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 우리말 지킴이 최종규가 들려주는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5
최종규 지음, 호연 그림 / 철수와영희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전 풀무학교에서 '화장실' 앞에 '개운방'이라는 팻말을 보았다. '해우소', '화장실', '뒷간'이라는 말보다 얼마나 정겨운가? 내 마음마저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또 하나 아는 분이 겪은 일이다. 어느날 깊은 산속 절에 갔는데, 막다른 길에 와서 팻말을 보았다. 으레 '출입금지'라고 써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대 발길을 돌리는 곳'. 얼마나 아름다운가? 즐거이 웃으며 돌아설 수 있는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우리가 쓰는 말, 아름답게 가꾸면 그 말 한마디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우연히 이오덕 선생님 책 갈무리한 글을 보고 함께살기(최종규님)을 알게되었다. 글 하나하나가 너무 따뜻해 찾아본 첫 책이다. 이 책은 10대를 위한 책이지만 어른들도 보면 좋겠다. 말결을 아름답게 가꾸는 이야기가 담뿍 담겨있다. 우리말을 아름답게 살린 글들은 한겨울 차갑게 흐르는 깊은 산골 샘물처럼 시리도록 맑고 깨끗하다. 갈무리해 배우고 싶은 글들이다.

 

"말을 가꾸는 일이란 삶을 가꾸는 일이고, 삶을 가꿀 때에 바야흐로 빛나는 말 하나 알뜰살뜰 얻어요. 글을 읽구는 일이란 삶을 일구는 일이고, 삶을 일굴 때에 비로소 알찬 글 하나 기쁘게 얻습니다." (48쪽)

 

 그렇다. 말을 가꾸는 일은 삶을 가꾸는 일이다. 처음에는 말은 그냥 편하게 쓰면 되는거지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말하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하고 그 생각은 내 머리에서 나온다. 머리는 삶을 만들어가는 얼과 뿌리다. 사람은 생각한대로 살아가지 않나? 

 

 입이 험한 아이들 때문에 교실에서 밥을 가지고 실험한 적이 있다. 하나는 아이들이 늘 사랑해 좋은 말만 하고, 다른 하나는 욕을 했었다. 결과는 욕을 한 밥이 더 심하게 썩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눈으로 몸으로 느낀 경험이었다.

 

 

 내가 그동안 쓴 말을 돌아보면 잘 못 쓴말들이 너무 많았다. 하루아침에 고치기는 힘들 것 같다. 지금 보고 있는 '우리글 바로 쓰기(이오덕)'와 살아가며 잘못 쓰는 말들을 모아 하나씩 적바림해야겠다. 꾸준히 하다보면 내 말결도 삶결도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이 책에도 잘못쓰는 우리말이 참 많이 나온다.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본다.

 

 가장 많이 고쳐야 할 말이 한자말, 특히 일본한자말도 많다. '쉼터'처럼 우리에게 다가온 말들도 있지만 아직도 정말 바꿔야 할 말이 많다. 모두 다 바꾸자는 말은 아니다. 학교, 학생, 교육 등 바꾸기 힘들거나 이미 우리 깊숙이 자리잡힌 한자말은 잘 다스리면서 쓰면 된다. (이것도 배움터, 배움 등으로 바꾸면 좋겠다.) 쉬운 우리말이 있는데 쓸데없이 한자말을 쓰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미소(微笑)를 짓다. (웃다. 웃음을 짓다. 빙긋 웃다.) -일본한자말
 *식사(食事)하세요. (밥 먹자. 진지 드세요. 자셔요.) / 저녁식사를 하다. (저녁밥을 먹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반갑습니다.) / 안녕히 계세요. (살펴 가셔요. 잘 계셔요.) 
 *식수, 생수 (마실물, 먹는샘물)
 *식당 (밥집) / 휴게소, 휴게실 (쉼터) / 서점(책방) / 미용실(머리방)
 *육아 (아이키우기, 아이돌보기)
 *슈퍼마켓(나들가게, 마을가게)
 *대두(콩), 적두(팥), 건멸치(마른멸치), 건포도(말린포도)
 *친구와 이별했다. (동무와 헤어졌다.)
 *생활이 곤란하다. (살기가 힘들다. 삶이 고단하다.)
 *매일 세탁해야 한다. (날마다 빨래해야 한다.)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 (아름다이 빛나는 해, 아리땁게 빛나는 해, 어여삐 빛나는 해)
 *우리말을 사용하다. (우리말을 쓰다.)
 *항상 독서를 한다. (늘 책을 읽는다.)

