1,500. 전국에서 활약하던 주먹패 대부분이 체포되었다. 혁명재판부의 선고에 의해 이정재, 임화수는 사형 집행되고 유지광은 무기징역으로 감형 받는.

 

  김두한은 김종필과 손잡고 애국단을 발족시킨다. 그러나 김종필이 외유를 떠나자 조직은 힘을 잃었고 김두한은 또다시 선거에서 패배하고 만다. 그러나 김종필의 권유로 출마한 용산의 보궐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던 김두한은 한독당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되었다 풀려나기도 했다. 국회 오물 투척 사건으로 6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그 후 야인이 된 김두한은 여러 사업에 손을 대기도 했으나 잘 된 것이 없었고 고혈압으로 쓰러져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였다.

 

  천하에 비열하고 뻔뻔스럽고 교활하고 음흉한 것이 정치인인데 김두한이 어울렸을까? 그는 국회에서 독립운동을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풍운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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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2
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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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 훈

  김훈(1948. 5. 5 ) 서울출생. 고대 영문학 중퇴. 오랜 기자생활 후 1994년 문학동네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으로 데뷔 여러편의 작품이 있다.

  작가가 20대 초반 난중일기를 읽고 그 때의 감정을 30년이 지난 다음 작품화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임진란이 나고 이순신 장군이 탄핵되어 투옥되고 모진 고문을 당한 뒤 풀려나 백의종군할 때부터 적의 유탄에 맞아 죽는 순간까지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장군이 작가에 빙의(憑依) 되어 자기 서술을 하고 있는 듯하다.

 

  남해안의 버려진 섬들, 그 위로 자욱하게 내려앉은 숨 막히는 적요(寂寥), 바다를 가득 메운 떠다니는 시체들, 간간히 부는 바람에 실려 오는 시체 썩는 냄새, 징징징 칼의 울음이 들리는 듯하다. 잠 못 이루는 밤에는 수천수만의 적들의 노 젓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온다.

 

  조선 수군의 연합함대가 칠천량에서 대패, 전멸하고 원균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도원수 권률이 진주에 들렀다가 온다는 전갈이다. 그러나 진주성은 계사년 함락되어 5천 여 관민이 모두 성안에서 도륙되어 폐허로 방치되어 왔다.

 

  어머니의 부고를 받았다. 어머니를 뵈올 때는 늘 어서 가거라. 가서, 나라의 원수를 크게 갚아라고 하셨다. 임금으로부터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는 교지를 받았다. ………신의 몸이 아직 살아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소 3마리를 잡고 술 10말을 풀어 굶주린 장졸들을 먹여 격려하고 인근 마을의 백성들에게도 보냈다. 군복도 제대로 걸친 자가 없다. 우수영엔 군사 120명과 배 12척뿐이다. 명량으로 유인하여 적을 맞는다. 일자진을 펼치고 나아가고, 밀고, 떨어져서 멀리 쏘고 적을 섬멸한다. 전투가 계속되는 중에도 탈영병은 수시로 발생한다. 명량에서는 헤아릴 수 없는 적들이 몰려왔고 수를 셀 수 없는 적들이 죽었다.

 장계를 보낸 지 두 달 만에 논공행상이 내려왔다. 은전 스무 냥의 무게가 섬뜩했다. 임금이 보낸 선전관 이원길은 열흘 동안이나 수영에 머물면서 탈영한 배설에 관해 조사한다. 임금은 수군통제사의 역모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원길이 돌아간 지 보름 뒤에 임금이 보낸 면사첩(免死帖)을 받았다. ‘면사너를 죽여 마땅하지만 죽이지는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셋째 아들 이면은 고향 아산에서 스물한 살의 나이에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다 적의 칼을 받았다. 소금창고 안에서 숨죽여 울었다.

 

  적들은 명의 육군에 의해 남하하여 경상도에서 전라도에 이르는 남해안 8백리 포구마다 성을 쌓고 장기 농성 태세로 들어갔다.

