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일자 및 장소 : 2017년 6월 10일 토요일 부천 롯데시네마 15:50


우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Marvel Cinematic Universe, MCU)에 못지않은 히어로 라인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DC코믹스는 라이벌에게 일방적으로 얻어 터지고 있는 걸까. 마블이 “따로 또 같이”라는 전략으로 개별 히어로들은 물론이고, 어벤저스 그리고 인피티니 워라는 히어로들이 모두 총출동하는 개봉 라인업들만 보더라도 앞으로는 MCU 영화만 보고 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인데 말이다. 물론 DC코믹스에서도 저스티스 리그라는 인피니티 워에 필적할 만한 필모그래피가 대기 중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영화팬들에게는 마블 파워가 압도적이다. 작년에 기대주였던 <수어사이드 스쿼드>(재촬영하는 수난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흥행은 대실패였다)에서 살아 남은 캐릭이 마고 로비가 연기한 할리 퀸 하나였다면 저스티스 리그는 마치 <원더우먼>의 부활을 위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난 저스티스 리그를 보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갤 가돗이 주연을 맡은 <원더우먼>이 개봉했다. 그 전에 탐 크루즈 주연의 <머미>를 보고 대실망해서 <원더우먼>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서 그런진 몰라도 상대적으로 훨씬 더 재밌게 느껴졌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히어로 물이 현실세계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판타지의 영화화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좀 엉뚱하게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시작한다. 백년 전 모습 그대로 하나도 늙지 않은 커리어우먼 스타일의 원더우먼이 한 장의 사진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배달트럭에 웨인 엔터테인먼트가 적혀 있는 점을 주목하라. 배트맨의 극중 이름이 브루스 웨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까 원더우먼과 스파이 스티브 트레버(크리스 파인 분) 그리고 다른 멤버들과 찍은 오리지널 사진이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원더우먼 탄생의 비화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데마스키라라는 남자들은 하나도 없는 여인들의 아마존 왕국이 존재한다. 제우스 신의 아들로 인간계에 전쟁을 배달한 전쟁의 신 애리스(아레스)에 대항하기 위해 오늘도 안타이오피(로빈 라이트 분)의 지휘 아래 아마존 여전사들은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다. 꼬맹이 다이애나 프린스(갤 가돗 분)도 곁에서 언니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여전사의 꿈을 키워간다. 그들의 평화는 독일군에게 쫓기는 미국 출신 파일럿 스티브 트레버가 등장하면서 깨진다.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독일군들은 데마스키라 해변에 상륙해서 아마존 여전사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인다. 일단의 독일군들을 아마존 여전사들은 칼과 활 그리고 창을 동원해서 제압하는데 성공한다. 이 와중에 아마존 최고의 여전사 안타이오피가 다이애나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는다. 포레스트 검프에서 그 순수한 제니를 연기했던 로빈 라이트가 나이가 들어 이렇게 강렬하면서도 짧은 연기력을 선사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갓킬러’라는 여왕 히폴리타가 보관 중이던 검과 방패 그리고 진실의 밧줄로 무장한 다이애나는 자신이 스파이라는 사실을 고백한 트레버를 도와 세상에 나가 전쟁의 신 애리스를 찾아내 끝장내면 전쟁은 멈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싸울 수가 없는 약한 이들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했던가. 레바논 시민들에 대한 그리고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옹호한 현실세계에서 시오니스트 갤 가돗의 이미지와 영화 속의 이미지가 너무 달라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전쟁이 한창 중이던 영국 런던에 등장한 여전사 다이애나는 온통 남성들로 구성된 전쟁위원회에 나타나 트레버가 비밀리에 입수한 닥터 포이즌의 신종 독가스 무기 개발계획을 알리지만, 휴전협정을 코 앞에 둔 장성들은 독일군을 도발시킬 만한 어떤 종류의 공격도 허가하지 않으려고 한다. 당시 서부전선에서는 수년간 교착화된 참호전으로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the war to stop all wars)라고 불린 1차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아마도 1918년 정도가 아닐까 싶다. 트레버의 보고를 들은 다이애나는 독일군 참모장 에리히 폰 루덴도르프가 바로 전쟁의 신 애리스의 화신이라는 단정짓고, 그를 제압하고 전쟁이 끝내기 위해 바로 전선으로 달려간다. 물론 트레버와 다이애나 만으로 적군을 제압하기란 역부족이기 때문에 도중에 위장전문가, 저격수 그리고 인디언 치프 등을 우군으로 규합한다. 영웅전설의 시작은 언제나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이 주어지고, 그 미션을 이루기 위한 동료들의 모집 그리고 대장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영화 <원더우먼>도 예의 공식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여성에게 투표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당시 영국(영국의 여성 투표권은 1918년 30세 이상의 여성에게만 제한적으로 부여되었다)의 상황을, 빅토리아 스타일의 복식을 200번씩이나 입어 보면서 이런 옷을 입고 어떻게 싸우냐는 말에 여성 비서가 여성참정권 투쟁을 말하는 거냐고 되묻는 장면으로 영화는 설명한다. 뭐 그리고 영화는 블록버스터 답게 참호전이 한창이던 벨기에 전선에 투입된 원더우면이 실력을 발휘해서 독일군을 제압하고, 독일군의 인질이 되어 있다시피 했던 마을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장면으로 리얼리티를 소환한다. 이 장면도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후반에 등장한 군신 애리스와 격투를 벌이는 장면에 비하면 보다 리얼하다고나 할까.


