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영웅전 2 - 비무초친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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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조영웅전>에 푹 빠져 산다. 마침 60부작 드라마 <사조영웅전 2024>가 상영 중이라, 드라마도 보면서 기존의 2017 사조영웅전과 비교도 하고 또 원작도 보는 삼박자 합이 기가 막히다. 이번 드라마 시리즈에서는 곽정의 몽골 행적이 몇 컷으로 처리되고 드러내 버렸는데, 원작에서는 상당한 비중을 몽골 부분에 할애하고 있었다. 7년 전, 드라마도 현재 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원작에 충실하게 담아냈다.

 

물론 허구의 이야기겠지만, 곽정이 테무친 대칸의 몽골 통일에 한몫한다는 설정이 눈길을 끈다. 테무친 대칸이 어릴 적 맹우이자 라이벌이었던 자무카와 왕칸을 격멸하고 결국 몽골의 지배자가 됐다. 이렇게 실제 역사에 가공의 인물을 슬쩍 끼워 넣으면서 무협소설의 재미를 배가하는 기술을 김용 선생의 전매특허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근 천년 전의 일에 대해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만.

 

훗날 대칸 섭정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테무친의 4남 툴루이를 곽정의 의형제로 삼고, 대칸의 막내딸 화쟁의 부마가 되는 과정이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결국 그에 대한 보상으로 대칸이 곽정에게 많은 금품을 하사하는데, 곽정이 중원 장가구에 등장해서 마구 돈을 쓰는 장면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소설을 보고 나니 바로 이해가 됐다. 도대체 꼬마 소년이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났지? 그리고 영웅하면 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탈것 아닌가. 한혈보마의 내력을 지닌 소홍마를 등장시켜 곽정의 파트너로 만들어준다. 아마 요즘으로 치면 벤틀리나 람보르기니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장가구에서 곽정은 운명의 연인 황용(이하 용아)을 만나게 된다. 나중에 드러나게 되지만, 용아는 동해 도화도에 칩거 중인 동사 황약사의 딸로 무공 실력은 고수들에 비해 모자라지만, 어려서부터 익힌 여러 지식과 잡기 그리고 임기응변에 능한 그런 캐릭터로 그려진다. 연인 곽정을 위해서라면 그야말로 불속에라도 뛰어들 그런 기세를 지닌 주인공이다. 용아는 왠지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장취산의 짝 은소소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결국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이런 방식으로 슬쩍 베끼면서 소모하는 걸까.

 

몽골 파트를 제외하면, 새로운 드라마는 원작과 거의 유사한 궤적을 그린다. 장가구에서 비무초친에 나선 목역(양철심)과 목염자 부녀를 만나고 또 이 작품에서 악역을 자처하는 완안강(양강/소왕야)과의 악연도 시작된다. 자신을 돕다가 라마승 영지상인의 독사장에 당한 왕처일 선배를 구하기 위해 조왕부에 용아와 뛰어든 곽정은 한바탕 소동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 가운데 완안강의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고, 양철심-포석약 부부는 18년만의 꿈같은 해후도 맞이하게 된다. 그들의 행복한 만남은 해피 엔딩이 아닌 비극으로 마무리되지만 말이다.

 

강남칠괴 사부들은 곽정을 중원에 내보내면서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고수들이 넘실거리는 강호에 철부지 어린아이를 내보내는 심정이 아니지 않았을까. 하지만 또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로소 강호에 나가봐야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시절에 강호에 출진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치러야 할 통과의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싸워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튀라는 말을 제자에게 남긴다.

 

