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 세계 역사를 바꾼 스탈린그라드 전투 590일의 기록 서해역사책방 7
안토니 비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 한 가지.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극적 전환점이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히틀러의 제3제국은 서유럽을 침공한 미영 연합군 때문에 전쟁에 진 것이 아니라, 동쪽으로부터 진격해 온 붉은 군대에 의해 결정타를 얻어맞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전국(戰局)에서 파죽지세의 독일군의 예봉이 꺾인 것일까?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의 저자 안토니 비버는 1942년 코카서스의 유전지대와 소련의 중앙을 궤멸시키겠다는 청색작전(오퍼레이션 블라우)으로 시작된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제6군의 참패를 그 시발점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이 책의 시발점을 히틀러의 1941년 소련 침공에 둔다. 유럽 대륙에서 공산주의와 도저히 양립할 수 없었던 국가사회주의(나치즘)의 기수 히틀러는 프랑스, 베넬룩스, 스칸디나비아 그리고 발칸반도에서 거둔 기적적인 성공을 바탕으로 300백만에 달하는 독일군과 헝가리, 루마니아 추축군까지 합하면 400백만 명의 병력으로 소련을 상대로 한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었다.

 

히틀러와 같은 과였던 희대의 독재자 스탈린은 점증하는 독일군의 침공 계획에 대한 첩보를 무시하고, 히틀러가 독소불가침 조약을 깨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그런 오판과 1930년대 군부에 대대적인 숙청으로 다수의 일선 지휘관을 잃은 붉은 군대 전쟁 초기 우수한 화기와 훈련으로 무장한 독일군에 일방적인 패배를 거듭했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대로, 독일은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를 불과 몇 킬로미터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 주코프가 이끄는 소련군의 매서운 반격과 동장군의 엄습으로 적도(赤都) 공략에 실패한다.

 

1942년 여름, 이번에는 주공(主攻)의 방향을 코카서스 유전지대와 남부 공업지대로 눈을 돌린 히틀러는 파울루스 상장이 이끄는 정예 제6군과 호트 대장의 제4기갑군단을 주축으로 한 대병력으로 스탈린그라드 공략에 나선다. 사실 작전 초기에 소련 수반의 이름을 딴 볼가 강변의 도시는 그다지 매력적인 전략 포인트가 아니었다. 폴란드 침공 이래, 전격전으로 단련된 독일 기갑부대와 야전사령관들에게 엄청난 병력 소모를 요구하는 시가전만큼은 피하고 싶은 주제였다. 독일 공군의 위력적인 폭격 아래, 폐허가 된 스탈린그라드 시내가 훗날 독일 제6군의 발목을 잡게 될 줄은 스탈린그라드 함락을 목전에 둔 독일군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590일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그리면서 안토니 비버는 초기에 소련을 배신하고 독일군 편에 붙은 히위에 대해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려준다. 소련 첩보기관이었던 KGB의 전신에 해당하는 베리야가 이끄는 NKVD는 적군만큼이나 아군에게 피해를 준 애국전쟁의 반역자 히위들 처단에 앞장섰다. 사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독일군에게 투항한 소련 병사들에게 어떤 선택지도 만만하지 않았다. 주코프의 천왕성 작전으로 스탈린그라드가 역포위된 후, 히위들이 발악적으로 싸운 이유가 절로 이해가 됐다. 다시 소련군에게 투항한다고 해도 그들이 돌아갈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1942년 11월 19일 소련의 파울루스가 이끄는 독일 제6군을 파멸시키려는 천왕성 작전이 시작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독일군에게는 병력을 온전하게 유지한 채, 전역을 탈출해서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소련 첩보부에서는 이미 독일 전선의 좌측을 맡고 있는 루마니아 군대의 취약점과 낮은 충성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주공의 방향을 북쪽에 집중시켰다.소련의 거대한 포위망이 완성되면서, 여름 동안 스탈린그라드 시내를 실제적으로 장악하고 있던 독일군은 거꾸로 완전 포위가 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공군 사령관이자 제국원수 괴링은 공중 보급으로 포위된 독일군에게 충분한 식량과 탄약을 보급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현실은 최고지도자의 낙관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한 해 전의 러시아의 겨울이 얼마나 파국적이었는지 절실하게 체험했음에도, 독일 전쟁지도부는 1942년 겨울에도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부상자를 위한 의약품을 비롯한 식량과 탄약의 절대적인 부족, 물샐틈없는 포위로 지원군으로 나선 폰 만슈타인의 공격마저 차단시킨 붉은 군대는 한 때 독일군 최정예 부대였던 제6군이 포위된 스탈린그라드를 그야말로 지옥으로 만들었다. 최후사수를 외치며 병사들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보급품 수송은 외면한 히틀러의 구원을 기다리며, 독일의 젊은이들은 야만적인 전쟁터에서 그렇게 목숨을 잃어나갔다.

 

저자 안토니 비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지휘한 전쟁지도부나 장군들의 이야기로만 서술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지옥도가 재현된 스탈린그라드 시내에서 적과 살을 맞대고 싸운 일선의 병사들이 안락한 조국의 가정에 보낸 애절한 편지 사연으로 참혹한 전쟁의 실상에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히틀러의 잇단 성공에 현혹되어, 조국을 파멸로 이끈 지도자에게 맹목적 충성을 다하던 독일 국민과 병사들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처절한 패배와 포위된 독일군을 외면해 버린 지도자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 과정도 유감없이 잡아냈다. 아울러 병사들에게는 마지막까지 항복하지 말고 싸우라고 한 장성들이 자신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적군에 투항할 때를 대비해서 다양한 짐을 챙기는 장면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심지어 일선의 병사들은 당장 허기를 채울 빵 한 조각이 없어 굶주리는 마당에 버터를 두껍게 바른 빵을 개에게 먹이는 장면에서는 분노마저 일었다.

 

스탈린그라드 전장의 주요 인물 중의 하나였던 독일의 상승장군 에리히 폰 만슈타인에 대한 작가의 평가도 인상적이었다. 독재자 히틀러에게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프로이센 출신의 원수 만슈타인은 개인의 보신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독재자의 명령에 일방적으로 복종했다. 군인으로서 군국주의 국가였던 프로이센의 전통을 따른 결정이었다면 정말 할 말이 없지만, 의미 없이 죽어간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히틀러의 어이없는 명령을 무시할 수도 있는 권위가 있었지만, 만슈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 제6군 파멸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그래도 만슈타인은 스탈린그라드의 대승에 힘입어 곧바로 역공에 나선 붉은 군대를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분쇄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안토니 비버는 스탈린그라드 전역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하면서 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재구성한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에서 나온 그대로, 소련군은 자국 병사의 희생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제대로 무장도 못한 병사들을 스탈린그라드 시내로 쓸어 넣었다. 영화에서 소총도 없어서, 전우가 죽으면 그 죽은 병사의 소총을 가지고 전장으로 달려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설마했는데 그게 사실일 줄이야. NKVD 소속의 코미사르는 적군과 맞서 싸우기보다 내부의 반역자를 색출하는데 혈안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가 있었다. 독일은 포로가 된 독일군에 대한 소련군의 만행을 좋은 선전 자료로 이용했는데, 그에 못지않은 자신들의 잔학행위는 철저하게 숨겼다. 선전상 괴벨스는 스탈린그라드 참패를 철저하게 숨기고 온 국민을 총력전에 내모는데 매진했노라고 안토니 비버는 증언한다.

 

참혹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 590일은 히틀러의 제3제국 파멸의 전주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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