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란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千山鳥飛絶

길이란 길에는 사람 자취 끊어졌네          萬徑人蹤滅

외로운 배 삿갓 쓴 늙은이                     孤舟簑笠翁

눈 내리는 차운 강에서 홀로 낚시질         獨釣寒江雪


<유종원, 강설(江雪)>



동아시아엔 신이 없다. 굳이 있다면 자연이 신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는 정신의 최고 경지를 자연과의 합일에 둔다. 흔히 말하는 물아일체, 만물일여가 이런 경지이다.


위 시는 서경시로 볼수도 있지만 서경을 빈 서정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춘 절대 적막의 공간(1, 2구). 이 절대 적막의 공간에 등장한 유일한 동적 존재인 노인. 그러나 이 노인 역시 낚시대만 드리운 채 미동도 하고 있지 않다(3, 4구).  노인은 절대 적막의 공간과 합일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물아일체, 만물일여의 상태인 것이다.


시에 등장한 노인은 당연히 작가 자신일 터이다. 이 시를 흔히 유종원의 정치적 고립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시로 보지만, 그보다는 최고의 정신적 경지에 도달한 모습을 보여준 시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이 시를 지을 당시, 그는 이미 그런 이해득실의 현실적 가치를 넘어선 경지에 있었다고 보인다.


폭설이 내린 아침, 눈을 치우기 앞서 잠시 한가한 사색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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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구로 이루어진 한시[절구]를 지을 적에는 대개 전환 부분에 해당하는 3구와 결말에 해당하는 4구를 먼저 짓고 도입과 전개에 해당하는 1, 2구를 나중에 짓는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작시 순서와 다르다. 3, 4구를 먼저 짓고 1, 2구를 나중에 짓는 것은 이렇게 지어야 용두사미(龍頭蛇尾)의 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시작하면 용두사미의 시가 되기 십상이다. 물론 이는 주로 초심자에게 해당하는 작법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한시에 숙달한 이들도 이 방법을 선호한다. 실패할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정초에 일출 장소를 찾기 보다는 일몰 장소를 찾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시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끝을 먼저 생각하면서 한 해를 시작하면 용두사미같은 한 해가 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일몰을 보며 차분한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면 과한 희망을 덜고 좀 더 알찬 한 해를 보낼 것 같다.


사진은 '동암(東庵)' 이라고 읽는다(낙관 부분은 '임자년 사월 팔일 성지용 서(壬子年 四月 八日 成志鏞 書)'라고 읽는다). '동쪽에 있는 암자'란 뜻인데, 달리 풀이하면 '해맞이 암자' 혹은 '진리의 암자(진리의 깨우침을 해맞이에 비유)'라고도 할 수 있다. 도비산(서산시 부석면 소재)에 있는 암자인데 해맞이에 좋은 장소에 위치해 이런 이름을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일요일(3일) 오후에 이곳을 찾았다. 해돋이 대신 해넘이에 가까운 풍경을 보며 새로운 한 해를 생각했다. 더불어 '공수거(空手去)'라는 인생의 종착점을 떠올리며 삶도 생각해봤다. 끝에서 시작을 생각하면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좀 더 완결성있게 한 해를 보내고 삶도 그렇게 살 것 같다.





庵이 낯설다. 자세히 살펴보자.


庵은 广(집 엄)과 奄(가릴 엄)의 합자이다. 풀로 지붕을 덮은 작은 집이란 뜻이다. 암자 암. 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庵子(암자) 정도를 들 수 있겠다.


동암(東庵)은 이 암자가 있는 도비산의 반대편에 위치한 부석사(浮石寺, 영주시의 부석서와 동일한 이름이다. 의상대사 전설도 똑같다)와 살림 살이가 정반대이다. 물론 '암'과 '사'의 차이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같은 종단에 속한 절인 것을 생각하면 안쓰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왠지 이곳이 더 수도자의 집다운 느낌이 든다. 퇴락한 절이라야 수도자의 집같다는 것은 편견일 수 있지만, 왠지 부화한 절에는 수도자다운 수도자가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속세와 절연하고 삶의 종착역을 우선시하는 수도자가 부화한 집에 머문다는 것은 왠지 모순된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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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은 잔 흙들을 가리지 않기에 그 거대함을 이룬 것이고, 황하와 바다는 잔 물줄기를 가리지 않기에 그 깊음을 이룬 것입니다[泰山不辭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이사(李斯)는 초나라 출신으로 진()나라에서 벼슬하고 있었다. 당시 진나라에서는 이사 같은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들의 입지가 점차 넓어지자 토착 세력들이 불안감을 느껴 이들을 몰아내고자 했다. 왕이었던 정(, 뒷날의 시황제)을 충동질하여 이들을 쫓아내는 이른바 축객령(逐客令)’을 내리게 했다. 막막해진 이사는 외국에서 와 진나라에서 벼슬하는 이들의 가치와 의미를 설득력 있게 진술한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를 올려 진왕의 회심을 기대했다. 설득력 있는 진술이 통했는지 진왕은 축객령을 철회한다. 인용문은 상진왕축객서에서도 백미 부분에 해당하는 문구로, 널리 회자(膾炙)되는 문구이다. 이사의 저 문구는 강자에 기대는 약자의 읍소(泣訴)’이다.