간간이 새로운 배들이 만들어 졌다. 간헐적인 전투는 발생하지만 적들은 오지 않았다. 새칼에 검명(劒銘)을 새겼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임진년에는 갑옷을 벗을 날이 없었다. 임금은 의주로 피난하고 선왕들의 능이 파헤쳐졌다. 임금은 압록강 가에서도 자주 울었다. 임금은 울음과 언어로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바다에서, 적들은 늘 정면에서 달려들었다. 적의 함대는 무수한 깃발로 뒤덮혀 있었다. 적들은 젊은 수탉처럼 치장하고 살기를 뿜어냈다. 적들이 무너지는 모습도 달려드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임금은 조속히 적을 무찌르라 독촉한다. 적은 조선인 포로를 전진 배치하여 또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정유년 지나고 무술년이 되어 명과 일본의 강화 협상 소문이 퍼져 있었다. 명의 총병관 진린이 수군을 지휘하여 남해안으로 이동했다. 무슨 일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군대의 철수를 유언으로 남겼다 한다. 왜군은 이제 철수할 것이다. 진린은 적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이득만을 챙겨 돌아갈 것이다. 임진년보다 더 크고 깊은 무서운 적의로 나는 잠들지 않았다.

  밤이면 해안과 섬에 적들의 봉화가 올랐다. 비가 내리는 새벽 거금도 남단을 우회하는 적들의 외곽을 봉쇄하여 달이 뜰 무렵에 싸움이 끝났다. 적선 50척이 깨어졌고 50척이 달아났다. 적들은 부상자 5백 명을 죽이고 조선인 포로 중 병약자 3백 명을 죽여 바다에 버렸다.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 죽을 수는 없다. 하루하루가 무서웠다. 오는 적보다 가는 적이 더 무서웠다.

 

  노량의 물길은 사나웠다. 나는 빌고 있었다. 이제 죽기를 원하나이다. 하오나 이 원수를 갚게 하소서. -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 을 계속 울려라 ……………

 

  앞에는 왜적 뒤에는 임금, 이순신 장군의 절망을 강하게 느낀다.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한 몸을 바친 거룩함과 숭고함을 다시 새긴다. 성웅(聖雄)으로 추앙받는 이순신 장군은 당시 일본에서 조차 무서워 했음을 소설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 그가 지휘한 해전은 세계해전사에도 그 이름을 남겨 일본의 장군들도 존경하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라가 백척간두(百尺竿頭) 위태로움에 처했을 때 生卽必死 死卽必生으로 살신성인(殺身成仁)한 민족의 영웅, 장군을 존경한다.

 

  여담이다. 전국 곳곳에 세워진 장군의 동상은 그냥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적 경의의 실체(實體)이며 외세의 침략에 굴복하지 않는 민족의 자긍심이다. 얼마전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의 장군 동상을 외진 곳으로 이전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발상 자체가 참으로 개탄스럽다. 역사를 잊는다면 그들에게 미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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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포네 - 암흑가의 대부
루치아노 이오리초 지음, 김영범 옮김 / 아라크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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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포네

                                                                                       루치아노 이오리초

 뉴욕 주립대학(오스위고) 명예 교수 겸 명예 교수 협의회 부의장직 역임. 저자는 이 대학에서 최초로 조직범죄의 역사라는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하드 보일드 소설들을 탐색하다 잘못 선택된 책 중의 하나다. 그래도 읽었다.

 

  프롤로그에 공공의 적이자 대중의 영웅으로 죽은 후에도 여전히 전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갱스터 알 카포네의 일대기가 연대 순으로 펼쳐진다.

 

  1) 마피아의 유래

마피아는 서부 시칠리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약탈과 폭력을 휘두르는 강도단과 외지인들로부터 자신들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직을 만들어 보호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징수했으며 오메르타(어떠한 일이있어도 조직의 비밀을 지킨다)를 맹세 했다. 처음부터 범죄조직은 아니었지만 미국으로 건너 온 이탈리아 범죄자들이 미국에서 알게 된 조직범죄의 틀 안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을 끌어 들였다. 미국 정부조차도 한 때는 조직범죄와 마피아가 같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그 입장을 철회 했다. 마피아와 조직범죄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2) 범죄 조직 간의 세력 싸움

1890년대 미국이 농업국가에서 근대화된 산업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물질주위가 만연하고 지역공동체나 공무원들은 불법행위를 통해 부자가 될 기회를 노렸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공무원들은 부패와 연결되었고 특히 뉴욕이나 시카고에서 눈에 두드러졌다.

