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오픈하우스에서 출간된 존 리버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숨바꼭질>을 만났다. 소설의 시작에서부터 작가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그 유명한 소설 <지킬과 하이드>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영국 출신 벤 아아로노비치의 런던의 강들 시리즈를 읽고 나서 바로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이제 런던 그리고 에든버러를 오가는 영국 경찰 시리즈에 대한 낯선 느낌이 많이 지워졌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나중에 찾아보니 이언 랜킨의 <숨바꼭질>1990년에 나온 작품이란다. 확실히 모바일 인터넷 시대와는 거리가 느껴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야기는 에든버러의 슬럼 지대라고 할 수 있는 필뮤어 지역에서 한 명의 마약쟁이로 추정되는 로니라는 이름의 청년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죽음에서 무언가 석연치 않은 냄새를 맡은 우리의 주인공 존 리버스가 서사의 정면에 나서면서부터 이야기는 달리기 시작한다. 보나마나 로니 맥그래스라는 미래의 사진작가를 꿈꾸던 청년의 죽음은 단순한 마약 과다복용 때문이 아니란다. 게다가 사건 현장에 초점을 흐리기 위해, 조작한 흔적마저 보인다. 문제는 아무런 증거가 없고 존 리버스 경사의 정황 추정만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야 한다는 점이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해야 하나.

 

이언 랜킨은 바로 그 지점에서 트레이시라는 로니의 여자친구를 증인으로 투입시킨다. 아무런 단서도 없는 존 리버스에게 그녀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구세주 같이 다가왔다. 여기에서 살짝 존 리버스의 면모를 살펴보면, 영국 특수부대 출신의 존 리버스는 셜록 홈즈 같은 두뇌회전에 능한 형사라기 보다 무언가 우직하면서 범인으로 추정되는 피의자에게 몇 대 맞더라도 웃으면서 주먹을 날릴 것 같은 그런 이미지의 형사다. 그래도 아내와 이혼한 후에도 꾸준히 연애를 해보려는 노력을 하고, 음악과 독서를 즐기는 멋진 남자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책을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려고 샀다가 내친 김에 다 읽었다니 놀랍기까지 하다.

 

본격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뛰어든 존 리버스는 브라이언 홈스 경장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사건을 진행시켜 나간다. 하지만 새로 부임한 왓슨 총경은 리버스에게 무슨 캠페인 같은 귀찮은 일거리만 주려고 한다. 동시에 예의 캠페인을 후원하는 에든버러의 유력한 인사들과 식사 자리를 마련해서 무언가 커넥션을 만들어 주려고 하지만 리버스에겐 귀찮은 일일 따름이다. 그가 추적하는 사건은 오컬트를 숭배하는 찰리라는 대학생으로부터 몇몇 단서들을 확보하면서 점차 확대되기 시작된다. 소설의 처음에 죽은 로니가 남긴 하이드(hide-Hyde)란 말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리버스가 깨닫게 되면서 조금씩 들어나는 하이드 클럽의 정체에 조금씩 다가서기 시작한다.

 

영국에서 정말 잘 나가는 시리즈라고 하는데, 80년대부터 시작한 시리즈가 단편과 논픽션까지 해서 2012년까지 모두 18편까지 출간되었다고 한다. 존 리버스 시리즈는 오픈하우스에서 올해 여름부터 <매듭과 십자가>를 필두로 해서 번역되기 시작했는데 <숨바꼭질>을 보니 곧 세 번째 작품인 <이와 손톱>도 출간될 전망이다. 아직 시리즈의 초반부라 과연 사십대 존 리버스가 격동하는 경찰 세계의 수사 기법의 변화에 맞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바꾸어 나갈지 자못 궁금해지기도 했다. 계속해서 자신의 육감을 이용한 수사기법이 먹힐 지도 궁금하고, 하이드 클럽의 진짜 주인공을 밝히는데 사실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소설의 말미에 사직서를 썼는데 그게 수리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계속될 시리즈를 읽으면 어느 정도 파악이 되겠지만, 시리즈가 연달아 나오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벤 아아로노비치가 21세기의 런던의 최근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이언 랜킨이 그린 에든버러라는 소돔 같은 도시의 실상은 좀 다르게 다가왔다. 이미 사반세기 전에도, 그 나라의 청년들에게 역시 희망과 꿈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던가. 돈과 마약을 구하기 위해, 칼튼 힐을 헤매는 그들의 모습에서 묘한 기시감이 일었다. 한편, 소설을 통해 들어나는 기득권층의 추악한 쾌락 추구는 투견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나 같이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한 도시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들의 악취미가 얼마나 많은 폐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이언 랜킨 작가는 마치 한 편의 르포르타주를 작성하는 것처럼 그렇게 덤덤하게 기술해냈다. 런던에서 시작돼서 북부로까지 몰려온 부동산 폭등에 기인한 거주비 상승 이슈 역시 브라이언 홈스의 집구하기 전쟁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낼 수 있었다.

 

아날로그 수사 시절의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숨바꼭질>의 숨은 재미는 모든 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하이드 씨에 대한 추적이라기 보다 어쩌면, 모름지기 인생의 매순간은 즐겨야 한다는 그리고 골치 아픈 일에 대해서는 숨기지 않고 인상 찌푸리는 존 리버스의 심리변화가 아닐까 싶다. 10월 첫 번째 주말의 독서로 즐거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