오래전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됐던 미드 <원더우먼>의 린다 카터 아줌마처럼 갤 가돗 역시 이스라엘 미인대회 출신이라고 했던가. 미드에서 린다 카터 아줌마가 선정성 넘치는 복장으로 시청자들을 현혹시켰다면, 이번 2017년 영화판 <원더우먼>에서는 좀 더 굵직한 테마로 관객을 리드한다. 신이 창조한 인간들이 서로 싸우고, 하잘 것 없는 권력을 위해 전쟁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군신 애리스는 아예 인류를 파멸시키길 원한다. 당연히 그런 그를 막아야 하는 원더우먼은 사력을 다해 거악에 대항한다. 그리고 트레버 대위는 사랑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연합군을 파멸로 몰아 넣을 수도 있는 독가스가 탑재된 비행기를 타고 최후의 미션에 나선다.


DC코믹스에서는 저스티스 리그의 본격 흥행을 위해 서둘러서 <원더우먼> 시리즈를 런칭한 모양이다. 결국 평화를 상징하는 원더우먼과 영원한 전쟁을 원하는 애리스 모두 제우스의 자녀들이자 맞수로 싸움을 벌이고,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들 역시 제 멋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첨단무기를 이용해서 자기파멸적 투쟁에 나선다는 게 아닌가. 저스티스 리그의 히어로들이 본격적인 싸움에 나서기 전에 뼈대 있는 히어로들의 배경 설명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벤 어플렉이 맡은 배트맨과 헨리 카빌이 맡은 수퍼맨이야 그동안 리부트를 거듭하면서 대중에게 소개됐으니 이제 여성 히어로 원더우먼의 차례가 아니었던가. 그나저나 난 왜 자꾸만 루덴도르프가 맡은 역할과 캡틴 아메리카의 하이드라의 이미지가 겹치는지 모르겠다. 결국 서로 닮으면서 변별점을 구축한다는 설정이려나.


영화의 맨 마지막에 현실로 돌아온 다이애나는 완전 무장하고 세상의 악과 싸우기 위해 달려 나가는데, 브루스 웨인의 호출을 받은 건지 모르겠다. 저스티스 리그를 보면 좀 알게 되겠지. 아, 이제 물고기와 대화한다는 아쿠아맨과 플래시 그리고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저스티스 리그가 시작될 모양이다. 이번엔 좀 잘해 보자 DC코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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