  존 모리시(John Morrissey)1834년 아일랜드에서 뉴욕으로 이주하고 18세에 지역 폭력배의 우두머리로 명성을 날렸고 이후 그는 하원의원, 상원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으며 경찰관 베커는 허먼 로젠탈과의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이 되기도 했었다.

시카고는 경찰 부패의 대명사가 되었고 많은 이탈리아 이주민들이 들어 왔다.

 콜로시모는 그의 여러 불법사업에서 범죄조직을 이끈 최초의 이탈리아인이 되었고 신변 보호를 위해 브루클린 출신 이탈리아 이민자 조니 토리오(Johnny Torio)를 끌어 들인다. 콜로시모가 살해되고 토리오는 독자적으로 조직을 키워갔다. 1920년대 토리오는 엄청난 성공을 누렸고 알 카포네를 경호원으로 고용하면서 시카고에서 가장 무서운 범죄자로 꼽히는 디온 오배니언과 제휴하기도 한다.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토리오 지지세력과 반대세력 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 되었다. 토리오는 살티스와 매컬레인을 시켜 반대세력을 무수히 살해 했다. 토리오가 물러나고 카포네가 사업을 떠 맡으면서 사정은 바뀐다. 오배니언파와 철천지 원수가 된다. 그들은 툭하면 토리오 영업구역을 침범하고 조직원들을 공격했다. 그들 간에 죽고 죽이는 암투가 발생하고 오배니언도 총에 맞아 죽는다. 토리오도 기습을 받는다. 토리오는 자진해서 시카고를 떠난다.

 

  3) 갱단에 입단한 소년

알 카포네는 1899년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가브리엘 카포네와 테레사 카포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화적으로 동화하기 힘겨운 시절을 거치고 열 살 무렵부터 알 카포네는 거친 심성과 무모함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런 성격은 어른이 되어서도 항상 따라 다녔다. 메리 커플린을 만나 191819 살 때 결혼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중퇴한 10대에 칼과 총 사용법을 배우고 폭력단체에 가입했다. 그 후 그는 순식간에 폭력을 사용해서 분쟁을 해결하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고 몇 건의 살해 혐의를 받게되자 브루클린을 떠나 시카고로 향했다.

 

  4) 똑똑한 천재 악당 조니 토리오

1921년 카포네는 시카고에 입성했다. 토리오를 만난 카포네는 그로부터 매음, 도박, 주류밀매 등 효과적으로 돈을 버는 방법을 배운다. 그들은 선거에도 관여 해 불법을 저질렀고 아일랜드 조직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5) 알 카포네, 시카고를 접수하다

오배니언이 죽고 세력이 커진 제나 파는 다른 세력들도 함께 노리고 있던 시칠리아 연합을 장악하기 위해 카포네를 암살하려다 역습을 받아 안젤로 제나가 사망한다. 그의 부하이자 무자비한 킬러인 사무엘 사무츠 애머튜너도 연합회 회장직을 인수 받겠다고 선언하고는 암살된다. 카포네는 그의 반대 세력을 하나 하나 무참하게 사살하고 시카고의 남서부를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6) 알 카포네 세력을 공고히 하다

19291월 암흑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모런과 조셉 아이엘로는 제나의 잔당을 끌어 모아 카포네와의 전면전을 준비했다. 싸우는 동안 양쪽은 모두 상당수의 조직원을 잃었다. 카포네를 제거하기 위해 고용된 킬러들은 카포네에 의해 모두 제거되었고 모런 암살 명령을 시작으로 광포한 대량 학살이 시작되었다. 성 발렌타인데이 학살로 전세계에 악명을 떨치게 된 사건이 바로 이것이다. 그후 카포네는 배신자 3명을 야구 방망이로 처단했다. 그 후 조직원을 잃은 모런은 은행 강도 건으로 교도소에서 사망하고 아이엘로는 시카고를 떠났다가 시칠리아 연합회 회장직을 접수하기도 하였으나 임기 중 기관총에 난사 당했다. 마침내 카포네는 모든 경쟁 세력을 제거하였다.

