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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Kingsman: The Golden Circle (킹스맨: 골든 서클) (2017)(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20th Century Fox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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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에그시가 돌아왔다. 무엇보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그 유명한 대사를 남긴 콜린 퍼스가 어떻게 다시 살아 돌아오게 되는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전편에서 그토록 잔혹한 장면들이 두 번째 인스톨에서 얼마나 완화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에이전트 갤러헤드라는 이름으로 스웨덴 공주님과 심쿵한 연애사를 이어가던 에그시(태런 에저튼 역)는 킹스맨 지원자였다가 탈락한 찰리(에드워드 홀크로프트 분)의 공격으로 죽을 뻔한 위기를 맡게 된다. 역시 처음부터 신나는 액션 씬으로 시작하는구먼. 문제는 에그시의 차량에 남긴 찰리의 의수가 킹스맨 본부에 침투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영속을 가능하게 했던 컴퓨터칩과 살아 남은 기계팔에 대한 시네마틱 오마쥬라고나 할까. 어쨌든 해킹에 성공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당들은 런던의 킹스맨 본부와 에그시가 머물고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안전가옥을 단박에 폭파시켜 버린다. 누구지? 이런 실력을 가지고 있는 그룹이.

 

카메라 앵글은 이 지점에서 정글 모처에 자리 잡은 1950년대 미국식 생활양식을 재현한 포피 아담스(줄리 무어 분)의 아지트로 관객을 안내한다. 그리고 마약 카르텔의 무시무시한 두목 포피는 새로운 골든 써클 멤버 가입에 앞서 입후보자에게 조직을 배신한 조직원을 고기분쇄기에 넣어 갈라는 명령을 내린다. 흠 역시 그렇군.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포피 씨는 첨단 로봇개를 등장시키는데, 아마 영화 후반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의수를 잃은 찰리는 두목에게 더욱 강력하고 멋진 새로운 의수를 선물받는다. 그렇게 장착한 팔로 볼링공을 던져 볼링 레인을 쳐부수는 화끈한 장면이 뛰따른다.

 

한편 영국내 모든 킹스맨 조직을 잃은 에그시와 마법사 멀린은(랜슬롯이니 하는 아서 왕 시절의 원탁기사들이 에이전트로 등장하면 장면에서 여전히 우리는 신화시대에 살고 있구나 싶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을 때 프로토콜을 가동시켜, 미국내 친척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스테이츠먼 그룹과 접촉을 시도한다. 킹스맨의 사촌격에 해당하는 미국 스테이츠먼이 켄터키에서 위스키 공장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놀랍지도 않다. 윈체스터 장총을 만드는 회사가 아닌 게 어디냐 그래.

마약장수 포피 씨는 마약 합법화를 미국 행정부 대통령에게 요구하며,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이런 저런 이유로 마약을 사용하던 사람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에 나선다. 그녀의 희한한 논리는 왜 마약보다 더 무서운 커피, 담배, 총기규제는 하지 않으면서 마약만큼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합법화시키지 않느냐는 것이다. 마약산업이 합법화된다면, 자신도 저명한 기업가로 사람들에게 추앙과 존경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설탕을 집어 달라는 찰리에게, 설탕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아냐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마약이 합법화돼서 가격이 낮아지게 되면, 자신의 프라핏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그리고 마약의 유통이 엄격하게 통제되기 때문에 불법시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 걸까. 어쨌거나 우리 스웨덴 공주님마저 마약에 중독되어 실실 웃거나 푸른 발진이 생기고 요상한 춤을 추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스테이츠먼의 유능한 요원 테킬라 씨도 오락용 마약을 하다가 감염되서 냉동인간이 되지 않았던가. 에그시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는 애인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포피 씨가 극비리에 제조 중인 해독제를 반드시 구해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자, 처음에 질문을 던졌던 해리 하트는 어떻게 컴백시킬 것인가. 그는 분명 전편에서 미스터 밸런타인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죽지 않았던가. 바로 그 지점에서 미국 스테이츠먼들은 알파젤이라는 프로그램을 동원해서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설정을 내놓았다. 좀 황당하긴 했지만, 비슷한 케이스로 해리의 총에 맞은 에이전트 위스키를 살려 내기도 했으니 인정해 주도록 하자. 다만 알파젤 치료를 받은 사람은 퇴행성 기억상실증을 겪기도 한다고 하는데 해리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젊은 시절 군에 들어가기 전의 꿈이었던 나비 전문가(lepidopterist)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어려운 영어단어를 다 만나게 되다니. 놀랍군.