 

 이것 말고도 너무 많다. 나머지 한자어들은 잘 추려 하나씩 살펴봐야겠다. 영어도 골칫거리다. 영어를 쓰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영어로 써야 할 때가 있다. 외국사람과 이야기할 때다. 유식함을 보이려고 영어를 섞어 쓰거나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는 말들은 돌아봐야 한다. 마음 한 켠에 우리말을 얕잡아 보지 않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1) 나는 요즘 비지니스로 바빠. 2) 나는 요즘 사업때문에 바빠.  3) 나는 요즘 장사때문에 바빠. 

1) 밀크   2) 우유   3) 소젖

 

 영어로 쓴 말이 더 좋아보이거나, 우리말이 더 없어보인다면 우리말을 업신여기는 마음부터 고쳐야 한다.

 

 우리가 자주 쓰는 영어를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미팅(만남), 콘셉트(생각), 풀~(가득), 오버(지나침), 매뉴얼(길잡이), 셀프(스스로), 심플(단출한), 스크랩(갈무리하여), 비지니스(돈벌이,장사), 스마일(웃음꽃), 해피(즐거이), 다운로드(내려받다), 트러블(말썽), 아마추어(풋내기), 파이팅(힘내자), 레벨(눈높이), 스터디(배움), 바이바이(잘가), 나이스(멋진), 시스템(얼거리), 알레르기(두드러기), 커버(껍데기), 센스(결 고운), 스트레스(짜증)....

 

 빛 잃은 말투도 이야기한다. 일본, 중국, 영어 어법에 맞춘 말들을 말한다. 그런 말투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갖는다'는 말투다. 나도 자주 썼던 말투다. 무언가 소유하는 자본주의 문화에서 이런 말투가 나오지 않았나 싶어 씁쓸하다.

 

-책을 가지다. 넌 무얼 가졌니? (이것은 맞다.)
-예쁜 얼굴을 가진 사람 (예쁜 사람), 좁은 국토를 가지고 있는 나라(땅이 좁은 나라), 전시회를 가진다. (전시회를 연다.),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이와 같이 생각한다.), 만남을 가진다(만난다)

 

2) '었었'(과거) 말투다. 이것도 자주 썼다. 잘못된 말투인지 정말 몰랐다. 우리말은 지난날과 오늘날 앞날을 따로 적지 않는다. 영어, 일본 말법(시제)에서 온 버릇이다. 

 

-어제 했던 일이야. 어제 했었던 일이야. (어제 한 일이야.)
-너 뭐 하고 있어? 너 뭐 하는 중이야? (너 뭐 하니?)
-학교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야. (학교로 걸어가. 학교로 걸어가는 길이야.)
-밥을 먹고 있지. (밥을 먹지. 이제 막 밥을 먹지)

 

"좋은 삶으로 좋은 넋을 보듬으면서 좋은 말을 다스려야 합니다. 착한 삶으로 착한 얼을 보살피면서 착한 글을 다듬어야 합니다. 고운 삶으로 고운 꿈을 돌보면서 고운 이야기꽃을 피워야 합니다." (239쪽)

 

 좋은 말이 나오려면 좋은 삶을 가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 삶부터 아름다이 가꾸면 절로 아름다운 말들이 흘러나오고 고운 이야기꽃을 피우겠지. 그래도 모르는 말들은 하나씩 배우며 자꾸 돌아보고 말결을 다듬어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