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로 맛보는 후룩후룩 이탈리아 역사 이케가미 슌이치 유럽사 시리즈
이케가미 슌이치 지음, 김경원 옮김, 김중석 그림 / 돌베개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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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에서 성자 셰프라 불리는 이가 방송에 출연한 연예인의 냉장고에서 찾아낸 재료로 자신의 주특기인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 보았다. 15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가지고, 역시 빈약한 재료로 그런 놀라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속도와 창의력에 감탄했다. 이케가미 슌이치 작가는 바로 그 파스타를 가지고 원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역사를 풀어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느끼한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즐겨 먹곤 하는데,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처럼 그렇게 다양한 파스타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파스타의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중공업이 발달한 북이탈리아에서는 연질밀을 이용한 생파스타가 그리고 농업이 발달한 남이탈리아에서는 예로부터 경질밀을 이용한 건조 파스타가 주류를 이뤘다고 한다. 사실 곡물을 이용해서 만든 파스타가 물을 만나면서 오늘날에 우리가 즐기는 진짜 파스타가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밀을 이용한 빵을 이탈리아 사람들은 먹었지만,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이어지는 랑고바르드 그리고 노르만 족들은 모두 육식 위주의 식단을 즐겨서 로마 제국 이래 곡류를 즐겨 섭취하던 식습관 자체가 바뀌었다고 한다.

 

중세 르네상스 시절에 이르러 비로소 다시 부활한 파스타는 여전히 평민의 음식이 아니었다. 저자는 특히 도시국가가 발전한 르네상스 시기 생산을 담당하던 농촌을 사실상 지배하던 특수한 상황에 주목한다. 계속해서 외세의 침략과 간섭을 받던 이탈리아는 1860년대 들어서 비로소 통일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이탈리아에서는 국가보다 자신의 지역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예전에 로마에서 수학하던 사촌형이 공부하던 수도원에 들렀을 때, 베네치아 출신 수사를 한 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인 자신이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 베네토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이탈리아에서 사랑받아온 마케로니/마카로니, 오늘날의 파스타는 대항해시대로 신대륙의 새로운 작물들이 유럽에 전파되면서 일대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특히 한때 관상용으로 재배되던 토마토와 고추는 미네스트라라고 불리던 파스타 요리의 세계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기에 이른다. 요즘은 케첩을 이용한 미국식 나폴리 파스타가 대세지만, 여전히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는 지중해에서 잡히는 앤초비를 비롯해서 프로슈토, 살라미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재료로 만든 파스타를 즐기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라자냐나 중세에는 잔치 때나 맛볼 수 있었다는 만두 파스타(라비올리)도 좋아하는데, 언제나 이탈리아에 다시 한 번 본고장 파스타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케가미 슌이치는 피자와 함께 전 세계인의 식탁을 점령하다시피 한 파스타의 위기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는다. 이탈리아 미래파를 대표하는 시인 필리포 마리네티는 파스타가 시대의 유행에 뒤쳐진 음식이자 부조리한 신앙이라고 혹평하면서, 영양 없는 파스타 대신 고기와 생선을 섭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엄마 파스타의 맛을 잊지 못해 몰래 먹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단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 역시 파스타의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금지하지 않은 것으로 아마 그도 엄마 파스타의 맛을 포기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모든 것이 빨리빨리란 구호 아래 속도전으로 진행되는 패스트푸드 시대에 손이 많이 가는 파스타야말로 어쩌면 슬로푸드의 대명사가 아닐까. 정치 권력과 함께 이탈리아의 정신 세계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교회가 선도하는 가부장 이데올로기는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주는 파스타야말로 최고의 음식이고, 지고의 선이라는 선전을 맡아온 모양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로 이제 엄마표 파스타는 점점 더 맛볼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어쩌면 엄마 파스타란 여성의 사회진출을 저지하고 가정에 구속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영양학적으로나 건강에도 좋은 파스타가 본고장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음식이 되는 과정을 추적한 이케가미 슌이치의 음식사적 접근이 즐기기에 부담 없는 파스타처럼 너무 진지해서 무겁지 않고, 가벼운 안티파스토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래 파스타는 혼자 먹는 음식이 아니라, 푸짐하게 장만해서 같이 나눠먹는 음식이었다고 하는데 공동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도 이만한 음식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은 파스타에게 부탁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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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노래 - 가토 슈이치 자서전
가토 슈이치 지음, 이목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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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교수님의 추천으로 유심히 보고 있었는데, 출간이 되었네요. 굿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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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미로
발터 뫼어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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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센 놈이 돌아왔다. 우리가 사랑하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을 잿더미로 만들고 자신의 고향 린트부름 요새로 튀었던 77세의 젊은 디노사우르스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다시 일어선 부흐하임에서 도착한 편지 한 통을 받고 건강염려증으로 단련된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초심으로 돌아가 도보여행길에 올랐다. 그 편지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림자 제왕이 돌아왔다. 이하 리뷰에는 발터 뫼어스의 부흐하임 시리즈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들어 있으니 아직 책과 만나보지 못한 분들의 심근경색을 염려하여 이만 읽기를 권한다.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읽었다면 발터 뫼어스가 대환영해 마지않는 모험자일 테니 군말은 더 필요 없을 것이다.