 

어쨌든 해리의 에이전트 본능을 깨워 스테이츠먼의 에이전트 위스키 씨와 더불어 해독제를 구하기 위해 흰눈으로 덮인 몽블랑 설산에 올라 한바탕 액션을 시전해 준다. 아직 완벽하게 예전의 에이전트 상태로 복귀하지 못한 해리는 나비 환각에 시달리면서 에이전트 위스키가 적들과 한편이라고 판단하고 그에게 총알을 먹인다. 기겁한 에그시는 알파젤을 사용해서 위스키 요원을 치료한 뒤, 에이전트 진저(할리 베리 분)에게 뒷일을 맡기고 정글에 은신한 포피 씨를 처리하기 위해 떠난다.

 

개인적으로 오리지널을 능가하는 위대한 속편은 <터미네이터 2>가 유일하다고 생각하는데, 킹스맨 시리즈 역시 원전을 뛰어 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약의 합법화라는 현실세계에서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을 내걸고 투쟁에 나선 악당 포피 씨도 그렇지만(하긴 악당들이 원하는 게 언제 합리적이었던가) 군데군데 보이는 영화상의 허점들이 아무래도 전편의 감동 혹은 흥행을 이어지지 못하게 만들었던 게 아닌가. 전편에서 해리와 에그시 콤비가 무언가 케미를 만들어냈다면, 속편에서는 그런 점이 없어서 아쉬웠다. 차라리 영국의 킹스맨 에그시와 미국의 스테이츠먼 위스키 씨가 무언가 한 번 해봤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조금은 빤한 설정이 맥을 빠지게 만들었다.

미국 대통령이 마약에 감염된 자국민들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참에 약쟁이들을 모두 치워 버리겠다는 무모한 계획을 강행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긴 지금 대통령이 트럼프라는 점을 고려했던 걸까. 현실세계도 영화와 별반 다른 바가 없구나. 포피 씨가 인질로 잡고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노래를 하게 만든 엘튼 존 경의 발연기도 상콤했다. 그리고 보니 나도 문득 그가 부른 “크로커다일 록”이 들어보고 싶어졌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자, 이제 스웨덴 국왕의 후계자가 된 에그시가 다음 시리즈에서는 바이킹의 후예가 되어 무언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액션을 보여 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럼 광전사 베르세르크 에그시로 변신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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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1-01-08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당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였습니다ㅎ
 
플루토에서 아침을 : 일반판
닐 조단 감독, 킬리언 머피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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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일자 : 2017년 12월 1일 ~ 2일

 

패트릭 맥케이브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킬리언 머피의 주연의 영화 <플루토에서 아침을>을 봤다. 소설도 출간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책은 출간되지 않았다. 그래도 전작 <푸줏간 소년>은 나와 있어서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면서 영화도 보고 있는 중이다. 책이나 영화 모두 시작했지만 미처 끝내지는 못했다. 영화와 소설의 전개가 상당히 비슷해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더라.

 