어떻게 보면 비겁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병법에도 삼십육계가 나와 있는 것처럼 실전에서 내가 상대하는 상대의 실력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만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자신의 실력이 상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알고, 대결에서 물러나면 살 수 있겠지만 만약 살수로 공격하는 고수를 상대하다가 애꿎은 죽음을 당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들의 눈은 정확했다. 10년을 곽정에게 무공을 전수했지만, 아둔한 이 청년이 깨친 무공 실력은 강호에서 데뷔전을 치르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강호에 나오자마자 바로 완안홍열 휘하에 포진한 다수의 고수들과 목숨을 건 혈투에 휘말리게 되었다. 몽골 사막에서 체력 단련을 하고 강남칠괴 선배들에게 수련을 쌓은 게 1단계 수업이었다면, 이제부터 실전 2단계 수업이 시작된 셈이다. 뭐랄까 이건 마치 게임에서 미션 클리어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조왕부에 잠입한 곽정이 양자옹이 애지중지하던 각종 보양식을 먹이면서 12년간 기른 뱀의 피를 빨아 먹으면서 단박에 내공치가 올라가 버렸다. 이건 또 일종의 치트키라고 해야 할까. 작가가 준비한 치밀한 빌드업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노고가 수포로 돌아간 양자옹이 곽정의 피를 빨겠다고 덤비는 장면은 그야말로 코미디처럼 다가왔다. 아니 지가 무슨 뱀파이어도 아니고 말이지. 문득 여기서 착안한 뱀파이어 무협 드라마는 어떨까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조왕부 산하 네 고수와 백타산 바람둥이 구양극까지 가세해서 곽정과 용아를 위기로 몰아가던 순간, 조왕부 마른 우물 지하에 숨어 있던 완안강의 비밀 스승 매초풍(매약화)이 등장하면서 밀리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된다. 주화입마에 빠진 매초풍을 돕던 곽정은 우연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바람에 매초풍의 손에 죽을 위기에 처한다. 숨막히는 무공 대결에 이은 이런 극적인 상황전환까지,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드라마에 등장한 귀운장 육승풍에 대한 이야기를 매초풍이 들려준다. 황약사의 제자들은 모두 풍자 돌림이고 죽은 자신의 남편 진형풍과 매초풍이 황약사의 2-3번째 제자이고, 육승풍이 4번째 제자였다고 알려준다. 죽은 남편 진형풍과 사랑에 빠져 스승의 구음진경 하권을 들고 오지 몽골로 튀어서 비전을 수련하다가 강남칠괴들과 곽정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금나라 장종의 여섯 번째 아들이라는 조왕 완안홍열의 존재 역시 허구의 설정이다. 몽골 사신으로 파견되어, 부족간의 이간책으로 몽골인들의 분열을 획책했고 일찍이 테무친의 몽골사단이 훗날 금나라의 위협이 될 거라는 점도 파악했다. 자무카와 왕칸을 부추겨서 테무친의 배후를 치게 한 것도 알고 보면 결국 조왕의 계략이었다. 송나라의 충신 악비가 남긴 병서인 무목유서를 찾으라고 완안강과 수하들에게 닦달해대고, 또 자국에 대항하는 송나라와 몽골의 동맹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분쇄하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는 인물이 바로 완안홍열이었다. 그리고 보면 양부 홍열과 양자 강의 콤비가 빌런 2대를 구성하고 있었다.

 

드라마가 재미라면, 원작은 드라마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들을 보완하는 교보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곽정의 무공이 어디까지 도달하게 될지 그리고 곽정-용아 커플의 모험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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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27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별점은 세 개네요.
아직도 중국에서는 60부작도 있군요. 예전 80년대만 해도
드라마 100회한다면 막 서로 축하하고 난리였는데
지금 미니시리즈 16회도 너무 길다하여 12회로 끝나는 드라마도 많이 있더군요.
주말 드라마도 30부가 최장이구요.
김용 번역연구회가 있다니 대단한가 봐요. 읽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요.ㅠ
 
사조영웅전 1 - 몽고의 영웅들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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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우연히 신필이라 알려진 김용 선생 탄생 100주기를 맞아 다시 제작되었다는 <사조영웅전> 시리즈를 보게 됐다. 세상에나, 그 옛날에도 읽지 않고 버티던 무협지 <영웅문>을 이제 다시 읽게 될 줄 누가 알았나 그래. 고려원에서 그 시절에 나온 영웅문 1탄의 부제가 아마 <몽고의 별>이었지. 왜 그렇게 제목을 붙였는지 원작을 보면서 알게 됐다.

 

일단 드라마를 5편까지 다 보고 나서 도서관에 가서 원작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드라마와 원작의 시작점은 상당히 달랐다. 원작에서는 주인공 곽정의 탄생 비화와 몽골에서의 활약에 대한 비중이 상당했지만, 드라마는 몇 컷 정도로 죄다 걸러 버리고 중원에 데뷔한 시점에서부터 다룬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부분들은 모두 플래시백으로 처리해 버린 점이 원작과 상이했다.

