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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내가 좋아하는 책은 예나 지금이나 술술 잘 읽히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는 내게는 좋은 책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가 있겠다. 사실 책을 펼쳐들었을 때, 이걸 어제 다 읽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완벽한 기우(杞憂)였다. 책은 딱 이틀 만에 다 읽었다. 바로 전에 김훈 선생의 단편모음집인 <강산무진>을 읽어서인지, 그가 즐겨 쓰는 표현들을 <칼의 노래>에서도 만날 적마다 아주 반가운 느낌이 들었었다.
<칼의 노래>는 우리 민족의 성웅(聖雄)으로 손꼽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작가는 일인칭 시점에서 철저하게 겨레의 영웅에 자신의 목소리를 덧입혀 씌웠다. 누가 작가이고, 누가 충무공인지. 책의 말머리에서 <칼의 노래>는 소설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지만, 여느 팩션이 그렇듯이 사실과 허구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의 차이에 불과했다.
왕조제 신분국가였던 조선의 그 근간부터 뿌리째 뒤흔들었던 7년 대전란(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시기에, 조선과 명나라를 정복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가지고 오사카성에 할거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꿈을 충무공은 남해 앞바다에서 철저하게 부숴 버렸다. 육전에서는 승승장구하던 왜군이었지만, 바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랑이 일던 바다에서 그들은 꼬리 내린 강아지의 꼴이었다.
하지만, 못난 조선 조정 중신들의 모함과 도원수 권율의 상소로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망했다는 죄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죄인 신분으로 의금부로 압송된다. 삭탈관직된 그의 뒤를 이어 통제사가 된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의 참패로 충무공이 애써 길러온 조선 수군을 전멸시킨다. 왜군의 승리로 충무공은 사지에서 가까스로 탈출한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시 한 번 적이 그의 목숨을 구해준 셈이다.
다시 조선 수군의 전권을 위임받은 충무공에게 남은 전선은 단 12척. 정유년(1597) 명과의 지루한 협상 끝에 왜군은 다시 전면적 침공을 개시한다. 제해권을 상실한 조선 수군은 왜군이 본국에서 부산과 울산 등지에 군사를 상륙시키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게다가 조정에서는 충무공이 지휘하는 수군에게 전혀 보급조차 하지 못하고, 조선 수군은 자력으로 둔전을 하고 먹을 군량을 조달해 가면서 육지와 바다에서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적과 상대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다다른다.
하지만, 충무공은 이 위기를 단 12척의 전선으로 명량해협, 울돌목의 지형을 이용해서 서해에 진출하려는 왜군을 격파하고 다시 한 번 남해 바다의 제해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다. 한편, 조선의 구원 요청에 개입을 시작한 명나라는 천자의 군대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조선에 주둔하면서 갖은 요구를 다하지만, 정작 전투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꺼린다. 이미 다 끝난 전쟁에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싸울 이유가 없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국전쟁 당시 서부전선을 맡았던 미군의 모습이 연상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충무공은 퇴각하는 적에게 강력한 타격을 가하기 위한 마지막 작전에 돌입한다.
아산의 현충사에 다녀오고, 민족의 영웅으로 우러름을 받는 충무공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착각이었다. 예전에 어디선가 젊은 날의 충무공의 모습을 그린 역사적 사실들을 읽었던 기억이 나지만 제대로 된 문헌이나 책을 통해서 충무공과 대면을 하게 된 것은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가 처음이었다. 그 흔해 빠진 드라마를 통해서도 난 당최 충무공을 만나지 못했었다.
김훈 선생은 <칼의 노래>를 통해 전설처럼 알려진 충무공의 무훈보다는 더욱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을 시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산 고향에 머물던 아들 면의 죽음을 들었을 때, 또 자신을 찾아온 여인과의 만남, 자신이 마땅히 보살펴야 하는 백성의 안위를 보전하지 못하는 번뇌, 그리고 장졸들이 굶어 죽어나가는 마당에도 자신은 계속해서 끼니를 해결해야만 했다는 고백에 이르기까지 일인칭 시점의 서술은 독자의 공감을 얻을 만하다. 다만, 역사적 사실들과 픽션이 혼재가 되면서 과연 이런 작가의 생각들이 사실이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따라붙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금치산자(禁治産者)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선조는 조선조 처음으로 방계 승통으로 왕위에 오른 태생적 한계로 말미암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신료와 장수를 믿지 못하는 고질병에 시달린다. 이런 선조의 성품은 미증유의 국난의 위기 가운데 각처에서 선전하는 휘하의 장수들에게 치명타였다. 진주대첩을 이끈 의병장 김덕령은 장살 당했고, 충무공 역시 모함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긴다. 군사들에게 보급조차 못 하는 무능한 조정은 감내라 배내라식으로 충무공을 닦달한다. 너절한 위정자들의 모습은 520년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출병한 명나라 군대는 한 술 더 떠서, 직접 나서서 적을 무찌르기보다는 전공을 의미하는 왜군의 수급까지 요구한다.
이런 그 실체를 갖춘 적과 보이지 않는 적들로 둘러싸인 충무공은 자신의 사지(死地)를 찾는다. 일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아마 충무공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살아남았더라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할 수는 없었을 거라는 가설에 충분히 공감이 갔다. 의심 많은 군주 선조는 마지막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고, 적탄에 의해 장렬하게 산화한 장군의 존재가 더 마음에 놓였을 것이다.
작가 김훈 선생은 나름대로 서술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인진 몰라도, 충무공의 미화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군율을 지키지 않는 군졸과 군관들을 베고, 화살받이로 내세운 조선백성들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무력함에 고뇌하며, 자신에게 전혀 협조하지 않는 명나라 수군총관 진린을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가 머무는 숙소에 걸려 있던 선조가 내린 면사첩과 환도 두 자루는 소설 내내 등장한다. 그것은 마치 선조 임금에 대한 충무공의 애증 어린 관계를 상징하면서, 조국의 강산을 침범한 외적의 무리에 대한 살기 어린 적의처럼 다가온다.
개인의 운명이 존망의 위기에 처한 나라의 그것과 오버랩이 되는 역사적 경험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아울러 역사적 사실과 팩션의 한계점이 어딘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유익한 독서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