아일랜드 출신 퍼트리샤 “키튼” 브래던이 소설/영화의 주인공이다. 그의 생부는 교구를 책임진 리암 신부(리암 니슨 분)로 사제 관저에서 일하던 아일리 버긴과 사이에서 키튼을 낳게 된다. 거 참 출발부터 거창하기 짝이 없구만. 우리의 관찰자 귀여운 울새 녀석들이 전달해 주는 정보만으로도 충분하다고나 할까. 출생의 비밀을 한가득 안고 태어난 키튼은 위탁가정에 보내져, 어려서부터 트랜스젠더의 끼를 활짝 펼쳐 보이기 시작한다. 의붓 누나의 옷을 입고 다니는 것으로 바를 운영하는 양모를 놀래키는 건 기본이었지 아마. 작문 수업 시간에는 자신의 출생에 대한 원색적인 글로 선생님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호모라는 이유 때문에 그리고 같이 어울려 다니던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찰리, 어윈 그리고 로렌스 패거리는 댄스 클럽에서 퇴짜를 맞고 오토바이 폭주족들과 함께 어울리며 플루토에서 아침식사를 꿈꾸기도 한다. 태생적으로 사랑이 부족했던 키튼 양은 그놈의 진실한 사랑(true love)을 찾아서 그리고 유령 아가씨(phantom lady)인 어머니 아일리를 찾아 잠들지 않는 도시 런던으로 떠난다. 그 때 글램 록 밴드의 리더 빌리 햇처 야릇한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데, 문제는 그가 아일랜드 공화군(IRA)의 일원이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거처가 IRA 전사들의 무기 은닉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키튼은 절벽 밑으로 숨겨둔 총들을 모두 던져 버린다. 그 때 등장해서 키튼을 총으로 쏘고 파묻겠다고 협박한 IRA 전사 중의 한 명이 <푸줏간 소년>이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했다. 수백년된 그놈의 지긋지긋한 종교분쟁 이슈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친구 로렌스가 IRA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폭탄 테러로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찌어찌해서 런던까지 흘러 들어간 키튼은 팬텀 레이디를 찾는데 여념이 없다. 키튼이 비가 내리는 잉글랜드 아니 대영제국을 대표하는 도시 런던을 누비는 장면은 처량하기만 하다. 탈바가지를 쓴 알바를 뛰기도 하고, 거리의 여인이 되어 변태(브라이언 페리 분)를 만나 교살당할 뻔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샤넬 넘버 5로 위기를 모면한 키튼은 그럭저럭 도시에 적응한 삶을 살게 된다. 마술사 버티 본(스테판 리 분)을 만나 그의 조수로 두 번째로 연예계에 종사하기도 하면서, 그놈의 진실한 타령이 이어지기도 한다. 버티가 키튼에게 사랑을 고백하자, 안타깝게도 자신은 여자가 아니라고 키튼은 버티에게 고백한다. 버티는 그것도 이미 알고 있다고 했던가. 마릴린 먼로가 등장하는 그 유명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Nobody's perfect."라는 대사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아무도 완벽하진 않지.

 


그렇게 달달하게 진행될 것 같았던 이야기는 느닷없이 고향 찰리가 등장하고, 점점 IRA 활동에 개입하게 되는 어윈이 결국 총에 맞아 죽는 비극이 벌어진다. 기억을 더듬다 보니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전개의 순서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어윈의 아이를 지우기 위해 낙태시술소에 갔던 찰리는 결국 발걸음을 돌린다. 영국 병사들이 자주 들르는 댄스홀에 들렀다가 폭탄 테러라는 날벼락을 맞고 영국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두들겨 맞으면서도 헛소리를 늘어 놓는 장면은 정말 최고였다. 경찰들을 가지고 놀다시피 하던 키튼의 구금 기간이 끝나고 결국 그가 무고하다는 걸 알게 된 경찰들은, 갈 곳 없는 키튼이 계속해서 유치장 신세를 지겠다고 하자, 끌어내서 거리에 내동댕이 친다. 그래도 아주 인정머리가 없는 경찰은 아니었는지 대머리 경찰 아저씨는 키튼에게 갱생한 거리의 여인들과 함께 일할 새로운 일자리(핍쇼걸)를 소개해 준다. 아 정겨워라.

 


비교적 조용한 나날들을 보내던 키튼에게 리암 신부가 찾아와, 마침내 팬텀 레이디의 소재를 알려 준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파드레 리암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이 영화에서 손을 꼽고 싶은 장면 중의 하나였다. 소설에서는 모두 56개의 챕터로 구성이 되어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아마 36개로 축약되어 있었지 싶다. 소설의 구성을 충실히 따르는 면면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텔레폰 레이디를 변장해서 자신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어머니 아일리는 만난 키튼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조용히 떠난다. 어윈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제 관저에 머물고 있던 찰리를 찾은 키튼은 누군가 던진 화염병에 사제 관저가 전소되면서 죽을 뻔한 위기를 맞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우연히 팬텀 레이디와 조우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 소설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북디파지토리에 주문했다가는 해를 넘겨서 책을 받을 것 같았다. 지난 달에 주문한 앨런 홀링허스트의 <라인 오브 뷰티>가 마침내 오늘 도착했다. 아주 두툼했다. 그래서 국내에서 애정하는 하드커버 버전으로 중고책을 주문했고 어제 받았다. 빠르기도 하여라. 언제 다 읽게 될 진 모르겠지만, 거북이 속도로 읽어볼 계획이다. 아무래도 책하고 소설은 또 다른 느낌이겠지.