 

  7) 암흑계 보스들의 비밀 회합

1920년대 폭력조직들은 비밀 회의를 열어 상호 관심사를 논의하였다. 시카고, 보스턴, 필라델피아, 클리블랜드, 디트로이트, 뉴욕 등지의 보스나 그 대리인이 참석했다. 그들은 전국적인 관할권을 가진 기구를 설하는데 합의했다. 이 기구에서는 절대적인 보스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권한을 가지기로 했다. 카포네를 노린 정부 당국은 회의가 해산된지 16시간만에 그를 체포하고 비밀무기 소지죄로 1년형을 살게 했다. 그 후 그는 점점 힘을 잃어 갔다. 드디어 마란차노가 스스로 이탈리아 범죄 조직의 단일 보스임을 선언하고 그와 대립하던 루키 루치아노에게 지하세계 사업의 총괄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마란차노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암살 당하고 만다. 2차대전 후 시카고에서 회동한 여러 폭력조직들은 독립적인 조직을 한데 모아 전국적인 조직을 건설했다.

 

  8) 점점 더 거세지는 반대 세력

카포네가 토리오에 이어 조직을 장악했지만 다른 지역의 경찰에게는 추방을 당하기도 한다. 지역의 사람들과 단체들도 그를 기피했다. 그래서 그는 지방 정치가들의 비위를 맞추고 경제적으로 그들이 신세를 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는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에서의 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카포네가 무기밀반입 혐의로 복역하고 나오자 마이애미의 상류층은 그가 자신들의 도시에 정착하지 못하도록 4례나 체포되게 했다.

 

  9) 지하세계의 인기 슈퍼스타

카포네는 야구, 권투, 경마, 개 경주 등의 경기장을 자주 찾았고 권투 경기를 굉장히 좋아했다. 극장에 가서 쇼를 보는 것도 좋아했고 연예인들과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었다. 그는 또한 여가를 최대한 즐기며 살았고 존경과 관용으로 사람들을 대하면서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10) 재판 1

카포네는 세상에 무시무시한 살인자로 악명을 떨쳤다. 그러나 법정은 그를 살인자로 기소할 수 없었다. 목격자들은 기억상실증에 걸리거나 행방이 묘연해졌다. 아무도 공개 석상에서 증언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31년 연방 대배심원은 그를 22개 조세포탈 항목과 이를 기록하지 않은 경범죄로 기소하고 또다시 그 일주일 후 금주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카포네는 유죄 답변 교섭에서 유죄 인정을 철회했고 세금 관련 소송에 대비했다.

 

  11) 재판 2

정부의 기소는 알 카포네가 소득세 환급을 정식으로 신청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국세청 증언으로 시작되었다. 도박 카지노가 그의 소유라는 증언도 있고 해서 모든 상황이 그에게 불리해졌다. 정부는 카포네를 기소하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수집한 자료를 제시했다. 윌커슨 판사는 징역 11년과 벌금 8만 달러를 부과했다. 카포네는 쿡 카운티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그곳에서의 형 집행 중지를 명령하고 그의 주거를 병동으로 정했다. 1932. 2. 17 항소가 기각되고 5월초 대법원의 항소도 기각되었다. 그는 애틀랜타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2) 악마의 섬에 투옥된 보스

알 카포네의 영광은 끝이 났다. 그가 애틀랜타에 들어갔을 때는 겨우 33세였다. 그에게는 힘든 시간들이 시작됐다. 그는 매독을 앓고있었다. 1934. 8. 19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는 죄수들을 가두는 앨커트래즈 감옥으로 이감되었다. 그곳에서 힘겹게 수감생활을 하던 1938. 2월초 아침식사를 하러 가던 중 방향감각을 잃고 쓰러졌다. 연방 교정 기관을 거쳐 쿡 카운티로 보내졌다가 1939. 11. 16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하지만 매독이 너무 진행돼 있어 아무리 치료해도 원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13) 석방 후 마지막 나날들

카포네는 마지막 8년을 팜아일의 별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시카고의 화려한 시절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아주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1942년 페니실린으로 매독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1947. 1. 25 숨을 거두었다.