 

자그마치 20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이 사악한 피스토메펠 스마이크의 음모에 맞서 장렬한 불꽃으로 산화한 그림자 제왕 호문콜로스 때문에 발생한 대화재로 파괴된 지 말이다. 그동안 우리의 작가지망생 미텐메츠는 문학적으로 찬란한 성취와 그에 따른 명성을 즐기며 여유작작한 생활을 해왔다. 물론 그동안 다양한 먹거리들을 섭생하면서 그의 체중이 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무거운 엉덩이를 도보순례의 험난한 길로 인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발신자가 자신인 편지였다. 성공에 도취한 미텐메츠에게 이미 ‘오름’의 순간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고, 장년기에 도달한 이 공룡은 다분히 자기파괴적인 분열적 증상을 즐기며 린트부름 요새에 안주하고 있었다. 모든 작가들에게 찾아오는 병력처럼 빈곤한 창작의 소재는 미텐메츠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이성과 계몽을 선도하며, 다시 한 번 불꽃같은 오름의 순간을 몸소 느끼고자 미텐메츠는 잡다한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부흐하임 여행길에 오른다. 아, 이제는 누구나 알법한 저명한 작가가 된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두건과 망토는 필수다.

 

젊은 시절의 미텐메츠는 이미 우리가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의 거의 전부를 체험했기에 두 번째 여행에서는 신중에 신중을 더한 모습을 보여준다. 역시 나이를 먹었다는 방증이려나. 그렇게 도착한 부흐하임은 대화재 이전의 모습을 되찾고 보다 발전한 모습으로 장엄한 도시를 찾은 순례자를 맞이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잿더미가 된 패전국에서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기적을 일군 현대 독일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대화와 독재를 더 이상 발붙일 수 없게 만든 민주주의야말로 세계를 호령하는 제조강국 통일독일을 가능하게 만든 주역이 아니었던가. 획일화된 전체주의에서 벗어나, 기존의 풍부한 인문학적 베이스를 바탕으로 해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부흐하임의 이미지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로 전진하는 현대 독일의 그것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책들의 도시조차도 전 세계를 휩쓰는 자본주의 열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더 이상을 오름을 체험할 수 없는 상업작가가 되었다는 비판을, 다른 사람도 아닌 절친한 친구로부터 듣는 미텐메츠의 심정을 상상해 보면 간단히 연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보니 전편에서 최고의 악당 역을 수행했던 피스토메펠 스마이크(그 유명한 메피스토펠레스의 애너그램이었던가)의 운명 역시 독일 민족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희대의 독재자 아돌프 ‘그 새끼’와 너무 유사하지 않은가. 온갖 권모술수로 권력을 행사하며 사실상 부흐하임의 지배자로 군림하던 스마이크의 최후 역시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독재자의 말로를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니,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대화재의 결말에서 스마이크와 그림자 제왕의 최후가 어떠했는지에 대해 정확한 언급이 없었다. 확인해 보시라, 이런 앙큼발랄한 작가 같으니라구.