 

출생의 비밀로부터 시작해서 트랜스젠더로서의 삶, 영국인이 아닌 아일랜드 인으로 뿌리도 없는 본토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키튼의 처지가 왜 그리도 안쓰러워 보이던지. 하도 들어서 이제는 진부해져 버린 ‘트루 러브’(아, 마돈나의 그 시절 노래가 생각나는구나, 쏘리 트루 러브가 아니라 트루 블루였다!) 타령까지 이어지는 엄마 찾아 삼만리 스토리라는 신파에 쓸려 다니다가, 느닷없이 해묵은 갈등인 IRA라는 정치적 이슈까지 넘실대는 <플루토에서 아침을>은 정말 매력적인 영화였다.

 

이제 슬슬 원작 소설을 아주 조금씩 야금야금 그렇게 읽어 보자. 완독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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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일자 및 장소 : 2017년 6월 10일 토요일 부천 롯데시네마 15:50


우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Marvel Cinematic Universe, MCU)에 못지않은 히어로 라인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DC코믹스는 라이벌에게 일방적으로 얻어 터지고 있는 걸까. 마블이 “따로 또 같이”라는 전략으로 개별 히어로들은 물론이고, 어벤저스 그리고 인피티니 워라는 히어로들이 모두 총출동하는 개봉 라인업들만 보더라도 앞으로는 MCU 영화만 보고 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인데 말이다. 물론 DC코믹스에서도 저스티스 리그라는 인피니티 워에 필적할 만한 필모그래피가 대기 중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영화팬들에게는 마블 파워가 압도적이다. 작년에 기대주였던 <수어사이드 스쿼드>(재촬영하는 수난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흥행은 대실패였다)에서 살아 남은 캐릭이 마고 로비가 연기한 할리 퀸 하나였다면 저스티스 리그는 마치 <원더우먼>의 부활을 위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난 저스티스 리그를 보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갤 가돗이 주연을 맡은 <원더우먼>이 개봉했다. 그 전에 탐 크루즈 주연의 <머미>를 보고 대실망해서 <원더우먼>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서 그런진 몰라도 상대적으로 훨씬 더 재밌게 느껴졌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히어로 물이 현실세계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판타지의 영화화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좀 엉뚱하게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시작한다. 백년 전 모습 그대로 하나도 늙지 않은 커리어우먼 스타일의 원더우먼이 한 장의 사진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배달트럭에 웨인 엔터테인먼트가 적혀 있는 점을 주목하라. 배트맨의 극중 이름이 브루스 웨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까 원더우먼과 스파이 스티브 트레버(크리스 파인 분) 그리고 다른 멤버들과 찍은 오리지널 사진이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원더우먼 탄생의 비화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데마스키라라는 남자들은 하나도 없는 여인들의 아마존 왕국이 존재한다. 제우스 신의 아들로 인간계에 전쟁을 배달한 전쟁의 신 애리스(아레스)에 대항하기 위해 오늘도 안타이오피(로빈 라이트 분)의 지휘 아래 아마존 여전사들은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다. 꼬맹이 다이애나 프린스(갤 가돗 분)도 곁에서 언니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여전사의 꿈을 키워간다. 그들의 평화는 독일군에게 쫓기는 미국 출신 파일럿 스티브 트레버가 등장하면서 깨진다.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독일군들은 데마스키라 해변에 상륙해서 아마존 여전사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일단의 독일군들을 아마존 여전사들은 칼과 활 그리고 창을 동원해서 제압하는데 성공한다. 이 와중에 아마존 최고의 여전사 안타이오피가 다이애나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는다. 포레스트 검프에서 그 순수한 제니를 연기했던 로빈 라이트가 나이가 들어 이렇게 강렬하면서도 짧은 연기력을 선사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갓킬러’라는 여왕 히폴리타가 보관 중이던 검과 방패 그리고 진실의 밧줄로 무장한 다이애나는 자신이 스파이라는 사실을 고백한 트레버를 도와 세상에 나가 전쟁의 신 애리스를 찾아내 끝장내면 전쟁은 멈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싸울 수가 없는 약한 이들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했던가. 레바논 시민들에 대한 그리고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옹호한 현실세계에서 시오니스트 갤 가돗의 이미지와 영화 속의 이미지가 너무 달라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전쟁이 한창 중이던 영국 런던에 등장한 여전사 다이애나는 온통 남성들로 구성된 전쟁위원회에 나타나 트레버가 비밀리에 입수한 닥터 포이즌의 신종 독가스 무기 개발계획을 알리지만, 휴전협정을 코 앞에 둔 장성들은 독일군을 도발시킬 만한 어떤 종류의 공격도 허가하지 않으려고 한다. 당시 서부전선에서는 수년간 교착화된 참호전으로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the war to stop all wars)라고 불린 1차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아마도 1918년 정도가 아닐까 싶다. 트레버의 보고를 들은 다이애나는 독일군 참모장 에리히 폰 루덴도르프가 바로 전쟁의 신 애리스의 화신이라는 단정짓고, 그를 제압하고 전쟁이 끝내기 위해 바로 전선으로 달려간다. 물론 트레버와 다이애나 만으로 적군을 제압하기란 역부족이기 때문에 도중에 위장전문가, 저격수 그리고 인디언 치프 등을 우군으로 규합한다. 영웅전설의 시작은 언제나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이 주어지고, 그 미션을 이루기 위한 동료들의 모집 그리고 대장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영화 <원더우먼>도 예의 공식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여성에게 투표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당시 영국(영국의 여성 투표권은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만 제한적으로 부여되었다)의 상황을, 빅토리아 스타일의 복식을 200번씩이나 입어 보면서 이런 옷을 입고 어떻게 싸우냐는 말에 여성 비서가 여성참정권 투쟁을 말하는 거냐고 되묻는 장면으로 영화는 설명한다. 뭐 그리고 영화는 블록버스터 답게 참호전이 한창이던 벨기에 전선에 투입된 원더우면이 실력을 발휘해서 독일군을 제압하고, 독일군의 인질이 되어 있다시피 했던 마을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장면으로 리얼리티를 소환한다. 이 장면도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후반에 등장한 군신 애리스와 격투를 벌이는 장면에 비하면 보다 리얼하다고나 할까.