 

  14) 1920년대 미국사회와 조직범죄

카포네는 대중적인 인물로서 시카고, 금주법, 격동의 20세기 같은 단어들과 거의 동의어가 되어 버렸다. 그는 매혹적이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는 많은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사람들이 판단하고 예상했던 빈틈없고 교활한 살인자의 모습은 실제로 드러내지 않았다. 방송 매체는 그의 어두운 면들을 강조하고 헐리우드는 대중적인 시각으로 그를 다루고 있었다. 카포네는 전설이 됐고 대중의 영웅이었고 미국 범죄 역사의 중요 테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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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이방인
덕우출판사 / 198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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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이방인

                                                                                    시드니 셀던

  시드니 셀든(Sheldon, Sidney 1917 ~ 2007.1.30), 너무나 유명하고 우리들에게 친숙한 미국의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작가인간의 애증과 음모를 대중적이고 감각적인 문체로 묘사한 소설들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영화, 연극, 뮤지컬, TV 대본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벌거벗은 얼(The Naked Face)》《깊은 밤의 저편(The Other Side of Midnight)》《게임의 여왕(Master of the Game)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드니 셸던 [Sheldon, Sidney] (두산백과)

[ 프롤로그 ]

 

  선박회사를 그만두고 조그만 술집을 연 클라우드 데사드가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는 사건에 대하여 손님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어느 토요일 아침, 항해 준비를 하고 있는 5 5 천 톤의 호하 여객선 브리타뉴 선상에서 기괴하고 불가사의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사무장 클라우드 데사드는 질 템플 부인에게 대통령의 화환이 보내졌다는 보고를 받고 VIP 명단에서 대부호 데이비드 캐년, 클리프톤 로렌스 등의 이름을 발견한다. 바로 그 때 극장 문이 열려 있고 템플 부인의 선실에서 고함과 비명이 들렸다는 보고와 극장바닥이 피투성이가 되었다는 보고를 받는다. 확인차 그곳으로 가던 사무장은 배의 측면 화물 창구 옆에 수로 안내선이 대어 있고 선원 두 사람이 본선의 화물을 옮겨 싣고 승객 한 사람이 안내선으로 옮겨 타는 모습이 보였다. 질 템플은 등을 돌린 채 선실 끝에서 항구를 내다보고 있었고,