 

이래서 원작을 봐야 한다고 하는 걸까? 원작은 연대기순으로 남송 임안부 우가촌에 살던 곽소천/이평 부부와 양철심/포석약 부부의 비극적 삶에서부터 시작한다. 전진칠자 중의 한 명인 구처기 도사가 송 조정의 세작들과 내통하려던 금나라 밀사들을 처치했지만, 그 때 구처기에게 습격당한 금나라 장종의 6번째 아들 완안홍열이 포석약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데 성공해한다. 그리고 그는 송의 관리 단천덕을 조종해서 곽소천/양철심 의형제의 집안을 박살내고 포석약을 납치해서 금의 수도 연경으로 향한다.

 

이 때, 이평과 포석약은 각각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구처기는 각각의 아이들에게 송나라 휘종과 흠종이 포로로 잡혀간 정강지치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곽정과 양강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이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곽정은 몽골 초원으로 흘러가 그곳에서 자라게 된다.

 

그 전에 구처기 도사와 강남칠괴로 알려진 강남의협들의 대결도 벌어지는데, 드라마에서는 이 부분이 상당히 적은 분량으로 다뤄졌다. 이평을 인질로 잡은 단천덕은 구처기의 추격을 피해 법화사 초목대사의 슬하에 숨어 있었는데 오해가 빚어지는 바람에 구처기 도사와 강남칠자들의 대결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쨌든 서로간의 오해를 풀고, 강남칠괴는 곽정을 맡고 구처기는 양강을 맡아 18년 뒤에 가흥의 취선루에서 무예 대결을 하자는 내기를 한다.

 

한편 몽골에서 자라게 된 곽정은 당시 몽골 초원을 휩쓸던 테무친(훗날 징기즈칸) 대칸과 묘한 인연을 맺게 된다. 이것 또한 송--원나라로 이어지는 격변의 정세를 겨냥한 김용 선생의 소설적 장치가 아닌가 싶다. 한족 출신 소년이 몽골에서 발흥 중이던 테무친 부족의 일원처럼 행동하면서 남다른 의협심을 기르며 언젠가 아버지의 원수 단천덕을 죽여 복수하겠다는 아주 클리셰이의 전범적 진행이 아닌가 말이다.

 

역시 주인공답게 곽정이 다른 건 몰라도 불우한 이웃을 돕고, 강호의 의리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인물이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역경과 고난을 딛고, 무공을 익혀 천하오절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그런 입지전적 인물이 바로 곽정 아니겠는가. 드디어 몽골 초원에 등장한 강남칠괴로부터 무공 수련이 시작되고, 테무친의 4남 툴루이와는 의형제로 맺어질 정도로 끈끈한 관계가 잇달아 등장한다.

 

테무친의 몽골 부족 통일전쟁이 계속되던 긴박하면서 흥미로운 전개도 역사성과 더불어 통속무협 소설의 감칠맛처럼 작동한다. 사조 3부작 가운데 마지막이었던 <의천도룡기>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주원장 같이 실제 역사에 등장하던 인물들을 적절하게 섞으면서 가독성을 높이는 신필 선생의 작법이 다른 건 몰라도 역시나 재미 하나만큼은 최고조로 뽑아내는구나 싶었다.

 

훗날 테무친의 4영걸로 알려진 철별(제베)를 곽정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전쟁터에서 테무친의 목에 화살을 먹인 원수 철별을 모두가 잡아 죽이겠다고 나선 살벌한 상황 속에서 어리버리한 곽정이 돕겠다고 나서 대칸의 주목을 끄는 장면으로 이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이 정도 관계 설정을 해놔야 나중에 중원에 대한 몽골 침략이 본격화되었을 때, 대칸과 곽정이 맞짱을 뜬다는 극적인 판이 짜여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풍쌍살/동시철시로 알려진 매초풍-진현풍과의 무시무시한 대결도 흥미로웠다. 이 부분은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고, 강남칠괴와 곽정이 동시 진현풍을 죽여서 매초풍과는 원수 사이라고만 들었는데 원작을 보니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오래 전에 이 부분을 만화로도 본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사투에서 강남칠괴와 곽정의 분전으로 진현풍을 죽이는데 성공했지만, 5형제 장아생이 한소영과 곽정을 구하려다가 장렬하게 산화한다.

 

곽정의 무공 수련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느닷없이 전진교의 장문인인 마옥 도사가 등장해서 곽정에게 호흡하는 법, 잠자는 법 등을 가르쳐 주면서 곽정의 수련이 배가되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새로운 드라마 시리즈에도 등장해서 비교적 수월하게 이해가 되었다.