 

어쨌든 다양한 건강염려증과 다이어트의 압박에 시달리는 우리의 주인공 미텐메츠는 잃어버린 200년이라는 시간을 따라 잡기에 여념이 없다. 전작에서도 독자들은 신기한 것들로 넘쳐흐르는 책들의 도시의 포로가 되었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발터 뫼어스는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부흐하임이 선사하는 새로운 변화들의 단면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대화재 이후,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에서는 화재를 피하기 위한 최신 유행으로 공중 도서관이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살아 있는 역사 신문’이 고전활자체로 관광객을 유혹하기에 이르렀다. 미텐메츠는 수다쟁이 역사 신문을 고용해서 지난 시간 따라잡기에 나선다. 끊어진 시간을 이어주는 결정적인 인물은 담배 한 대를 태우기 방문한 ‘자욱연기소’에서 만난 동료 공룡 오디디오스 폰 베르스슐라이퍼였다. 기억하시는가? 전작에서 성공을 구가하며 린트부름 요새를 떠났지만 잊힌 시인들의 공동묘지의 구덩이에서 관광객들에게 시를 팔며 연명하던 그 오비디오스 말이다. 놀랍게도, 부흐하임의 대화재를 통해 별들의 알파벳을 목격하고 마침내 오름의 순간을 관통한 오비디오스는 예의 광경을 그린 연작시를 발표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단다. 자욱연기소에서 값비싼 옷에 장신구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우리의 미텐메츠가 받은 충격을 상상해 보라. 바로 이 장면에서 발터 뫼어스가 어쩌면 오비디오스의 이야기를 통해 누구나 단박에 유명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현대 문단 시스템을 비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반갑게 해후한 오비디오스는 부흐하임을 휩쓸고 있는 이른바 온갖 종류의 비블리오 주의에 대해 다양한 썰을 풀어준다. 그리고 예전에 책 사냥꾼이라 불리던 이들이 도서항해사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는 말도 오비디오스는 빼놓지 않는다. 도서항해사의 이미지는 기존의 책 사냥꾼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말이다. 정체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약초들의 향기를 마음껏 흠향하고 오랜만에 만난 오비디오스의 이야기에 더해, 부흐하임산 책 와인까지 마셔 기이하기 짝이 없는 메타 와인학적 체험까지 하게 된 미텐메츠는 자신이 왜 이 도시에 오게 되었는가를 깨닫고 마침내 오랜 친구 아이데트족 키비처와 슈렉스 이나제아를 만나러 나선다.

 

친구인 자신을 신랄하게 비판해오던 키비처가 알쏭달쏭한 지하미로의 지도를 남기고 죽고, 유언 집행인으로 임명한 슈렉스 이나제아가 장례 절차를 처리한다. 그리고 미텐메츠와 이나제아는 부흐하임에서 대유행이라는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인형극으로 관람하러 나선다. 미텐메츠는 인형극이 아이들이나 보는 거라며 툴툴대지만, 막상 거장 코로디아크가 연출한 인형극이 자신이 전작에서 직접 체험한 모험을 인형극으로 재현해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모든 이야기가 그대로 재현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노련한 작가 미텐메츠는 실제와 연출을 꼼꼼하게 비교해 가면서 냉소와 찬탄 그리고 흥분에 사로잡혀 관람을 마친다. 어쩌면 발터 뫼어스는 부흐하임이 부활하는 과정에서 인형중심주의가 담당했던 일련의 문화 활동을 전후 독일 문학의 재건에 연결시키고 싶었던 건 아닐까.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로써 승전국에 제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독일 문학인들의 원죄를 고발한 W.G. 제발트의 냉철한 비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다음은 수순은 당연히 거장과의 만남일 것이다. 어, 그런데 장님 인형술사의 얼굴이 오래 전 지하미로에서 마주쳤던 하고프 살달디안 스마이크와 빼닮지 않았는가 말이다. 능구렁이 같은 작가 발터 뫼어스는 부흐하임 주민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마에스트로 코로디아크가 하고프 살달디안의 쌍둥이 형제였다는 클리셰이를 선언한다. 예술 창조를 위해 시력마저 잃은 코로디아크의 아우라에서는 필생의 역작을 위해 자료 조사를 하다가 시력을 잃은 콜린 매컬로 여사가 연상되기도 했다. 천재성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가혹하지 않냐고 작가는 되묻고 있다. 어쨌든 마에스트로 코로디아크가 인터뷰 중에 언급했던 <보이지 않는 극장>은 또 무언가. 어지간한 미스터리 소설 따위는 찜쪄먹을 법한, 판타지 장르 특유의 무궁무진한 이야기 보따리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자 이제부터가 문제다. 여기까지 읽었어도 이제 <꿈꾸는 책들의 미로>를 마무리할 수 있는 분량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촉 빠른 독자라면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다, <꿈꾸는 책들의 미로>는 아직 미텐메츠와 그를 따르는 독자들을 지하미로로 인도할 준비로 끝을 맺게 된다. 나머지는 언제 출간될지도 모를 차모니아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할 <꿈꾸는 책들의 성>에서 다룰 예정이란다. 하긴 이것조차 확인된 바 없다. 엄청난 분량의 차모니아 어로 구성된 미텐메츠가 남긴 자기분열적 기록들을 번역하고 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삽화까지 도맡아야 하는 작가의 입장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피니쉬라인을 향해 처절하게 달려 왔는데 저 멀리 그림자제왕, 아니 호문콜로스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채 끝나다니 안타깝지 그지없다. 발터 뫼어스가 출판사로부터 법적 대응 운운하는 협박을 당해도 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헤르타 뮬러의 <숨그네>의 경우에서도 그랬지만, 독일 작가들의 조어(造語) 기법이 우리말로 번역되는 순간 특유의 말맛을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독일어를 전혀 모르니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전편에서도 등장했던 비루한 존재를 가르키는 오리개구리나, 부흐링의 가죽동굴, 노루개 레겐샤인 그리고 상어구더기 스마이크 같은 경우가 생각난다. 그런 점에 비해, <꿈꾸는 도시들의 미로>에 나오는 공공 끽연소를 지칭하는 자욱연기소 번역은 정말 멋지지 않은가. 우리네 도심 변두리에 자리 잡은 끽연소에도 이런 문학적 상상력이 풍부한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꿈꾸는 책들의 도시>와 <꿈꾸는 책들의 미로>를 다 읽고 나서, 기존에 출간된 발터 뫼어스의 책 사냥에 나섰다. 판권 소유자가 바뀌었는지 슬슬 절판과 품절의 운명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사 모으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으로 공식 차모니아 사이트도 방문해 보았는데, 부흐링들의 실사 이미지에서부터 미텐메츠의 집필 장면까지 정말 다양한 이미지들을 만나볼 수가 있었다. 그런 건 모두 부수적일 따름이고, 어서 빨리 나머지 모험을 들려주길 바랄 뿐이다.

