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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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예술애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단계는 다음과 같지 않을까 싶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학,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음악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술. 오래전에 파리에 들러서 그 수많은 뮤지엄들을 돌면서 파리지앵이 부러웠던 건 우리로서는 오리지널의 아우라를 직접 접하기 힘든 명작들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2012년 대한민국에 사는 보통 사람이 다빈치의 <모나 리자>나 티에폴로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을 실물로 보기란 정말 난망하니까 말이다.

 

조르주 페렉 선집의 1탄으로 막 세상의 빛을 본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을 받는 순간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의 온갖 아이콘과 도상학이 담겨 있는 미술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그동안 말로만 듣던 조르주 페렉의 작품과도 처음 만나는 기회라 더 바랄 게 없었다. 금상첨화로 두께도 얇아 보여서 선택도 쉬웠다. 한편으로는 이 “천재 작가”가 어떻게 자신의 문학 세계에 미술 장르를 접목시킬지 궁금했다.

 

조르주 페렉은 우선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에 다음의 세 명의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어느 미술애호가”에 해당하는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양조업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 헤르만 라프케. 그리고 그의 예술적 패트론을 받아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이라는 걸작을 탄생시킨 화가 하인리히 퀴르츠. 마지막으로 퀴르츠의 작품을 학술적으로 분석하고 세상에 알린 레스터 K. 노박이다. 이들의 서로 상호보완적인 작동의 법칙에 따라 소설은 전진한다.

 

첫 번째 세계대전에 앞서 미국의 피츠버그에서 열린 대규모 미술 전시회를 통해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퀴르츠의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은 학술적으로 그리고 대중적인 선풍을 끌기 시작한다. 바로 이 사건을 중심으로 작가는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낸다. 기존에 라프케가 수차례의 유럽방문을 통해 수집한 그림들의 총체를 퀴르츠는 화폭에 담아냈다. 그가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이라는 그림에 담아낸 세밀화 덕분에 도시의 광학기구 상인들은 밀려드는 주문에 환호성을 질러야 했다. 이 무명의 작가는 단순하게 기존의 그림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한 변형(variation)도 마다하지 않았다. 회화에 숨겨진 도상학의 비밀을 찾아내는 것만큼 전시회를 찾은 대중들은 숱한 시간을 이 그림 앞에서 보냈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위대한 컬렉터였던 라프케가 죽고 나서 그가 수집한 그림들이 경매에 붙여졌다. 니콜라 푸생, 잔바티스타 티에폴로, 프랑수아 부셰 그리고 한스 홀바인 같이 저명한 화가는 물론이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화가의 이름 앞에 독자는 어쩔 수 없이 주눅이 든다. 이 기묘한 내러티브의 달인은 그렇게 주눅 든 독자의 어쭙잖은 예술 지식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렇게 경매에 나온 그림과 엄청난 호가의 나열 끝에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한 방은 가히 절묘했다!!!

 

근대 자본주의가 틀을 잡기 전까지만 해도 예술품은 창조자(예술가)가 자신의 후원자에게 헌정하는 방식이 대세였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예술품은 하나의 투자 대상이 되었다. 생전에 꼴랑 단 한 작품을 팔았던 반 고흐의 그림들이 지금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사실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페렉은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에서 그 예술 작품이 가진 가치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경매장 호가 기준으로 평가되는 현실을 자신의 방식으로 비판한다. 소설에서 라프케가 정말 좋아했고, 자신이 궁극적으로 그림을 수집하게 된 계기가 된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은 작가의 예술에 대한 사고를 집약해주는 장면이다.

 

하인리히 퀴르츠가 기존의 예술 작품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과정에 대한 예술적 고찰은 조르주 페렉이 이 작품을 창조했는가에 대한 자기고백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가와 작품에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이라는 작품을 뻔뻔하게 끼워 넣는다. 작가가 나열하는 수많은 오리지널 예술 작품은 픽션과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 그렇게 새롭게 창조된 작품의 영롱한 “아우라”는 작품의 끄트머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극적인 반전으로 독자를 몰고 간다. 기계적 복제가 오리지널의 아우라를 위협하는 시대에 작가는 천재적 재능과 기묘하면서도 조마조마한 매력으로 독자를 희롱한다.

 

체계적으로 예술의 도상학과 아이콘을 배우지 않은 무지한 아마추어 미술애호가에게 이번에 새로 선보인 조르주 페렉의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은 유쾌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오르세에서 그리고 벨베데레에서 마주한 오리지널의 감흥이 그동안 잠자코 있던 역마살을 헤집는다. 페렉과의 첫 만남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고, 앞으로 나올 조르주 페렉 선집에 대한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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