 

일찍이 김용 선생의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지나친 중화중심주의에 대한 지적이 있었는데, 아직 초반이라 그런 진 몰라도 그런 부분은 등장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경계하고 책을 읽는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저러나 다른 것들은 차치하더라도, 역시나 통속 무협소설답게 재미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구나. 읽는 속도가 무시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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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8 - 입헌운동과 의화단 사건 본격 한중일 세계사 18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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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시니스트 선생의 이번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는 순전히 의화단의 난에 대한 궁금증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역시나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사를 다루다 보니 메인 테마인 의화단의 난은 맨 마지막으로 밀렸다. 그리고 그 전에 무술변법운동, 구한말 만민공도회, 독립협회 활동과 헌의 6조 그리고 일본 내정에 대한 이야기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메인 디시를 먹기 위해서는 이런 전채도 먹어야 한단 말이지.

 

한중일 세계사 18편의 시작은 무술변법이다. 당시 청나라의 실권자는 서태후였지만, 어쨌든 명목상의 황제는 광서제였다. 아편전쟁 이후, 서양의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 무릎을 꿇은 청나라는 서구의 기술을 도입해서 부국강병을 이뤄 보자는 양무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중체서용의 입장에서 서양의 앞선 선진기술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사실을 청일전쟁을 통해 깨닫게 됐다. 강유위와 담사동을 필두로 한 개혁주의자들의 건의를 받아 들여 광서제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모델로 한 무술변법, 근대화운동을 개시했다.

 

과거제 폐지와 신식 학교 시스템의 도입, 입헌군주제 시도, 군제 개혁 그리고 농공상업 등의 진흥을 도모했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이런 개혁에 반항하는 보수 수구세력들이 존재했고, 이들이 실권자 서태후를 중심으로 해서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회 전반에 대한 혁명적 개조 없이 양무운동 이래 동도서기론에 입각한 시늉에 불과한 근대화운동의 한계는 너무나 뚜렷했다. 결국 보수파의 쿠데타에 의해 변법 실시 103일 만에 만사가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강유위와 양계초는 구사일생으로 일본으로 망명하는데 성공하고, 담사동을 필두로 한 이른바 무술 6군자들은 모두 검거되어 처형되었다. 광서제는 서태후에 의해 유폐되는 신세가 되었다.

 

다음 무대는 조선이다. 1898년 그러니까 새로운 세기를 2년 앞둔 조선의 상황은 혼돈 그 자체였다. 작가에 따르면 우유부단한 통수의 왕 고종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황현필 선생은 조선의 3대 암군으로 선조, 인조 그리고 고종을 꼽았는데 결국 나라를 망국에 이르게 한 고종이 최고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한국 에피소드에서는 독립협회가 중심이 되어 근대적 의회 시스템은 중추원 구성을 위해 진력한 점이 나의 주목을 끌었다. 50명의 원구성을 위해 비록 현대적 차원의 선거에 의한 방식은 아니지만, 민의를 대변할 인사들을 선정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반대파는 어떤 근거로 독립협회가 추천한 이들이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가를 비판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제도라는 시스템이 발명된 게 아닌가. 물론 당시의 전제군주 통치국가였던 조선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이 때 중추원 고문으로 훗날 검머가 된 필립 제이슨, 서재필도 등장했던가.

 

통수 전문가 고종이 쿠데타로 일거에 중추원에 입각할 인사들을 투옥시키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에 격분한 한성의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굽시니스트 작가는 ''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투옥된 독립협회 소속 중추원 의원들을 석방하라는 시위를 이어나간다. 결국 민의를 이기지 못한 고종은 그들을 석방하기에 이른다. 그 당시에도 조직적 시위를 이어 나가려면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독립협회 인사들이 일본으로 망명한 박영효의 신원 회복에 나섰다가 고종을 비롯한 수구파의 역공을 받아 결국 중추원이 무산되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도 메이지 데모크라시의 영향으로 일단의 움직임이 있었다고 하는데, 결국 당파간의 분열로 무산이 되었다. 그리고 내각에 현직 육해군대신이 참가하게 되었는데 훗날 군국주의 정부가 들어서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시리즈의 무대는 다시 중국으로 이동한다. 무술정변으로 다시 한 번 실력을 과시한 서태후와 수구파들은 황제의 교체를 도모한다. 이 사건이 기해건저다. 단왕 재의의 아들인 부준을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려고 하지만, 서양 세력들의 반대로 황제 교체는 수포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즈음 중국 내정에 깊숙이 개입한 서양 세력에 대한 반동적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선봉에는 소위 의화단으로 알려진 비밀종교결사단체가 포진했다.