 

그런데 저 문구를 약자의 관점이 아닌 강자의 관점에서 보면 약자의 읍소를 수용하는 강자의 여유가 된다. 수용이란 강자의 여유에서 나온다. 당시 진나라가 이런 강자의 여유 상황이 아니었다면 제아무리 이사가 설득력 있는 논변을 펼쳤다 해도 그 말은 수용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진의 한자는 정초(定礎)’라고 읽는다. 정초란 건물의 기초를 잡아 정한다는 뜻으로, 공사 착수를 기념하는 문구이다. 사진의 정초 글씨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글씨로, 한국은행 옛 본점(현 화폐박물관) 머릿돌에 새겨진 글씨이다. 이 글씨를 쓴 이에 대한 논구(論究)가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이토의 글씨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이 정초’ 글씨에 대한 처리가 대두됐는데, 안내판 설치 혹은 삭제나 가리기 또는 교체 등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전 같으면 당연히 교체나 삭제 혹은 가리기에 손을 들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안내판 설치가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민족적 자존심도 없냐며, 펄쩍 뛰실 분들이 계실 것 같다.

 

안내판 설치에 손을 드는 건 강자의 여유 관점에서 보고자 해서이다. 저런 자잘한(?) 흔적은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에 하등 지장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외려 저런 것조차 수용할 때 우리의 자존심이 더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자잘한 흙이나 자잘한 물줄기를 기꺼이 수용하여 거대한 산이 되고 거대한 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 한때 국권을 잃어 저런 씁쓸한 흔적물을 갖게 되었지.’ 정도의 여유를 가지면 어떨까 싶다.

 

베트남은 오랫동안 프랑스의 통치를 받아 그 잔존물이 많다. 한때는 베트남도 그런 잔존물을 제거하려 했지만, 지금은 그것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한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이 찾는 다낭의 바나힐도 그중의 하나이다. 식민지 관리들의 휴양시설이었던 것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은 자존심도 없단 말인가, 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베트남처럼 자존심 강한 나라가 어디 있는가? 세계 최강대국 프랑스와 미국을 이긴 나라가 베트남이다. 그들이 식민지 시절의 잔존물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자존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존심이 강해서이다. 그따위 잔존물이 그들의 자존심을 해할만한 꺼리가 못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태산과 하해는 자잘한 흙덩이와 물줄기를 기꺼이 품는다. 강자의 여유인 것이다. 이토의 저 하찮은 글씨가 뭐 그리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단 말인가! 그저 일소(一笑)에 붙이고 관람하는 것이 되려 자존심 높은 행동이 아닐까? 관계 기관의 현명한 판단이 있겠지만, 강자의 여유 관점에서 판단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집 면)(바를 정)의 합자이다. 집을 바르게 지어 붕괴의 염려가 없기에 편안하다는 의미이다. ‘정하다란 의미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것이다. 안정되려면 사태가 결정돼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정할 정.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確定(확정), 定石(정석) 등을 들 수 있겠다.

 

(돌 석)(아플 초)의 합자이다. 기둥 떠받치는 고통을 감내하는 돌이란 뜻이다. 주춧돌 초. 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礎石(초석), 基礎(기초)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군산에 옛 일본식 가옥을 관광하는 코스가 있다. 우연한 기회에 이 코스를 가보게 됐는데, 안내하는 이가 이제 이런 가옥들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 근대 건축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식 가옥을 근대 건축 문화유산으로 여기며 보존하다니, 라며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강자의 여유 관점으로 대하면 어떨까 싶다. 그까짓 일본식 가옥 남아있는 것이 무어 그리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단 말인가? 다시 한번 첫머리 인용문을 음미해보자. “태산은 잔 흙들을 가리지 않았기에 그 거대함을 이루었고, 하해는 잔 물줄기를 가리지 않았기에 그 깊음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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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1-01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내판을 설치하고 보존하자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찔레꽃 2021-01-02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그래도 되겠죠?
 



"둘 모두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세월을 거스리는 건 쉽지 않았다. 타이슨은 1라운드부터 묵직한 펀치를 날렸고, 존스는 빠르게 움직이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타이슨의 강펀치를 피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1라운드(2분)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린 후부터 둘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힘에 부치다보니 서로 부둥켜 안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 8라운드가 끝나자, 둘은 안도한 듯 포옹했다." (인용 출처: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topic/2020/11/29/OUOE7JGPHRA4RLQL655XH7RPG4/)

 

관심을 모았던 마이크 타이슨과 로이 존스 주니어의 경기는 무승부로 싱겁게 끝났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타이슨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싸워야 한다"고 호언했지만 '그게 진짜 속마음에서 나온 말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경기를 보면서 관중이 느꼈을 세월의 무게를 그도 필시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혼자 남겨진 장소에서는 이런 말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르겠다.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돌아올 수 없나?"