무시무시한 날카로운 비명을 뒤로하고 그녀의 선실을 나선 그는 부엌에서 6단 예식용 케이크 위에 있는 신랑 신부의 형상에서 신부의 머리가 떨어져 없어져 버린 것을 보고 무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했다는......................

~~~~~~~~~~~~~~~~~~~~~~~~~~~~~~~~~~~~~~~~~~~~~~~~~~~~~~~~~~~

엄청나게 큰 잠지를 가지고 태어난 토비 템플은 자라면서 엄마의 격려 속에 자신은 위대한 인물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성장했다. 학교 연극에 주역을 맡았고 아마튜어 경연 대회에서 거의 언제나 일등 상을 탔다. 날씬한 몸매에 천동(天童) 같은 얼굴에 영롱한 파란 눈동자의 순진하고 진지한 소년. 사람들은 그를 사랑했다. 15 살 때에 기혼인 반 친구 누나와 첫 경험을 가졌고 그 후 2년 동안 자기 학급의 과반수 이상의 여학생들과 데이트를 했다. 그는 여학생들 사이에 인기를 독점했다. 토비가 고등학교 3학년인 18 살이 되던 해에 16 살 난 경찰관의 딸을 임신시키고는 결혼을 피해 어머니가 준 100달러를 가지고 뉴욕으로 도망친다.

 

  경제대공황이 끝난 1939년의 뉴욕은 극장업계의 메카(Mecca)였다. 토비는 큰 꿈에 부풀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브로드웨이 극장들의 무대 뒷문을 찾아 가서 아마튜어 경연 대회 입상과 자기의 재능을 말 해 주었지만 번번히 퇴짜를 당했. 돈도 떨어지고 접시 닦기, 마술사 조수 등 힘든 생활을 한다.

 

  그 무렵 텍사스주 오데사의 한 병원에서 난산으로 고생하며 어렵게 조세핀 크진스키가 태어난다. 난산 후유증으로 그녀는 어릴 때부터 심한 두통에 시달린다.

 

  시카고로 옮겨 간 토비는 속임수를 써 대역으로 무대에 오르지만 청중들은 냉담했다. 토비는 생존을 위하여 화장실이라고 불리는 저급의 나이트 클럽 무대를 가리지 않고 출연할 수 밖에 없었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또한 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싸구려 술집, 마권 판매소 등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일본이이 진주만을 공습하고 그는 육군에 입대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샘 윈터스를 만난다. 그는 전쟁이 끝나면 헐리우드로 자기를 찾아오라고 말한다.

 

  조세핀은 가난하였지만 만 7 살이 되었을 때 오데사의 가장 예쁜 어린이 사진 경연 대회에도 나갔을 정도로 예쁘게 자랐다. 10 살이 되자 그녀는 헐리우드로 가서 영화에서 보는 멋진 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대 후 토비는 헐리우드로 향한다. 그곳에서 토비는 흥행업계에 접근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하면서 헐리우드 주변을 맴돌았다. 에이전트들을 찾아다녔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작자 샘 윈터스가 팬 퍼시픽 스튜디오의 부사장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는 만나려 했으나 그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액터스 웨스트 배우 학원에 등록을 하게 되고 운영자 앨리스 테너에게 타고난 재질을 인정 받는다. 그는 그녀를 이용하기 위해 동거까지 하지만 그녀는 그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며 이름있는 쇼 그룹에 넣어주지는 않는다. 토비는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다. 클리프톤 로렌스가 그의 희극 연기를 볼 수 있도록 약간의 속임수를 쓰고 드디어 그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된.

 

  클리프톤 로렌스의 말에 전적으로 따를 것을 약속하고 일급 희극 작가인 오한론과 레인저를 만나 대본 작업을 하고 싸구려 술집의 공연 성공을 계기로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이 점점 알려지면서 아가씨들은 그와 함께 침대로 들어갈 영광을 누리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다. 어느날 마피아 두목 알 카루소가 찾아와 그가 데리고 놀았던 알의 애인 밀리에와 결혼하라고 강요한다. 오른팔을 자동차 쇠바퀴로 부셔버리고 그의 성기를 가지고 하는 협박에 대한 공포감으로 얼굴도 자세히 모르는 밀리에와 결혼을 하고는 놀란 마음에 여자들을 멀리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의 인기는 계속 상승한다. 1950년 한국전쟁 참전용사 위문공연 중에 밀리에가 출산 도중 아기와 함께 죽었다는 전보를 받는다. 토비는 자유를 되찾았다.

 

  17 살이 되어 조세핀은 오데사에서 가장 미모가 빼어난 처녀가 되었다. 그녀의 육체는 뇌살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데이비드 캐년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새벽 3시에 그녀를 찾아온 데이비드와 호숫가에서 데이트를 하고 구혼을 기대했으나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원하던 헐리우드로 떠난다. 곳에서 그녀는 질 캣슬이 되었다.

 