 

의화단 운동은 백련교에서 출발한 사이비 종교집단이 시발점이었다. 중국의 유구한 사이비 종교집단의 역사는 아마 후한 말 장각의 태평도에서 출발했던가. 세상이 먹고 살기 힘들어지고 흉흉해지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바로 이런 사이비 종교집단이었다. 아픈 사람을 낫게하고, 갑갑한 현실을 탈출할 수 있다는데 누가 마다할 것인가. 서양 양귀들이 새로운 종교인 천주교를 들여와 중국 전통을 마구 파괴하고 있는 마당에, 권법을 수련해서 이들과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솔깃한 프로파간다에 청나라의 이삼십 대 청년들은 열광했다.

 

초기 의화단원들은 주로 산동성을 중심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서양 사람들과 교류했던 남방과 달리 수도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중원에 사는 이들은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게다가 자연재해까지 겹쳐서 그야말로 먹고 살기가 힘든 판이었다. 이렇게 잘 짜여진 판에 청나라 조정은 대중의 분노가 서양 세력에게 집중되는 걸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대환영이다, 안티 서양 운동이여.

 

이런 사회 분위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서구 열강들은 청나라 조정에게 의화단 무리를 일소할 것을 주문했고, 청나라에서는 조선 총독 행세를 하던 원세개를 파견해서 의화단 진압을 명한다. 내부 반란 진압에는 능했던 원세개가 작전을 시작하자, 의화단 무리들은 박살이 났지만 풍선 효과로 의화단 활동이 산동성 인근 하남과 직례까지 퍼졌다고 했던가.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던 청나라 수구파들은 의화단 활동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의화단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이에 한껏 버프를 받은 의화단 무리들은 삼삼오오 집결해서 수도 베이징으로 몰려들었다. 19006월경에는 베이징에 집결한 의화단원들의 수가 자그마치 10만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서태후와 청나라 조정은 열강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훗날 팔련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8개국 연합군들이 의화단의 공격에 맞서 자금성 인근의 공사관 수비에 나섰다. 1963년에 제작된 앤드루 마튼 감독의 <북경의 55>은 바로 이 시절을 다룬 영화다. 아무리 수적으로 우세한 의화단원들이 수백 명에 불과한 공사관 수비대에게 압도적 제파공격을 가했지만, 수비대가 무너지면 잔혹한 의화단원들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결사적으로 항전했다. 결국 톈진 포대를 제압한 연합군 구원부대가 도착하면서 포위는 풀리고, 서태후를 비롯한 청나라 황실은 장안으로 도주하면서 결국 수도 베이징이 팔련군에게 함락당했다. 여기까지가 18권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의화단이 베이징에 입경할 당시 내세운 구호가 부청멸양이었다. 청나라를 도와 서양세력을 타도하자는 슬로건이었는데, 의화단의 뿌리였던 백련교의 주장 가운데 하나가 멸만흥한이었다. 시작부터 청나라 조정과 의화단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서로 간에 이질적이었나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의화단은 10만이라는 군세를 과시했지만, 이들은 실제 전투에서는 중국 역사상 최악의 전투력을 보여준 허접한 집단에 불과했다. 칼이나 창 같이 전근대적 무기로 무장한 의화단원들이 선진 무기와 전술로 무장한 소수의 팔련군 수비대에게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의화단 사건 이후, 청나라는 열강의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역사발전의 과정에서 진보는 더딘 반면, 보수 반동에 의한 정체 혹은 역진은 상대적으로 빨랐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과정이 얼마나 소모적인가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서태후와 단왕 재의를 필두로 한 주전파들의 오판은 궁극적으로 중국의 마지막 제국 청나라의 몰락을 초래했다. 한수 아래로 봤던 일본에게마저 완패한 청나라가 무슨 수로 팔련군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수도를 외국 세력에게 점령당하는 국가적 수치는 물론이고, 막대한 금액의 배상금은 온전히 백성들의 몫이었다. 이런 나라가 망하지 않고 존속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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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역사 : 근대 - 당신에게 가장 가까운
황현필 지음 / 역바연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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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역사강사 황현필 선생의 <요즘 역사> 강의를 너튜브로 시청했다. 지난주에 시작한 프로그램인데, 한국 근대사 강의를 마치고 말미에 교보재 추천해달라는 요청에 자신의 저작인 <요즘 역사 근대>편을 자신 있게 소개해 주었다. 말이 필요 없지. 어제 저녁 퇴근하고 나서 도서관에 가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이미 흥선대원군 편을 읽고 또 최근에 굽시니스트 작가의 한중일 세계사로 단련이 되어 그런지 내용들이 쏙쏙 들어왔다. 금방 다 읽었다.

