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로 맛보는 후룩후룩 이탈리아 역사 이케가미 슌이치 유럽사 시리즈
이케가미 슌이치 지음, 김경원 옮김, 김중석 그림 / 돌베개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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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에서 성자 셰프라 불리는 이가 방송에 출연한 연예인의 냉장고에서 찾아낸 재료로 자신의 주특기인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 보았다. 15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가지고, 역시 빈약한 재료로 그런 놀라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속도와 창의력에 감탄했다. 이케가미 슌이치 작가는 바로 그 파스타를 가지고 원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역사를 풀어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느끼한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즐겨 먹곤 하는데,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처럼 그렇게 다양한 파스타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파스타의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중공업이 발달한 북이탈리아에서는 연질밀을 이용한 생파스타가 그리고 농업이 발달한 남이탈리아에서는 예로부터 경질밀을 이용한 건조 파스타가 주류를 이뤘다고 한다. 사실 곡물을 이용해서 만든 파스타가 물을 만나면서 오늘날에 우리가 즐기는 진짜 파스타가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밀을 이용한 빵을 이탈리아 사람들은 먹었지만,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이어지는 랑고바르드 그리고 노르만 족들은 모두 육식 위주의 식단을 즐겨서 로마 제국 이래 곡류를 즐겨 섭취하던 식습관 자체가 바뀌었다고 한다.

 

중세 르네상스 시절에 이르러 비로소 다시 부활한 파스타는 여전히 평민의 음식이 아니었다. 저자는 특히 도시국가가 발전한 르네상스 시기 생산을 담당하던 농촌을 사실상 지배하던 특수한 상황에 주목한다. 계속해서 외세의 침략과 간섭을 받던 이탈리아는 1860년대 들어서 비로소 통일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이탈리아에서는 국가보다 자신의 지역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예전에 로마에서 수학하던 사촌형이 공부하던 수도원에 들렀을 때, 베네치아 출신 수사를 한 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인 자신이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 베네토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이탈리아에서 사랑받아온 마케로니/마카로니, 오늘날의 파스타는 대항해시대로 신대륙의 새로운 작물들이 유럽에 전파되면서 일대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특히 한때 관상용으로 재배되던 토마토와 고추는 미네스트라라고 불리던 파스타 요리의 세계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기에 이른다. 요즘은 케첩을 이용한 미국식 나폴리 파스타가 대세지만, 여전히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는 지중해에서 잡히는 앤초비를 비롯해서 프로슈토, 살라미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재료로 만든 파스타를 즐기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라자냐나 중세에는 잔치 때나 맛볼 수 있었다는 만두 파스타(라비올리)도 좋아하는데, 언제나 이탈리아에 다시 한 번 본고장 파스타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케가미 슌이치는 피자와 함께 전 세계인의 식탁을 점령하다시피 한 파스타의 위기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는다. 이탈리아 미래파를 대표하는 시인 필리포 마리네티는 파스타가 시대의 유행에 뒤쳐진 음식이자 부조리한 신앙이라고 혹평하면서, 영양 없는 파스타 대신 고기와 생선을 섭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엄마 파스타의 맛을 잊지 못해 몰래 먹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단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 역시 파스타의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금지하지 않은 것으로 아마 그도 엄마 파스타의 맛을 포기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모든 것이 빨리빨리란 구호 아래 속도전으로 진행되는 패스트푸드 시대에 손이 많이 가는 파스타야말로 어쩌면 슬로푸드의 대명사가 아닐까. 정치 권력과 함께 이탈리아의 정신 세계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교회가 선도하는 가부장 이데올로기는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주는 파스타야말로 최고의 음식이고, 지고의 선이라는 선전을 맡아온 모양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로 이제 엄마표 파스타는 점점 더 맛볼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어쩌면 엄마 파스타란 여성의 사회진출을 저지하고 가정에 구속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영양학적으로나 건강에도 좋은 파스타가 본고장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음식이 되는 과정을 추적한 이케가미 슌이치의 음식사적 접근이 즐기기에 부담 없는 파스타처럼 너무 진지해서 무겁지 않고, 가벼운 안티파스토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래 파스타는 혼자 먹는 음식이 아니라, 푸짐하게 장만해서 같이 나눠먹는 음식이었다고 하는데 공동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도 이만한 음식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은 파스타에게 부탁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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