 

[리딩데이트] 2015년 9월 23일 ~ 25일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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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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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하우스에서 출간된 존 리버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숨바꼭질>을 만났다. 소설의 시작에서부터 작가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그 유명한 소설 <지킬과 하이드>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영국 출신 벤 아아로노비치의 런던의 강들 시리즈를 읽고 나서 바로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이제 런던 그리고 에든버러를 오가는 영국 경찰 시리즈에 대한 낯선 느낌이 많이 지워졌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나중에 찾아보니 이언 랜킨의 <숨바꼭질>1990년에 나온 작품이란다. 확실히 모바일 인터넷 시대와는 거리가 느껴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야기는 에든버러의 슬럼 지대라고 할 수 있는 필뮤어 지역에서 한 명의 마약쟁이로 추정되는 로니라는 이름의 청년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죽음에서 무언가 석연치 않은 냄새를 맡은 우리의 주인공 존 리버스가 서사의 정면에 나서면서부터 이야기는 달리기 시작한다. 보나마나 로니 맥그래스라는 미래의 사진작가를 꿈꾸던 청년의 죽음은 단순한 마약 과다복용 때문이 아니란다. 게다가 사건 현장에 초점을 흐리기 위해, 조작한 흔적마저 보인다. 문제는 아무런 증거가 없고 존 리버스 경사의 정황 추정만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야 한다는 점이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해야 하나.

 

이언 랜킨은 바로 그 지점에서 트레이시라는 로니의 여자친구를 증인으로 투입시킨다. 아무런 단서도 없는 존 리버스에게 그녀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구세주 같이 다가왔다. 여기에서 살짝 존 리버스의 면모를 살펴보면, 영국 특수부대 출신의 존 리버스는 셜록 홈즈 같은 두뇌회전에 능한 형사라기 보다 무언가 우직하면서 범인으로 추정되는 피의자에게 몇 대 맞더라도 웃으면서 주먹을 날릴 것 같은 그런 이미지의 형사다. 그래도 아내와 이혼한 후에도 꾸준히 연애를 해보려는 노력을 하고, 음악과 독서를 즐기는 멋진 남자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책을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샀다가 내친 김에 다 읽었다니 놀랍기까지 하다.