 

일단 근대사의 시작점에 작가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배치했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대원군을 근대화를 저해한 정권욕에 불타는 독재자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의 다른 면들을 볼 수가 있었다. 우선 아들을 고종으로 즉위시킨 다음, 60년간 이어진 권문세족들의 세도정치를 일소해 버렸다. 임진왜란 이래, 비대해진 비변사도 해체하고 예전의 의정부 시스템으로 복귀를 시도했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 중수는 무리한 토목공사였다고 비판 받았지만, 이 역시 당시 기득권층의 프로파간다가 아니었나 싶다. 초기까지만 해도 경복궁 재건은 백성들에게 환호를 받았지만, 화재로 두 번째 공사에 들어가면서 비용이 급증하고 또 일반 백성들의 노역까지 동원하게 되면서 비판이 일었다. 비용 문제로 원납전을 양반들에게 강제 징수하고, 당백전 발행으로 인플레이션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지역을 장악한 양반들을 겨냥해서 서원 철폐에 나서 기득권 타파한 점에 대해서도 작가는 높이 평가한다. 무엇보다 문란해진 삼정을 바로 잡기 위해 양전사업으로 은결을 찾아내고 양반들의 토지겸병을 제한하면서 자영농 육성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호포제 실시로 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하기 시작했고, 무력화된 환곡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 민간이 운영하는 사창에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

 

다만 병인박해로 무려 8,000여명에 달하는 천주교도들을 학살한 사실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비판을 가한다. 그리고 결국 대원군은 며느리 민비와의 권력투쟁에서 일패도지해서 권불십년의 신화를 남기고 결국 정치 무대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대원군이 19세기 초에만 대권을 잡았더라도, 과연 저자의 주장대로 조선이 일본에게 국권을 피탈당하게 되었을까라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100년이 되지 않는 조선의 근대에는 참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일본에 의한 강제 개항을 필두로 해서, 저자가 조선 최고의 악녀로 꼽는 민비의 국가 사유화, 군인들의 반란이었던 임오군란을 막기 위해 청군의 개입, 일단의 개화파들의 의한 갑신정변, 동학교도들이 일으킨 동학운동, 이를 빌미로 조선에 개입한 일본과 청나라의 전쟁 등등... 국운이 쇠하는 가운데, 이 시대를 산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했을지 조금은 궁금해졌다.

 

연대순으로 이런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면서 저자의 분석과 비판이 첨가된다. 청년 김옥균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갑신정변의 취지는 좋았지만 어디까지나 엘리트 계급에 의한 개혁 시도는 다수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일본의 배신으로 단 3일 만에 진압되었다. 정변의 수괴 김옥균에 대해 앙심은 품은 고종과 민비를 자객을 보내 끊임없이 김옥균을 괴롭혔다. 물론 국내에 남은 정변을 주도한 이들의 가족들은 모두 참화를 당했다. 결국 홍종우가 상하이에서 김옥균 암살에 성공했다. 김옥균의 경우에서 보듯이 항상 이상주의가 냉혹한 현실을 담보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현충원에 안장된 서재필에 대해 맹렬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갑신정변에 참가했다가 멸문지화를 당한 서재필은 미국으로 망명하여 미국 시민권들을 취득했다. 그가 과연 미국에서 어떤 식으로 독립운동을 했는지에 대해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개인적으로 너튜브 방송에서 인간 서재필을 어떻게 다룰지 좀 궁금해졌다. 해방 공간에서 어쩌면 이승만을 대신해서 한국정부의 대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다고 했던가. 저자는 그가 현충원이 아닌 양화진의 외국인묘지에 묻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름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나는 동조한다.

 

조선시대 선조, 인조 듀오와 더불어 최악의 암군이라고 저자가 규정한 고종이야말로 구한말의 문제적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조선 시대 대부분의 군주들은 보국안민이라는 기치 아래 백성들을 통치했다. 하지만, 대원군의 섭정이 끝난 이래 민비의 사주 덕분인지 어쩐지 고종은 국가 조선의 이익에 앞서 개인의 사욕과 안위를 우선했다. 매관매직 30년으로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혔고, 그렇게 공직에 오른 탐관오리들은 상전들에게 바칠 뇌물을 마련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본격적인 가렴주구를 시전했다.

