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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들
박기범 지음, 김종숙 그림 / 낮은산 / 2014년 8월
평점 :
뉴스에서만 접하는 전쟁은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십 년 전 9.11 테러가 있은 후 일어난 이라크 전쟁도 먼 나라 이야기였다. 무참히 쏟아지는 포탄은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듯 했다. 군인들이 전쟁을 하는 모습은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소식에도 안타까운 마음, 그 뿐이었다. 그렇게 전쟁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문제아'를 쓴 박기범 작가는 '이라크평화팀'에 참여해 맨몸으로 전쟁을 막아냈다. 전쟁 포화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눈물을 흘리는 어린이들을 보게 된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쓴 동화책이다. 작가는 그저 전쟁을 막아낼 수 있다는 바램, 전쟁으로 상처받는 아이들을 보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라크 국경을 넘었다고 했다. 그곳의 일들을 이야기로 쓰기에는 너무 아퍼 십 년이 지나 썼다고 한다.
전쟁터 사람들의 이야기와 작가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나온다. 곳곳에 강렬한 그림들은 이야기에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구두닦이 핫싼, 가리드와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하이달, 아이들과 함께 오손도손 사는게 꿈인 무스타파 노인, 디자이너 멋쟁이 알리, 의사 수아드 언니, 아빠처럼 사는게 꿈인 도하, 이들은 우리네 평범한 모습들이었다. 전쟁의 반대편에 선 군인들 역시 초등학교 선생님, 평범한 한 가정의 아빠들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축구선수를 꿈꾸던 알라위는 포탄에 쓰러진다. 어른 아이 할 것없이 총질을 하며 오가는 대화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존슨 상사가 포탄을 떨어뜨린 곳은 적 무기고가 아닌 오마르의 농장이었다. 스미스 일병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병원으로 뛰어가는 하이달을 쏜다. 드르르르륵. 초등학교 선생님인 마이클은 테러범 건물이라 생각하며 포탄을 쏘지만 그 곳은 초등학교 건물이었다. 모두 오해였다. 오해였다. 그렇게 사람들이 죽어갔다. 힘없는 아이들이, 노인들이...온 몸이 비에 젖은 신문지처럼 무거워졌다. 전쟁이 끝났다.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한다. 독재자를 물리친 전쟁.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주인이 바뀐것 뿐 그대로였다. 아니 씻지못할 상처만 가득 안았을 뿐이었다.
꿈이 었었다. 이들의 꿈을 지켜 주겠다던 전쟁이 있었다. 병사들에게도 꿈은 있었다. 하지만 전쟁은 모두 이를 짓밟았다. 십년이 지나고 아이들을 어른이 되고 다시 살아간다. 살람아저씨는 전쟁이 지나고 가장 무서운 건 폭격의 잿더미가 아니라 사람들 마음에 뿌려진 전쟁의 씨앗이라고 말했다. 맞다. 전쟁은 전쟁을 낳는다.
정의로운 전쟁. 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전쟁의 무서움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럴 만하니 그러는 거겠지.'하는 생각이었다. 나부터 그렇게 생각해온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평화, 평화하지만 정작 나는 그런 마음이 있었나 싶다.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다. 평화를 함께 이야기하며 아이들에게 꼭 읽어줘야겠다.
무스타파 노인이 한 이야기가 아직도 귀에 울리는 듯 하다.
"평화라는 건 저 강물 같은 거라오. 수백 수천 년을 흘러운 물길을 아무리 강바닥을 파헤쳐 뒤집는다 해도 바꿀 수 없듯이 이 땅에 살아온 이들이 이어 온 삶을 한순간에 주물러 바꿀 수는 없는 일. 우리네 삶으로 지탱하던 위태로운 평화마저 이제는 깡그리 잃고 말았소. 수십 년 뒤면 다다를 수 있는 그것을, 이 전쟁으로 하여 수백 년 뒤에나 닿을 수 있게 되고 말았다오. 이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건 오로지 전쟁뿐이라오. 이제껏보다 더 질기게 이어질 혹독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