 

본격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뛰어든 존 리버스는 브라이언 홈스 경장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사건을 진행시켜 나간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왓슨 총경은 리버스에게 무슨 캠페인 같은 귀찮은 일거리만 주려고 한다. 동시에 예의 캠페인을 후원하는 에든버러의 유력한 인사들과 식사 자리를 마련해서 무언가 커넥션을 만들어 주려고 하지만 리버스에겐 귀찮은 일일 따름이다. 그가 추적하는 사건은 오컬트를 숭배하는 찰리라는 대학생으로부터 몇몇 단서들을 확보하면서 점차 확대되기 시작된다. 소설의 처음에 죽은 로니가 남긴 하이드(hide-Hyde)란 말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리버스가 깨닫게 되면서 조금씩 들어나는 하이드 클럽의 정체에 조금씩 다가서기 시작한다.

 

영국에서 정말 잘 나가는 시리즈라고 하는데, 80년대부터 시작한 시리즈가 단편과 논픽션까지 해서 2012년까지 모두 18편까지 출간되었다고 한다. 존 리버스 시리즈는 오픈하우스에서 올해 여름부터 <매듭과 십자가>를 필두로 해서 번역되기 시작했는데 <숨바꼭질>을 보니 곧 세 번째 작품인 <이와 손톱>도 출간될 전망이다. 아직 시리즈의 초반부라 과연 사십대 존 리버스가 격동하는 경찰 세계의 수사 기법의 변화에 맞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바꾸어 나갈지 자못 궁금해지기도 했다. 계속해서 자신의 육감을 이용한 수사기법이 먹힐 지도 궁금하고, 하이드 클럽의 진짜 주인공을 밝히는데 사실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소설의 말미에 사직서를 썼는데 그게 수리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계속될 시리즈를 읽으면 어느 정도 파악이 되겠지만, 시리즈가 연달아 나오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벤 아아로노비치가 21세기의 런던의 최근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이언 랜킨이 그린 에든버러라는 소돔 같은 도시의 실상은 좀 다르게 다가왔다. 이미 사반세기 전에도, 그 나라의 청년들에게 역시 희망과 꿈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던가. 돈과 마약을 구하기 위해, 칼튼 힐을 헤매는 그들의 모습에서 묘한 기시감이 일었다. 한편, 소설을 통해 들어나는 기득권층의 추악한 쾌락 추구는 투견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나 같이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한 도시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들의 악취미가 얼마나 많은 폐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이언 랜킨 작가는 마치 한 편의 르포르타주를 작성하는 것처럼 그렇게 덤덤하게 기술해냈다. 런던에서 시작돼서 북부로까지 몰려온 부동산 폭등에 기인한 거주비 상승 이슈 역시 브라이언 홈스의 집구하기 전쟁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낼 수 있었다.

 

아날로그 수사 시절의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숨바꼭질>의 숨은 재미는 모든 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하이드 씨에 대한 추적이라기 보다 어쩌면, 모름지기 인생의 매순간은 즐겨야 한다는 그리고 골치 아픈 일에 대해서는 숨기지 않고 인상 찌푸리는 존 리버스의 심리변화가 아닐까 싶다. 10월 첫 번째 주말의 독서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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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강들 런던의 강들 시리즈
벤 아아로노비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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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의 달>을 먼저 읽고 나서 바로 역주행에 들어갔다. 어떤 책과 만나게 될 때, 좀 기대를 접어야 하나.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만난 책이 너무 재밌어서, 전작까지 찾아 읽게할 정도의 작가라면 실력이 대단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에겐 벤 아아로노비치가 그랬다. <소호의 달>을 읽고 나가, 당장에 전작인 <런던의 강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소호의 달>을 읽으면서 좀 이해가 가지 않고 이야기의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하던 부분들이 시리즈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런던의 강들>을 읽으면서 어디서 잃어버렸던 퍼즐 조각을 딱딱 끼워 맞추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고나 할까. <런던의 강들>에서는 어머니 템즈와 아버지의 템즈 간의 갈등을 필두로 해서(이야기의 순서는 좀 바뀌었으니 이해해 주시도록), 우리의 혼혈 주인공 피터 그랜트가 어떻게 해서 디시뮬로 사건의 최초 목격자라고 할 수 있는 니컬러스 월페니라는 이름의 유령을 만나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지 그리고 자신의 스승이자 마스터라 불리는 토머스 나이팅게일 경감에게 발탁되어 소위 ‘폴리’라 불리는 마법사 경찰 조직에 입문하게 되는지 등의 과정이 상세하게 진행된다. 그저 독자는 자신을 내려놓고,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벤 아아로노비치가 잘 알아서 부드러운 독서의 항해를 시켜 주니 걱정 놓으시라.