 

설상가상으로 임오군란으로 조선에 주둔한 청나라의 파견군 사령관 위안스카이는 이후 십년간 조선에서 왕노릇을 했다. 파도처럼 몰려드는 서세동점의 시대에 적절하지 못한 대처로 결국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되어 망국의 군주가 되지 않았던가. 이런 암군에게 무슨 동정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의 파트너였던 민비 역시 부창부수였다. 오죽하면 임오군란 당시, 반란을 일으킨 군인들의 구호가 '민비를 죽이자'였을까. 군인들의 손에 민비가 잡혔더라면, 일본 낭인이 아닌 조선의 군인들에게 죽음을 맞지 않았을까. 그러니 이제 후대의 창작물에서 각색된 명성황후 타령은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일단 <요즘 역사> 근대 첫 번째 이야기는 이완용을 필두로 한 친일파 대신들이 무기력하게 일본에게 조선을 팔아먹은 경술국치로 마무리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는데, 여전히 매국뽕으로 가득한 인사들이 정치인 행세를 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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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4-06-19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현필 님 너튜브는 저도 애시청합니다. 이 책, 유익해 보입니다~추천 감사드려요~

레삭매냐 2024-06-20 00:15   좋아요 0 | URL
어제 저녁 분을 미처 보지 못했네요.
오늘 시간 내서 감상하려구요.

<요즘 역사> 독서는 유익했습니다.
 
의화단 1 : 소년의 전쟁
진 루엔 양 지음, 윤성훈 옮김 / 비아북 / 201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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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굽시니스트 작가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를 열독 중이다. 어제도 최근작인 18편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가장 궁금한 파트가 바로 <의화단>이었는데 아직 그 지점까지 가지 못했다. 대한제국 시절 독립협회가 중심이 되어 <헌의6>를 발표하고, 나름대로 디모크라시가 진행되는 지점까지 읽었다. 오늘 도서관에 갔다가 <의화단>이라는 중국계 미국인 작가가 그린 그래픽노블을 읽게 됐다. 내가 그 전에 이 책을 읽었던가? 그런데 왜 리뷰 기록이 없는 걸까. 게을러서 리뷰를 쓰지 않았던 걸까.

 

이야기는 의화단 운동이 시작되기 6년 전인 1894년 산둥성의 어느 마을에서 출발한다. 시골 소년 바오는 서양 출신 천주교 베이 신부의 뒷배를 믿고 시장에서 설치는 마을의 무뢰한을 권법으로 단박에 제압하는 아버지의 실력에 감탄한다. 참고로 바오는 당시 거의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경극 매니아였다. 청조 말기, 서구 열강의 압력에 이기지 못한 서태후의 청나라(황제는 광서제였다)는 나라의 이권을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하나하나 침탈당하고 있었다.

 

마을 대표로 현장에게 천주교 신부의 개입에 대한 항의를 하러 길을 나섰던 아버지는 서양 군대에게 혹독한 매질을 당하고 결국 폐인이 되었다. 그러던 중, 마을에 나타난 주홍등이라는 청년이 의술로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마을 청년들에게 권법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나중에 드러나게 되지만 주홍등은 대도회라는 비밀결사 조직의 일원이었다. 주인공 바오도 주홍등에게 권법을 배우려고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손위 형님들처럼 정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주홍등은 바오가 가진 권법 재능을 보고 그에게 남몰래 권법을 가르쳐 준다.

 

대도회의 부름으로 양귀들과 상대하기 위해 주홍등은 마을을 떠나면서 바오에게 비밀쪽지를 하나 남긴다. 마을 근처에 있는 산에 사는 배불뚝이 도사를 찾아가 그에게 제대로 된 권법을 배우게 되는 바오. 바오가 처음에 땅에 박혀 있는 배불뚝이 도사의 칼을 뽑으려는 장면은 아더왕 전설의 엑스칼리버 생각이 났다. 역시 서사는 이렇게 변주되어 반복되는 법인가.

 

바오가 의화단 운동에 투신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바로 주홍등의 죽음이었다. 대도회 활동에 나섰던 주홍등은 관군에게 체포되어 참수되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등장한 관군을 상대로 바오가 배불뚝이 도사에게 배운 주술을 이용해서 타격을 가하면서 비로소 바오의 의화단 활동이 시작된다.

