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란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千山鳥飛絶

길이란 길에는 사람 자취 끊어졌네          萬徑人蹤滅

외로운 배 삿갓 쓴 늙은이                     孤舟簑笠翁

눈 내리는 차운 강에서 홀로 낚시질         獨釣寒江雪


<유종원, 강설(江雪)>



동아시아엔 신이 없다. 굳이 있다면 자연이 신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는 정신의 최고 경지를 자연과의 합일에 둔다. 흔히 말하는 물아일체, 만물일여가 이런 경지이다.


위 시는 서경시로 볼수도 있지만 서경을 빈 서정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춘 절대 적막의 공간(1, 2구). 이 절대 적막의 공간에 등장한 유일한 동적 존재인 노인. 그러나 이 노인 역시 낚시대만 드리운 채 미동도 하고 있지 않다(3, 4구).  노인은 절대 적막의 공간과 합일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물아일체, 만물일여의 상태인 것이다.


시에 등장한 노인은 당연히 작가 자신일 터이다. 이 시를 흔히 유종원의 정치적 고립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시로 보지만, 그보다는 최고의 정신적 경지에 도달한 모습을 보여준 시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이 시를 지을 당시, 그는 이미 그런 이해득실의 현실적 가치를 넘어선 경지에 있었다고 보인다.


폭설이 내린 아침, 눈을 치우기 앞서 잠시 한가한 사색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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