사진의 한자는, 밑에 한글로 표기된 것처럼, '보명회생산(補命回生散)'이라고 읽는다. '생명을 보하여 되살아나게 하는 가루약'이란 뜻이다. 본래 약이지만 음용차로 상용화된 듯하다. 차 상자에서 찍은 사진이기 때문. 영어로 번역된 것은 '생명의 차'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기력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차인 듯한데, 경기를 끝낸 두 노복서에게 필요한 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잔씩들 드시고, 이제는 그만~.


補와 散이 낯설어 보인다.


補는 衤(衣의 변형, 옷 의)와 甫(남자의 미칭 보)의 합자이다. 헤진 옷을 수선하여 제대로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衤로 뜻을 표현했다. 甫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남자의 미칭처럼 수선된 옷은 보기 좋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기울 보. 돕다라는 의미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도울 보. 補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補完(보완), 補充(보충) 등을 들 수 있겠다.


散은 林(수풀 림)과 攵(칠 복)의 합자이다. 숲의 나무들을 치면 가지가 부러지고 잎이 떨어진다란 의미이다. 이 의미를 종합하여 '흩어지다'란 의미로 사용한다. 흩어질 산. 약재로서 '가루'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散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解散(해산), 分散(분산) 등을 들 수 있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약해지는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좋은 음식이나 약을 찾는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그것 이전에 우선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 있다. 마음 챙김. 삶은 유한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하루하루를 기쁘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이다. 하루하루를 이전의 삶에 주어지는 보너스로 생각하는 것. 이것이 좋은 음식이나 약보다 더 중요하다고 본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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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룡유회(亢龍有悔)”란 말이 있다. ‘꼭대기에 오른 용은 후회할 일이 있다라는 의미로, 주역건괘() 상구(건괘의 맨 위에 있는 선을 일컫는 말)의 효사(괘의 각 선에 대한 설명)이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최고를 좋아한다. 수석, MVP, 스타, 베스트 셀러 등에 환호하는 것은 이런 성향 때문일 것이다. 누구 말대로 사람들은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런데 주역은 그런 최고를 경계한다. 최고는 곧 기움의 시작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건괘에서 가장 좋게 여기는 자리는 어디일까? 짐작했겠지만, 상구 전의 구오(건괘의 위에서 두 번째 선을 일컫는 말)이다. 최고 직전이 가장 좋다고 보는 것. 쉽게 말하면 2등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선뜻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조금만 되짚어보면 수긍할 것이다. 1등은 추격자에 대한 압박과 1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반면 2등은 1등에 버금가는 성과를 거뒀지만 1등만큼의 압박과 강박은 없다. 1등보다 2등이 낫다는 말, 수긍할만하지 않은가.

 

사진의 한자는 ()’이라고 읽는다. ‘가득 채워져 있다란 뜻이다. 내부가 풀 세트로 채워져 있다는 의미일 것도 같고, 이곳에 들어오면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가득 채워질 거라는 의미일 것도 같다. 여하간에 이 빌딩 이름에는 알게 모르게 최고 지상주의, 1등주의 가치관이 배어있다.

 

그래서 그럴까, 왠지 이 집에 입주하면 압박과 강박감을 많이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 지상주의가 주는 스트레스를 온전히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 빌딩 이름을 살짝 고치면 이런 스트레스를 덜 받거나 받지 않을 것 같다는 황당한 생각을 해봤다. 영측(盈昃) 빌딩. 채워지기도 비워지기도 하는 건물. 1등도 될 수 있고 꼴찌도 될 수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지만, 여유를 가진 빌딩으로 2등이란 의미를 강조하여 작명한 것이다. 어떻게 느끼시는지?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그릇 명)(더할 고)의 합자이다. 물건이 담긴 그릇에 추가로 물건을 더하여 그릇을 가득 채운다는 의미이다. 찰 영.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盈昃(영측, 차고 기움), 盈尺(영척, 한 자 남짓. 협소함) 등을 들 수 있겠다.

 

2등이 좋다고 했지만, 사실 2등도 1등 못지않은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다. 1등이 되지 못한데서 오는 결핍과 아쉬움이 그것. 가장 좋은 것은 1등도 2등도 아닌 무등(無等)이다(그래서 나는 무등산을 좋아한다). 1등 혹은 2등에게 보내는 찬사는 광대에게 보내는 박수와 다를 바 없다. 그것은 결국 타인의 장단에 놀아나는 것이다. 자신의 리듬에 맞춰 무등을 추구하는 것이 삶을 삶답게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한가한 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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