 

일단 <부청멸양>이라는 기존의 존왕양이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청나라 인민들은 양귀들을 상대로 학살을 일삼았다. 바오는 의화단 5개조를 주장하면서 어린아이와 여자들은 해치면 안된다고 동지들을 제지했지만, 전투 주술 의식에서 경극의 검은 상제 그러니까 진시황으로 등장하는 경극 분신(?)은 계속해서 바오를 자극한다. 그런 소의 따위에 휘둘리지 말고, 모든 양귀들과 그들에게 부역하는 모든 중국인들도 과감하게 처단하라고 사주한다.

 

중국식 민족주의 운동이 태아가 된 의화단의 강령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 시행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결국 바오는 베이 신부가 죽고 그의 성당에 모여든 사람들을 가두고 불을 질러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죽였다. 바로 이 지점이 의화단 운동의 성패가 갈린 그런 지점이 아닐까.

 

그리고 계속되는 황군과의 전투에서 서양식 무기인 총에 맞아 같이 기의한 동지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간다. 자신의 형제들도 차례로 전사했다. 여성 동지인 메이원이 홍등조가 되어 양귀들과의 전투에서 남성 동지들 못지 않은 전투력을 과시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역사에 실제로 십대소녀들로 구성된 홍등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점들을 보면, 진 루엔 양이 상당히 많은 고증을 거쳐 <의화단 소년의 전쟁>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청나라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서태후는 중국 각지에서 날뛰는 무법자 집단을 황군을 동원해서 제압해 달라는 서양 열강의 요청을 무시했다. 오히려, 근친왕인 애신각라 재의(단왕)는 은밀하게 의화단을 지원하기도 했다. 감군을 지휘하던 동복상군과 만나 바오군도 잠시 긴장모드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초록은 동색이라고 훗날 아군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1900년 여름 바오군은 드디어 청나라의 수도인 베이징에 진입했다. 단왕과 동복상 제독의 지원을 받던 의화단의 기세가 찌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거의 사이비 집단에 가까웠던 의화단 운동의 한계는 분명했다. 아무리 권법을 수련한다고 해서, 빗발치는 총탄과 포탄을 이길 수는 없었다. 굽시니스트도 한중일 세계사에서 언급했다시피, 민중의 운동과 엘리트 계급이 서로 협력해야 무언가 새로운 개혁이 그나마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막무가내로 서양인들을 양귀 취급하던 의화단 활동에 청나라 지식인들은 넌더리를 쳤다. 물론 나중에 의화단 진압에 나선 서구 열강 역시 의화단이나 다를 바 없는 그런 모습을 주였지만 말이다.

 

일찍이 중국 사상 처음으로 분서갱유로 악명을 날린 진시황 분신은 열강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수천년 역사가 담긴 한림원을 불태우라고 바오를 부추긴다. 결국 바오는 한림원에 불을 지르고, 지식인을 대표하는 메이원은 불타오르는 한림원에서 책을 구하다 허무하게 죽고만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의화단 동지들을 규합해서 다시 한 번 공격에 나서지만, 구원에 나선 열강 군대에 의해 전장에서 장렬하게 산화한다.

 

중국은 이 의화단 운동의 실패로 결국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자국의 이익을 침탈하는 외세를 배격한다는 취지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폭력적이었다. 청나라 조정은 의화단원들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대신, 오히려 그들을 이용했고 나중에 필요가 다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로 외면해 버렸다. 처음부터 의화단이 가지고 있던 무력은 서구 열강들의 무력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 결과, 청나라 황실이 도주하고 빈 베이징을 점령한 열강들은 무차별적 약탈과 방화에 나섰다. 특히 독일 외교관이 살해당한 독일 제국군의 복수가 심했다고 한다.

 

아까 내친 김에 <의화단 소녀의 전쟁>도 마저 빌렸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오가 중국 측에서 의화단을 바라본 시선이라면, <소녀의 전쟁>의 주인공인 비비아나는 반대편의 시각이라고 한다. 굽시니스트 작가의 <의화단>을 마저 읽으면 좀 더 의화단 운동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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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6-17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기 작품 중 펄벅의 대지 3부작이 제일 먼저 생각나네요. 아마도 제일 먼저 만난 작품이어서일 듯해요. 이 책 저도 언젠가 읽어보겠습니다. < 본격 한중일 세계사>도 함께!

레삭매냐 2024-06-19 14:15   좋아요 1 | URL
펄 벅의 <대지>도 읽어 보고 싶긴
한데... 마음에 드는 출판사가 없네
요.

본격 한중일 세계사, 요즘 역사
이렇게 셋트 구성으로 읽다 보니
아주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