 

텔레비전 드라마 판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벤 아아로노비치는 고수답게, 썰을 풀어내는 뛰어난 재간을 문학판으로 옮겨 시전해 보인다. 우선 기본은 21세기 영국 수도경찰국에서 마법사 경찰 조직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소재부터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게다가 디시뮬로라는 유령의 조종을 받아 얼굴까지 바꾸는 흑마술을 이용한 연쇄살인 범죄, 그것도 <펀치와 주디의 비극적 코미디>라는 잔혹한 내용의 인형극 내용을 그대로 현실 세계에서 재현해 내는 유령으로 추정되는 헨리 파이크의 뒤를 쫓는다는 것이 전체적 소설의 줄거리다. 거기에 우리의 초보 마법사 도제 피터 그랜트는 부지런히 마스터 나이팅게일로부터 진짜 마법사가 되기 위한 수련도 빼먹어서는 안된다. 거기에 어머니 템즈의 구역인 런던을 넘보는 아버지 템즈와의 갈등도 빼놓을 수 없다. 묘한 매력을 어머니 템즈의 딸 비버리 브록과 썸을 타는 피터 그랜트, 그리고 그런 그를 조종하려 드는 팜므파탈 같은 존재의 레이디 타이 같은 물의 정령들까지 등장하니 캐릭터만으로도 그야말로 풍년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마법 경찰의 기원이 되는 사람이 바로 근대 과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아이작 뉴턴 경이라니 놀랄 노자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가 발표한 <프린키피아>야말로 마법사들에겐 경전처럼 떠받들어진다고 했던가. 과학과 마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설정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과학이 이성과 계몽의 영역을 담당한다면, 마법 혹은 주술은 그 외의 영역을 담당한다는 주장이 자못 합리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아울러 나 같은 문외한 독자를 위해 런던 경찰청의 흑역사를 비롯해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런던 명소가 가지고 있는 디테일에 대해서도 풍부한 설명을 빼놓지 않는다. 이 정도면 드라마 만들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작가가 예의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훗날 드라마될 거라는 예상을 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선수끼리 왜 이러시나.

 

<소호의 달>에선 일취월장하긴 했지만, <런던의 강들>에서 비로소 마법사의 도제로 업계에 입문해서 초보 기술을 배우는 피터 그랜트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기존 경찰 체계에 이미 진입해 있는 인물로서 해당 분야에 대해 날리는 블랙유머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시쳇말로 어쩔 수 없이 초보인 자신의 실수에 대해 쿨하게 인정하는 모습도 그렇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아직까진 별 볼일 없는 마법이긴 하지만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나같이 귀찮은 사람이라면 라틴 어 공부나 마법 연습을 게을리 할 게 불 보듯 뻔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앞으로 계속해서 출간될 시리즈에서 활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일련의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헨리 파이크로 추정되는 유령 혹은 그를 조종하는 흑마술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피터 그랜트가 보여준 연역적 추리의 귀결은 놀라운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흔히 저지르게 되는 편견으로부터 혹은 확신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라는 작가의 경고장이다. 그 편견과 확신에서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 이 모든 사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란 말인가. 여기에 바로 해답이 숨겨져 있다. 모든 이야기는 <런던의 강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오페라하우스 폭동에서 정점을 찍는데, 의외로 후속작을 읽어서 그런 진 몰라도 김 빠진 콜라를 마시는 느낌이 들었다. 사건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펀치 씨를 고대 론디니움까지 추적해서 처리하고, 엄마 템즈와 아빠 템즈의 중재에 나서 멋지게 처리하고 후속작에 등장할 바기나 덴타타의 희생자까기 심문한 다음 저자의 흥미진진한 시리즈 1탄은 막을 내리게 된다.

 

역자 후기를 읽고 나서, 공산주의자였다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벤 아아로노비치도 소설의 곳곳에서 약간의 시니컬한 면모를 보이게 된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되짚어 보니 이야기의 모티프를 오래된 잔혹인형극에서 출발시켰다고 추정되는 데, 고대설화와 런던이라는 지역적 특색을 가미하고 최후의 마법사 도제라는 주인공까지 등장시키느라 들인 공을 생각한다면 뜨거울 때, 달리는 드라마 스타일을 소설에도 제대로 적용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 출간된 나머지 소설들도 빨리 만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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