  토비 템플은 대통령이 주빈으로 참석하는 만찬회의 MC를 맡는 행운을 잡게되어 일약 수퍼스타가 되었다. 모든 신문들이 토비의 성공에 대해서 대서 특필했다. 러면서 텔레비전도 점령하고 영화에도 출연하는 벼락 출세한 배우가 되었다.

 

  한편 질 캣슬은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로즈 던닝을 찾았다가 성추행도 당하고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그리고 알렌의 꾐에 빠져 약에 취한 채 죠세핀 크진스키의 이름으로 포르노를 찍게 된다.

 

  토니는 전성기를 맞았다. 그는 이제 42 살이 되었으며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있었다. 벨 에어에 아름다운 저택도 마련했다. 그러나 그의 고독감이 문제였다. 한꺼번에 10여 명의 여자를 돈을 주고 사기도 했지만 고독감을 메울 수 없었다. 그는 무엇보다 사람을 그리워 했다. 클리프톤 로렌스도 독차지 했다.

 

  세월이 흘렀다. 이제 질의 나이 25 세가 되었다. 얼굴에 잔주름이 늘어가도 하는 일은 여전히 비서, 접수원, 파출부, 아이보기, 웨이트리스, 전화 교환원, 판매원 등따분하고 달갑지 않은 일이다. 폭스 영화사의 18 살 짜리 조감독에게 잠자리를 같이하고 배역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거의 모든 영화사에 정규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성적인 기교는 환상적일 만큼 절묘했다. 그녀는 자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 즐거움을 제공해 주었다.

 

 1969년 오데사의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데이비드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였지만 그의 부인이 자동차 사고가 나고 그들의 만남은 또다시 이루어지지 못한 채 질은 헐리우드로 떠난다.

 

  질은 에디에게 몸을 제공하고 토비 쇼에 배역을 받아 출연하게 되고 토비의 눈에 띠어 데이트 신청을 받는다. 하지만 질은 토비에게만은 데이트를 거절하고 그의 애간장을 태운다. 밀당을 계속하던 토비는 드디어 구혼을 하고 드디어 그들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질은 토비의 힘을 이용하여 이때까지 자기를 상심시키고 농락한 모든 인간들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다.

 

  이혼이 결정된 데이비드가 그의 비행기를 타고 질을 만나러 가다가 터미널에서 질의 결혼 소식을 접하고는 또다시 상심하여 텍사스로 돌아간다.

 

  질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그녀의 결혼을 반대한 클리프톤을 해고 했다. 그리고 그녀를 성추행 했던 로즈 던닝의 면허가 취소 당했다. 에디를 비롯한 그녀를 농락했던 자들이 모두 그 댓가를 치러야 했다. 질의 또한 토비의 모든 일정을 손수계획하여 그녀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만날 수 없도록 했다. 그녀의 재능이 부족하다고 했던 샘 윈터스까지 보복을 당했다.

 

  토비는 쉬지않고 일했다. 그리고 온갖 행사와 파티에 참석하고 초대장은 늘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칸느 영화제에 참석한 토비는 뇌일혈로 쓰러졌다. 주치의는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고 했다. 뇌에는 아무손상이 없으나 걷지 못하거나 실어증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질은 포기하지 않고 간병에 전념하여 기적을 일으키게 한다. 토비는 다시 무대에 서고 옛날의 명성을 되찾았다.

 

  또 한사람 암암리에 복수를 노리는 클리프톤 로렌스는 조세핀 크진스키의 포르노 필름을 입수한다.

 

  토비의 유럽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러시아 볼쇼이 극장 공연 때에 질은 사업차 모스크바에 있던 데이비드를 만난다. 데이비드는 그간의 있었던 일들을 모두 얘기하며 아직도 그녀에 대한 마음이 변함 없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감동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밤 토비가 다시 쓰러진다. 토비는 신경 조직의 손상이 너무 커서 도저히 회복 불가능 하지만 심장만은 놀라울 정도로 튼튼하여 20년은 더 살 수 있다는 식물인간 판정을 받는다. 질은 헤어날 수 없는 악몽 속에 몸서리 친다. 데이비드는 매일같이 전화하여 그녀의 아내로서의 훌륭한 지조와 희생정신을 칭찬한다.

 