오래전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됐던 미드 <원더우먼>의 린다 카터 아줌마처럼 갤 가돗 역시 이스라엘 미인대회 출신이라고 했던가. 미드에서 린다 카터 아줌마가 선정성 넘치는 복장으로 시청자들을 현혹시켰다면, 이번 2017년 영화판 <원더우먼>에서는 좀 더 굵직한 테마로 관객을 리드한다. 신이 창조한 인간들이 서로 싸우고, 하잘 것 없는 권력을 위해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군신 애리스는 아예 인류를 파멸시키길 원한다. 당연히 그런 그를 막아야 하는 원더우먼은 사력을 다해 거악에 대항한다. 그리고 트레버 대위는 사랑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연합군을 파멸로 몰아 넣을 수도 있는 독가스가 탑재된 비행기를 타고 최후의 미션에 나선다.


DC코믹스에서는 저스티스 리그의 본격 흥행을 위해 서둘러서 <원더우먼> 시리즈를 런칭한 모양이다. 결국 평화를 상징하는 원더우먼과 영원한 전쟁을 원하는 애리스 모두 제우스의 자녀들이자 맞수로 싸움을 벌이고,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들 역시 제 멋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첨단무기를 이용해서 자기파멸적 투쟁에 나선다는 게 아닌가. 저스티스 리그의 히어로들이 본격적인 싸움에 나서기 전에 뼈대 있는 히어로들의 배경 설명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벤 어플렉이 맡은 배트맨과 헨리 카빌이 맡은 수퍼맨이야 그동안 리부트를 거듭하면서 대중에게 소개됐으니 이제 여성 히어로 원더우먼의 차례가 아니었던가. 그나저나 난 왜 자꾸만 루덴도르프가 맡은 역할과 캡틴 아메리카의 하이드라의 이미지가 겹치는지 모르겠다. 결국 서로 닮으면서 변별점을 구축한다는 설정이려나.


