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영웅전 1 - 몽고의 영웅들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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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우연히 신필이라 알려진 김용 선생 탄생 100주기를 맞아 다시 제작되었다는 <사조영웅전> 시리즈를 보게 됐다. 세상에나, 그 옛날에도 읽지 않고 버티던 무협지 <영웅문>을 이제 다시 읽게 될 줄 누가 알았나 그래. 고려원에서 그 시절에 나온 영웅문 1탄의 부제가 아마 <몽고의 별>이었지. 왜 그렇게 제목을 붙였는지 원작을 보면서 알게 됐다.

 

일단 드라마를 5편까지 다 보고 나서 도서관에 가서 원작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드라마와 원작의 시작점은 상당히 달랐다. 원작에서는 주인공 곽정의 탄생 비화와 몽골에서의 활약에 대한 비중이 상당했지만, 드라마는 몇 컷 정도로 죄다 걸러 버리고 중원에 데뷔한 시점에서부터 다룬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부분들은 모두 플래시백으로 처리해 버린 점이 원작과 상이했다.

 

이래서 원작을 봐야 한다고 하는 걸까? 원작은 연대기순으로 남송 임안부 우가촌에 살던 곽소천/이평 부부와 양철심/포석약 부부의 비극적 삶에서부터 시작한다. 전진칠자 중의 한 명인 구처기 도사가 송 조정의 세작들과 내통하려던 금나라 밀사들을 처치했지만, 그 때 구처기에게 습격당한 금나라 장종의 6번째 아들 완안홍열이 포석약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데 성공해한다. 그리고 그는 송의 관리 단천덕을 조종해서 곽소천/양철심 의형제의 집안을 박살내고 포석약을 납치해서 금의 수도 연경으로 향한다.

 

이 때, 이평과 포석약은 각각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구처기는 각각의 아이들에게 송나라 휘종과 흠종이 포로로 잡혀간 정강지치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곽정과 양강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이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곽정은 몽골 초원으로 흘러가 그곳에서 자라게 된다.

 

그 전에 구처기 도사와 강남칠괴로 알려진 강남의협들의 대결도 벌어지는데, 드라마에서는 이 부분이 상당히 적은 분량으로 다뤄졌다. 이평을 인질로 잡은 단천덕은 구처기의 추격을 피해 법화사 초목대사의 슬하에 숨어 있었는데 오해가 빚어지는 바람에 구처기 도사와 강남칠자들의 대결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쨌든 서로간의 오해를 풀고, 강남칠괴는 곽정을 맡고 구처기는 양강을 맡아 18년 뒤에 가흥의 취선루에서 무예 대결을 하자는 내기를 한다.

 

한편 몽골에서 자라게 된 곽정은 당시 몽골 초원을 휩쓸던 테무친(훗날 징기즈칸) 대칸과 묘한 인연을 맺게 된다. 이것 또한 송--원나라로 이어지는 격변의 정세를 겨냥한 김용 선생의 소설적 장치가 아닌가 싶다. 한족 출신 소년이 몽골에서 발흥 중이던 테무친 부족의 일원처럼 행동하면서 남다른 의협심을 기르며 언젠가 아버지의 원수 단천덕을 죽여 복수하겠다는 아주 클리셰이의 전범적 진행이 아닌가 말이다.

 

역시 주인공답게 곽정이 다른 건 몰라도 불우한 이웃을 돕고, 강호의 의리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인물이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역경과 고난을 딛고, 무공을 익혀 천하오절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그런 입지전적 인물이 바로 곽정 아니겠는가. 드디어 몽골 초원에 등장한 강남칠괴로부터 무공 수련이 시작되고, 테무친의 4남 툴루이와는 의형제로 맺어질 정도로 끈끈한 관계가 잇달아 등장한다.

 

테무친의 몽골 부족 통일전쟁이 계속되던 긴박하면서 흥미로운 전개도 역사성과 더불어 통속무협 소설의 감칠맛처럼 작동한다. 사조 3부작 가운데 마지막이었던 <의천도룡기>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주원장 같이 실제 역사에 등장하던 인물들을 적절하게 섞으면서 가독성을 높이는 신필 선생의 작법이 다른 건 몰라도 역시나 재미 하나만큼은 최고조로 뽑아내는구나 싶었다.

 

훗날 테무친의 4영걸로 알려진 철별(제베)를 곽정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전쟁터에서 테무친의 목에 화살을 먹인 원수 철별을 모두가 잡아 죽이겠다고 나선 살벌한 상황 속에서 어리버리한 곽정이 돕겠다고 나서 대칸의 주목을 끄는 장면으로 이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이 정도 관계 설정을 해놔야 나중에 중원에 대한 몽골 침략이 본격화되었을 때, 대칸과 곽정이 맞짱을 뜬다는 극적인 판이 짜여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풍쌍살/동시철시로 알려진 매초풍-진현풍과의 무시무시한 대결도 흥미로웠다. 이 부분은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고, 강남칠괴와 곽정이 동시 진현풍을 죽여서 매초풍과는 원수 사이라고만 들었는데 원작을 보니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오래 전에 이 부분을 만화로도 본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사투에서 강남칠괴와 곽정의 분전으로 진현풍을 죽이는데 성공했지만, 5형제 장아생이 한소영과 곽정을 구하려다가 장렬하게 산화한다.

 

곽정의 무공 수련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느닷없이 전진교의 장문인인 마옥 도사가 등장해서 곽정에게 호흡하는 법, 잠자는 법 등을 가르쳐 주면서 곽정의 수련이 배가되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새로운 드라마 시리즈에도 등장해서 비교적 수월하게 이해가 되었다.

 

일찍이 김용 선생의 무협 소설에 등장하는 지나친 중화중심주의에 대한 지적이 있었는데, 아직 초반이라 그런 진 몰라도 그런 부분은 등장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경계하고 책을 읽는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저러나 다른 것들은 차치하더라도, 역시나 통속 무협소설답게 재미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구나. 읽는 속도가 무시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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