  질은 점점 토비가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날 토비를 휠체어에 가죽끈으로 단단히 묶고는 수영장에 밀어 넣어 익사 시킨다. 질은 조사를 받지만 증인들은 모두 그녀를 변호 한다. 재판은 끝났다. 이제 연극은 끝났고 그녀의 역할도 끝났다. 질은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기뻤다. 데이비드와 5개월쯤 후에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결혼식 전날 브레타뉴 여객선 극장에서 데이비드는 클리프톤 로렌스가 틀어주는 조세핀 크진스키의 포르노를 보고는 그를 심하게 두들겨 패고 배를 떠난다. 피투성이가 된 클리프톤은 질의 선실로 찾아가고 질은 데이비드가 배를 떠나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는 토비가 부르는 바다 속으로 몸을 날린다.

 

  마치 시드니 셀던 감독의 영화 한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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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일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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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일기(Journal d' Hirondelle)

                                                                                             아멜리 노통브

  아멜리 노통브(Amélie Nothomb, 1967. 7. 9 ~ )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벨기에 작가이다. 199225세에 쓴 첫 소설 Hygiene de 'Assassin(살인자의 건강법/살인자의 위생학)의 원고를 처음에는 갈리마르 출판사에 투고했으나, 솔레르스는 남이 써준 소설은 출판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간단히 출판을 거절하였다고 한. 알벵 미셸에서 출간된 이 책은 천재의 탄생이라는 비평계의 찬사를 받으며 10만 부가 넘게 팔리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저서로는 사랑의 파괴(1993) 오후 네 시(1995) 두려움과 떨림(1999) 등이 있다.

  읽을 거리를 찾던 중 인터넷에서 어느 사람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살인청부업자인 냉혹한 킬러, 의뢰인에 의해 감금되어 죽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며 지난 일들을 생각한다.

  실연당한 괴로움으로 모든 감각을 차단하고 살다가 노인을 치어 죽이고 공공의 적이 되어 퇴사 당한 뒤 새로운 보스에게 킬러로 채용되고 첫 번째 임무로 상대의 머리에 두발의 총알을 박아넣고 황홀감을 느낀다. 살인을 경험할수록 쾌감을 느끼며 만족해 한다. 임무가 많이 주어지지 않아 개인 사업에 뛰어 들었다. 그것을 패스트킬이라고 명명하고 더더욱 강렬한 쾌감을 느낀다.

  장관과 여자와 아이가 포함된 가족 5명을 죽이고 서류가방을 가져오라는 임무를 맡고 장관의 집에 침입한다. 그런데 장관의 딸내미가 아버지가 그녀의 일기장을 훔쳐 읽어 보았다는 이유로 목욕탕 속의 장관을 총으로 사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킬러는 서류가방 속에서 그녀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그것을 읽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자꾸 그 애가 머리 속에 떠오르고 결국 죄책감 속에 일기를 읽어 치운다. 그런데 그 일기장 속에는 특별한 아무것도 없었다.

  일기장을 제외한 서류들만 보스에게 돌려보냈다. 아침에 제비 한 마리가 날아들어와 텔레비전 뒤에 숨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시골별장에서 장관과 그 가족이 몰살당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새끼제비도 그 때 죽어있었다. 그는 죽은 애와 제비를 연관지어 그 애를 제비라 이름지었다.

  가방을 전달받은 의뢰인은 서류가 하나 빠졌다며 킬러를 다그친다. 킬러는 일기가 혹시 그 서류일리는 없다고 생각하며 일기를 지니고 다닌다. 그는 일기를 읽으며 제비와의 사랑에 빠진다.

  이번의 임무는 영화감독이었다. 그는 항상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 임무의 수행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영화사에 취직을 하고 집에 오니 집이 난장판이 되어있다. 위기의식을 느낀 그는 제비일기를 주머니에 넣고 아파트를 떠난다. 그들이 찾는 것이 바로 그 일기임을 직감한다. 하지만 의뢰인이 심어놓은 영화사 인사부장은 그에게 일기를 요구하고 감금한다. 그는 간직했던 일기를 다 씹어 삼킨다. 그러면서 사랑하게 된 자신이 죽인 여성을 소유한다고 생각한다. 자신도 죽게될 것임을 느끼면서............

  킬러같은 잔인하고 냉혹한 가슴 속에서도 사랑의 싹은 트는가? 사랑은 그렇게 지고지순(至高至純)한 것인가? 사랑하는 제비의 일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목숨까지 아깝지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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