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군대의 장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1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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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제위기로 시달리는 그리스가 위치한 발칸 반도는 고래로부터 잦은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 어쩌면 그런 점에서 반도국가인 우리나라와 유사한 운명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발칸 반도에 알바니아라는 조그만 나라가 있다. 처음으로 알바니아 출신 작가의 글을 읽었다. 이스마일 카다레, 정치적인 이유로 프랑스로 망명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의 데뷔작 <죽은 군대의 장군>이 오늘 이야기할 작품이다.

 

소설을 읽기 전에 지난 천년의 끝자락에 인종청소라는 끔찍한 학살로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던 코소보 사태 즈음에 한불작가교류프로그램으로 프랑스를 찾은 이청준 작가가 이스마일 카다레를 직접 만나 나눈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 인터뷰에서 카다레는 당시 알바니아가 속해 있던 발칸 반도를 휩쓸던 살육과 광기의 악순환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이야기했다. 카다레 작품 세계의 시원을 이루는 <죽은 군대의 장군>을 읽는데 예의 인터뷰가 도움이 되었다.

 

<죽은 군대의 장군>의 얼개는 비교적 간단하다. 소설에서는 알바니아-이탈리아 전쟁이라고 명백하게 밝히지 않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발칸 전역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추측이 가능한 사실이다. 전쟁 당시 알바니아에서 전사한 이탈리아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하라는 국방장관의 명령으로 장군(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름을 갖고 있지 않다)은 과거의 적국 알바니아를 찾는다. 그 과정에서 하나씩 드러나는 불편한 진실을 이스마일 카다레는 예리한 시선으로 추적한다.

 

장군이 조국을 떠나기 전부터 수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유가족들이 그를 찾는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아들을, 또 어떤 이들은 아버지를 잃고 비통해 하는 장면이 정말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 중에서도 고위 장교이자 백작 가문의 Z대령을 찾아 달라는 미모의 미망인의 부탁이 장군의 뇌리에 각인된다.

 

공산국가 알바니아를 철권으로 다스리던 독재자 엔베르 호자의 통치 아래 있던 미묘한 정치 상황이 살짝살짝 엿보인다. 전사자 유해 발굴을 위한 복잡하기 짝이 없는 서류 절차는 아무 것도 아니다. 시신 수습의 과정에서 장군과 그의 보좌역인 신부가 맞닥뜨리게 되는 알바니아 국민의 적대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적대감의 원류에는 바로 Z대령이 소속되어 있던 청색 대대, 보복 부대의 만행이 이유였다는 점이다.

 

동맹국이었던 독일과는 달리 전쟁에서 그다지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이탈리아군은 발칸의 소국(小國) 알바니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총을 손에 들고 싸운다는 알바니아 유격대에 맞서 이탈리아군은 패주하고 탈영해서 농촌으로 숨어 들어가 촌락의 머슴으로 살았다고 한다. 어느 무명 병사의 일기장을 통해 그런 생생한 사실을 알게 된 장군은 그것으로 스스로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수만 명에 달하는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장군은 스스로를 전쟁터에서 그렇게 스러져간 죽은 병사들의 군대 지휘관이라는 환영에 빠져든다. 명예롭게 조국을 위해 죽은 것으로 알려진 이들이 실제로는 갈봇집을 드나들고, 적국 농가의 머슴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또 때로는 보복이라는 이름으로 잔학 행위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괴상망측한 사실이 장군이 그동안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신념과 가치를 가차 없이 공격한다. 수치화되고 통계화된 죽음의 기록은 비극 그 자체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죽은 군대의 장군>으로 20년 전 그의 조국 알바니아에서 벌어진 비극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했다. 그가 이 소설을 통해 제시하는 반전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명확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전쟁의 포화 속으로 이렇게 멋지고 용감한 젊은이들을 몰아넣었단 말인가! 저자가 인터뷰에서 스위스와 그리스를 섞어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는 알바니아의 산하를 붉은 피로 물들인 전쟁의 폐해는 그 땅을 사는 이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아 있노라고 카다레는 증언한다.

 

알바니아인들은 거칠고 후진한 민족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요람에 총을 갖다 두지요. 이 무기가 삶의 일부가 되도록 말입니다.” (41)

 

논리적 판단보다는 관습과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알바니아인들의 기질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해양민족에게 바다는 진출의 상징이었겠지만, 산악민족인 알바니아인들에게 바다는 침략자들의 통로였다. 그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외세에 맞서 단신으로 총질을 해대는 장면은 일견 무모해 보인다. 하지만, 끝없는 전쟁과 살육이 그들에겐 어쩔 수 없는 일상이었다는 카다레의 글에 자연스레 수긍이 갔다.

 

조국을 떠나 멀리 타국에서 문학 활동을 하는 노망명객의 데뷔작을 수십 년이 지나서야 만나게 됐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문학 오딧세이는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만남으로 시작되기 마련인가 보다. 국내에 출간된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을 하나씩 읽어보고 싶어졌다. 다음에 읽을 책은 <꿈의 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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