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 을유세계문학전집 5
다니엘 디포 지음, 윤혜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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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겔 제 3탄이다. 아니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읽었으니 4탄인가, 헷갈린다. 로벝크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과 같이 온 고전을 숨 가쁘게 다 읽었다. 역시나 나의 상상과는 정말 다른 차원의 그런 소설이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백인 우월주의와 마치 포교 활동에 나선 전도사 같은 종교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좀 그랬지만, 저자 대니얼 디포가 왕당파 출신 상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좀 읽는다하면 아마 들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그 이름도 빛나는 로빈슨 크루소. 이 인간은 평범하게 법조인이 되어 중산층의 일원으로 살라는 아버지의 준엄한 충고를 가볍게 무시하고(맏형은 전장터에 나갔다가 아마 플랑드르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고 한다), 선원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첫 출항부터 갖은 고생을 하고 심지어 살레 함선의 포로가 되어 2년 간 무어 인의 노예 생활을 하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번에는 간신히 구조되어 브라질까지 흘러가 농장주로 변신한다.

 

여기서도 로빈슨 크루소는 얌전하게 뭍에서의 생활을 즐기지 못하고 새로운 모험에 나서게 되는데, 그것은 정말 경제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러니까 로빈슨 크루소는 뼈속까지 사업가 혹은 상인이었던 것이다. 바로 농장에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노예가 필요했고, 비싼 비용을 들여 아프리카 노예를 사들이는 대신 자신이 직접 기니 여행에 나서 노예 직구는 하겠다고 나섰다가 카리브 해의 바다에서 난파당해 장장 28년간의 생고생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놀랍군. 그가 청춘을 무인도에서 보내게 된 이유가 바로 노예무역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배에 탔던 이들은 예상대로 모두 죽었고, 유일한 생존자가 바로 로빈슨 크루소였다. 그는 난파된 배에서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는데 성공했다. 무인도에서 첫 1년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인 것 같다.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식량원으로 섬에 살던 염소와 비둘기 그리고 바다거북 혹은 자라가 유용했다. 배에서 건져낸 사냥총과 화약으로 당장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는 로빈슨 크루소. 마침 그가 표류하게 된 섬이 무인도이고 이렇다 할 맹수가 없다는 점도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었다.

 

근대 자본가답게 그는 쉴 새 없이 노동에 나선다. 거의 매일 같이 하던 로빈슨의 노동은 훗날 자본가들에게 신의 은총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지금도 일하지 않는 자,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회자되는데 그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로빈슨 크루소라는 점이 흥미롭다. 게다가 그는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서양 제국주의의 첨병이기도 했다. 아무도 주인이 없는 무인도를 자신의 영지라고 주장하고, 스스로 군주 행세를 하며 작은 왕국의 주인이 되었다.

 

그런 그의 오만불손한 태도는 섬에서 홀로 생활한 지 20여년 지난 다음, 야만인들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천한 프라이디(을유문화사 버전에서는 금요일이라고 굳이 번역한다)를 구하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네들의 식인 문화를 문명인의 입장에서 상상할 수 없는 가공할 만한 악마들의 범죄로 규정하고, 자신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은 야만인들에게 총탄 세례를 퍼붓는다. 그리고 그렇게 구제된 프라이디는 로빈슨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면서 충성을 맹세한다. , 불편하다 불편해.

 

심지어 프라이디를 금요일날 구했다고 이름까지 프라이디라고 명명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아마 요즘 이런 내러티브를 구사했다면 바로 꼰대 작가로 명명되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렇게 프라이디를 구한 다음의 3년이 새로 거듭난 신앙인 로빈슨에게는 무인도에서 최고의 시절이었다. 아 참, 잊었는데 <로빈슨 크루소>는 기본적으로 주인공의 자서전 성격의 글이다.

 

내가 어려서 읽은 버전에서는 신앙인으로 신이 자신을 바다에 빠져 죽게 하지 않고 구원했다고 믿고, 스스로의 우울증을 치료하고 심지어 자신의 수종 프라이디에게 교리 강론을 하기도 한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무자격자가 그런 행위를 하면 안되는데... 자신의 마스터에게 영어와 성경 지식을 배운 프라이디는 마스터를 당황하게 만드는 질문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보니 소설의 저자 대니얼 디포가 장로교도 집안 출신이라고 했던가. 자그마치 28년이나 되는 흘러넘치는 연단의 시간은 설렁설렁한 종교인이었던 로빈슨 크루소를 신의 뜻을 잘 이해하는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만들어준 것 같다. 나에게는 흥미로운 지점이었지만, 비종교인들에게는 정말 따분한 서사가 아니었나 싶다. 어느 너튜브에서는 신앙 차원에서 이 소설을 분석한 것 같던데 읽다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우연한 기회에 선상 반란을 맞은 영국 선장 일행에 로빈슨 크루소의 영지에 도착하고, 거의 전투에 가까운 격렬한 싸움 끝에 반란군을 제압한 로빈슨 일행은 그의 도움으로 무인도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그렇게 끝이 나냐고? 천만에 말씀이다. 상인이자 사업가 로빈슨에게 28년 전에 자신이 벌인 사업과 농장을 찾는 미션이 주어진다. 세상에 이 부분도 놀라울 지경이다. 나는 그저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탈출에 성공한 다음, 영국으로 되돌아가 잘 먹고 잘 살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굉장히 나의 기억과는 달랐다.