영화의 맨 마지막에 현실로 돌아온 다이애나는 완전 무장하고 세상의 악과 싸우기 위해 달려 나가는데, 브루스 웨인의 호출을 받은 건지 모르겠다. 저스티스 리그를 보면 좀 알게 되겠지. 아, 이제 물고기와 대화한다는 아쿠아맨과 플래시 그리고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저스티스 리그가 시작될 모양이다. 이번엔 좀 잘해 보자 DC코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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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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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 빌 스토너의 삶을 통해 현재를 사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숨겨진 책의 발견이라는 점은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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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중경삼림 - Wong Kar Wai Collection Vol.2
왕가위 감독, 임청하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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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늦은 시간에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개콘을 차례로 보고 나서 막 텔레비전을 끄려던 차에 왕정문이 나오는 영화 <중경삼림>을 보게 됐다. 정말 오래전 영화였었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마 극장에 가서만 세 번이나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같이 사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던데. 이 영화가 왜 좋냐고 묻는데, 난 크리스토퍼 도일의 핸드헬드 카메라 기법을 운운하고 있었다. 왜 좋냐고? 글쎄.

 

아마 첫 번째 에피소드가 임청하와 금성무가 나오는 이야기였고, 두 번째가 젊은 날의 양조위와 왕정문(혹은 왕비)이 나오는 에피소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끝까지 다 보지는 못했고, 두 번째 에피소드 중에서 왕정문이 일하는 샐러드바에 매일 같이 찾아와 스튜어디스 애인에게 줄 샐러드를 사가는 경찰 663(양조위 분)의 이야기부터 본 것 같다.

 

모름지기 영화에 로맨스가 빠져서는 될 이야기도 안될 법. 친척 집에 와서 일을 거들어 주고 있다는 페이(왕정문 분)는 경찰 663에 대한 호감을 몰래 키워가고 있다. 조연으로 등장한 663의 애인이 누군가 해서 찾아 보니 주가령이라고 한다. 역시 조연도 그냥 쓰지 않은 모양이다. 페이는 매일 같이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그야말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큰 소리로 틀어 놓고 산다. 아마 언젠가는 캘리포니아에 갈 꿈을 꾸는 모양이다.

 

샐러드바 주인장의 권유로 경찰 663은 생선튀김과 샐러드를 사서 애인에게 주었다가, 아니 음식도 이렇게 골라 선택의 여지가 많은데 하물며 남자친구는 하는 말을 남기고 가차없이 663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떠나는 길에 그가 자주 들르는 샐러드바에 들러 이별의 편지와 아파트 열쇠를 맡기고 떠나는데, 이게 바로 페이가 663의 집을 드나들게 되는 결정적 계기 혹은 비밀연애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 된다. 페이는 빈 시간을 이용해서 663의 집을 찾아 전여친의 흔적을 세세하게 지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신 자신을 채워 넣기 시작한다. 어제 난 여기까지 보고 어쩔 수 없이 텔레비전을 꺼야했다.

 

그전에 리뷰를 쓰면서는 홍콩 반환을 앞둔 브리티시 홍콩 시절의 불안감을 중점적으로 쓰곤 했던 기억인데, 이제 시니카 홍콩이 된지도 한참 시간이 흘렀다. 난 그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홍콩에 갔을 때 부러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는 퀄룽의 청킹맨션을 찾기도 했는데 그냥 그랬던 것 같다. 주인공 왕정문이 부른 <몽중인>을 참 좋아해서 홍콩에 갔을 적에 싱글 CD를 사기도 했다. 참 사연 많은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무더운 여름날에 하이네켄 맥주를 쉴 새 없이 들이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뭔 놈의 방송 규제가 그리도 많은지 경찰 663이 노점에서 마시는 코카콜라에도 솜방망이가 따라 다니고, 페이가 663의 집에서 몰래 바꾸어 놓는 정어리통조림/파인애플 통조림도 흐릿하게 처리가 되고 있었다. PPL이 언제부터 방송가를 슬금슬금 점령해 왔는데 고작 영화에서 몇 컷 보여주는 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시간이 되면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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