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은 속삭인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지난 가을에 타티나아 드 로즈네의 <사라의 열쇠>를 읽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그녀의 <벽은 속삭인다>를 읽으면서 나중에 나왔지만 작가의 이름을 세계에 (책과 영화로) 널린 <사라의 열쇠>를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은 속삭인다>는 드 로즈네의 대표작을 위한 전주곡이라고 호칭하고 싶은 마음이다.

 

소설의 주인공 파스칼린 말롱은 매력적인 남편 프레데릭과의 15년에 걸친 결혼생활을 최근에 끝내고 홀로서기에 나선 커리어 우먼이다. 프레데릭은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업에 종사하는 파스칼린에게 상상력이 없다고 핀잔을 주고 했단다. , 컴퓨터 프로그래밍인 상상력 없이 가능한 일이었던가? 일종의 편견의 벽에 마주쳤다.

 

나이 마흔 살의 이혼녀는 생후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딸 엘레나를 잃고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요즘처럼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정 원한다면 불임이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도 아닌데라는 상념이 따라 붙는다. 드 로즈네는 아이 잃은 엄마 파스칼린의 심리 상태를 여성 작가답게 예리하면서도 모성애 넘치는 관점으로 독자에게 들려준다.

 

문제는 파스칼린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둥지를 튼 아파트에서 오래 전에 끔찍한 살인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집에서 도대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좋지 않은 컨디션 때문에 고생하던 주인공은 그 사실을 알아내고 연쇄살인범에게 희생된 꽃 같은 아가씨들의 운명에 자신의 삶을 대입하기 시작한다. 주변인들이 초반에 그녀에게 정신과 의사를 찾아 가라고 했던 것처럼 어렸을 적 트라우마가 존재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반응은 정상적이지 않다. 아마도 신혼 시절에 딸 엘레나를 잃은 상실감의 발로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연쇄살인범에게 희생당한 아가씨들과 자신이 잃은 아이를 동일선상에 두는 파스칼린의 과도한 피해의식이 책을 읽는 내내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더 당혹스러웠던 점은 어느 순간, <사라의 열쇠>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하는 1942716일의 벨디브 유대인 일제검거사건이 튀어 나왔다는 점이다. <사라의 열쇠>에서는 워낙 중요한 사건으로 다뤄지기 때문에 이해할 수가 있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왜 그 사건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벽은 속삭인다><사라의 열쇠>의 확장을 위한 습작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다 들 정도였다.

 

과거의 잊고 싶은 기억이 공간에 스며 들 수 있다는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불안정한 심리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타티아나 드 로즈네의 설정에는 한편 수긍이 가기도 했다.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을 몰랐다면 그냥 모르고 살 수 있겠지만, 알고 난 뒤에 혼자 집에 있을 때 오싹한 살인사건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또한 강심장의 소유자이리라.

 

내가 사랑했던 사랑의 행복이 나에게는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다가올 수 있다는 열린 결말이 무척이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과연 파스칼린이 프레데릭과 새로운 말롱 부인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너무 궁금했다. 한 번 만난 작가와의 재회는 짧았지만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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