 

사업가 로빈슨 크루소는 알뜰하게 자신의 재산을 챙긴다. 하긴 상업국가에서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으니까. 노련한 상인답게 여기저기 흩어진 재산을 모으는데 성공한 로빈슨 크루소, 멋지군 그래. 역시나 자본주의의 총아다운 엔딩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결혼해서 아이도 셋이나 낳고, 나중에 다시 모험길에 나서 자신이 28년의 청춘을 보낸 섬에도 찾았다고 한다.

 

자신은 젊어서 부모의 충고를 무시하고 실컷 하고 싶은 대로 살았던 주인공이 몇 번의 경고장에도 불구하고 결국 무인도에 유배되는 신세가 되어 그 때 부모님의 말을 들었을 걸하는 장면은 너무나 웃겼다. 평범한 삶이 사실 매력은 없지. 모두가 특출한 삶을 그리고 아싸라한 모험을 꿈꾸지만 우리네 현실이 어디 그런가 말이다. 자신은 실컷 즐기고, 다른 이들에게는 내가 살아 보니 그게 아니다? 이 아저씨 좀 엉뚱하다. 아무래도 나는 모험가 로빈슨 크루소를 꼰대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나중에 고향에 돌아와 빈털털리가 될 줄 알았는데 브라질에 묻어둔 부동산 대박으로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는 점도 그렇고. 역시 부동산 투자가 최고라는 말인가. 어떻게 갈수록 빈정거리게 되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어려서 만난 로빈슨 크루소와 나이 들고 읽게 된 로빈슨 크루소는 달랐던 것 같다. 같은 인물인데, 어느 시절에 읽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그를 보는 시선도 바뀌게 된다는 걸까.

 

[뱀다리] 을유문화사 버전이 원전의 만연체 스타일 문장을 가장 잘 다루었다는 말이 있어서 이 책을 골랐다. 13년 전에 처음 나왔는데 무려 11쇄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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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6-25 20: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책이 이쁘네요?!! 왠지 읽은것 같은 대표적인 고전 중 하나죠ㅋㅋ저도 구럼 을유문화사로 찜!

레삭매냐 2021-06-25 21:48   좋아요 3 | URL
알고 있었던 부분들은 다시
만나서 반가웠고,

아니 이런 부분들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무인도에서 홀
로 살던 시절의 로빈슨 크루
소의 심리 상태도 있더라구요.

단발머리 2021-06-25 21: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집에 있는데 이 책은 을유로 읽어야할 것만 같아요. 저도 그럼 을유로~~~~

레삭매냐 2021-06-25 21:48   좋아요 3 | URL
망겔 쌤 덕분에 읽었다고 착각
하고 있던 고전들을 섭렵하게
되었습니다.

을유, 캄온!

새파랑 2021-06-25 21: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분명 어렸을때 요약된 책을 읽었을거라 생각되지만 막상 무슨내용이야? 물어보면 그냥 표류당한 크루소? 이렇게 밖에 답을 못할거 같아요 ㅜㅜ
점점 궁금해지는 망겔 리스트군요~!

레삭매냐 2021-06-25 21:50   좋아요 3 | URL
자그마치 302년 전에 나온 책을
현대의 관점으로 읽다 보니,
참 깔 게 많구나 싶었습니다.

망겔 쌤은 고저 책쟁이들의
개미지옥입네다.

mini74 2021-06-26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제가 가진 책보다 훨씬!! 표지가 예쁘군요 ㅎㅎ이거 읽고 친구들이랑 무인도에 세 가지 물건을 가져 갈 수 있다면 뭘 가지고 갈까 막 진짜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어요. 한 친구가 R2D2를 데려가겠다해서 웃었던 기억이 ㅎㅎ 포스가 함께 하기를 ~ *^^*

레삭매냐 2021-06-26 09:21   좋아요 1 | URL
그리고 보니 영화 <캐스트 어웨이>
에서 탐 행크스는 라이터나 칼 하나
없어 그렇게 고생을 하던데... 로빈슨
이 그나마 나았던 모양이네요.

May the Force be with you !!!

오마갓, 말씀해 주신 대로
포스가 젤로 필요합니다.

새파랑 2021-07-07 18: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당선 축하드려요. 집나가면 개고생이 맞는거 같아요~!!

그레이스 2021-07-07 18: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로빈슨이 고생한 보람이...?!
축하합니다 ~!

서니데이 2021-07-07 1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초딩 2021-07-07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